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과 그에 기반한 카카오톡 및 카카오스토리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성경 속 인물인 바울 사도(司徒)의 말과 우리나라 한 중견 시인의 시를 가져다 쓰는 것은 다소 생뚱맞은 처사일 수 있다. 그래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 두 분의 생각이 내 마음을 잘 설명하기 때문이다. 잘 알려졌듯 바울 사도는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 보듯 희미하게 보지만 그때 가서는 얼굴을 맞대고 볼 것입니다.”(고린도 전서 13장 12절)란 말을 했다. 스마트폰에 서툰 나는 지금은 스마트폰이 희미한 거울 같지만 그때 가서는 직접 맞대고 보는 얼굴처럼 명확해질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다.


거짓말 같지만 스마트폰 유저가 된 지 불과 사흘만에 지하철 정차 역을 두 번이나 지나친 사람이 나다. 한이나 시인의 ‘능엄경 밖으로 사흘 가출’이란 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시인은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능엄경 밖으로 사흘 무단가출해 돌아오지 않는 마음을/ 안으로, 조용히, 불러들였어요...마음을 허방에 빠뜨리고, 껍데기/ 만 거리를 오고 가면서, 왜 그리, 허둥대고 사방 분주하였/ 던지요...” 이 시를 읽고 나는 내 카카오스토리를 설명하는 문구로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로 가출‘이란 표현을 썼다.


양가감점에 익숙한 나는 경계에 속한 나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스마트폰 역시 내게 양가감정의 대상임을 이미 사용 첫날에 페북 댓글로 밝혔다. 스마트폰에 빠진 나는 이번 주(8월 29일 ~ 9월 3일) 겨우 책 한 권을 읽고 말았다. 어제 강남의 한 한의원에서 열린 ‘떨지 않고 말 잘하는 법‘ 강의에서 나는 또 한번 경계에 처한 나를 확인했다. 내 떨림 지수 27점은 주의를 요하는 시작점인 30점에 근접한 수치이지만 안정적인 수치인 10점과 20점 사이를 웃도는 수치이다. 나와 스마트폰의 접점은 어떤 모양으로 그려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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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편을 인용하기 위해 시인에게는 6만원, 해당 출판사에는 3만원 등 모두 9만원의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하는 현 저작권 보호 정책에 따르면 50편의 시를 인용해 시 해설서를 낼 경우 지불해야 하는 돈은 450만원이다. 3000부 이상은 판매해야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황이다. 요즘처럼 시(그리고 시 해설가나 시 비평가의 글들)가 잘 읽히지 않는 세상에서 이루기 어려운 고지라 할 만하다. 장석남 시인의 ‘시의 정거장’은 이런 이유 때문에 시 인용은 일체 하지 않고 해설만 실은 책이다. 독자로서는 해당 시들을 찾아 읽으려 할 수도 있고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한 시인은 시집 한 권을 내는 것을 집 한 채를 짓는 것에 비유했다. 타당한 말이다. 물론 궁금증이 없을 수 없다. 

 

비평가나 문인이 소개한 시가 유명해져 판매 수익 증가로 이어질 경우 시인이 해설서나 비평서의 저자들에게 사례 성격의 돈이든 거래 성격의 돈이든 지불하는가, 란 궁금증이다.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시인들은 시도 잘 안 읽히지만 시 비평이나 시 해설서는 더 안 읽힌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장석남 시인의 경우 자신의 수익을 위해 시를 인용하는 시 해설서를 쓰려 했을 것이고 결국 저작권 보호 때문에 시 없는 시 해설서를 쓴 것이지만 재수록 비용 지불과 무관한 연구나 교육, 비평 등을 목적으로 한 책으로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경우 앞서 말한 두 경우(해당 시들을 찾아 읽으려는 경우와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 중 전자에 해당한다. 즉 해당 시들을 찾아 읽으려는 부류에 속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시 없는 시 해설서’들이 시의 정거장’처럼 일정 수준 이상을 담보했다 해도 계속 될 경우 피로감을 줄 수 있으리라 보인다. 저작권 보호 때문에 해설과 시 원문을 함께 실은 좋은 시 해설서의 출판이 위축될 수 있다는 생각은 자연스럽다. 시인, 독자, 해설가가 상생하는 길은 없을까? 장석남 시인은 언젠가 대학로인가를 지나다가 ‘물의 정거장’이란 글귀를 보고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다는 말을 한 바 있다. 자신이 쓰는 글들이 문득 그런 것은 아닐까, 란 장석남 시인의 생각을 따르면 ‘시의 정거장’은 시인과 독자를 매개하는 의미가 깃든 제목이 아닐 수 없다. 매개(媒介)라는 말을 생각하게 된다. 물론 시 없는 시 해설서 같은 파격적인 매개가 아닌 평범한 매개여야 의미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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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과 고등학생을 위한 소논문 작성법 - 학교생활기록부 R&E 활동 . 대학 입시 완벽 대비
이상호.서대진.장형유 지음 / 북스타(Bookstar)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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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이 내게 직접적으로 필요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논문 작성법(‘문, 이과 고등학생을 위한 소논문 작성법’)을 읽는 것은 내게 일반적인 의미에서 글을 쓸 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논문에는 공통의 약속 또는 약정 같은 것이 있다. 그것을 지켜야 한다. 문장은 논리적이어야 하고, 평이해야 하며, 간결해야 하며 문장 문단에 체계가 있어야 한다.


간결한 문장을 써야 한다는 의미란 하나의 문장에 하나의 내용만 담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논문 작성 준비는 간이 계획서와 본 계획서로 나눠 한다. 흥미로운 점은 고등학생들이 논문 작성법 교육을 받는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논문 작성법을 알려주는 책이 출간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전체 다섯 챕터로 이루어진 구성 가운데 가장 중요한 부분은 2장 ‘소논문 쓰기, 어떻게 시작할까요?’이다.


주제를 잡는 방법, 주제를 잡기 위해 목차를 설정하는 방법 등을 말하는 장이기 때문이다. 목차는 집의 설계 즉 뼈대에 해당한다. 주제를 보고 목차를 잡을 수 있어야 하고, 목차를 통해 주제가 대변되어야 한다. 마인드맵이란 개념이 중요하다. 이는 한 주제로 시작해서 뿌리가 뻗어나가듯 다양한 정보들 사이에 연계성을 발견하여 소 범주화하고 이것을 다시 대 범주로 요인화하여 위계를 설정하는 것을 말한다.


움베르토 에코가 말했듯 주제는 연구자의 흥미에 부응해야 한다. 또한 연구의 방법론은 연구자의 경험 영역에 부합해야 한다. 저자들은 문헌과 자료가 유용한 주제, 구체적이고 깊이 있는 주제, 결론이 가능한 주제, 독창성이 있는 주제, 평소에 관심 깊은 주제, 과학성이 있는 주제, 장래성(연속성)이 있는 주제 등을 고를 것을 주문한다.


주제 선정을 잘하면 논문의 절반을 쓴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이 있다. 가설은 조건과 반응이라는 두 변인(變因)을 가지고 ‘~ 하면 ~ 이다’, ‘~은 ~가 아니다’, ‘~ 방법으로 지도하면 ~한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등의 형식으로 진술하여 연구 결과가 제시되는 특징을 갖는다. ‘문, 이과 고등학생을 위한 소논문 작성법’은 문과와 이과생들을 위한 맞춤형의 조언을 충분히 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구체적 사례들을 들어 논문을 작성하는 법을 알기 쉽게 설명한 책이다.


상세한 내용들이 장점인 이 책을 시간나는 대로 읽어 논문 작성법을 완전히 익히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아니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맞춘 책이 ‘소논문 작성법’이다. 논문 작성법에 익숙해지면 결국 그보다 더 많은 분량의 책도 쓸 수 있을 것이다.


논문의 위상에 많은 비판이 몰리고 있지만 극복을 위해서라도 완전히 아는 것이 필요하다. 나의 경우 논문 작성법에 대한 책이 익숙하지 않다. 자유로운 읽기와 쓰기에 그 만큼 익숙해졌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자유로운 읽기와 쓰기를 위해서도 규정과 틀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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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의 곡들 중 한 장르를 고르라면 종교 칸타타를 꼽을 것이다. 평균율, 영국 모음곡, 프랑스 모음곡 등의 건반 음악, 무반주 첼로 모음곡,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 소나타, 파르티타, 토카타와 푸가, 전주곡과 푸가 등의 오르간곡들, 골드베르크 변주곡, 음악의 헌정 등을 제치고 그리고 미사곡, 수난곡, 오라토리오, 모테트 등 같은 유형의 성악 곡들도 놔두고 칸타타를 꼽는 것은 상징성 때문이다. 1번에서 200여 번까지의 작품 목록을 차지한 바흐 칸타타는 순정(純正)함이 돋보인다.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칸타타들은 1번, 4번, 8번, 12번, 20번, 47번, 80번, 82번, 100번, 140번, 147번, 168번, 198번 등이다. 이 가운데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곡이 198번이다. 그리고 이 가운데서도 마지막 10번째 파트인 합창 'Doch, Königin! du stirbest nicht'를 빼놓을 수 없다.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아름다운 곡이다. 칸트의 ‘판단력 비판’을 응용해 말하자면 바흐 칸타타들은 이성 없는 동물들도 느낄 수 있는 쾌감 차원의 곡도, 이성적 존재자 일반에게만 적용되는 선(善)함 차원의 곡도 아닌 이성적 존재자이면서 동물적 존재자인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곡들이다. 이제 한 분과 더 친구가 되면 페친수가 200이 된다. 각기 다른 개성으로 빛나는 아름다운 바흐 칸타타들에 비견될 분들이다. 친구수를 제한하기로 하고 페북을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200 분을 넘기고 싶지 않다. 페친에 대해 말하자면 요청을 받았다고 좋아할 것이 아니라 요청한 분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가 신청한 분들까지 포함해 모든 페친들에게 감사한다. 고마워할 분들도 많으면 부담이 되기에 나는 200을 넘기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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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출판 기획, 편집 강의를 하신 한 강사 분은 두 시간 강의는 어느 정도 하겠는데 세 시간 강의는 도살장에라도 끌려가는 기분이 든다는 말을 했다. 이 분의 말이 많은 생각을 유도한다. 강의를 준비하는 분의 노고와 어려움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두 시간 강의라고 쉽겠는가? 그럼에도 듣는 입장에서는 그 이상을 바라게 되는 것 같다. 1300여 페이지의 미술 인문서를 쓴 한 강사 분이 자신의 책을 풀어 설명하는 강의 프로그램을 두 시간으로 설정한 것을 보며 동서양 철학을 미술로 보는 만만치 않은 주제를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다 하려는가, 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어제 신화 속의 역사 강의를 하신 분의 말처럼 자기 주도 학습이 필요할 것이다. 미술사와 철학을 배운다기보다 공부하는 방식을 배운다는 생각으로 참여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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