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따라하기 도쿄 - 2024-2025 최신개정판 무작정 따라하기 여행 시리즈
정숙영 지음 / 길벗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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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벗에서 펴내는 여행서, 무작정 따라하기 시리즈는 첫째 거의 매년 섬세한 개정이 이뤄지며, 둘째 매우 미려한 컬러 사진들과 함께 현지의 명소들이 최대한 많이 소개되어서 좋습니다. 이름난 랜드마크의 사진들은 물론이며, 여행서에 음식 메뉴 사진이 이처럼 대량으로 담긴 것도 개인적으로는 처음 봅니다. 시내 교통도를 비롯한 예쁜 주제도들도 독자의 눈이 행복할 정도입니다. 정숙영 작가님이 그만큼 도쿄 시내와교외를 발로 샅샅이 훑으셨다는 증거입니다.

도쿄는 볼 곳도 많고 규모 자체가 큰 도시라서 여행자 입징에서 일단 개념이 잡힌 후에야, 비로소 내실 있는 여행 계획 세우기가 가능합니다. 책 p14를 보면 도쿄 전체를 개관할 수 있는 지도, 그리고 구역별 설명이 나오는데 편집부터가 매우 예쁩니다. 이 다섯 페이지의 정보만 머리 안에 확실히 넣어도, 도쿄에서 길을 잃거나 여행이 남의 호흡에 끌려다니며 붕 떴다는, 남는 게 없었다는 허탈감은 절대 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어서 도쿄 근방의 요코하마, 하코네 등도 함께, 같은 편제로 소개되는데 이렇게 바로 이어붙여야 앞의 정보들(도쿄 시내)과 세트로 독자한테 다가올 것 같습니다. 바로 다음에는, 어떻게 계획을 짜야 "오래 기억에 남을 스토리가 생길지"를 고민하며 독자들에게 제안되는 인포그래픽이 나옵니다.

도쿄는 근대 일본의 기본 구조를 형성한 에도 막부가 260년 가까이 도읍을 잡았던 곳이며, 2차 대전에서 패망한 후 경제 기적을 일으키며 부활한 곳이기도 하기에, 전통과 모더니티가 절묘하게 공존하는 매력이 있어 세계로부터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듭니다. p77을 보면 도쿄 미드타운이 소개되는데, 맑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치솟은 고층 빌딩들 사진이, 이 도시의 개성과 활력을 그대로 상징하는 듯합니다. 또 책 좋아하는 사람들은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다이칸야마[竹官山] 티사이트(T-site)가 약도와 함께 소개됩니다(저 뒤 p306의 츠타야 서점도 참조). 소개되는 장소들에 대한 정보가 사진, 약도, 텍스트 등 다양하게, 입체적으로 제시되어서 독자가 마치 작가한테 직접 브리핑을 받는 듯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장어는 한자로 鰻(만)이라고 쓰는데 이 책 p120 이하에서 도쿄 대표 요리 중 하나인 우나기 잘하는 명소 여러 곳을 소개해 줍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다른 여행서에서 이 책처럼 자세하게 맛집 소개를 하는 건, 저 개인적으로는 본 적 없는 것 같습니다. 명물 식당의 대표 메뉴를 선명한 사진과 함께 소개하는데, 사진만 봐도 군침이 뚝뚝 흐르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도 그 변형메뉴가 (예전부터) 대성황인 돈카츠 메뉴가 p139에 나오는데, 일본 고유의 담백하고 깔끔한 풍취, 풍미가 사진 밖으로 배어나오는 느낌입니다.

일본이 세계적인 디저트 메뉴의 강국(p152)이기도 하다는 건 이 책을 읽고 처음 알았습니다. 그 이름만 들어서는 프랑스 어느 명가의 branch 아닐까 싶지만 고베에 본점이 있다는(p153) "앙리 샤르팡티에"의 긴자 점도 소개됩니다. 사실 아무리 고베가 본점이라고 해도 더 유명세를 탄 곳은 오히려 도쿄의 긴자 메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작정 따라하기 여행서의 장점이, 최신 정보가 바로바로 업데이트되는 점이라고 했는데 p169, p307의 오니버스도 요즘 뜨는 명소로 소개되네요. 반면, p157 등의 록시땅 카페는 프랑스의 실제 유명 화장품 브랜드와 연계된 곳입니다. 

한국도 요즘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고 H&B 산업이 발달하며, 올ooo 같은 곳은 동남아 이주민(노동자), 혹은 관광객들이 필수로 들러야 할 명소 취급을 받는다는데, 원래 이런 drugstore는 미국을 거쳐 일본에서발전한 유형이었습니다. 그래서 p187 같은 데서도, 어딜 들러서 뭘 챙겨갖고 와야 하는지가 사진과 함께 잘 설명됩니다. 일본은 미국 문화를 적극 수용하여 개성의 본질을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색깔을 덧입힌 전략으로 성공한 편인데, p37의 디즈니 씨 판타지, p58의 (다소 우습기도 하지만) 자유의 여신상, p202의 토이저러스, p514의 디즈니 리조트 등입니다. 토이저러스는 우리 나라에도 여러 지점이 있습니다.

책 중반을 지나 2부부터는 본격적으로 도쿄라는 도시를 구역으로 나눠 집중 분석, 탐방합니다. 도쿄 최고의 번화가 시부야[澁谷]입니다. 시부야도 중심부, 히카리에, 도켄자카, 진난 등 여러 구역으로 다시 나눠 명소 여럿을 동선 순으로 이어서 소개하는데 사진이 많아서 확실히 정보가 눈에 쏙쏙 잘 들어옵니다. 나카구메로, 에비스, 하라주쿠 등의 설명이 이어지는데, 책이 너무 예쁘게 꾸며져서 아직 도쿄 구경을 못 해 본 이들에게는 마치 이곳이 지상천국처럼 착각되지 않을지 쓸데없는 걱정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책 p380에 설명이 잘 나오듯, 본래 일본의 군주는 교토[京都]에 거주하였으나 메이지 유신 후에 도쿄[東京]으로 옮아와 전에 없던 권위를 행사했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이른바 코쿄[皇居]로 불리는 군주 일가의 궁전이 도쿄 시경 안에 소재하며 제한적으로나마 관광 명소 노릇을 합니다. 관광객과 젊은이들의 거리로 유명한 롯폰기[六本木]도 멋지고 번화한 곳으로 한국인들에게도 인기가 많습니다.

우에노 쪽으로 가면 국립박물관, 여러 미술관들, 이름난 신사,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결코 편안한 이름이 못 되는, 정한론의 수괴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의 동상 등이 명물로 꼽힙니다. 또 전세계의 오타쿠들에게 성지로 꼽히는 아키하바라 거리가 있는데, 오타쿠는 집 안에만 있어서 오타쿠[御宅]라면 벌써 이런 거리를 다니는 데서 자격을 상실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권말에는, 도쿄에서 가까운 가나가와[神內川] 현 소재의 요코하마[橫濱], 에노시마[江の島] 등이 소개됩니다. 마무리까지 치밀하고 꼼꼼하게 독자들을 배려하는 책의 태도가 믿음직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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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착같이 그리고 꾸준하게 - 남아공살이 7년 차, 바닥을 딛고 일어난 한 여자의 도전기
최주선 지음 / 미다스북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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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요즘 세계 곳곳에 진출하여 어디를 가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지에 적응하고 터잡고 안정적으로 사는 건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영어가 공용어인 남아공 같은 나라에서 영어가 안 된다면 이는 보통 어려운 사정이 아니겠습니다. 저자 최주선 대표께서는 남편분, 자녀들과 함께 남아공으로 이주하셔서 생의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고, 지금은 크게 성공하여, 자신처럼 처음에 힘든 적응 구간을 거치는 데에 도움을 주십니다. 또 최 대표님은 기독교 선교사이기도 합니다. 

"아이를 체질적으로 좋아하는 것과, 일로써 아이를 돌보는 건 다르다(p44)." 참 이상하게도, 내가 나고 자란 환경에서는 오히려 내 자신이 누구인지 파악이 어렵습니다. 내가 무슨 일을 잘하고, 내 재능이 어느 쪽인지에 대해 자신이 잘 모르는 수가 많습니다. 아마도 이런저런 관계, 체면 때문에, 타인(친지, 가족, 동문)이 보는 시선 안에서 내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남아공에 처음 건너가서 가장 어려웠던 건 영어가 안 되어서 무슨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던 점이었습니다. 

정착 초기에 겪었던 어려움을 들려 주시는 대목에서 제가 느낀 건, 우리 나라 사람들은 참 타지에서조차 남의 눈치를 보는 경향이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아무리 영어가 안 되어도, 제대로 대응을 안 하면 당장 내가 금전적인 손해를 보는 상황인데, 그 와중에도 "땡큐"라며 대충 얼버무리고 멋쩍음만 면하려 하니 말입니다. 최 대표님뿐 아니라 한국인 90%가 아마 이렇게 행동할 것입니다. 어디 가서 잘 살아남으려면 일단 낯을 가리거나 열적어하는 내성적, 소극적 태도부터 버려야 할 듯합니다. 

현지에서 자금이 소진되어가다 보니 무슨 일이라도 해서 돈을 버셔야 했는데, 이 역시도 한국에서라면 쉽사리 결단 못 내릴 일이긴 합니다. 속성으로 배운 기술로 적은 요금만 받고 머리를 잘라 주셨다고 하는데, 하다 보니 이쪽으로 기술이 있음도 알게 되고 생각 외로 잘되셨다고 합니다. 참 이래서 사람은, 전혀 낯선 환경에 일부러라도 나를 노출시켜 진짜 내가 누구인지 아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만약 한국에서 계속 어린이집 교사로 봉직하고 현실에 만족하셨다면 과연 이렇게 성공하셨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 아니겠습니까. 

영어를 잘한다 못한다는, 이게 재능의 영역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재능이 없어도 영어를 자주 쓰는 환경에 어려서부터 노출되면 남 보기에 잘해보이는 것이고(심지어 이런 것도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타국에 가서 처음부터 영어를 척척 잘하면 물론 그건 바람직하지만 대표님처럼 고생고생하다가 완전히 눈이 뜨여서 달인이 되는 경우도 있는 겁니다. 게다가, 본인이 쌩초보로서 맨땅에 헤딩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런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자신처럼) 끌어올려 주는 일에는 누구보다 많은 노하우가 있지 않겠습니까. 

최대표님의 놀라운 점은, 기독교 선교 목적도 겸하여, 한국에서 못다 피웠던 보육 사업의 꿈을 남아공 현지에서 기어이 성취했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곳의 조건이라는 건 열악하기 짝이 없었는데, 그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양질의 어린이 돌봄 시설을 개척, 완성해 내고야 마는 과정(p196)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또 한번 내가 서투르구나 하는 점을 확인했던 분야에서, 초기 좌절을 딛고 정반대로 대 성취를 해낸다는 게 진짜 어려운데, 자신의 취약점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특히 소리튠이라는 시스템에 의거하여 자신을 영어 달인으로 거듭나게 만드는 과정(p90)도 대단했습니다.  

대표님은 "뭘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힘도 덜 들고 성과도 빨리 난다"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책을 읽어 보니, 대표님 같은 분은 일단 확신이 서고 발동이 걸린다 싶으면 노력하기도 참 악착같이 하시는 분이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물론 잘못된 방법으로 애를 쓰면 힘은 힘대로 소진하면서 의욕도 상실하고 재기의 가능성마저 스스로 위축하는 나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회원들에게 맞춤형으로 조언하면서 강점은 더욱 키우고 단점은 보완하는 맞춤형 코칭, 예컨대 p224의 "기초 훈련이 잘 되셔서 소리가 단단하고, 자음의 특성, 모음의 조음기관을 완벽하게 이해하신 것 같다"는 조언은, 고객들에게 정말 큰 만족을 주지 않겠습니까? 또 이 책에서 뻬놓을 수 없는 게 책쓰기 코칭 코스를 통해 저자로서, 사업가로서 거듭난 대목인데, 자기계발을 위해 애쓰는 독자들에게 시사점이 참 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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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잔혹사 - 약탈, 살인, 고문으로 얼룩진 과학과 의학의 역사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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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과학 이야기를 대중에게 쉽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대중과학서 저자 샘 킨의 책입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일단 샘 킨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최소한 책이 지루할 일은 절대 없겠다며 기대를 품게 됩니다.  

18세기, 19세기 들어 서유럽 중심으로 자연과학 혁명이 일어났으며 그 가시적 성과도 성과지만 종전의 한계, 궁핍, 불편을 운명처럼 체념적으로 수용하던 인류에게, 어떤 도전 정신, 낙관주의를 마음에 심어 준 게 과학자들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대중은 과학자들에게 존경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런 일반인들한테는, 기행을 일삼고 반사회성을 표출하며 심지어 끔찍한 범죄까지 저질러 악명을 후세에 남긴 일부 과학자들의 행적이 대단히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도 엄연히 실제 역사에서 일어났던 일이니 인정은 해야 합니다. 

다만, 과학이라는 테마 자체에 내재한 매우 위험한(위험할 수도 있는) 속성에 이런 비극들이 주로 기인했을 뿐 그 원인을 과학자 일반의 속성으로 귀납하기란 매우 큰 무리라는 점도 새겨 봐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편한 도구를 갑자기 손에 넣게 되었을 때 이를 나쁜 목적, 즉 가학성의 발휘라든가 타인을 지배하려는 데 쓰려는 못된 마음이 우리 내면에 잠재하지는 않는지 오히려 스스로를 돌이켜봐야 하겠습니다. 

"노예 제도는 문명만큼이나 그 역사가 오래되었다(p60)." 한국처럼 대륙의 먼 동쪽에 고립된 지형에 오래 전부터 터잡고 단일민족으로 산 겨레에게는 노예제가 상당히 낯섭니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도 몽골, 왜인들의 침략 당시 포로로 잡혀 국제 시장에 노예로 끌려간 이들이 많았고, 솔거 노비, 외거 노비도 일종의 노예이긴 했습니다. 그러나 국내 인신매매가 활발하지는 않았고 외거 노비의 경우 노예라기보다는 농노에 가까웠으며 천민 신분이라는 게 타 종족의 귀화, 형벌 집행의 결과물로 취득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외국의 노예제와 함께 볼 것은 아닙니다. 

여튼 노예제와 과학자가 무슨 관계라서 이 책에 등장했는지 의아한 분들도 있을 텐데, 바로 다음 페이지에 그 이유가 나옵니다. 박물학자들이 동식물 표본을 구하고 싶을 때 이 노예 무역 인프라를 이용했던 것입니다. 연구가 하고 싶어도 무슨 표본이 있어야 가능할텐데, 이를 위해 따로 시스템을 구축하는 건 발달된 현대 국가 체제에서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노예제와 직접은 무관하지만 찰스 다윈 같은 사람도 박물학자의 범주에 속합니다. 사실 뭔가 큰 이익이 남지도 않는 판에 온갖 위험, 불확실성을 무릅쓰고 그 먼 바다를 건너온다는 게 무리이며, 노예 무역이 그만큼 큰 수익을 올려 주는 유망한 비즈니스였다는 뜻입니다. 노예 무역으로부터 가장 큰 혜택을 입고 심지어 본인이 항행에 적극 참가하고 현지에 일정 기반을 다지기까지 한 박물학자로는 이 책에 헨리 스미스먼이 소개되는데, 자기 딴에는 원없이, 재미있게(?) 한 생을 산 사람이라 이야기로만 읽어도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미국은 한때 전기의자 방식이 사형수 처결의 원칙이었으며 이를 소재로 삼은 범죄물, 미스테리물도 무척 많습니다. 전기의자 자체가 사형의 제유(提喩)이기도 합니다. 이 사형 방식을 두고 치과의사(이상하게도, 역사에 남을 기행을 벌인 이들 중 치과의사들이 제법 됩니다. 물론 선량한 의료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만) 앨프리드 사우스윅이라는 이가 독극물 주입에 반대하여 전기의자 식을 옹호했으며, 발명가로 유명한 에디슨이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이에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순전히 제 개인적 생각인데, 당시 막 상용화를 앞두던 전기 시스템에 공연히 끔찍하고 잔인한 대중적 선입견을 피하려는 비즈니스상의 고려도 있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아무튼 윌리엄 켐러라는 사형수에게 집행된 처분 과정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고는 이 책 말고도 여러 서적에서 논할 만큼 당대에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제7장의 주제 인물은 터스키기 매독 연구로 악명 높은 존 커틀러입니다. p233에, 잘생기고 샤프해 보이는 생전 그의 사진이 나옵니다. 과테말라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이 사람은 앨버트 아인슈타인애 비견될 만큼 칭송받던 의사였습니다. p232를 보면, 존 커틀러와 정확히 같은 시대를 살았고, 아이티와 인도에서 여성들의 부인과 치료 접근성을 쉽게 했으며, 에이즈 환자들을 악마화하지 말라는 도덕적 호소로 세계를 감동시킨 의사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사람이 누군지 책에는 끝까지(?) 안 나옵니다. 이 사람이 과연 누구겠습니까? 바로, 그의 악행이 폭로되기 전의 존 커틀러 본인입니다. 제가 영어 원서룰 읽어 보니 "괜히 말을 꼬아서 사과한다"는 독자에게의 사과(?) 문장이 있더군요. 

8장에는 에가스 모니스, 그리고 후계자 격인 월터 프리먼 이야기가 나옵니다. 훌륭한 가문에도 지능이 떨어지는 자녀 한둘은 있기 마련인데, p269에 나오는, 딸 로즈메리에게 전두엽 절제 수술을 받게 해서 더 인생을 망치게 한 정계 거물 조셉 케네디가, 우리가 아는 존 F 케네디의 부친입니다(로즈메리는 JFK의 여동생이며, 지금 미국을 떠들썩하게 하는 로버트 주니어의 고모입니다). 전두엽 절제 수술 이야기는 한때 이런 어설픈 의사들에 의해 하나의 처방처럼 통했고, 많은 장르물에서 즐겨 쓰던 소재였죠. "얼음 송곳(icepick)"은 영화 <원초적 본능>에도 나왔던 끔찍한 도구인데, 이걸로 뇌 수술을 했다니 정말 대단한(?) 의사들이었다 싶습니다. 참고로 이 책 원서 제목이 <The icepick surgeon>입니다. 

"정치적 목적으로 심리학을 악용한(p347)" 나쁜 사례라는 건, 정치적 반대자들에게 어떤 정신병리학적 누명을 씌워 시설에 가두거나 그 이상의 끔찍한 처분을 했던 사건들을 가리킵니다. 구 소련의 탄압 사례라든가, 중국에서 파룬궁 수련자들에게 가하는 비정상적인 압제가 이 책에서 예로 쓰이는데, 저는 혹시 "인체의 신비 전시회"도 언급이 있지 않을지 기대했지만 없었습니다. 아마도 아직 객관적 증거가 충분치 않아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장에서는 한때 유나바머 연쇄 테러로 미국을 공포에 떨게 했던 수학 천재 테드 카친스키 이야기도 나옵니다. 

대개의 경우 "미친 과학자"는 과학 자체에 대해서는 지극히 헌신적이고 이념을 위해 팩트 자체를 왜곡하는 건 매우 드문데(하긴, 제대로 미쳤으면 뭘 더 못하겠습니까만), p312에 나오는 리센코의 경우 독재 정권에서의 출세를 위해 과학적 원리까지도 마음껏 비틀었던 최악의 케이스로 꼽힙니다. 냉전 시기 해리 골드는 적국으로 너무도 많은 정보를 빼돌려 옥살이까지 했지만, 감옥에서 자신의 재능을 잘 살려 동료 죄수들에게 큰 도움을 주는 등 치밀하고 유능한 과학자로서의 면모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철학자 니체도 지적인 성실성(intellectual integrity)라는 개념을 말했는데, 지식 발견이라는 한 가지 난제와 미션에 몰두하는 이들, 특히 자연과학자나 의사라면 그 본연의 업무 성격 때문에라도 쉽사리 거짓말이나 일탈 행동을 하지 않으리라는 게 일반적인 기대입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보듯 현실은 결코 그렇지도 않았는데, 이런 사람들이 국가 권력과 결탁하여 천인공노할 범죄를 체계적으로 저지른 게 나치와 닥터 멩겔레 같은 사례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아인슈타인의 견해를 인용하며, 정직, 성실성, 양심적 태도 등의 미덕을 과학자 양성 과정에서 어린 학생들에게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p437). 그래서 이 책은 본문도 본문이지만 결론과 보론 파트도 독자에게 묵직한 임팩트를 줍니다. 권말의 항목 색인이라든가 문헌 소개까지도 완벽하여, 역시 과학책은 해나무다 싶었네요.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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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잘하는 사람의 말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 성공의 주도권을 잡는 12가지 대화의 법칙
아다치 유야 지음, 황국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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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회작용은 말로 이뤄집니다. 입으로 하는 말이건, 문서나 메신저로 전달되는 말이건 간에 말입니다. 직장에서 조직에서 말로 하는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면 아무리 그 사람이 본연의 업무에 능통하다 해도 승진이 쉽사리 되기 어려우겠으며, 나아가 과연 업무성과를 동료나 윗선에 잘 어필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저자 아다치 유야 대표는 본인 스스로가 사회생활 초년생 시절에 커뮤니케이션 스킬 문제로 많은 고민을 하셨던 경험을 살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많은 독자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의도로 이 책을 저술했다고 합니다. 

"앵거 매니지먼트" 생소할 수 있지만 이미 이 분야에서 많은 전문가들이 일하는 중이며 성과도 상당히 축적되었다고 합니다. 그 전문가 중의 한 분인 가키기 류스케 박사는 "분노 등의 감정을 통제하는 전두엽이 본격적으로 반응하기까지는 3~5초 정도가 걸리니, 화가 났다 해도 일단 반응하기까지 6초만 기다려 봅시다(p25)."라고 제안합니다. 물론 감정을 무작정 억누르라는 건 아닙니다. 감정을 대책없이 부인하는 건 현대인에게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다른 부작용이 생김). 아무튼 저자 아다치 대표의 제안은 "말을 하고 싶을 때, (거꾸로) 일단 입을 다물어라."입니다. 거의 무조건,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지침이라는 것입니다.   

대화를 나눌 때, 예를 들어 나는 무슨 색을 좋아하는데 당신은 어떻냐는 식으로 말이 나왔는데, "요즘의 트렌드에 의하면...." 이란 식으로 말을 받는 사람이 꼭 있다(p50)고 합니다. 전형적인 잘난척, 영리한척하는 타입이며, 상대방은 거의 언제나 불쾌감, 존중받지 못한다는 아쉬움 등을 느낀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일이 제대로 추진될 수 없고, 둘 사이의 관계가 제대로 진척될 리 만무합니다. 대화에 이런 식으로 응해서는 안 됩니다. 대화는 두 사람이 서로 나란히 눈과 눈을 마주하는 소통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저는 유명한 방송인 부부가, 평소에 칭찬 잘해주던 지인에게, 어느날 큰돈을 빌려 줬다가 기어이 떼인 이야기를 TV에서 들은 적 있습니다. 바람직한 예는 물론 아니지만, 여튼 아무것도 아닌 듯해도 칭찬은 그만큼이나 사람의 마음 깊은 곳까지 영향을 미치고, 나아가 그 칭찬을 했던 사람의 성과까지 더 확고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궁극적으로, "타인에게 친절을 베풀 수 있는 인물"은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p80)로까지 주변 인물들에게 비춰진다고 합니다. 한 예로, 어느 회사 사장님이 수능을 앞둔 자녀가 있는 부하직원에게 격려를 하며 "일찍 집에 들어가 봐!"라고 했다면, 역시 우리 사장님은 배포가 남다르다거나 통이 크다며 칭송이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게 저자의 말입니다. 글쎄 이 정도 덕담으로 사람이 감격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주변에도 생각지 않게 통큰 배포로 인심을 쓴 보스를 두고두고 존경하게 된 사례는 드물지않게 봅니다. 

p94에도 좋은 말이 있습니다. 제가 어제 TV에서 보니까, 유명한 교수가 한 말인데, 책에서 읽은 건데, 이런 식으로 어떤 정보를 꺼낸든다면, 그 사람은 남한테 속기 쉽구나, 생각에 깊이가 없구나, 이런 인상을 상대방에게 주기 쉽다고 합니다. 그 말하고자 하는 정보가 옳고 그르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딴에는 신빙성의 근거를 제시한 셈인데도 이런 취급을 받는 게 고작이라면 억울합니다. 권위를 인용하는 것은 좋은데, 왜 그 권위의 그 주장을 자기 입장에서 수용했는지에 대한 이유도 확실해야만, 상대방에게 무시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어떤 객관적 근거도 없이 자기 주장만 지나치게 강하다면 그 역시도 좀 부족한 사람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자기 주장이라는 게 있고, 객관적인 팩트라는 게 따로 있습니다(p136). 이게 그 사람의 내면에서 마구 혼재되었다면 그 사람은 사회 생활을 할 때 온전한 판단을 하는 사람으로 대접 받기 어렵습니다. 저자는 말을 할 때 최소한의 자기객관화를 기하기 위해, 확증편향, 사후 확신 편향 등을 피하라(p98)고 합니다. 특히 후자는, 결과가 다 나온 후에 "나 쟤네들 저럴 줄 알았어."라고 숟가락을 얹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본인은 기분이 좋을지 모르지만 주변에는 한심하게 비칠 수 있습니다. 

지적이고 존경받는 사람의 태도(p156)는 어떠할까요? 먼저 잘 들어야 합니다. 경솔하게 긍정, 부정을 일삼지 말고, 남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의견을 쉽게 말하지 말고, 이야기가 끊길 때 설익은 화제로 받기보다 차라리 침묵하고, 호기심을 총동원하라는 겁니다. 이렇게 골자만 추려도, 벌써 독자 입장에서 참신하다는 느낌이 들 것입니다. 실제 사례가 많아서 책 내용은 더 재미있고 유익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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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 교과서 4 : 직원편 - 직원을 변화시키는 사장의 교육과 장사 철학 장사 교과서 4
손재환 지음 / 라온북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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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재환 저자님의 장사 교과서 시리즈 1권부터 3권까지 모두 읽고 리뷰를 다 쓰고 있으며 그 전작 <안경 혁명>도 2022년 2월에 올린 독후감이 제 블로그 등에 이미 있습니다. 이 제 4권은 직원편인데, 사실 전작들에도 저자님 특유의 직원론이 군데군데 피력된 적 있고 저는 개인적으로 저자님이 능력 좋은 직원을 어떻게 대우하고 관리하는지를 이야기할 때마다 각별히 더 주의해서 읽곤 했습니다. 이제 이 4권에 직원론이 집성된 셈이라서 더 집중이 잘 되었더랬습니다. 

"장사 잘되는 집을 인수할 때는 무조건 리스크가 있다(p51)." 가게 인수도 그렇고 영업권이라든가 혹은 이름만 구좌를 인수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걸 돈 받고 판다고 할 때에는 전임자의 명성이 그만큼 확고했다는 건데, 내가 양수하고 나서 상품, 서비스가 그에 미치지 못한다 싶을 때에는 이게 역으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옵니다. "아니, 여기가 왜 이렇게 됐어? 이거 이름만 ooo 아냐?" 이런 일을 막기 위해 저자는 1년 정도 전임자를 그냥 가게에 모셔서, 설령 일을 안 하더라도 얼굴만이라도 비추게 하는 방법을 제안합니다. 이게 곤란할 때도 있을 텐데, 그럴 때에는 전임자한테 양수받기 전 1년 정도 종업원으로 그 가게에서 일을 하라고 합니다. 일도 배우고, 단골들에게 단절감 안 주기 위해 자기 얼굴도 눈에 박아 넣는 효과가 난다는 뜻입니다. 

그 다음 이야기도 참... 절묘한데... 인수받고 나서 손님이 "여기 사장님 바뀌었어요?"라고 물을 때 "네, 이제 제가 주인인데요."라고 하면 그 손님은 이제 조금만 뭐가 안 맞아도 앞으로 안 올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진짜 맞는 말입니다. 단골을 넘겨받으려고 양수했는데 단골을 놓친다면 뭐하러 권리금이나 웃돈까지 주고 남의 사업을 이어가겠습니까. 새 양수인이 전 주인하고 비교당한다는 게 뭔가 자존심이 상한다는 건지 이런 질문에 꼭 떨떠름한 표정으로 "내가 주인"이라 답할 때, 제가 봐 온 경험으로도 그 장사는 오래 못 가는 것 같았습니다. "바뀌긴 했는데 제가 여기서 일하던 사람이에요." 이 한 마디를 넣고 안 넣고가 천지차이가 난다는 겁니다. 

"직원을 움직이는 가장 큰 보상은 월급이다(p146)." 저자님 전작에도 유독 일잘하는 직원 스카웃하기, 일도 내가 가르쳤지만 본인이 이후 너무 발전하여 에이스가 된 직원 계속 붙들어두기 요령 등이 나왔었습니다. 물론 직원을 잘 우대하고 신 나게 일하도록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급여가 능력에 부응하지 못할 때 직원을 이직 못하게 할 방법이란 없습니다. 책에 보면 안경사의 경우 초보와 프로 직원 급여 차가 3~4배였으나 지금은 2배도 안되며, 이런 환경에서라면 구태여 직원이 양적으로 질적으로 일을 잘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이건 최저임금 상향과 관계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영업은 가족 경영 체제로 바뀐다는 게 저자의 견해인데, 실제로 제가 사는 동네 안경점도 그 아들이 부친의 사업을 이어받는 곳이 있습니다. 

직원이 계속 직원이라는 마인드에 머물면 직원 본인은 물론이고 사업도 성장이 안 됩니다. "성장"이라는 개념은 자영업뿐 아니라 주식 투자에도 무척 중요한데, 현재 아무리 마켓셰어가 높고 영익률이 높아도 그 기업은 높은 주가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성장은 비즈니스에 있어 이익만큼이나 본질적인 팩터입니다. 저자는 경쟁 업체보다 높은 급여를 책정하여, 특히 이 사람은 그저 직원이 아니라 "작은 주인(p150)"으로 내가 키우고 대접해야 할 사람이다 싶을 때("큰 주인"은 물론 사장 자신) 그에게 특별 대우를 한다고 책에서 밝힙니다. 사람은 설령 급여가 높아도(높지도 않지만) 장래성이 없는 직종에서는 제 힘을 다해 일하려 들지 않습니다. "작은 주인"이 어떤 급여를 수령하고 사장에게서 어떤 대우를 받는지를 볼 때, 다른 직원들도 나도 저렇게 되어야지 하며 가진 포텐을 다 발휘하려 들지 않겠습니까. 직원에게 그저 쥐꼬리만한 급여를 주고 착취하려 드는 전근대 구태 마인드를 지닌 사장은 결국 제 사업 자체도 말아먹기 마련입니다. 

p186에도 참 좋은 말씀이 많은데 직원들도 서로 동류(동료) 의식이 있어서 고자질이다 싶으면 혹여 필요한 피드백이다 싶어도 사장한테 안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가장 솔직한 피드백을 받을 기회는, (어떤 이유로든) 퇴사하는 직원한테서라고 합니다. 퇴사 직원이 가식, 인사치레, 눈치 플레이를 할 이유는 없으니 내 사업의 벌거벗은 약점을 제대로 알아낼 수 있다는 거죠. 또 너무 잘난 직원도 이 사람이 조직에 에너지 뱀파이어(소위, 사람 기빨리게 하는 케이스)라면 미련없이 내보내라고도 합니다. 이 저자분이 진짜 능력지상주의(독자인 제 생각에는)인 분이라서 이 대목도 좀 의외로,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책을 일관하는 대원칙 중 하나는 "직원과 사장이 윈윈해야 한다"입니다. 이 4권이 장사 교과서 시리즈 마지막이라니 서운하기도 한데, 여튼 개인적으로 정말 배운 게 많은 연작이었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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