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끝난 출판 강의 중 책 제목 설정 부분에서 ‘나는 한국에서 어른이 되었다‘란 책이 거론되었다. 이 책의 원제는 ’Brother one cell‘이다. 한국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미국 청년이 대마관리법 위반으로 하게 된 교도소 생활을 기록한 책이다. 중요한 것은 세포, 전지(電池), 벌집의 방 외에 수도원이나 교도소의 독방 등을 의미하는 cell이란 단어에 대한 해석이다. 교도소 생활을 그린 책이니 cell은 당연히 교도소의 독방을 의미하지만 나는 cell이 중의적으로 쓰인 표현이 아닌가 싶다. 즉 그 미국인 영어 강사에게 교도소가 수도원의 독방과 같은 역할을 하지 않았는가 싶은 것이다. 다짐 만큼 운동을 하지 못하는 나는 내 방에서 서서 책을 읽으며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이 돌아다님을 불교에서 말하는 걷기 명상 즉 경행(經行)이라 할 수 있다. 수도원 생활이 이렇게 소란스럽지는 않겠지만 나는 내 방을 수도원의 독방으로 여긴다. 봉쇄(封鎖) 수도원이 아닌 일반 수도원의 방...인생을 여전히 배우고 수행하는 곳이라 생각하는 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지난 2일 압구정동의 한 한의원에서 열린 ‘떨지 않고 말 잘하는 법‘ 강의. 10여명이 들어설 수 있는 작은 방에서 분위기 좋게 시간이 갔다. 두 사람씩 파트너가 되어 3분씩 무작위로 주어진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당황(?)스러웠던 점은 당시 내가 떨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누구에게(또는 누구 앞에서) 말을 하느냐, 무엇을 이야기 하느냐 등에 따라 떨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은 당연하다.

 

지난 번 아프가니스탄 황금유물전 전시회가 열린 국립중앙박물관 강당에서 관련 강연회가 끝나고 질문을 하는 자리에서 나는 심하게 목소리가 떨리는 경험을 했다. 그때와 그제는 상황이 다르다. 그때는 400여명이 들은 큰 자리였고 질문 주제도 민감한 것이어서 자연스럽게 떨렸다. 반면 그제는 열 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인 평화로운 자리였고 과제도 단순했다. 내 파트너는 30세 정도의 여자분으로 신뢰에 대해 말을 하게 되었다.

 

나는 어리석게도 그 분이 먼저 말을 하도록 순서가 정해지자 한편으로는 그 분의 말을 들으며 공감도 표하고 한편으로는 무슨 말을 할까를 궁리했다. 내게 주어진 주제는 열정(熱情)이었다. 내 파트너는 마지막 30여초 정도를 남겨두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그래도 끝까지 이야기를 했다. 듣건대 왠만한 사람들은 1분 30초 정도를 넘기기 어렵다고 한다. 나는 열정을 영어로 passion이라 하는데 수난(受難)도 Passion이라 한다는 말로 운을 떼었다.

 

바흐의 마태수난곡, 요한수난곡 등을 예로 들며 나는 열정적인 사람은 상처를 받기 쉬운데 그것이 바로 수난이 아닌가 한다는 말을 했다. 반면 냉정한 사람은 상처받는 것과 거리가 멀지만 사람과의 거리감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말, 인간에게는 갭이 있고 다름이 있으니 극단은 피해야 한다는 말 등을 더했다. 강연자는 즉흥성(순발력), 일관성, 구성(기, 승, 전, 결 또는 서론, 본론, 결론의 체계를 갖추는 것), 논리성(명확한 근거 제시), 유머 등으로 연습해야 할(또는 중점을 두어야 할) 우선 순위를 두었다.

 

SK에서 오래 스피치 리더십 강사를 지낸 강연자는 삶에 활력을 주고 위험에 대처하게 하는 등 인간과 필수불가결한 긴장, 떨림 등을 모두 없앨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는 말을 하며 그런 점에서 책 제목(’떨지 않고 말 잘 하는 법‘)이 적절한 것은 아니었다는 말을 더했다. 이 말을 듣고 내가 생각한 것은 (얼마나 맥락이 일치하는지 자신할 수 없지만) 정신분석가 백상현 교수가 ’라깡의 루브르‘에서 한 말이었다.

 

그에 의하면 정신분석은 증상의 소멸이 아닌 주체가 증상과 화해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증상(을 유지하려는 것)은 주체가 큰 쾌락을 즐기는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이라는 의미이다. 김승희 시인의 ’객석에 앉은 여자‘를 읽어야겠다. 아프기 때문에 삶을 열렬히 살 수 없다고 말하지만 열렬히 살지 못하는 삶의 알리바이를 마련하기 위해 아마도 병을 기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심을 받는 여자에 대한 시. 물론 이 경우는 상황이 복잡하다. 그녀는 병을 길러 행복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한양도성 걸어서 한바퀴 - 서울성곽길 따라 6백 년 역사 속으로
유영호 지음 / 창해 / 2015년 4월
평점 :
품절


 

올해는 1394년 이성계가 조선의 수도로 한양을 정한 지 622년이 되는 해이다. 조선은 중국 중심권 안에 머물렀던 유교 국가였다. 조선, 하면 생각나는 것은 당쟁, 남녀차별적인 유교 문화, 장구한 왕조의 역사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성곽길도 나름으로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양 도성 걸어서 한 바퀴’는 오십을 목전에 둔 어느 날 한양 도성길 순례에 나선 역사 체험가 유영호의 탐험 및 탐사(探史)의 노고가 깃든 책이다.


한양 정도(定都), 그리고 주산(主山) 설정 자체가 유교 또는 풍수지리, 불교 등의 이념 대립이 낳은 결과이다. 한양도성은 현존 도성들 중 세계 최장 기간(514년: 1396 - 1910년)에 걸쳐 도성 역할을 수행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중국 문헌인 ‘석명(釋名)’에 궁(宮)은 궁(穹)이란 글이 있다. 담 위로 높이 솟은 집이라는 의미이다. 저자의 책을 통해 우리는 한양 도성길은 일제(日帝)가 남긴 흔적과 무관할 수 없다는 점을 알게 된다.


왜(倭)에서 일본까지 엮인 우리의 역사는 친일과 민주인사의 대결 구도를 선명하게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저자는 역사적 유물 및 건축물 등과 관계된 인물들을 호명해 그 배경과 변천사(變遷史)를 밝히고 우리의 현재 의미와 연결짓는 방식으로 책을 구성했다. 그렇기에 야사(野史)를 많이 참고한 것이 눈에 띈다.


좁게는 도읍을 둘러싼 성곽과 문을, 넓게는 성곽 및 그 안의 공간을 가리키는 한양도성(都城)은 18여 km의 둘레길이다. 한양도성 순례는 역사에서 교훈을 얻으려는 사람이라면 꼭 해야 할 것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처음 서울 성곽을 따라 걸으며 인구 1천만의 대도시에 이렇게 아름다운 산과 숲이 있었나 싶을 만큼 놀라웠다는 말을 한다.


한양 도성, 하면 나는 먼저 부암동을 떠올리는데 그것은 자신이 사는 부암동 집을 "광화문이 지척이면서도 조용하고 호젓하며 공기가 맑다.“고 표현한 한 언론인으로 인해서이다. 수도로서의 위상과 지위를 지켜오던 한양 도성은 한말 외세에 의한 강제적 근대화와 일제강점으로 인해 훼손되기 시작했다.


1988년 전차 개통으로 인해, 그리고 1907년 숭례문 아래로는 비좁아 지나갈 수 없다는 이유를 제시한 일본 왕세자 요시히토 사건 등으로 인한 수난을 당하게 된 한양 도성은 1925년 이후 성벽에 인접해 집을 지은 민간에 의해서도 훼손이 가속화했다고 할 수 있다. 책은 한양 도성과 이웃한 역사적 건물들에 대한 정보만으로 채워지지 않았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만들어낸 사건 이야기가 함께 비중 있게 전달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이란 친일 쪽에 섰던 자들과 반일 애국지사들로 양분된다고 할 수 있다. 때로 알려진 것과 다른 부분도 담고 있어 당혹스러운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나는 저자의 치밀한 역사 고증을 신뢰한다. 확실한 근거 제시와 분명한 논리가 그런 생각을 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분명한 역사관은 조선 초기 있었던 불교와 유교 정확하게는 무학대사와 정도전의 대립 이상으로 흥미를 끈다.


왕위를 놓고 벌인 골육상쟁 및 부자의 갈등, 권력의 격랑에 휘말린 임금과 왕비(王妃)의 애틋한 사연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그 사연들 중 단연 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단종과 정순왕후 송씨의 사연이다. 정순왕후 송씨는 조선 역사상 처음으로 세자가 아닌 국왕과 혼인한 왕비이다. 고려 의종때 희종법사가 창건한 숭인동 청룡사에 우화루(雨花樓)란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은 단종과 정순왕후가 마지막 밤을 지새운 곳으로 영원히 이별한 곳이라는 의미에서 영리정(永離停)으로도 불렸다.


인상적인 것은 오행(五行) 즉 상생상극 관계로 엮인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에 맞춘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란 미덕을 건물에 적용해 도성 동서남북의 문 이름을 각각 흥인(仁)지문, 돈의(義)문, 숭례(禮)문, 숙정(正)문 등으로 설정하고 중앙에 보신(信)각을 둔 것이다. 북문에 지(智)가 아닌 정(正)이란 이름이 붙은 것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숙종때 도성과 북한산성을 잇도록 축성한 홍지(智)문이 숙정문을 대신했다는 말이 있고, 숙정문이 소지(智)문이었다는 말이 있다.


‘한양 도성 걸어서 한바퀴’는 숱한 사연과 배경 지식을 실어 역사를 간접 체험할 수 있도록 한 구성이 빛난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생각한 것은 역사적 유적과 건물도 결국 사람 사이의 관계로 수렴한다는 점이다. 도성에 대한 지식은 사람들이 만나 이루어낸 사건에 대한 지식 곧 역사에 대한 지식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의 책을 어떤 관념적 주제를 논리적이거나 실증적으로 입증한 역사 보고서가 아니라 설명한다.


그저 물리적 시간대와 공간대를 따라 도성 길을 순례하며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낀 것을 기록한 순수 기행문이라는 소개가 눈길을 끈다. 그렇기에 시대적 배경면에서 일관성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지만 역사를 수필(隨筆)처럼 자유로운 필치로 그려내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싶다. 달빛 따라 걷는 한양 도성길 걷기라는 프로그램이 눈에 띈다. 저자의 책은 그 낭만적이고 역사적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도 좋을 것이란 생각을 부추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마트폰과 그에 기반한 카카오톡 및 카카오스토리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성경 속 인물인 바울 사도(司徒)의 말과 우리나라 한 중견 시인의 시를 가져다 쓰는 것은 다소 생뚱맞은 처사일 수 있다. 그래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 두 분의 생각이 내 마음을 잘 설명하기 때문이다. 잘 알려졌듯 바울 사도는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 보듯 희미하게 보지만 그때 가서는 얼굴을 맞대고 볼 것입니다.”(고린도 전서 13장 12절)란 말을 했다. 스마트폰에 서툰 나는 지금은 스마트폰이 희미한 거울 같지만 그때 가서는 직접 맞대고 보는 얼굴처럼 명확해질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다.


거짓말 같지만 스마트폰 유저가 된 지 불과 사흘만에 지하철 정차 역을 두 번이나 지나친 사람이 나다. 한이나 시인의 ‘능엄경 밖으로 사흘 가출’이란 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시인은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능엄경 밖으로 사흘 무단가출해 돌아오지 않는 마음을/ 안으로, 조용히, 불러들였어요...마음을 허방에 빠뜨리고, 껍데기/ 만 거리를 오고 가면서, 왜 그리, 허둥대고 사방 분주하였/ 던지요...” 이 시를 읽고 나는 내 카카오스토리를 설명하는 문구로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로 가출‘이란 표현을 썼다.


양가감점에 익숙한 나는 경계에 속한 나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스마트폰 역시 내게 양가감정의 대상임을 이미 사용 첫날에 페북 댓글로 밝혔다. 스마트폰에 빠진 나는 이번 주(8월 29일 ~ 9월 3일) 겨우 책 한 권을 읽고 말았다. 어제 강남의 한 한의원에서 열린 ‘떨지 않고 말 잘하는 법‘ 강의에서 나는 또 한번 경계에 처한 나를 확인했다. 내 떨림 지수 27점은 주의를 요하는 시작점인 30점에 근접한 수치이지만 안정적인 수치인 10점과 20점 사이를 웃도는 수치이다. 나와 스마트폰의 접점은 어떤 모양으로 그려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시 한편을 인용하기 위해 시인에게는 6만원, 해당 출판사에는 3만원 등 모두 9만원의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하는 현 저작권 보호 정책에 따르면 50편의 시를 인용해 시 해설서를 낼 경우 지불해야 하는 돈은 450만원이다. 3000부 이상은 판매해야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황이다. 요즘처럼 시(그리고 시 해설가나 시 비평가의 글들)가 잘 읽히지 않는 세상에서 이루기 어려운 고지라 할 만하다. 장석남 시인의 ‘시의 정거장’은 이런 이유 때문에 시 인용은 일체 하지 않고 해설만 실은 책이다. 독자로서는 해당 시들을 찾아 읽으려 할 수도 있고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한 시인은 시집 한 권을 내는 것을 집 한 채를 짓는 것에 비유했다. 타당한 말이다. 물론 궁금증이 없을 수 없다. 

 

비평가나 문인이 소개한 시가 유명해져 판매 수익 증가로 이어질 경우 시인이 해설서나 비평서의 저자들에게 사례 성격의 돈이든 거래 성격의 돈이든 지불하는가, 란 궁금증이다.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시인들은 시도 잘 안 읽히지만 시 비평이나 시 해설서는 더 안 읽힌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장석남 시인의 경우 자신의 수익을 위해 시를 인용하는 시 해설서를 쓰려 했을 것이고 결국 저작권 보호 때문에 시 없는 시 해설서를 쓴 것이지만 재수록 비용 지불과 무관한 연구나 교육, 비평 등을 목적으로 한 책으로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경우 앞서 말한 두 경우(해당 시들을 찾아 읽으려는 경우와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 중 전자에 해당한다. 즉 해당 시들을 찾아 읽으려는 부류에 속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시 없는 시 해설서’들이 시의 정거장’처럼 일정 수준 이상을 담보했다 해도 계속 될 경우 피로감을 줄 수 있으리라 보인다. 저작권 보호 때문에 해설과 시 원문을 함께 실은 좋은 시 해설서의 출판이 위축될 수 있다는 생각은 자연스럽다. 시인, 독자, 해설가가 상생하는 길은 없을까? 장석남 시인은 언젠가 대학로인가를 지나다가 ‘물의 정거장’이란 글귀를 보고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다는 말을 한 바 있다. 자신이 쓰는 글들이 문득 그런 것은 아닐까, 란 장석남 시인의 생각을 따르면 ‘시의 정거장’은 시인과 독자를 매개하는 의미가 깃든 제목이 아닐 수 없다. 매개(媒介)라는 말을 생각하게 된다. 물론 시 없는 시 해설서 같은 파격적인 매개가 아닌 평범한 매개여야 의미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