모든 빛깔들의 밤
김인숙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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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이 우연이라면 희망도 우연처럼 찾아오겠지...『모든 빛깔들의 밤』

 

 

‘잊을 수 없으면 지워야 하고, 지울 수 없으면 죽여야 한다(229페이지)’는 말이 가슴에 박혀버리는 순간, 잔인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이 말이 그 어떤 다짐보다 더 적나라하고 솔직하게 들렸다. 잊으려 애쓰는 모습이 간절하고, 지우려고 발버둥 치는데도 지워지지 않아 가슴을 쥐고 있을 때,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 상황이 끝나는 점을 만나지 못한다. 끝이 없는 고통을 품는 것만이 남았다면, 어쩔 텐가. 고통의 원인을 죽이는 수밖에.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사고였더라도, 내가 이렇게 나아지고 보듬으려 악쓰는 데도 안 된다면, 별수 없다. 가능한 다른 방법을 찾아 그 원인을 소멸시켜야 한다. 어려운 건 그 소멸의 방법, 소멸의 점을 쉽게 찾을 수 없다는 거다. 그래서 아프고 고통스러운 시간이 길어지고 끝이 없어지는 건지도 모른다. 알 수 있다면, 가능하다면, 완벽하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열차 탈선 사고가 일어났다. 시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 조안은 아이와 함께 열차에 타고 있었다. 기관사는 자살하려고 선로 위에 누워버린 한 남자를 발견했다. 열차는 멈추려고 급정거했지만 탈선하고,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차량 안은 불과 연기로 가득 찼고, 조안은 아이를 살리기 위해 창문 밖으로 아이를 던졌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아이가 죽었고 조안은 살았다. 사고 후 조안은 정신적 충격으로 밖에 나가지 못한다. 조안은 계속 정신과 치료를 받고 남편 희중은 그런 조안에게 모든 것을 집중한다. 조안의 양아치 동생 상윤은 열차 사고의 원인이 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주먹을 휘두른다. 뭐든, 그 사건의 빌미를 제공한 모든 것을 부수고 미친 듯이 퍼부어야만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울분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조안은 정신을 내려놓았고, 그 사고와 연관된 사람들의 일상은 파탄 났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으로 돌아갈 방법은, 고통이 사라질 방법은, 없었다.

 

사고는 우연이었을까. 우연이겠지. 우연이어야만 해. 우연이 아니라면 이들의 상처를 멀쩡하게 두 눈으로 보는 게 불가능하다. 일한 돈을 받지 못해 죽어버리겠다고 만취한 채 선로 위에 누워버렸던 트럭 기사, 환경단체의 반발로 공사가 중단되어 트럭 기사에게 급여를 주지 못했던 회사, 인근의 철새도래지를 지키려고 공사에 반대했던 환경단체. 설상가상 선로지반까지 약해져 열차는 탈선했고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 처음으로 죽은 남편의 생일을 챙기고자 했던 희중의 어머니, 아이와 함께 그 기념일을 챙기려 열차에 올랐던 조안, 뉴스로 사고 소식을 듣고 미친놈처럼 달려가던 희중을 태워준 약국 손님, 식당에서 양아치들과 싸우게 되어 도망가던 백곰이 본 사고 현장, 백곰을 죽일 듯 따라가던 양아치가 구원의 손길이 된 것, 조안과 희중의 집 517호로 이사 온 백곰, 417호로 이사해도 변한 게 없었던 조안. 위층 아래층에서 동시에 들리는 아이 울음소리. 귀신도 사람도 울어버리는 시간, 공간.

 

기억을 죽이기까지 해서 잊어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는 건, 아픈 일이다. 그 아픔의 크기를 알 수도 없다. 그런 다짐이 필요할 정도의 고통이라니,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나? 미리 말하지만, 같은 경험을 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고통을 알지 못한다. 대신 아파해줄 수도 없다. 오롯이 당사자의 몫으로 남아 아파하고 견디고 버텨야만 한다. 아직도 바람에 흔들리는 노란 리본의 영혼을 달래줄 수 있는 자, 누구인가. 그 상실을 끌어안고 버티듯 살아가야만 하는 이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는 오지랖은 부리지 말자. 아무도,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같은 경험을 하기 전에는... 아이를 잃고 살아남아 매일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는 조안, 그런 조안을 감시하듯 지켜봐야만 하는 희중. 자신의 작은 마음으로 죽음을 보게 했던 삼촌과 대화하는 백곰(백주), 신들린 듯 기도문을 외우는 희중의 어머니. 미친 것처럼 보였던 사람들이 그 상황에서 지극히 정상적인 모습으로 보였다면 나도 미친 건가. 미치지 않고서는 그 불행을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러니 그 미친 사람들이 정상일 수밖에.

 

없었던 일, 일어나지 않은 사고의 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런 경험을 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아갈 수도 없다. 모든 것이 끝난 후에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다고 해서 죽은 아이가 살아 돌아올 수는 없고, 리셋 버튼 하나 누른다고 해서 지워지지도 않는다. 그래서 자꾸 시간을 거꾸로 돌린다. 그 열차에 타지 않았다면, 거짓 이야기를 만들지 않았다면, 첫사랑 정희를 만나지 않았다면... 저절로 긴 그림자가 만들어진다. 열차 사고가 아닌, 훨씬 이전의 불행을 차곡차곡 끌어와 지금 시간에 밀어 넣는다. 불행의 이유는 더 짙어지고, 상처와 죄책감도 깊어간다. 누구의 책임이라고 물을 수 없고 그때 그 시간 때문에 지금 불행하게 살아갈 이유도 없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게 서로 연결되어 모든 것이 하나인 것처럼 여기게 한다. 지금 이런 시간과 고통의 이유가 그때부터 시작된 걸 거야, 라는 덩어리로 채우게 하는 마음의 흐름. 그 마음속이 온통 캄캄해져 빛이라곤 떠올릴 수 없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뭔가 싶을 때,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였던 양아치 상윤의 한마디가 뒤통수를 친다.

 

“다시 한 번 말해봐.”

“누나, 괜찮아. 나라도 그렇게 했을 거야.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잖아.”

상윤의 가슴에 예리한 통증이 지나갔다. 조안은 위로받고 싶었던 것이다.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어떤 말을 들어도 결국 괜찮을 수는 없겠으나, 어쩌면 그래서라도 더 그런 말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293~294페이지)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시 살아갈 수 있게, 캄캄한 밤을 밝은 빛으로 채울 수 있게, 그 온전한 삶으로의 가능성을 부여할 수 있는 건 '괜찮다'는 단 한마디였는지 모른다. 약의 복용량을 늘이고 무슨 일을 저지를까 싶어 감시하듯 지키는 게 아닌, 위로의 말이 필요했던 거였다. 조안이 백곰 앞에서 울어버렸던 건 아마도 그런 마음의 폭발이었지 않을까. 아무 관계도 아닌 사람이 건넨 '괜찮습니까?'라는 물음 앞에서 저절로 눈물이 흘러내렸던 건 아마도 그래서였으리라. 가끔은 그냥 모르는 대로 묻어버리고, 묻지 않고 건너가기도 하고, 삶의 중심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불안과 고통을 버려두어도 좋지 않을까. 그런 행동이나 다짐이, 어둠을 통과해서 빛을 만나려는 희망을 희미하게 피우는 시작일지도 모르잖아. 죄책감, 상실감, 고통을 동반한 불행을 건너 만날 수 있는 건 희망이고, 그 희망을 가능하게 하는 건 갖은 모양으로 통과해야만 하는 그 시간이니까. 그래서 기다릴 수도 있다. 지금 잠깐 내려놓았어도 그 빛이 찾아와 나를 밝혀줄 순간을. 산다는 건 이런 어둠이 지나가기도 하는 일이라고, 밝게 비춘 곳을 디딜 날도 곧 만날 거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상처를 치유하고 건너가야만 더 단단해질 수 있다고. 모든 밤, 사랑이었던 것도 잠깐 내려놓고, 지독히 두렵겠지만, 주춤주춤 현관문도 열어보면서, 어둠이 지나면 찾아올 어떤 것을 기다린다.

 

우연처럼 찾아온 불행이 우연처럼 물러갈 거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리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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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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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록은 240여일간 유가족들이 겪은 내밀한 이야기들이다. 기록 작업은 부모들의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직시하는 과정이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거기에는 세상이 반드시 바라봐야 할 삶의 진실이 있었다. (6페이지, 여는 글)

 

고통의 시간이 1년을 채우기까지 3주 정도 남았다. 곧, 4월 16일이 돌아온다. 금요일에 돌아오겠다던 아이들은 몇 번의 금요일이 지났어도 오지 못했다. 앞으로 셀 수 없을 만큼의 금요일이 되어도 돌아오지 못할 테지. 아이들의 부모는 절망과 오열 속에서 1년여의 세월을 보냈다. 마르지 않은 눈물이 계속 흐르고 있는 지금일 텐데, 감히 그들의 고통을 알 것 같다는 말도 할 수 없었다. 위로 한마디 건네는 것조차 어려운 마음. 시간이 좀 지나가기를, 지워지지 않을 상처겠지만 조금은 옅어지길 바랐다.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음에도...) 그런데 이런 말조차 미안해서 할 수가 없다. 끝난 게 아니므로. 제대로 밝혀진 게 하나도 없고,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는데 모든 게 끝난 것처럼, 상처만 다독이면 될 것처럼 여기게 될까 봐 무섭고 죄송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이가 비단 나뿐일까 싶은 생각에 공감의 시선을 들어보지만, 많은 말이 오히려 불필요함을 느끼곤 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은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이 유가족들과 함께하며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책이다. 분명 읽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읽기를 미뤄둘 수밖에 없었다. 펼쳐볼 생각을 할 수 없는 시간을 보냈다. 자식을 잃은 상실감을 상상할 수 없었고, 읽고 난 후에 마주한 진실을 똑바로 볼 용기가 없었다. 차오르는 분노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언제까지 피할 수 있을까. 직접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이렇게 마주한 진실을 들어야만 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임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진실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결코 끝나서는 안 될 이야기임을 저절로 알게 됐다. 온갖 매체를 통해 접했던, 내가 보고 들었던 이야기 중에 진실이 있기는 한 걸까. 누가, 무엇을 위해, 왜, 많은 이들에게 진실을 전하지 못했던 건가. 끝이 없는 질문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답답함. 이제야 듣고 격해지는 나보다, 직접 부딪힌 이들이 겪었을 그 참담함이 먼저 그려진다. 그러니, 절대 끝나지 않을 일인 거다.

 

살아 돌아오지 못한 안타까움을 떠올릴 사이도 없다. 시신으로 돌아온 아이를 두고, 먼저 시신을 수습하게 된 부모들에게 ‘축하한다’는 인사를 건네야 하는 현실을 두 눈으로 봐야만 했다. 죽음을 먼저 확인한 이에게 건네는 인사가 축하일 수밖에 없다니... 그런 세상을 부딪친 이들에게 아무런 말도 꺼낼 수 없다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 마지막까지 팽목항에 남은 부모가 될까 봐 두렵고, 그 시간이 끝이 없을까 봐 겁나고, 비참함 죽음이 아무 의미 없이 기억에서 사라질까 봐 안타까운 시간을 버텨온 그들에게 남겨진 게 무엇인가. 많은 것을 놓아버리고 버티는 시간이 계속되고 있다. 퇴사하고 매달리고 있는 진상규명, 웃음을 잃어버린 표정, 행복이란 단어를 지운 머릿속의 무게감이 현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이, 이렇다.

 

2014년 4월 16일에 정지된 시계, 줄어들 수 없는 고통의 무게, 무너져버린 일상의 모습. 삶을 꾸려가던 많은 것이 되돌아갈 수 없는 상태로 여전히 멈춰있다. 장례식이 끝나고 돌아와 보니 죽은 딸아이가 주문해놓은 참고서가 도착해있었다. 하고 싶은, 되고 싶은 꿈이 많은 아이가 이제는 내일을 얘기할 수 없다. 미처 다 하지 못한, ‘다음에’라고 미뤘던 말이 죄스럽게 그들의 가슴 속을 채우고 있으니... 무엇보다, 그 어떤 진실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가 이 기록을 계속하게 한다. 끝나지 않은, 해야 할 일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이미 귀한 것을 잃은 유가족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특별법이 증명해야 할 것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안전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는 게 마땅한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일인 거다. 그래서 이 책에 실린 열세 명의 부모의 목소리지만, 이게 열세 명만의 목소리는 아닌 거다. 기억에서 사라질 수 없는 이야기. 작가들이 보고 듣고 쓰고 그린, 생생한 증언의 목소리가 멈출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족들은 팽목항을 떠날 수 없다. 참사는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실종자 가족들의 기다림만이 이를 일깨워주는 것은 아니다. 아직 4월 16일은 끝나지 않았다. (341페이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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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1 21: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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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1 21: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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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좀 많습니다 - 책 좋아하는 당신과 함께 읽는 서재 이야기
윤성근 지음 / 이매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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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에 있는 책장과 바닥의 상자 속에 담긴 책까지 슬쩍 둘러보니 내가 가진 책이 얼추 400권쯤 되는 듯하다. 그보다 조금 더 적거나 많아지기도 하지만 평균 400권쯤 유지하고 있다. 방이 작기도 하고 워낙 정리를 안 하는 사람이기에 책이 더 많아진다고 해도 감당이 안 된다. 도서정가제 전에 사들인 책이 아직도 상자 속에서 그 자태를 숨기고 있을 정도이니, 정리 안 하는 것으로 따지면 나를 따라올 사람은 없을 것도 같다. (응? 이거, 자랑은 아닌데 자랑인 듯 당당하게 들리는 건 왜인지... ^^;;) 그래서인지 크게 책 욕심은 없다. 그저 내가 소화할 수 있을 만큼만 사고, 천천히 라도 읽어보자는 마음이다. 그럼 꾸준히 사면서도 평균 소장 권수를 유지하는 건 어떻게 가능한지 곰곰 생각해보니 책을 미련 없이 내 손에서 떠나보내기에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다 읽은 책 중에서 소장하고 싶은 건 따로 챙겨두기도 하지만 대부분 한 번 읽고 안 읽는 책들은 인터넷 헌책방에 팔기도 하고 지인들에게 나눠주거나 복지센터에 기증한다. 그러니 책을 계속 사면서도 내게 남겨진 책이 많지 않음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어떨지 몰라도 나에겐 좋은 습관이다. 어차피 책을 보관할 곳도 없고, 정리도 안 되기에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잘 고른 듯하다.

 

그럼, 나는 이렇게 책을 처리(?)하는데 다른 이들은 책을 어떻게 감당하나? 내 주변의 오프라인 사람 중에 책 읽는 사람은 거의 없어서인지 누구네 책장은 이 정도더라, 하는 광경을 말하긴 좀 어렵다. 반면 온라인 지인들은 대부분 다독가이고 장서가 혹은 애서가들이다. 책 보유 권수가 나의 몇 배는 기본이고, 심지어는 책 놓을 장소가 모자라 장롱 안에까지 책을 보관한다는 사람도 있다. 장롱 안에 넣어두어야 할 옷이나 이불은 집 잃고 헤매고 있는데 책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더라. 누구나 같은 고민인가 보다. 방이 넓으면 넓은 대로 좁으면 좁은 대로 책을 보관할 곳이 늘 부족하다고 하는 걸 보면 책을 매개로 같은 생각, 공감을 이어가고 있다. 웃음이 나면서도 궁극적으로 해결해야 할 심각한 문제라는 고민이 남는다. 아마 그 고민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지만, 어쩌랴... 앞으로 계속 책을 읽는 한, 책을 좋아하는 한 끌어안고 가야 할 행복한(?) 비명인 것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적잖이 만나면서 어느 정도 사람과 책을 견주어 볼 줄 아는 눈을 갖게 됐다. 이를테면 책 좋아하는 사람과 책 모으는 사람은 다르다. 앞쪽은 ‘애서가’, 뒤는 흔히 ‘장서가’라고 부른다. 애서가이면서 동시에 장서가인 경우는 뜻밖에 많지 않다. 반대도 똑같다. 책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 반드시 애서가는 아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서 책장을 한번 눈으로 훑어보면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애서가인지 장서가인지, 아니면 이도저도 아니어서 그저 책을 물건 삼아 진열해놓은 사람인지. (174페이지)

 

저자의 말처럼 애서가와 장서가가 있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장서가는 아니다. 그럼 애서가인가? 흐음... 책을 좋아하니 애서가라고 해도 되겠지만 책을 ‘너무너무’ 좋아하는 건 아니니 완전한 애서가라고 할 수는 없을 듯하다. (아, 이런 겸손함이라니... 근데 사실인 걸. 나는, 아직은, 발가락 하나 걸친 애서가라고 하기에도 벅차다.) 그저, 책으로 일상에 관심 둘 곳이 조금 늘었다고 해야 하나. 책에서 일상을 보고, 일상에서 소설의 한 장면을 발견할 때 찾아오는 매력이 즐거울 때가 있다. 헌책방지기 윤성근이 만난 사람들도 책으로 이어진 인연이고, 책과 함께한 즐거움으로 성장한 사람들이다. 유명인의 서재 이야기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한 책 이야기다. 학생부터 회사원, 선생님, 번역가, 수의사 등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책과 어떤 인연을 맺으며 지내왔는지 들려준다. 멀쩡한 아파트는 책으로 가득 채우고 반지하에서 월세 사는 사람, 어느 한 분야에 꽂혀 책을 수집하는 사람, 컨테이너 하나 빌려 서재를 만든 사람 등 책에 쏟는 애정이 다양하다. 그 책들을 유지하고 보관하는데 여러 가지로 애를 먹기도 하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그럼에도 책이 좋다는 것! 말 그대로 애서가의 즐거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하나하나 듣다 보면 책을 좋아하는 그 절절한 마음이 공감할 수밖에 없다. 나와는 다른 방식, 다른 관심, 다른 과정으로 책을 접해온 사람들이지만 책을 대하는 마음에서 비슷한 부분을 발견할 때마다 애틋해진다.

 

솔직히 이런 책이야기를 몇 번 만나서 그런지 새롭게 다가온다거나 신선하게 들리지는 않지만 공감되는 부분이 있기에 즐겁게 읽을 수 있다. 그 중 몇 부분만 소개해보고자 한다.

 

많은 책을 읽다보면 우연히 마음에 쏙 드는 좋은 책을 발견하게 되는 일이 있는데, 이럴 때는 마치 금맥을 찾은 것처럼 기쁘다. 허섭 씨는 그런 책이 있으면 보통 십여 권씩 따로 사뒀다가 마음 맞는 사람에게 읽어보라며 선물하는 걸 즐긴다. 학사재 구경을 마치고 다시 학교로 돌아와 교무실 한쪽에 있는 선반 문을 여니, 그렇게 한꺼번에 사둔 책들이 한가득 들어차 있다. (17페이지)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보통 같은 책을 두 번 구입하는 경우는 실수가 아니고서는 생기지 않을 일인데, 같은 책을 몇 번 구입해서 선물한 적이 있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나에게 좋은 책이 상대에게 좋은 책이라는 보장은 없다. 상대방이 내가 고른 책을 받으며 느낄 부담도 염두에 두게 된다. 다만, 이제는 이런 소심한 바람을 갖는다. 내가 읽어서 좋았던 그 책이 다른 독자에게도 사랑받았으면 좋겠다는 거, 그 책에서 내가 느낀 감정을 그 누군가도 알아챘으면 하는 거...

 

책을 볼 때 주변 환경을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하다는 말에 서찬욱 씨는 단호하게 ‘완전한 혼자’여야 한다고 답한다. 주변에 아무도 없어야 집중해서 읽을 수 있다. 심지어 가족도 가까운 곳에 있으면 책이 안 읽힌다. (82페이지)

‘반드시’는 아니지만 나도 조용한 곳에서 혼자 책 읽는 걸 좋아한다. 워낙 집중력이 약한 사람인지라 조용한 곳에서 읽어도 책 읽기를 완전히 소화할 수 없을 때가 많지만,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을 때는 정말 짜증이 난다. 간만에 읽고 싶은 책을 발견했는데 한 페이지도 제대로 넘길 수 없는 상황일 때는 앵그리버드가 된다. 화가 난다~! 다른 누군가는 천둥 번개가 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심하던데, 나의 예민함을 이럴 때 활동성을 높인단 말이지.

 

“처음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를 선택해서 읽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만화를 좋아하면 일단 만화를 보는 거죠. 저도 어릴 때는 만화를 정말 좋아해서 많이 봤어요. (중략)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명랑 소설 같은 걸 읽다가 조금씩 무게가 있는 책들로 발전한 거예요. 무엇보다 어릴 때 가정 환경이 중요해요. 어떤 사람은 아이가 동화책 보고 있으며 책 그만 보고 공부하라고 다그치기도 하거든요. 어릴 때 자연스럽게 책이랑 친해지지 않으며 어른이 돼서도 책 읽기가 쉽지 않죠. 무엇이든 관심 있는 분야부터 읽기 시작하면 그 책 본문에 나온 책이라든지, 참고 문헌이나 주석 같은 데 또 다른 책이 소개돼 있기 마련이거든요. 그런 책을 찾아서 읽으면 지금 읽는 책 다음에 어떤 책을 읽을지 쉽게 알 수 있어요.” (213페이지)

책을 어떻게 접해야 가장 좋은 건지 내가 전문가가 아니니 함부로 판단할 수 없지만,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했던 말이다. 만화든, 소설이든, 잡지든, 그냥 읽히는 대로 읽는 게 가장 좋은 시작이 아니겠냐고, 그렇게 읽다 보면 다른 것도 읽어보고 싶어질 테니 일단 읽는 대로 나두라고 말하곤 했다. 무엇보다 어릴 때 책 읽는 분위기를 형성해주는 게 중요하다는 건 경험상 너무 잘 아는 일이다. 주변의 아이들이 어떤 환경에서 지내는지에 따라 책을 대하는 태도가 다름을 분명하게 보고 있으니 말이다.

 

저자가 소개해준, 책 읽는 즐거움을 아는 평범한 애서가들의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나와 닮아서 웃기기도 했고, 이렇게 책을 대하는 사람도 있구나 싶은 마음에 감탄하기도 했다. 관심의 폭을 넓혀 책을 대해야겠다는 다짐도 하고,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책을 통해 사람 보는 눈이 달라질 수 있음을 알겠고, 내가 만나는 책에 좀 더 애정을 주어도 좋겠다는 마음도 든다. 책에 대한 욕심이 아니라 즐길 수 있는 존재로 남아주길, 책을 통해 지금보다 좀 더 다양한 생각을 들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늘 밤엔, 어떤 책을 펼쳐볼까나...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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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맛이 사는 맛 - 시대의 어른 채현국, 삶이 깊어지는 이야기
채현국.정운현 지음 / 비아북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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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내가 접하는 노인들을 보면 ‘노인은 당연히 이래도 된다’는 경우가 많아서 그게 나를 향한 말이 아니어도 반감을 갖는 경우가 잦았다. 노인이든 아이든 상관없이 진행되어야 할 어떤 일을 앞에 두고 노인이니까 먼저, 많이, 잘못했어도 그냥 넘어가야 하는, 식의 경우를 봐오곤 했다. 그럴 때마다 머릿속에서 물음표가 둥둥 떠다닌다. ‘당연히?’ 왜 당연한 건지 잘 모르겠는데 나이 들면 다 그렇단다. ‘근데 저 노인은 젊었을 때도 저랬잖아’라고 말하면 대꾸가 없다. 그런 건 또 그냥 넘어가야 한단다. 도대체 왜 나이 들면 다 그렇다는 이유로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하면 노인 공경 못 하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건지 잘 모르겠다. 한편으로 그런 모습을 보면서 걱정은 된다. 나도 나이를 먹으면 정말 저렇게 되는 걸까 싶은 노파심에 내 의견을 말하면, 시쳇말로 나는 싹수없는 없는 젊은이가 되는 거다. 그러니 더욱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아진다. 어쨌든 노인들이 볼 때 나는, 집 근처 경로당의 노인들에게도 엄마네 교회 노인들에게도 난 그냥, 누구네 싸가지 없는 딸이다.

 

쓴맛이 사는 맛이라니, 비관론이 아니냐는 질문에 선생은 오히려 ‘적극적인 긍정론’이라며 반박한다. 쓴맛조차도 사는 맛이며, 오히려 인생이 쓸 때 삶은 깊어진다면서 말이다. 그게 다 사는 맛이란다. (36페이지)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노인의 시선으로 노인을 감싸는 게 당연한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자기도 노인이면서 책임감 없는 노인들을 봐주지 말라고,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거리의 철학자라 불리기도 했고, 사학재단을 운영하는 교육자인 채현국이다. 『쓴맛이 사는 맛』은 그가 한 말의 한 문장이 제목이 되어 채현국이 구술하고 정운현이 기록한 책이다. 1장과 2장은 정운현이 기록한 채현국의 이야기이고, 3장은 채현국이 그의 삶과 벗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가 살아온 시간 속에서 찾은 고생과 여유, 잘 드러나지 않았던 가족사, 격변의 한국사가 그의 인생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시하게 사는 게 행복을 찾는 과정이라는, 지금의 힘든 시간이 지나면 달콤한 순간이 찾아오겠지만, 오늘을 지내는 쓴맛도 사는 맛이라면서 인생을 구성하는 모든 것을 조금은 긍정으로 보게 한다. 잘 살기 위해 스펙과 성공을 좇는 젊음에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하는 자신의 존재감을 말한다. 살아남기 위한 온갖 발버둥 속에 그 의미를 집어넣는 듯하다. 그와 그의 지기들이 함께한 역사도 지금 그의 삶의 방식에 많은 영향을 주었겠지. 한 사람의 일대기 같으면서 오늘과 내일을 살아가야 할 이들과 함께하는 귀한 소통의 시간이다.

 

특별할 것은 없었다. 여든의 노인이 살아온 이야기와 현재의 세태를 말하는 게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그런데 ‘여든의 노인이 이렇게 세상을 볼 수 있구나’ 싶은 그의 열린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가르치려 들고 지적하는 게 특권인 것처럼 여겼던 대상이었는데, 그게 전혀 옳지 않음을 스스로 말하는 노인이라니. 세대 간 갈등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이를 먹으면 서 있는 위치도, 시선도, 우선인 것도 달라질 것이니 어떻게 모든 시선이 하나가 될 수 있나 싶었다. 세상은 변하고 그 시대를 살아가는 중심에 선 사람들도 달라지니까. 결코, 같을 수 없는 세대라고 생각했던 게 조금 달라졌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의 열린 사고가 변해가는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는 시선을 갖게 한 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이 시대에 필요한 게 뭔지 바로 아는 사람의 눈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드러내서인 것 같기도 하고, 제대로 어른이 된다는 게 뭔지 스스로 인지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흔히 나이 먹는 건 쉬워도 어른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니라고 하는 말이 뭔지 알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어디에서 잠깐 강연을 들으러 다녀온 기분이었다. 이 한 권으로 세대 간, 사람 간의 서로 달랐던 사고가 한 번에 하나가 되진 않을 테지만, 적어도 ‘꼰대’가 아닌 ‘어른’의 개념과 인식을 알 수 있는 기대감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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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시장
김성중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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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거리들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나는 그저 술과 밤에 취한 어리석은 방랑객일까?

지구 한복판을 통과해 반대쪽으로 나온 사람처럼 모든 것이 낯설었다.

간신히 국경시장에서 탈출한 나는 망연히 주저앉아 도리어 지난밤의 일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기억을 너무 많이 팔아버린 내게 그리워할 것이라고는 그곳밖에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인가? 눈을 감았다.

눈꺼풀 안에는 아직 국경시장의 모습이 남아 있으니까.

소경이 자기 어둠 속에서 만들어낸 풍경에 머무는 것처럼 나는 눈을 감은 채 풀숲에 누워 잠이 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어제와 비슷한 달이 내 몸을 비추고 있었다.
그러나 이지러진 달은 나를 국경시장에 데려가주지 않았다. ―「국경시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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