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천 정사 화장 시리즈 1
렌조 미키히코 지음, 정미영 옮김 / 시공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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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정사(情死)는 동반자살을 의미하지만 요즘 뉴스에서 종종 듣는 동반자살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요즘의 동반자살은 경제사정을 비관한 일가족 동반자살이나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끼리끼리 모여 자살하는 집단자살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사는 사랑하는 남녀가 현세에서의 사랑을 이루지 못하여 내세에서 사랑을 이루자는 의미로 함께 죽는 동반자살을 의미한다. 요즘은 정사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들을 수 없다. 사랑을 이루지 못해 함께 죽을 일이 별로 없거니와 다른 문제가 앞서 고작 사랑 따위의 문제로 함께 죽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정사란 이야기를 들으면 근대의 로망이 담긴 유산쯤으로 여기곤 한다. 그런 시대였기에 가능했던 로망이랄까.
 
한편으로 난 일본인들은 정사를 좋아한다는 그런 생각도 하곤 한다. 이 작품집에도 정사를 다룬 작품이 수록되어 있지만, 다자이 오사무의『인간실격』, 와타나베 준이치의『실락원』도 정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무라카미 하루키의『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에도 정사를 시도하는 부분이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이 작품 속에서는 정사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또한 다른 작품들 속에서도 심심찮게 정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곤 한다. 소설뿐만 아니라 시대물 만화책같은 것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것은 일본의 독특한 문화 - 솔직히 문화라고 하기엔 거부감이 들지만 적당한 용어가 없다 - 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면 작가는 왜 자신이 살아 보지 못한 근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썼을까. 다이쇼 시대에서 쇼와 시대 초기는 일본 역사에 있어서 무척 많은 사건들이 일어났던 시기이기도 하다. 일본의 1차 세계대전 참전, 쌀값 폭등으로 인해 일어난 주민들의 폭동, 관동대지진, 경제 공황 등이 이 시기에 일어났던 큼직큼직한 사건들이다. 또한 이 시대는 계층간의 눈에 보이는 차별도 남아 있었던 시기이다. 이런 시대를 살다 보니 사람들의 생활이나 마음은 피폐해졌을 것이고, 그렇다 보니 내세를 약속하며 정사 사건을 일으킨 사람들도 많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럼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이 작품집의 제목은『회귀천 정사』이지만, 사실 모든 작품이 정사를 다루는 것은 아니다. 정사를 소재로 한 이야기도 있지만,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 그리고 사랑과 증오, 겉으로 보이는 사연 속에 감춰진 진짜 사연들은 때론 정사란 행위보다 더 아프고 슬픈 사연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첫번째 이야기인 <등나무 향기>는 유곽이 늘어선 조야자카 고개에서 일어난 연속 살인사건에 대한 이야기이다. 조야자카 고개의 유곽에 있는 여성들은 본가가 너무 가난해서 팔려온 경우도 있고, 오누이처럼 본가에 돈을 보내기 위해 유곽으로 들어온 여성들도 많았다.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고 가난 속에서 살던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몸파는 일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화자와 함께 사는 오누이는 시골에 있는 남편의 약값을 벌기 위해 여인숙에 취직한 경우로 남편 약값을 보내는 것에 등골이 휠 지경이다. 이는 유곽에 있는 다른 여성들도 마찬가지였다.

근처에 사는 대필가는 유곽에서 일하는 여자들이 집으로 보내는 편지를 대필해주는 사람으로 과묵하지만, 가난한 유곽 여자들을 위해 무료로 대필을 해주기도 한다. 비록 팔려오긴 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가족이라며 꼬박꼬박 돈을 부치고 편지를 보내는 여성들의 사연을 전부 알고 있던 대필가는 이 여자들의 짐을 덜어주기로 했다. 대필을 하면서 편지 내용을 바꿔 이 여자들이 힘들게 번 돈을 집에서 편안히 받아 챙기는 술주정뱅이 아버지, 도박에 빠진 오빠, 병치레로 평생을 병상에서 보내는 남편 등을 자신의 손으로 없애기로 한 것이다. 어차피 폐병으로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을 버리고서라도 그녀들 중에 몇명의 인생이라도 구하고 싶었던 것이다.

두번째 이야기인 <도라지꽃 피는 집> 역시 유곽을 배경으로 한다. 법적으로는 열여덟 살이 되어야 유곽에서 일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런 경우는 드물었다. 스즈에 역시 원래 나이는 열여섯이지만 열여덟이라 속이고 일하고 있다. 또래 소녀의 소녀다움이 짙은 화장과 나른한 표정 속에 묻혀 버린 스즈에는 근방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수사하러 온 형사와 만나게 된다. 뭔가를 알고 있는 듯 보여도 입을 꼭 다문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스즈에는 형사와의 몇 번의 만남 끝에 진실을 이야기하지만, 그날 밤 목을 매고 자살한다. 살해당한 자들의 손에 쥐어져 있던 도라지꽃과 같은 도라지꽃을 손에 쥐고 죽은 스즈에의 자살은 두번째 피해자인 인형사와의 정사를 결행한 것으로 처리된다. 하지만 그후 이 사건을 함께 수사한 다른 형사의 편지를 통해 스즈에의 죽음에 대한 비밀이 풀리게 된다. 그녀가 형사에게 도라지꽃을 던졌던 이유, 그녀가 도라지꽃을 쥐고 죽었던 이유가.

세번째 이야기인 <오동나무 관(棺)>은 야쿠자와 야쿠자의 여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 여인을 사랑해 그녀의 남편이자 자신이 형님으로 모시던 남자들 죽인 누키타와 누키타를 사랑하면서도 증오하는 여인 기와 사이에 끼게 된 쓰기오. 누키타는 기와를 안고 싶으면서도 차마 그리할 수 없어 쓰기오가 그녀를 안게 한 후 쓰기오를 안는 남자다. 누키타와 기와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는데 그것은 쓰기오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누키타는 쓰기오에게 자신들이 속해 있는 조직의 두목을 죽이라는 명을 내린다. 이미 누키타에 길들여져 누키타의 명을 따르게 된 쓰기오는 결국 두목을 죽이고 만다. 누키타는 왜 두목을 죽이기를 원했을까. 기와의 말에 따르자면 기와를 죽이는 것이 맞는 일일텐데. 하지만 이 일에 대한 의문이 풀리기도 전에 쓰기오는 전쟁에 동원된다. 그곳에서 겨우 살아온 쓰기오는 그동안 기와가 누키타를 죽이고 감옥에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제서야 쓰기오는 기와와 누키타 사이에 있었던 일, 그리고 누키타가 두목을 살해하도록 한 명령을 내린 이유를 알게 된다. 누키타와 기와가 했던 둘만의 주사위 놀이의 의미도.

네번째 이야기인 <흰 연꽃 사찰>은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혼란을 겪는 시로의 기억 속에 숨겨진 어머니의 비밀에 관한 이야기이다. 시로의 어머니는 불행한 별 밑에서 태어난 아이라 손가락질 받으며 성장한 불운한 인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시로의 어머니가 태어나자마자 사람들이 줄줄이 죽어나갔고, 어머니가 네살되던 무렵에는 아무 이유없이 한 여자가 자살한 일도 있기 때문이다. 마을에서 배척의 대상이었던 시로의 어머니는 세이렌지라는 절의 주지에게 시집을 갔고, 시로를 낳았다. 하지만 그후 절에 불이나 아버지는 죽고, 시로와 시로의 어머니는 절을 떠나 다른 도시에서 살게 된 것이다. 시로는 때때로 어린 시절의 꿈을 꾼다. 어머니가 한 남자를 죽이는 꿈을. 또한 절이 불에 타는 것을 지켜보는 꿈도 꾼다. 그리고 어머니가 연꽃을 파묻던 장면도 기억에 남아 있다. 하지만 이런 꿈이나 기억에 대해 어머니는 침묵을 지킬 뿐이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시로는 어머니의 비밀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하고, 그 결과 엄청난 비밀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고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다섯번째 이야기이자 표제작인 <회귀천 정사>는 다이쇼 시대의 천재 가인 소노다 가쿠요의 삶과 그가 남긴 작품에 관한 비밀에 관한 이야기이다. 각각 가쓰와라기 정가(情歌)와 소생(蘇生)이라는 이름이 붙은 작품에 담긴 비극적인 이야기는 여기에 실린 다섯작품의 정점을 찍는 작품이다. 두 번의 정사 미수 후 자살로 생을 마감한 가쿠요가 진정으로 사랑했던 여인의 정체가 드러나고, 이 작품이 씌어진 의도가 드러나는 순간 경악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진실을 알고도 가쿠요와 정사를 실행하려 했던 여인들의 사랑이 너무나도 아프게 다가온다.<회귀천 정사>는 예전에 미스터리 앤솔로지에서 읽은 적이 있지만 다시 읽어도 박수를 보내고 싶을 만큼 훌륭한 작품이다.

<회귀천 정사>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다자이 오사무가 떠오르게 된다. 그 역시 두 번의 정사 미수 후 세번째 정사로 죽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드라마틱하게 연출한 부분은 미시마 유키오를 떠올리게도 한다. 미시마 유키오의 쿠데타 해프닝 - 마지막 작품 <천인오쇠>를 출판사에 넘긴후 자위대 본부에 난입, 쿠데타 촉구 연설후 할복 자살 - 은 그가 오랫동안 동경해 왔던 죽음이란 의식을 치루기 위한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의견도 있는데 이 작품 속의 가쿠요 또한 자신의 작품을 위해 누군가를 사랑하고 정사를 일으켰다고 나오기 때문이다.   

렌조 미키히코의 화장(花葬)시리즈 여덟편 중 다섯편을 한데 묶은『회귀천 정사』의 각 작품에는 꽃이 등장한다. 등나무꽃, 도라지꽃, 오동나무꽃, 연꽃, 창포꽃이 바로 그것인데, 이들 꽃은 각 작품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작가의 말을 빌자면 꽃이 주인공인 셈이다. 여기에 실린 작품들의 또다른 공통점은 남성 화자가 등장한다는 것이며, 이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대는 다이쇼 시대에서 쇼와시대 초기가 된다. 즉, 일본사에서 근대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런 이유로 작품에 등장하는 공간이나 물건들에서는 옛것의 향기가 물씬물씬 배어나오지만 스토리 자체는 현대인들의 마음을 뒤흔들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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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시드 타운 1 - 뉴 루비코믹스 1059
큐고 글,그림 / 현대지능개발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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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고. 이 작가 작품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거라서 좀 망설였는데 읽어 보니 꽤 괜찮다. 아직은 첫권이라서 앞으로의 전개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거리의 아이인 유키는 친구 테츠와 함께 야쿠자의 사무실을 털다 잡힌다. 유키가 위험을 무릅쓰고 청도회 사무실에 들어간 이유는 의붓동생 쥰의 입원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유키의 사정을 들은 청도회 간부 효우도 카즈타카는 입원비를 내주겠다며 일주일에 한번씩 사무실을 찾아오라고 한다. 하지만 사무실에 가서 하는 일이라곤 효우도의 체스 상대를 해주는 것 뿐. 딱히 일을 시키는 것도 아니고 몸을 요구해 오는 것도 아니다. 자선사업이라고 하기엔 뭔가 껄끄러운 기분이지만, 쥰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는 유키이기 때문에 투덜거리면서도 매주 한 번 효우도를 만나러 간다.

효우도가 적을 두고 있는 청도회는 꽤나 큰 야쿠자 조직인 모양이다. 후계자 승계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듯하지만, 신흥조직 독사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특히 독사의 두목 나카모토가 효우도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움직임을 보이는데, 독사의 뒤에 숨은 거대한 조직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아, 근데 청도회고 독사고, 이름이 뭐가 이래 구려. 청도회는 새마을운동 조직 이름같고 독사는... 말하기도 싫다. 일본어로 발음하면 근사한가. 하여튼 한글로는 전혀 와닿지 않는 야쿠자 조직의 이름이군.

책소개만 봤을 때는 효우도가 틀림없이 유키의 몸을 두고 거래를 하자고 할 줄 알았는데, 이 사람 은근히 신사다. 고학력의 야쿠자 간부로 원래는 일회용 총알받이로 청도회에 들어온 효우도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궁금하지만, 아직은 청도회 간부의 모습밖에 나오지 않아 궁금하다. 독사의 나카모토도 역시 개인 사정이 있는 듯 하지만, 이렇게 잔인한 인간은 아무리 개인 사정이 있어도 별로 안궁금하다.
 
유키 역시 처음엔 인상이 별로였다. 뒷골목에서 약이나 파는 그런 양아치로 보였기 때문이다. 근데 의외로 사생활은 반듯하다. 의붓동생인 쥰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형의 모습이 따스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성질이 급한 면은 있지만, 스스로 어른이 되려고 노력하는 아이이다. 그런 유키를 바라보는 테츠는 안타깝기만 하다. 유키를 지켜주고 싶은데 힘도 없고 돈도 없는 테츠는 그런 유키를 가만히 지켜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쥰의 아버지가 3년만에 나타나면서 유키의 위협이 될 듯 한데, 이 남자 위험한 냄새가 풀풀 풍긴다. 3년전 유키가 쥰을 데리고 도망치기 전까지 성폭행과 학대를 일삼았던 모양인데, 결국 유키를 다시 찾아 냈으니... 그럼 유키와 쥰의 엄마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직 확실하게 나오진 않지만 쥰을 낳은 후 죽었을 공산이 크다. 

암울한 환경에서도 자신의 희망인 쥰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는 유키. 그리고 그에게 힘이 되고 싶지만 섣불리 유키가 쳐놓은 방어막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테츠. 나중에 유키에게 상당한 도움이 될 듯한 청도회 간부 효우도. 이 세사람이 나중에 어떻게 연결될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유키 - 효우도 커플링을 간절히 원한다. 

이 작품은 시간적 배경이 모호하다. 현대인 것 같은데, 전쟁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걸 봐서는 가상의 시간대인 모양이다. 특히 요코하마의 경우 방사능같은 것으로 오염이 된 듯 한데, 단서가 별로 없어서... 아무래도 애시드 타운이란 제목도 그런 연유에서 나온 듯 하지만, 설명이 너무 부족하다. 나중에 나오겠지, 뭐.  

오염된 도시, 흐린 하늘, 그리고 암울하기만 한 생활. 그런 유키에게 있어 유일한 희망의 빛은 사랑하는 동생 쥰이다. 유키가 쥰과 함께 할 행복을 되찾을 날은 언제쯤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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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7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처음 보는 작가라 볼까말까 고민했는데, 괜찮은가봐요~ 2권부터 점점 더 재밌어지려나요. :)

스즈야 2011-05-30 22:07   좋아요 0 | URL
예상보다 괜찮았어요. 이 작가에 대해 알려진 바가 아무것도 없어서 걱정했는데, 일본 아마존쪽을 봐도 평이 괜찮더라구요. 2권에서 어떤 진전이 있을지.. ㅎㅎㅎ 저도 궁금하네요.
 
한밤중의 언터쳐블
로쿠야 사나에 지음, 이주희 옮김 / 인디고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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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쿠야 사나에. 이 작가 작품은 본 게 하나도 없어서 좀 망설였지만 책 소개 글을 보고 겟!
"안경남들의 격정적인 사랑"에 꽂힌 거지. (푸핫) 현실에선 안경을 쓴 사람은 별로 안좋아하지만, 만화책 속에, 특히 BL만화에 등장하는 안경남들은 좋아한다. 물론 무조건 안경을 좋아하는 건 아니고, 캐릭터에 따라 호오가 많이 갈리긴 하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안경남들은 나를 매료시킬 수 있을까??

'안경남들'이라고 해서 장편은 아니란 생각은 헀지만, 이렇게 많은 단편이 실려 있을줄이야. 200페이지도 안되는데 총 7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에휴, 이럴 경우 전개가 급작스러운 게 많아서 심도(?)있는 이야기는 포기해야 한단 결론이 나온다. 물론 아주 짧은 단편에 많은 이야기를 넣을 수 있는 작가도 있긴 하지만, 일단 읽어본 소감으로는 굉장히 만족스럽진 않다. 

표제작이자 첫번째 작품인 <한밤중의 언터쳐블>은 리맨물이다. 호오, 좋았어, 처음부터 리맨물!! 회사 상사인 '과장님'과 게이 커뮤니티에서 채팅 상대로 만난 '과장님' 사이에서 갈등하는 신입사원 이야기인데, 이 신입사원, 변신이 대단하시더구만. 푸핫. 완전 순진할 줄 알았더니 그게 가면이었어? 사실 안경 과장님이 공일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순진무구한 캐릭이었다. 아, 이런 위화감. (개인적으로는 안경이 공인게 좋습니다)

<노래를 부르자>는 교사와 학생 커플인데 제일 마음에 안든 단편이기도 하다. 교사와 학생의 커플링은 아귀만 맞다면 좋아하는 커플링이지만, 이 단편속 교사는 완전 에로변태교사라서. 밥맛.

소꿉친구가 고교졸업반이 되어 만난 <그 손을 놓지 않아>는 너무 짧아서 좀 아쉬웠다. 어떻게 보면 참으로 애틋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겠지만, 후반부에서 "이런 것도 하고 도망간다는 건가?"에서 빵 터지고 말았다. 푸하하하핫. 뭐, 그렇기는 그렇겠네. 어쨌거나.

전통있는 화과자점의 아들과 화과자의 정령이 등장하는 <GHOST? SWEET?>와 <No Sweet Life>는 특별히 에로에로한 건 없는데 화과자의 정령이 기모노를 입고 등장해서 좀 마음에 들었다. 근데 그것보다는 화과자점을 물려받지 않겠다는 아들의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다. 일본의 경우 전통있는 가게가 무척이나 많은데, 여기에 등장하는 화과자점도 170여년에 달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아들은 화과자 장인이 아니라 회사원이 되고 싶은 거지. 예전같으면 가업을 물려받는 것이 당연시 되었겠지만, 요즘같은 세상에 가업이란 이유만으로 물려받고 싶지 않은 사람도 분명히 있겠지. 소년과 정령의 러브라인보다는 웬지 전통있는 가게의 후계자의 고민이 더 마음에 와닿았던 작품이었다.

회사 상사와 부하직원의 이야기인 <Under The Glasses>도 역시나 리맨물인데, 이 작품도 중간에 빵터지고 말았지. 안경착용과 미착용 사이에 엄청난 갭이 존재하는 부하직원을 보면서 두근거리는 상사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가 되는데, 러브러브하는데 안경을 착용하고 있는 걸 보면 역시 웃기단 말야.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한 두 편 중 하나인 <RingRing 크리스마스>는 산타와 루돌프(물론 변장한)의 이야기인데, 안경착용 루돌프에서 빵터졌다. 근데 그것 외에는 별로였어. 그러나 <Surprise Xmas>의 경우엔 맘에 쏙 들었다. 12살 차이가 나는 의붓형제의 이야기인데, 형이 굉장한 전략가더구만. 동생만 형을 열렬히 짝사랑하고 있는 줄 알았더니, 13년동안의 그 모든 것이 형의 계획이었다니. 그래 놓고 수가 되는 형아는 뭐냐!? (푸하하하하핫)

전체적으로 보면 굉장히 가벼운 작품이 주가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예상한 것 과는 달리 안경공과 안경수의 비율이 2 : 5. 안경수의 비율이 월등하게 높다. 난 안경공이 좋은데. 그도 그럴 것이 게임 귀축안경에서도 안경착용시에 귀축캐릭터가 되고 엄청난 카리스마를 발휘하기 때문에 내 머릿속에선 안경 = 공의 공식이 이미 성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건 좀 아쉽지만, 의외의 반전이 많아서 재미있기도 했다. 영락없는 공의 이미지인데, 알고 보니 수인 경우가 종종 나왔기 때문이다. 이 단행본에는 너무 많은 단편이 실려서 급전개가 많이 보였는데, 이 작가의 장편은 어떠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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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7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것도 일단 장바구니에 담아놓은 작품이었는데, 이렇게 리뷰로!
저는 이 작가 장편 재밌게 읽었어요. 랑 <리벤지!> 둘다 마음에 들었답니다.:)개인적으론 역시 레드가 좋다고 할까요. 저는 역시 기모노라던가, 시대물이라던가.. 이런거에 맥을 못 추는 것 같아요. ㅎㅎ

스즈야 2011-05-30 22:07   좋아요 0 | URL
음.. 전 이 작가도 첨이라서.. 저도 레드를 눈여겨 보고 있는데요, 역시 기모노에 모에하는 것 땜에.. 푸힛....
 
토리빵 4
토리노 난코 지음, 이혁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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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토호쿠 지방의 이와테현, 그곳의 한 베드타운에 거주하는 작가가 그려내는 자연주의 만화 제 4탄!『토리빵』3편은 여름에서 가을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텃밭 가꾸기와 곤충관찰일기가 주된 소재였다면, 4편은 본격적인 들새 이야기이다. 겨울은 시베리아나 중국 아무르강 유역에 서식하는 새들이 겨울을 나기 위해 일본으로 찾아 오는 시기이기도 하고, 철새가 아닌 텃새들도 먹이 부족에 시달리는 시기이기 때문에 모이터가 한시적 개장을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4권까지 읽고 계절에 따른 내용이 다른 걸 파악한 1人입니다.) 4권의 구성 역시 4컷만화와 2~3페이지 내외의 짧은 만화로 구성이 되어 있어 엄청난 양의 에피소드가 잠복하고 있다.   

본가와 가까운 곳에 작업장을 얻은 작가는 겨울이 되자 모이터 새단장에 나섰다. 여름에서 가을까지는 먹이가 풍부한 시기이므로 일부러 먹이를 주지 않아도 되지만 겨울에는 먹이가 부족하므로 찾아오는 새들에게 먹이를 공급하는 것이다. 하지만 신장개업(?)인 참이라 처음에는 한동안 파리만 날렸다고... 하지만 금세 소문이 나서 작업장 모이터에도 많은 새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단다.

처음엔 텃새인 참새가 날아오기 시작했고, 그후엔 츠구밍들 (본가의 츠구밍과 다른 개똥지빠귀 무리로 뉴츠구밍이란 이름이 붙음), 히요짱들(직박구리), 물까치를 비롯해 다양한 새들이 작업장 모이터를 찾게 되었다. 그중에는 뉴멤버도 등장. 동박새, 곤줄박이, 쇠박새, 쇠딱따구리, 콩새, 방울새 등이 처음으로 등장했다.



희귀한 철새로는 홍여새와 황여새까지 등장. 이 그림을 보고 빵 터졌다. 소수 정예 무리가 조금씩 옮겨 오는지 몰라도 날이 갈수록 그 수가 증가. 나중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늘었다고 한다. 원래 일본에서는 보기 힘든 새라는데, 작가님 완전 득템하셨군요. 홍여새와 황여새는 직박구리보다 크기도 작지만 꽤나 호전적이라 먹이터를 독점하는 사태까지. 이렇다보니 히요짱들은 짜증을 츠구밍들에게 풀고 있다고. 불쌍한 츠구밍들. 츠구밍들은 뚱뚱한 개똥지빠귀(데구밍)의 화풀이 상대까지 되어야 하니, 거참...

이들은 모이터가 꽤 마음에 들었는지 3주가 넘도록 모이터 주변을 배회했다고, 덕분에 수십마리의 새들이 아침마다 먹이를 공급하라고 7시부터 울어서 깜짝깜짝 놀라는 일이 다반사였다고 한다. 새가 우는 소리는 한마리만 울어도 꽤 크게 들린다. 그런데 종류도 가지가지의 새들이 한꺼번에 운다고 생각하면... 보는 나야 웃음이 나오지만 당하는 작가님은... 놀랠만도 하겠군요.


 
본가와 작업장의 모이터가 텃새나 철새들이 들르는 편의점과 같은 곳이라면 T마츠 연못은 철새들이 겨울을 나는 중간 기착지인 셈이다. 이곳에서 겨울을 나는 새들은 주로 백조나 오리 종류였지만 이때는 뉴페이스가 특히나 많이 등장했다고. 백조들은 매년 겨울 이곳에서 겨울을 보내고 가기 때문에 사람들이 연못가로 오면 이렇게 등장한다. "먹이를 보급하라, 보급하라." 아, 정말, 작가님의 개스센스덕분에 빵빵 터질 일이 진짜 많다. 태평양 제 7함대란 표현은 어디에서 나왔을꼬. (푸하핫)

이외에도 보기 드문 흑조, 비오리, 댕기흰죽지까지 등장했단다. 이번에는 T마츠 연못 에피소드가 좀 적어서 아쉽아쉽. 

내가『토리빵』을 격하게 아끼는 이유는 단지 작가님의 개그 센스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중간중간 빵빵 웃겨주는 개그 코드도 즐겁지만, 이 작품은 들새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잊고 살기 쉬운 것들에 대한 이야기랄까. 보려고 해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야생화가 그런 존재인데, 보고 싶은 사람 눈에만 보이기 때문이다. 들새도 마찬가지이다. 새들은 대개 예민하고 조심스럽기 때문에 사람들 눈에 잘 띄진 않지만 늘 우리곁에 있다. 우리는 늘 땅을 보고 걷기에 나무나 전깃줄에 앉은 새들을 못보고 지나칠 뿐이다. 작가님이 일부러 다른 사람들에게 저기 오색딱따구리가 있어요, 라고 말하지 않는 이유, 난 알것 같아. 그런 보배로움을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굳이 일러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보고 싶은 사람은 찾을 것이고, 그럼 보게 될 것이니까.  


 
철새들은 몇천킬로미터를 날아서 온다. 목숨을 걸고 비행을 하는 것이다. 그런 새들에게 작가님의 모이터는 겨울에 이곳을 찾는 새들에게 훌륭한 쉼터이자 먹이터가 된다. 때론 귀찮을 법도 한데 자신의 돈을 들여 모이터를 만들고, 먹이를 사고,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먹이를 공급해주는 작가님의 마음은 한없이 따스하게 느껴진다. 특히 위의 글을 읽으면서 가슴이 찡해졌달까.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철새도래지가 몇군데에 있다. 하지만 그런 새들이 귀찮다고 농약묻은 모이를 던져주거나 조류독감의 위험이 있다고 죽임을 당하는 새들이 정말 많다. 일년내내 그곳에 있는 것도 아니고 겨울을 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날아오는 새들에게 너무 박정한 것 아닌가 싶을 때도 많다. 또한 철새를 보겠다고 떼거리로 몰려와 와글와글 떠드는 사람들때문에 새들이 편히 쉴수도 없고, 때로는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가 개발로 인해 파괴되기도 한다. 그런 곳에는 철새들의 더이상 날아들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나라를 찾지 않는 철새도 많아졌다. 

난 직접 철새 도래지를 찾아간 적은 없지만 티비에서 가창오리의 군무에 입을 다물지 못했던 적이 많다. 가창오리처럼 많은 수가 우리나라를 찾는 경우도 있지만, 때론 몇마리 안되는 철새들이 오기도 한다. 앞으로는 목숨을 걸고 우리나라를 찾는 철새들이 마음 편하게 쉬다 갈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리고 우리 주변에 살고 있는 텃새들도 인간들에게 위협을 당하거나 위협을 느끼지 않으면 좋겠다. 『토리빵』을 읽다 보면 늘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사진 출처 : 책 본문 中(64+69+70+72p, 21p, 60+9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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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터드 허니 - 뉴 루비코믹스 1061
키리시마 타마키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이 작품은 설정이 진짜 마음에 들어서 구입하게 되었다. 남자 BL 만화가와 남자 BL 편집자라뉘!! 이런 모에로운 설정이!!! 사실 BL계에 생식하고 있는 만화가의 대부분은 여성작가이지만, 남성작가도 분명히 있다. 그렇다면 출판사에도 남자 BL 만화 편집자가 있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아, 정말 마음에 드는 설정이 아닐 수 없다. 다른 작품 속에서는 그냥 작가 + 편집자 커플이라든지, 남자 BL 소설가 + 여성 편집자를 본 적이 있지만, 둘 다 남자는 첨이다. 유후~~~

하네다 모토키는 원래 소년만화 편집을 담당했으나, 직장을 옮기면서 BL만화 편집부에 배속되었다. 매일매일 여성편집자들 사이에서 호되게 BL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있는 하네다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있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BL에 대한 나쁜 말을 하는 건 못참고 있다. 일단, 자신이 일하는 분야이니까 욕을 먹는 건 싫은 것이겠지. 좋아좋아, 그런 근성이 필요한 것이야~~

이런 하네다가 이번에 담당을 맡게 된 사람은 미부라는 작가로 하네다도 무척 마음에 들어 하는 작가이다. 그래서 기쁨으로 충만한 가슴을 안고 미부를 만나러 가지만... 이거 어쩔! 미부는 남자였던 것이다! 하네다와 미부는 동시에 충격을 먹고, 자신은 '그쪽' 사람이 아니라면서 서로에게 확인한다. 어이, BL을 그리고 BL만화를 편집한다고 해서 무조건 '그쪽'일리가 없잖아!

이렇게 재미있는 인연으로 같이 일을 하게 된 두 사람이 연인으로 맺어지기의 과정이 전반부, 그리고 연인으로서 지내는 것이 후반부의 스토리이다. 완전 노말이었던 두 사람이 연인이 된다는 건 어느 정도 험난한 과정이 있다는 걸 의미하지만, 의외로 모난 구석이 없는 두 사람이라 그런지 갈등 요소가 좀 생기긴 하지만 무난하게 넘어간다. 너무 무난한지도... 모르겠지만. (笑)

갈등 장면의 경우 미부가 먼저 자신의 감정을 깨닫고 침울해 할 때와 미부의 작품이 혹평을 받게 되었을때 하네다가 갈등할 때 정도인데, 특히 하네다가 미부를 멀리하고자 하려했을 때 미부가 어른스럽게 그 상황을 넘기는 부분이 좋았다. 작업할 땐 어린애같지만 역시 일을 할 땐 어른인 이런 점이 미부의 매력일지도. 하네다의 경우 순수하고 귀여운 면이 매력적인데,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는 색기가 넘치는 것도 재미있는 부분이다. 오죽하면 미부가 핑~~하고 쓰러지겠냐구.

BL만화 편집자가 되어 의기소침 상심했던 하네다가 미부란 연인을 만나게 되었으니 전화위복.
대체 만화로 BL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미부가 BL만화로 대성공을 하고 연인까지 득템했으니, 이것도 또한 전화위복이겠구나~~~
(본인은 여자라서 만약 이런 일이 주어지면 춤이라도 출테지만, 사실 남자 입장에선 BL을 멀리하고 싶었을테니 대충 그런 의미에서 전화위복이라고 표현해 봤습니다.)

노말이었던 두 사람이 연인이 되는 이야기라 수위가 좀 낮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좀 높다. 특히 번외편에선 어질했다, 솔직히. 수위가 높고 안높고에 따라 호오가 갈리는 건 아니고, 그런 장면이 스토리의 흐름에만 맞게 들어간다면 별 상관없지만, 그게 생각외였던지라...

음, 이 두사람 외에 나오는 BL편집장 카나의 캐릭터도 무척 마음에 들었다. 여장부! 특히 하네다에게 알몸 넥타이 근무를 시킨다는 말에 빵빵 터지고 말았음. 알몸 넥타이, 은근 기대하고 있었는데... 푸하핫. (농담입니다) 카나는 전반적으로 멋진 여성 캐릭터였다. 하네다가 휘처휘청할 때 중심을 잡도록 도와주는 인물이기도 하고. 이런 편집자 밑에서 일하면 경력에 확실히 도움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달까.

BL 만화계의 속사정을 그린『머스터드 허니』. 캐릭터도 괜찮고, 스토리도 좋아서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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