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래 전 읽던 최승자 시인의 ‘길이 없어’의 구절들이 생각나는 순간들이 있다. “길이 없어 그냥/ 박꽃처럼 웃고 있을 뿐,// 답신을 기다리지는 않아요./ 오지 않을 답신 위에/ 흰 눈이 내려 덮이는 것을/ 응시하고 있는 나를 응시할 뿐....” 이 응시하는 나를 응시한다는 표현이 생각하게 하는 것이 염명순 시인의 ‘국경을 넘으며’의 한 부분이다. “나는 내 인생을 여행하지도 않았으며/ 정박하지도 않았다/ 단지 입회했을 뿐이다..” 그리고 장석남 시인의 ‘한진여’란 시. “나는 나에게 가기를 원했으나 늘 나에게 가기 전에/ 먼저 등뒤로 해가 졌으며 밀물이 왔다 나는 나에게로 가/ 는 길을 알았으나 길은 물에 밀려가고 물 속으로 잠기고/ 안개가 거두어갔다...” 리얼해서 참혹하고 그래서 아름다운 감정이입(感情移入)의 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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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8-21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네요!^^ 시들이 !!
전문을 찾아봐야겠어요!^^

벤투의스케치북 2016-08-21 14:11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까? 최승자 시인의 시는 `기억의 집`에, 염명순 시인의 시는 `꾸을 불어로 꾼 날은 슬프다`에, 장석남 시인의 시는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에 수록되었습니다....

[그장소] 2016-08-21 14:13   좋아요 0 | URL
아 ..장석남 시집만 있나봐요!^^
최승자 시인과 염명순 시인 의 시집은 리스트에 넣어놓고..있는것부터 봐야겠네요!^^
 
어젯밤 꿈이 나에게 말해주는 것들 - 프로이트도 놓친 꿈에 관한 15가지 진실
슈테판 클라인 지음, 전대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6년 7월
평점 :
절판


무의식은 억압된 욕망이라는 프로이트의 명제를 반박하기 위해 나선 사람이 있다. 프로이트 정도 되는 대가의 학설을 반박하려면 그 대상을 능가하는 내공을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 철학과 물리학을 공부하고 생물물리학 박사가 된 슈테판 클라인이 당사자이다. 저자는 꿈은 우리 의식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이자 삶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저자가 무의식을 이야기하는 끝에 꿈을 언급하는 것은 프로이트가 꿈을 무의식에 이르는 왕도로 보았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꿈꾸는 동안 능력이 확장되고 뇌가 변화한다. 우리 뇌는 한 순간도 쉬지 않는다.(우리가 잠들었을 때 뇌의 에너지 소비 총량은 겨우 10 퍼센트 줄어든다.) 한편 뇌파 패턴의 다양성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수면이 여러 단계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잠을 자면서 무엇인가를 체험하는 것은 뇌의 타고난 기능에 따른 결과이다. 꿈은 가장 내밀한 체험에 속한다. 우리는 꿈의 대부분을 놓친다. 기억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수면 중인 뇌의 화학적 조성이 장기 기억 수용력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체로 깨어나기 직전의 꿈을 기억한다. 저자는 꿈을 세 가지로 정의한다. 수면 중 체험 자체, 그에 대한 기억, 신체적 과정 등. 저자는 중요한 말을 한다, 정신분석가들은 기억을 해석했고 신경생물학자들은 뇌를 측정했다는 것이다. 저자가 중시하는 것은 꿈 당사자의 직접적 경험이다. 저자는 시상(視床)을 말한다. 척수와 이어진 뇌간 위에 올라탄 기관으로 호두 속살을 닮았다.


시상의 영어인 Thalamus는 안쪽 방, 침실 등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PGO()가 있다. 뇌간에서 발생해서 시상의 중계소에 갔다가 후두엽으로 흘러가는 뇌파이다. 이 파는 후두엽에 도달하는 동안 주위의 뇌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여러 기억이 축적된 곳에 자극이 가해지면 그것이 꿈으로 나타난다고 보는 사람이 있다.(아리타 히데호. 선과 뇌50, 51 페이지) 저자도 PGO파를 이야기한다.(PPons 즉 뇌교/腦橋이고, GGeniculatum 즉 시상에서 시각의 중계 부위, OOccipital 즉 후두엽을 의미한다.)


(REM: rapid eyeball movement) 단계에서 뇌파의 파장이 짧아질 때 뇌간에서 대뇌를 향해 상승하는 특별한 유형의 전기 자극을 저자는 PGO파라 정의한다. 저자에 의하면 그 자극은 대뇌를 깨어 있을 때와 유사한 상태로 만드는데 시각피질의 일부와 수의(隨意)운동 담당 구역, 그리고 눈 주변 근육을 담당하는 구역이 활성화됨으로써 우리는 꿈을 꾸면서 움직이는 그림을 보고 스스로 달리고 기어오르고 날아간다고 믿는다. 꿈을 켜는 뇌간의 스위치는 몸에는 정반대의 역할(근육 마비 시킴)을 한다.(67 페이지.)


시각과 청각을 잃은 헬렌 켈러 이야기를 하자. 볼 수 없는 것은 자신을 사물에게서 멀어지게 했고 들을 수 없는 것은 자신을 사람에게서 멀어지게 했다고 말한 헬렌 켈러는 꿈 속에서 진주 한 알을 유심히 관찰한 경험을 말한 바 있다. 헬렌 켈러는 꿈 속에서 물이 찰랑거리는 소리,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들을 들었(다고 한). 1902년 출판된 자서전에서 헬렌 켈러는 자신의 정신이 잠의 장막을 관통하여 생애의 첫 시기에서 유래한 섬광을 보는 것이 아닐까, 란 자문을 했다.


저자는 꿈속에서 보거나 듣는 것은 명백히 우리 자신에게서 나오지만 그것이 회상일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말하며 헬렌 켈러의 자전적인 글은 이 해석을 반박한다고 결론짓는다. 헬렌 켈러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실험이 있었다. 포르투갈의 수면의학자들이 선천성 시각 장애인 남녀 10명을 실험실에서 재우면서 거듭 깨워 그들이 무엇을 체험했는지 물은 결과 거의 모든 사례에서 그들이 꿈속 광경을 묘사했다.


그들의 보고에서 시각적 꿈의 빈도는 비장애인의 보고와 똑같았다. 피실험자들이 시각 장애인인지 아닌지 모르는 그 전문 평가자들은 비장애인의 보고와 장애인의 보고를 구별하지 못했다. 실험자들은 선천성 시각 장애인들이 자기기만에 빠진 것이 아니라는 증거도 제시했다. 비장애인들과 장애인들 역시 꿈속에서 광경을 본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뇌파가 관측되었다. 시각 장애인들이 꿈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선천적 시각 장애인인 그들이 그린 이미지는 당연히 기억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었다. 수면 중에는 눈 뿐 아니라 1차 시각피질도 작동을 멈춘다. 그러나 콜라주를 제작하고 현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는 연합영역들은 계속 작동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꿈속에서 본다고 믿는다. 회상하는 것임에도 말이다. 시각 장애인에게 시각 지각과 시각적 회상이 없어도 지식만을 원천으로 표상이 발생할 수 있다. 시각 장애인이 촉각이나 타인의 설명을 통해 지식을 얻으면 연합구역들이 이를 일종의 내면적 그림으로 번역한다.


영국의 인지심리학자 크리스 프리스는 세계에 대한 우리의 감각 지각은 현실에 부합하는 환상이라는 말을 했다. 콜롬비아의 뇌과학자 로돌프 지나스는 깨어 있음이란 감각이 정한 틀 안에서 작동하는 꿈 같은 상태일 따름이라는 말을 했다.(96 페이지) 꿈은 깨어 있는 삶의 왜곡된 반영이 아니라 뇌가 감각의 연속적인 점화에서 벗어나자마자 어떤 표상을 산출하는지 보여준다.(97 페이지) 저자는 기억을 최소한의 연출 지침만 있는 상태에서 다양한 배우들이 공연 때마다 새롭게 창작하는 즉흥극에 비유한다.(106 페이지)


저자는 실제로 뇌에는 기억을 담당하는 기관이 따로 없다고 말한다. 기억을 모아서 보관하는 필름이나 하드 디스크와 같은 장소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개별적인 감각 인상, 감정, 생각은 그것이 발생한 장소에 붙들린다는 것이다. 기억은 관계망의 형태로 조직된다. 기억이 우리에게 유용한 것은 오직 의미에 따라 정리되기 때문이다.(107 페이지) 프로이트와 앨런 홉슨 등 꿈 연구자들은 꿈을 광기의 일종으로 보았다. 물론 저자는 이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꿈 속에서 논리적 사고가 행해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잠잘 때 전전두엽은 잘 작동하지 않는다.(전전두엽은 계획하고 감독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저자에 의하면 꿈속 자아는 기본 입자로 분해된다. 그리고 우리의 개인적 정체성이 통념 만큼 그렇게 탄탄하지 않음을 깨닫는 것은 당황스러운 한편 해방의 체험이기도 하다.(133 페이지)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꿈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고요한 사건은 외면한 채 렘수면에만 집중해왔다.


꿈은 렘수면시에만 꾸는 것도 아니고 비논리적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저자는 숙면 중에 의식이 규칙적으로 꺼지고 켜지기를 반복한다고 추측한다.(140 페이지) 꿈은 기억과 능력을 변화시키고 때로 성격까지 변화시킨다. 의식은 깨어 있음의 부속품이 아니다. 저자는 프로이트와 달리 무의식적 충동은 자동적인 행동 습관이지 억압된 감정이 아니라 말한다.(166 페이지) 저자는 우리는 낮 동안에 자기 감정의 참된 기원을 모르는 채 생활(173 페이지)하고, 감정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처럼 일어날 수 있다(175 페이지)고 말한다.


저자에 의하면 진정한 꿈의 주체(꿈을 꾸게 하는 주체)는 시각적 이미지가 아니라 감정이다.(179 페이지) 꿈꾸는 뇌는 모든 감정이 일어날 때마다 그에 어울리는 각각의 환상적인 이야기를 지어낼 수 있는 교묘한 이야기꾼과 비슷하다.(183 페이지) 꿈을 설명하는 열쇠는 현재(라는 말)이다. 꿈 시험의 배후에는 억압된 유년기의 트라우마가 숨어 있지 않다. 현재의 불안이 자신과 어울리는 기억을 불러낼 뿐이다.(183 페이지) 저자는 프로이트의 꿈 해석은 반박할 길도 없고 증명할 길도 없다고 말한다.(201 페이지) 반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잠든 뇌는 낮의 뇌와 다른 길을 가고 다른 법칙을 따른다.(201 페이지) 저자는 기억은 감정과 결합되어 있을 때만 우리의 결정에 제대로 기여할 수 있다고 말한다.(229 페이지) 숙면이 없으면 우리는 너무 적은 정보를 보유하게 될 것이며 렘수면이 없으면 정보가 아무 관련 없이 나열되어 가치가 없을 것이다.(230 페이지) 저자는 괴로운 체험에서 벗어나려면 기괴한 꿈들이 필수적이라 말한다.(246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악몽은 영혼이 건강을 회복하는 중임을 알려준다.


뇌는 수면 중에 감정과 장면 기억을 구분해서 처리한다.(247 페이지) 꿈꾸는 동안 특정 사건과 결부된 분노, 공포, 슬픔이 소거될 수도 있다. 프란츠 카프카는 열심히 깨어 있음과 꿈 사이의 세계를 연구하고 작품에 반영한 인물이다. 놀랍게도 그는 한 차례도 자신의 꿈을 해석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그의 시대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모든 사람들의 이야깃거리로 떠오른 시대였다. 카프카가 해석을 거부한 것은 사건이 우리에게 직접 말을 걸어오는 데 비해 해석은 그 직접성을 파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카프카는 꿈은 그 자체로 영혼의 언어이므로 심리학적 번역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저자에 의하면 꿈이 우리에게 안겨주는 가장 큰 선물은 꿈 그 자체이다.(310 페이지) 예술 작품과 마찬가지로 꿈은 인간의 상상력이 이룬 성취이다. 꿈은 최고의 회화나 영화, 소설보다 더 재미있고 더 큰 흥분을 일으킨다. 당신이 꾸는 꿈, 그것이 바로 당신이다.(311 페이지) 슈테판 클라인의 책은 홀로그램, (), 예지몽 등에 대한 고찰로 나아가게 한다. 시간나는 대로 읽고 참고할 책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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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클라인은 철학과 물리학을 공부하고 생물물리학 박사 학위를 가진 특이한 존재이다. 그는 ‘어젯밤 꿈이 나에게 말해주는 것들’(2016년 7월)에서 프로이트의 꿈 및 무의식 이론과 반대되는 견해를 다수 제시한다. 대표적인 것이 무의식적 충동은 자동적인 행동 습관이지 억압된 감정이 아니라는 말이다. 잠든 뇌는 낮의 뇌와 다른 길을 가고 다른 법칙을 따른다는 말도 주목할 만하다. 꿈을 설명하는 열쇠는 현재이며 꿈 시험의 배후에는 억압된 유년기의 트라우마가 숨어 있지 않으며 현재의 불안이 자신과 어울리는 기억을 불러낼 뿐이라는 말도 그렇다.

 

이 말들은 스켑틱 vol 6에 실린 이지형의 ‘음양오행이라는 거대한 농담, 위험한 농담’의 구절들을 생각하게 한다. “괘 또는 효와 그 같은 유학적 언급들의 관계는 자의적일 뿐이다. 왜 주역의 15번째 지산겸 괘가 겸손을 뜻하는 겸의 괘여야 하며, 이 괘의 5번째 효에 관한 해설이 침범하는 게 이롭다는 것은 복종하지 않는 지역을 정벌한다는 뜻이 되어야 하는지 음양적 근거 따위는 없다.” 요즘 프로이트는 여기 저기에서 비판받고 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텔레마코스 콤플렉스로’란 부제를 가진 마시모 레칼카티의 ‘버려진 아들의 심리학’(2016년 8월)도 그런 시도들 중 하나이다. 물론 온갖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아버지의 귀환을 기다리는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에게서 유래한 텔레마코스 콤플렉스를 일반화해 볼 수는 없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꿈 해석에서만은 프로이트는 타당하다고 볼 여지가 거의 없다. 이지형의 글 제목을 따 꿈 해석이라는 거대한 농담, 위험한 농담이라는 말을 떠올려도 무방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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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비밀 - 문예중앙산문선
송재학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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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시인의 산문을 정통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문단의 흐름 같은 것이 있는 듯 하다. 작년 가을 구입한 '검은색이란 시집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얻기 위해 시인의 풍경의 비밀이란 산문집을 구입한 지 거의 1년의 시간이 흘렀다. 더욱 최근 읽은 허만하 시인의 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란 산문집이 좋아 나는 그런 기대감으로 풍경의 비밀에 기대를 걸게 된다. 낙타는 십리 밖 물 냄새를 맡는다에 시론(詩論)이 충분히 담겼듯 풍경의 비밀도 시론이 잘 정리되어 있어 기대에 부응한다.


시인은 자코메티의 조각을 본 결과를 악기가 필요할 때란 시로 남겼다. 저자는 방이 없다는 것을 사유의 공간이 좁아졌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방이 없던 당시 자신의 글이 미문에만 머물렀었다고 말한다.(저자는 자신이 자주 미문의 함정에 빠졌던 것은 김현을 그릇 배운 탓 즉 김현의 겉멋만을 따왔기 때문이라 말한다.) 저자는 아버지의 이른 죽음을 소재로 소래 바다는이란 시를 썼음을 밝히며 시의 중요 부분들을 해설한다.


저자가 열세살이던 때 그의 아버지는 서른 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의 부재는 커다란 상처였다고 한다. 저자는 이제 아버지에 대한 글을 쓰지 않으려 한다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지상 밖 어디선가 새 살림을 꾸려가실 그분에게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불손(不遜)한 의문인지 모르지만 시인의 아버지가 더 오래 사셨다면 부자관계는 어땠을까?란 생각을 하게 된다.


단언할 수 없지만 박완서 선생의 따뜻함을 상찬하는 글을 보아서는 저자가 오이디푸스적 반감을 사회에 대해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가 자신에게 억압이었다는 말을 통해서, 그리고 좋은 시는 긴장과 불평 밖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지만 자신의 시는 불평일 뿐이라는 말을 통해 시인이 어느 정도의 오이디푸스적 반감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시를 쓰지 않았다면 세계의 미묘하고 얼룩진 부분에 대한 얄팍한 증오의 포용력밖에 지니지 못했을 것이라 말한다. 그런 미학의식이 자신의 긴장의 시학을 만들었다고 한다.(170 페이지)


저자는 몇 개월의 용맹정진을 통해 재능없음을 깨닫고 막 문학을 포기하려는 자신에게 신춘문예 당선 소식이 날아든 것은 비극이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긴장이야말로 시학의 중심이라 생각한다. 평정한 상태에서는 시가 고이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진술에는 생각의 여지가 많다. 흔히 시()는 말씀 언()과 절 사()의 결합으로 칭해진다. 절제된 언어, 수행자의 평정한 언어를 의미하는 것이 시이다. 이제 시란 절제된 평정의 언어라는 고래(古來)의 정의를 버려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긴장은 시를 말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임에도 긴장의 미학으로 시를 분석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한다. 저자는 좋은 작품에서 느껴지는 힘은 서로 반대되는 세력들의 밀고당김에서 생기는 것이라는 앨런 데이트의 말을 인용한다. 저자는 바슐라르를 통해 책읽기의 게으름, 삶의 게으름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게으름이란 발효에 필요한 시간을 의미한다.


저자는 자신의 책읽기는 늘 주마간산이고 생각이란 것을 정연하게 적을 수 없는 바 시론(詩論)에 관해서라면 더욱 그렇다고 덧붙인다. 당연하지만 풍경의 비밀을 통해 우리는 시인이 얼마나 자기 세계를 만들기 위해 애써왔는지 알 수 있다. 이는 비단 송재학 시인만의 일은 아니다. 풍경의 비밀이란 제목을 한 그의 책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시란 나에게 어떤 운명을 준비하는가란 이름을 가진 시론이다. 충실히 읽는다 해도 그의 시집들을 이해하는데 직절(直截)한 도움이 될지 장담할 수 없지만 시와 조금 친밀한 관계를 맺는데 도움이 될 수는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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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5, 26일, 9월 1, 2일 마포에 갑니다. 일군(一群)의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듣는 모임.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는 성경 말씀대로 나 스스로 문을 두드렸고 청강생으로 접수한 사람의 포기에 힘입어 극적으로 기회를 얻었지요. 오라는 곳은 없어도 가고 싶은 곳은 또는 갈 곳은 많은 사람이 부리는 억지 같지만 다행인 것은 물론이지요. 일정도 모른 채 문을 두드렸는데 다행히 모임 7일전이었던 것도 극적이지요. 8월 22일부터 8주에 걸쳐 매주 월요일에 만나는 고척동 강의 듣기 모임도 마지막 순서인 서른 번째로 기회를 얻었지요. 운이 좋은 것인지, 아슬아슬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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