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
곽재식 지음 / 비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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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작가님의 sf단편집이다. ( 스콧님 소개로 읽게된 책 )
이 분을 알게 된 건 <과학하고 앉아있네>란 팟캐스트를 통해서다.
주로 과학자분들의 생애를 소개해주는 코너를 맡고 계시는데, 과학자분의 이름풀이와 연도, 그리고 그 외 잡다한 이야기들을 아주 재미있게 들려준다.
곽재식작가님 표현대로 작가님을 표현하자면,
곽재식 작가님은 1982년생이며, 개띠 중에서도 흑구다. 같은 년도에 태어난 유명인으로는 손예진과 현빈, 클로이 자오 감독 등이 있다. 특이하게 외고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 입학, 5학기만에 졸업해서 유명해지기도 했다.
<토끼의 아리아>란 단편이 텔레비전에서 단막극으로 드라마화되기도 했다.
내가 읽은 곽재식 작가님의 책으로는 <괴물백과> <신라공주해적전> <괴물과학 안내서><곽재식의 세균박람회> <괴물, 조선의 또 다른 풍경> <곽재식의 미래를 파는 상점><곽재식의 아파트 생물학> 이 있다. (주로 아이랑 같이 읽은 책들이다)
주로 과학적 지식을 토대로 이야기를 전개하기도 하고, 일상생활 모습을 과학적으로 풀어내기도 한다. 과거 괴물들의 모습을 정리하거나 순수소설을 쓰기도 하시는 다재다능한 분이다.

작가의 말 중에
“그저 내가 가장 쓰고 싶은 이야기를 부담 없이 썼다.”
정말이다.
헌혈과 빵의 상관관계를 알아내기 위해 외계인들은 태양계의 3번째 행성으로 우주선을 날리기도 하고, 최치원의 가르침으로 사람이 된 사슴이 등장하기도 한다.
만들어진 것들이 만들어 낸 사람을 이긴 이야기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는게 아님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온갖 공인인증서들을 깔며 느꼈던 불합리함과 촉박한 시간앞에서의 긴장감,
꼰대와 라떼의 콜라보 등 일상에서 볼 법한 이야기와 기발한 상상력이 만나 즐거운 독서가 됐다.
단 뭔가 진지하거나 깊이를 위한 독서가 아니라, 작가님이 즐겁게 쓴 것처럼 즐겁게 읽으면 되는 책이다. 좀 썰렁하기도 하지만 난 그런 점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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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4-21 18: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책 부담 없이 읽기 좋쥬🍞🐵

mini74 2022-04-21 18:54   좋아요 4 | URL
유머코드가 맞아서인지 혼자 키득키득거리면서 읽었어요 스콧님 *^^*

미미 2022-04-21 18:5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4년재도 겨우 졸업했는데 카이스트를 5학기만에 졸업하다니 역시 범상치 않은 분이네요! *^^*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어떻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게 아닌게 되었는지, 꼰대와 라떼의 콜라보도 그렇고 너무 궁금합니다ㅎㅎ😆

mini74 2022-04-21 19:06   좋아요 5 | URL
저는 재미있게 읽었는데 이 분 소설은 좀 호불호가 갈리더라고요. 농담같고 썰렁한 이야기들ㅎㅎ 전 좋았어요 미미님. 결국 꼰대와 라떼의 끝은 신입의 사표로 끝납니다 ㅎㅎ

서니데이 2022-04-21 19: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표지만 보면 어린이용 도서 같은 느낌이었는데, 표지가 재미있는 느낌이 좋았어요.
빵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는 것도 좋고요.
잘읽었습니다. mini74님,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mini74 2022-04-21 19:06   좋아요 4 | URL
표지가 좀 귀엽지요 서니데이님 ㅎㅎ 유쾌하고 재미있었습니다 ~~

책읽는나무 2022-04-21 19: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손예진과 현빈이 동갑이었군요??
그래서 둘이 결혼 했나?ㅋㅋㅋ
빵 좋아하는 악당!!! 제목부터가 벌써 재밌을 것 같은....ㅋㅋㅋ 빵 좋아하는 사람들은 악당이 될 수 없을 것 같은데..완전 순둥이들이지 않을까요?
아...제가 빵을 좋아해서 꼭 이렇게 에둘러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mini74 2022-04-21 19:50   좋아요 5 | URL
빵은 사랑이고 평화죠. 탄수화물로 대동단결 ㅎㅎ 근데 이 빵이 헌혈행위와 연결돼서 묘하게 병맛으로 이야기가 풀리는게 저는 재미있었어요 ~

얄라알라 2022-04-21 19: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서니데이님.말씀처럼 표지만 보면 딱 초등.그림책같은데.작가분이.워낙.다재다능하시니.재미난.이야기.가득하겠어요 카이스트.입학하시는 분들도 대단한데 5학기 졸업이라니!!!뤼스펙

mini74 2022-04-21 19:54   좋아요 4 | URL
이 분 팟캐에서도 거의 막힘없이 온갖 이야기들을 풀어내시는데 입담이 대단하세요. 재미도 있고요~ 카이스트 5학기졸업은 전설이죠 ㅎㅎㅎ

coolcat329 2022-04-21 20:0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 분 유명하시군요.
이 책 읽으면 빵 더 좋아지나요? ㅎ
저는 빵 더 좋아하면 안되는데요...

mini74 2022-04-21 20:10   좋아요 5 | URL
빵도 좋아지지만 헌혈하고 싶어집니다 ㅎㅎ

그레이스 2022-04-21 20:3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는 곽재식작가의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샀어요^^
그리고 ㅁㅅㅇㅅ 빌렸구요.
잠시 영상 봤는데 예사롭지가 않더라구요
재미있을것 같아요
이 책 <빵 좋아하는...>도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 놓구요 ㅎ
다 읽을 수 있으려나 싶네요 ㅋ
읽을 책이 산더미네요 ^^

mini74 2022-04-21 20:36   좋아요 5 | URL
쉽고 재미있어서 금방 읽으실거예요. 이 분 진짜 부지런하시죠. 다작에 교수에 연구에 팟캐스트에 ㅎㅎ ㅁㅅㅇㅅ 궁금합니다 ~

페넬로페 2022-04-22 01: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요즘 sf작가들이 많은 것 같아요.
책내용보다 왜 현빈, 손예진
5학기만에 카이스트 졸업이 더 눈에 들어 올까요?
미니님이 넘 재미있게 글 써주시는 덕분입니다~~

mini74 2022-04-22 07:01   좋아요 5 | URL
고맙습니다 ~ ㅎㅎ ㅎ근데 이 분이 팟캐에서 과학자 소개하실때 이런 식으로 하세요. 작가분이 유쾌하고 재미있으신 분이에요 *^^*

새파랑 2022-04-22 09: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빵을 좋아하는 82년생입니다~!! 이분은 저랑 완전 반대의 인생을 사시는군요ㅜㅜ 부럽습니다 ㅋ 근데 전 sf 취향이 아닌거 같아요 😅

mini74 2022-04-22 12:19   좋아요 3 | URL
새파랑님 현빈과 친구 친구 ㅎㅎㅎ 새파랑님 인생도 멋진 인생이라 믿습니다 *^^*

서니데이 2022-04-22 22: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mini74님, 즐거운 주말 보내시고, 기분 좋은 금요일 밤 되세요.^^

mini74 2022-04-22 23:42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도 즐거운 금요일 보내세요 ~~

희선 2022-04-23 02: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예전에 짧은 소설 《이상한 용손 이야기》 봤어요 이거 하나만 봤네요 재미있게 보면 되는 책이군요 과학뿐 아니라 여러 가지에 관심이 많고 많이 아는 듯하네요


희선

mini74 2022-04-24 11:11   좋아요 2 | URL
박학다식 ! 걸어다니는 나무위키 같은 분입니다 ㅎㅎ

서니데이 2022-04-23 23: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주말이 되면서 기온도 많이 올라가서 따뜻한 날씨였어요.
mini74님, 편안한 주말 보내시고, 좋은 밤 되세요.

mini74 2022-04-24 11:12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즐거운 일요일 보내고 계시지요 ~ 평온한 하루 보내세요 *^^*

프레이야 2022-04-24 08: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빵사랑 대동단결 ㅎㅎ 여기 추가요.
재미난 책이네요. 자유롭게 기발한 상상력을
이거슨 천재답다요. 곽재식보다 현빈이지만 곽재식 저는 처음 알게되어 찾아봅니다. 클로이 자오도 인생동기군요.

mini74 2022-04-24 11:11   좋아요 2 | URL
빵사랑 대동단결 ㅎㅎㅎ 빵 먹고싶어졌습니디 클로이 자오 이터널스는 좀 ㅠㅠ
 
여성의 다시쓰기 - 고전소설을 읽는 욕망에 관하여
노지승 지음 / 오월의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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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다시쓰기
 

한때 다시쓰기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계모의 숨겨진 이야기라던가, 뺑덕어멈의 이야기, 혹은 동화를 새롭게 해석하는 흑설공주 등이다.
고전동화라 불리는 이야기 속에는 그 시대상과 그 시대가 원하는 인물들이 영웅이 되고 미화가 된다. 그런 영웅이나 미화된 인물들의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 악당들이 필요한 것.
그 시대 그들은 정녕 할 말이 없었을까.
작가는 약자들, 주인공이지 못했던 이들은 다시 쓰기를 통해 서사의 주체가 된다고 한다. 결국 약자들의 다시쓰기는 그 자체로 저향의 행위라고 말한다.
 

중학교때쯤 심청은 정말 효녀인가 란 주제로 국어시간에 토론을 했던 기억이 난다.
참 의미없다고 생각했다. 그 시대엔 효녀지만 지금은?
실제로 그 당시에도 효녀란 생각은 들지 않았고, 심봉사에 대한 분노만 느꼈던 기억이 난다.
실제 심청은 시대가 원하는대로 다양하게 변주되며 강조되었다. 효녀란 허울좋은 타이틀을 갖고, 가부장제에서 더 이상 물질적 책임을 질 수 없는 가장의 책무를 대신 짊어지면서 오히려 대접도 받지 못한 딸들.
우리 역사엔 팔려가고, 끌려가고, 혹은 스스로 그것이 효라 믿으며 보따리를 싸서 인당수 대신 공장, 버스 안내양, 기생, 여급이 되어야 했던 수 많은 심청들이 있다 . 그들에게 돌아온 건 효녀대신 가족을 부양하고도 부끄러운 딸이 되는 것, 함부로 해도 되는 누나였다.
 

계모는 왜 언제나 악독한가?
남성이 자원을 배분하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밖에서 안으로 들어온 이들은 경계의 대상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사랑이든 물질이든 내 몫이 줄어드니 반가울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잔인한 계모서사 또한 가부장제가 만든 서사이다. 여성들 또한 살아남기 위해서, 혹은 유일하게 인정받는 것이 정처가 되는 길밖에 없었기에, 그들은 자신이 오기 전의 여자들 흔적 지우기에 골몰할 수 밖에 없다. 그런 이유로 장화홍련이란 비극이 생겨났다고 작가는 말한다. 상속문제로 불거진 갈등이 결국은 살인과 원한으로 이어진 것, 이런 비극 사이에 아버지의 존재는 미미하다. 원인은 제공했으나 결과나 과정에선 뒷짐을 질 뿐이다.
 

남자들의 일방적 판타지이자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춘향을 이야기한다. 순종과 절개의 여신, 영화로 만들어지던 초기에는 실제 유명 기생들이 출연하기도 했다. 이는 기생에 대한 엿보기적 욕망을 채워준 예라고 본다.
춘향은 목숨을 걸고 정절을 지킴으로서 가부장제의 최고 보상인 예찬과 숭배를 받았다. 그 후 일제강점기에 춘향은 정절을 지킴과 동시에 남편의 과업을 이어받아 달성하길 바라는 여성성으로 변모했다. 사회주의운동가들 사이에서는 자신들이 감옥에 가 있는 동안에도 자신을 기다리며, 자신과 함께 혁명과업을 수행하고, 자신이 죽으면 자신의 과업을 대신하는 여성을 욕망한 것이다.
6.25전쟁 후에는 또다른 의미로 여성의 정절을 중요시여겼다. 그들은 늙은 시부모에게 꼭 필요한 노동력이었기에, 홀어머니의 성공담이나 미담은 의도적으로 널리 퍼져갔다.
춘향의 정절은 이렇듯 사회의 요구조건과 남성들의 욕망과 기대치에 따라 조금씩 변형되었다.
 

우리가 다 아는 이야기들이다. 대부분 어릴 적부터 듣고 자란 이야기, 혹은 커서 고전으로 만나게 되는 이야기들이다. 이야기들 속에 숨은 이들을 찾아 복원하는 것,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바로 그 시대 약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며, 제대로 바로 읽어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이 책을 통해 하게 되었다.
 

춘향이야기에 여성들은 열광했고, 장화홍련은 특히나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이 크나큰 사랑을 보냈다고 한다. 그 이야기들 속엔 사랑과 자매애, 연대가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사랑이야기를 통해 자신들의 마음을 드러냈다. 남자들은 그런 이야기들을 통속적이라 폄하한다. 그렇기에 여성은 그런 폄하된 이야기들 속에 자신들의 분노와 원망을 맘껏 드러냈다고 한다.
이런 서사엔 가부장제에 대한 저항의 스펙트럼이 담겨 있다고, 그런 스펙트럼은 다시쓰기를 통해 널리 퍼질수 있다고 한다.
 

이 책엔 소개되지 않지만, 내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고전소설은 별주부전이었다. 별주부전 속의 풍자와 통렬함이랄까.
실제 토끼는 꾀를 부려 권력에 눈 멀어 영생을 바라는 용왕을 구워삶는다. 그래서 나름 신뢰를 얻게 되며, 그 덕에 자라를 골려먹는다. 용왕에게 자신의 간을 먹기 전에 자라를 먼저 드셔야 효과가 크다고 말할까 하며 협박을 한 것, 단 자라의 아내를 빌려주면 용서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토끼는 자라의 아내와 잠자리를 하게 된다. 자라의 아내는 처음에는 거부한다. 하지만 사랑없이 결혼한 자라보다, 토끼의 잠자리 스킬? 과 재담에 홀딱 반해버린다.
결국 토끼와 자라는 뭍으로 가고, 그 후부터 자라의 아내는 토끼가 보고싶어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된다. 용궁사람들은 자라의 아내가 남편을 그리워하다 죽었다 생각하고 열녀문을 세워 그 넋을 기린다. 열녀문에 대한 풍자와 사랑없는 결혼, 여성의 욕망....생각보다 별주부전은 괜찮은 이야기꺼리가 많다. 결말은 세 가지 정도의 판본이 있지만, 토끼와 자라부인만 기억에 남아, 자라 부인에 대해서만 누군가 글을 써 주면 좋겠다.
 

 

이외에도 여성의 상속, 사랑과 결혼 제도에 대한 비판과 고전소설 속 인물들이 영화와 연극, 시대상에 맞춰 변용된 모습등을 보여준다.
가부장제의 질서를 흔들고, 정숙하지 않은 여성들은 악의 축이자 언제나 고약한 인물들이었고 권선징악에 의해 벌을 받았다. 지금은 어떨까....
 

“모든 여성 가운데서 정절을 지키는 여성의 목소리만을 신뢰할 수 있다는 논리는 여성주의를 제외한 모든 이데롤로기와 결합 가능하다. 사실 식민지 시기 근대적 사랑을 신봉하던 모던한 남성 엘리트 작가들에서부터 춘향은 신여성들의 자유분방함과 대비되는 인물이었고 따라서 그들에게 이상적 여성상이 될 수 있었다. 춘향은 여성의 육체와 사랑이 어떻게 모든 주류 이데올리기에 의해 보수적으로 형상회되어 전유될 수 있는지, 즉 젠더 트라우마의 양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춘향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모두의 춘향이지만 춘향을 자신들의 여성상이라 우기고 이를 특정 이데올로기에 프로파간다로서 이용하려는 이들이 있었던 것이다.”p130

여성 수용자들이 이 소설들을 소비하는 것에는 단지 ‘읽는 행위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구술을 듣는 행위도 포함된다. 고소설들가운데서 특별히 여성들의 이야기인 춘향전, 장화홍련전, 심청전은 여성들의 위험한 욕망과 유교적 가부장제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는 텍스트였다. 양반의 처가 되고자 했던,
기생의 딸 춘향의 욕망은 정절을 지키는 열녀로 포장되어야 했고, 가문의 인정을 받아 집안에서의 지위를 지키고자 고투했던장화 홍련의 계모는 전처의 아이들을 살해한 혐의로 처벌을 받아야 했다. 가난한 집안의 딸인 심청은 아버지의 허세로 인해 인신매매되었지만 ‘효’라는 명분은 심청의 희생을 미화했다.

에니크의 후처 콤플렉스는 언뜻 보면 이전에 자기 자리를 차지했던 여성에 대한 후발 주자 여성의 질투를 콤플렉스‘,
즉 병적인 심리로 치부하는 듯하다. 그러나 남편 혹은 연인의 합법적인, 유일한 여자가 되어야 한다는 욕망은 단순히 비정상적인 병적 심리가 아니라 실은 남성에게 의존해서만 생존이 가능한 사회에서 여성들이 느끼는 절박한 심정에 가깝다.

호스티스 멜로드라마에서 경아, 영자 등으로 명명된 개인들은 특정한 일개인이 아니라 어떤 그룹의 집합적 경험collectiveexperience을 반영하고 있는 이들이다. 이들의 삶은 한국 사회의변화와 그 궤적을 같이했지만 한국 사회가 지금도 누리고 있는화려한 성공 서사와는 관련이 적었다. 호스티스 멜로드라마는그들이 어떤 폭력에 노출되었고 어떻게 유혹되었으며 어떤 보상을 받고 싶었는가를 서술하고 있는 20세기 심청들의 이야기이다. 1970년대 산업화 시대에 도시로 온 여성들의 이야기인 호스티스 멜로드라마는 유혹과 폭력으로 이루어진 산업화 시대
‘심청‘의 생애사라 할 만하다.

이러한 기사들이 미담의 예로 유포되었다는 사실은 20세기전반부에도 열녀 예찬이 광범위하게 존속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일간지에서 기층 민중의 열행을 미담으로 유포한 것은 조선총독부와 유림층의 일치된 이해관계 때문이었다. 조선총독부는 필요에 따라 유교를 효과적인 통치 전략으로 사용했고 이러한 전략은 근대적 지식인의 출현으로 권위가 흔들린 유림층의호응을 이끌어냈다. 지역 유지들과 같은 민간이나 도의회, 도청그리고 조선총독부가 과부들에 대해 ‘열부, 절부, 효부 등의 명목으로 표창한 사례도 있었다. 열녀와 같은 유교적 덕목을 내세워 여성들을 순치하는 전략은 이렇듯 유림층과 총독부의 공통적인 이해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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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4-18 17: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책 찜🙋
심청이의
인신공양이
아버지를 향한 효심으로 ㅠㅠ
장화와홍련이
남매 학대 ㅠㅠ
여성의희생학대가
유교에서 미덕으로
자라 부부의 사연은
미니님 덕분에 알게됨요🤗

mini74 2022-04-18 17:15   좋아요 3 | URL
이 책에 더 많은 이야기, 그리고 초창기 춘향전 등 영화이야기도 많이 나와요 스콧님 ~~ 저도 뭔가 불만이던 고전소설들이 이런 면때문에 싫었구나 싶어요 ㅎㅎ

거리의화가 2022-04-18 17: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춘향은 시대마다 참 다양하게 이용되었던 것 같아요-_-; 저는 춘향전 이야기가 처음 볼 때부터 너무 불쾌했던 기억이 나요^^; 이제 그 기저에 깔린 서사로 인해 분노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요.
별주부전 이야기 흥미롭네요ㅎㅎ

mini74 2022-04-18 17:25   좋아요 3 | URL
자라부인이 자유부인이 되어 토끼를 따라가기엔 토끼가 또 너무 난봉꾼이더라고요 ㅎㅎ고전 소설 속 여성 캐릭터들이 갖고 있는 남성의 욕망이 화가님 말씀처럼 불쾌한거 같아요. 춘향전의 춘향과 잔칫상이 일본인들 기생집의 원형이 되었다 해서 더 기분 나빴어요.

독서괭 2022-04-18 17: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으아닛 별주부전이 19금..이네요.. 춘향전도 그렇긴 하지만, 별주부전은.. 심지어 종을 뛰어넘은 관계가??;; 저는 젤 싫은 게 심청전이었어요. 으 저런 미신 믿고 딸내미를 희생시키다니.. 그걸 미화하다니. 미니님 재미난 리뷰 잘 읽었습니다. 이책도 찜해 둡니다^^

mini74 2022-04-18 18:09   좋아요 3 | URL
ㅎㅎ 생각보다 분방한 이야기들이 있더라고요 ㅎㅎ 재미있게 읽었고 고전소설이 왜 불편한지 정리가 된 거 같아요 *^^*

페넬로페 2022-04-18 18: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어릴 때 아무 생각없이 받아들였던 고전속의 권선징악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하는거군요.
별주부전은 정말 쇼킹한데요~~
서양이나 동양이나 고전속의 여성의 입지는 참 불행하고 억울해요^^

mini74 2022-04-18 18:51   좋아요 3 | URL
그죠 ㅠㅠ 약자들 악역들의 다시쓰기 주인공들 되돌아보기가 필요한 거 같아요 *^^*

미미 2022-04-18 19: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니님~♡ 저도 별주부전에 반했습니다ㅋㅋㅋㅋㅋㅋ최재천 교수님이 이 이야기에 어찌 반응하실지도 궁금하네요ㅋㅋㅋ아 미니님 최고👍

mini74 2022-04-18 19:07   좋아요 2 | URL
ㅎㅎㅎ 종을 뛰어남은 불륜? 데미무어 가 백만장자랑 하룻밤 보내는 유부녀로 나오는 은밀한 유혹 영화도 생각나고 그랬어요 미미님 ㅎㅎ *^^*

mini74 2022-04-18 19:13   좋아요 2 | URL
앗 별말씀을요 ㅎㅎ 미미님 👍💕💕

프레이야 2022-04-18 20: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독서지도사하면서 아이들과 고전패러디 쓰기를 종종 했어요.
우리 옛이야기를 주로 했지만 백설공주라든가 외국이야기도 했구요.
고전 다시쓰기 의미있지요. 재미납니다. 신별주부전 ㅎㅎ

mini74 2022-04-18 20:21   좋아요 2 | URL
자라부인전 있음 좋겠어요 ㅎㅎ 아이 아릴적에 아기돼지 삼형제의 늑대 입장이 담긴 그림책 넘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납니다 ㅎㅎ

프레이야 2022-04-18 20:36   좋아요 2 | URL
맞어요. 패러디그림책과 동화 있었지요. 아이들도 신나했어요 ㅎㅎ
자라부인전 👍

독서괭 2022-04-18 21:50   좋아요 2 | URL
오 늑대 입장 그림책이 있었나요? <아기 돼지 세자매>라는 여성주의적(?) 그림책도 있습니다 ㅎㅎ

기억의집 2022-04-18 21: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작가의 계모 이야기와는 약간 생각을 달리 하는데요. 가부장제의 서사라기 보다는 다산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했어요. 피임이 발달되지 않는 상황에서 아이를 낳다가 죽은 엄마를 대신해 들어온 계모가 자기 자식이 아닌 전처 소생의 자식을 구박함으로써(그리고 아바지는 재혼하면 새아빠란 말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방관자의 입장에서 본 것이라고 봐요. 어차피 재산은 큰아들 몫이었던 농경사회 시대에 상속 문제를 끌어들이는 건 억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별주부전은 … 성적 욕망의 재해석이군요!!

mini74 2022-04-18 21:55   좋아요 2 | URL
이 장화홍련의 상속문제를 끌어들인게 인구억제정책하에서 좀 더 강조되었다고 해요. 제가 이 말을 빠뜨려서 ㅠㅠㅠ 그래서 딸에게도 어느 정도 차등이지만 재산이 돌아가게 법이 바뀌면서 그걸 홍보하는 목적도 어느정도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만 낳자 이제 딸에게도 재산주자. 딸도 좋다!! 뭐 이런식이었다고 작가가 해석해요 ㅠㅠ 조선시대 초기까지만 해도 남녀 균등 상속이 일반적이었지요. 조선시대부턴 제사를 절이 어닌 집에서 지내면서 제사를 모시는 장남몰빵으로 바뀌었고( 물론 집안의 재산을 한 명에게 몰아주어 권세를 유지하려는 목적도 있었지요 ) 그걸 가장 잘 나타낸게 흥부와 놀부 ~ 기억의 집님 말씀에도 동의합니다. 다산의 결과물도 맞다고 생각해요 *^^*

잠자냥 2022-04-18 21: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니 별주부전이 그런 이야기였나요?! 띠용! 근데 토끼의 잠자리 스킬에서 빵 터졌어요. 토끼가 스킬 있어봤잨ㅋㅋㅋㅋㅋㅋㅋㅋㅋ

mini74 2022-04-18 21:56   좋아요 4 | URL
자냥님 그런 편견을 버리시지요 ㅎㅎㅎ

공쟝쟝 2022-04-19 17:43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ㅋㅋ 아 나 이댓글 달려다가 ㅋㅋㅋㅋ 그래봣자 ㅋㅋㅋㅋㅋ 토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라고 달려고하는데 여기 왜 있냐고 ㅋㅋㅋㅋ 내가 달려던 댓글잌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2-04-18 22: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별주부전에 저도 으잉???
고전동화가 아닌 19금 고전에 들어갔을 내용이었군요ㅋㅋㅋ
토끼가???? 그래서 플래이 보이 캐릭터가 토끼였던가요? ㅋㅋㅋ
전 제가 토끼띠라 그런가? 토끼가 다시 봐지네요ㅋㅋㅋ 자라 부인과 토끼를 결혼 시켰어야 했어요. 자라 남편보다 토끼가 자라 부인에게 정말 진심으로 매너있게 잘 대해줬을지도 모를 일이로군요?
스킬과 재담까지 갖췄다면....🤔🤔
음....깊게 생각하려고 했더니 안되겠어요.
49금까지 뻗어나갈 것 같네요ㅋㅋㅋ

그리고 전 글의 첫 문장에서 다시 쓰기를 정말 원색적으로 읽은 거 있죠?
정말 다시 쓰기~ㅋㅋㅋㅋ

mini74 2022-04-18 22:26   좋아요 4 | URL
ㅎㅎㅎ 그 토끼 난봉꾼이라 영 못쓰겠던데요. 희대의 바람둥이 ㅎㅎ 전 잠자냥님 댓글에 빵 터졌습니다. 나무님 깊이 생각하셔서 댓글 남겨주심 안될까요~ 자세학고 구채적으로요 ㅎㅎㅎ

mini74 2022-04-18 22:34   좋아요 3 | URL
아이고 ㅠㅠ 폰으로 댓글 달았더니 오타가 ㅠㅠㅠ ㅠㅠ

singri 2022-04-18 22: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ㅎ넘 재밌는데요 !
자라부인전 기대되요 진짜 누가 쓸꺼같음

mini74 2022-04-18 22:27   좋아요 2 | URL
그죠. 한국의 보봐리 부인~ 자라부인 !!! ㅎㅎ

새파랑 2022-04-19 12: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별주부전이 저런 이야기였다니 놀랍고 충격적이네요 ㅋ 역시 미니님~!! 미니님 다시보기를 해야할거 같아요 ^^

mini74 2022-04-19 12:26   좋아요 2 | URL
ㅎㅎ저 다시보기해보셔야 ㅠㅠㅋㅋ 자라부인 3대부인으로 등극해도 되지 읺을까요 보봐리 체텔레 자라 ㅎㅎㅎ

그레이스 2022-04-19 13: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별주부전이 정말 그런 얘기예요?
이거야말로 안읽고 내용만 알고 있어서...@@

mini74 2022-04-20 07:51   좋아요 2 | URL
저도 그냥 어린이용으로만 알고 있었어요. ~~

서니데이 2022-04-19 18: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동화를 재해석한 책들 이전에 많이 나왔던 것 같아요.
이전의 설정이 알려진 내용이라서 자세한 설정을 하지 않아도 금방 이해할 수 있는 점이 좋았어요.
잘읽었습니다. mini74님, 좋은 하루 되세요.^^

mini74 2022-04-20 07:51   좋아요 3 | URL
맞아요 이해하기 좋으니 다시읽기 재해석하기도 좋은 듯 합니다. 서니데이님 고맙습니다 ~

잭와일드 2022-04-20 11: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대상을 반영한 동화의 재해석인가요? 흥미로운 책이네요 ㅎㅎ

mini74 2022-04-20 11:49   좋아요 3 | URL
고전소설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이용되고 어떤 면이 더 강조되는지 등 다양한 내용이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서니데이 2022-04-20 14: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날씨가 참 좋습니다.
mini74님, 좋은 오후 보내세요.^^

mini74 2022-04-21 17:42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 고맙습니다 *^^*

희선 2022-04-21 03: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심청은 나중에도 이어졌군요 바리데기도 비슷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춘향도 시대에 따라 바라는 게 바뀌다니... 그것 또한 가부장제가 만들어 낸 환상인가 싶기도 하네요 여성만 희생하게 하다니... 별주부전은 그런 이야기도 있군요 재미있네요


희선

mini74 2022-04-21 17:42   좋아요 2 | URL
바리데기도 살펴보면 재미있을 거 같아요 ~ 특히 심청의 서사가 저는 좀 더 우울했어요 ㅠ
 

식민지 시기 일간지들에는 죽어가는 남편을 위해 단지斷指하거나 따라 죽은下從 여성들의 사연 혹은 죽은 약혼자의 묘 앞에서 결혼식을 올린 사연, 심지어 나병 환자인 남편에게 살을 베어 먹여 남편이 쾌차 했다는기사도 유포되었다.
이러한 기사들이 미담의 예로 유포되었다는 사실은 20세기전반부에도 열녀 예찬이 광범위하게 존속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일간지에서 기층 민중의 열행을 미담으로 유포한 것은 조선총독부와 유림층의 일치된 이해관계 때문이었다. 조선총독부는 필요에 따라 유교를 효과적인 통치 전략으로 사용했고 이러한 전략은 근대적 지식인의 출현으로 권위가 흔들린 유림층의호응을 이끌어냈다. 지역 유지들과 같은 민간이나 도의회, 도청그리고 조선총독부가 과부들에 대해 ‘열부, 절부, 효부‘ 등의 명목으로 표창한 사례도 있었다. 열녀와 같은 유교적 덕목을 내세워 여성들을 순치하는 전략은 이렇듯 유림층과 총독부의 공통적인 이해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오히려 여성들의 고삐 풀린 연애를 열녀 담론이 지속적으로 통제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전과 차이가 있다면 여성들을 통제하면서 내면화된 유교적 이념이 아니라 유일한 사랑에 대한 헌신이라는 여성의 자발성이 더 강조되었다는 점이다.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통제는 여성들의 자발적인 ‘사랑‘을 이용했고 여성들에게 사랑이 강조되는 한 여성들은통제되기 쉬운 가장 취약한 존재가 되었다. 열녀라는 단어로 지칭되지는 않았지만 한 남성에 대한 사랑을 변심하지 않고 지켜내는 여성들에 대한 예찬과 숭배는 춘향전이라는 텍스트와 함께 지속적으로 등장했다. 근대의 열녀 담론은 전근대 시대에서처럼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양상과 사뭇 달랐다. 여기에다시 춘향이 모범적인 사례로 어김없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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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토끼 (리커버)
정보라 지음 / 아작 / 202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남을 저주하면 무덤이 두 개’라는 일본 속담이 있다고 한다. 타인을 저주하면 결국 자신도 무덤에 들어가게 된다는 뜻이다.(p32)
그럼에도 저주하고 싶은 자가 있다면?
삐뚤어진 권력과 가부장제의 폭력, 자본주의의 잔인함이 난무하는 현실 속의 공포이야기다. 읽고 곱씹으면 더 무서워지는 이야기.


색다르고 특이한 열 가지의 이야기가 담긴 단편집이다.
대표작은 <저주토끼>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받은 혹은 누군가에게 건넬 앙증맞은 저주토끼 하나쯤은 갖고 있지않을까. 원망과 원한의 크기는 다르겠지만.


오래 전 짚으로 형상을 만들고 거기에 해당하는 인물의 머리카락이나 손톱 등 부속물을 넣거나, 아니면 이름을 적어 붙이곤 저주를 걸었다. “제웅”이라 이름 붙여진 짚인형은 사극에 종종 등장하곤 한다.
어릴 적엔 제웅에 위해를 가하면, 아파하는 대상자의 모습이 무섭기도 했지만 신기하기도 했다. 그리고 좀 커선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면 죽게된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믿지 않으면서도, 이름을 굳이 빨간색으로 쓰는 것엔 거부감을 느꼈다. 한때 유행했던 <데쓰노트> 도 저주계의 큰 획을 긋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여기 저주계의 떠오르는 샛별이 바로 토끼!!가 아닐까. 어떻게 이런 상상을 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을 갉아먹는 토끼는 서류들이며 목재, 누군가의 기억과 뼈속까지 영역을 확장한다.
권선징악을 사적으로 행하는 것은 어떨땐 통쾌하게 느껴진다. 드라마나 소설 속의 모습들에서 환호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정말 통쾌하고 끝인걸까?
결국 그렇게 이루어진 복수들은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 저주를 행한자들은 결국 잠 못이루며 또 다른 누군가의 저주와 복수 속에 떠돌게 된다.


<저주토끼> 단편을 읽고, 잠든 밤 꿈에서 계속 토끼들이 설쳐댔다. 하얗고 몽실한 꼬리를 씰룩거리며 어디선가 무언가를 갉아먹는 듯한 느낌..누군가의 피눈물이 몽실몽실 하얀 토끼가 되어 떠도는 밤, 왜 저주에 쓰이는 물건일수록 예뻐야하는지 알 것 같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들에서 느껴지는 저주는 낯선만큼 더 두렵고 이해할 수 없는 법.


<저주토끼>는 순한 맛이다. 내가 흘려보낸 배설물들이 머리가 되어 ‘어머니’라 부르더니, 어느 순간 젊은 시절의 또 다른 내가 되어 나타나는 <머리>
이 <머리>의 실체는 변기에 흘려보낸 내 몸의 배설물과 머리카락들.... 영화 <어스>가 생각나는 단편이었다.


“은혜라니, 무슨 은혜란 말이냐? 내가 언제 태어나고 싶어 네게 부탁한 적이라도 있더란 말이냐? 네게서 비롯된 피조물이라 하여 네가 한 번이라도 따뜻이 돌보아준 적이라도 있더냐? 너는 내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나를 태어나게 했고 이후에도 나를 혐오하고 역겨워하여 줄곧 없애고자 하지 않았느냐? ” (p57)
이 단편을 읽고나서 자꾸 변기를 확인하게 된다..




무성생식의 가상임신 이야기 <몸하다>


완전 쫄면서 봤던 <차가운 손>

인공반려자들의 연대 속에 죽어가는 <안녕 내 사랑>
재물에 눈먼자, 근친상간과 폭력이란 끔찍한 이야기를 동화처럼 풀어낸 <덫>
결국 괴물은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이었음을 보여주는 <흉터>
반어적인 <즐거운 나의 집>
초원의 공주를 통해 약간의 희망을 보여준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
“저주는 풀 수 있으나 자신의 욕심에 스스로 눈먼 인간을 눈뜨게 할 방법은 없다. 저들이 언젠가는 다시 전쟁을 일으키려 할 것을 알고 있었다.”(p292)


그리고 저주 토끼와 함께 가장 기억에 남는 단편 <재회>
“ 내 부모가 자식의 삶을 파괴하고 미래를 갉아먹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삶을 유지하는 것을 넘어 무리하게 확장시키려 애쓰는 것도 이러한 강박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키워줬으니 감사하라는 말 앞에는 ‘죽이거나 죽게 내버려두지 않고’ 란 단서가 붙어 있었다. 아마 그들에게는 진심일 것이다. 내 부모와 그들의 부모 세대, 한국 전쟁을 겪고 살아남은 세대에게 가장 큰 화두는 언제나,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살아남은 세대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이 아니라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생존이기 때문이다.
이해와 용서는 전혀 다른 문제다.
그가 속삭였다.
”묶어줄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p320)


“묶이면 안전하다고 느껴.”
“뭐가 안전한데?”
그가 천천히 속삭였다.
“살아 있어도 좋다고, 허락받는 것 같아서.”(p314)


무섭다기 보단 외롭고 쓸쓸한 이야기들을 읽은 느낌이다.
그럭저럭 살아가는 듯 하지만 감추고 있는 외로움과 고독이 바로 현대인들의 저주이자 공포가 아닐까.

작가님의 말처럼, 권선징악 혹은 복수가 반드시 필요할지 모르지만, 그런 필요한 일들을 마친다해도 여전히 세상은 쓸쓸하고 인간은 외롭다.


아래는 작가님의 인터뷰 중에서
“쓰고 싶은 얘기는 굉장히 많이 있어요. 소수자, 고통 상실에 대해 계속 쓰고 싶고 그밖에 다양한 작품을 쓰려고 합니다”
작가님은 여성주의 소설집 “여자들의 왕”을 6월 중 출간 예정이라고 한다.

나는 가슴에서 흘러나온 피가 침대 전체를 적시는 것을 느끼며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 있었다.
침실 창문 밖으로 셋이 밤의 거리를 걷는 모습이 보였다.
여섯 개의 다리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가로등 아래를 지나갈 때 우연인지 알 수 없지만, 가로등 불빛이 흔들려 셋의뒷모습이 어둠에 가려졌다.
그것이 내가 본 마지막 광경이었다.

"묶이면 안전하다고 느껴."
"뭐가 안전한데?"
III내가 다시 물었다.
그는 언제나 단단히 꽉 묶어주기를 원했다. 묶는 동안에도아픔을 참는 것이 분명했고 풀어준 뒤에는 언제나 몸에 뚜렷하게 자국이 남았다. 아무리 내가 여자고 그는 남자라고 해도, 그를 묶어주는 상대방이 그의 연인이라 해도, 그렇게 고통스럽게 꽉 묶여 있는 상태가 근본적으로 안전할 리 없었다.
그가 천천히 속삭였다.
"살아 있어도 좋다고, 허락받은 것 같아서."
그 대답이 어쩐지 가슴 아팠기 때문에, 나는 힘껏 공들여서 그를 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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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4-15 13: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작이 에세프 전문 출판사
로 알고 있는데...

거기서 나온 책이라면 바로
에세프? 암튼 궁금해지네요.

mini74 2022-04-15 13:20   좋아요 4 | URL
sf느낌 하나 나머지는 대부분 호러 공포 느낌이었어요. 전설의 고향느낌부터 모래와 태양에서 괴물 음 또 유령과 저주~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있어요 매냐님 ~

레삭매냐 2022-04-15 13:26   좋아요 2 | URL
으아~ 제가 무섬쟁이라
호러 공포는 쩜...
거기에 유령+저주라니요 OTL

잘 새겨 두겠습니다.

유부만두 2022-04-15 14: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갉갉갉… 저기 토끼 있어요오오오오….

mini74 2022-04-15 14:42   좋아요 2 | URL
ㅎㅎㅎ 만두님 하나도 안 무섭고 귀여워요. ㅎㅎ

scott 2022-04-15 15:10   좋아요 2 | URL
만두님댁 토끼
요기!
() ()
( ‘.‘ )
(˝)_(˝)

페넬로페 2022-04-15 14: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호러와 sf의 형식속에 작가가 하고픈 말이 있을것 같아요.
저 이 책 중3학생한테 선물하려고 사놨는데 괜찮을지 모르겠어요~~
장르가 sf와 호러라고 했더니
콜 해서요^^

mini74 2022-04-15 14:42   좋아요 3 | URL
중3이면 괜찮지 않을까요 ~ 요즘 애들이 좋아할만한 소재들이지 않나싶어요 무섭기만 하진 않고 좀 생각하게 되는 책이라서 저희 아이가 중3이라도 같이 읽을거 같아요 ~

미미 2022-04-15 14: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니님~^^♡정보라 작가님 멈추지 말고 써주었으면 좋겠네요ㅋㅋㅋ6월에 소설집이 나온다니 알람 설정해놔야겠습니다. 미니님 리뷰 읽으며, 기억 떠올리면서 키득키득 웃었어요(저 왜 이러는...;;)머리가 그럴 줄 알았지만 그래도 막상 그러니 너무 무섭더라구요.맞아요! 전반적으로 외롭고 쓸쓸함ㅠ

mini74 2022-04-15 14:51   좋아요 2 | URL
저 < 머리> 읽고 그 후로 자꾸 변기 확인하게돼요 ㅠㅠ ㅎㅎ 저희집에 토끼인형이 있는데 어제는 잠깐 무섭더라고요 ~ 미미님과 같은 책 읽고 소통하니 참 좋습니다 *^^*

그레이스 2022-04-15 22:17   좋아요 2 | URL
😢 😢
무서워요

scott 2022-04-15 15: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 태어난 저주 받지 않은 토끼
똘망이 옆에 두고 가여 !ㅎㅎ

。゚゚・。・゚゚。
゚。토끼  。゚
 ゚・。・゚
⠀()_/)
⠀(。ˆ꒳ˆ)⠀
ଫ/⌒づ💗💗💗💗

저주 토끼 현재 가장 핫!한 책!
다양한 장르가 녹아 있어서 읽는 재미가 가득!
한국 이제서야 장르 소설이 빛을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ㅎㅎ

mini74 2022-04-15 15:34   좋아요 2 | URL
헉. 스콧님 똘망이 바나나인형이랑 토끼 비스무리한 인형 제일 좋아해요 ㅋㅋ 너무 물고 땡겨서 좀 터지긴 했지만 ㅎㅎ 오늘 태어난 저주받지 않은 토끼 !! 감사합니다 *^^*

거리의화가 2022-04-15 15: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한국에서 장르소설이 자리를 잡았다는 느낌이 드네요^^
작가가 앞으로 쓰고 싶은 주제에 관심이 갑니다. 차별이 횡행하는 시대에 다양한 글감의 주제로 쓰여진 책들이 많이 나오길 바라네요^^*

mini74 2022-04-15 15:36   좋아요 2 | URL
색다르고 어둡고 쓸쓸하고 독특하고 뭐 그랬어요 화가님 ~ 이 분 번역도 많이 하셨더라고요. 저도 다양한 소재의 글들이 많이 나오길 바랍니다 *^^*

기억의집 2022-04-15 16: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궁금하네요. 다들 무섭다고 하니.. 저는 책 읽고 무서워서 잠 못 잔적은 킹의 단편집하고 데스퍼레이션였는데… 데스퍼레이션은 제가 킹 작품을 끊게 만든 작품이었어요. 심리적 공포감이 너무 심해서 2부 읽다가 말었고 킹 작품 무서워서 못 읽다가 이천년대 후반부터 다시 찾아 읽기 시작했는데… 정보라 신인인 것 같은데 궁금합니다!!

mini74 2022-04-15 16:30   좋아요 2 | URL
ㅎㅎ 전 공포물 완전 좋아하는데 무서운 단편 불쾌한 두려움? 기분나쁜 공포 등 다양해서 좋았어요 기억의집님 *^^* 킹은 저도 단편집 좋아해요 ~~

singri 2022-04-15 22: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무서운데요 ㅠ
우우 읽고싶은데 저 무서운거 넘 시러요.

mini74 2022-04-15 22:59   좋아요 2 | URL
무섭고 찝찝하고 ㅠㅠ 좀 그렇습니다 ㅎㅎ *^^*

singri 2022-04-15 23:09   좋아요 3 | URL
작가님 취미가 각종 데모에 참여하는거라고해서 갑자기 또 좋아질려고 해요ㅋㅋ

https://m.hani.co.kr/arti/culture/book/1038937.html

mini74 2022-04-15 23:10   좋아요 3 | URL
그러네요 작가님 승승장구하시길 *^^* ㅎㅎㅎ

희선 2022-04-16 02:3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지금 사람이 무서워하는 건 외로움... 그럴 것 같습니다 조금 무서우면서 쓸쓸한 이야기... 복수는 다른 복수를 낳겠지요 남을 저주하면 그게 자기한테 돌아오기도 하고...


희선

mini74 2022-04-16 08:14   좋아요 4 | URL
그걸 무릎쓰고도 하고 싶은 복수가 참 처절하단 생각도 들었어요 희선님 *^^*

새파랑 2022-04-16 05: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어봐야 겠네요. 이 책 리뷰들이 한결같이 너무 좋습니다. 무서우면서도 쓸쓸한 느낌이 드네요 ~!!

mini74 2022-04-16 08:17   좋아요 5 | URL
인간의 내면 외로움 등을 생각케 하는 책이었어요 새파랑님도 재미있게 읽으셨음 좋겠어요 *^^*

희선 2022-05-07 00: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미니 님 또 축하합니다 정보라 작가 책이 상 받으면 좋겠네요 한국 사람 소설이 세계에 많이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미니 님 주말 즐겁게 지내세요


희선

mini74 2022-05-07 08:01   좋아요 3 | URL
고맙습니다. 희선님. 저주토끼 수상을 기원하며 ~~

새파랑 2022-05-07 07: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벌써 4월 결과가 나왔군요 ㅋ 미니님 축하합니다 ^^

mini74 2022-05-07 08:01   좋아요 3 | URL
고맙습니다 ~~

이하라 2022-05-07 08:1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미니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mini74 2022-05-07 13:06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

미미 2022-05-07 11:1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미니님~♡ 축하드려요!!^^*🌹
정보라 작가도 부커상 당선되었음 좋겠어요.
토끼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겠죠?ㅎㅎㅎ

mini74 2022-05-07 13:07   좋아요 2 | URL
ㅎㅎㅎ 그 토끼들 춤추면 무서운 저주의 피바람이 불 것 같은 ㅎㅎ 고맙습니다 미미님 💕💕

thkang1001 2022-05-07 11:1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미니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주말과 휴일 보내세요!

mini74 2022-05-07 13:07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가필드 2022-05-07 11: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미니님도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
화창한 날씨와 행복한 주말 되세용

mini74 2022-05-07 13:07   좋아요 2 | URL
가필드님 고맙습니다. 가필드님도 줄거운 주말 보내세요 ~~

서니데이 2022-05-07 17: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mini74 2022-05-08 10:00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일요일 즐겁게 보내세요 서니데이님 ~

bookholic 2022-05-08 04: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mini74 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다음달도 부탁드리요~~~

mini74 2022-05-08 10:00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 북홀릭님도 축하드려요 *^^*

러블리땡 2022-05-08 09: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mini74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저주토끼 재밌게 읽었는데 ㅎㅎㅎ 캬 리뷰도 짱짱이네요

mini74 2022-05-08 10:01   좋아요 2 | URL
러블리땡님 고맙습니다. 즐거운 일요일 보내세요 *^^*

scott 2022-05-09 16: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미니님에게 이 책은

행운의 토끼였음요 ㅎㅎ

( )_( )
(=‘ :‘) ~💗💗💗💗💗💗
(,(‘)(‘)

mini74 2022-05-10 11:23   좋아요 1 | URL
이 토끼 제 토끼 맞나요 ㅎㅎ 넘 귀여워요 ~~

그레이스 2022-05-09 18: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제 보니 여기에는 축하인사를 못했네요
축하드려요~
미니님~~!

mini74 2022-05-10 11:23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님도 축하드려요 ~~

페넬로페 2022-05-10 00: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니님, 축하해요.
저도 ‘저주토끼‘를 너무 좋게 읽어 덩달아 기분이 좋아요**

mini74 2022-05-10 11:24   좋아요 2 | URL
저페넬로페님 리뷰도 넘 좋았고 새로웠어요 ㅎㅎ 고맙습니다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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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투라 논 파싯 살룸(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글의 힘이 강하다는 걸 느꼈다.
누군가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인생을 이야기하며, 긍정의 힘과 끈기와 불굴의 의지를 이야기하겠지. 그의 우생학관련 일들은 소소하게 치부하며 그의 공적을 높일 수도 있겠지.
이 책의 저자 룰루밀러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 루이 아가시같은 이들이 마음대로 만들어놓은 자연의 사다리를 걷어찬다. 그런 사다리는 애초부터 없었다고, 생명에 순위는 없다.
그릇된 신념을 가진 자가 큰 힘을 가지고, 목소리를 높일 때, 그것은 폭력을 부르고 악몽을 만든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물고기에게만 이름을 붙이고 이름표를 꿰맨 것이 아니다. 인류에게도 자신이 가진 그릇된 기준을 가지고 순위라는 이름표를 꿰매려 했다.

우생학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스파르타에서는 태어난 아이가 연약해보이거나 장애가 있으면 절벽에 밀어 죽여버렸다.

우생학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히틀러다. 그런 우생학의 시작이 미국이라니 의아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양한 인종의 이민으로 이루어진 나라인 미국은 1차대전에서 승리하자 이 모든 영광은 백인들의 몫이라 말하며 이민금지법을 발의했다.
진화가 진보라고 믿는 그릇된 신념, 진화를 인간의 힘으로 앞당길수 있다는 오판, 진화가 무조건 옳다고 믿는 잘못된 전제조건하에서 그들은 과학을 끌어와, 우생학이란 신념을 만들었다.
무서운 것 중 하나가 잘못된 신념을 가진 살인마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념으로 얼마나 무고한 사람들이 죽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다. 그건 위대한 신념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믿었고, 자책하지도 죄책감을 가지지도 않았다. 이런 신념을 따르는 이들은 늘어나면서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다.
지적능력도 도덕적 판단도 모든 것이 유전의 힘이니, 열등한 이들이 더 이상 자손을 퍼뜨리지 못하도록 하자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처음에는 불임시술이었다. 그 다음 독일의 히틀러치하에서는 불법불임시술뿐만 아니라, 살 가치가 없는 이들의 목록을 작성했다. 장애, 유전병, 심신박약, 병역기피자, 유대인, 그리고 치매환자와 거동이 어려운 노인들까지 점점 범위는 확대되었다. 그 범위가 자신들의 앞마당을 넘보자 그제서야 그들은 우생학에 의구심을 가졌다.

미국에 우생학이 인기를 끌던 시절, 엄청난 발전은 이루어졌지만 빈부격차는 날로 심해졌고 가난한 이들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가난해지기만 하던 시대였다. 이런 시대에, 그들의 가난이 사회나 제도, 혹은 가진자들의 욕심이 아닌, 게으름의 유전자와 열등인자들이 원인임을 주장하는 우생학은 달콤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소록도가 생각났다. 나병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그리고 여기서도 자행된 우생학의 그림자.
일제강점기 나병환자들을 치료한다며 소록도에 세운 병원.
그들은 그 곳에서 자식들과 헤어져야 했으며,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가끔 얼굴을 보며 그리워해야 했다.
일본이 패망한 후에도 그들의 처우는 여전했다. 온갖 약속들을 걸고,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했고, 먹을 것도 부족했다. 위생은 엉망이었고, 제대로 된 치료도 없었다.
간척사업에 동원되어, 어느날은 엄지를 잃었고, 어느날은 코를 잃었다.
그리고 그들 또한 수술대에 눕혀졌다. 엄마가 아빠가 되고 싶었다고 했지만. 그들의 그런 바람은 그 곳에선 죄악이었다.

(옆길로 새는 이야기지만, 병에도 미추가 있다. 나병을 일으키는 나균과 결핵균은 아주 유사하다. 그럼에도 병상의 증세로 인해 나병은 온갖 오해와 범죄의 대상이 되었다. 하늘이 내린 천형이라며 괴롭혔다. 하얀얼굴과 말라가는 몸으로 각혈을 하는 결핵균은, 그 모습으로 온갖 문학과 예술에서 칭송받는 질병이 되었다. 아름다운 여인이 창백하게 얼굴이 하얗게 되어 죽어가는 모습은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다. 개풀 뜯어먹는 소리하고 있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우생학이란 이름으로 너무나 많은 살인과 범죄가 저질러진 지금도 신나치와 백인우월주의가 설치는 세상이다.
지금은?
비만유전자를 제거하고, 키가 큰 유전자를 조작하는 일들이 연구되고 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비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며, 그들은 보기좋은 키와 질병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삶을 살게 된다. 새로운 신우생학이다. 단 많은 돈이 필요할 것이다.
유전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고 믿던 시대가 있었다. 환경이 더 많은 것을 좌우한다고 믿던 시대를 지나, 이제 유전자를 맞춤으로 주문하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자연엔 순위가 없다. 다윈이 말한 것처럼 문명화된 인간들은 약자들을 제거하는 과정을 최대한 자제하려 한다고 말한다. 어울려 살아가며 서로의 존재가치를 인정하는 것, 무엇인가에 우위를 나누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 사다리, 그것은 아직도 살아 있다.
이 사다리, 그것은 위험한 허구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은 그 허구를 쪼개버릴 물고기모양의 대형망치다.(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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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4-14 18:2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자연에는 순위가 없지만
인간이란 동물은 이토록 잔인한 짓을 ㅠㅠ
유전자 맞춤시대에 첨단 ai에 인간 멸종될지도 😶

mini74 2022-04-14 18:28   좋아요 5 | URL
인간의 멸종위기 ㅠㅠ 가타카 영화도 떠오르고 그렇더라고요 ㅠㅠ 스콧님 등 북플님들 추천으로 읽었는데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

다락방 2022-04-14 18:41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래서 이 책이 아름다웠어요.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고 기어코 말해주는 책이어서요. 잘못을 저지르는 것도 인간이지만 그것을 바로잡고자 하는 것도 인간이라서요. 그게 어찌나 좋던지요. 이 책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읽는 일도 즐겁습니다.
:)

mini74 2022-04-14 18:49   좋아요 5 | URL
맞아요 다락방님 !!! 이 책을 읽고 행동하는 사람들도 정말 좋더라고요. 동상이 사라지고 건물 이름이 바뀌고 !!! 멋진 책입니다 다락방님 *^^* 북플님들의 리뷰에 반해서 산 책인데 참 잘샀다 그리고 우리 아이에게 꼭 읽어보라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미미 2022-04-14 18:5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미니님~♡ 미니님 리뷰를 읽어보니 불평등한 사회문제의 희생양으로 만들어 다수의 감정해소 도구로 사용했던 측면도 있지 않았나 생각하게 되네요. 다름을 ‘문제‘로 바라보는 인식도 근본적인 원인같아요. 미국은 지금도 또 뭔가 비밀리에 하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mini74 2022-04-14 18:57   좋아요 5 | URL
미국 무서운 나라 ㅎㅎㅎ 미드에서 보이던 그 총기소지하고 인종차별하는 이들이 많으면서도 또 다른 쪽에선 온갖 다양성을 외치는 나라. 묘하죠. 맞춤아기기술 관련 연구도 열심히 하는거 보면 ㅠㅠㅠ 독일은 1차대전의 일본은 2차대전의 패망원인을 사회적 약자와 타인종및민족에서 찾았죠 위대한 우리가 전쟁에서 진다는건 말이 안돼. 란 식으로 ㅠㅠ 그렇게 희생양이 된게 약자와 유대인들 조선인들이었던거 같아요. 우생학도 한 몫했고요 ㅠ 미미님 댓글이 더 정리가 잘 된거 같아요 ㅎㅎ 고맙습니다 *^^*

레삭매냐 2022-04-14 19: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속히 닐거야 하는데,
책상 위에서 우두커니
쌓여 있네요.

닐다만 책들이 원체 많
아서리... 일단 메리 스
튜어트부터 끝낸 다음
에 만나볼까 합니다.

mini74 2022-04-14 19:23   좋아요 5 | URL
매냐님 댓글에 뜨끔한 ㅠㅠ 쌓였는데 오늘 책들이 온 ㅠㅠ 그리고 또 자꾸 쟁이는 저 ㅠㅠ 도토리면 묵이라도 쑤어먹지 말입니다 뭘 자꾸 책을 쟁이는지 ㅠㅠ ㅎㅎㅎ

2022-04-14 19: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4-14 19: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4-14 19: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햇살과함께 2022-04-14 19: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미니님, 핵심 정리 잘 읽었습니다^^ 잘못된 신념에 따른 잘못된 정보가 한번 생기면 그걸 깨부수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다시 느꼈어요. 아직도 우생학의 그림자가 사라지지 않고 세계를 배회하고 있으니 말이에요..

mini74 2022-04-14 21:13   좋아요 3 | URL
신우생학이 도래한다니 그것도 걱정이더라고요. 정말 맞춤 아기들 공상소설에서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점점 현실화 되어가는 내용의 기사들 보면 무서워요 ㅠㅠ

가필드 2022-04-14 20:3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미니님 정리 하신다고 수고하셨어요 저도 어젯밤에 다 읽었는데 감옥에서 우생학으로 억지로 불임수술대에 올랐던 그녀들 이야기 눈물이 나오더라구여 지금이라도 바로 잡기 위해 노렸하는 사람들 특히 이글을 쓰시는 작가님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mini74 2022-04-14 21:16   좋아요 4 | URL
저도 공감해요 가필드님 *^^*ㅠ ㅠ 도덕적 자질마저 유전으로 치부하고 마음대로 불임시술하고 또 그런 일들에 당당한 모습들 보며 분노했어요 ㅎㅎ

기억의집 2022-04-14 21: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다우드나가 쓴 크리스퍼 읽었는데, 미니님이 미지막 문단에 말씀하신 대로 정말 좋고 우수한 유전자로 편집하려고 시도 하는 사람들이 있대요. 그걸 막고자 협회를 결성한 사람이 다우드나 였어요. 중국인 브로커가 자기 동료를 불러내더니 맞춤형 인간을 원하니깐 너가 해 달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급하게 그런 재앙을 막고자 협회를 구성했는데, 다우드나 책 읽으면 정말 양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은 들어요. 책하고 실제는 얼마나 다른지 모르겠지만.. 전 다우드나의 책 읽고 유전자편집으로 만든 두부나 먹거리 설득 당해서 먹어요. ㅎㅎ.

mini74 2022-04-14 21:20   좋아요 1 | URL
그 책도 흥미가 갑니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더라고요. 어떤 기술이든 도덕적 책임을 가지고 쓰여야 할 것 같아요. 중국이 그 쪽으로 윤리등에 자유로워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다는 글 본 적 있어요. ~ 기억의집님 읽으신 책이 궁금해서 검색하러 갑니다 ㅎㅎ

coolcat329 2022-04-14 21: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생학이 미국에서 저리 맹위를 떨쳤다니! 저도 많이 놀랐어요.
이 책은 읽다보면 사회적 약자, 소수자가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자연엔 순위가 없다‘ 이 책을 통해 얻은 소중한 진실입니다.

mini74 2022-04-14 21:24   좋아요 2 | URL
미국이 저럴줄은 몰랐어요 ㅎㅎ 우생학하면 먼저 히틀러가 떠올라서요. 루즈벨트도 백인의 힘으로 이루어진 나라라는 말 했다고 그러더라고요 ~ 우생학이 사회적 약자를 도태되어야 할 이들로 규정했지요 ㅠㅠㅠ

건수하 2022-04-14 21: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생학 부분은 옛날 이야기라 생각해서 읽고 금방 잊어버렸던 것 같은데 미니님 글을 읽으니 그렇게 쉽게 읽고 넘어갈 게 아니었네요.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니 무섭습니다..

mini74 2022-04-14 21:50   좋아요 1 | URL
지금 다시 환경과 유전중 유전에 조금 더 무게를 두기 시작하면서 신우생학이 뜬다고 하더라고요 ㅠㅠ 책 속에 소개되는 최근사례를 보면 여전히 우생학은 진행형인듯 합니다 ㅠㅠ

페넬로페 2022-04-14 21: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미리 아는게 좋지 않다고 해서~~
어서 읽겠습니다^^
저의 책 읽어주는 아바타가 있으면 좋겠어요~~

mini74 2022-04-14 21:51   좋아요 4 | URL
페넬로페님 이미 아바타 한둘 정도 갖고계신거 아니셨나요 ㅎㅎ 저도 읽어야지하며 욕심껏 사둔 책들이 쌓여있습니다 ㅠㅠ

그레이스 2022-04-15 20:02   좋아요 2 | URL
저도 필요해요~ 😄

북다이제스터 2022-04-14 22: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미국은 무서운 나라란 말씀에 공감합니다. ㅠ
빨리 없어져야 할 나라지만 절대 빨리 없어지지도 않을 나라라는 생각에 더욱 무섭습니다. ㅠㅠ

mini74 2022-04-14 23:13   좋아요 0 | URL
전 우생학의 시작이 미국임을 알고 내가 미국이란 나라를 참 몰랐구나 싶었습니다 ㅠㅠ

초란공 2022-04-14 22: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언제 이렇게 읽고 쓰신단 말입니까 ㅋㅋ 동영상 편집도 하시면서요 ^^;; 우생학과 벅 vs 벨 소송 판결, 프랜시스 골턴의 우생학 등등의 이야기는 이미 스티븐 제이 굴드의 글에서 본 이야기들이지만 저자 개인의 성정체성에 대한 절실한 문제를 이런 사안들과 연결지으면서 길을 만들어가는 저자의 이야기가 감동인 것 같습니다. 자신의 문제를 이렇게 진지하게 풀어나가는 사람이라니요...

mini74 2022-04-14 23:15   좋아요 1 | URL
다윈이 미친소리라고 했던 우생학이 그의 친척에 의해 주류가 되고 또 사후 그의 자손 중 한 명이 우생학에 열렬히 심취한 걸 보면ㅠㅠ 작가의 어릴적 물음에 대한 긴 여정과 그 답이 함께 해서 저도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작가님 내먄의 성장소설같은 느낌도 받았습니다 *^^*

희선 2022-04-16 0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목숨에 순위는 없는데, 그런 걸 만들려는 사람이 있기도 하네요 지금이라고 없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젠 유전자를 조작한다니... 안 좋은 병이 유전 되면 안 좋겠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그게 더 나은 걸로 조작하려는 걸로 바뀌기도 했네요 사람이 손대지 않아야 하는 것도 있을 텐데... 그런 사람만 있는 건 아니어서 다행이지만...


희선

mini74 2022-04-16 08:12   좋아요 1 | URL
흑인 유색인이 백인보다 미개하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는걸 보면 ㅠㅠㅠ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희선님 말씀대로 또 그런 사람들보단 안 그런 사람들이 더 많아 다행이지요 ~

새파랑 2022-04-16 05: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이런 내용의 책이군요. 미니님 글을 읽고 책사진을 보니 왜 책의 제목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지 약간 이해가 됩니다 ^^

mini74 2022-04-16 08:13   좋아요 3 | URL
제가 읽고 아이 읽으라고 줬어요. 생명에 순위를 메기는 것에 대해 우생학의 시작에 대해 잘쓴 글이란 생각이 듭니다 새파랑님 *^^*

고양이라디오 2022-04-18 17: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현재 독일이 과거 나치의 만행에 반성하고 있듯이, 미국 과학계 또한 우생학에 대해 굉장히 조심하고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합니다.

저도 이 책 너무 잘 읽었습니다. 인간은 어찌도 이렇게 잘못된 사실을 잘 믿어버리고 타인의 고통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지요.

mini74 2022-04-18 17:34   좋아요 2 | URL
정말 다행이에요. 또 이렇게 바로잡으려 하는 분들 계시니 인류가 멸종하지 않나봐요 ㅎㅎ 라디오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