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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지갑을 열기 전에 알아야 할 것들 - 적게 써도 행복해지는 소비의 비밀
엘리자베스 던, 마이클 노튼 지음, 방영호 옮김 / 알키 / 2013년 9월
평점 :
지갑을 열기 전에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과연 잔고가 얼마나 있는 상황에서 내가 이 물건을 사려 하는 건지, 더 긴급한 다른 용처가 내일이라도 생기는 건 아닌지, 혹시 그 긴요한 지출처를 내가 잊고나 있었던 건 아닌지, 그 전에, 내가 지금 지갑을 주머니 안에 넣어 두기나 한 건지? 이런 항목들도 머리 속에서 체크해야 할 것들입니다만, 그런 일들은 일상적 의미의 "빈틈없음"에 불과합니다. 어찌 보면 요즘 같은 팍팍한 세상에, 그저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행위만큼 기본적입니다. 지갑이 내 생명줄을 쥐고 있는 판에, 그런 기초마저 챙기지 않다간 생존 자체가 힘들 수도 있겠습니다.
이 책의 원제는 HAPPY MONEY입니다. 돈이야 당연히 그 소지자(所持者), 소비자(消費者)에게 행복감을 안겨 주는 법인데 뭔 새삼스러운 소리인가, 하실 분도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잠 시 샛길로 빠지자면, 이 책 p62를 보세요. 지폐 사진을 보여주고 초콜릿을 제시받은 학생들은, 초콜릿 귀한[?] 줄을 모르고 한 입에 소비해 버렸다는 실험결과가 나오죠. 돈을 보여주니, 도리어 행복감을 지레 상실하는 우리들! 이로 보아, "돈 = 행복"이란 등식이 꼭 성립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건 그저 말장난이구요. 리뷰의 본론에서 상세히 논하겠습니다). 같은 돈이라도, 이를 어떻게 소비하느냐("무엇에" 소비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에 따라, 그 결과와 만족도가 천차만별로 갈린다는 게 이 책의 핵심논지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책의 내용은 "How Can We Make Money Happier?"를 가르쳐 준다고도 하겠습니다.
예전에 인촌 김성수의 부친(호남, 아니 전국에서 일등가는 지주였죠)은 자제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나는 돈을 벌어들이는 일에 귀재였으나, 너는 그 돈을 참으로 멋지게 쓸 줄 아는 재능이 있구나!" 돈은 물론 뜻깊게 쓸 줄도 알아야만 합니다만, 순전히 이기적인 관점에서도, 같은 액수를 가지고서 최대한의 쾌감이 느껴지게 소비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겠죠? 돈은 그저 부지런만 떤다고 들인 노력과 시간에 비례해서 벌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어찌 보면 사람마다 돈 버는 고유의 능력은 한계가 미리 정해져 있으니(씁쓸한 말이지만 이게 현실입니다. 물론 우리는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부단히 자기계발에 힘써야 하지만, 어떤 근본의 벽을 넘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고정된 수입으로, 가장 행복해지고 쾌감이 극대로 치솟는 소비를 할 필요, 아니 의무가 있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행복해지기"야말로 모두의 지상(至上) 미션이니까요.
이 책의 제 1장은 "체험을 구매하라" 입니다. 뭔 말인가 하실 겁니다. 이 명제를 분명히 정리하면, "물건을 사지 말고, 그 돈으로 (효용이 더 오래 가는) 체험을 사라."는 말입니다. 물건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즐거움과 기쁨이 서서히 감소하여, 나중에는 남은 효용이 0에 가까워집니다. 이거 무조건 동의해야 하는 진리 아닐까요? 당장 저만 해도, 책 지르고 나서 그 쾌감, 그리고 택배 배송이 이뤄지기 직전의 그 설렘, 개봉시의 그 행복감은 어디 비길 데가 없습니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나고 구석에서 먼지를 머리에 얺어가는 녀석들을 바라보십시오. 내가 언제 쟤들에게 그토록 설레었던가? 이럴 게 아니라, 커뮤니티에서 책나눔이나 벌여 인기나 모으면 차라리 기분이 좋아질듯? 하는 심리가 자연스럽게 일어날 겁니다. 아무 실속 없을 것만 같은 책나눔이 카페에서 그리 자주 일어나는 게 다 이런 배경이 작용합니다. 책나눔을 하는 분은, "이미 효용이 다한 책들"을 (무상)처분하면서, 대신 공짜로 이웃의 뿌듯한 정을 얻는 겁니다. 이게 바로 "물건이 아니라 체험을 사라"는 저자의 주장과 일맥상통합니다. p47 에 나오는 구글의 예를 보십시오, 상여금 지급의 효과가 그리 크지 않은 듯해서 코스타리카 여행의 인센티브를 실시했더니, 애사심 단결무드도 더 확고해지고 직원 개인의 만족도도 더 높더라는 겁니다(역시 구글은 이런 점, 즉 인사관리의 세세한 부분에서도 앞서가는 구나 싶었어요). p50 을 보면, 같은 티켓으로 총쏘기 체험이나 물건 뽑기냐를 선택할 수 있는 아이들의 예가 나옵니다. 전자를 고른 애들은, 같은 시간 동안 즐겨도 그 기쁨이 오래 가고 강렬해서, 같은 돈을 써도 더 큰 행복을 맛봅니다. 하지만 후자를 고른 애들은, 마약 중독자처럼(이 책에 나오는 스트로애스너 심리학 박사의 표현) 지속적으로 같은 구매를 행하지만, 도무지 만족할 줄을 모르고 그저 돈만 갖다 버리는 결과를 낳습니다.
이건 우리의 개인적 체험에 비추어도 맞는 말입니다. 같은 돈이면 상품이 아니라, 추억을 사야 합니다! 왜 우리는 대학 재학 중 동료, 선배들과의 MT 에 그토록 빠지지 않고 참석하려 애썼을까요? 공부하기도 바빴던 중고딩 시절 똑같이 철없는 친구들과 어울려 "추억만들기" 놀이에 그토록 집착했던 이유가 뭘까요? 추억은 "재활용"이 가능합니다. 머리 속에 넣었다 아무리 자주 빼서 돌려도, 그 효용이 덜하질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은 간사한 동물이라, 실상보다 몇 배는 부풀려 그 기억을 행복한 것으로 조작하기까지 합니다(이른바 무드셀라 증후군). 백 원을 내고, 십만 원으로, 아니 가격 책정이 불가한 희소품으로 만드는 게 우리 인간입니다. 이런 건 남한테 해를 끼치지도 않습니다. 반면 내가 오늘 당장 페라리를 샀다고 해도, 15년 지난 후에 과연 그 녀석이 어떤 쾌감과 긍지를 나에게 안겨 줄까요? 예전 어느 교수님이 하 신 말씀이 생각나네요. "1년 끌어봐, 뭐라도 그냥 구루마야." 제아무리 영품이라도 감각상각의 운명을 피할 수 없습니다. 추억은 이와 달라서, 15년의 세월이면 거꾸로 최고 우대의 복리 이자를 우리에게 안겨 줍니다. 아니, 익스포넨셜 함수로는 그 표현이 불가할 것입니다. 에 리히 프롬의 "소유나 삶이냐"는 유명한 명제(그리고 책 제목)도 생각이 나네요. 소유는 그저 일시적인 쾌감을 불러 올 뿐, 그것이 준 기만적인 행복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이 장의 제목은, "물건이 아닌 생, 존재를 구매하라"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겠네요.
2장의 제목은 "특별하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사 실 조금 추상적이라는 느낌도 듭니다만, 핵심은 그겁니다. 자주 소비하지 말고, 드물게 소비하여 매번 그 음미, 향유의 순간을 특별하게 만들라는 의미입니다. 이 내용은 앞 1장의 내용과도 한 줄기 맥락이 닿습니다. 인간은 결국 기억의 동물이라서, 기억의 조작(좀 삭막한 말입니다만)을 통해, 똑같은 조건이라도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게 대전제였는데요. 저자(들)은 이른바 cheerometer, 활기 온도계라는 개념을 써서, 자연계의 수은 같은 물질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우리 인간만의 특수 기제를 최대한 활용하라는 주문을 합니다. 바깥의 추운 날씨에 호되게 시달리다 온 수은주는, 실내로 들어오면 그저 25℃를 가리킬 뿐입니다. 수은이라는 애가, "아, 난 지금 이 기온에 감사하고 있어." 같은 느낌을 가질 리가 없습니다. 그냥 리셋과 적응을 반복하다, 수명이 다하면 폐기될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다릅니다. 추위에 시달리며 바깥을 헤매다 맛본 25℃ 는, 예전 그 안온한 시절의 당연한 소비 대상이었던 그 흔한 여건이 아닙니다.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축복이고, 우리는 그로부터 무한의 희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은 바로 "기억'이라는 회로를 구비하고 있기 때문에, 같은 물리량이나 자극에 대해서도 정반대의 기쁨, 혹은 불쾌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죠.
이 장은 특히나 재미있는 예가 많이 나옵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주인공 찰리는 가난한 탓에 10센트짜리 초콜릿을 두고 한 달을 재어 먹습니다. 하지만 그가 느끼는 매 bite는, 투르크의 술탄이 베어먹는 진미의 효용을 몇 배는 초과하는 지복의 순간일 것입니다. 좋은 걸 마구 써버리지 말고, 아껴서 소비하라는 겁니다. 능수능란한 안마사는 서비스의 도중에 약간의 term을 두어서, 마사지의 효용이 극대에 달하게 만듭니다. 맥 도널드의 맥립 간헐 판매 전략, TV 쇼의 중간 광고, 이 모든 게 다 마찬가지 기법입니다. 영화도 정상적인 극 전개를 인위적으로 끊고, 다른 시간과 공간으로 전환하는 수법이 다 이런 미학효과를 노린 거죠. 이어서 써버리지 말라는 겁니다. 아껴 쓰면 매번이 특별해진다는 뜻입니다.
2장 말미에는 약간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복권을 구입하게 하는데, 상품을 "200달러짜리 근사한 식사"로 내걸었더니, 그렇지 않고 "그냥 현금 200달러"가 걸려 있을 때보다 더 구매자가 증가하더랍니다. 이건 경제학의 기본 상식에 반하는 내용입니다. 현금 200달러와 식사 200달러는, 전자가 후자를 확실히 "지배(dominate)"하는 선택안입니다. 전자로는 후자가 커버할 수 없는 다른 영역의 소비까지 가능하니까요. 그런데도 왜 이런 상식에 반하는 결과가 나왔을까요? 해답은 일단 저자들의 해석으로는, 물건이 아닌 체험의 가치를 우선시하는(이 책 1장의 결론) 선택 심리가 작용했고, 다음으로 프로테스탄트 문화권 특유의 분위기로, 200달러 식사를 행운의 유도가 아닌 금전 지출로 시도하는 건 이유 없는 사치라는 죄의식이 작용한다는 겁니다.(그래서, 복권의 매개가 아닌 그냥 선택의 경우라면 결과가 달랐을 거라는 게 저자들의 함의로도 읽힙니다) 마지막으로, 어차피 200달러라면 별반 그럴싸한 상품을 살 수도 없을 거라는 지레 포기하는 심리가 작용하기도 한다는 거죠. 이 결과는 상당히 논란을 유발할 패러독스가 가득한 소재인데, 책의 주제에서는 약간 이탈한 감이 있으나 여튼 흥미로운 읽을거리였습니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했다면 아마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겁니다.
3장은 더 신선한 내용을 제시합니다. 좀 논지의 구체화가 더 이루어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돈 중심 물건 중심이 아닌, 시간 중심으로 사고를 바꾸라는 겁니다. 바쁘면 행복하고, 그로 인해 통장잔고가 늘어나면 비례적 행복이 체감되어야 마땅하겠으나, 그렇지가 않고 오히려 전보다 더 행복감이 줄어든다는 게 공통적인 현대인의 고민입니다. 환승 코스의 항공편이 가져다 주는 금전적 이익은 얼마 되지도 않는데, 그 몇 푼을 아끼겠다고 공항 대기석에서 어리석게 시간을 내버리는 당신! 당신이 불행했던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었습니다. 돈 몇 푼을 더 쥐어주고서라도 직항로를 골라서, 그 시간에 다른 일을 하십시오. 정 할 일이 없으면 개라도 끌고 나가 산책을 시키세요. 생각지도 않던 잘 통하는 이웃을 만나 즐거운 교제를 할 수도 있습니다. 돈이 아니라 시간을 사서, 그 시간으로 돈이 가져다 줄 수 없는 행복을 사라는 게 저자의 충고입니다. 맞는 말 아니겠습니까?
4장은 돈을 먼저 내고 나중에 소비하라는 주장입니다. 지를 때의 그 쾌감은 누가 대신 설명해 줄 수 없을 만큼 짜릿하지만, 그 즐거움이란 고지서의 공포로 곧 상쇄됩니다. 이는 어쩌면 "매도 먼저 맞는 편이 낫다"는 말로 바꿔 쓸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quid pro quo, 무엇을 얻으면 하나를 내놓아야 합니다. 거저 재화를 획득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싫고 꺼려지는 체험을 앞에다 밀어넣어, 나중에 찾아올 긍정적인 요소로 그 불쾌를 잊는 선택, 전략이 현명합니다. 판매자들은 다양한 전술을 고안하여, 소비자가 과연 지출을 했는지, 그의 소중한 예산 일부가 빠져 나갔는지조차 감을 못 잡게 하는 초스피드결제 시스테을 개발했습니다. 그게 바로 이 책 p159에 나오는 "페이위드스퀘어"입니다. 너무도 빠른 순간에 결제가 이뤄져서, 사람들은 물건을 도둑질이라도 한 듯 착각하며, 결국 돈 나갔다는 상실감이 없어서 같은 물건을 또 사게 된다는 겁니다. 무서운 세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자는 인터넷 구매의 장점도 있음을 지적합니다만, 배송 기간이 오래 걸리는 사실은, 오히려 충동구매를 막아준다는 거죠. 매장의 화려한 유혹은 별 필요도 없는 물건을 금세 사게 만드는 점에서, 인터넷 쇼핑보다 위험하다는 겁니다. 돈을 먼저 내고 나중에 소비하라! 명심해야 할 철칙이 아닐 수 없네요.
5장의 시사점은 정말 놀랍습니다. 우리 동양권이야 개인보다 집단을 중시하는 연대의 이데올로기가 일찍부터 발달해 왔지만, 서양은 어디까지나 개인에서 시작해서 개인으로 끝납니다. 타인에게 피 같은 내 돈을 기부하라? 도덕 차원이 아닌, 경제학 관점에서야 애초 고려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도 말했지만, 인간은 사회 속에서만 존재의 가치가 확인되는 동물입니다. 개인의 고립된 효용함수나 성취감의 산물이 아닌, 네트워크 속에서 확장된 자아의 존중을 받는 데서 오는 뿌듯함과 행복은 다른 걸로 대신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주 관적이고 모호한 "행복"의 영역에서는, 논의의 초점이 shift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관적 긍지나 자족에 빠질 수 없는, 회사라는 집단을 단위로 두어도 결론이 같을까? 저자들은 이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결론을 제시합니다. 이긴 팀에게 개인별 상여들 지급한 경우와, 다른 팀원 동료들을 위한 지출이 의무로 붙은 상여를 지급(대신, 팀원은 형식적 배려가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온 선물을 동료에게 해야 합니다)한 두 경우를 비교했더니, 전자가 훨씬 승률이 낮아졌다는 거죠.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라서, 자신을 위해 자기가 소비하는 뻔한 인과의 사슬에서는 정해진 쾌감밖에 못 느낍니다. 대신 남에게 선물을 받으면, 설사 비슷한 비용을 지출하여 답례를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서로간에 남아 있는 순효용은 그저 개별 구입, 지출을 했을 때보다 더 크다는 말이죠. 한중일에서 부조 문화가 그리발달한 것도 다 이런 앞선 지혜를 미리 터득한 이유가 있습니다만, 우리는 그게 좀 심해서 잔머리를 굴리다보니 더 불쾌해지는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여튼 서구의 과학이 이 점을 이론적으로 정립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 대목이었습니다.
만사는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같은 씀씀이라도 쓰는 방법과 절차를 바꾸어서, 몇 배의 기쁨을 누리는 게 가능하다는 희망적인 결론을 이 책으로부터 받는다면, 그런 우리가 현명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방영호 선생의 번역이 참으로 매끄러웠다는 점 첨언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