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없이 산 물 속 유충 석삼 년의 시간은
산 목숨이 아니다
내게 날개 없는 천일보다
날개 달린 하루가 위안으로 빛난다...“(‘모차르트의 날개’)란 감동적인 시를 쓴 한이나 시인. 그에게는 ‘나비. 꽃이 되다’란 시도 있다.

 

”고요하여라, 질곡 앞의 생
겨우내 땅 속 어둠에 납작 엎드려
날개를 얻기까지 벌레였을 그...“

 

모두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하현 달빛 아래
지워지지 않는 발자국들이
옷을 입는다
우화등선(羽化登仙)하는 저 나비들 좀 봐“란 ‘남한산성.2’에서도 우화등선하는 나비 이야기를 풀어놓은 시인.

 

하지만 시인이 오랜 기다림 끝의 우화(羽化)나 비상(飛上)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열정의 한철 비상을 꿈꿨던
한 생애의 꿈을 접고
키 큰 나뭇가지 끝에서 오래 견디다가
끝내 뛰어내리고야 마는
낙하,...“란 말도 시인은 한다.(‘낙우송落羽松)

 

‘모차르트의 날개’와 ‘나비. 꽃이 되다’는 위로로 받고 ‘낙우송’은 격려로 받으면 되지 않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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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 전체를 주목하기보다 영감을 주는 몇몇 오브제들에 주목해 자유로운 글을 쓰는 읽기를 하고 싶다. 어제 광화문 교보문고 아트 스페이스에서 본 강요배(姜堯培: 1952 - ) 화가의 ‘적벽’, ‘입동 - 초승’, ‘산정(山頂)의 달’ 등의 작품을 보며 하게 된 생각이다. 몇몇 작품들만을 보았기에 단언할 수 없지만 나는 그의 그림들에서 신비스럽고 상징적인 화법을 보았다.(오브제는 예술 작품으로 대할 때 의미를 지니는 사물이지만 내가 여기서 쓴 오브제란 말은 글쓰기를 염두에 두고 대하는 소재들을 의미한다.) 신비와 상징은 핵심적인 부분에 주목해야 제대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또한 드러냄과 감춤이 적절한 긴장을 이룰 때 나타나는 것이기도 할 터이다. 자료를 찾다가 내 나이 무렵의 화가를 인터뷰한 지난 2004년의 기사를 읽었다. 그의 작업실에는 ‘주역’에서부터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까지 고루 갖춰져 있다고 한다. 그 책들이 화가의 작업 공간에 놓인 것은 화가가 그 책들의 내용을 그림으로 옮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들로부터 영감을 얻기 위해서일 것이다. 나도 이런 길을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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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끝난 출판 강의 중 책 제목 설정 부분에서 ‘나는 한국에서 어른이 되었다‘란 책이 거론되었다. 이 책의 원제는 ’Brother one cell‘이다.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미국 청년이 대마관리법 위반으로 하게 된 교도소 생활을 기록한 책이다. 중요한 것은 세포, 전지(電池), 벌집의 방 외에 수도원이나 교도소의 독방 등을 의미하는 cell이란 단어에 대한 해석이다. 교도소 생활을 그린 책이니 cell은 당연히 교도소의 독방을 의미하지만 나는 cell이 중의적으로 쓰인 표현이 아닌가 싶다. 즉 그 미국인 영어 강사에게 교도소가 수도원의 독방과 같은 역할을 하지 않았는가 싶은 것이다. 다짐 만큼 운동을 하지 못하는 나는 내 방에서 서서 책을 읽으며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이 돌아다님을 불교에서 말하는 걷기 명상 즉 경행(經行)이라 할 수 있다. 수도원 생활이 이렇게 소란스럽지는 않겠지만 나는 내 방을 수도원의 독방으로 여긴다. 봉쇄(封鎖) 수도원이 아닌 일반 수도원의 방...인생을 여전히 배우고 수행하는 곳이라 생각하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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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압구정동의 한 한의원에서 열린 ‘떨지 않고 말 잘하는 법‘ 강의. 10여명이 들어설 수 있는 작은 방에서 분위기 좋게 시간이 갔다. 두 사람씩 파트너가 되어 3분씩 무작위로 주어진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당황(?)스러웠던 점은 당시 내가 떨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누구에게(또는 누구 앞에서) 말을 하느냐, 무엇을 이야기 하느냐 등에 따라 떨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은 당연하다.

 

지난 번 아프가니스탄 황금유물전 전시회가 열린 국립중앙박물관 강당에서 관련 강연회가 끝나고 질문을 하는 자리에서 나는 심하게 목소리가 떨리는 경험을 했다. 그때와 그제는 상황이 다르다. 그때는 400여명이 들은 큰 자리였고 질문 주제도 민감한 것이어서 자연스럽게 떨렸다. 반면 그제는 열 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인 평화로운 자리였고 과제도 단순했다. 내 파트너는 30세 정도의 여자분으로 신뢰에 대해 말을 하게 되었다.

 

나는 어리석게도 그 분이 먼저 말을 하도록 순서가 정해지자 한편으로는 그 분의 말을 들으며 공감도 표하고 한편으로는 무슨 말을 할까를 궁리했다. 내게 주어진 주제는 열정(熱情)이었다. 내 파트너는 마지막 30여초 정도를 남겨두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그래도 끝까지 이야기를 했다. 듣건대 왠만한 사람들은 1분 30초 정도를 넘기기 어렵다고 한다. 나는 열정을 영어로 passion이라 하는데 수난(受難)도 Passion이라 한다는 말로 운을 떼었다.

 

바흐의 마태수난곡, 요한수난곡 등을 예로 들며 나는 열정적인 사람은 상처를 받기 쉬운데 그것이 바로 수난이 아닌가 한다는 말을 했다. 반면 냉정한 사람은 상처받는 것과 거리가 멀지만 사람과의 거리감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말, 인간에게는 갭이 있고 다름이 있으니 극단은 피해야 한다는 말 등을 더했다. 강연자는 즉흥성(순발력), 일관성, 구성(기, 승, 전, 결 또는 서론, 본론, 결론의 체계를 갖추는 것), 논리성(명확한 근거 제시), 유머 등으로 연습해야 할(또는 중점을 두어야 할) 우선 순위를 두었다.

 

SK에서 오래 스피치 리더십 강사를 지낸 강연자는 삶에 활력을 주고 위험에 대처하게 하는 등 인간과 필수불가결한 긴장, 떨림 등을 모두 없앨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는 말을 하며 그런 점에서 책 제목(’떨지 않고 말 잘 하는 법‘)이 적절한 것은 아니었다는 말을 더했다. 이 말을 듣고 내가 생각한 것은 (얼마나 맥락이 일치하는지 자신할 수 없지만) 정신분석가 백상현 교수가 ’라깡의 루브르‘에서 한 말이었다.

 

그에 의하면 정신분석은 증상의 소멸이 아닌 주체가 증상과 화해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증상(을 유지하려는 것)은 주체가 큰 쾌락을 즐기는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이라는 의미이다. 김승희 시인의 ’객석에 앉은 여자‘를 읽어야겠다. 아프기 때문에 삶을 열렬히 살 수 없다고 말하지만 열렬히 살지 못하는 삶의 알리바이를 마련하기 위해 아마도 병을 기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심을 받는 여자에 대한 시. 물론 이 경우는 상황이 복잡하다. 그녀는 병을 길러 행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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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걸어서 한바퀴 - 서울성곽길 따라 6백 년 역사 속으로
유영호 지음 / 창해 / 2015년 4월
평점 :
품절


 

올해는 1394년 이성계가 조선의 수도로 한양을 정한 지 622년이 되는 해이다. 조선은 중국 중심권 안에 머물렀던 유교 국가였다. 조선, 하면 생각나는 것은 당쟁, 남녀차별적인 유교 문화, 장구한 왕조의 역사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성곽길도 나름으로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양 도성 걸어서 한 바퀴’는 오십을 목전에 둔 어느 날 한양 도성길 순례에 나선 역사 체험가 유영호의 탐험 및 탐사(探史)의 노고가 깃든 책이다.


한양 정도(定都), 그리고 주산(主山) 설정 자체가 유교 또는 풍수지리, 불교 등의 이념 대립이 낳은 결과이다. 한양도성은 현존 도성들 중 세계 최장 기간(514년: 1396 - 1910년)에 걸쳐 도성 역할을 수행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중국 문헌인 ‘석명(釋名)’에 궁(宮)은 궁(穹)이란 글이 있다. 담 위로 높이 솟은 집이라는 의미이다. 저자의 책을 통해 우리는 한양 도성길은 일제(日帝)가 남긴 흔적과 무관할 수 없다는 점을 알게 된다.


왜(倭)에서 일본까지 엮인 우리의 역사는 친일과 민주인사의 대결 구도를 선명하게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저자는 역사적 유물 및 건축물 등과 관계된 인물들을 호명해 그 배경과 변천사(變遷史)를 밝히고 우리의 현재 의미와 연결짓는 방식으로 책을 구성했다. 그렇기에 야사(野史)를 많이 참고한 것이 눈에 띈다.


좁게는 도읍을 둘러싼 성곽과 문을, 넓게는 성곽 및 그 안의 공간을 가리키는 한양도성(都城)은 18여 km의 둘레길이다. 한양도성 순례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으려는 사람이라면 꼭 해야 할 것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처음 서울 성곽을 따라 걸으며 인구 1천만의 대도시에 이렇게 아름다운 산과 숲이 있었나 싶을 만큼 놀라웠다는 말을 한다.


한양 도성, 하면 나는 먼저 부암동을 떠올리는데 그것은 자신이 사는 부암동 집을 "광화문이 지척이면서도 조용하고 호젓하며 공기가 맑다.“고 표현한 한 언론인으로 인해서이다. 수도로서의 위상과 지위를 지켜오던 한양 도성은 한말 외세에 의한 강제적 근대화와 일제강점으로 인해 훼손되기 시작했다.


1988년 전차 개통으로 인해, 그리고 1907년 숭례문 아래로는 비좁아 지나갈 수 없다는 이유를 제시한 일본 왕세자 요시히토 사건 등으로 인한 수난을 당하게 된 한양 도성은 1925년 이후 성벽에 인접해 집을 지은 민간에 의해서도 훼손이 가속화했다고 할 수 있다. 책은 한양 도성과 이웃한 역사적 건물들에 대한 정보만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만들어낸 사건 이야기가 함께 비중 있게 전달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이란 친일 쪽에 섰던 자들과 반일 애국지사들로 양분된다고 할 수 있다. 때로 알려진 것과 다른 부분도 담고 있어 당혹스러운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나는 저자의 치밀한 역사 고증을 신뢰한다. 확실한 근거 제시와 분명한 논리가 그런 생각을 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분명한 역사관은 조선 초기 있었던 불교와 유교 정확하게는 무학대사와 정도전의 대립 이상으로 흥미를 끈다.


왕위를 놓고 벌인 골육상쟁 및 부자의 갈등, 권력의 격랑에 휘말린 임금과 왕비(王妃)의 애틋한 사연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그 사연들 중 단연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단종과 정순왕후 송씨의 사연이다. 정순왕후 송씨는 조선 역사상 처음으로 세자가 아닌 국왕과 혼인한 왕비이다. 고려 의종때 희종법사가 창건한 숭인동 청룡사에 우화루(雨花樓)란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은 단종과 정순왕후가 마지막 밤을 지새운 곳으로 영원히 이별한 곳이라는 의미에서 영리정(永離停)으로도 불렸다.


인상적인 것은 오행(五行) 즉 상생상극 관계로 엮인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에 맞춘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란 미덕을 건물에 적용해 도성 동서남북의 문 이름을 각각 흥인(仁)지문, 돈의(義)문, 숭례(禮)문, 숙정(正)문 등으로 설정하고 중앙에 보신(信)각을 둔 것이다. 북문에 지(智)가 아닌 정(正)이란 이름이 붙은 것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숙종때 도성과 북한산성을 잇도록 축성한 홍지(智)문이 숙정문을 대신했다는 말이 있고, 숙정문이 소지(智)문이었다는 말이 있다.


‘한양 도성 걸어서 한바퀴’는 숱한 사연과 배경 지식을 실어 역사를 간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한 구성이 빛난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생각한 것은 역사적 유적과 건물도 결국 사람 사이의 관계로 수렴한다는 점이다. 도성에 대한 지식은 사람들이 만나 이루어낸 사건에 대한 지식 곧 역사에 대한 지식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의 책을 어떤 관념적 주제를 논리적이거나 실증적으로 입증한 역사 보고서가 아니라 설명한다.


그저 물리적 시간대와 공간대를 따라 도성 길을 순례하며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낀 것을 기록한 순수 기행문이라는 소개가 눈길을 끈다. 그렇기에 시대적 배경면에서 일관성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지만 역사를 수필(隨筆)처럼 자유로운 필치로 그려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싶다. 달빛 따라 걷는 한양 도성길 걷기라는 프로그램이 눈에 띈다. 저자의 책은 그 낭만적이고 역사적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좋을 것이란 생각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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