밉스 가족의 특별한 비밀 - 2009 뉴베리 아너상 수상작 생각하는 책이 좋아 6
인그리드 로 지음, 김옥수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책표지부터 알록달록 예쁘다. 그에 못지않게 '세계가 인정한 최고의 책'(책날개글)이라고 한다. 아동, 청소년 분야 수상을 비롯하여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그리고 뉴베리 아너상을 수상한 책이라고 한다. 이 책을 읽어보면 많은 상을 받게 된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그만큼 흥미롭고, 재미있는 책이다.
이 책은 아동도서로 분류되어 있지만 어른들이 읽어도 무난한 작품이다. 일종의 환상소설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인그리드 로'는 자신에게 숨겨져 있는 초능력을 찾기 위해 의상디자인, 꽃꽂이, 섬유 공예를 배웠으나, 아마 초능력을 발견하지 못했나보다. 그래서 '풍덩이'라는 애칭을 가진 낡지만 사랑스러운 이동주택에서 열세살 딸과 함께 살면서 벽에 글도 쓰고, 천장에 그림도 그리면서 자유롭게 살고 있다고 한다. 많은 아동작가들이 그렇듯이 '인그리드 로'도 자신의 딸을 생각하면서, 딸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은 것을 소설로 만들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 본다.

  소설의 가족들은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초능력은 열세 살이 되는 생일날 나타난다. 미시시피는 '밉스'라는 애칭으로 통하는 열세 살 소녀인데, 자신에게는 어떤 초능력이 나타날까 궁금해 하면서 생일을 기다린다.
가족들의 초능력을 보면, 할아버지는 지진을 일으켜서 땅을 넓힐 수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결혼하자 할아버지가 땅을 넓혀서 집을 꾸며 주었으니까. 할머니는 각종 라디오의 전파를 유리병에 담아 놓는다. 그리고 필요할 때 살짝 유리병을 열면 작은 소리나 음악이, 확 열면 큰 소리나 음악이 들리게 된다. 그런데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왠일인지 뚜렷한 초능력이 없다. 하기야, 엄마와 결혼하기 위해서 포기하지 않았기에 성공했지만....

  큰오빠는 흥분하면 번개를 일으켜서 동네의 전기가 불통이 된다. 작은 오빠는 비바람을 몰고 오는 폭풍을 만들 수 있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진다면 작은 오빠가 화가 난 것이다. 그리고 동생이 또 둘이나 있다.
밉스는 자신의 생일에 일어날 초능력에 큰 기대를 하고 있는데, 생일 이틀전에 아버지가 고속도로에서 큰 사고를 내고 식물인간이 되어 설리나 희망 병원에 누워 계시다. 아버지를 구해야 한다. 밉스의 초능력으로.....
엄마대신 목사 사모님이 교회에서 생일 파티를 열어 주던 날, 밉스는 분홍색 낡은 성서 판매 차에 숨어서 아버지의 병원을 향하여 가려고 한다. 우연히 오빠와 동생, 목사님 자녀들까지 타고서....병원까지는 160여 Km. 그런데, 분홍색 낡은 버스는 반대방향으로 간다. 최고속력 87Km 이상을 낼 수 없는 이 버스를 타고 아버지가 계신 병원으로 가는 여행이자 모험은 시작된다.
밉스는 열세 살이 지났으니까 어떤 초능력이 나타날까? 그 초능력이 아버지를 구할 수 있을까?


분홍 버스에 탄 밉스는 짧지만 험난한 아버지에게 가는 여행을 통해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자신이 알고 있던 친구의 모습과 그 속 마음을. 그리고 윌 주니어의 우정과 사랑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세상은 밉스가 생각하던 것처럼 단순하지가 않고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으며 그들의 겉모습과는 다른 속마음도 읽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초능력에 대해서도... 초능력은 잘 다스려면 특별한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밉스는 짧은 이틀동안의 생활을 통해서 세상의 기쁨과 슬픔을 모두 체험하게 되고 그 속에서 세상을 희망의 눈으로 바라보는 마음을 깨우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간절한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한다면 희망은 보이게 된다는 깨닫게 된다.
처음부터 좌충우돌 부딪히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그것이 이야기의 재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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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 - 폴란드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타데우쉬 보로프스키 외 지음, 정병권.최성은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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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비'에서 '세계문학' 전 9권이 나왔다. 19~20C 초에 이르는 세계 근현대 문학 100년을 대표하는 작품들은 9개 어권으로 나누어서 편집을 하였다. 그 중에 폴란드 문학의 걸작들을 묶은 것이  폴란드편인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이다.



내가 2000년 여름에 동유럽의 몇 나라를 여행하던 중에 들렀던 나라가 폴란드였다. 그때만해도 사회주의 국가가 붕괴된지 얼마 안되어서 약간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그것보다 더 강하게 아직까지도 머리속에 남아 있는 것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모습이었다. (밑에서 다시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리고 '소금광산' 관광중에 아이를 업고 온 한국 여인과 동행을 하게 되었었는데, 그당시 폴란드의 그단스크에는 '대우조선'이 있었는데, 남편이 거기에 근무하고 초등학생의 자녀도 있었다. 동유럽 국가중에 낙후한 편인데도 그녀의 아이들은 한국의 학교보다 폴란드의 교육시스템에 더 잘 적응하고 자녀들은 한국에 가기를 희망하지 않는다고 했다. 폴란드가 교육적인 면에서 우리보다 많이 앞서가고 있음은 노벨상으로도 입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폴란드를 대표하는 인물로 쇼팽, 코페르니쿠스, 퀴리부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그리고 노벨 문학상 수상자도 4명이나 배출했다.
또한, 폴란드는 유럽에서는 낙후된 지역이기는 했지만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인 러시아, 독일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 18세기 후반부터 1차 대전끝날 때까지 120여년간 외세의 지배를 받았다. 이번 민족의 수난기에 '폴란드 문학'이 발달하기도 했고, 2차 대전의에 있어서 독일이 가해자라면, 유태인들은 피해자였고,학살의 장소가 되었던 곳의 대표적인 곳이 폴란드였기에 폴란드인은 학살의 증인이자 말없는 목격자들이었다. 그것이 전후에 '수용소 문학'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폴란드 문학은 풍부한 상상력과 세계사적 경험을 자양분으로 독창적 문학 세계를 창조했으며, 세계 문학에서의 자리를 분명히 했다. (P4)
이 책은 폴란드 작가 6명의 작품 10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들의 키워드는 '눈물과 감동'이다. 또한 작품의 수록이 연대순에 따라 실려 있기때문에 폴란드 문학의 변해가는 흐름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책의 구성은 한 작가의 작품마다 '작가 소개'- '간단한 작품 소개'- '작품 수록'- '더 읽을 거리'의 순으로 배열하여 작품 이해를 더욱 쉽게 도와주고 있다.

 
 
* 헨릭 시엔키에비츠 (1846~1916)
문학을 통해서 민족의식을 고취시켜서 폴란드 문학의 존재를 세계에 알린 작가로 폴란드가 러시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3국에 분할 점령 통치되던 시기에 조국의 영광스러운 과거를 되새기는 역사소설을 집필해서 애국심과 독립의지를 일깨웠던 작가이다. 이처럼 작가의 탁월한 필치는 총, 칼보다도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905년 노벨 문학상 수상, 그의 작품중에 독자들에게 낯익은 것은 네로황제 시대의 이야기를 담아서 40여개 언어로 번역되기도 한 세기적인 베스트 셀러인 '쿠오바디스'가 있다. 또한 헤밍웨이가 존경한 작가이기도 하다.
(1) 등대지기: 폴란드인인 스카빈스키는 일흔살이 넘은 노인인데, 세계 4대륙의 갖가지 전쟁에 참전했을 정도로 인생의 굴곡이 심한 사람이다. 남은 인생의 안식처로 생각하고 꿈결과도 같은 행복과 편안한 삶에 만족을 한다. '그 동안 노인의 인생은 비바람에 돛대가 부러지고 밧줄이 끊어진 배와 같았다. '(P16) 구구절절 표현할 수 업슨 수많은 모험들을 겪은 그의 생은 불운의 연속이었다. 그 많은 좌절을 겪으면서도 항상 자신감이 넘치고 모든 일이 잘 되리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이 그의 삶을 지탱해 주는 버팀목이었기 때문이다. 노인은 인생의 흐름을 따라 흘러 흘러 파나마에서 멀지 않은 애스핀월이라는 항구의 등대지기가 된다. 밤에 등대에 불을 밝히는 것이 임무이다. 하루라도 불이 안 켜지면 해고이다. 노인은 이곳에서 인생의 마지막을 보낼 생각으로 꿈결과도 같은 행복과 편안한 삶에 안주한다. 어느날 배달된 소포인 한 권의 책, 폴란드책, 노인이 자신의 고향인 '폴란드 이민자 협회'에 월급의 절반을 기부했는데, 그곳에서 보낸 책이다. 등대에 살고 있는 자신의 깊은 고독속에 던져진 한 권의 폴란드 책, 노인에게는 너무도 소중하고 특별한 책이다. 폴란드에서 가장 존경받는 위대한 시인의 시집이다.그동안 세계 각국을 떠돌면서 살았기에 모국어를 듣지 못한 것이 얼마나 오래되었던가? 목이 메고 눈물이 흐른다. 옛 폴라드의 모습을 그리며 그 감동에 젖어 결국 그날 저녁에 등대의 불을 밝히지 못했다. 그래서 노인은 새로운 방랑의 길을 떠나야만한다. 그러나 그의 눈은 햇살처럼 빛나고 품 안에는 새로운 인생길의 동반자가 될 책 한 권이 소중하게 간직되어 있었다.
역시, 단편이 주는 짧은 글 속의 감동이 더욱 빛나는 것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다운 글 솜씨가 돋보인다.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썼다고 한다. 뜨거운 조국애와 모국어에 대한 사랑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폴란드 국정 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한 작품이며 폴란드인이 가장 사랑하는 단편소설이라고 한다. 헤밍웨이가 시엔키에 비치를 존경하였다고 했는데, 헤임웨이의 '노인과 바다'에도 영향을 준 작품이라고 한다. 문체가 아주 평범하면서도 서정적인데 작품이 주는 감동은 그 이상이다.
* 볼레스와프 프루스 (1847~1912)
'폴란드의 발자끄'라고 불린다. 독창적인 문학 세계를 가진 작가이며 톨스토이에 비교되는 서사적 스타일과 체호프에 견 줄 수 있는 소박한 유머를 겸비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소설을 통해서 다양한 계층의 생활상을 파헤치고 사회 모순과 부조리를 비판한다. 그의 소설을 '19세기의 파노라마'라고 부른다.
(2) 파문은 돌아온다.
산업혁명이후의 맨체스터에 견줄만한 공업도시로 발달한 곳이 '우츠'이다. 이곳에는 방적공장이 들어서면서 폴란드인, 러시아인, 유태인, 독일인 등 다양한 인종이 모이게 된다. 이곳은 '약속의 땅'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아들러 고틀리프는 처음에는 공장 노동자면서 그저 그렇게 향락적으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가 일하던 공장에 불이 나고 5층에 갇힌 노동자를 구해주면 3백 탈러를 주겠다는 사장의 말에 자신의 기지를 발휘하여 불길 속에서 사람들을 구하고 돈을 거머쥐면서 인생의 반전이 시작된다. 돈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는 고리대금업자, 구두쇠, 간교한 술책등을 동원하여 돈을 모아 직물공장을 세운다.그의 영혼은 '돈'과 '일'... 그에게는 어릴때 엄마를 잃은 아들 페르디난트가 있다. 그가 유럽을 돌아다니며 향락에 젖어 날린 돈은 고스란히 600여명의 공장 노동자들의 임금 삭감으로 이어지고 긴축 재정으로 복구된다. 아들이 날린 돈이면 공장에 학교와 시설들을 지을 수 있지만, 학교도 없어서 노동자들의 아이들은 외딴 공장지대에서 격리되어 허송세월을 보낸다. 황금만능주의에 물든 아들레르 고틀리프와 그 아들의 노동자에 대한 만행, 그리고 근대화의 발달 뒤에 숨겨진 어두운 노동자들의 현실이 그대로 비쳐진다. 이런 상황속에서 몇 개월째 시간외 작업이 이어지고 과다한 업무에 기술자 고스와프스키가 과로로 기계톱니바퀴에 팔꿈치가 으스러져서 피를 흘리지만 이미 의사와 간호사가 해고되어서 치료를 할 수가 없다. 밤길에 술에 취해 마차를 몰고 들어오는 아들에게 의사를 부르기 위해 말을 빌리려고 하지만 말이 피곤하다고 거절한다. 결국에 기술자는 싸늘한 시체가 되고,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다. 이에 마음이 상한 아들은 검사 자포라에게 결투를 신청하고 결과는...
고틀리프의 꿈을 실현하면서 살아가던 아들이 없는 공장이란, 과연 그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었을 것이다. 면화값이 폭등할 것을 대비하여 산더미처럼 쌓아 놓았던 공장이 활활 타오른다. 활활 타오르는 불을 바라보는 노동자들의 마음은....
공장의 주인의 부당함에도 자신의 이익만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노동자들. 어떤 조건을 내세우다가 해고당하면 그 자리를 메울 사람이 줄을 서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자신의 안락일지도 모른다. 목사가 친구인 고틀리프에게 이야기했듯이 '파문은 파문을 몰고 온다. 일으키면 일으킬 수록 더욱 커지는 파문을....
"저 파문이 얼마나 크게 번져가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멀리까지 흘러가는지도 보이나?" (...) " 언제나 어디서나 늘 당연히 일어나는 파장일세, 연못에서도, 그리고 우리 인생에서도,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세상을 향해 던져지고 나면, 그 주변에는 점점 더 커다란 파문이 생겨나고, 점점 더 멀리 퍼져 나가게 마련이네..." (p110)
'유능한 사업가이자, 생존을 위해 지칠 줄 모르고 싸웠던 인물, 수십 년 동안 돈을 모아 백만장자의 꿈을 이룬 아들러는 자신의 의지로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파문은 되돌아 왔다.'
(p150)
이 곳에 모인 다양한 인종들의 관계, 감정적 대립, 차별, 그리고 때론, 이해와 공감, 이런 것들도 이 작품을 읽으면서 격변했던 현대사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으로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3) 모직조끼
폴란드의 주택구조상 자신의 집 창문을 통해서 볼 수 있었던 앞 집의 젊은 부부의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폐병에 걸려 하루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지는 남편에게 모직 조끼가 너무 커 보이자,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병세가 악화되어서 마르는 것을 숨기기 위해서 모직조끼를 줄여 나간다. 남편의 죽음후에 아내가 고물상에 판 모직조끼를 화자가 사서 수집품으로 가지게 되는데, 그 모직조끼의 버클과 허리끈에는 두 사람이 손을 댄 흔적이 남아 있다. 남편은 아내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매일같이 버클을 잡아 당겨서 끈을 조였고, 아내는 남편을 안심시키기 위해 매일 밤, 남편이 잠든 사이에 몰래 끈의 길이를 줄였던 것이다. 문헤가 사실주의적이고 젊은 부부가 나누는 대화가 자연스러우면서도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사실이 이 작품을 더욱 애틋하게 만든다. 특히, 화자가 창문을 통해서 부부의 모습을 지켜본다는 설정이나, 나중에 아내가 그 집을 떠나면서 고물상에게 판 낡고 해진 모직조끼를 화자는 자신의 수집품들과 함께 오래도록 보관하고 있었던 것이다.
* 마리아 코노프니초카 ( 1842~1910)
폴란드 대표적인 여성시인이자 동화작가, 단편소설가이다. 어린이 학대반대 시위등을 주도했으며, 사회의 모순과 고통받는 소외계층에 대한 무관심을 질타하면서 사회개혁에 앞장서는 작품들을 남겼다. 여덟명의 아이의 어머니이기도 하여 어린이의 사회적 위상 정립에도 나섰다. '우리들의 조랑말'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들려주기 위한 이야기였다 한다.
(4) 우리들의 조랑말
너무도 척박하고 가난한 생활에 익숙해진 아이들에게는 가난이나 불행의 심각성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 슬프고 마음이 에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어린이가 화자이다. 그렇기때문에 어린이의 눈으로 바라본 가난의 모습, 병든 어머니와 가족의 이야기인 것이다. 순진한 3형제의 눈으로 바라본 19세기말의 폴란드 빈민층의 생활상이 그대로 나타난다. 가난이 익숙해져서 그 고통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한다. 어머니가 오랜 병으로 누워 있는 집안, 아버지는 조랑말을 가지고 강가에서 흙을 퍼내서 생계를 유지한다. 추운 겨울이라 일감도 없다. 엄마의 약값과 끼니를 위해서 집안에 있는 물건들은 하나, 둘씩 고물상에게 팔려간다. 침대, 이불, 베게를 판다. 그래도 아이들의 건초더미의 잠자리가 신나기만 하다, 의자가 팔려 나가는 날에는 고물상에 의자를 운반하면서 신나서 앞에 의자를 메고 음악대처럼 행진도 한다, 엄마가 아끼던 법랑 남비, 다리미, 의복이 그 집의 사정을 알기에 헐값에 고물상은 거래를 하고, 이어서 또 팔려 나간다. 그래서 얻어지는 것은 끼니로 감자 몇 알.... 어느날 아버지는 아코디언 연주를 하면서 추억을 상기하고 눈물을 흘린다. '머릿속에서 슬프기도 하고 경쾌하기도 한 아코디언의 멜로디가 끊임없이 맴돌았다. ' (p198) 그날밤에 아버지의 손에는 약봉지가 들려져 있다. 이젠 모두 팔아서 집안이 텅비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열악한 환경속에서 그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놀이로 조랑말을 데리고 놀곤한다. 늙은 조랑말, 한 눈이 장님인, 관절염을 앓고 있는 비쩍 마른 조랑말, 조랑말의 먹이가 되는 귀리값이 비싸서 조랑말도 헐값에 팔린다. 어느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관을 싣기 위해서 조랑말이 당도한다. 아이들의 친구였던, 놀이였던 조랑말, 아이들의 어머니의 죽음의 의미도 모르는채 묘지까지 조랑말을 앞세우고 신나게 걷는다. 위풍당당하게... 묘지에서도, 돌아오는 길에서도 조랑말을 만나게 된 것이 기쁘기만해서 조랑말의 양옆에서 함께 행진을 한다. 너무나 천진스러워서 더 슬픈 이야기, 이것이 19세기의 폴란드의 실상일 정도로 가난에 익숙해져 살아온 민족들이다.
* 야로스와프 이바시키에비츠 (1894~1980)
우크라이나 출생, 1918년 바르샤바 이주, 양차 전쟁중에 외교관, '폴란드 현대문학의 산 증인'으로 격변하는 현대사의 흐름을 묵묵히 견디며 폴란드 문학 발전에 기여, 문학 뿐아니라 음악에도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음악가들과도 우정을 나눔.
(5) 빌코의 아가씨들
1,2차 대전이 끝난 후에 친구 유렉의 죽음으로 인한 심적 갈등으로 3주간의 휴가를 젊은 시절 한때를 지냈던 '빌코'를 찾게 된다. 빌코를 떠난 후의 자신의 인생이 꼬이고 달라지게 된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빌코는 저택이 따린 농장이었는데, 그곳의 학생들에게 라틴어를 가르쳐 주었었다. 15년 전, 젊은 날 빌코에서 겪었던 소박하지만 아름다웠던 추억들, 그것은 그곳에 예쁜고 아름다운 여섯 명의 자신의 학생이기도 했던 아가씨들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곳에는 미처 의식하지 못한 젊은 날의 에로티시즘이 녹아 있었던 것이다.' (p250)그런데, 빌코의 아가씨들은 이미 결혼하기도 했고, 이혼을 하기도 했고, 아이 엄마가 되어 있었다. 막내만은 아직도 20대 초반이지만, 그들과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서 그는 잊고 지냈던 15년이란 세월이었지만 빌코의 아가씨들은 그에 관한 이야기를 그동안에도 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자기가 그녀들에게 중요한 역할, 큰 의미를 가진 존재였음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가 그곳에 머무는 동안에도 자신의 의미가 그녀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갈 수도 있음을 알게 된다. '구체적으로 손에 잡힐 듯하던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져 부서졌고, 깊은 안개 속에 묻혀 버린 것이다. '(p304)
추억속의 여인들에게서 세월이 남겨놓은 세속적 일상의 편린을 발견한 그는 다시는 빌코를 찾지 않겠다고 한다. 그에게는 빌코을 찾기 전에는 스토크로치 농장의 일이 단조롭고 힘들었지만 그 무엇보다도 현재의 삶이 무엇보다 가치있고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빌코에서의 과거와 연결된 새로운 인연을 맺지 않은 채로 일터로 돌아간다. 1979년에 폴란드 인기 영화감독에 의해서 영화로 제작되어서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야로스와프 이바시키에비츠'의 작품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으며, 작중 인물들의 심리적 변화와 그에 따른 묘사가 잘 이루어 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섬세한 문체가 돋보인다. 
(6) 자작나무 숲 
형(볼레스와프)와 동생(스타시)의 심리적 갈등과 애증의 묘사 뿐만아니라 장면, 배경 묘사까지 섬세하고 예술성이 짙은 작품이다.
형은 아내의 죽음이후에 딸과 같이 산림청 관사에 산다. 자작나무 숲에는 아내의 무덤이 있다. 그곳을 찾으면서 조용히 살아가는 형에게 어느날 폐병으로 요양소에 2년간이나 있던 동생이 찾아 온다. 동생 스타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상실'을 경험해 본 적도 없고, 깊은 사랑을 해 본 적도 없다. 형 볼레스와프는 '동생의 방문으로 지난 한 해 동안 맛보지 못한 현실감을 되찾게 된다. '동생이 결별하고 온 세계는 소름끼치는 곳이었고, 동생의 방문은 화성인의 방문이었다.'(p328) 형은 세상과 단절되어서 자작나무 숲에 묻혀 그동안 살아 온 것이다. 기쁜 일도 없고 모든 일이 시큰둥한... 동생의 방문조차 싫고 언짢은... 형과 동생 사이는 언제나 냉냉하다.  동생은 폐병말기로 잠시 호전중이다. 호전이 끝나면... 자작나무숲에 묻히기를 희망한다. 형에게 동생은 죽음을 앞둔 폐결핵 환자가 홍조를 띠고 나타났다. 절망적 상태에서 이곳에 온 것이다. 동생은 '진짜 세상'이라고 느꼈던 그 모든 것이 이미 완전히 작별한 상태이고 그래서 기분이 좋은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형은 이해하지를 못한다. 스타시를 삶과 연결시켜주는 것은 피아노이다. 피아노를 치면서 자신의 생을 되짚어 보고 마감하려는 것이다. 형은 언제나 침울하고 우울하다. 동생은 그곳에 있는 말리나와의 사랑으로 아름다운 종말을 맞고자 한다. 잃어버린 생의 마지막 여정을 통해서 죽음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머무는 것임을 느끼게 해 준다. 작가는 탐미적이고 감각적인 문체로 인생의 무상함과 덧없음을 자작나무숲이 우거진 한 폭의 수채화처럼 서정적이면서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작가가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기에 언어 자체가 가지는 멜로디와 음악성을 가지고 소리와 빛깔, 색채를 접목시켜서 공감각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인생의 마지막 이야기가 아름다운 영혼의 울림처럼 들릴 수 있게 그려내고 있다. 문장을 읽어보지 않고는 그 느낌을 글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글의 묘사가 아름다운 예술성이 짙은 작품이다.
* 타데우쉬 보르프스키 (1922~1951)
우크라이나 태생, 유태계 폴란드인, 정치적 격변기에 극한 체험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하는 독특한 작품들로 주목을 받았다. 공산화과정에서 부모님과의 이산과 재회의 경험, 나치시절에 문학활동의 작품이 문제가 되어서 아우슈비츠 수용소 수감, 전쟁후 자유를 찾으나 1951년 7월 1일 갑작스레 가스 자살, 그의 자살은 아우슈비츠의 잔혹한 현실에서 살아 남은 사람이 갖게 된 잔혹함의 실상을 극복하지 못하여 선택한 현실 부적응에서 온 죽음이라고 생각된다. 러시아의 세르게이 예세닌과 미국의 여류 시인 실비아 플래스의 자살과 더불어 현대 문단에 큰 충격을 준 작품이다.
(7)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
앞에서 잠깐 언급했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갔던 것은 7월의 마지막 주였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정문의 철문위에는 '일하면  자유로워진다'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글자의 B자가 거꾸로 쓰여져 있다. 일부러 그렇게 써 놓았단다. 그리고 여러개의 붉은 색 건물이 있다. 수용소 건물이다. 건물의 일부는 박물관이다. 수용소에 온 사람들이 어디로 부터 끌려 왔는지  분포도에서 부터 전쟁후에 찍은 수용소의 비참한 실상과 사람들 모습까지... 말라 비틀어진 사람들, 죄수복에 빡빡 깎은 머리, 그리고 수용소에 올 때 가지고 온 물건이 가방, 트렁크, 안경, 목발(장애인들이 많았다), 사람머리카락,인모로 짠 카펫, 가발 그리고 가스탄 껍데기까지....
정말 그 참혹한 심정은 말로는 다 할 수 없다. 어떻게 20세기에 문명이 발달하고 철학과 사상이 발달했던 그 시대에 이런 발상이 어떻게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쭉 이어지면서 수용소 시설까지 볼 수 있다. 그리고 가스실도... 정말 10여 년이 지났지만 그때의 기억은 악몽 그 자체이다. 가스실에서는 마음이 편치 않아서 그러지 음산하고 매케한 기운이 그대로 다가왔다. 밖으로 나와 교수대, 총살을 시키던 곳, 고압 전류가 흐르는 철책 등..... 그리고, 한 구석에 추모의 벽(통곡의 벽)이 있었다. 아주 초라하다. 자그마한 벽면이 있고, 그 아래에 몇 송이 꽃들이(유럽 사람들은 꽃다발이 아닌 한 두송이 꽃을 놓는다), 그리고 불이 켜진 촛불이 여러개....  그날, 나는 두통에 시달렸고, 폴란드를 떠날 때까지 식욕을 잃었다. 그곳은 다시 가 보고 싶지 않은 곳이다. 인간의 잔인함이 어디까지 이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곳이다.
바로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가 아우슈비츠의 이야기이다. 작가는 자신이 체험하기도 했던 아우슈비츠의 잔혹한 현실을 극도의 리얼리즘적 기법으로 묘사한다. 사실적이고 냉소적인 시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죽음의 장소로 향하는 사람들에 대한 잔인한 메시지를 '신사 숙녀 여러분, 가스실로' 라고 표현하므로써 예의를 갖춘 정중한 문장으로 표현을 했지만, 이것이 얼마나 역설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자아내는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와같은 '수용소 문학'은 피로 물들었던 잔인한 현장에서 이루어진 성과라는 의미에서 긍정적인 시각과 부정적인 시각으로 나누어져서 평가된다. 폴란드인은 이 장소에서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인간의 만행을 묵묵히 목격한 산 증인들이기에 그들에게 '수용소 문학'의 의미가 어떤 의미일지도 석연치 않을 수가 있다. 
 수용소에 열차가 들어온다. 빽빽하게 짐짝처럼 챙겨져 타고 온 사람들이 도착 즉시, 물과 공기를 그리워한다. 그것도 잠깐 독일 장교의 지시에 따라 일렬도 내려서 자신의 모든 소유물을 한곳에 모아 둔다. 수송 열차의 온갖 것들. 짐, 가방, 트렁크, 보따리, 상자, 궤짝 온갖 종류의 꾸러미는 그들의 과거였고, 이제 곧 그들의 미래가 될 모든 것들 (P428) 이다. 그리고 트럭에 탈 사람과 걸어갈 사람이 정해진다. 트럭에 탄 사람들은 가스실로 직행한다. '죽게 될 사람들을 마지막 순간까지 속이는 것, 그것이 수용소의 미덕이자 이곳에서 허용되는 유일한 자비인 것이다.' (P428)
그들이 가져온 물건들은 의류는 군수공장등의 수용소 노동자들에게 배급되고, 음식은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의 일용할 양식이 되는 것이다. 보석이나 금, 돈 등은 독일의 국립은행으로 직행된다. 가스실에서 죽은 후에도 그들의 몸속의 보석을 찾기 위해서 혀밑, 자궁, 결장까지 세밀히 조사한다. 이들이 떠난 후에 기차속에는 죽은 아기시체부터, 신체의 일부가 절단된 사람까지.... 비록 살았어도 그대로 소각장으로 간다. 아우슈비츠에는 앞으로 열여섯개의 소각장이 만들어 질 예정이고 각각 매일 오만명이 연기가 되어 사라진다. 어림잡아 450만명이 그렇게 사라졌다.
그런데, 인간의 내면의 잔인한 본성은 수용소안의 사람들에게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이곳의 사람들에게는 수용소 열차가 와야 먹을 음식이 생긴다. 이곳에 실려 오는 사람들이 바닥이 날까봐 불만을 터트린다. '잡혀 오는 사람이 없으면 우리는 모두 여기서 굶어 죽는다. 바닥날거라고? 안돼, 그럴리 없어.(...) 죽게 될 텐테... 여기 있는 우리는 다들 그들이 가져 오는 것을 먹고 살잖아.'(P419)
그리고, 그들이 가져온 잼이며, 빵을 맛있게 먹는다.
같은 희생자들끼리도 살아 남기 위한 약육강식의 현장, 선과 악의 구별이 무의미해진 곳, 생존을 위해 인간이기를 포기해야 했던 그곳, 아우슈비츠의 실상이 리얼하게 너무도 담담하게 그려져서 더욱 무섭고  잔인한 이야기이다.
* 마렉 흐와스코 (1934~1969)
1950,1960년대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던 작가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 폴란드 자유화 바람과 함께 첫 소설집을 발표, '구름속의 첫 걸음'을 비롯한 12편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35세에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죽었으나 사망인지 자살인지는 모른다. 이책에 실린 3편의 단편은 에세이 한 꼭지 분량의 아주 짧은 글들이다.
(8) 구름속의 첫걸음
전후 폴란드 문학에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경직된 틀을 탈피하여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젊은 세대의 욕구를 대변하는 작품. 세 주인공은 모두 기존의 가치를 철저하게 거부하는 소외계층이며, 현실 부적응자이다. 목적없이 도시 주변을 거닐다가 젊은 아이들을 향해서 이유없는 야유를 보낸다. 뒤틀린 인생의 모습이 그대로 표출된다. 그것은 타인에게 향한 욕설과 저주가 아닌 자신들의 모습에 대해 퍼붓는 말들일 것이다. 1956년 폴란드의 쓸쓸하고 암울한 사회상을 그대로 반영한 작품이다.
(9) 창
폴란드 주택이 5층의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물구조이기에 자신의 창을 통해서 타인의 생활을 엿보는 경우의 작품내용들이 많다. 이 작품도 그런 작품인데, 자신의 창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집안을 엿보듯이 어린 소년이 화자인 나의 생활을 엿본다. 그런데, 어느정도 엿보다가 그만둔다. 무료한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한 행동이었지만 결국에는 나와 별로 다르지 않은 일상이기에 그럴 것이다.단절된 인간관계안에서 소외된 자신의 모습을 '창'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바라보는 것이다.
"어디나 다 똑같아." (...) "정말로 좀 다른 곳은 없나요?" 아이가 물었다. "없어" 내가 대답했다. "여기 말고 아주 먼데는 어때요? 거기도 마찬가진가요?" "그럼... 어딜가나 다 비슷비슷한 방들뿐이란다. 온 세상이 다 똑같지, 세상이란, 이런 방이 아주 많이 있는 곳을 뜻하는 거야." "나중에 내 눈으로 봐야지" (...) 그 뒤로 아이는 다시 내 눈에 띄지 않았다. (P464~465)
(10) 노동자
이십대의 젊은 기술자인 세 사람이 바르샤바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외딴 곳에서 철교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한다. 무료하고 외로운 생활이 일 년 이상 지속되자 그 일이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마침내 철교가 완성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게 되자 그렇게 외롭고 고독했던 그 생활과 그렇게 혐오스럽던 철교에 대한 마음에 애착이 가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우리도 일탈의 욕구를 느꼈던 경험이 있다면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이야기를 노동자들의 눈과 입을 빌려서 표현한 것이다.
'우리는 다리 놓는 일을 계속했다. 우리는 노동이 인민의 의무요, 인생에서 얼마나 훌륭한 보람인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하고 있는 이 일에는 콧노래 소리는 고사하고, 아무런 의욕도, 보람도 없었다. 그저 증오와 절망뿐이었고, 거머리처럼 우리들의 심장과 영혼을 빨아 들이는 이 평원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고 싶은 바람뿐이었다.(P471)
우리는 울었다. 모두가 울었다. (..) 뚜렷한 이유도, 영문도 모른 채 눈물을 흘렀다. 그 눈물의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기에는 그 때 우리는 너무 어렸고, 아직 경험이 부족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알게 되었다. 때로 우리는 평범한 일상의 흐름으로 부터 우리를 떨어져 나오게 만드는 사람들이나 사건들, 사물들에게 알 수 없는 무한한 애정을 느낀다는 사실을 말이다. (P474)
문학을 비롯한 예술 분야는 평화로울 때보다 고통스럽고 힘든 역사속에서 더 빛나기도 한다. 폴란드는 강대한 국가들의 틈바구니속에서 분할과 점령 등을 거치면서 그리고 세계대전의 처참한 현장에 놓임으로써 많은 시련을 맛보게 되는데, 이때에 '폴란드 문학'이 발달하였기 때문에 폴란드 문학을 민족의 수난기에 발달했다고도 한다. 이 책에 수록된 10작품들은 모두 '눈물과 감동'을 주는 작품들이다. 구태여 몇 작품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등대지기'와 '우리들의 조랑말' 그리고 '자작나무숲'을 들고 싶다. '등대지기'의 노인의 가슴속 깊이 간직한 폴란드 시집이 내내 마음속에 잔잔하게 감동을 준다.
시대순으로 편집을 하였기에 읽으면서 폴란드 문학의 시대적 변천도 눈여겨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명작에서 흐르는 그윽한 향기를 맡을 수 있을 정도로 문체들이 탐미적이고 감각적이고 섬세한 작품들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때론 너무 담담해서 더 슬프고 아름답기도 한 작품들도 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한 번쯤 폴란드 문학을 느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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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일의 겨울 사거리의 거북이 10
자비에 로랑 쁘띠 지음, 김동찬 옮김 / 청어람주니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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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하면 가까운 듯하면서도 먼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좀처럼 많은 사람들이 가 보지도 않았고, 문명이 발달하지도 않은 추운 느낌의 지역이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게르', '양' '초원' 이 정도의 상식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데, '153일의 겨울'은 이 지역을 배경으로 한 감동깊은 소설이다.



이 책의 저자는 프랑스 파리 출신의 '자비에 로랑 쁘띠'이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미지의 세계,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삶을 상상했단다. 우리가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우리와 멀리 떨어져 거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즐겨 만들어 내곤 했는데, 그것은 독서란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 역시 우리들이 상상으로 만 꿈꾸었던 곳의 이야기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이콰투루우'에 살고 있는 갈샨은 엄마 다알라가 몇 번의 유산끝에 임신한 아이를 무사히 출산할 수 있도록 수천 킬로 떨어진 할아버지가 계신 '차궁'으로 떠나게 된다. '이콰투루우'가 아파트도 있고, 개발이 한창인 곳이라면 '차궁'은 넓은 초원위에 게르만이 우뚝 솟아 있는 오지인 것이다. 그곳에는 20여개의 게르가 있었지만, 지금은 할아버지인 바이타르의 게르만이 있는 곳이다. 문명의 발달에 눈을 돌리지 않고, 넓은 광야에서 양떼를 키우면서 검독수리를 길들이면서 고집스럽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고독한 늙은이이다. 갈샨은 그동안 할아버지를 몇 번 보지도 않았으며, '차궁'에 가서 153일동안 살아야 한다는 것이 못내 마땅치 않아서 안가겠다고 발버둥을 치지만 허사이다. 갈샨은 바이타르에 대해 '나는 당신이 싫어 미친 늙은이 같으니라고!'(p35) 라고 거침없이 외칠 정도로 정이 안 가는 할아버지이다.
언덕위에서 보이는 것은 풀, 바위, 하늘뿐, 반대편은 절벽에 가까운 위험한 너설언덕...  할아버지 바이타르는 손녀 갈샨에게 말을 타게 하는데, 아흐레만에 할아버지를 이길 수 있는 실력이 된다. 할아버지가 길들이는 검독수리. 바이타르는 손녀의 검독수리 길들이는 능력을 인정해서 새로운 검독수리를 구해주고 길들이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 이름은 '쿠다야(하늘)어르신'
'갈샨은 검독수리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창공 높이 떠 계곡과 산을 내려다 보고, 숲과 계곡 깊숙한 곳에서 일어나는 아주 작은 움직임까지 살핀다. 엄마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침대에 누워 배에 손을 얹고 태동을 느끼거나, 책을 읽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p63~64) 할아버지로부터 검독수리 길들이기를 배우기 시작하던 날 갈샨은 처음으로 할아버지를 '아타스(할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리고 저녁에는 할아버지에게 '노인과 바다'를 읽어 드린다.
이렇게 할아버지와 손녀는 양떼를 몰고, 검독수리를 길들여 가면서 새로운 삶의 모습을 배워 나간다. 학교 공부보다 더 값진 삶의 지혜를 자연을 통해서, 검독수리를 통해서 배우게 된다.

 
할아버지는 넓은 광야에서 일어나는 모든 기후변화까지도 예측할 수 있을 정도의 혜안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 불어닫친 눈폭풍속에서 할아버지는 손녀를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양떼들과 말을 지키기 위해서 사투를 벌인다.
눈폭풍에, 그리고 먹이에 굷주린 늑대의 습격으로 부터 양떼를 지키기 위한 할아버지가 위기에 봉착하고, 손녀는 할아버지를 지키기위해 갖은 고생을 다한다.
'엉덩이를 땅에 붙이면 죽는 땅, 두 발로 서 있는 사람만이 살아 남는, 가혹한 땅'
153일의 추운 겨울날, 굶주림과 추위를 이겨내면서 할아버지를 지키는, 그리고 손녀를 지키는 감동적인 이야기는 계속 전개된다.
이 와중에 검독수리는 꿩 사냥을 하여 갈샨의 발밑에 먹이감을 떨어뜨려주는 행동까지 한다. 길들여진 검독수리의 은혜갚음이라고 해야 할까.
절망과 힘겨움만이 남아 있는 그곳에도 겨울은 지나고 봄이 온다. 얼음이 녹아 한 방울, 한 방울 물이 떨어지는 모습....
갈샨에게는 '차궁'의 생활이 거칠고 힘든 야생의 삶이지만 대자연의 삶의 경이로움과 삶의 지혜와 행복은 그 어떤 곳에서도 맛 볼 수 없는 값진 것이다.
엄마의 출산으로 갈샨의 153일이 아닌 151일의 광야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할아버지는 여전히 고집스럽게 광야를 떠날 수 없다. 그리고 자신의 양떼를 돌보는 일에 행복을 느낀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코맥 매카시의 '로드'가 생각났다. 대재앙으로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 곳에서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남쪽을 향해서 한없이 걸어가던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이 '로드'의 배경이라면 '153일의 겨울'은 몽골의 광야에 우뚝 솟은 한 채의 게르, 그리고 자연속에서 할아버지와 손녀가 서로를 알아가면서 길들여지는 과정과 눈폭풍속에서의 추위와 굶주림을 이겨나가는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녀가 할아버지에게 읽어주는 '노인과 바다'가 할아버지의 인생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도 들게 된다.

 
더군다나 작품의 글들의 묘사가 너무도 세밀하여서 마치 몽골의 광야에 내가 함께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사실적이고도 생동감이 있게 쓰여 졌다. 한 편의 영화를 감상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 책은 초등학교 고학년의 학생들부터 어른들까지 모두 읽기에 좋은 작품이기에 부모님들이 학생들과 함께 읽으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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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ing
장현 지음, 김형근 그림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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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ing' - 얼핏 생각하기에 흔한 남자와 여자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책을 접했지만, 처음의 생각과는 다르게 사랑과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언어로 형상화하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언어적 유희'도 함께. 


책의 내용이 평범하고 단순한 듯하지만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깊이있는 자각이 필요하다. 글의 전개 방법도 색다르고 재미있다고 해야 할까. 센스있는 젊은이의 감각을 엿보는 것 같다.


책의 내용이 평범하고 단순한 듯하지만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깊이있는 자각이 필요하다. 글의 전개 방법도 색다르고 재미있다고 해야 할까. 센스있는 젊은이의 감각을 엿보는 것 같다.
저자인 '장현'은 이 책이 첫번째 책이지만 그동안 EBS 라디오 '책과의 만남'과 EBS TV '지식 채널 e'등을 통해 많은 글을 쓰기도 했다. 책에 관한 프로그램을 맡았었기때문인지 사랑에 관한 이야기에 많은 책의 내용이나 책에 관한 이야기들이 함께 등장하여 저자의 '문학편력'을 엿볼 수 있다.
그림 또한 독특한 그림동화 스타일로 그림을 그린 '김형근'은 그림책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을 하고 있기에 감각적인 그림이 돋보인다.
' 왜.. 그를   사랑.. 했을. 까?
  세상 어느 누구도 모르는 비밀
  심지어는
  내가 품고 있으면서도
  나조차 알지 못하는.' (책 첫문장)

이런 감각적인 글로 이 책은 시작된다.
사랑을 하면 행복하기만 할까? 그렇지 않다는 것은 모든 사랑을 해 본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감정일 것이다. 남자와 여자의 다름에서 오는 갈등에서부터....
'너는 별로 관심없지만 나는 관심이 있는 일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사랑을 하게 되면 자신의 관심과 생각을 너에게 그대로 적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건 어쩌면 간섭일지도 모르는데, 이것을 참을 수 있을까?
책은 이렇게 사랑과 연애를 에피소드와 언어로 형상화하면서 76 (출판사 책소개 글)꼭지의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책의 내용은 scene one,  scene two,  scene three,  scene four 로 이루어진다.
    
 '나는 너를 보면서 생각한다. 배려할 수 있고 없고는 성격이나 성향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능력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가까운 사람에게 애정을 갖고 있으면서도 무뚝뚝하거나 자기 중심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사람은 무능력하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다. 관찰력이 없어서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이해력이 없어서 상대방이 보내는 신호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또 배려해주려 하다가도 자기 검열에 져버리고는 한다. 나는 아직 배울 것이 많은 무능력한 인간이다.' (p36)
 
 '사랑해서 아프다

 사랑은 무슨 색깔일까?
 내 생각엔 그다지 밝진 않을 것 같아.
 사랑할 때면 여기가 쿡쿡 쓰리잖아.
 내기를 해도 좋아.
 지금 네가 하는 그 사랑....
  아무도 아플거야.
 그래도 하지 말란 말은 안을께.
 사랑은 공기같은 거잖니?' (p70)


사랑이라는 상황속에서 만남의 설레임, 친숙함, 그리고 갈등, 헤어짐 등의 복잡한 이야기들을 언어를 통해서 형상화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알랭 드 보통'이 생각난다. 일, 여행, 사랑을 그만의 독특한 감각과 필치로 그려냈던 그 작가가 떠오른다. 이처럼 '사랑 ing'도 어떤 문장은 아주 단순하게, 어떤 문장은 언어를 통해서 마음을 형상화하듯이, 사랑에 관한 모든 것을 문장구조나 단어의 의미까지를 동원해 가면서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이다. 연애라는 상황과 감정의 흐름 속에 감추어진 디테일을 형상화하는 저자 특유의 감각이 어떤 특별한 이야기처럼 들려 오기도 한다. 읽으면서 내내 사랑의 어떤 부분을 이렇게도 이야기할 수 있고, 해석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렇기에 '사랑 ing'는 흔한 다른 사랑이야기들과는 차별화가 되는 것이다.


이 책을 달콤한 사랑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읽지 말기를 바란다. 사랑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생각을 가지고 읽으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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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눈물
김정현 지음 / 문이당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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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아버지'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언젠가부터 가정과 사회로 부터 소외당한 쓸쓸한 뒷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위풍당당하고 권위적이던 아버지들이 외롭고 쓸쓸한 모습이 되었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작품으로는 조창인의 '가시고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IMF 시기의 경제적 위기와 함께 나온 작품으로 많은 독자들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불러 일으켰었다. 그런데, 그이전에 벌써 소외된 아버지의 모습이 그려졌던 작품이 김정현의 '아버지'였다. 1996년에 출간된 작품으로 췌장암에 걸린 아버지가 가정과 사회로 부터 소외된 상태에서 자신의 시한부 인생을 정리해 가는 모습이 너무도 안타깝고 슬프게 다가왔었다. 그리고, 아버지들이 왜 이토록 소외당하고 있는지, 가정이란,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작가 김정현이 또 다른 아버지의 이야기로 우리들을 찾아 왔다. 작가인 김정현은 전직 경찰관 출신이라는 약력부터가 특이하여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도 했는데, 이미 1991년에 '함정'이라는 작품으로 등단을 했다.
그의 새로운 작품인 '아버지의 눈물' 이 시대의 아버지, 특히 50대의 아버지에 포커스를 맞추었다고 보면 된다. 50대의 가장들의 삶은 사회적으로 평탄하지 않았던 시대의 사람들이다. 윗 세대는 한 가정을 이끌어 가는 권위적이고 당당하고 때론 옹고집스러운 아버지들이어서, 그 밑에서 순종적으로 기도 못 펴고 살았고, 학창시절에는 사회적으로 불안하였으며, 그들이 가장이 되어서 자식들을 거느렸을 때에는 아버지는 자식들의 좋은 입지를 만들어 주기위해서 모든 것을 무한정 베풀어야만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쓴 '아버지의 눈물'은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주인공인 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의 탓일지도 모르는 제 능력과 처지는 생각지도 못하고 정치학을 전공한다. 대기업, 고시에 미련을 가지기도 하다가 결혼을 하게 되고, 그저 저도 안되니까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학 학위를 받고 어떤 기회에 정치에 뜻을 두었던 백박사의 선거를 돕다가 겨우 그의 사무실의 국장이라는 허울뿐인 자리를 얻게 된다. '인생은 제 의지나 땀보다는 흐르는 세월이 결정 짓는 경우가 더 흔했다.'(P30) '스스로 인생의 뚜렷한 목표 조차 없지 않았던가(...) 허황된 꿈에 젖어 오래도록 자신과 가족 모두의 인생에 그늘을 지웠다. (P34)라고 생각할 정도로 삶의 목표도, 경제적 능력도 없는 그저 그런 소시민인 것이다. 아내 역시 대학까지 나왔지만 결혼초 남편이 공부를 할 때는 친정의 도움을 받고, 지금은 적은 월급으로 근근히 생계를 유지하면서 자식 뒷바라지에 악을 쓰는 평범한 주부인 것이다. '여자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곱고 우아하고 당당하고 싶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아하고 당당하기는 커녕 짐스러운 존재가 된 듯 싶었다. 자식에게 까지 짐으로 여겨지고 경원당하는 느낌을 받을  때는 더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세상 어느 부모가 자식에게 짐이 되기를 원하겠는가.죽는 그 순간까지 도와주고 나눠 줄 수 있는 부모가 되기를 바랄 것이다. (P196) '짐이 되다니, 정녕 억울한 소리다. 오히려 짐이 되지 않으려고 더욱 애태웠었다. 솔직히 조금은 대리 만족을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다. 나는 못했지만 너는 제대로 일어서, 내가 네 이름으로 세상에 당당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그게 그토록 부담이 되고 바라면 안 되는 일이란 말인가.'(P197) 이들에게는 대학생인 두 아들이 있다. 아내는 장남의 지방대 진학으로 상심하고, 차남의 뛰어난 학업 성적에 기대에 부풀어 고시 뒷바라지를 한다.그녀의 남편을 향한 잔소리는 흔히 TV 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남편의 권위를 비롯하여 경제적 무능력까지를 비웃는듯한 소리들이다. 남편과 장남을 향해서 퍼붓는 잔소리가 그들의 마음에 상처로 꽂힌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것은 남편의 어머니의 경우가 틀리지 않았다. '어머니도 평생을 그랬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입에 달고 살았다. 때로는 아버지의 허황함과 무능보다 어머니의 그악스러운 말들이 더 상처가 되기도 했다. 가끔 그 원망이 자식들에까지 이어질 때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핏줄인 것 같은 자괴감에 몸서리쳤다.(...) 아무런 해악을 끼치지 않을 것 같은 그 말의 칼날들이 자식의 가슴과 영혼에 씻을 수 없는 흉터가 되다는 것을 어머니는 정녕 몰랐을까. 어머니는 그렇게 당신의 서러운 희생을 스스로 빛바래게 했다. ' (p106) 그렇다. 아내의 모습은 자식을 통해서 대리만족을 누리려는 그런 모습이다. 남편의 향한 거침없는 잔소리와 차남에 대한 지극한 관심이 이를 대변하는 것이다.
그리고 장남의 군복무후의 대학 포기후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생각과 이런 환경속에서 고시를 준비하는 차남의 이기적인 행동들이 그려진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주인공의 누나의 집은 한결 안정되고 행복스럽다. 비록 동생 뒷바라지로 학력은 높지 않지만 동네어귀에서 떡볶기, 어묵을 팔면서 누나의 남편은 가락시장에서 양파를 중국 음식점에 배달하는 일을 하지만 자식들은 학력이나 행동이 올바르고 정겨운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디에 있었을까. 허황된 꿈일지라도 목표조차 없었던 세월의 흐름에 그저 흘러 갔던 아버지의 인생관과 가치관과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이 그런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장남의 허황될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꿈인 카레이서, 카 디자이너, 내차를 만들고 싶어서 카센터부터 시작하겠다는 발상이나, 장남의 여자 친구인 수경이 고객들에게 자신이 선택한 메뉴의 음식만을 그날 그날 만들어서 파는 레스트랑을 하겠다는 꿈을 향해 가는 모습이 어쩌면 더 미래지향적일지도 모르겠다.



한가닥 남은 자존심때문에 부도덕한 행동을 하고 참회의 눈물을 흐르게 됨으로써 가족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는 것이 해피엔딩이기는 하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다.
이 작품을 한 마디로 이야기한다면 '투박한 질그릇'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의 소재나 주제, 그리고 구성이 너무도 단순하다. 복선이 깔린 갈등 구조가 없어서 그냥 읽으면 그대로 이야기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섬세한 심경묘사나 장면 묘사도 없어서 너무 단조로운 느낌마저 든다. 그래서 '아름다운 도자기'가 되지는 못하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갈 곳없이 떠도는 쓸쓸한 아버지의 모습에 대한 단상들이 떠오른다면 한 번쯤 되짚어 본다는 의미가 있는 소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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