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성당 (무선) - 개정판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평점 :
<대성당>은 레이먼드 카버(1938~1988)의 12편의 단편이 담긴 단편집이다. 각각의 단편들은 20~30페이지 정도의 아주 짧은 단편이다. 단편은 짧은 이야기이지만 큰 울림을 주는 경우가 많다. <대성당>이 1983년에 출간되자 8주만에 3쇄, 12개 언어의 번역 판권이 팔렸다. 작가는 " 한 번도 자전적인 것을 쓴 적은 없지만, 내 작품은 대부분 나 자신에 대한 것들 입니다." (p.321)
또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 의심의 여지없이 레이먼드 카버는 나의 가장 소중한 스승이었으며, 가장 위대한 문학 동반자였다." (책 뒷커버 글)
우리나라의 번역본은 소설가인 김연수 작가가 번역을 했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로는 <사월의 미, 칠월의 솔>,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 원더보이>,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등을 흥미롭게 읽었기에 더욱 관심이 간 책이다.
<대성당>의 빅3로는 <깃털들>, <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대성당>을 꼽는데, 내 경우에는 <보존>, <칸막이 객실>, <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대성당>이 좋았다.
<보존>은 남편은 해고를 당한 후에 생활 반경은 소파이다. 하루종일 소파에 누워서 TV를 본다. 하는 일은 아내를 위해서 커피 포트에 물을 데워 놓는 일이다. 아내는 친구에게 남편의 이야기를 하는데, 친구는 이런 말을 한다. 친구의 삼촌은 40살에 침대에 들어가서 63살인 현재까지 거기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내는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는 자신의 이야기를 어느 누구에게도 하지를 않는다. 심지어 그 친구에게도 남편 이야기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어느날 직장에서 돌아 오니 냉장고가 고장이 나서 모든 음식 재료가 상할 지경에 이른다.그래서 중고 경매 시장에서 냉장고를 구입하고자 한다. 무기력해진 남편은 중고 경매 시장에 같이 가자는 제안 조차도 들어 주지 않는다.
아내는 중고시장에 대한 어린 날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아빠를 따라서 경매 시장에 가곤 했는데, 부모의 이혼 이후에 따로 살면서 아빠와의 경매 시장 가는 일은 없어졌다. 여러 해가 지난 후에 아버지에게 소식이 왔는데, 경매 시장에서 중고 자동차를 싼 값에 샀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결국에는 이 자동차에서 일산화탄소가 새어 나와서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게 된다.
부모 이혼 후의 아버지와 자식의 이야기는 <칸막이 객실>에서도 등장한다.
<칸막이 객실>은 이혼 후에 헤어져 살던 아들의 소식을 접하게 된다. 마이어스는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 대학에 다니는 아들을 만나기 위해서 기차를 탄다. 이혼 후 8년 만의 만남이다. 아들을 주려고 산 비싼 시계를 기차에서 잃어 버린다. 마음이 상한 아버지는 아들을 만나기로 한 기차역에 도착하지만 내리지를 않고 기차를 계속 타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의 칸막이 객실에 가보니 이번에는 가방이 없어졌다. 그 기차는 아들을 만나기로 한 역에서 다른 이동 열차로 연결을 하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다른 곳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있었다는 것은 마이어스가 과거의 삶과 작별을 의미한다는 해석을 읽을 수 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이 단편집의 이야기 중에 가장 마음이 아픈 이야기이다. 앤은 8살 아들의 생일 케이크를 주문한다. 그런데 생일날, 아들 스코티는 친구랑 학교를 가면서 누가 어떤 생일 선물을 줄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스코티는 자동차 사고가 나는데, 운전자는 스코티의 다리가 움직이는 것을 보고 그냥 지나쳐 간다. 친구는 학교에 가고 스코티는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와서 이상을 느낀 스코티는 병원에 가는데, 혼수상태에 빠지게 된다. 의료진은 괜찬을 것이라고 하는데, 며칠 후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빵집 주인은 앤의 집에 전화를 하여 주문한 케이크를 찾아 가라는 이야기를 하지만 앤의 남편이 전화를 받았가에 장난 전화라고 생각을 한다. 스코티가 죽은 날, 집에 돌아온 앤의 빵집 주인의 전화를 받는데, 처음에는 장난 전화인 줄 알았다가 생일 케이크를 주문한 것이 생각나게 된다. 빵집에 찾아 갈 때는 화가 잔뜩 났지만 서로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풀린다. 퉁명스럽고 의심이 많았던 빵집 주인은 앤 부부에게 갓 구운 빵을 대접하고 그 빵을 먹는 부부는 밤을 지나 아침이 될 때까지 빵을 먹으면서 대화를 나눈다.
<대성당>은 아내와 오래 전에 교류가 있던 맹인이 찾아온다. 아내가 잠이 든 후에 맹인과 남게 된 나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TV에서 대성당이 나오게 되는데, 맹인에게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설명을 듣던 맹인은 나에게 대성당을 그려 줄 것을 이야기하고 나는 맹인과 함께 대성당 그림을 그리게 된다. 함께 그림을 그리면서 전에는 알지 못했던, 이해하려고도 하지 안았던 것들을 알게 된다.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몸의 감각과 내면의 인식을 통해 대성당을 느낄 수 있음을...
12편의 소설에 나오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행복 보다는 불행한 사람들이다. 직장을 잃은 실업자, 이혼을 해서 가족과 떨어져 사는 사람, 술에 취한 사람, 귀가 잘린 사람.
소설 속의 어떤 사건, 어떤 사람, 어떤 상황은 12편의 단편 속에서 다시 등장한다. 가족, 술, 이혼, 실직 등이 단편들에서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는 듯하다. 어떤 단편을 읽다가는 조금 전에 읽었던 어떤 장면이나 인물이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