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밤, 나는 당신 안에 머물다 - 그리며 사랑하며, 김병종의 그림묵상
김병종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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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종의 그림을 가장 먼저 본 것은 '나의 생명이야기'에서 였다. 한때 인기 절정이던 황우석, 최재천, 김병종 공저로 나온 책인데, 그 책의 그림들이 읽는 맛을 더해주었다. 그이후에 '화첩기행'이 4권 간행되고, '김병종 라틴 화첩 기행'이 출간되어서 그의 그림에 끌려서 모두 읽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림뿐만아니라, 글솜씨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이미 김병종은 자타가 인정하는 글쟁이(?)였던 것이다. 그는 젊은 날에 두 곳의 신춘문예에 당선한 경력도 있고, '대한민국 문학상'도 수상한바가 있다. 이 책에도 그의 문학청년시절의 이야기나, 명작이라고 손꼽히는 세계적인 작품들에 대한 글들이 언뜻 언뜻 소개되기도 한다.
 
  현재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이며, 국내외에서 20여 차례에 걸친 개인전도 열었던 한국화가이기에 그림 솜씨는 글솜씨 몹지 않게 더욱 대단하다.
이 글을 읽어 나가다 보면 작가의 많은 작품들이 소개되는데, 연작 시리즈가 많이 있다. 그의 근래의 작품들은 캔버스 또는 닥판에 한지를 소재로 하여 먹과 채색을 한 동화적인 듯하면서도 아름답고 밝고 환한 그림들이 많이 소개된다. 덧칠을 한듯한 꺼칠꺼칠한 질감까지 느껴지는 그림들이다. 아마도 이런 그림들이 사람들에게 많은 호응을 얻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그의 초기 작품들은 이렇게 밝지만은 않았으며, 예수를 주제로 삼아서 연작으로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바보 예수' '흑색 예수' '황색 예수' '우는 신' '눈물' '육은 메마르고'등....
천천히 읽으면서 그의 미술세계까지 감상한다면 책 한 권으로 두 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좋은 이야기와 좋은 그림 감상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이 책은 '그리며 사랑하며, 김병종의 그림 묵상'이라는 부제가 붙은 김병종의 그림과 함께 그동안 국민일보에 실렸던 글들을 모아서 엮은 것이다.
1장 : 당신이 그리신 아름다운 세상
책에서 작가가 말하는 '당신'은 창조주이신 하나님, 곧 예수님을 일컫는 말이다. 그동안 작가는 많은 곳을 여행하였다. 우리들이 흔히 갈 수 없는 라틴아메리카, 사하라사막, 히말라야 산, 키르기스스탄 등을 돌아 보면서 하나님이 곧 大예술가임을 이야기한다. 에게해의 물색이 사무치게 아름다워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는데 카리브해에 가서는 황홀경에 빠지고 만다. 카리브해의 고요한 바다앞에서 깊은 신앙심에 도달하고  그 신비한 바다색 앞에 무릎을 꿇고 싶은 심정이라는 표현을 쓴다. 가만히 귀기울여 보면 바다에서 숨쉬는 소리가 들려온다고 할 정도로 얼마나 자연이 아름다운지, 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한동안은 '물'을 소재로 그린다. 그뿐이 아니다. 물이 뒤적이고 물이 옹알대는 소리도 들리고 바람끝에 실려 오는 독특한 향기까지 느껴지는 작가이니 그의 글이, 그의 그림이 어떻게 아름답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처럼 하나님의 창조물에 경이로움을 느끼면서 인간의 탐욕이 자연을 망가뜨리고 그위에 깃든 생명을 훼손함을 안타까워한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세계에 대한 경이로움으로 가득찬 글들을 모아 놓았다.
  2장 : 내가 그린 당신의 얼굴
그의 작가의 젊은 날, 즉 80년대의 산물이 바로 '바보 예수'시리즈이다. 석양에 물든 캠퍼스를 내려오던 어느날 최루 연기 가득한 허공에 불현듯 솟아오른 그림이 바로 '바보 예수'였다. 번쩍! 하고 떠오른 그 예수의 얼굴에 붙잡혀 나는 그 후 십여 년 세월을 그리고 또 그렸다. 그 산발한 혹은 피투성이가 된 그이의 얼굴을. 외롭고 때로 쓸쓸한 그이의 얼굴을. (p83) 

 

2장은 꼭지 제목 밑에 성경구절이 한 구절 실리고 그에 걸맞는 자신의 작품이 소개되고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형식으로 글을 쓰고 있다. 글의 꼭지와 꼭지가 연결되는 듯이 이어진다. 이 시절에 그린 그림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가시관을 쓰고 손과 발에 못이 박혀서 흘리신 피처럼 어둡고, 人子(예수를 사람의 아들로 표현한 말) 의 고뇌의 모습들이 많이 비친다. 그리고 작가는 꼭 예수를 잘 생긴 외모의 백인이 아닌 흑색 예수, 황색 예수, 우는 신 등으로 표현한다.



 
  3장 : 당신과 함께이기에 나 평강 누리리라
2장과 마찬가지로 성경구절과 자신의 그림, '당신과 함께이기에 나 평강 누리리라'에서 알 수 있듯이 어릴적부터의 예수님과의 인연들을 이야기한다. 어릴적에 아버지를 일찍 여위고 예수, 그분을 '나의 왕' '나의 아버지' 나의 친구'로 생각하고 성장하였음을 고백한다. '어린 시절이후 외롭고 힘들 때마다 막연히 하늘을 보는 습관을 지니게 되었다. 왠지 그분이 나를 바라보시고 함께 걷는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아버지를 상실한 아픔을 예수 그분은 메워주셨다. 그분은 내게 실존이었다. 성당이나 교회당에 모셔져 내 외롬움이나 슬픔과는 아득히 먼 백인 남자의 모습이 아니었다. '(p140) 그래서 항상 작가에게는 예수 그분이 그림의 주제이고, 삶의 모든 것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4장 : 당신이 빚으신 사랑의 선물
젊은 날에 신림동 난곡지역에서, 봉천동의 달동네에서 살았던 기억들과 함께 자신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은 가장 먼저 그 곳을 찾으시리라 생각해 본다. 이 세상은 그 분이 빚으신 사랑의 선물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도 한다.


길지 않은 문장들이 작가의 손끝에서 아름다운 글로 변하여 우리들의 마음속에 들어온다. 많은 여행을 하면서 접했던 자연의 경이로움도 그림으로, 글로 변하여 우리에게 다가온다. 비록 미술관에 전시된 작가의 그림을 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의 화풍의 변화도 느낄 수가 있다. 화가이면서 글솜씨가 뛰어난 그가 이 책을 통해서 남기는 소중한 말은 작가에게 '색채는 나만의 기도이고, 붓질은 나만의 찬송입니다. '이다.
그림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나, 신앙을 가지신 분들은 오래 오래 생각이 날 때마다 꺼내서 읽으면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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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러브 홍콩
신서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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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지 자신의 기억에 가장 좋았던 여행지가 있을 것이다. 그곳에 매료되어서 시간과 경제력이 허락할 때마다 찾아가고, 그러다가 그곳에 아주 주저 앉아 사는 사람들도 있다.  'i Love Hong Kong'의 저자인 '신서희'는 홍콩에 빠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현재는 고등학교 중국어 교사인데, 중국 유학을 마치고 사회생활의 첫 출발지였던 홍콩에 반해 버려서 2년동안 홍콩의 구석 구석을 헤매고 다녔고, 지금은 방학만 되면 그리움을 가득 안고 홍콩으로 달려 가는 (...) 자타 공인 초절정 홍콩 마니아이다. (책날개글 중에서) 그녀에게 홍콩은 편안함으로, 때로는 독특함과 익숙함으로, 또 때로는 도발적인 모습으로 다가 (책머리글 중에서) 온다.특히 겨울의 홍콩에 더 끌린다고 한다. 
  'I Love Hong Kong'은 2007년에 출간되었던 책의 개정판이다. 수시로 변하는 도시이기에 2009년 4월까지 의 현지 취재를 바탕으로  음식점, 숍, 볼거리에 관한 글들은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쓴 글들이기에 독자들의 취향과는 조금 다를 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기본 틀은 여행 정보 책자이고 여기에 홍콩에 대한 작가의 전반적인 단상들과 이야기가 들어 갔다고 생각하면 된다. 홍콩이 특별한 이유는 '백만불 짜리 야경', '쇼핑과 음식의 천국', '천가지의 얼굴'을 가졌다는 것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지역을 구분하자면 '카오룽 반도' '홍콩섬' '신계지역과 주변 외곽 섬'으로 묶어서 여행일정짜기(2박3일, 4박 5일), 여행지, 교통수단, 먹거리, 볼거리, 쇼핑 등을 소개해 주고 있다.
 
이 책의 내용들은 내가 본 홍콩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여러 여행지 중에서 홍콩이 그렇게 마음속에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는 것이 다르다고나 할까. 나는 정돈된 듯하면서도 고풍스러운 유럽의 도시들이 훨씬 아름답고 정겹게 느껴 졌었다. 홍콩은  MRT (지하철) 노선도만 있어서 마음대로 활보하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곳이기에 한 번쯤 가 볼만한 도시이기는 하다.


홍콩인이 사랑하는 3가지는 무엇일까?
(1) 경마: 홍콩사람들에게 경마는 스포츠가 아닌 생활의 일부분이다. 경마의 짜릿한 승부 그 자체를 즐기는데 도박과는 이어지지 않는다.
(2) 해변에서 바비규: 산과 바다 어디에서나 바비규를 즐긴다. 바비규장은 무료, 유료가 있다.
(3) 오후의 향기로움, 애프터눈티 : 영국사람들의 전통적인 문화를 답습한 것으로 호텔의 고급스러운 거금의 애프터눈 티 부터 간단하게 즐기는 서민적 애프터눈 티까지 있다. 홍콩의 오후 2시~ 4,5시는 이 시간에 해당한다.
이중에 홍콩을 찾는 사람들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페닌슐라 호텔의 애프터눈 티'를 경험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것들은 짧은 일정에는 생각하지도 못할 일일 것이다.

이밖에도 이 책만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는 저자 생활에서 얻어진 이야기로는 홍콩인의 특색으로 개인주의를 들고 있다. 그들은 타인의 사생활을 묻지 않는다, 그러나 한 번 친해지면 너무도 정감있는 사람들이다. 매너, 인권존중, 학구열이 홍콩인을 이야기하는 단어들이 될 것이다. 영국의 오랜 통치하에 있었기에 영국다운 면모가 은연중에 홍콩인의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여행중에 빼놓을 수 없는 별미는 '맛'이 아닐까 한다. 식사 에티켓에서부터, 홍콩의 대표 요리 (뻬이징요리, 상하이요리, 쓰좐요리, 광둥 요리, 차오저우 요리)그리고 길거리 음식까지 추천요리, 레스트랑까지 책에 담고 있다. 누구나 중국이나 대만 등을 여행할 때 고통스러운 음식의 맛이 향채인데, '향채는 빼주세요'(자우 임싸이)의 말을 익혀 간다면 좋을 듯 싶다. 나 역시 도시의 중심부가 아닌 뒷골목에서 나는 '초두부'의 냄새와 음식에서 풍기는 '향채'의 향에 역겨워서 결국에는 일본 음식점을 찾을 수 밖에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홍콩 최고의 명소들이 설명과 함께 찾아가는 교통수단, 소요시간, 볼거리 등을 자세하게 알려준다. 특히, 홍콩을 여행하게 되면 터보젯을 타고 마카오를 건너가 보기를 권하고 싶다. 마카오는 마카오 화폐가 있기는 하지만, 홍콩달러가 약간 더 가치가 있어서 홍콩 달러를 그들의 화폐처럼 사용할 수 있다. 옛 포르투갈의 정취와 럭셔리한 호텔들, 그리고 콜리안 섬으로 가면 한적한 어촌 마을과 아름다운 바다를 볼 수 있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 등의 촬영지여서 부쩍 관심이 높아진 곳이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니까 마카오의 '베네치안 호텔'을 구경하는 것도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릴 정도이다. 이탈리아의 베니스을 그대로 본 뜬, 두칼레 궁전, 산마르코 종찹, 리얄토 다리, 인공운하로 곤돌라까지 있다. 물론, 카지노 구경도 재미있다. 얼마든지 구경할 수 있고, 몇 몇 호텔 카지노를 순방해 보면 특색이 있기도 하다. (이건 나의 생각이다.)

책에는 테마별 추천 명소가 있다. (분위기있게 야경구경, 흥겨운 나이트 라이프, 신선한 시프드를 먹고 싶을 때, 몸으로 부딪히며 느끼는 체험)
그리고 홍콩 여행에서 쇼핑을 즐긴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지역별 쇼핑숍 소개, 지도까지 첨부되었으니 찾기도 쉬울 것이다. 숍 전경 사진이 소개되고 명품부터 캐릭터 상품까지 짜~ 악 소개된다. 환율이 낮다면 쇼핑이 큰 메리트가 있다. 쇼핑 아이템 5가지는 신발, 화장품, 와인, 명품, 청바지를 들 수 있다. 전통적인 상품으로는 육포, 전통과자, 차 등이다. 나의 경험으로는 육포, 전통과자가 별로 입맛에 맞지 않았으니 시식용을 먹어 보고 구입하는 센스를 발휘해 보시기를....

 

그밖의 항공사 취항 일정, 입출국 관련, 교통수단 등이 실려 있다.
여행 정보지의 특징이 사진이 엄청 많이 실려 있으니, 지금 꼭 홍콩을 꿈꾸지 않더라도 읽는 재미가 솔~ 솔~ , 그리고 사진과 함께 수채화풍 그림도 편안하고 멋스러움을 더해준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을 때에 짧은 시간에 여러 상황을 접하고 싶다면 홍콩을 가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아주 잘 발달된 MRT 덕분에 길을 헤매지 않고 여행하기 좋은 여행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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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기 좋은 날이 따로 있느냐 - 영원의 숲으로 떠나는 아주 오래 기다린 여행
정휴 지음, 백종하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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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저자는 정휴스님이다. 197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으로 등단하였으며, 장편소설 '슬플 때마다 우리 곁에 오는 초인'이 있다. 책의 부제가 '영원의 숲으로 떠나는 아주 오래 기다린 여행'인데, 여기에서 여행이란 죽음을 의미한다. 즉, 수행자들의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과 죽음에 대한 깨우침을 이야기하고 있다. 정휴스님은 10년전 설악산에서 자신이 이 세상에 머물 시간이 많지 않음(삶의 일몰이 시작되고 있음)을  깨닫고 죽음에 대한 화두를 들고 명상하고 고민하다가 쓴 글들을 모은 것이다.
 
책의 주요 내용들은 생사를 초월하여 열반의 참 자유를 얻은 중국과 한국 선사들의 입적 과정이 담겨져 있다. 이런 이야기들은 수행자들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였는지 기록된 '전등록'의 기록을 중심으로 선사들의 죽음을 맞이하는 모습, 죽음후의 처리 문제 등을 쓰고 있다. 아마도 스님들의 죽음의 모습으로 '등신불'을 많이 생각할 것이다. 스님들의 죽음은 예사롭지가 않아서 누워서 죽음을 맞이하기 보다는 죽음을 입체적으로 연출하거나 여행을 떠나는 사람처럼 대중들에게 말하고 떠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죽음을 맞이하거나, 제자들에게 미리 자신이 먼 길을 떠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관계화상은은 일어서서 일곱 걸음을 걸어 나가서 입적을 하셨다고 한다. 중국의 등은봉 선사는 물구나무 서서 입적을 했다니, 수행자들에게 있어서 죽음앞에 슬픔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죽음의 미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관에 미리 들어가서 입적하신 선사도 있다고 한다. 적멸(죽음)을 받아들이는 제자들의 모습도 슬픔보다는 새로운 길을 떠나시는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는 것이다.
'전등록'에 기록된 선사 17명 중에 대부분 화장을 했지만, 매장을 한 경우나, 몇 년동안 석실에 안치했을 경우에 육신은 사라졌을지라도 그곳에서는 향기가 났다는 내용도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런데 17분중에 지암선사는 수장을 한 유일한 선사이신데, 자신의 육신을 물고기들의 밥으로 바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처럼 죽음후에 자신의 육체를 거두지 말고 산짐승, 벌레, 곤충들의 먹이가 되기를 원하신 분들도 상당수가 있으며 죽은후에 자신을 위한 부도와 비를 세우는 것을 극구 말리신 분들이 계신데, 이것은 청빈하고 검소한 생활의 수행자의 참다운 모습일 것이다.


이처럼 죽음에 대해서 당당하고 여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범사에 감사하고 자연과 하나될 때에 죽음은 더 이상 낯설고 두려운 대상이 아니라, 삶의 한부분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죽는 일도 영원한 회귀의 눈으로 보면 삶의 한 과정이다. 누구나 삶에 집착하지 않을 때 풍요를 누릴 수 있다. 삶이 풍요롭기 때문에 죽음이 이토록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이다. (p54) 그래서 죽음앞에서는 끈적끈적한 절망감이 있지만, 초탈의 여유때문에 선사들의 입적은 오히려 희망적이고 슬픔이 반감된다. (p78)
정휴스님의 글은 아주 잔잔한 풍경화를 보고 있는 듯이 여유로우면서도 섬세하고 아름답다.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글들의 내용은 속세의 욕심과 집착을 버리기를 일깨워주신다. 속세의 모든 것을 훌훌 벗어 던지고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인생의 마지막 여행 준비를 마친 스님의 글이기에 감동적이고 삶의 지혜가 묻어난다. 또한, 이 책에는 선사들의 '임종게가 소개된다. '임종게'란 스님들이 엄숙한 죽음에 이르러 가까운 제자들에게 직접 전하는 마지막 한마디를 이야기한다.

 

청빈하고 검소한 생활의 참다운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수행자들이 종파싸움, 자리다툼, 화려한 법당, 풍요로운 생활에 정휴 스님은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으신다. 참된 자아 실현을 위해서는 자기를 비워야함을 강조하신다. 장삼 한 벌에, 발우 만 있으면 족한 것이 수행자의 생활이라고 일깨워 주신다. 정휴스님께서는 경통선사의 다비식을 직접 준비하는 과정에서 오래된 다비장에 서서 독백을 하셨다. '삶과 죽음, 그리고 열반이란 무엇인가?'하고....
이건 '남아 있는 인생이 겨울 해처럼 작아진' 스님 마음속 깊은 물음이었을 것이다. 일초일목을 절대가치로 인식하는 안목앞에는 죽음은 삶의 종말이 아닌 허탈의 자유(p120)인 것이다.

책의 내용이 전체적으로 '영원의 숲으로 떠나는 아주 오래 기다린 여행' 관한 이야기이기에 처음부터 숙연한 마음으로 읽게 된다. 자연과 인간에 대한 단상들도... 그리고, 불교 법문, '전등록'의 내용, '임종게'의 내용이 나오기에 글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차분하면서도 한 문장, 한 문장을 음미하듯이 읽어 내려가게 된다. 그러면 그 글귀속에 모든 진리가 들어 있고, 삶의 지혜가 들어 있다.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한 번쯤은 생각해 보고 삶을 살아가는 것도 괜찮지 않은가 한다.
그리고, '최인호의 인연'에 사진을 실어 주셨던 사진 작가 '백종하'님의 사진들이 나름대로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듯해서 읽으면서 눈길을 끈다. 사진첩만으로도 두고 두고 꺼내 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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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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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정이현은 '오늘의 거짓말'(2007)과 신문 연재소설이었던 '달콤한 나의 도시'(2006)로 잘 알려져 있다. 제1회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2002), 이효석 문학상(2004),'현대문학상(2006)을 받을 정도로 다채로운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번에 출간된 '너는 모른다'는 작가의 두번째 장편소설이다.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이 "진심을 다해 소설을 썼고, 세상에 내놓았다. 그것이 전부다."라는 말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책의 첫 문장의 '시간'에 대한 묘사부터 예사스럽지가 않게 세심하게 공들여서 쓴 흔적이 묻어 나는 것이 쉽게 쓴 글이 아니라는 짐작을 하게 만든다.
'너는 모른다'는 첫 장면이 화창한 5월의 일요일에 Y대교 근처에서 익사체가 발견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만 11살짜리 '유지'의 실종(?)사건이 일어난다. 독자들은 '사체'와 '실종'이라는 관계를 파악하기 위해서 이야기의 흐름이 궁금해진다. 더군다나, 작가의 치밀한 구성과 문장력은 독자들은 쉬지 않고 빠르게 글 속으로 몰입시키고, 빨려들게 만든다. 그러나, 이 소설은 추리소설이라는 형식만을 빌렸을 뿐이지, 전체적인 구성은 '부모의 잘못된 결혼에 의한 자녀들의 문제','화교문제', '장기밀매' '실종사건' 이라는 소재들이 뒤엉킨 등장인물 개개인의 이야기인 것이다. 이 소설을 가족소설이라는 의미로 볼 수도 있지만,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누구를 주인공이라고 하기보다는 등장인물 모두가 장마다 그들의 이야기를 비중있게 다루면서 이야기가 전개되기에 등장인물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아버지인 '김상호'는 두 번의 결혼을 한다. 첫 결혼에서 얻은 자녀가 '은성'(만24), 혜성(만20세)이다. 두 번의 결혼 모두 '애' 때문에 한 결혼이다. '은성'의 출생도, '유지'의 출생도.... '상호의 인생에 기습적으로 도착했던 생명'인 것이다.
김상호의 첫번째 아내인 '강미숙'은 딸 '은성'의 임신으로 '후회와 비탄, 은밀한 갈망이 불균형적으로 뒤섞인' 결혼을 하게 되고 결국에는 이혼을 하고 자식들을 자신의 어머니에게 맡겨 버린다.
김상호의 두번째 아내인 '강옥영'은 중국 산둥성 출신의 아버지밑에서 자란 화교인데, 집에서는 중국어만을 하면서 학창시절 '짱개'이기에 있는듯 마는듯 살아야만 했다. 같은 화교인 밍을 좋아하지만 그의 사람뒤로 숨기만 하는 성격탓에 김상호와의 결혼을 하게 된다. 김상호의 결혼을 생각할 때에 아무런 느낌도 없고 무덤덤한, 아니 '애'때문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내키지 않은 '첫 단추를 잘못 잠는 결혼'인 것이다. 그러니, 이런 환경에서의 자녀들의 이야기가 평범할 수 가 없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딸인 '은성'은 만사에 즉흥적인 인물이다. '새엄마를 가족이라는 카테고리안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자신의 마음속의 이야기를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황폐함이 과격한 행동과 경계성 성격장애를 보인다. 내면보다는 외면으로 자신의 힘든 상황을 표현하는, 그래서 생활이 더욱 공허해지는 인물이다. 아들 '혜성''정물과 비슷한 사람, 평소 집에 돌아오면 방에 박혀 나오지 않는 그러나 부모가 없을땐 아이를 배려하는, 부모가 있을 때보다 자유로워 보이는', 말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에, 항상 혼자 자신의 일을 삮히는 듯하지만 밤이면 의외의 행동을 저지르기도 한다. 이 소설에서 실종되는 딸 '유지'역시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이다. 친구들의 '짱개' "세컨드'라는 말에 상처를 받고, 겉으로는 바이올린을 잘 켜는 유능한 바이올린 연주가를 꿈꾸지만, 아이에겐 자신의 세계가 있다. '버디 버디'등의 메신저 접속.
여기에 또 다른 등장인물이 '밍'이다. 강옥영의 화교친구이자, 한때는 연인(?). 화교로서 자신의 정체성에 혼돈을 가지고 있는 '진짜 중국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진짜 한국인도 될 수 없다는 의미."(p83)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살아간다. 또한, 항상 앞에 나서지 못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에 담아둔 채로 진심을 숨기면서 살아간다.
'유지'의 실종후에 모든 가족들은 자신과의 관련을 생각하게 한다. 그런데, 이 특이한 가족들은 가족 개개인이 모두 '자신만의 비밀'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가족들은 가족들끼리 서로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몰라도 이렇게 모를수가 있을까 할 정도로 아무것도 모른다. 때론 어설프게 알면서도 모르는 척 살아간다. 강옥영은 남편의 사업에 대해서 '진심으로 알게 되는 순간 직면해야 하는 윤리적 고뇌를 어떻게든 피해 버리고만 싶'(p270)어서 모르는 척 살아간다.
서로를 알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 가족이란 서로를 '너'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이들에겐 '너'라고 부를 수 있는 관계조차 성립되어 있지 않다. 가족이라기에는 너무도 먼 '그대'들인 것이다. 서로 다른 생각, 행동,비밀을 가지고 각각 겉도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왜 그들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아 가고 있는 것일까? " 하는 의구심이 든다.
'유지'의 실종과 관련되어 겉으로는 어느정도 가족들이 서로를 알아 가는 듯하지만 작가는 그렇지 않음을 마지막 혜성의 말을 통해 뱉어낸다.
"나는 소파 뒤에 서서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조용한 세계다. 문득 내가 이들을 영원토록 알 수 없으리라는 예감이 든다. 그곳을 향해 나는 가만히 한 발을 내딛는다. " (p486)
작가 정이현을 이야기할 때에 '달콤한 나의 도시'의 작가로 일컬어진다. 그런데, '너는 모른다'는 작가의 새로운 문학세계의 면모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너는 모른다'의 작가라고 일컬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의 앞부분과 뒷부분의 사체에 대한 이야기나, '유지'의 실종에 얽힌 이야기에 구체적이고 명확한 내용의 글은 없다. 아마도 작가는 독자의 생각에 맡기고 싶었던 것 같다. '화창한 5월 일요일 오전'에 떠오는 사체는 오래전부터 물의 흐름을 따라 흘러다니다가 떠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 사체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 모두가 무심하게 지나친다. 그렇기에 그 사체에 대해서 '우린 모른다.' 바로 이 작품에서 말하고자 한 핵심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조차 나 자신을 잘 모르는데, 관심이 없는 '너'에 대해서 내가 무엇을 알겠는가? 나는 너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그리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닐런지.


존경하는 쉼보르스카 여사는 일찍이 말씀하셨다.'내가 지금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단 두 가지뿐. 그들의 수직 비행에 대해 구구절절 묘사하거나, 아니면 마지막 문장을 보태지 말고 과감히 끝을 맺는 것' 나의 인물들이, 마지막 문장 너머의 그곳에서도 그들의 생을 충실히 살아가기만을 바랄 뿐. (작가의 말중에서)
정말로, 정이현 작가가 진심을 다해서 이 소설을 썼음을 느끼면서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는 말로 마지막 문장을 끝맺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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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글감옥 - 조정래 작가생활 40년 자전에세이
조정래 지음 / 시사IN북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조정래 작가 생활 사십년 저전에세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은 1970년에 등단을 하여 2009년 문학 인생 40년을 맞는 조정래 작가의 문학 인생이 담긴 책이다.
 
조정래 작가는 어떤 수식어 보다도 '대하소설의 작가'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릴 듯하다. 1980년대에 '태백산맥'이 출간될 때마다 한 권, 한 권 읽으면서 느꼈던 감동, 어느날 갑자기 오래전의 제자가 택배로 부쳐온 '한강' 전집을 보면서 가졌던 제자에 대한 고마움, 그이후 앞의 두 소설이 너무 좋아서 작가의 대하소설인 '아리랑'을 읽게 된 기억, 모두 대하소설 속으로 빨려들어 갔던 기억들이 새삼스레이 떠오른다. 작가의 대표작들인 '태백산맥','아리랑','한강'은 우리나라의 근현대사 백년이 연결되는 소설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연속해서 쓰기 위해서 하루 16시간씩, 20년동안 '글감옥'에 갇혀서 먹고, 자고 쓰는 연속적인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이 기간동안에 술은 단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할 정도로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의 원고를 보면 흔히 작가들이 원고지에 쓰고 교정하기를 반복하여 무슨 글자인지 알아 볼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작가의 원고는 오탈자 교정까지 마쳤을 정도로 깨끗한 원고라고 한다. 하루의 집필량까지 표로 만들어서 계획적으로 글쓰기를 했기에 이와같이 세 작품이나 되는 대하소설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그렇기에 작가는 아마도 글감옥이라는 앞에 '황홀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수 있었던 것이리라.

 
 그만큼 자신의 집필과정이 힘든 일이지만 그 어떤 일보다 황홀하게 느껴 졌을 것이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의 원고량만도 5만장이나 되고, 소설의 등장인물은 '태백산맥'이 280여명, '아리랑'이 600여명, '한강'이 400여명이나 된다고 한다. 그런데도 작가는 구성노트가 없는 상태로 집필을 할 정도로 작품에 대한 집중력이 뛰어나다. 물론, 등장인물이 너무도 많으니 거기에 대한 메모 수준의 글을 적어놓은 글들은 있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의 원고량)

(태백산맥의 등장인물에 대해서 정리해 놓은 노트의 모습)
2009년 3월까지 '태백산맥'은 200쇄, 700만부가 판매되었다고 하니 이 숫자만으로도 이 작품이 시사하는 바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어떤 독자는 '태백산맥'을 13번을 읽은 사람도 있을 정도라고 한다. 작가는 도서관에 비치된 자신의 책들이 너덜너덜하다 못해, 어떤 도서관에서는 두꺼운 종이를 덧댄 것을 보고 독자들이 자신의 작품을 사랑해 주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고 한다.  '황홀한 글감옥'은 자전 에세이라고는 하지만 편지글 형식을 빌린 책이다. 대학생을 중심으로 '시사 IN' 인턴 기자 희망자들이 보낸 500여 가지의 글 중에서 작가와 작품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것 84가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주는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이 질문들은 '문학론' '작품론' '인생론'으로 구분되어서 실려 있다. 그렇기때문에 작가 인생 40년 동안의 문학, 자신의 작품, 인생에 대한 작가의 소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이며,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모든 것이 다 풀릴 수 있으며, 작품이해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작가는 '소설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데, 이것은 '인생이 무엇인가?'와 같이 답을 찾기 힘든 질문이지만 나름대로 정리해 본다면 "소설은 인간에 대한 총제적인 탐구다."(p15)라고 정의한다. 또한, "문학은 역사를 포괄한다."(P15) 그렇기때문에 작가의 대하소설을 읽어 보았다면 그 뜻의 의미를 짐작할 것인데, "작가는 역사를 몰라서는 작품을 쓸 수 없지만, 역사가는 문학을 몰라도 역사 연구를 할 수 있다. "(p15)고 한다. "세계적인 명작으로 평가되어 고전으로 남은 작품들의 90퍼센트가 역사를 바탕으로"(p15)한다. (...) "역사를 포괄하지 않고는 대작을 탄생시킬 수 없다."(p15)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작가는 문학 청년시절부터 소설은 연애 소설을 쓰는 것이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런 작품들은 쓰지를 않았다. 이와같은 생각은 요즘에 소설을 좀 쓴다는 사람들조차 출간하여 돈이 될 수 있는 그런 소재와 주제를 가지고 쉽게 글을 쓰고 쉽게 많이 팔리기를 바라는 작가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한 마디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자기의 작품이 시공을 초월하여 영원히 남겨지기를 소망하며 펜을잡아 외로운 고통과 싸워 나간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이 독자들로 부터 꾸준하고도 깊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또한, 글을 쓸 때에 '언어 선택'에 대한 생각도 남다르다. 글의 내용에 가장 알맞는 단어와 문장을 찾기 위해 항상 국어사전을 여러 권 곁에 두고 찾아 가면서 글을 쓴다. 그런 습관이 이 책에서도 나온다. 대학생들의 질문에 적확하지 않은 단어와 문장, 문맥이 나오면 아래에 다시 글을 고쳐 주는 섬세함까지 보여준다. 이런 행동은 작가의 몸에 밴 작품 활동의 습관이기도 하다.
1980년대 초반에 그는 '민족' '역사' '진실' '통일'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이미 작품 시작 전부터 제목까지 정해놓고 작품 구상을 했다고 한다. 그의 작가에 대한 정의는 "작가는 인류의 스승이며, 그 시대의 산소다." (p25)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것은 위대한 작품을 써낸 작가들을 의미하기도 하며, 현역작가들의 사회적 책무와 함께 작가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글이기도 하다. 작가가 '진실'을 쓰는 것, '꼭 써얀 할 것을 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나타내는 거이며,' 좋은 작품, 훌륭한 작품은 전세계적으로 시공을 초월하여 그 영향력을 발휘하는 작품'(p39)이다. 정치권력은 그가 통치하던 시대로 끝나 버리지만, 좋은 작품은 오랜 시간후에도, 작가가 활동하던 지역이 아닌 세계 어떤 곳에서든지 읽히고 기억되는 것이다. '영원한 빛이 된 작품은 그 어떤 정치력이나 경제력도 능가할 수 있는 것'(p39)이다. 그것이 소설의 존재이유이고, 작가가 스스로 글감옥에 갇히는 의지(p39)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으로 작품을 쓰는 작가이니 그의 작품들이 오래도록 독자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 책의 질문자가 작가 지망생이거나 언론에 뜻을 두고 있는 사람들이기에 글을 잘 쓰는 방법이나 문학은 꼭 소질이 필요한지에 대한 질문도 많았다. 거기에 대한 답변은 "많이 읽고 (40%), 많이 생각하고 (40%), 많이 써라 (20%)!"(p48)라는 답을 준다. 소질에 관해서는 에디슨의 말을 인용하여 노력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노력은 문학뿐만 아니라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지침처럼 항상 마음에 두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책이 자전적 에세이듯이 작가의 남달랐던 어릴 적 환경과 문학을 처음 접하게 된 이야기가 나온다. 역시 독서는 어릴적의 습관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준다.
작가가 대하소설을 쓰던 시절이 그렇게 평온했던 때는 아니다. 자칫하면 '반공법' '국가 보안법'에 걸리기 쉬운 시절이었다. 택시를 타고 가다가도 말 한마디 잘못하여 끌려 가던 시절이다. 나도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과연 이런 글을 써도 될까하는 의아심을 가진 부분들이 상당히 있었다. 그만큼 글을 쓴다는 것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이었다. 역시나 작가에게도 그런 어려움이 따라 다녔다. 그렇지만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올바로 알려 주고 싶었던 글들이 있었기에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소신껏 작품 활도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태백산맥' 구성단계의 빨치산 취재과정의 어려움, '아리랑' 구성을 위한 취재를 하기위해 중국행을 하려 할 때의 미수교국이라는 명목과 작품의 성향에 대한 우려등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던 것이다.
'태백산맥'을 비롯한 대하소설들은 반공단체를 비롯한 곳으로부터 고발을 당하기도 하고, 집필기간내에 협박도 받으면서 쓴 글이다. 특히 '태백산맥'은 1994년에 '국가보안법'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을 당해서 2005년 무혐의 판결을 받았다. 만 11년이라는 사법사상 가장 길게 끈 고발사건이다. 무혐의 판결의 배경에는 너무도 많은 독자들이 읽었고, 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기에 처벌를 하지 못한 점도 어느 정도 있다고 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문학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큰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뿐만아니라, 이와같은 대하소설이라는 대작을 쓸 수 밖에 없는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여러 국어사전을 살피면서(물론, 다른 작가들도 단어선택에 신중을 기하지만) 문장에 적확한 언어 선택, 문장 선택 등의 노력과 국어 사랑.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을 가진 작품 활동, 자신의 작품에 고향의 지명이나 자신의 체험을 쓰지 않으려는 생각(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체험을 중심으로 한 두편의 글을 쓰지만 이것은 상상력의 고갈을 가져온다는 생각에서), 연애 소설이나 세상이야기와 같은 달콤하여 많이 팔리는 작품을 쓰지 않는 점 등이 작가만의 특색이다.
나는 이 책을 문학을 하려는 지망생이 읽는다면 좋은 지침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작가의 작품을 구상하는 과정이나 취재 과정, 집필 과정의 모든 것이 쓰여져 있기에 문학도들에게 좋은 책이 될 수 있으며, 조정래 작가의 작품을 한 권이라도 읽어 보았다면 그의 작품 세계와 그의 작품을 읽던 중의 궁금증이 풀리기도 할 수 있기에 작가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작가와 그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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