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눈뜬 자들의 도시>(Ensaio sobre a Lucidez)는 <눈먼 자들의 도시>(1995)의 후속작이다.
본인이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고 난 후 바로 읽은 작품으로, 사실상 <눈먼 자들의 도시>의 영화에 관심이 생겨 <눈먼 자들의 도시> 책을 구입했었다. 그때, 함께 구입한 것이 <눈뜬 자들의 도시>와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이다. 특히 <눈뜬 자들의 도시>는 하루동안 50% 파격세일을 하길래 질렀다.. ㅡㅡ; (충동구매)
그러나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눈뜬 자들의 도시>는 백색 질병이 발생하고 난 4년후의 이야기로, 이번에는 시민이 아닌 정부에 중심이 맞춰져 이야기가 진행된다.

지난 4년전 온 도시가 백색 실명상태일때 정부는 무엇을 했던가.
철저히 인권을 유린하고, 사람들을 감금하고 죽게 만들었다.
그후 사람들은 백색 질병에 대해 철저히 함구했다.
정부는 만족스러웠다.
선거일까지는...

선거일 나쁜 조짐이라도 있듯 세차게 쏟아지는 비. 저조한 투표율.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백지표가 75%였던 것.
그후 다시 치뤄진 선거는 더욱 참담헀다. 백지표가 85%이상이 나왔다.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계엄령을 내렸다.
시민의 의사 표현을 정부에 대한 테러쯤으로 생각한것...

이 책을 읽으며, 몇번이나 난 한쪽 입술끝이 비스듬하게 말려 올라가는 묘한 미소를 짓는 나를 발견했다.

국가와 정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에이브러햄 링컨이 게티즈버그 연설문에서 말한 '국민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정부'따위의 개념은 이미 없어진지 오래다.

국가와 정부는 단 1%의 소수의 사람과 기업만을 위해 존재한다.
그걸 위해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고 적절한 선전을 통해 국민을 우매하고 무지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백색실명상태에서 그걸 깨달았다.
그래서 눈을 뜬 자들은 자신의 의사를 백색 투표란 것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그건 국가와 정부측에서 보면 확실한 반역의 조짐일 뿐....

계엄령을 내리면 범죄율이 증가하여 불안에 떨게 되고, 도시는 피폐해질거라 생각했던 정부의 생각은 오만했다. 오히려 자율적으로 도시를 안전하게 수호하고 도시를 깨끗하게 만든건 시민들 자신이었다.

제일 가관인 건....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기 위해 정부가 스스로 폭탄 테러를 일으켰단 거다. 이렇게 보면 오히려 국가와 정부가 테러리스트가 아닌가.

국가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선량한 시민 한사람을 희생양으로 만들어 본보기를 보인다.
지금이 어느때의 독재 정권시절인가...
파시즘도 나치즘도 이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간간히 나치즘을 부활시키려는 신나치주의자들의 몸부림이 있긴해도..
대세는 이미 기울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짓은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는 현실의 단면일뿐이다.
누가 민주주의를 최고의 시스템이라고 했던가.
진정한 민주주의가 존재하지도 않는 현대는 민주주의의 개념조차 희박하다.

이 책이 읽기 쉬운 책이라고는 말 할 수 없다.
찬찬히 읽다 보면 저자의 천재성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리스 로마 신화나 성경에서 따온 구절이 눈에 띄기도 한다. 적절한 비유이지만, 사전 지식이 조금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 부분들은 책을 읽은 후, 아니면 도중이라도 좋다. 조금은 찾아보고 읽는 것도 이 책의 묘미를 한껏 살려줄 것이다.

본인이 읽으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던 부분이 하나 있다. 그것으로 <눈뜬 자들의 도시>포스팅을 마칠까 한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그곳으로 가서 당신 싸대기를 한 대 올려 붙이는 거요. 안됐지만, 나는 너무 늙어서요, 장관님. 만일 당신이 내무부장관이 된다면, 싸대기를 올려 붙이는 교정방법에는 연령 제한이 없다는 걸 알게 될 거요. 악마가 그 이야기를 듣지 않게 하십시오, 장관님. 악마는 귀가 아주 밝아 큰 소리로 이야기 할 필요도 없소. 그럼 우리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가호를 빌어봐야 소용없소. 원래 신은 날 때부터 귀머거리거든.

                                                               내무부 장관과 시장의 대화 中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눈먼 자들의 도시(Ensaio sobre a cegueria / 1995)는 영화 개봉소식에 관심이 생겨 원작을 보겠다고 해서 선택한 책이다.

일단 작가 주제 사라마구나 눈먼 자들의 도시에 대해서는 아무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책을 읽기 시작헀다.

본문에는 사람들의 이름조차 없다. 따옴표조차 없다. 물음표도 없다.
다만 마침표와 쉼표만 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누구의 말인지 조차 구분이 잘 가지 않을 정도다.
집중하지 않으면 누구의 말인지 헷갈린다.

처음엔 이런 책의 서술방식에 익숙치 않아 조금 애먹었지만, 눈에 익으니 그나마 수월하게 읽었다.

사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 책은 충격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들...

갑자기 눈이 멀게 된다면? 모든 도시가 눈이 멀게 된다면?
그속에서 나만이 눈을 볼 수 있는 상황이라면?

어느쪽이 더 나은 걸까?
아니, 더 나은 쪽이 있기나 할까?
모든 사람이 눈이 먼 상황에서 나 혼자만 볼 수 있다는 것도, 모든 사람들처럼 내가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는 것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충격일테지..
아니, 충격정도로는 표현할 수 없겠다....

사람은 시력이란 수단에 대부분을 의존해서 살아간다. 다른 동물과는 달리 인간은 약하다. 약하기에 인간생활에 적합한 것들을 만들어냈고, 그 것에 의존해 살아가면서 육체적인 능력은 점점 퇴화되어갔다.

그런 상태에서 시력이란걸 잃어버린다면.... 사람은 무력해진다.
물론 처음부터 시력이 없었더라면 상황은 좀더 다르다. 실제로 시각장애인들은 일반인보다 청력이 월등하게 뛰어나다.

갑자기 눈이 먼 인간은 무력해졌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
격리수용소는 어느새 바깥세상이 돌아가는 것도 똑같은 식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자신을 위해 남들을 속이고, 폭력을 사용해 사람들을 지배하고 또 폭력을 사용하는 사람에 빌붙어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고..

인간들은 쉽게 익숙해진다. 갑자기 눈이 멀어버린 상태에 적응하면서 다시 본성이 드러났다.
나아가 눈이 멀게 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남자란 동물의 본능은 여자들을 유린하고...
구역질이 났다.
솔직히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젠장....
남자들이란 겨우 생각하는 게 그거냐?
구역질 난다.

격리 수용소를 탈출해 나온 사람들에게 도시는.. 쓰레기였다..... 이미.
인간의 문명이란 이미 필요없었다.
깨끗한 물도 전기도, 먹을 음식도, 음식을 익혀먹을 불도 없다.
아니, 그걸 떠나 눈이 보이지 않으므로 생존조차 불투명하다.

아아.. 난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갑자기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난 아마도 꼼짝도 못하겠지...
한발 내디딜 용기조차 없겠지....

두려운 일이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우린 인간들은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지만, 세상을 보고 있지 않기도 하다.
즉, 자신이 보고 싶은 건만 본다.
아니, 자신에게 있어 보고 싶은 것만 보인다.
그런 면에서 우리 인간은 그 자체로 눈먼 자들이다.
마음의 눈이 먼 자들...
나 역시 마음의 눈이 멀어 버린 자일지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련님 클래식 레터북 Classic Letter Book 5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육후연 옮김 / 인디북(인디아이) / 200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련님』은 내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중 두번째로 읽은 작품이다.
일단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吾輩は猫である)』가  나와 나쓰메 소세키와의 첫만남이었다.

음.. 『나는 고양이로소이다(吾輩は猫である)』같은 경우, 번역본임에도 불구하고, 어려웠다. 솔직히 하이쿠가 뭔지도 모르는 나이기에.. 그리고 현학적인 말로 뒤범벅된, 그리고 그런 말 속에서 풍자를 끌어낸 점이 매력적인 소설이긴 했지만... 그래도 어려워서 두번째 읽을때도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ㅡㅡ;

그에 비하면 『도련님』은 몇시간만에 술술 읽어내려갔다. 물론 분량도 적지만, 내용자체가 재미있어 금방 읽게 된 것이다.
그러나 코믹한 요소뒤에 감춰진 놀랄만한 해학적 요소와 풍자를 찬찬히 음미하다 보면 이 소설이 이야기 하고픈 것이 가벼운 것 만은 아니란 걸 깨닫게 된다.
즉, 정의가 언제나 승리하지는 않는다는 진실! (현실적으로 말이다)

시코쿠 근처의 작은 마을과 학교는 대략 이 세상의 축소판이요, 만나는 사람들은 이 세상 온갖 인간군상의 집합이다. 따라서 많은 등장 인물이 등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으면 아~~ 역시 그렇군.. 이라고 하며 공감할 부분이 많을 것이다.

어딜가나 무모하게 나서는, 그리고 그걸 정의라고 믿는 인간(도련님)이 있기 마련이고, 어디가나 속을 모르는 너구리같은 인간(교장)이 있기 마련이고, 속과 겉이 다른 인간(빨강셔츠 교감)이 있기 마련이고,  그런 자 옆에 붙어 아첨하는 인간(미술선생) 이 있기 마련이고, 정의파인 인간(멧돼지선생)이 있기 마련이고, 이런들 어떠리 저런들 어떠리 한 인간(끝물호박 선생)이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여기 나오는 학생들 집단은 집단이란 우월성을 등에 업고 한사람을 괴롭이는 인간집단이다. 개개인으로서는 감히 앞에도 나서지 못하는 객기어린 인간들...

정의로운 도련님과 멧돼지 선생은 응징에는 성공하나, 결국 사회의 벽에 막혀 응징은 자기만족으로 끝난다. 결국 두사람이 할 수 있었던 건 개인적인 응징뿐...
사회란 그리 만만치 않은 곳이다.. 라는 걸 느끼며 도련님과 멧돼지 선생은 학교를 그만 두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은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읽고 나면 입가에 번지는 미소와 함께 약간의 씁쓸함도 느끼게 될지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겐지와 겐이치로 A - 대단한 겐지
다카하시 겐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겐지와 겐이치로는 A, B 두권 세트로 『A : 대단한 겐지』, 『B : 짓궂은 겐이치로』로 이루어져있다.
이 책을 택한 이유는... 단순히 귀엽고 사랑스러워할 테디베어가 사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책 표지에 반했다고나 할까... 한마디로 뭔가 새로운 느낌이었다.
그 책 내용은 역시나....

사실 포스트 모더니즘 문학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 책에 대해서 뭐라고 해야할까.. 사실 포스트 모더니즘이 뭔지 확 와닿지 않는다. 물론 사전적 의미정도야 알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무엇, 그렇다..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것이 표방하고 있는 심층적 의미를 난 아직도 잘 모르겠다.
따라서 포스트 모더니즘 문학의 최고봉이다... 뭐 이런 수식어는 집어 치우고, 그저 책을 읽고 받은 느낌으로 글을 포스팅해볼까 한다.

일단 이 책에 대한 사전지식 하나.
이 책은 1세기전에 살았던 미야자와 겐지(宮澤賢治)의 동화책을 모티브로 따왔다는 것..
그러나 공교롭게도 난 이 책을 읽으면서 타카하시 켄이치로와 미야자와 겐지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내공부족 ㅡㅡ;)

미야자와 겐지의 대표작으로는 『은하철도의 밤』,『주문많은 요리점』,『북극쥐의 모피』,『구스도부리코의 전기』등등이 있다.
타카하시 겐이치로의 작품으로 유명한 것은 『존 레논 대 화성인』,『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등이 있다. (그러나, 읽어본 작품이 하나도 없다. 다음에 꼭 읽어봐야겠다..)

목차 (괄호안은 간단한 내용)

오르베츠와 코끼리 :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살며 코끼리를 키우는 남자 오르베츠 이야기
기아 진영 : 어느날 우연히 TV를 보다 자살하기를 마음먹고 자살한 4명의 남자와 여자 이야기
고양이 사무소 : 변변한 직장없이 살던 아버지가 취직한 곳은 고양이 사무소
주문많은 요리점 : 책이라곤 읽지 않던 에로 비디오 조감독
베지테리언 대축제 : 치매걸린 아내를 양로원에 보낸 후나하라의 국제 노인회의 참석
첼로켜는 고슈 :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채 노숙생활을 하며 첼로를 켜는 고슈
스물엿샛날 밤 :치매에 걸려 양로원에 간 아톰, 더이상 날지 못하는 뚱뚱한 늙은이 피터팬과 한때는 세상의 영웅들이었던 배트맨, 수퍼맨등등 여러 히어로의 말로
이하토브 농학교의 봄 : 늙은이들이 갑자기 젊어져서 결국 무로 돌아가는 이하토브 마을이야기
축제의 밤: 이건.. 뭐라고 설명해야할지 몰라서 패스
포라노 광장: 책읽는 원조교제 소녀
수선월의 4월 : 설동자이야기
구스코부리코의 전기 : 관찰당하는 나와 관찰하는 인간의 관계

내가 써도 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하여간, 이 책을 처음 읽은 느낌은 이랬다. 그러나 도통 이해가 안되서, 결국 한번 더 읽었지만 그래도 아리송할 뿐...
다만 한가지...
이 이상한 이야기들은 지금 일본의 현실적인 문제- 비단 일본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있을 법한 문제들-를 다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몇가지 이야기만 따로 더 살펴보자면...

사람과들과의 연결접점을 찾지 못한채 코끼리를 키우는 오르베츠는 사람도 키우는 대상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와 함께 살던 여자들은 " 당신, 나를 사육할 생각이었지? 흥 안됐네~"란 말만 남기고 나가버렸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란 사육과 사육당함의 관계가 아니라 공존의 관계란 걸 모르는 오르베츠는 결국 또다시 애완용 인간이란 소리에 솔깃해진다. 이 이야기는 결국 현대 인간들의 사람과의 관계 단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기아 진영의 경우 우연히 TV를 보다 자살하기로 마음 먹은 4명의 젊은이들 이야기다. 충동적으로 자살을 생각하고 생각없이 자살해버리는 현대 인간들의 나약함들을 이야기 하고 있는 듯 하다.

고양이 사무소의 경우, 이제껏 변변한 일 한번 해본적이 없는 가장이 처음으로 직장을 가지게 된 이야기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아버지들의 이야기다.

주문많은 요리점은 책이라곤 도통 본적이 없는 에로비디오 조감독이 다음 비디오 촬영을 위해 책을 사러가지만, 애시당초부터 책제목부터 제대로 아는 게 없다. 근데... 사실 이 이야기가 뭘 말하고 싶어하는 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베지테리언 대축제의 주인공 후나바라의 아내는 요양원에 있다.  그는 전형적인 가부장적 존재로 속옷까지 아내가 갈아입혀줄 정도였다. 그런 아내가 요양원에 가지 아쉬운거 투성이다. 병든 노모를 모시지 않으려는 아들과 며느리, 아내의 존재를 단지 도구로 생각하는 남편.. 씁쓸할 따름이다.

첼로 켜는 고슈는 노숙자들의 이야기이다. 일명 홈리스들 이야기. 돌아갈 곳도 없고 머무를 곳도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야기...

스물엿샛날 밤도 씁쓸한 느낌이 들긴 마찬가지다. 한때는 시대의 영웅으로 살았던 이들이 늙고 지쳐 양로원에 보내지고, 그들을 위해 위문공연을 온 꼬마들은 '빨리 죽어, 치매 영감들, 아무 도움도 안되는 것들, 귀찮은 것들, 쓰레기들.'이란 생각을 한다.
우리 아버지들은 어린 시절 우리의 영웅이 아니었던가.. 그런 영웅들이 늙고 병들었다고 버려졌다. 그리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생각한 건 이정도다.. 물론 사람마다 다른 해석이 있을 수 있고, 평론가들의 입장은 나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은 읽는 사람나름대로 받아 들여지는 것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문학사상 세계문학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199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뭐랄까..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2004년에 한번 읽었고, 요번에 짬을 내서 다시 읽었다.
근데 이상하게도 이 책은 한번 집어들면 일주일은 꼬박걸린다.
아무래도 이미 100년전에 씌여진 소설인데다 워낙에 어려운 말로 뒤범벅된 소설이라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다. 익숙치 않은 용어도 많고... ㅡㅡ;
게다가 하이쿠나 우타이는 잘 모르므로...
음.. 이런 비유면 적당할까? 우리나라의 1900년대의 신체시나 신소설등을 접하는 기분이다. ^^

어쨌거나 고양이의 시각에서 본 인간사는 참으로 쓸데 없이 복잡하고 위선적이다. 물론 등장인물들중 하나같이 멀쩡해 보이는 인간은 없다. 전부 어딘가 비뚤어지고 모자란 인간투성이다. 사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지만...

예전에 읽을때는 일하는 짬짬이 읽느라 전투적으로 읽어서 참된 재미를 사실 못느꼈다. 사실 좀 지루한 면이 있기도 하다. 번역판 소설이긴하나 분량이 500쪽이 넘으므로...
게다가 이상한 주제로 떠들어대는 걸보면(아마도 내가 일본인이 아니라서 일본의 풍속이나 문화를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최 이해도 안되고 무슨말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 면이 꽤나 많은 부분을 차지 한다. 특히 메이테이가 나오면 어이없을 정도로 허풍을 치므로 더욱 더 그러하다...
그런부분을 잘 고려해서 끝까지 읽어본다면 이 소설의 묘미가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나 역시 두번째 읽으면서 혼자 많이 웃었다. 첨엔 그냥 그랬는데, 두번쯤 읽으니 이 작품의 풍자성이 눈에 쏙쏙 들어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소설에 관심을 가지신 분이라면 한 번만 읽을게 아니라 두 번정도는 읽어보는게 낫지 않나 하고 권한다. 

나쓰메 소세키는 100여년전에 이 소설을 썼다. 즉 메이지 시대, 일본이 서양에 국호를 개방하고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던 혼란의 시기였다. 따라서 그 당시 지식인들의 설 자리가 좁아져갔다. 그리고 새로이 부흥한 상인세력등... 그전에는 구샤미 선생이 그러하듯 사업은 천한 것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세상이었다. 그러나 이미 돈이 중심이 되어 가는 사회...등등.. 이런속에서 책이나 파던 서생들이라든지 하는 사람들이 설 곳이 없어졌다는 의미가 되겠다. 이러하다 보니 오히려 구샤미, 메이테이, 간게쓰 같은 사람들(逸民、いつみん:세속을 피해 조용히 사는 사람들)이 더 생겨났는 지도 모른다.

100여년이 지난 오늘날...
사회의 단면은 이 시대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오히려 더욱더 '돈과 다수에 복종하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을 뿐이다. 구샤미 선생는 속세에 달관한게 아니라 적응을 할 수 없었을 뿐이란 생각이든다. 겉으론 달관한척 무심한척 하지만 사실은 변화하는 세상이 너무도 무서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무리 달관한척 해도 신선이 되지 않는 이상은 그건 척일뿐이니까.  

이건 여담인데...
우리 집에도 고양이 두마리가 있다. 흠.. 혹시 우리 고양이도 이런 시각으로 우릴 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역시 야옹소리만 한다는게 다행이다. (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