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톰의 슬픔
테즈카 오사무 지음, 하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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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톰의 슬픔. 원제는 ガラスの地球を救え. 굳이 뜻을 해석해보자면 유리처럼 연약한 지구를 구해라.. 라는 뜻 쯤 될까요...

데즈카 오사무.. 그는 우주소년 아톰(원제 : 철완아톰/鐵腕アトム)과 블랙잭, 밀림의 왕자 레오등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있는 만화가입니다.
저도 어린시절 우주소년 아톰과 밀림의 왕자 레오등을 보며 자라났구요.
당시에 아톰이 다치거나, 울면 저도 울고, 레오가 다른 사자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면 또 울고...
울다가 웃다가 하면서 이 만화들을 봤던 기억이 납니다.

데즈카 오사무가 사망한지도 벌써 20년이 됩니다. 그리고 이책은 그의 사후 1996년에 간행되었고,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출판된 건 올해 초입니다.

인터넷서점에서 어떤 책을 살까하고 고민하던중 책 제목이 눈에 띄여 이 책을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왜 굳이 이 책의 원제를 고수하지 않고, 아톰의 슬픔이란 제목으로 바꿨을까... 하고 생각해보니, 아톰이란 이름이 우리에게 꽤나 익숙한 것이라서.. 그랬지 않았나 싶군요...
언뜻 책 표지만 보면 애니메이션 아톰에 관한 이야기같지만, 사실 내용은 다릅니다.

책내용은 데즈카 오사무의 어린 시절 이야기나 만화를 그리게 된 동기, 그리고 그가 만화를 통해 전달하고 싶어 했던 메세지등등이 주된 내용입니다. 아톰이란 만화를 통해서는 과학의 발달에 따른 폐단을 블랙잭을 통해서는 인간의 존엄과 생명에 대한 메세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타의 만화에서는 전쟁의 폐해와 상처들도 다루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도 자연보호와 전쟁, 과학기술의 문제점에 대한 메세지가 담긴 작품이 꽤나 많습니다.  원령공주,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미래소년코난등등...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건 우리가 무심코 하는 행동에 지구가 얼마나 병들어 가고 있는가, 과학기술의 발달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등등의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문명의 이기가 분명 편리한 점은 많지만, 역으로 보면 오존층은 파괴되고, 북극의 빙하는 매년 얇아지고 있으며, 해수면의 높이는 점점 올라가고 있습니다. 정말 이런 식이라면, 지구는 불과 몇세대안에 파괴되어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그런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북극곰은 30년안에 멸종할 것이라고... 지구 곳곳의 아름다운 생명체가 지금도 알게 모르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눈에 띄지 않을 뿐이죠.
지금 당장 우리 세대에서는 별 문제가 없을지는 몰라도 긴 안목을 가지고 내다 본다면 지금 우리는 지구를 학대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지구는 우리 생명의 근원인데도요.

저는 이 책의 내용이 모두 맘에 들었던 건 아닙니다. 특히 전쟁이야기는 좀 마음에 안들었습니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중국에 대해 침략전쟁을 벌였던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미군의 공습이란든지 그런 얘기만 써놨더군요. 그래서 미국이란 나라를 무서워 했고, 일때문에 미국에 갔을때도 두려웠다.. 라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우리입장에서 보면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이므로 일본은 우리에게 그런 존재였었을 겁니다. 물론 지금은 일본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지만 말이죠..뭐, 저도 일본어를 공부하고, 일본친구를 사귀고, 일본 애니, 만화, 영화, 드라마, 가수, 성우등의 광팬이라 뭐 달리 할말은 없지만 말입니다... ㅡㅡ^  즉, 아픈 역사때문에 무조건 일본이란 나라를 배척하는 입장은 아니란 겁니다.

말이 좀 샜군요.. 다시 돌아가서..
일본이 진주만공습을 하지 않았다면, 아니 애초부터 전쟁이란 걸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세상은 좀더 평화로울 수도 있지 않았나.. 뭐, 그렇다는 이야깁니다.

이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일건가에 대한 문제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입니다.
이 책이 좋다 나쁘다 역시 개개인의 문제입니다.
전 지구환경보호와 과학기술 발달에 따른 문제에 대한 시각에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이 책의 모든 내용에 관해서는 아닙니다. 제 주관적인 판단일 뿐이죠.

다음은 여러분 몫입니다.

책의 내용중 한 부분을 인용하는 것으로 포스팅을 끝낼까합니다.

결국 『우주소년 아톰』에서 말하고자 한 것은 과학과 인간의 소통문제였습니다.
아톰은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로봇입니다. 아톰이 인간이 되고 싶어 학교에 다니는 장면이 있는데, 수학 문제는 순식간에 풀어버리고 운동 실력도 월등히 뛰어납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아톰은 엄청난 소외감을 느끼지요. 그 소외감과 슬픔을 아톰이 혼자 빌딩 위에 걸터 앉아 있는 모습으로 표현했는데, 그런 부분은 전혀 주목받지 못하고 과학의 힘이라는 점만 부각되었습니다.
어쩌면 오늘날의 인류는 진화의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 아닐까요? 예전처럼 '하등'한 동물로 존재하는 편이 좀더 즐겁게 살고 편안히 죽을 수 있는 길일지 모릅니다. 그랬더라면, 지구를 이렇게까지 몰아붙이는 일도 없었을 테지요. 인간은 잔인하고, 거짓말 잘하고, 질투심 많고, 타인을 믿지 않고, 변덕은 심하고, 사치스럽고, 동료들끼리 잔혹하게 죽이고 죽임당하는 추한 동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인간이 사랑스럽습니다. 살아 있는 것 모두가 사랑스럽습니다. 우리가 이미 잘못된 길에 발을 들여놓았을지라도, 저 순진 무구한 어린이들이 있기에 나는 도저히 인류의 미래를 포기하거나 방치할 수 없습니다.

                                                                     「아톰의 슬픔」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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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이 : 세계를 감동시킨 도서관 고양이
비키 마이런.브렛 위터 지음, 배유정 옮김 / 갤리온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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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중서부의 아이오와주, 거기에서도 작은 농촌마을 스펜서.
어느 겨울날, 그것도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겨울 날 밤.
도서관 도서반납함에 버려진 작은 새끼고양이.

그 차가운 반납함에서도 생명의 줄을 놓지 않았던 듀이는 겨우 8주된 새끼 고양이였다.
처음부터 사람을 좋아헀고, 사람의 사랑을 받을 줄 알았던 작고 여린 생명은 그렇게 도서관에서 살기 시작했다.

처음 읽기 시작했을때는 고양이 얘기가 주로 나올 줄 알았다. 물론 구입 이유도 단순히 고양이 이야기이기 때문이었다.
미국에서 2008년에 출판되었고, 우리나라에 번역 출판된건 2009년 2월 2일.
 

어쨌거나!!!
단순히 듀이라는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비키 마이런이라는 한 여성의 삶과 무너져가는 농촌 마을 스펜서가 어떻게 다시 활기를 찾게 되었나, 그리고 그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변화와 그러면서도 그들이 지켜가는 가치관들에 대해 두루 나와 있다. 그리고 듀이가 그 변화에 끼친 정신적 영향까지...

반려동물을 키워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 까짓 고양이 한마리가 뭐가 대수냐?"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주는 보답을 바라지 않는 헌신과 사랑은 굉장한 충족감을 준다.
단지 털을 쓰다듬는 것 만으로, 따뜻한 체온을 나누는 것만으로 행복해진다.

이 책의 화자 비키 마이런은 어찌보면 상당히 불행한 삶을 살아온 여성이다.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딸을 하나 두었지만, 남편의 알콜중독으로 이혼 그후 오랜 세월을 싱글맘으로 살아온다. 게다가 여성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자궁과 난소적출 수술, 그리고 결국은 유방암으로 양쪽 가슴을 다 잘라내야 하는 아픔까지.. 게다가 어머니는 백혈병으로, 큰 오빠는 자살, 작은 오빠 역시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하나뿐인 딸과도 소원한 관계.....

사람이 오래 살아봐야 백년남짓,,, 그 짧은 세월동안 한 여성이 겪은 일치고는 너무도 힘들고 불행한 삶이었지만, 그녀는 듀이를 만나고 달라졌다. 듀이를 사랑하고, 듀이에게 사랑받으면서 다시 행복해진 것이다.

비록, 지금 듀이는 세상에 없지만- 19세의 나이에 위종양으로 안락사- 듀이가 남기고 간 사랑과 행복한 추억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리고 스펜서 주민들과 세계 곳곳의 사람들 역시 듀이를 추억하고 있다.

듀이는 미국내뿐만 아니라 영국, 캐나다, 일본 등지에까지 알려진 유명한 도서관 고양이이다. 현재도 미국내 열 몇 갠가의 도서관에 고양이가 있다고 한다.

사실.. 도서관과 고양이...
어찌보면 참 어울리지 않는 조합일지도 모른다.
고양이란 녀석들은 보기엔 아름답지만, 그 털이 정말 감당이 안될 정도이므로..

우리 집에 있는 - 정확히 말하자면 부모님댁- 곤냥 마마들은 단모종임에도 불구하고 털 날림이 장난이 아니다. 고양이 방은 하루에도 몇번씩 청소기를 돌리지 않으면 안될 정도이고, 한번 안기라도 하면 옷은 금세 앙고라 털옷이 되는 판이다..

그럼에도 고양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은... 뭘까...

고양이를 키워보지 않으면 모른다. 난 개가 다섯마리 있지만, 고양이와는 아주 다르다.
개는 헌신적이고 보답을 바라지 않으며 충직하다.
그러나 고양이는 사람을 밥주는 하인 부리듯 하고, 도도하며, 자기가 원할때만 사람곁으로 온다. 
그럼에도 고양이는 매력있다. 키워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매력.

사실.. 듀이는 고양이중 별난 녀석일지도 모른다.
스스럼없이 사람에게 안기고, 사람을 사랑할 줄 알던 녀석이므로.
그래서 도서관 고양이가 된 녀석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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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의 편지
루쉰 외 지음, 리우푸친 엮음, 임지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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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루쉰의 편지는 몇 년전 구입한 책입니다. 근데 말이죠.. 왠일인지 진도가 나가지 않아 앞부분을 좀 읽다가 책꽂이에 고이고이 모셔뒀던 책이랍니다. 음... 게다가 요즘 책을 많이 읽다보니 책값이 들어가는 것도 만만치 않고,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단 생각이 들어 책꽂이에 있는 책들을 다시 꺼내 읽고 있는 중이랍니다.

루쉰의 편지는 3일정도 읽었습니다. 원래 제 성격은 책을 하루에 몰아서 보지만, 루쉰의 편지는 천천히 읽었답니다.
차례에도 보이듯 연서(戀書)라고 되어 있지만, 우리 생각하는 그런 love letter와는 사뭇 다릅니다. 요즘 사람들은 사랑한단 말을 입에 달고 살죠. 지겨울 정도로 들리는 말이 사랑한단 말이죠. 전 그런게 싫습니다. 사랑한단 말보다는 좋아한다는 말이 더 좋고, 말로 표현하기 보다는 행동해 주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수천번 수백번의 사랑한다보다는 한번의 행동에 더 감동을 받죠.

루쉰의 편지도 역시 그렇습니다. 온갖 사랑에 대한 수식어로 가득한 편지가 아니라. 상대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 걱정, 배려 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말보다는 오히려 그 시대 중국이 처한 사회적 문제, 정치적 문제, 교육문제로 쉬광핑과 토론하는 듯한 느낌의 편지도 많습니다. 초기의 편지들은 사제 관계에서 출발했으므로, 두사람의 사상적 교류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미 결혼한 상태였던 루쉰은 쉬광핑을 사회의 눈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조심스러운 표현을 썼습니다. 그러나 그런 속에 담겨 있는 두 사람만의 생각, 표현들이 저를 슬며시 웃음짓게 만들었습니다. 나중에는 두 사람만의 호칭을 쓰는데요, 어찌보면 참 달달합니다. 루쉰은 처음에 광핑형이라는 호칭을 쓰다가 나중에는 꼬맹이, 작은 고슴도치, 작은 연꽃등의 호칭으로 쉬광핑을 부릅니다. 근 100년에 존재했던 중국의 위대한 사상가이자 작가 루쉰이 그런 표현을 쓰다니... 역시 그도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루쉰의 편지는 필히 정독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문화혁명당시의 사회적 배경 지식도 있으면 더 좋습니다. 책에 주석이 자세히 달려 있고, 엮은이인 리우푸친의 편지와 일기에 대한 해석부분이 잘 되어 있어, 읽는데 무리는 없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 편지는 단순한 러브레터가 아니니, 그런 책으로 생각하고 읽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전, 두사람의 편지속의 사상과 마음의 교류를 보면서, 아.. 이 두사람은 정말 행복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의 정신과 사상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지이자 평생의 반려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행운이고 행복이죠. 특히 나와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여간해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 여러분도 루쉰의 편지를 한 번 곰곰히 읽어보세요. 사랑의 수식어로 가득한 편지보다 따뜻한 마음이 담긴 편지가 더 감동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실겁니다.

아마도... 이 책을 읽고 나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혹은 우정을 나누고 있는 친구에게 그리고 가족에게 편지를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길지도 모르겠네요..
저도 그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단 ..... 생각이 들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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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Lemon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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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은 화자가 두 사람이다. 마리코와 후타바.
이 둘의 시점이 왔다갔다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분신은 뭐랄까... 과학 미스터리소설의 냄새를 풍기지만, 실제 말하고자 하는 건 인간이란 존재의 의미이다.

어린 시절 행복한 가족이 있었던 마리코. 그러나 마리코가 나이를 먹어갈 수록 엄마가 점점 이상해졌다. 까닭없이 슬픈 얼굴을 하거나, 마리코를 쳐다보는 시선이 점점 달라져 갔던 것.
그러던 어느날 집에 가스폭발로 보이는 화재가 나 엄마는 사망한다. 마리코는 아빠에게 엄마의 사망원인에 대해 물어보지만 아빠는 가르쳐 주지 않았다. 마리코가 대학 1학년이 되었을때 할머니의 방에서 발견한 유품을 근거로 마리코는 엄마가 왜 자살했는지에 대해 조사해 나간다.

후타바는 대학 2학년생으로 밴드의 보컬. 가족은 간호사인 엄마뿐이다. 어느날 후타바는 TV에 출연하게 되고, 그로부터 얼마 뒤 엄마는 뺑소니 사고를 당해 사망했다. 엄마의 사망 원인과 자신의 아버지의 존재를 찾아 홋카이도로 가게 된 후타바.

마리코와 후타바....
두 사람이면서 한 사람인 두 사람.
결국 둘이 찾아헤매던 건 같은 것이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유일한 인간이 아니다.
그러면 이런 인간 존재에는 어떤 가치가 있는 걸까?
루이비통의 이미테이션이 싸구려로 팔리듯, 아무리 귀중한 문서라도 복사본은 간단하게 파기되듯, 그리고 위조지쳬가 화폐로 통용될 수 없듯이 내 존재에도 이렇다 할 가치가 없는 게 아닐까?

                                                                                      -본문 中

두 사람이 깨달은 건.. 엄마라는 존재가 자신들에게 주었던 사랑.
그리고 인간이란 존재가 가진 근본적인 의미.

뭐랄까.. 읽는 내내 흥미진진했던 레몬은 역시 결말은 독자 스스로의 판단에 맡겨두었다.
이 둘이 결국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이 없다.
깔끔한 결말을 원하는 독자라면 이런 식의 결말이 분통터질지도 모른다.
짜증날지도 모르지만...
사실상 어떤 결론을 낼 수 있겠는가...

세상은 아니 우주는 넓다. 인간이 감히 측량하지도 못할 만큼 넓고, 그 세계는 미지다.
그런 우주에서 티끌한점 크기도 안되는 인간이지만, 그 존재가치는 어디에 있는 건가.
존재하는 만물에는 그 나름의 가치가 있다.
어떤 식으로 존재가치를 높일 것인가 하는 건 인간 스스로에게 달린 문제겠지만 말이다.

세상에는 자신과 꼭 닮은 분신이 세 명 존재한다는 말도 있고, 우주에는 차원이 여러 개가 존재하므로 이 세상과 맞닿은 다른 세상에는 또다른 내가 존재한다는 그런 말도 있지만...
볼 수 없으므로 믿지 않는다, 믿지 않으므로 존재하지 않는다.. 뭐, 이런 말은 그만 두자.
내 분신이 몇이든, 다른 차원에서 내가 살든 그건 나랑 상관없다.
다만 중요한 건, 내가 지금 발을 디디고 살아간다는 점이 중요하다.
현세가 중요한 거지, 내세가 중요하단 말도 아니다.
지금 현재 최선을 다하는 게 가장 중요한 자세가 아닐까.
비록 상처투성이의 구멍난 삶이라도....


여기서 TIP하나!
우리나라에서 출판되면서 책제목이 레몬으로 바뀌었는데, 레몬은 마리코와 후타바의 접점이라고 할까. 서로를 모르는 상태에서도 유일하게 이어져 있는 접점...
뭐, 궁금하면 직접 읽어보는게 제일 낫다고 생각하지만...

결론은 스릴이나 미스터리함.. 뭐, 이런 면에서는 조금 부족할지도 모르지만, 이 소설은 그 너머에 있는 의미를 곰곰히 생각하게 만드는 수작이라 할 수 있겠다.
(절대 과학소설은 아니니, 그런 면으로 기대하지는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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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시 - 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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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시의 표지는 참으로 강렬하다.
붉은 색 표지와 머리에서 풀이 자라는 소녀의 기괴한 뒤틀린 몸.
표지는 나의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일본호러 대상 수상작이란 말에 끌리기도 했다.
워낙 요괴이야기나 귀신들 이야기를 좋아하고, 또 호러라면 사족을 못쓰는 나이기에, 이 책을 구매할때 나는 아무런 망설임이 없었다.
그리고 나의 판단을 옳았다.

이 책은 바람의 도시과 야시라는 제목의 두 가지 중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단 두 소설을 따로 살펴 보기로 하자.

끝없는 미로, 고도

고도는 귀신의 길, 죽의 자의 길, 혼령의 길, 나무 그림자의 길, 신의 통행로등으로 불리는 길이다. 그곳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고, 누구나에게 보이는 길도 아니다.
길은 미로처럼 뻗어 있고, 그 길을 완전히 아는 자는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다.
빌딩 사이의 조그마한 틈이 고도와 연결되기도 하고, 숲이나 덤불 속에서 고도와 연결되는 길이 열려있기도 하다.

어린 시절 우연히 벚꽃놀이를 갔다가 고도로 들어가게 된 소년인 <나>는 열두살때 가즈키와 다시 고도로 들어가지만, 출구를 찾지 못하고 미아가 된다. 분명히 옆으로는 현실 세계가 보임에도 불구하고 통로가 아니면 절대로 나갈 수가 없다.

나와 가즈키는 렌이라는 영구방랑자와 만나, 고도를 빠져나가려 하지만, 고모리라는 사람때문에 가즈키는 죽음을 맞게 된다. 고도안에 존재하는 비술의 사원을 찾아 헤매지만, 가즈키를 살릴 수가 없다.

더불어 동시 진행되는 영구방랑자 렌의 이야기는 렌의 출생의 비밀을 담고 있었다. 고도밖으로는 한발짝도 나갈 수 없고, 영원히 미로같은 고도를 여행하다가, 죽으면 나무가 되어 세계를 넘나드는 바람이 될 운명을 가진 렌.

고도에 등장하는 렌의 비밀은 참으로 미묘하게 서글폈다.
반면, 고도에서 태어나 고도를 끊임없이 방랑하는 렌의 삶은 어찌보면 참으로 낭만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아마도 <나>와 가즈키도 그런 모습에 동경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면 고도여행을 오자던 가즈키는 고도를 영원히 떠날 수 없게 되었다.

<나> 역시 고도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결국 자신이 살던 세계로 돌아온다.
동경은 동경으로 끝날뿐....

조릿대 숲, 신사 뒤편의 덤불, 숲, 빌딩 사이의 작은 틈...
이런 곳을 통해 나가면 낯선 세계가 등장한다.
이러한 설정은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일본 소설속에서 간간히 등장하는 설정이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터널을 지나, 메마른 하천을 지나면 신들의 온천이 나오고, <이웃집 토토로>는 덤불을 빠져나가면 커다란 녹나무가 있고, 그 구멍속에 토토로가 살고 있다. <모노노케 히메>의 경우 깊은 숲속에 정령들이 사는 곳이 있다. 그곳에는 수많은 신들이 살지만, 인간들이 그곳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거울나라의 앨리스는 토끼구멍이나 거울을 통해 다른 세계로 가기도 했다.

고도도 마찬가지이다. 고도와 통하는 입구는 여러곳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한다. 그러나 가끔가다가 고도를 느끼는 사람들이 그곳으로 들어오곤 한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우연히 우리는 그런 곳으로 들어갈 지도 모르고, 그곳에서 영원한 미아가 되어 죽을때 까지 떠돌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소름이 끼친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우리가 모르는 다른 세계와 맞닿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분명히 끝이 보이는 골목길이었는데, 들어가는 순간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골목길이 된다면? 
우리가 사는 세계가 현실이 아니라 거울에 비친 세계라면?

요괴나 신이 무서운 존재로 등장하기 때문에 고도가 무서운 건 아니다. 그곳에서는 무엇이 기다릴지 모르기때문에 더 무서운 것이 아닐까.

물건을 사지 않으면 나갈수 없는 시장, 야시

대학생 이즈미는 고교시절 동급생인 유지의 권유로 야시에 발을 들여 놓았다. 그러나 그곳은 현실이 아닌 다른 세계였다.
가끔 모든 조건이 맞으면 갑자기 발생하는 시장 야시.
어린 시절 유지는 그곳에서 동생을 팔아 야구 선수의 재능을 샀다.

야구부 에이스로서 활약하고 고시엔까지 나갔던 유지이지만, 동생을 팔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려왔다. 그래서 이번엔 동생을 되사기 위해 야시로 향한다. 

외눈박이 고릴라, 걸어다니는 너구리, 눈코입이 없는 달걀 귀신, 모가지를 파는 가게, 새를 파는 가게, 관을 파는 가게, 풀을 파는 소녀, 납치한 아이들을 파는 납치업자등 야시는 기괴한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물건을 사지 않으면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규칙을 모르고 들어온 이즈미는 유지가 자신을 팔고 밖으로 나갈까봐 걱정을 하지만, 유지의 생각은 달랐다.

동생을 팔아 넘겼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유지는 이곳으로 자살여행을 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야시에 속하는 자가 되면, 바깥 세상은 더이상 자신을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유지의 마음은 굉장히 서글프고 마음이 아팠다.
어떻게 보면 오싹한 이야기인데, 오히려 서글픔이 더 많이 밀려오는 야시였다.

고도와 야시는 비슷한 성질을 가진 곳이다. 다른 점이라면 고도의 출구는 어디에나 있지만, 야시는 조건이 맞을때만 열린다는 것뿐. 고도에 속하게 되거나 야시에 속하게 된 사람은 영원히 그곳에 머물게 된다.

간결한 문장과 독특한 소재, 그리고 반전.
야시는 교훈을 주는 소설은 아닐지라도, 우리 인간들이 눈치채지도 못한채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알려준 소설이다. 

내일 아침, 우리가 문을 열고 나가는 곳이 우리가 살던 세계라고 누가 감히 장담할 수 있을까?   


<기억에 남는 한마디>
길은 교차하고 계속 갈라져 나간다. 나는 영원한 미아처럼 혼자 걷고 있다. 나뿐만이 아니다. 누구나 끝없는 미로 한 가운데 있는 것이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풍경을 보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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