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밤, 미스터에서 - 뉴 루비코믹스 1005
시마지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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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캬~~ 표지 예쁘다. 이 작가의 작품은 별로 읽어본 적이 없지만 표지 일러스트를 참 예쁘게 그리는 작가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BL계 작품은 야릇한 포즈로 꽉 끌어 안고 있는 일러스트가 많지만 이 작가의 경우 절제된 표지 일러스트를 그린달까. 일상과 비일상의 사이, 편안해 보이지만 둘 사이의 미묘한 기류를 잘 보여주는 그림이다.

이 작품집에는 두 커플의 이야기가 나온다. 완벽하게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니고, 누가 중심 인물이 되느냐에 따라 전개가 좀 달라질 뿐이다.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인물은 소꿉친구인 쿄헤이와 치카이며, 또 다른 커플은 유다이와 모모다.

소꿉친구에서 연인이 되기 까지 : 쿄헤이 X 치카

소꿉친구는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설정이다. 난 어린 시절엔 이사를 자주 다녔기 때문에 소꿉친구가 전혀 없다. 물론 이사하고 얼마 후까지는 연락을 주고 받았지만 금세 연락이 끊겨 버렸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버렸기 떄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소꿉친구 사이란 말을 들으면 괜시리 질투가 나기도 하지만, 실은 부러워서 그런거다.

게이바『Mr.』의 입주 점원인 치카는 요즘 귀찮아 죽을 지경이다. 나름대로 잘 나가는 직원이건만, 소꿉친구였던 한살 아래의 쿄헤이가 요즘 매일매일 치카를 찾아오기 때문이다. 자신의 변한 모습을 보고 금세 실망할 거라 생각한 치카는 어떻게 해서든 쿄헤이를 멀리 하려 하지만 쿄헤이는 은근히 끈질기게 붙어 있다. 치카가 게이인 것을 인정하긴 싫지만, 소꿉친구로서 치카를 좋아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치카가 쿄헤이에게 까칠하게 구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지.

쿄헤이를 좋아하지만 상처가 두렵다. 이게 치카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사랑하면서 상처받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라 치부하려는 사람은 사랑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많이 사랑할수록 상처받는 게 두려워진다. 많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는 상처는 세상 어떤 사람이 주는 상처보다도 깊고 날카롭기 때문이다. 쿄헤이를 좋아하면서도 멀리 하고 싶은 치카, 치카의 성향에 대해 완전히 수긍할 수 없지만 그래도 치카가 좋은 쿄헤이.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볼 수 있을 때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그런지 치카가 까칠하게 굴다가도 갑자기 무너지고, 또다시 방어벽을 세우는 모습이, 함께 살자고 하는 쿄헤이에게 억지를 부리는 듯한 모습이 확 와닿았달까. 치카는 분명 겁쟁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랑앞에서 겁쟁이가 되지 않을 사람이 있기나 할까.

바의 오너와 마스터 : 유다이 X 모모

게이를 혐오하는 주제에 게이바를 운영하는 유다이. 그는 바람처럼 불쑥 나타났다 바람처럼 사라지는 오너이다. 그런 오너 대신 게이바를 맡아 꾸려 가고 있는 건 모모. 모모와 유다이의 관계는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사실 개인적으로 유다이같은 마초타입 남자는 별로다. 무조건 마초타입 남자가 싫단 건 아니지만 폭력성향이 있는 남자를 싫어한달까. 그런데도 유다이가 매력적인 건 그의 약점이 보이기 때문이다. 유다이는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남자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모모 역시 유다이의 감정을 잘 캐치하지 못하고 있달까. 주기적으로 자신을 찾는 유다이를 보면서 모모는 그저 한순간의 바람이라 생각해 버리니까. 하긴 유다이처럼 폭언에 거친 행동을 일삼는다면 유다이의 마음을 짐작하기도 힘들겠지만...

쿄헤이와 치카 커플은 소꿉친구란 설정이 있어서 그런지 어른들일지라도 소년같은 풋풋함이 느껴졌다면, 유다이와 모모의 사랑은 아슬아슬하면서도 열정적이다. 이 둘 사이의 이야기중에서 특히 인상에 남았던 건 사라졌던 유다이가 나타났던 소리에 지워버린 전화번호를 떠올리려 애쓰던 모모의 모습이다. 저 사람은 내 사람이 되지 않을거야, 라고 결국 포기해버리기로 하지만, 속마음은 끝끝내 유다이를 놓지 못했던 모모의 마음이 그대로 느껴졌던 장면이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작품을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건 역시 사랑은 참 어렵다, 란 것이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은 각자 다른 사랑을 하면서 산다. 사랑이란 한 단어로 묶어 버리기엔 너무나도 다양한 사랑의 형태가 존재한다. 이들의 사랑도 그랬다. 시마지의 다음 작품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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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도는 세계의 너와 나 - 슈퍼 루비코믹스 070
나오노 보라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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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저마다의 세계의 크기는 모두 다르다. 나같은 경우 고양이의 세계와 비슷한 편으로 비록 나만의 세계는 작지만 그것으로 완결되어 있고, 그안에 누군가를 들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허락된 단 몇 명만이 내 세계를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좀더 넓은 세계를 공유하고자 하는 사람의 경우는 수학적으로 말하자면 수많은 교집합 상태의 세계를 가진다. 반드시 다른 세계의 어떤 부분과 교감하고 교류하고 있달까. 나에겐 이런 것이 너무나도 어렵기만 해서 결국 난 내 세계에 콕 틀어박히고 말지만, 사랑을 할 때는 조금 다르다. 사랑을 할 때만은 교집합의 세계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사랑에 빠진 사람들 대부분은 이런 교집합의 세계를 가지게 되고, 그 관계가 점점더 많이 발전할 수록 그 교집합이 차지하는 부분이 커지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완벽히 하나가 될 수는 없다. 그저 하나가 되었을 뿐이라고 착각하는 것이 옳은 표현이지 않을까.

나오노 보라의 신간『돌고 도는 세계의 너와 나』는 각기 다른 세계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만나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면서 교집합의 세계를 넓혀가는 이야기이다. 물론 어린시절의 인연이 있던 커플도 있지만 대개는 새로운 만남에서 시작되어 상대의 세계안으로 들어가는 걸 허락받고, 상대가 나의 세계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는 이야기라 하면 될 듯 하다. 이 작품집에는 총 4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읽었던 나오노 보라의 책은 죄다 단편이었던듯한...

첫번째 작품이자 표제작인 <돌고 도는 세계의 너와 나>는 어린시절 같은 유치원에 다녔지만 어떤 이유로 인해 잠시 헤어졌다 다시 만나게 된 고교생들의 이야기이다. 개인적으로 학원물을 별로 안좋아하는데 공수 캐릭터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냥 그랬던 작품이다. 단지 조금 재미있었던 건 같은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케이토에게 결혼하자고 했던 토모야의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면 어릴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크면 우리 결혼하자라는 등의 헛약속을 남발하지. 어떻게 보면 가장 순수한 시절이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어린 시절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르게 성장한 케이토를 못알아보는 토모야에게, 그리고 일언반구없이 야반도주해 버린채 자신을 혼자 남겨둔 토모야에게 케이토가 마음을 쉽게 열리는 만무. 하지만 어설프게 끝났던 인연이 새로 시작되면 그 어설픈 이별의 아픔보다는 즐거운 추억에 매달리게 된다. 케이토도 멋지게 성장한 토모야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먼저 들지 않았을까.

<예상밖의 두 사람>은 표제작보다 더 마음에 들지 않았던 단편이다. 어휴, 도대체 왜 이런 전개가 되는 거야?? 좋아하는 사람과 키스하면 짜릿하다, 그건 맞는 말이다. 근데, 그 대상이 왜 그 사람이 되어 버린 거지? 일단 아키토가 왜 그 사람을 선택했는지 난 참 궁금하달까. 굳이 그 사람이 아니어도 되지 않았나??

<럭키 아이템>은 나오노 보라 캐릭터의 특성 중 하나인 중년 아찌가 나오는 작품이다. 전직 보디가드, 현직 소바가게 아저씨인 야자와와 야자와의 친구의 아들 소타의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좀 뻔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여기에 수록된 것 중 제일 낫더이다. 솔직히 말해 여기에 등장하는 캐릭터중 소타가 제일 안된 캐릭터다. 아버지 빚때문에 학교도 못다니고 이리저리 도망다니는 신세였으니... 그래도 소타가 마음을 줄 곳을 찾은 건 그중 다행이랄까. 과거의 상처를 안고 사는 한 남자와 그 상처를 보듬어주는 소년이 만들어 가는 알콩달콩 이야기. 덤으로 탐정 아찌도 만날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마지막 작품은 특이하게도 요괴가 등장한다. 사람들과 섞여 살아가면서 사람들이 의뢰하는 일처리도 하며 살아간다. 개인적으로 요괴 이야기를 엄청 좋아하는데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매력이 없는지. 기대는 컸지만 기대에 못미쳤달까.

나오노 보라의 단행본은 읽을 때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스토리가 조금 빈약하다. 물론 썩 괜찮았던 작품도 있지만 대개는 별로인데, 라는 느낌이다. 오히려 공감하지 못할 씬들은 줄이고 스토리를 좀더 보강하면 좋을텐데, 라는 생각도 든다. 이래 놓고도 담에 신간 나오면 또 읽을 듯한... 이런 것도 이 작가의 매력인가? (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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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빵 5
토리노 난코 지음, 이혁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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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호쿠 지방의 한 베드타운에 거주하며 여름에는 채원가꾸기, 겨울에는 들새들을 위한 모이터를 개방하여 자연스럽게 들새들과의 교감을 주고받는 작가의 다섯번째 이야기. 이번 표지 모델은 물까치이다. 연한 하늘빛 깃털이 마치 하늘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새 물까치.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살고 있는 텃새라고 하는데, 정작 난 까만 까치외에는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래서 물까치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찾아봤는데 정말 하늘빛이다. 어딜 가나 눈에 띌 미조(美鳥)같다.

『토리빵』5권은 여름과 가을 이야기이다. 그렇다 보니 아쉽게도 겨울에 찾아오는 철새들 이야기는 없지만, 채원 가꾸기의 즐거움과 여름새들의 아기자기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특히 민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텃새들의 이야기가 많았는데 그중 참새 가족들 이야기에 웃음이 터지기도 하다가 짠해지기도 했다. 원래 여름에는 모이터를 개방하지 않지만, 올해는 지붕밑에 조롱조롱 집을 짓고 새끼를 낳아 기르는 참새들을 위해 육아지원캠페인을 위해 여름한정 모이터를 개방했단다. 아기를 키우는 건 동물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육아노이로제에 시달리는 듯한 어미 참새의 모습이 묘하게 여운에 남는달까.

한편, 8월말 들새 관찰 시설에 들어오게 된 아기 직박구리(통칭 히요짱)이 사람들 손에서 쑥쑥 커가는 에피소드는 인간이 과연 자연의 선택에 간섭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 아기 히요짱은 둥지에서 떨어져 죽을 운명이었지만 사람손에 의해 구해진 후 약 두달간 시설에서 양육되었다. 어미에게서 자신들의 습성을 배우지 못한 히요짱이 과연 자연의 품으로 돌아갔을 때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보다 구해주지 않으면 죽어버릴 수 밖에 없다는 걸 알기에 손이 먼저 나가 이 히요짱을 구하게 되었다는데 나 역시 이런 상황과 마주하면 구하려고 하지 않을까. 어쨌거나 무사히 자라나 자신을 데리러 온 히요짱들 무리에 섞여 훨훨 날아간 아기 히요짱. 잘 살았으면 좋겠다.

가정 채원 이야기에서는 겨울철 음식물 쓰레기로 버렸던 감자가 싹이 나고 잎이 돋아 감자를 맺었다는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한참을 웃었다. 작가님이 감자를 캐니 작은 알감자가 친구가 캐니 커다란 감자가... 물론 우연한 결과로 나온 것이겠지만, 순간 민망하지 않았을까나.

텃밭을 가꾼다는 건 정원을 가꾼다는 것과는 다르다. 너무 공들여 꾸며진 정원은 솔직히 발을 붙이기가 힘들다. 작가님의 말대로 '어떤 집념'이 느껴지지만, 텃밭은 푸근해서 좋다. 텃밭에서 바로 수확한 야채는 온기가 느껴진다. 아마도 살아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겠지. 그런 생명력 넘치는 공간이 바로 텃밭이다. 그곳은 이미 작은 생태계를 구성한다. 그 작은 생태계 속을 들여다 보는 기쁨, 그건 아마도 가꿔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작은 사치가 아닐까.

이 작품은 4컷 만화를 기본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정말 많은 에피소드가 수록되어 있다. 들새 이야기나 가정채원 이야기를 비롯해 T마츠 연못 이야기, 가족 이야기, 완코 소바같은 음식 이야기, 과거의 추억담 등이 지루할틈 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렇게 빵빵 터지는 에피소드 사이사이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특히 자동차를 타고 떠나는 작가님의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배웅해 주던 사람에 관한 이야기며, 어두운 밤일지라도 빛나는 달이 있기에 푸른 밤하늘이 보인다는 작가님의 말이 가슴속으로 깊게 깊게 파고 들어 온다. 『토리빵』은 이렇듯 우리가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수많은 시간들의 의미를 되짚어 준다. 보려고 하지 않아서 보지 못했던 것들, 제대로 볼 줄 몰라서 지나치게 된 것들, 토리빵은 그런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고 있으면 작은 것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우치게 되고, 더이상 소홀히 여기지 않아야지 하는 작은 결심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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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일생 1
니시 케이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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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서른 중반이 되도록 애인도 없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사람에게 무슨 사연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따스한 시선보다는 약간은 삐딱한 시선으로 본다. 남자의 경우 서른 중반이 넘어도 혼자라면 일때문에라는 근사한 핑계거리를 달아주면서 말이다. 서른 중반의 애인도 없고, 결혼할 생각도 없는 여자는 연애나 결혼을 못하고 있는 것 뿐일까, 아니면 안하고 있는 것 뿐일까. 못한다는 말은 주로 타의적인 의미로 쓰지만 때론 못하거나 안하거나 두가지 모두 자의적인 판단에서 나오기도 한다. 지난 사랑의 상처가 너무나 깊어 다시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해 버리면 못하는 것이고, 그다지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 버리면 안하는 것이 되어 버리니까.

삼십대 중반의 도노조 츠구미는 도쿄의 대형전기회사에서 근무하는 엘리트 사원이다. 외모도 괜찮고 회사에서의 능력도 인정받고 싹싹하며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츠구미는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스스로는 소심하고 나약하며 겁쟁이라 생각한다. 그런 그녀에게 누군가가 찾아왔다.

시골에서 염색을 업으로 삼고 계시던 할머니의 장례식이 끝난 후, 츠구미는 할머니에게 별채의 열쇠를 받았다는 50대초반의 남자를 만나게 된다. 직업은 대학교수, 이름은 카이에다 준. 할머니와 어떤 관계였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하면서도 여전히 별채에 머무른다. 무뚝뚝하며 직설적이고 신경질적인 것 같으면서도 어린애처럼 장난꾸러기같은 면이 보이기도 하는 카이에다를 보며 무척이나 마음이 불편한 츠구미였지만 이렇다할 싫은 내색이나 싫은 소리조차 하지 못한채 그와 한지붕 아래에서 지내게 된다.

30대 중반의 여자와 50대 초반의 남자라면 나이차이가 꽤 많다. 내가 지금 30대 중반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살짝 충격이었달까. 나같으면 츠구미처럼 나이차이가 많은 남자에게 두근거릴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50대초반이면 울 아부지랑 몇 살 차이 안나기 때문에 더더욱!) 그치만 츠구미가 전에 사귀었던 사람 역시 유부남이었단 걸 떠올리면 납득이 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납득할만한 이유를 찾고자 한다면, 역시 인연이란 것으로 포장할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할머니와의 인연이 있던 남자가 이번에는 그녀의 손녀와 인연을 맺는다, 라. 뭐, 이런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일 수 있겠지.

처음에는 불편하기만 했던 한지붕살이도 몇달이 지나면서 점점 익숙해져가고, 도쿄에서 멀리 떠나 시골에서 장기휴가를 보내고 있는 츠구미 역시 시골생활에 익숙해져가기 시작한다. 대도시의 번잡함을 떠나 시골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다 보니 마음의 여유를 찾게 된 것이겠지. 그러면서 지난 사랑의 아픔도 조금씩 치유되어 가는 것 같지만, 카이에다가 피우는 담배와 예전의 그가 피우던 담배가 똑같은 브랜드란 걸 떠올리고 마는 츠구미의 마음은 쉬이 열릴 것 같지는 않다. 그런 츠구미에게 "연습이다 생각하고 날 상대로 연애라도 해보라고"라는 말을 하는 카이에다의 본심은?

로맨스물은 대개 비슷비슷한 설정을 가지게 마련이다. 실연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여자, 지난 사랑을 그리워하는 남자가 만나서 티격태격하는 동안 정이 들고 사랑하게 된다, 라는 것이 대부분의 설정인데, 이 작품도 그런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는 못한다. 게다가 20대의 발랄한 여성이 태클을 걸어온다거나 집에서만 보이던 모습과는 달리 일하는 모습이 반짝반짝 눈부시도록 멋지다거나 하는 건 너무 흔하디 흔한 것이라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마음에 든 건 이 두사람의 밀당도 재미있었고, 츠구미의 심리 변화도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아직은 완전히 마음을 열지 못한 츠구미는 의외로 직접적으로 부딪혀오는 카이에다에게 마음을 열수 있을까.

여자 주인공의 나이가 30대 중반이다 보니 솔직히 남일같지 않은 기분도 들었다. 물론 나와 츠구미는 하하나부터 열까지 다르지만 나이대가 비슷하다 보니 공감아닌 공감을 하게 된다. 나 같은 경우 누군가를 다시 만난다는 게 몹시도 두렵다. 뭔가를 새로 시작한다는 것도 쑥스럽기만 하다. 오랫동안 혼자 지내다 보니 싱글라이프가 더 편하고 즐겁기도 하다. 그것을 깨뜨려버리고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쌓인다. 츠구미 역시 현재 과부하 상태가 아닐까. 아니 어쩌면 나처럼 이런 나이에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다 다시 실패했을 때가 너무 두려운 건 아닐까. 이런 츠구미의 마음을 사르르 녹여줄 카이에다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역시, 로맨스물은 남자 쪽에서 확 끌어 당겨줘야 그 묘미가 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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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터 허니 - 뉴 루비코믹스 1078
키리시마 타마키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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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아악. 표지를 찬찬히 보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미부 센세, 당신 손이 지금 어디 있는 거... (쿨럭) BL계 작품들을 접하다 보면 과감한 표지 일러스트를 많이 보기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과감한 건 처음일세. 그렇다고 나쁘단 이야기는 아니고, 나름대로 괜찮긴 하지만 오래 쳐다보지는 못하겠다. BL계에 입문한지 수년이지만 역시 이런 건 부끄럽다니까. (푸힛)

키리시마 타마키의『비터 허니』는『머스터드 허니』의 속편이다. 소년지 편집을 원했으나 BL편집부로 발령이 나 매일매일 알몸 넥타이 출근의 위협 속에서 일하는 하네다와 남자인데도 불구하고 BL만화를 그리는 미부의 첫만남에서 연인이 되기까지의 이야기가 전작의 주된 스토리라면, 이번 작품은 연인 사이가 된 후 두 사람의 갈등이라든지 좀더 가까운 관계로 발전해 나가는 것이 주된 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미부가 남자란 것을 절대로 발설하지마란 명을 받은 하네다는 다른 출판사에서 근무하는 친구들을 만났다가 미부를 소개시켜달란 이야기를 듣는다. 하필이면 그때 걸려온 미부의 전화. 들키지 않으려면 되도록 빨리 끊는 게 상책이라 생각한 하네다는 얼른 전화를 끊지만 그게 미부의 오해를 사고 만다. 연인이 된지 수개월이 흘렀건만 아직 자신의 집으로 미부를 초대한 적도 없다.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전화를 후딱 끊는다. 친구에게 동료라고 소개한다, 등등의 사건은 미부를 의기소침하게 만들고 만다. 누군가를 사랑해서 연인이 되면 상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고, 더 많은 것을 공유하고 싶어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하네다의 경우 편집부장의 엄명도 있었지, 남자끼리지 이렇다 보니 미부를 누구에게 소개한다는 것이 참으로 난감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상황엔 어쩔 수 없지 않나? 미부도 좀 이해를 해야지. 동료로 소개되는 자신을 보면서 속상하기도 했겠지만, 하네다의 열렬한 고백이 미부의 근심걱정을 싹 덜어줬으니 일단 한 건 낙착!

미부와 하네다의 두번째 에피소드는 소년만화를 그리게 된 미부가 교토로 하네다와 동행취재여행을 떠난다는 내용이다. 온천에서의 밤을 기대했던 미부였지만, 예기치 못한 하네다의 행동에 미부는 몹시 마음이 상하고 만다. 솔직히 교토편의 이야기에선 하네다의 너무 소심한 행동이 이해되지 않아 나 역시 조금 화가 나기도 했지만, 나중에 하네다의 진심을 들어보니 그것도 일리가 있더이다. 역시 사람은 말을 하지 않으면 상대의 진심을 잘 모를 수 밖에 없달까.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일지라도 모든 부분에 대해 생각이 일치할 수는 없다. 그럴 땐 대화가 제일이지. 암만, 그렇고 말고.

꽃미남 스타일에 그려내는 작품마다 히트치는 인기 작가이지만 시도 때도 없이 젖가슴을 외쳐대고, 하네다만 보면 바보개가 되어 버리는 미부와 소심한듯 하면서도 대범한 BL만화 편집자 하네다의 달콤쌉싸름한 사랑이야기와 더불어 편집장의 정체도 드디어 공개! 깜짝 반전의 재미도 쏠쏠했던 작품.

음, 근데 책을 읽다가 동의하기 힘든 한 문장 발견. 난 BL작가가 남자라도 좋은데, 다른 사람들은 BL작가 중 남자가 있다면 그 환상이 깨지고 마는 걸까. 때때로 남성 작가들의 작품을 접해 면 여성 작가들의 작품과는 또다른 매력이 있어 난 좋기만 하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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