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임영태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심사를 맡으셨던 분들의 심사평이 전체적으로 잔잔하면서도 덤덤하지만 뿌리칠 수 없는 이끌림이 있는 휴머니티가 느껴지는 따뜻하고 좋은 소설이라는 평이었다.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을 내나름대로 정리해 본 글) 특히, 작가 공지영,정이현,이순원, 김원우 그리고 번역가인 김석원,문학평론가인 김윤식 까지 각 분야의 내놓으라는 분들의 평이었다.



작품은 대필작가의 일상이 너무 평범하고 일상적이며 무미건조하게 전개된다. 아침과 점심 중간에 라면을 먹기도 하고, 맛있는 동태찌개집을 가기도하고, 대필을 부탁하는 사람들과 전화를 주고 받기도 하고...... 그런데, 대필작가의 일상이기에 대필작업을 통한 작품을 쓰는 과정의 이야기가 엿보인다. 단어선택의 신중성에서부터, 대필작업을 하면서 느끼는 이야기까지 대필작가의 세계가 얼핏 보인다. 대필작업을 하기는 하지만 그 속에서 그만의 인생과 가치관이 숨쉬고 있다.

'대필은 내가 만족스러운 글이 아니라 상대가 만족할 글을 써 주는 일이다.'(p11)

'세상은 하루에 두 번씩 거리의 색채를 바꾼다. 해가 뜰 때보다 질 때가 갑작스럽고, 더 슬프다. 몰락이라는 단어는 석양에서 왔을 것이다. '(p11)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복없는 담담한(정이현 작가의 표현처럼 '덤덤한'이 더 잘 어울리는 듯하다.)목소리로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같은 이야기들이다. 삶이 그를 어쩌면 약간은 어눌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삶의 흐름에 그저 순응하면서 술에 술탄듯, 물에 물탄듯한 생활인으로 만들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한때는 여기 저기 출판사일을 하다가 귀농까지 하기도 했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대결하지 말자. 나에게 있는 것만 가지고 살자.(p112)
어쩌면 '폴오스터'가 젊은 날의 자신의 자전적이야기를 담았던 '빵굽는 타자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돈벌이를 위해서 번역, 서평, 닥치는대로 글쓰기를 했던 이야기를 닮은 듯도 하지만, 또 그와는 다른 새롭고 특이한 설정들이 이 작품에는 숨어 있다.
심사위원이었던 작가 공지영의 말처럼  책장을 넘길수록 책속에 빠져드는 마력이 이 책에는 숨어있다.
그의 실제 거주지이기도 했던 동교동, 서교동, 연남동에 이르는 곳의 풍경의 섬세한 묘사는 그 거리를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섬세한 거창하게 치장을 하지는 않았지만 섬세하게 다가오는 심리묘사가 너무 담담한 글들로 쓰여져서 읽을수록 마음이 더 아파오는 그런 이야기이다.
아내와의 추억이 담긴 이야기, 진돗개라고 믿었던 태인이와의 이야기는 중반을 넘어서면서 책을 놓을 수가 없게 만든다. 작품세계로 자꾸 자꾸 빨려 들어간다. 힘있게 빨려들어 오도록 하지도 않는데, 자연스럽게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나의 눈시울에서는 눈물 방울이 맺히기 시작한다.
너무도 외롭고 쓸쓸하고 어쩌면 세상을 향해 한 번도 큰소리쳐 보지 못한 힘겨운 삶의 모습이었지만 그에게는 그만의 아름다움과 인생의 깨달음이 있는 것이다.
무심코 발견한 죽은 아내가 서각으로 새겨놓은 문패....
'아내의 서랍에서 문패를 발견했다. 아홉 번 째 집 두 번 째 대문. 무슨 뜻일까 (p93)
왜 아내가 이런 문패를 새겨 놓았는지 '아홉 번 째'까지는 힌트가 있지만 '두 번 째 대문'의 은유는 독자들이 찾아야 할 숙제인 것이다.
아내가 다시 말했다."주는 쪽은 자기가 주는 게 무엇인지 몰라요, 받는 이가 알아요." "준 게 없는데?" " 당신이 준 건 태인이가 알겠지요" 순간, 아내를 처음 만난 날부터 함께 살아온 날들이 눈앞에 슬라이드처럼 지나갔다. '아내는 나에게 받은 게 있을까'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어느 회사의 사보를 우연히 읽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 시에는 내가 그때껏 어느 시에서도 보지 못한 놀라운 대범함이 있었다. 인생의 가장 고독한 지점에 남기는 한 마디 자기 목소리, 거기에서 오는 간결한 대범이었다. (p185)
해준 것이 아무것도 업다고 생각되기에 더 마음이 아픈 그런 사랑.
그래서 혼자 남겨진 사람에게 더 가혹하고 외로운 것이 인생이 아닐까? 비록 먼저 다른 세상으로 떠났지만 아내의 마음은 참 예쁘다. 그래서 그의 모습이 더 슬프게 느껴지는 것일까?
아내 생각이 나면 나는 새벽에 거리로 나간다. 깊이 잠들어 있는 거리를 혼자 걷는다. 마음은 슬픈데 쓸쓸하지는 않다. 그날, 모든 것이 좋았다. 꿈결같기만 한 그날 새벽거리.바람도,가로수도, 불 꺼진 창들도,모든 것이 정갈했었다. 그래서 기억은 쓸쓸하지 않다. 새벽 거리를 걷고 있으면 아내를 느낀다. (p191)
이 작품의 특징이라면, 주인공의 삶속에는 '산자와 죽은자'가 함께 공존한다. '일상과 환상'이 함께 존재한다. 꿈인듯하지만 현실일 수도 있고, 환상인듯하지만 일상일수도 있다. 대필작가의 삶이 그렇듯이,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타인의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처럼 꾸며서 의뢰인에게 써준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는 그 과정에서도 자신만의 가치관이 존재한다. 어떤 일에 대한 자신의 뚜렷한 사고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그것이 너무 강하게 느껴질 때가 있기도 할 정도로....
그리고, 너무 덤덤한 일상이지만, 그속에는 추억과 같은 환상이 존재한다. 일상에서는 외롭고 쓸쓸하고 힘겹지만, 환상속에서 죽은 자들을 만나고, 죽은 아내를 만나고, 명품인듯했지만 결코 진짜 진돗개가 아니었기에 더 진돗개처럼 활동하려고 했던 태인이가 있는 것이고, 대필 의뢰인이었던 장자익 노인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에게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 그 이상의 큰 힘이 되기에 마음은 슬픈데, 쓸쓸하지는 않은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여기에 또 한 가지의 첨가한다. 주인공이 현재와 과거를 수시로 넘나들면서 생각하고 느끼는 과정을 아주 자연스럽게 써내려간다. 현재에서본 과거의 모습들. 그속에서도 환상처럼 느껴지는 것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과거속에서 일상의 깨달음을 느낀다.
그에게는 우연과 운명이 또 어떤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을까?
모든 우연은 하나의 징조이다. 눈 앞에 다가온 운명이다. (...) 하지만 우연은 의식되는 순간 우연으로 그친다.(...) 우연을 운명으로 의식하는 순간 운명은 바뀐다. 안 것 같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른 것이 시작된다. (...) 운명도 '모르는 것'의 다른 이름이다. 아는 건, 안다는 그것으로 인해 운명이 아니다. (p203)
알듯 모를듯, 이렇게 그의 인생에는 우연과 운명이 드나든다.
평범한 것같지만 그렇지 않은 대필작가의 일상속의 이야기에서 대필작가의 작품구성과정을 엿볼 수도 있고, 이것이 작가 자신의 문학과 작품활동에 접근하는 모습이라는 것을 느껴본다. 그리고, 죽은자(아내, 장자익노인, 진돗개 태인)을 통해 자신의 내면세계에 움츠리고 있는 생각들을 끌어내는 이야기의 틀이 참 특색있게 생각된다. 우연과 운명, 죽은자와 산자, 현재와 과거, 일상과 환상이 공존하는 가운데, 주인공의 일상은 가난하고 쓸쓸하지만 마음은 소박하고 따뜻한 사랑이 감추어져 있다. 그의 상처받은 마음을 보듬어줄 유기견 몽이의 마지막 등장이 사랑의 메신저같다는 생각이 든다.


울면서 걸어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작가의 말중에서)
작가의 이말이 뇌리를 스쳐간다.
사람은 충분히 사랑하지 못해서 외롭다. (작가의 말 중에서)



작가는 1992년에 <문화일보>를 통해서 등단하였지만 그동안 생계를 위해서 대필작가의 길을 걸어 왔는데, '아홉 번 째 집, 두번 째 대문'을 통해서 제1회 중앙 장편문학상 수상'이라는 큰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었으니 앞으로 자신의 글을 쓰는 작가로서의 길이 활짝 열렸으면 하는 바람이 독자의 생각일 것이다.
아주 독특한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작품을 순식간에 읽은 느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울, 북촌에서 - 골목길에서 만난 삶, 사람
김유경 지음, 하지권 사진 / 민음인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다년간 경향신문 문화부 기자와 문화부장으로 일했던 '김유경'님의 글과 사진작가 '하지권'님의 사진이 멋스럽게 어우려진 책이 바로 '서울, 북촌에서'이다. 흔히 '북촌'하면 삼청동과 가회동 일대를 일컫는 경우가 많지만 이 책에서는 그곳에만 한정지어서 '북촌'이라고 하지 않고, 우리의 옛조상들의 멋과 전통이 있는 강북지역의 한옥촌을 비롯한 궁궐터와 옛 사람들의 체취가 느껴지는 많은 곳들의 골목 골목을 누비고 다니면서 옛스러운 모습과 풍취가 좋은 곳들, 성벽에 둘러싸여 있던 곳들, 역사적으로 유서가 깊은 곳들을 모두 사진과 함께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이 이 책에서 '친근한 숨은 힘같은 것이 느껴지는 서울 생활의 한 전형으로 붙여진 이름'(p5)이 북촌이라고 말하고 있다. 작가는 2003년이래 사진작가인 하지권씨와 동행하면서 심도있는 취재를 시작하였으니, 이 책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발품을 팔아서 얻어졌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젊은 사람들에게는 '북촌'에 대한 기억은 인사동 쌈지길 정도가 기억에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러나, 나에게는 북촌에 대한 기억이 아주 많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안국동에 있는 안동별궁에 위치한 풍문여자중고등학교를 다녔으니, 그 일대가 나의 젊은 시절의 추억이 깃든 곳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지금은 강남으로 이전을 한 많은 학교들이 그곳에 상당수가 있었다. 이화여고, 배재, 진명, 숙명, 창덕, 경기여고, 경기고, 중앙, 휘문, 중동 등이 그 일대의 중고등학교였다. 버스노선도 많지가 않아서 그 당시에는 종로2가, 광화문, 무교동, 광교에서 부터 걸어 다녔으니, 봄부터 가을에는 여학생의 하얀 교복과 남학생의 파란색, 회색 교복의 물결이 그 일대를 수놓았다. 어려서 부터 안국동에서 인사동에 이르는 등하교길에 골동품상이며, 고가구점을, 조계사에서 관훈동에 이르는 길에는 서예용구점, 탱화와 불상, 그리고 세밀하게 목련, 목단, 국화 등을 수놓은 고수예품을 파는 상점들을 끼고 등하교를 했으니, 자연스럽게 학창시절부터 북촌의 멋스러움을 느끼면서 자랐다고 생각된다. 그당시에는 골동품상들의 주인들도 친절해서 하교길에 학생들이 기웃거리면서 이것 저것 신기한듯 살펴보아도 잔소리 한마디하지 않고 반겨 주었었다. 거기에 학교의 사생대회와 미술대회는 항상 그당시 비원이라고 불리던 창덕궁의 깊은 궁궐에서, 아니면 경복궁의 경회루에서 하였으니, 고궁과의 인연도 깊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은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는 경회루를 맘대로 걸어 다니고, 창덕궁의 향원정도 멋대로 드나들던 시절이었다.
특히, 학교 뒷담을 따라 가회동에 이르는 길에 전 대통령인 윤보선의 저택은 담길이만도 끝이 없었으며, 그 길을 따라 가파른 언덕위을 따라 나즈막한 한옥들이 꽤 있었다. 이런 시절을 추억을 되새기면서 읽는 '서울, 북촌에서'는 정말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책임에 한 눈 팔시간도 없이 책에 몰두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이곳에는 마지막 남은 900여 채의 한옥들이 있다고 한다. '600년 봉건 사회의 핵심을 형성한 서울 사람들의 조용한 자신감이 서려 있는 마지막 모습' (p37)을 작가는 골목 골목을 따라 다니면서 그곳에서 만난 사람의 이야기와 삶의 모습을 전해 준다. 경복궁 서쪽 통의동에는 대궐 환관들의 집들이 있었는데,안채와의 연결이 비밀스러운 구조로 지어져 미로같던 건축물들이었는데, 지금은 그 모습이 거의 보호되지 않고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체코의 프라하에 가면 '황금소로'가 있는데, 길지도 않은 좁은 골목들이 중세의 연금술사들이 살았고, 소설가 카프카의 작업실이 있었다고 관광객이 발디딜 틈없이 북새통을 이루고, 유럽 광장의 중세 시대의 보도블럭은 닿고 닿아서 빤질빤질할 정도로 오래되었는데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을 보면 우리의 문화유산에 대한 경박한 인식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인 것같다. 개발보다는 보존을 해야 되는데, 그대로 두면 아름다운 골목길들도 소방도로 확장이라는 미명하에 넓은 차도로 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구부러져 있어야 운치가 있는 길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구태여 개발하지 않아도 되는 곳에 왜 인위적인 모습의 이상한 기형의 모습으로 탈바꿈을 시키는지 문화재청과 서울시의 행정담당관들의 무지를 한탄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또 아쉬운 것은 한옥을 비롯한 옛모습의 건물에 시멘트 범벅을 해 놓은 모습은 아예 얼굴을 들고 그 모습을 바라보기가 수치스러웠던 경우도 문화재에 대한 인식 부족을 일깨워준다.

 
전 총리이자 고대 총장일 지내셨던 김상협 총장의 개성음식 이야기는 우리의 마지막 남은 옛 음식에 대한 정갈함과 깔끔함과 함께 맛깔스러운 음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 집의 안방 문짝에 쓰여진 예서체나 산수화, 그리고 민화에서 엿볼 수 있는 전통의 멋이 그대로 나타난다. 옛 조상들은 정원의 담에도 화초그림을 그렸는데 이런 화초담은 정원의 대용 역할도 한다.

이 책에 실린 삼청동에 관한 글이다.
'이 곳을 지나는 인파는 단순히 가게들이 호화로워서 쳐다보는 것이 아닌 듯하다. 옷이나 음식이나 국적불명에 소위 퓨전이 범람하지만 삶의 어떤 정수라고 할 배경으로 쌀가게 옆에 보석 가게가 나란한 동네길이 태연해서 좋다. 부담없이 볼 수 있는 박물관과 화랑과 대궐, 신구가 엇갈리는 건축과 진열장의 눈요깃거리, 다양한 음식점들이 한꺼번에 몰려 있다. 사람들은 발걸음을 천천히 떼고 여기저기 눈길을 주며 한가롭게 지난다. 오랜 골목길과 새 건물, 미술품과 진열장의 상품, 먹을 것과 가게 꾸민새, 예술과 자본 등을 만나는 길이다. 보도 폭이 좁고 오르락내리락 불편해도 삼청동 길의 생명력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골목을 들어섰다. 나갔다. 절벽위 맹현으로 올랐다 내려왔다 하는 시간은 전통으로 회귀하는 휴식이 된다. 더 좋은 점은 어슬렁거리는 산책이 무한하면서도 언제든지 바로 도심 속 업무로 복귀가 가응하다는 것이다. 광화문에서 삼청동은 불과 한 발짝 떨어져 있다. '(102~103) 바로 삼청동의 진정한 매력은 주택가의 천연한 분위기인데, 이미 그 매력은 반감되고 있다고 한다. 그냥 보존할 곳은 그대로 놓아두면 좋으련만....
유명한 삼청각은 1973년 남북회담을 위해서 지어졌는데, 지금도 이처럼 잘 지은 한옥 건물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또한, 혜화동에서 성북동 올라가는 길목에 기념물 또는 민속자료로 지정된 예쁜 한 옥 세 채, 바로 한용운의 심우장, 이태준의 집, 이재(또는 이종상)의 별장이 있는데, 이 한옥들도 제대로 돌보지를 못하고 있다.
내가 어릴적엔 세검정이란 곳이 물놀이가던 곳이고, 이곳의 자두가 맛나기로 유명했었는데, 이곳의 아름다운 풍광은 안평대군의 별장, 이항복의 별장, 흥선대원군의 석파정이 있다. 그런데, 이곳들도 세검정 바위아래까지 차가 드나들고, 생활하수가 흐르고 세검정 높은 바위벽에는 시멘트범벅이 되어 있다고 한다.  도시계획도 중요하지만 역사와 미학을 생각할 수는 없을까? 가로 정비로 옛 정취를 찾아 볼 수 없음을 안타까워 하노라.... 이렇게 서울, 북촌을 누비면서, 맛집도 둘러 보고, 연주회가 열리는 곳도 소개해 주고, 전시회와 박물관도 알려주니 꽃피는 따뜻한 봄날에는 서울의 북촌 나들이를 가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골동품하면 인사동이 본산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곳도 인사동 개발로 아기자기한 맛을 잃은지 오래되었다. 여기에서 청진동쪽으로 나와서 낙지골목에서 낙지볶음과 빈대떡에 막걸리 한 잔을~~~ 대학시절 이코스도 대학생의 낭만이 깃들었던 추억의 장소들이지만, 언젠가 한 번 가보니, 옛 모습을 찾기 힘들었고, 남아 있는 낙지 골목도 너무 지저분하고 퇴락해서 마음만 상하고 온 기억이 난다.
'문화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개발과 보존을 왜 조화롭게 하지 못하는 것일까?
서울의 상징은 무엇일까? 저자는 보신각, 광화문(익살스러운 해태상까지, 그런데 해태를 언제부터 해치라고 했을까? 해태의 원말이 해치이고 서울의 상징이라고 한다.), 세종문화회관, 성돌이(서울 성곽돌기, 서울 도심을 둘러싸고 북악산, 인왕산, 남산, 낙산에 이르는 성곽 18.2km에 이르는 길) 등을 들고 있다.



재동에 있는 백송부근, 조선말기의 역사적 사실들을 이끌어 온 사람들이 살았고, 그곳에서 역사적 모의가 이루어 지기도 했던 곳들, 그리고, 대궐여인들의 이야기...

 
이 모든 이야기들이 역사속 뒷이야기들로 재미를 더한다. 그밖에 성균관, 5월의 종묘대제, 불교 영산재, 각종 굿판이 일어나는 국사당의 이야기...
4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서울, 북촌에서'는 이렇게 다양한 볼거리와 이야기거리로 우리가 알고 싶었던 서울의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 준다.
나처럼 인생을 한참 살아온 사람들은 옛 추억이 깃든 골목 골목이 눈에 선하면서 그곳에 가보고 싶은 충동이 생기게 만들어 준다.
이야기가 있어서 재미있는 서울의 북촌....
그러나, 개발에 밀려서 옛 모습이 허물어지고, 허술한 문화재청의 관리에 아쉬움과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이야기들이 흘러간 역사속 이야기처럼 들려 온다. 그러나, 어느새 내 마음속에는 친근한 힘처럼 서울, 북촌의 이야기가 다가와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 키워드 경제사전 - 경제에 관한 모든 지식
곽해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2010 키워드 경제사전'은 2009년 독자들에게 가장 사랑받아 왔던 '2009 키워드 경제사전'의 업그레이드판이다. 경제 상황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물 경제의 흐름에 따라서 낡은 내용은 버리고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었다.  그것은 최근 들어서 만들어진 경제 용어들의 중요성을 의식한 것이기도 하고, 2010년 경제의 흐름을 따라 가는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의 표제에도 나오는 말이기도 한데
'문맹은 생활을 불편하게 하지만, 경제맹은 생존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말로 경제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들은 경제하면 참 딱딱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솔직히 숫자에 대한 압박감도 골치아프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그 자체가 경제의 일부라는 것은 실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장,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살 때부터 시작하여, 은행업무를 볼 때, 새로운 은행 상품 가입을 하려고 할 때, 크레디트 카드를 새로 만들 때, 각종 세금에 관한 일 등..... 경제와 함께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결코 경제를 등한시 할 수는 없는 문제이며, 새로운 경제 상황이 될때마다 경제 용어는 왜 그렇게도 많은지. 이런 어려움을 풀어 줄 수 있는 것이 경제 사전일 것이다. 그런데, 시중에 나온 경제 사전들이 너무 획일적이고, 인터넷이나 경제 신문 등에서 체계없이 선별된 용어들로 짜여져 있다면 있으나 마나한 경제사전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에 '2010 키워드 경제 사전'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1. 대한민국 독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경제용어 사전이다.
경제용어는 끊임없이 새로 만들어지는데, 그 중요도는 현실 경제와 관련이 있다. 그런 변화를 염두에 두고 현재에 중요시 되는 경제 용어들을 많이 실었다. 그리고. 새롭고 실속있게 업그레이드 되었기 때문에 한동안은 사용하는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2. 550개의 핵심 키워드를 통해 경제적 통찰의 눈을 뜨게 해준다.
ㄱ,ㄴ,ㄷ (가,나,다)순으로 배열하였고, 외래어는 A,B,C 순으로 실었으며 영어 약자의 경우에는 약자 옆에 한글로 표시해 두었다.
* 예1 : BIS (국제 결제은행) 
   예2 : 경기변동 →경기순환(을 찾도록 표시)
            경기순환의 뜻 설명 →일러스트로 알기 쉽게 표현 →경기순환의 설명이 끝나는 지점에    →공황 (더 찾아 보아야 할 단어) 
           경기순환 국면 그래프를 보여주면서 설명을 쉽게 이끌어 나간다.
 
 
 3. 도표, 그래프, 일러스트 를 통한 키워드 설명
각종 통계지표, 경제지수, 도표와 그래프를 통해서 키워드를 정리해 준다. 시사성있는 키워드를 일러스트로 꾸며 재미를 더해준다. 
 
 
   

4. 경제 전문가가 직접 구성하고 집필하여서 전문성이 돋보인다.
이 책의 저자인 곽해선은 이미 경제 해설에 있어서는 독보적 스타일을 구축한 경제 교육 전문가로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집필하였다. 20여권의 저서를 냈는데, 그중의 한 권인 '경제기사 궁금증, 300문 300답'(1998)은 100쇄를 기록하여 최장기 베스트 셀러이며 현재는 kbs '경제 전망대'에서 다년간 시사 경제 해설을 하고 있다. 저자가 집필시에 중요시한 점이 뜻풀이를 알기 쉽고 용어의 정확한 의미 전달이며, 경제흐름에 맞게 집필하는 것을 우선시했다고 한다.
5. '경제학 발전소'코너 마련
경제학 이론을 현실 경제에 반영하여 풀이하는 곳으로 (#01~#18까지 18개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경제사전이라고 하더라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알기 어려운 해설로 설명을 해준다면 큰 효과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2010키워드 경제사전'은 쉽게 해설을 해주기 때문에 폭넓은 상식과 경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좀 어려운 경제 용어를 접하게 되면 꾸준히 곁에 두고 뒤적거리면서 새로운 경제 지식을 넓혀 가려고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짜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 - 서로 다른 입장에서 들려주는 이야기
브리타 슈바르츠 외 지음, 윤혜정 옮김 / 청어람주니어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헨젤과 그레텔'은 어린 시절 누구가 다 읽었던 동화일 것이다. 특히,내용중에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 빵조각을 조금씩 흘리면서 산 길을 가는 이야기와 길을 잃고 헤매다가 과자와 사탕으로 된 집을 찾아 내던 이야기는 참 재미있었다는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말 헨젤과 그레텔의 아버지는 자식을 양육할 수 없을 정도로 무능력했으며, 새엄마는 아이들을 산에 버리고 오도록 할 정도로 몰인정한 사람이었을까?' 하는 시각으로 재구성한 그림동화가 '진짜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이다.
원래 이 이야기는 독일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를 그림 형제가 동화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헨젤과 그레텔'을 다시 헨젤의 입장과 새엄마 울라의 친구인 마녀 사미라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이야기로 재구성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 사람은 독일의 '브리타 슈바르츠'이다. 그는 1966년에 출생하여 1999년부터 어린이를 위한 책들을 쓰고 있으며, 저서로는 '늑애와 일곱 마리 아기 염소'등이 있다. 그림은 독일의 '이리스 하르트'가 그렸는데, 배경뿐만아니라 각자의 심리가 잘 나타나도록 얼굴 표정 등에도 신경을 써서 어린이들이 좋아하게 그렸다.
지금까지 어떤 내용의 작품을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쓰거나, 패러디한 작품들은 가끔 접해 보았다. 연극 '백설공주가 사랑한 난장이'의 원작소설과 같은 경우에는 '백설공주'원작에는 나와 있지 않은 막내 난장이의 슬픈 사랑을 그린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진짜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는 좀더 색다른 구성의 이야기라고 생각된다. 기존의 동화와 완전히 새로운 입장에서 해석하는 다른 이야기가 한 그림 동화안에 공존하기 때문이다.



책의 왼쪽에는 헨젤의 입장에서 본 기존의 이야기가, 오른쪽에는 마녀 사미라의 입장에서 본 이야기가 같이 실리게 된다.





 (헨젤의 입장: 새엄마는 날마다 나와 그레텔을 야단치고, 우리들을 먹이고 입히는데 돈이 많이 들어서 아이들이 없어졌으면 좋겠어~~)



(새엄마 친구인 마녀사미라의 입장: 아이들은 용돈을 군것질하는데 다 써버리고, 헨젤이 그레텔을 꼬드겨서 집을 나가자고 했어~~)

 
 
(왼쪽: 헨젤은 길을 잃지 않으려고 빵조각을 길을 흘렀지만 새들이 다 먹어버렸어/
오른쪽:새엄마는 아이들과 함께 산책을 갔는데, 아이들이 버터 바른 빵이 싫어서 몽땅 잘라서 새들에게 먹였어)

 
(헨젤: 마녀가 나를 새장에 가둬 버렸어. 마녀: 헨젤이 집을 온통 뒤지고 다니면서 장난칠거리를 찾다가 새장에 들어가 버렸어) 
이렇게 '진짜 헨젤과 그레텔이야기'에서는 헨젤, 그레텔, 마녀 사미라의 입장을 중심으로 각각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이런 이야기 구성이 어른들도 새롭게 느껴지는데 어린이들에게는 더욱 새롭고 흥미롭게 느껴질 것이다. 또한 첫장에서 보여주듯이 '나는 헨젤이야~~' '나는 사미라야, 아줌나는 마녀란다.'하는 식으로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는데, 이것은 마치 그림동화의 주인공이 읽는 어린이들에게 1:1 대화 형식을 취하기 때문에 더 친근감이 들게 만든다.그리고, 현대의 이야기처럼 'T. V를 본다. 휴대전화를 건다'는 식으로 기존의 동화보다 시간적 차이를 없애주기때문에 현실의 이야기와 같이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도 한다.


 


어린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가운데, 같은 상황이지만 서로 다른 입장을 고수하던 때가 많았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부모님이 어린이들과 함께 읽은 후에, 어떤 상황에서 서로 다른 시각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경우가 생긴다면 '진짜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를 되새기면서 서로의 입장을 이야기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역지사지' - '진짜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가장 큰 핵심이 아닐까 싶다. 어릴적부터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모든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해주는 큰 의미를 가진 책이라고 생각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을 여자
오정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장편소설에 비해서 단편 소설이 지니는 매력은 글의 호흡이  짧으면서도 결말부분의 반전이 그 묘미라는 생각이 든다.  오정희의 짧은 글들을 모은 작품인 '가을여자'는 그런 묘미를 맛보고 싶은 독자들이라면 한 편, 한 편 읽어내려가면서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인 오정희는 1947년생이니, 꽤 연륜이 있는 작가이다. 1968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문단에 데뷔하고 근래에는 2003년에 '새'가 독일에서 번역 출간되었으며 독일 주요 문학상인 '리베라투르'상을 수상하였으니 해외에서 한국인이 문학상을 받은 최초의 사례라고 한다.
'가을여자'는 저자가 데뷔 41년을 맞는 동안에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사건이나 휙 스쳐간 단상, 이미지 때로는 한 편의 긴 소설을 위한 스케치가 짧은 소설들로 영상화되기도'(작가의 말 중에서)하였는데, 이렇게 하여 쓰여지고 발표되었던 글들을 추리고, 또한, 발표되지 않은 글들까지 포함하여 25편의 작품을 4부분으로 나누어서 싣고 있다. 글의 형식은 콩트 형식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가을여자'들은 제목에서도 은유하듯이 인생의 봄,여름이라고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의 20대를 지나서 30대 혹은 40대의 여성들이 주인공들이다. 봄, 여름을 거치는 과정에서 인생의 찬란했던 시절을 되짚어보기도 하고, 때로는 아직도 결혼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옛추억의 남자를 생각하기도 하고, 시모와의 갈등으로 애궂은 자식에게 화풀이를 퍼붓기도 하는 그런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온, 그러나, 아직은 갈 길이 많이 남아 있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작가가 연륜이 있어서 그런지, 그동안 많은 작품에서 많은 인물들을 묘사해서 그런지, 아니 정확하게 말한다면, 작가의 문학적 바탕이 탄탄하면서도 여성들의 마음과 가정의 세세한 이야기까지를 통달했기에 섬세한 인물 묘사와 심리 묘사가 수준급에 달한다.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어쩌면, 이렇게도 잘 묘사했을까?'하는 공감과 함께, 작품에 따라서는 마무리부분의 반전이 그야말로 속된 말로 '죽여준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기염을 토할 정도로 반전의 묘미를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25편의 글들은 모두 우리가 흔히 곁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에 공감이 더 커지는 것이다. 
남편의 갑작스런 질병으로 홀로 된 30대 여자가 아이들을 데리고 레이스 뜨기 등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는데 언제부턴가 아이들에게 친절하게 놀아주는 열 살 정도의 연하남에게 살짝 마음이 간다. 그래서 생계수단이 아닌 연하남을 위한 뜨게질을 하고, 소식이 끊긴 그 남자가 궁금해서 그가 산다는 숲속길을 지나 찾아간 곳은 정신 요양원, 그가 가지고 다니던 은빛 펜치, 그는 그것이 자유의 상징이라고 했는데, 그 펜치가 의미하는 자유는? 그는 과연 누구?
그녀에게 살짝 피어오르던 사랑의 마음은 무엇이 되었을까? (그 가을의 사랑)
34살의 시립 도서관 사서는 무료한 토요일 오후를 보내기 위해 자선 음악회에 가고, 자신의 모습처럼 썰렁한 음악회를 보고 맥주 한잔을 하려간 곳에서 친절한 남성을 만나게 되고, 그녀에게 호감을 보인다. 그녀의 반지에 관심을 보이며 접근한 그 남자의 실체는?(첫 눈 오던 날)
더 황당한 이야기는 펜팔 친구와의 만남일 것이다.옛날에는 펜팔이 유행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녀와의 첫만남을 위해서 갖가지 준비를 다했다. 아름다운 시구, 경구 등을 읊을 준비까지 모두 완료, 멋지게 소나무 아래 앉자마자 그의 손에 소똥이 뭉클...  그 길로 남자는 내달려 버렸다. 오랜 세월이 흐른후에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펜팔 친구였던 그녀는 그때의 일을 묻는다. 그러나. 그 순간을 말 할 수는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수치심을. 그런데, 이번에는 새로운 인연이 될까?
그보다 더 심한 그 옛날 똥을 만졌을 때의 그 부끄러움과 배반감이 다시 일어났다. 왜 일까? 그런 것이 모두 가을 여자의 이야기이니 왜 재미가 없겠는가?
죽은 아버지의 물건은 어머니는 모조리 엿장수에게 팔아 버렸다. 돌아가시고 얼마 안되어서... 그런데 칫솔만을 버리지 않고 1년 넘게 운동화를 빨 때 사용하시곤 했다. 그런, 어머니와 성묘를 갔다 오는 길에 어머니는 낚시터 근처에서 잉어 3마리를 사신다. 그리곤 방생을 하신다. 낚시꾼의 미끼에 걸리지 말고 멀리 멀리 가라시면서... 어머니는 '우리 가튼 아낙네야 생사의 깊은 이치를 어찌 알겠느냐만 돌아간 네 아버지 생각이 견딜 수 없이 간절해질 때마다 이렇게 죽을 목숨을 살리는 일로 마음을 달래 왔지, 단지 자기 마음의 위안이겠지만 사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게 이런 것 밖에 더 있겠니.....'(p92) (방생)
이것이 우리네 인생이고, 우리 어머니들의 먼저 간 남편을 생각하는 마음인 것이다. 
엇나갈 수 밖에 없는 부자의 대화 한 편 소개한다. (시든 꽃의 고백) 석구씨는 언제나 바쁜 스케즐로 얼굴 보기도 힘든 자녀들에게 큰 마음먹고 멋진 외식을 한다. 대학생 딸, 고등학생 아들, 중학교 작은 아들... 사사건건 엇나간다. 집에 돌아와서 뒤풀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마침 텔레비젼을 보려 들어온 작은 아들에게 "네 근본이 무엇이냐? 네가 누구냐?" " 단백질과 아미노산 합서에 DNA...." 아들은 말하다 말고 멋쩍은 듯 씩 웃으며 화면의 곧 고꾸라질 듯한 춤을 따라 흥얼거린다. 아이쿠, 석구씨는 도리없이 이마를 치며 신음했다. 밀양 박: 첨정공파의 15대손으로 태어나.... 그가 아이들에게 들려 주려던 가문의 뿌리며 역사가 실로 용비어천가의 구절만큼이나 황당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P128)


이렇게 몇 작품들을 통해서 볼 수 있듯이 '가을여자'는 구질 구질한 주부들의 일상의 이야기, 중년 부부의 동창회 이야기, 옛 사랑의 추억, 착각한 사랑 이야기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들이 동원 되고 있다. 어쩌면 서른이 넘어 마흔에 접어 들고 있는 '가을 여자'들은 대학 시절에는 패션 모델 못지 않게 잘 차려 입고, 좋은 곳에서 훌륭한 음식을 먹기도 하면서 한 때를 풍미했던 그런 여자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삶에 찌들어서 궁색하고, 시어머니와 갈등, 자식들과의 다툼으로 자신의 삶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 때는 성악가를 다녔던 아내가 송년회에 갈 변변한 옷 한 벌 없어서 언니집에 가서 빌려 입는 모습을 보아야 하는 남편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듯이....
그래서, 왠지 쓸쓸하고 외로운 가을을 닮은 여자들이지만, 삶에 있어서의 그 어떤 불행과 어려움이 있다 하더라도 '인생은 바래지 않는 순정한 꿈'이라는 것을 (작가의 말 중에서) 그리고 환멸, 슬픔, 쓸쓸함, 또한 우리의 생을 살게 하고 보다 높이 들어 올리는 힘(작가의 말 중에서)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들의 일상이 담겨 있는듯해서 더욱 친밀하게 느껴지고, 짧은 글들이 주는 반전의 묘미가 궁금하시다면 한 번 읽어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