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너는 속고 있다
시가 아키라 지음, 양윤옥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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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기 전부터 입소문이 자자해서 기대를 잔뜩 가졌는데, 막상 받고 읽어 보니 마음이 무척 답답해졌습니다. 일본이나 우리나 사회구조, 평균적인 사람들의 심성 몇 측면이 닮았다 보니, 이 소설에서 펼쳐지는 사회상이 꼭 일본스러운 현상이 아니라, 지금 이 시각 한국의 여느 싱글맘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누마지리 다카요 씨는 못난 남편을 만나 재산상으로 큰 피해를 입었는데 그 영향이 친정에까지 미쳐 거의 살림이 풍비박산이 난 상태입니다. 딸 아야나까지 혼자 힘으로 키워야 하는데 그 궁핍함이란 이루말할 수가 없습니다. 

읽으면서 독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이렇게 친절한 사채업자가 있다는 게 말이 될까? 과도한 친절은 뭔가 의심을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채업자는 기어이 다카요의 집에 찾아오려 들고, 하필이면 남편에게 받을 빚이 있다는 불량한 사내도 같은 날 찾아오겠다는 기세라서 다카요는 극도로 불안해집니다. 다카요는 이른바 헬스딜리버리라는 준 성매매업소에까지 다닐 뻔했으나 직전에 다르게 진로를 틀었기에 우리 독자들은 더욱 불안해졌다가 잠시 안도하게 됩니다. 지금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누구건 간에, 칼까지 손에 쥔 상태에서 괜히 경솔한 판단은 하지 않아야 할 텐데 말입니다. 

예전부터 일본 미스테리물은 서술 트릭을 교묘히 잘 쓰는 걸작들이 많았습니다. 이 작품은 서술 트릭, 나아가 사건의 배치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트릭인 셈이어서 구성 트릭이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칼을 쥔 다카요가 어떻게 되었는지 설명이 생략된 채, 누마지리(p225에 누미지리라고 오타난 부분 있습니다)가 그 마음 좋은 사채업자 밑에 들어가 사부님으로 모시며 일을 돕고 배우는 장면으로 바로 넘어갑니다(그렇게 보입니다). 누마지리는 (기대대로 사람 좋아 보였던) 사부님 밑에서 특유의 순진함도 드러내며 경제적 곤궁도 벗어나고 있는 듯해서 독자는 그나마 마음이 놓입니다. 다만 딸 아야나를 어떻게 할지가 문제인데, 배우자에게서 "딸에게 학대를 가한 적 있다"는 공격까지 받는 판이라서 양육권을 둘러싼 다툼이 불리해질 듯도 합니다... 

와... 지나고 보니 이 부분도, 작가가 노골적으로 힌트를 준 셈이었는데, 독자는 까맣게 몰랐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닮은 점이 많은 사회이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 하나가 있습니다(뭔지는 이 리뷰에서 말할 수 없고요). 이 요소 때문에, 이 소설은 한국을 배경으로라면 도저히 그 트릭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또 이 소설은, 라디오극이나 영화로 절대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지면(紙面) 소설이 담을 수 있는 트릭의 극한까지 몰고갔다는 점에서 저는 정말로 감탄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런 소설은 여태 읽어 본 적이 없습니다. 입소문이 과연 그렇게 날 만했습니다. 

소설은 2부로 구성되었는데, (앞에 말했듯이) 2부에서도 딱히 다카요의 운명이 나락으로 떨어진다거나 하지 않고 오히려 적응, 안정을 찾아가는 듯해서, 작품의 긴장은 감소해도 차라리 독자는 마음이 좀 놓입니다. 뭐 별것없고, 그냥 착한 사채업자도 세상에 있긴 하고, 현행법(우리 나라나 일본이나)이 워낙 강하게 규율하기 때문에 요즘은 저런 패턴의 사업도 나오나 보다(이른바 소프트사채) 하고 넘어가게 됩니다. 물론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업계의 실태에 대해 어떤 환상을 가지면 곤란하겠습니다. 별일없어서 다행이긴 한데, 소설은 좀 밍숭맹숭하다, 이렇게 착각하고 책을 덮...을 뻔했습니다. 

사실 저는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사건의 진상을 잘못 파악했습니다. 마지막에 인물 간의 대사가 바뀌었나 싶은 대목이 있긴 했는데, 둘이 이야기가 잘 안 되어서 ooo가 xxx을 죽이고 비극으로 끝났나 보다 하고 독서를 마무리지었습니다. 그러다가 "이게 지금 사회고발 소설인가, 아니면 미스테리물인가? 분명 걸작 미스테리라고 해서 읽었는데 뭐가 이렇게 심심하지?" 싶어서 양윤옥 역자의 후기를 읽었는데, 엄청난 반전이라고 해서 뭐지 싶어 (좀 이상했던) 마지막만 다시 읽었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깨달았는데 한동안 머리가 멍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속을 수도 있구나! 

반전인 줄 알고 다시 읽어 보니, 소설 곳곳에 빤하게 힌트와 함정이 도사리고 있었으니 두눈뜨고 속은 셈이었습니다. 심지어 이 책의 제목, 차례에까지도 힌트가 대놓고 주어졌는데 그걸 몰랐다니! 자세하게 짚으면서 여기, 여기, 여기가 암시, 복선이었다고 썰 좀 풀고 싶지만 안 읽은 분들을 위해 자제하고 후기는 마무리하겠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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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제국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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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중후반부에 고아원에 버려진 소년 이고르가, 국가로부터 훈장까지 받은 장군에게 입양되기 불과 몇 시간 전, 표트르와의 살벌한 다툼 때문에 장밋빛 꿈이 사라지고 소년원에 수용되는 비극을 맞았었습니다. 저는 소설에서 이 대목이 참 마음에 들었는데... 영화 <백 투 더 퓨처 2>를 보면 주인공 마리(마티)가 "치킨"이라는 조롱을 끝내 참느냐 마느냐로 미래가 바뀌고 말고의 기로에 서는 설정이 있죠. 이런 세팅 자체는 매우 흔하지만, 베르베르는 어린 이고르에게 상황을 냉철하게 살필 이성을 충분히 부여하여, 표트르의 어떤 도발에도 불구하고 "참아야한다!"를 내면에서 끝없이 되뇌는 장면을 넣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고르는 실패하지만, 그의 고뇌를 충분히 어필하면서 진부함도 피하고, 수호천사의 구원 시그널을 방해하는 건 외부의 악마 같은 게 아니라 당사자 내면의 못난 고집이라는 주제도 더 선명히 부각합니다. 

한편, 이 2권 p26을 보면 중국 고사 새옹지마가 언급되는데, 우리한테는 너무도 익숙하지만 프랑스인들에게는 신선하고 재미있는 설화일 것입니다. 1권, 소년원에서 절치부심하던 이고르가 얼마 후 그 장군이 추악한 범죄를 저질러 파멸했다는 소식을 듣고 오히려 안도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에서 저뿐 아니라 한국 독자 누구라도 새옹지마 고사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다만 새옹지마 항목 소개가 왜 한참 뒤인 이 2권 116번 꼭지에 실렸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이고르가 형벌 부대에 징병되어 체첸과의 전쟁에 끌려가는 운명이, 마치 새옹지마 고사에서 아들 또래들이 맞는 상황과 닮아서일 수도 있죠. 

이 2권 p33을 보면 "관념권"을 설명하면서 리처드 도킨스 등의 입장을 재미있게 풀어 주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런데 페이지 중간쯤에 보면 자크 모노라는 저자의 <우연과 필연>이 소개되는데, 이 책은 우리 나라에 이미 번역이 되어 있는 인문 명저입니다. 정말 내용이 좋으므로 관심 있는 분들은 꼭 읽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p37을 보면 비너스가, 1권에서 그리 노래를 부르던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입상하여 소감 중 어머니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장면이 있는데요. p44에서 이고르도 수훈 후 상관에게 마땅히 둘러댈 말이 없어 어머니에 대해 공치사를 합니다. 그러나 이 둘의 동기는 생판 다른 것인데, 이고르의 안타까운 사연에 대해서는 이미 1권에서 우리 독자들이 다 알았습니다. 미스 유니버스 대회는 지난세기에 꽤 유명했던 페전트인데, 현재 젊은 세대에는 지명도가 떨어져서 어떤 사람은 "베르베르가 지어낸 행사임?"이라고 제게 묻기도 했습니다. 1980년에 한국에서도 열려 기념우표도 발행되었습니다. 

p65를 보면 이고르가 낙담하며 스탤론의 영화를 보고 시름을 달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영화는 생각할 것도 없이 테드 코체프 연출의 <First Blood>, 우리가 람보 1편으로 알고 있는 그 영화입니다. 와 그러고 보니 람보하고 이고르가 닮았네 라며 감탄할 필요까지는 없겠는데, 당연히 람보에서 영향을 받아 베르베르가 이 이야기와 캐릭터를 만들지 않았겠습니까? 스탤론은 이처럼 비주류, 억울이(?) 배역을 자주 맡아 1980년대 백인 일부층에 큰 호응을 얻었는데, 반면 슈워제네거는 그런 배역을 맡은 적이 없는지라 이고르가 뭘 보고 공감했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스탤론에게는 현재의 루저로서 울분을, 슈워제네거에게는 자신이 전쟁터에서 누린 승자의 영광을 투사했을 듯합니다. 여기까지는 뭐 그의 자유입니다. 

여튼 이고르는 딴에는 대단한 자제력을 발휘합니다. 경찰서장으로 출세한 바냐를 보고 그의 도발(이고르는 그렇게 해석하는데, 사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에도 꾹 참는 걸 보면 말입니다. 아마 한때 폭력으로 제 주변을 제패한 자가, 싸움 실력으로는 한참 밑인 자들과 대등하게 살아간다는 자체가 엄청난 굴욕이라고 여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고르에게 부당한 도발을 일삼는 자들도 있으나, 상당수는 그저 사회 통념에 따라 그를 대할 뿐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p97에 나오는, 어떤 남자와 여자가 만나야 그 결합이 오랠 수 있는지에 대한 웰스, 아니 베르베르의 지론이 무척 재미있고, 이 원칙은 저 뒤 p241에 구체적인 사례(뭘까요?)에다 적용이 됩니다. 

이고르는 (악착같기 짝이 없는 카르마 때문인지) 그 생부(이 양반은 이고르가 누군지도 모르죠), 바냐, ooo까지, 전혀 예측 못했던 상황에서 차례로 만납니다. 특히 ooo은 이미 1권에서 죽은 줄 알았기에 독자의 충격은 더 큽니다. 저는 이고르의 편은 아니지만, ooo가 이고르에 대해 그토록 깊은 한을 내내 간직했다는 게 조금은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이런 자들은, 폭력의 논리에만큼은 철저하게 맹종하고 언젠가는 폭력으로 파멸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로 그 운명의 방향을 일단은 (작품 안에서) 정리했다고 생각했기에 더욱 말입니다. 

타티야나의 치료에 힘입어 배꼽에 생긴 암이 나은 이고르. 베토벤도 재능이 곧 저주라고 여겼었는지 가장 축복받은 신체 부위인 "귀"에 말년에 탈이 생겼습니다. 이고르는 아마 출생이, 또 모친과 자신을 연결했던 그 흔적 부위가 그리 저주스러웠나 봅니다. 사실 마지막에 이고르가 그런 선택(p181)을 한 게 납득이 인 된다는 반응도 있었는데, 이고르 입장에서는 운명의 신, 수호천사(그로서는 뭐가 뭔지 알 수 없었으니)가 자신을 높이 올렸다가 떨어뜨리는 반복을 도저히 더 참을 수 없었겠고, 타티야나라는 "마지막 엄마"를 또 잃느니 차라리 자신이 먼저 그녀로부터 상실되자며 일종의 복수를 한 셈입니다. 물론 타티야나 입장에서는 뭔 날벼락인지 전혀 몰랐겠고 말입니다. 

자크 넴로드... 팽송은 1권에서 세 의뢰인이 고루 자신의 숨은 욕망을 대변한다고 했으나 이 자크는 팽송, 나아가 베르베르 본인을 너무도 닮아 있어서 어떤 대목은 독자가 읽기 민망할 정도였습니다. p194에서 메리냐크는 성공한 작가로 등장하는데 오히려 자신이 자크를 표절했다며 조롱인지 리스펙트인지 알 수 없는 태도를 보입니다. 물론 우리가 알듯이 베르베르는 성공한, 그것도 글로벌리하게 크게 성공한 작가이며 그래서 우리가 지구 반대편에서 이처럼 번역본 개정판까지 나온 작품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발한 아이디어의 과잉이라는 특징적 요소는 베르베르를 사랑하는 독자들마저 아쉬움을 느끼게 하죠. 자크는 아마 다른 평행우주에 사는, 실패한 버전의 베르베르일 수 있습니다. 사실 베르베르는 기막힌 아이디어를 좀 아껴 두지 않고, 마치 아무 피자에나 최대의 토핑으로 보답하는 인심 좋은 주인마냥 지금 집필 중인 작품에다가 모든 기발한 착상을 다 때려박기 때문에, 독자는 나중에 가서 작품들이 잘 구별이 안 되는 곤란함을 겪기도 합니다. 하긴 이 역시도 그만의 창의력이 빼어난 탓이긴 합니다. 

이 작품은 예상을 비껴가 하르마게돈의 대회전을 거쳐 엄청난 비극으로 마무리됩니다(나중에는 하나의 공식이 되긴 합니다만). 딱히 악인이나 빌런이 등장하지도 않았는데, 특정 선역 캐릭터가 기어이 흑화하여 참극이 빚어지는 결말이 충격입니다. ooo는 주어진 운명이 부과한 시련을 매번 극복했기에 독자들은 그를 좋게 보았는데, 사실은 진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매번 뒤로 미루었기에 마지막에 크게 곪아 터진 것입니다. 결국 모든 게 그의 잘못이며, 다리가 없는 사람에게 100m 세계 신기록을 세우라고 할 수는 없어도 자신의 마음에 새겨진 상처를 치유하는 성숙함은 누구에게라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이기에 그는 비난 받아야 마땅합니다. 한편 1권에서도 우리가 봤고, 2권 p67에서도 재확인한 그 업보 때문에, 결말에서 ooo 부부가 그토록 참혹한 최후를 맞아야 했다는 건 좀 심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숫자 7에 얽힌 비밀(p169)은 이 작품에서는 끝내 완전한 해명이 안 되고, 독자들은 14년을 다시 기다려 <신(神. nous les dieux)>에서야 해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천사들의 제국> 1권 p82, p110에 보면 엘로힘, 신들이라는 복수형(plural)에 대해 언급이 있는데, 이른바 존엄의 복수형(pluralis majestatis)이란 것이며 기독교나 유대교나 유일신을 믿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복수형이 있다는 게 말이 안 되죠. 저 작품 <신>도 원래 프랑스어 원제로는 "우리들, 신(동격)" 정도의 뚯입니다. 베르베르는 이처럼 엄청난 지식을 통해 후속편에 대해서도 제법 깊은 복선을 미리 깔아둔 셈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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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적 통치성을 넘어서 : 제도적 측면 다층적 통치성 총서 5
이동수 엮음 / 인간사랑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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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여 전인 2월 12일에 다층적 통치성 총서 제6권, 정책적 측면 편을 리뷰했었습니다. 이 5권이 조금 뒤에 출간되었는데, 사실 독자로서 약간 의아하기도 했으나 여튼 당초의 계획대로, 체계를 잡아 계속 출간되는 모습에 매우 안도가 됩니다. 계속하여 힘들면서도 뜻 깊은 작업을 이어 주시는 이동수 교수님, 그리고 인간사랑 출판사 측, 특히 여국동 대표님과 이국재 부장님께 감사와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인간사랑에서 펴내는 정치학 서적들을 읽어 보면 한국의 정치학이 이제 얼마나 높은 수준에 도달했는지 새삼 실감합니다. 예전에는 한국어로 된 정치학 전문서 중 읽을 만한 게 별로 없었으며 대부분은 한스 모겐소나 조셉 나이 등의 원서를 힘들여 짚어 나가야만 했습니다. 영어로 된 전문서 중 가장 문장의 난도가 높은 분야가 신학, 정치학 등입니다. 이제 한국 학자들의 유려하고 심도 있는 문장으로 정치학 이론의 높은 경지를 엿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건 독자로서 너무도 큰 기쁨입니다. 

중근세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국세가 극성(極盛)에 달했을 때 세계 최강의 군대는 합스부르크의 심장 빈을 포위했었습니다. 이때 빈이 함락되었다면 그 여파로 시민혁명, 산업혁명 등은 모두 무산되거나 심각하게 지연되었겠으며,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서유럽발 혁신과 진보 요소가 상당 부분 거세된, 여전히 중세를 닮은 답답한 모습이었을 수 있습니다. 이때 투르크의 빈 포위를 방해하여 결정적인 도움을 합스부르크에 준 쪽이 폴란드 군대였는데, 이 나라의 융성함과 활기참이 이 정도였습니다. 

그랬던 나라가 불과 백 년도 안 되어 자신이 은혜를 끼친 오스트리아 등 세 열강에 의해 분할되어 정치적 단위가 지도에서 사라진 비참한 운명을 맞았는데, p15를 보면 이동수 교수는 프랜시스 후쿠야마(1989년 <역사의 종언>을 논하여 크개 유명해졌던)의 "실패한 과두제" 이론을 들어 왜 폴란드 같은 나라가 변화하는 세태에 적응 못했는지를 분석합니다. 논문 중반에 나오는 헝가리도 한때 마찬가지였으나 여튼 19세기에 이른바 Ausgleich 등 대타협을 합스부르크 측과 이뤄 중흥을 도모했습니다. 논문에 나오듯이 헝가리는 한때 투르크에 의해 망했고, 이후에는 오스트리아에 의해 속국 신세가 되었으나 지도층이 적절한 타협책을 펴서 민족 말살 단계까지 이르지 않고 높은 수준의 자치를 수백 년 간 유지했습니다. 

북유럽의 스웨덴 역시 본디는 부족 사회에 불과했고, 30년 전쟁 당시 유럽 본토에까지 군사적 영향력을 끼쳐 제국으로 성장하는 듯했으나 막판에 일격을 맞았고, 이어 표트르 대제와의 긴 전쟁에서 기어이 패배하여 국가 차원의 위기를 맞았으나 지도층이 지혜를 발휘하여 정치적 안정을 이루고, 산업적 격변기에도 잘 대처하여 경제적 풍요를 유지한 게 성공 요인이었습니다. 왕-귀족-평민 세력이 결국은 제도적 타협을 통해 절멸의 투쟁으로 치닫지 않은 게 생존을 위한 그들의 슬기였습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에 나오듯 덴마크는 한때 전 유럽을 벌벌 떨게 만든 강국이었으나 스웨덴이 독립해 나간 후에는 오히려 그로부터 존립의 위협을 당했으며, 남으로부터 프로이센이 치고올라오고부터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을 뺏기는 등 나라가 완전히 기우는 모양새였습니다. 그러나 역시 내부부터 추스려 제도적 안정을 이루고 본연의 강점인 낙농업을 정비하며 무역에 있어서도 경쟁력을 키우는 등 적극적으로 위기에 대응한 끝에 경제적, 정치적으로 큰 불안 요인 없는 나라를 유지해 갑니다. 위기가 닥쳤을 때 자포자기 상태로 극단 폭주하지 않고 자제하며 나머지 자산을 잘 추린 게 생존 번영의 비결입니다. 

헌법에서는 이미 헌정사 초기부터 지자제를 규정하고 있었으나 그 실행이 대단히 느려서 아직은 한국 지방자치 역사가 일천한 편입니다. 김태영 교수는 p75에서 유독 한국에서만 "지방정부 집행부만" 지방자치단체로 파악하는 오류가 만연하다고 지적합니다. 실제로 신문 방송에서의 사용례를 봐도, 지자체라고 하면 집행부만을 가리키는 듯한 경우가 많습니다. 광의의 정부에 입법부인 국회가 포함되는 것처럼, 지자체도 지방의회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게 당연하며, 거꾸로 영미에서는 local council=지방의회=지자체로 이해하는 관행마저 있다고 합니다. 왜 집행부보다 의회가 우선하는지에 대해, 김태영 교수는 왕권에 대항하여 오랜 동안 민의를 관철하는 수단이 의회였던 그들 역사 고유의 특징 때문이라고 추론합니다. 

예전에 동사무소라 불리던 기관이 지금은 주민센터, 행정복지센터로 바뀌어 호칭됩니다. 이 배경에는 지방자치가 읍면동 수준에까지 정착되어야 한다는 1998년 정부 이후의 기조 변화가 깔려 있습니다(p123). 3년 전인 2021년에도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 소속의 한병도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따르면 읍면동 주민자치회를 신설하여 풀뿌리 민주주의를 말단까지 관철하려는 시도를 했었으나, 특정 정치인에 의해 사조직화하여 악용될 우려 때문에 좌초되었습니다. 그러나 필자 채진원 교수는 해당 법안의 진짜 문제점은 따로 있었다며, 주민이 아니라 위원이 주체가 되는 시스템(p127)이 주민 자치의 취지와는 정반대로, 관제화의 위험이 다분하다며 그 모순을 통박합니다. 

조석주 교수는 한국 정치의 제도화와 자율성 사이에 큰 딜레마가 존재한다고 규정하며, 한국 정치의 균열은 첫째 이제는 보수-진보의 일차원으로 설명되지 않고 젠더, 계급, 안보 이슈에 따라 다차원의 동인을 가지며, 둘째 일어난 균열이 한 모습으로 오래 지속되지 않고 그 균열상이 계속 바뀐다는 점에서 동적(dynamic)이라는 특징을 가진다고 지적합니다. 51%의 승리, 49%의 패배로 언제나 소모적으로 귀착되는 선거를 지양하고, 다당제가 정착함으로써 (정파 간 수시 이합집산에 따라)선거에 참여한 모두가 승자가 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제3의 길"을 설파했고 우리 나라에도 여러 번 방문했던 토니 블레어 총리는 여러 정치 실험을 시도했는데 이 책의 6장에서 임상헌 교수가 분석하는 연계 정부, joined-up government입니다. 부처 할거주의를 극복하고, 연계 유닛을 설치하며(한국에도 국무조정실 같은 게 있기는 합니다), 결정뿐 아니라 정책의 집행 단계에서도 연계성이 담보되도록 개혁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연계유닛이 분절화하며 오히려 통합 조정이 더 힘들어졌다는 비판도 제기되었습니다. 신 노동당을 표방했던 블레어의 실험이 꼭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는 없으나 유익한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까지는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이화용 교수, 이기호 팀장 공저의 마지막 8장은 이주 노동자 문제를 다룹니다. 이주는 짧은 시간에 한국이 워낙 급속한 발전을 이루는 바람에 일어난 현상인데, 출생률까지 급감한 상황에서 이주 노동자들의 역할은 이제 필수불가결한 위치에까지 가까워졌습니다. 두 필자는 이주 노동자들의 권익과 고용 시스템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 그들을 제도 내로 단단하게 통합하고 산업의 체질도 개선해야 한다고 제언합니다. 노동의 자유로운 이주는 이미 21세기 들어 전지구적인 현상이 되었으며, 국민국가의 낡은 굴레를 넘어 화합과 포용, 구조연결을 기해야만 이 격변 속에서 살아남는 강국이 될 수 있다는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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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제국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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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에 이어 한국과 프랑스에서 큰 히트를 쳤던 <타나토노트(1994)>에 거의 바로 이어졌던 후일담입니다. 그렇기에 발표된 지 오래된 작품이며 베르베르 초기의 풋풋함이 곳곳에 살아 있는 게 느껴집니다. 이 리커버판은 이세욱씨 번역 텍스트 그대로이며 다만 (제 기억으로) 몇 개 용어가 개정된 것 같기는 합니다. 타나토노트의 세계관을 그대로 계승했으며, 젊은 자신의 재능을 화끈하게 증명이나 하려는 듯 기발한 상상력과 치밀한 세팅이 빛납니다. 원래는 <개미>도 "개미들의 제국"이라 제목이 붙었기에 이 작은 어느 정도 제목 전통을 이어가는 형식입니다. 

만약에 천국이 실재함이 확증되었다면 지상의 질서가 크게 흔들릴 것입니다. 지금도 일부 종교의 광신도들은 순교(?), 목적사에 주저함이 없는데 현생의 괴로움을 천국에서 보상 받겠다는 믿음이 확고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상인들은 과연 죽어서 무엇이 자신을 기다릴지 확신이 없고, 혹여 이 죽음과 함께 나의 모든 것이 무(無)로 화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무슨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죽음(자살)을 결행한다든지 하는 건 상상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이 작품 p29에서 대천사들이 말하는 대로, 천국의 비밀이 누설되면 "관광 목적의 자살자들"이 속출하겠기에, 로즈, 아망딘, 그리고 1인칭 주인공 미카엘 팽송 들은 강력한 견책을 받는 중입니다. 

2000년 초판에서도 그랬습니다만 풍부한 역주를 통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건 열린책들 출판사의 문학서 공통된 특징입니다. 베르베르 이전에는, 움베르토 에코의 책을 번역했던 이윤기씨가 그러했고,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도 베르베르 역시 작품에서 지식의 향연이 펼쳐지지 때문에 풍부한 역주가 동원됩니다. 저승, 아니 천계에서 에밀 졸라를 만난 팽송은 그의 입에서 또다시 "나는 고발한다"를 듣는데 우리의 주인공 팽송이 천사들로부터 그릇된 심판을 받았음을 고발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졸라가 드레퓌스를 변호했던 역사적 사건을 환기하려는 의도인데 일종의 유머입니다. 이세욱 역자는 혹시 모르는 독자가 있을까봐 p35 하단에 긴 역주를 달고 있습니다. 

<상대적이며... 백과사전(p164)>의 저자로 유명한(?) 에드몽 웰스가 p42에 등장합니다. 수호천사라는 말은 들어 봤어도 지도천사라는 말은 금시초문인데 독자뿐 아니라 팽송도 마찬가지인지, 상대에게 그게 뭐냐고 되물어 봅니다. 원어로는 ange instructeur인데, 말이야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지만(영어로 옮기면 instructor angel), 불어건 영어건 그런 표현은 없고 베르베르의 신조어입니다. 수호천사는 불어로 ange gardien(영어로는 가디언 엔젤)라고 합니다. 웰스는 천사로서의 권능과 그 특유의 지혜를 동원하여 1에서 6까지에 담긴 신성한 의미를 팽송에게 코칭(=인스트럭팅)하는데 7에 대해서는 끝내 언급을 자제합니다(저 뒤 p144에서도 대답을 회피합니다). 베르베르 작품의 공식대로라면 이 부분이 후반부에서 어떤 복선 구실을 해야 합니다. p60에서 팽송은 라울 라조르박을 뜻밖에 해후하며 긴 모험을 함께하게 됩니다. 

p73에서 <...백과사전> 인용 형식으로 소개되는 태아 접촉법은, 요즘 이른바 후생유전학이라 해서 각광받는 학문분야하고도 관련이 있습니다. p75, p76, p244의 "알려지지 않은 세계, 미지의 세계" 등은, p62에 나왔던 라틴어 표현 "테라 인코그니타"와 같은 뜻입니다. p77에서 태아 비너스가 겪는 체험은 이른바 vanishing twin에 대한 이야기인데 한국에서 2000년에 지수원씨(<투캅스>에서 박중훈 여친으로 나온 배우) 주연으로, 같은 제목의 영화도 나왔더랬습니다. p82에서 팽송은 이른바 "파스칼의 내기"를 언급하는데, 사실 <팡세>의 그 서술은 일종의 농담이지, 정말로 보험 든다고 생각하고 종교를 믿는다면 그런 불경스럽고 부정직한 믿음에 대해서는 거꾸로 신이 벌을 내릴 가능성이 크죠. 영화 <대부 3>에서도 람베르토 추기경이 비슷한 이야기를 깡패 두목 마이클 콜레온에게 꺼내죠. 

사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뭔가 느낌이 쎄해서, 하려던 일을 갑자기 그만두었는데 용케도 예감이 맞아서 악운을 피했다는 말을 듣곤 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대개, 자신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주변 사람들을 가스라이팅하는 허풍쟁이, 사기꾼들의 수법이긴 합니다만, 베르베르는 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데, 수호천사들이 자신의 의뢰인(영어로 불어로 모두 client입니다. 불어 발음은 "클리양". 여기서는 베르베르가 색다른 의미를 부여해서 쓰입니다)에게 슬쩍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알려 주는 거라는 식입니다. 꿈이나 영매를 거치는, 혹은 징표(원어는 signe)를 통해서인데, 베르베르다운 유쾌한 상상입니다. 이렇게 해서 천사들은 인간사에 아주 간접적으로 개입한다는 것입니다. 

p105에는 모성애가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통념에 대해 백과사전 저자인 웰스가 반론을 제기합니다. 19세기 프랑스의 부르주아들은 시골 출신의 유모에게 육아를 맡기고 애를 전혀 돌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글쎄 19세기 부르주아의 행태를 누가 대표하며 어느 정도 일반화가 가능할지도 의문이지만, 설령 19세기 부르주아 100%가 육아를 방기했다 쳐도, 그들이 과연 인류 어머니층 모두를 대표한다 할 수 있습니까? 뿐만 아니라 본 항목에서도 "시골에서 올라온 유모들"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고 나오는데, 그들은 그럼 누구한테 모성 발휘를 학습했단 말일까요? 그저 월급 받고 수행하는 노동? 사실 육아 방기의 가장 전형적인 행태는 중세 유럽 귀족들이나 근세 영국 젠트리층에게서 찾아야 하며, 구태여 내적 동질성도 탄탄치 못한 부르주아를 예거할 건 아닙니다. 모성애가 인간의 본성이 아니라면 우리 인류는 오래 전에 멸종했습니다. p109 맨 윗줄 "체호프으로"는 "체호프로"가 맞겠습니다. 여튼, 카르마가 정말 악착같은 것이라는 팽송의 말은 지극히 타당합니다. 

p72를 보면 "임신 중지 수술"이란 말이 나오는데 과거 같으면 낙태, 중절 같은 말이 쓰였겠습니다. 그러나 이 말에 붙은 부정적 뉘앙스, 또 여성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함의 때문에 요즘은 이 말을 잘 안 쓰는 추세이며 이 리커버판이 그 점만큼은 확실하게 반영한 듯합니다. p225를 보면 역시 베르베르는 페미니스트스러운 구석이 있는데, 다만 "성신"이라는 용어는 이미 한국 천주교에서 "성령"으로 개정한 바 있으므로 기왕 고치는 거 여기도 바꿨으면 어땠을까 하고 개인적인 아쉬움을 표현해 봅니다. 神도 원래 한자에서는 ghost, spirit(鬼, 靈)의 뜻이었으니 무리가 없었는데, 21세기 현재 한국인이라면 神에서 그런 뜻을 떠올리는 이는 아무도 없고 모두가 god만 생각하므로 저런 개정은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p99에서는 다섯 개의 개입 수단이 설명되었습니다. p145에서는 세 가지 설득 수단이 나오는데 마치 현대인을 위한 베스트셀러 자계서에 나올 법한 그럴싸한 이론이라서 흥미롭습니다. p207을 보면 매릴린 먼로가 등장하는데, p153을 보면 비너스 시선에서 리즈 테일러가 언급됩니다. 베르베르가 성장기에 보고 자란 성적 우상들이 아닐까 짐작합니다. 사실 <클레오파트라>에서 보인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관리 안된 중년 여인의 몸 그대로라서 보기 민망한 장면이 있습니다. 시저 역 렉스 해리슨의 중후한 연기가 일품이죠. 

p220을 보면 이른바 메타정신분석 이야기가 나오는데, 베르베르 소설에서 독자가 갑자기 찡!하고 가슴이 뭉클해지는 대목이 바로 이런 곳입니다. 왜 이고르, 비너스, 자크 등을 팽송이 의뢰인으로 두게 되었을까? 답은 그들이 각각, 채 실현되지 못한 팽송 자신의 염원을 대변하는 존재, 영혼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카르마라는 녀석은 악착같지 않습니까? 상상력, 용기, 매력이야말로 우리들 평범한 인생이 가장 갖고들 싶어하는 자질이기 때문입니다. p223에는 "자기 반성의 계기"라는 말이 나옵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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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투자 완전 정복 - 높은 시세 차익과 공실율 제로, 임대 고수익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빌딩 브랜딩 전략서
조해리 지음 / 라온북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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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불경기에 설령 자가건물에서 장사하는 자영업자라고 해도 기회소득까지 감안한 적정 이익을 올리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또 건물주라고 해도 공실률이 높아서 여러 모로 고충이 많습니다. 반면, 불경기에도 여전히 높은 매상을 올리는 곳도 있고, 이런 가게가 입점한 빌딩, 혹은 공실률 낮은 건물은 불황의 공포를 모르고 힘든 시기를 넘깁니다. 저자 조해리 대표는 학창 시절 오랜 시간 동안 법학을 연구한 분이기도 한데, 성공적인 투자를 위해서는 복잡하게 얽힌 도심 내 부동산의 권리 관계 분석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에서 더욱 신뢰가 가는 포인트입니다. 이 책도 그저 경험담이나 단기 트렌드 소개에 그치지 않고, 보다 체계적인 부동산학 입문도 겸한다는 점에서 더 만족스러운 독서였습니다. 

저자는 이 책 전체를 통해 독자에게 "공간"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고 독자에게 권합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 수밖에 없는 "좋은 목"의 조건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 좋은 목은 어떤 특정 좌표에 고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 조건, 여건은 어느 정도까지는 정해진 법칙이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이 책에서 우리 독자들이 염두에 두고 공부해야 할 포인트가 이 부분이겠습니다. 

또, 남들이 다들 좋다고 해도 과연 내가 내 적성, 성향, 미래 전략에 맞게 가꿔 나갈 수 있는 건물인지도 생각을 해 봐야 합니다. 유망한 부동산, 빌딩이라는 게 한 가지 유형만 있는 게 아닙니다. 수익은 물론 좋지만 내가 관리하기에 사소한 스트레스가 은근히 쌓이는 조건이라면 그건 나하고는 잘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p120을 보면, 저자는 "나에게만 특화된 매우 귀하고 고급진 정보"라고 파악된 부동산의 예를 드는데, "주변을 걷다 보면 지금의 이 시세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심지어 그 가치와 가격이 창문마다 숫자로 표시까지 되는 느낌도 든다고 합니다. 물론 평범한 사람들의 센스가 조 대표님의 사업 감각에 근접한다는 건 당연히 어렵겠지만, 우리도 나만의 관점과 확실한 이론으로 무장하고 거래와 임장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는 "관심있는 지역만 떠올려도 머리에 3D 지도가 그려질" 단계까지 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겠습니까. 이 책을 읽으며 저자님이 너무도 부러웠던 대목이고, 또 저렇게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이 책은 단지 투자 요령과 지식을 알려 주는 의의를 떠나서, 저자 개인의 추억이라든가 사연도 책 곳곳에 엿보여 그 점도 독서의 매력 포인트였다고 생각합니다. p86에 보면 타임스퀘어의 W호텔을 말씀하시는 대목이 있는데, 저는 처음에 착각하여 영등포 타임스퀘어(!) 말씀인 줄 알고 아니 영등포에도 W가 있나, JW 매리엇 이야기인가 하고(ㅋㅋ) 순간 헷갈렸는데, 그게 아니라 국내 광장동(광진구) 그랜드 워o힐에서 좋은 인상을 받았었기에, 뉴욕 타임스퀘어를 방문해서도 일부러 같은 체인인 W를 골랐다는 말씀이더군요. 사실 요즘 호텔 체인은 품질 관리가 일관되지 않은 경우가 많아, 특정 지역의 명소에서 받은 좋은 인상만 갖고 다른 지역에서도 이름만 갖고 찾았다가 실망하기도 합니다. 워o힐은 그렇지 않았다니 참고해야 하겠습니다. 

저자님은 책 전체를 통해 건물의 외관, 디자인의 중요성을 무척 강조합니다. 이게 유일한 법칙이자 진리는 아니겠습니다만, 책을 통독하며 참 다양한 사례와 저자의 관점이 강력하게 관철된 케이스 스터디가 나오기 때문에, 솔직히 독자로서 좀 압도되는 느낌으로 주눅들어가며(?) 읽었습니다. 빌딩 투자에 대한 책을 그래도 몇 권 읽었는데 이 책은 저자만의 참신하고 독특한 견해가 강력한 논거와 함께 제시되어, 독자의 부족한 식견을 수시로 자각하며 읽게 되는, 약간은 자괴감이 수반한 독서였습니다. 빌딩 안에 자연이 들어가야 한다(p105)는 신조는, 비단 건축가나 건물주뿐 아니라 일반 투자자(지분 투자자 포함)들도 좀 마음에 새겨야 할 대목 아닌가 싶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빌딩을 매입하면, 임대수익이 꾸준히 발생하는 것에 매력을 느낀다... 노동소득이 아니라 자본 소득의 가치라는 것은 실로 매혹적이다... 그러나 이제는 진심으로 정말로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임대 수익률로만 보면, 이 운영이 과연 안정적인 사업인지 의심스러운 경우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p170)." 저자의 말입니다. 어차피 자본소득이라는 것도 당사자의 과거 근로소득 잔여분이 축적되어 그에 기반하여 창출되는 것인데, 비효율적인 부분이 있다면 이는 개선되어야 마땅합니다. "리모델링과 신축 허가가 까다로워지고 금리가 높아서" pf가 매우 저조하며 분위기마저 흉흉한 게 요즘 모습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와중에서도 어떤 희망를 봅니다. 언제나 매도자 위주로 돌아가던 부동산 시장이 그야말로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매수자 위주로 분위기가 바뀔 국면이라는 것입니다. 

어떤 빌딩을 골라야 후회없는 투자일까요? 책 전반부에 저자만의 유익한 원칙과 관점이 상세히 나옵니다. 거듭 말하지만 이 역시도 하나의 관점일 뿐 절대적인 지침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 독자가 볼 때 매우 흥미롭게 참고하고 채택할 수 있는 원칙들이 많았습니다. 책 말미에는 실제 건물을 매입했을 때, 이제 소유자로서 주의해야 할 여러 실무상의 포인트, 노하우 등이 또한 자세히 실려 부주의하게 유출될 금전 손실 등을 막을 수 있게 배려합니다. 인사이트와 디테일이 모두 포함된 매혹적인 투자서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솔직하게,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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