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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
리베카 울리스 지음, 강병철 옮김 / 서울의학서적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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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과 주요정동장애는 대표적 정신질환이다. 매우 심각하며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질병들이다.(93 페이지) 조현병은 정신분열증의 대체어다. 정신분열증은 인격이 분열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인격분열을 해리성 정체성 장애 또는 다중인격장애(과거 이름)라 한다. 아무런 치료도 하지 않을 경우 조현병의 재발률은 약 70%에 달한다.(83 페이지)

 

정신병과 정신질환은 다른 개념이다. 정신병은 조현병, 주요정동장애 등의 정신질환를 앓는 사람이 보이는 증상을 뜻한다.(40 페이지) 정신병적 증상은 환각, 망상, 와해된 언어 등이다. 문장 하나하나는 문법적으로 정확할지언정 전체적 문맥은 전혀 이치에 닿지 않는 것을 말한다.

 

주요정동(情動)장애는 기분의 장애다. 조증, 울증, 조울증을 이른다. 리베카 울리스의 ‘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는 정신질환의 배경, 양상, 증세 등이 다르고 상황은 다양함을 알게 한다. 가족치료 전문가인 저자는 분노와 절망은 환자가 아닌 병을 향해야 마땅하다고 말한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 시간과 교육과 경험이 필요하다.(54 페이지)

 

이 책은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과 그의 가족이 감수하는 고통이 현실감 있게 설명, 제시된 책이다. 사람들은 정신질환에 대해 오해한다.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폭력적이지는 않다. 다만 자살률이 높다는 것은 사실이다.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의 행동 가운데 일반인들이 가장 두려워하지만 가능성이 가장 낮은 것이 폭력이다.(166 페이지)

 

우리는 놀라운 기술과 상대적으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모르는 것이 훨씬 많다. 조현병과 주요정동장애는 유전적 요인이 가장 중요하다.(58 페이지) 환경보다 생물학적 요소가 결정적이다. 조현병과 주요정동장애는 완치되는 병이 아니다.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은 나쁘지도 사악하지도 않다. 나약하지도 않다. 특별히 창의적이지도 않다.

 

약물치료가 최선의 치료다.(68 페이지) 약물에 대한 결정이 특히 어려운 것은 부작용은 바로 느껴지는 반면 치료 효과는 한참 지나서야 나타나기 때문이다.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에게 약을 처방하는 것은 정확한 과학과는 거리가 멀다. 모 아니면 도 식의 처방이 이루어진다. 맞는 약을 찾을 때까지 몇 번이고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는 의미다.

 

환자는 정신질환을 인정하는 셈이 되기에 약물 복용을 기피한다, 현재 세계 많은 지역에서 환자 자신 또는 타인에게 위험하다고 판단되지 않는 한 본인의 의지에 반하여 성인 환자에게 억지로 약을 투여하거나 치료 받게 하는 것은 불법이다.(74 페이지) 저자는 환자와 논리를 따지며 논쟁하지 말라고 말한다. 치료를 잘 받으러 다니는 것을 칭찬하고 격려하고 좋은 결과를 바라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74 페이지)

 

가족과 친구들은 끊임없이 기대수준을 낮추고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 때로는 몇 주씩 걸릴지라도 작은 성취에 집중할 때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과 가족의 삶이 훨씬 나아진다.(78 페이지) 실력 없고 무관심하다고 생각하는 치료자보다 자신이 신뢰하는 의사나 치료사의 말에 귀 기울이고 충고를 받아들이게 마련이다.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은 작은 변화도 힘들어 한다. 당연해 보이는 일도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에게는 말할 수 없이 어려운 과제일 수 있다.(103 페이지)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은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 때문에 화가 나는지 명료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말의 내용보다 행동이나 감정을 관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124 페이지)

 

가족은 어떤가?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과 한 집에 사는 것은 엄청난 긴장을 견뎌야 하는 일이다.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상황은 이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나빠진다.(97 페이지) 그러나 아무리 작더라도 긍정적 변화를 소중히 여기고 노력해야 한다.(93 페이지) 환자가 정신질환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데는 자신을 믿어주고 보람된 삶을 살 수 있다는 희망과 확신을 버리지 않는 주위 사람들의 존재가 가장 중요하다.(90 페이지)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도 새로운 기술을 익히면서 스스로 실수해볼 기회를 존중받아야 한다.(119 페이지) 병식(病識)이 있을 경우 예후가 좋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는 병식을 갖지 못하는 것 자체가 정신질환의 증상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333 페이지)

 

저자는 환자 가족들이 환자에 적절히 대처하는 기술을 익히는 등 꾸준히 공부하라고 말한다. 정신질환과 치료에 대해 배우고 사람과 질병을 분리해서 바라보는 태도를 익혀야 한다.(131 페이지) 환자를 감정적으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 긍정적인 피드백이 중요하다. 비록 느리지만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주기 때문이다.(104 페이지)

 

교육이야말로 정신질환이라는 혼란스럽고 복잡한 질병에 맞서 살아남는 데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198 페이지) 어떤 상황을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보려면 시간과 인내는 물론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다른 사람과 상의하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어느 누구도 교육과 도움없이 복잡한 질병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207 페이지)

 

보호자의 삶이 건강해야 궁극적으로 환자에게도 도움이 된다.(100 페이지)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고통받는 이가 정신질환 자체가 아니라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이란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하는 일이다.(101 페이지) 증상은 사람이 아니라 병 때문에 생긴다. 망상이나 환각의 내용이 가족을 향하는 것은 가족에 대한 환자의 감정 및 생각과 거의 무관하다.(102 페이지)

 

가족의 기대와 당사자의 기대는 크게 다를 수 있다. 가장 성공적인 계획은 양자를 조화시키는 것이다. 선의에서라도 옛일을 상기시키면 상처가 된다. 기운을 북돋우려면 오늘 한 일을 이야기해야 한다.(108 페이지) 일정이 체계적이지 않으면 무질서한 혼돈의 바다에서 길을 잃고 표류하게 된다.(112 페이지)

 

가족이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조용하고 일관성이 있으며 예측 가능하고 체계적인 외부 현실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과 보호자는 서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113 페이지) 가족은 무엇보다 한계와 역량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양가감정과 심란함을 피하기 어렵다.(132 페이지)

 

세 가지 중요한 요소 즉 1) 상대방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2) 나의 감정이 어땠는지, 3) 앞으로 어떻게 행동하면 나의 기분이 어떨 것인지를 의사소통에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126 페이지) 아무도 방해하지 않고 자신의 일을 잘 해나간다면 굳이 증상을 없애려고 할 필요는 없다.(140 페이지)

 

망상이나 환각을 현실로 확신하는 정도는 저마다 다르다.(141 페이지) 스트레스의 원인도 사람마다 다르다.(155 페이지) 망상이나 환각이 현실이 아니라는 논쟁은 절대로 피해야 한다.(142 페이지) 행동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최대한 차분하게 결과만을 지적해야 한다.(164 페이지)

 

와해된 언어에 마주쳤을 경우 그의 마음이 나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된다. 존중하고 배려한다는 사실을 전달하는 데 주력하는 것이 최선이다.(146 페이지) 조현병, 주요 우울증, 조현성 정동장애, 양극성 장애 등은 뚜렷한 이유 없이 호전과 악화를 반복한다.(151 페이지) 중증 정신질환과 물질남용 문제를 동시에 지닌 사람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171 페이지)

 

정신질환 또는 약물 및 알콜 남용 문제 가운데 한 가지라고 겪고 있다고 쉽게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물며 두 가지 심각한 문제는 어떻겠는가? 진행성이란 말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심해진다는 뜻이다. 내성(耐性)이 생기는 것이다. 질병에 걸렸다는 말은 뇌에 생리적 변화가 생겼다는 말이다. 정신질환에 있어 가장 두려우면서 거의 논의되지 않는 것이 자살이다.(175 페이지)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의 자살률은 전체 인구 자살률의 12배에 달한다. 이야기를 꺼내면 오히려 자살할 가능성이 더 커질까 보아 주저하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자살은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선택과 책임은 자살한 사람의 몫이다.(178 페이지)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이 더이상 시달리지 않는다는 데 안도감을 느끼는 것은 극히 정상적인 감정이다. 모든 사람의 길고 고통스러운 싸움이 드디어 끝난 것이다. 비극적인 삶이요 비극적인 종말이다.(178 페이지)

 

고통과 괴로움을 딛고 희망찬 세계관을 갖기란 믿을 수 없을 만큼 어렵다. 저자는 가족이 죽기를 바라면서 기분이 좋을 사람은 없겠지만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끝나기를 바라는 것이 차라리 자연스럽다.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고통을 겪고 무력감에 빠진 나머지 자신과 사랑하는 가족의 고통이 그만 끝나기를 바라게 되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말기 환자의 가족이 안락사를 원하는 것과 비슷하다. 중요한 것은 이런 심리의 기저에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187 페이지)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라.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지는 실수를 겪어보아야만 알 수 있다. 실수를 하지 않았다면 모든 가능성을 탐구해보지 않은 것이라 말한다.(189 페이지) 죄책감의 논리적 근거는 없다.(206 페이지) 저자는 애도(哀悼)를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거나 가족과 사별했을 때만 애도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이전에 알던 정상적인 그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에 하는 것이다. 부정, 분노, 슬픔이 애도의 감정이다. 이전의 그는 여기 없지만 증상이 조금 가라앉으면 부분적으로나마 돌아온 것처럼 보인다. 필연적으로 다시 희망을 갖게 되지만 증상이 나빠지면 비참하게 곤두박질친다. 애도과정은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191 페이지)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은 종종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것 같지만 정서적인 분위기 변화는 쉽게 감지한다. 보호자의 기분과 전반적인 상태에 매우 민감하다. 그리고 많은 경우 자신의 병 때문에 가족들의 삶이 크게 변한 데 대해 죄책감을 갖는다.(195 페이지)

 

장거리 달리기를 견디는 능력이 사람마다 다른 것처럼 정신질환을 앓는 가족에게 할애할 수 있는 시간과 노력, 경제적 능력 및 함께 지낼 수 있는 이력 또한 저마다 다르다. 한계를 존중해야 한다.(197 페이지) 한 번을 연락하더라도 즐겁게 만나는 것이 불쾌한 만남을 자주 갖는 것보다 훨씬 낫다. 이는 무리하는 것보다 가능한 것을 편하고 자유롭게 제공하는 편이 보호자와 환자 양쪽을 위해 더 낫다(221 페이지)는 말과도 상통한다.

 

일상 속에서 위안을 찾아야 한다. 정신질환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배울 수 있는 지지모임이 있는 것은 스스로를 지탱하는 데 너무나 중요하다.(201 페이지) 병을 앓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역량과 한계는 사람마다 다르다. 질병을 앓는 가족의 문제에 뛰어드는 데 필요한 시간과 성숙도도 저마다 다르다.(203 페이지)

 

분노에 불을 댕기는 급박한 상황에 대처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후 분노를 보다 건설적으로 표출할 길을 찾는다.(210 페이지) 어느 누구도 항상 원하는 것을 다 맡을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타협과 조정을 해야 한다. 더욱 정신질환이 연관되어 있다면 두말할 필요도 없다.(237 페이지) 정신질환을 둘러싼 고정관념이나 편견은 정확한 정보나 직접적 경험이 없어서 생긴다. 외부인에게 정신질환에 대해 이야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다.(269 페이지)

 

아무리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과 거리를 두려고 노력해도 결국 그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저마다의 여정을 통해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어떤 길을 어떤 속도로 걸을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275, 276 페이지)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에게 가장 어려운 문제는 돈을 다루는 일이다. 응당 받아야 할 돈을 받기도 어렵고 돈을 받은 후에도 관리를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281 페이지)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을 질병에 의해 황폐화된 존재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많은 점에서 특별한 필요를 지니고 있지만 남들과 똑같이 보람된 삶을 누리고자 최선을 다하는 존엄한 인간으로 바라보아야 한다.(289 페이지) 회복이란 극히 개인적인 과정이다. 자신만의 길을 자신만의 속도로 걸어가는 여행이다. 매우 미묘하고 점진적으로 회복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급작스럽고 극적인 과정을 거쳐 좋아지는 사람도 있다.

 

이 여정은 곧은 길이 아니다. 많은 굴곡과 부침을 겪는다. 특히 초기에는 혼란과 질병, 소외감,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수 있다.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을 믿고 희망을 잃지 않으며 꿈과 목표를 상기시키고 유지하도록 돕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293 페이지)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을 힘없는 질병의 희생자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스스로의 삶에 책임을 지고 자신에게 영향을 미칠 중요한 결정을 내리도록 격려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외부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항상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암시를 주어서는 안 된다. 그런 사람은 없다.

 

병과 증상을 이해하고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약을 중단하겠다고 결정하는 것과 자신의 병을 이해하지 못하고 증상도 심하여 스스로를 돌볼 수 없는 사람이 모든 치료를 거부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294 페이지) 물질남용의 문제에 대해서는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편이 오히려 낫다.(33 페이지) 바닥을 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이 물질남용 또는 정신질환이라는 문제를 지니고 있음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바닥이란 주관적 경험으로 사람에 따라 크게 다르다.(338 페이지) 회복 과정은 언제나 기복이 있게 마련이다. 쉽고, 순조롭고, 꾸준히 진행되는 회복은 없다. 꽉 막힌 생각이 들거나 낙담하거나 절망하거나 약물이나 술 생각이 간절하거나 옛 습관으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에 맞서 싸워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생긴다. 이때 가족이나 보호자가 도와주어야 한다.(34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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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의 발견 - 지휘자가 들려주는 청취의 기술
존 마우체리 지음, 장호연 옮김 / 에포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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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마우체리의 ‘클래식의 발견’. 오랜만에 만난 읽을 만한 음악책이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고전음악은 공동체, 자연, 인간의 열망과 승리, 약점, 그리고 혼돈에 형식을 부여하려는 욕망을 기념하는 음악이다.(15 페이지) 같은 맥락으로 저자는 예술을 감각기관으로 들어오는 혼란스러운 것을 모방과 상징체계를 통해 조직적으로 구성하려는 인간 욕구의 결과물로 정의한다.(28 페이지) 저자는 인간이 대략 20만년전부터 지구에 살았다고 말한다.(26 페이지) 사피엔스를 두고 이르는 말로 보인다.

 

저자는 음악은 자연의 힘을 활용하는 바 여기서 자연이라는 말은 우리 주위의 자연과 우리 안의 자연 즉 인간의 본성 모두를 뜻한다고 말한다.(55 페이지) 여기서 스피노자의 능산적(能産的) 자연과 소산적(所産的) 자연을 떠올리게 된다. 능산적 자연은 세계의 근원적 원인체계를 구성하는 신과 신의 속성들이다. 소산적 자연은 세계의 결과체계를 구성하는 양태다.

 

초기 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은 세상에 대한 은유와 상징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탁월했다. 그들은 대략 4만년전 동굴벽에 2차원 이미지를 그렸으며 이런 이미지를 3차원 동물의 재현으로 이해했다. 그들은 움직임을 나타내고 싶으면 동물에 다리를 추가로 그려냈다.(66 페이지)

 

새로 나온 연극을 보고 온 사람에게 무엇에 대한 내용이었어요?라고 질문할 수 있다. 고전음악에 대해서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없다. 대신 이렇게 물을 수는 있다. 어떻게 들리던가요? 하지만 여러분이 무언가를 느끼고 경험했더라도 그것을 표현할 적절한 단어가 미처 없을 수도 있다. 음악의 경험은 몸으로, 감성으로, 영혼으로 와닿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경험될 뿐인 무언가를 어떻게 묘사하겠는가? 그리고 어떻게 들렸다는 말은 표면적인 부분이나 양식을 기술하는 것이지 그 음악이 주는 느낌이나 효과는 전하지 못한다.(137, 138 페이지) 저자는 신경과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이 말한 신체 예산(body budget)이란 개념을 말한다. 그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돈이 필요할 때를 예상해서 자원을 미리 확보하듯 캄브리아기의 작은 생물들이 배고픈 포식자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살아남으려면 에너지 효율이 높은 방법이 필요했다. 신체예산에 관한 한 예측은 늘 반응을 앞지른다. 포식자의 공격에 앞서 움직일 준비를 한 생물들은 포식자가 덮치기를 기다린 생물보다 생존 가능성이 더 컸다.(리사 펠드먼 배럿 지음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 26 페이지)

 

캄브리아기(고생대의 첫 시기)에 포식자가 출현함으로써 지구는 경쟁이 더 심하고 위험한 것으로 탈바꿈했다. 잡아먹는 자나 먹히는 자나 모두 자신들을 둘러싼 세계를 더 많이 감지하도록 진화했다. 그들의 감각계는 더 정교하게 발달하기 시작했다.(앞의 책 24 페이지) 아무리 천재라 해도 일관되게 위대한 곡을 계속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181 페이지)

 

책 중간쯤에서 익숙하지 않은 작곡가 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아이슬란드 출신의 안나 소르발스도티르(Anna Sigriður Þorvaldsdottir; 1977 - )다. 사람들은 날카롭고 거칠기 이를 데 없는 그녀의 음악을 그녀의 고향 아이슬란드의 초현실적 지질구조와 연관시키곤 했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블랙홀로 떨어지는 사변적 은유라 표현했다.

 

저자는 지휘자들은 영원한 학생이라 말한다. 공연에 참석하는 청중과 마찬가지로 항상 배우고 지식을 넓혀간다는 것이다.(201 페이지) 저자는 음악과 관련하여 결정권을 쥐고 있는 사람은 항상 음악을 듣는 사람이라 말한다. 청중이 음악의 궁극적인 해석가다.(207 페이지) 작곡가나 연주자의 취향이 어떻든 간에 궁극적으로 음악을 해석하는 사람은 여러분이다.(284 페이지)

 

도전과 좌절의 숱한 연습의 시간들, 고독하고 힘들기만 하고 보상은 없을 때가 많은, 그럼에도 손에 든 악기에 숙달하고 싶다는 목적, 그래서 음악을 연주하고 싶다는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은 여러분에게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런 음악가들 모두가 자신이 고른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겠다는 일념에 평생을 바친다...모든 연주자는 저마다 얻고자 하는 이상적인 소리가 있다. 손목의 각도, 활이나 손가락 위치 등을 미세하게 바꿔가며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이상적인 소리에 다가가려 애쓴다.(222, 223 페이지)

 

타협은 정치나 종교, 철학 담론에서 다소 부정적인 어휘로 사용되지만 음악은 타협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실내악은 타협을 통해 음악을 만들어가는 출발점이다. 지휘자가 이끄는 관현악곡으로 규모가 커지면 타협이 이루어지는 과정도 달라진다.(248, 249 페이지) 여러분이 좋아하는 작곡가가 있다면 그 작곡가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방편으로 실내악보다 좋은 것이 없다.

 

운 좋게 연주자들을 볼 수 있는 작은 방에서 실내악을 듣는다면 여러분은 곧바로 공동 연주자의 위치로 끌어올려지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그들이 애쓰는 것을 느끼고 음악적 요소들을 서로 건네는 모습을 볼 것이다, 서로 눈을 맞추고 숨소리와 몸짓, 텔레파시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249 페이지)

 

대부분의 작곡가들은 꾸준한 지원과 영감, 비판, 보살핌을 여성들에게 의존하여 구했다.(273 페이지) 스트라빈스키는 자신이 ‘봄의 제전’을 실제로 작곡한 것이 아니라 ‘봄의 제전’이 지나가도록 통로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바그너도 ‘트리스탄과 이졸데’ 완성 악보를 보고는 내가 이 곡을 어떻게 썼는지 모르겠어란 말을 했다.

 

레비스트로스는 이런 말을 했다. “나의 책들은 내가 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나의 몸속으로 스며들어 와 일단 그곳에서 쓰여지고 나면 내 몸을 빠져나갑니다. 그러면 나는 공허한 기분에 빠져 내 몸 속에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나는 한 번도 나의 개인적 정체성을 느껴 보았다는 생각을 해본 일이 없습니다. 나는 내 자신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 장소에 불과한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이곳에는 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들 모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 일종의 교차로인 것입니다.”(이정우 지음 ‘가로지르기’ 87 페이지)

 

저자는 우리는 영원히 음악과 함께할 것이라 말한다. 음악은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말해주는 유일무이한 것이기 때문이다.(293 페이지) 종횡무진 글 잘 쓰는 지휘자/ 음악교육자의 책은 이렇게 끝난다. 앞서 말한 스트라빈스키, 바그너의 경우 걸작을 쓴 사람이지만 만일 평범한 곡을 쓴 사람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만일 그렇게 말하면 그 사람은 수준이 떨어지는 곡을 쓰고는 자신이 대단한 일을 한 사람처럼 보이려 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 꼭 걸작을 통해서만이 작곡가가 통로 역할을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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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1줄로 사로잡는 전달의 법칙
모토하시 아도 지음, 김정환 옮김 / 밀리언서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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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1줄로 사로잡는 전달의 법칙‘은 핀포인트 레슨이란 말을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하나의 단어가 들어가는가 들어가지 않는가는 큰 차이로 연결될 수 있다. 문장의 순서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생각하지 못한 놀라운 효과를 낼 수 있다. 저자는 말의 전달력을 높일 것을 주문한다. 내용이 좋아도 전달력이 떨어지거나 적절하지 못하면 원하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

 

가령 내세울 것이 없어 접근성이 떨어지는 카페를 숨겨진 은신처 같은 카페로 소개하는 것은 하나의 요령이다. 지금 시대는 주목을 끄는 기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대다. 구성과 연출의 차이로 인해 유튜브와 텔레비전 방송의 길이 차이가 난다. 대부분 개인이 만드는 유튜브는 구성과 연출력이 떨어져 프로그램을 길게 만들기 어렵다.

 

흔들기와 받기는 텔레비전 방송의 기본 구조다. 사장이 전 사원 급여 10퍼센트 인상이라는 결단을 내린 덕분에 회사는 커다란 성장을 이루었다.(a 문장)보다 회사가 커다란 성장을 이루는 계기가 된 사장의 결단. 그것은 전 사원 급여 10퍼센트 인상.(b 문장)이 효과적이다. 그것은이란 말이 주목을 끈다. 상대가 지금 하고 싶은 말이 뭔가? 하는 의문을 갖지 않도록 한다. 상대가 피곤하지 않게, 머리를 쓰지 않게 해야 한다.

 

구성과 연출이란 상대가 무리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구조를 말한다. 텔레비전 방송은 흔들기와 받기 말고 다양한 기술을 사용한다. 핵심 사항을 전진 배치하라. 오프닝 타이틀(요약 영상)로 기대감을 심어준다. 시청자가 방송을 봄으로써 얻을 이점을 확실히 전달한다.

 

“오늘 같이 점심 먹을래요?”라고 하기보다 “얼마전 텔레비전에서 이 근처에 있는 중국집을 소개했는데 굉장히 맛있어 보이더라고요. 오늘 점심에 같이 가보지 않을래요?”처럼 말하자. 후자의 경우 듣는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제시되었다. 사람은 자신에게 이익이 있을 때 비로소 움직인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흔한 질문으로 공감을 얻도록 하자.

 

맛집 평가 사이트에서 평점이 높은 식당을 찾아갔는데 실망한 이야기를 블로그에 쓸 경우 평범하게 글을 쓰면 주목을 얻지 못하기 쉽다. 대신 “맛집 사이트에서 평점이 5점 만점에 3.5점 이상이기에 기대를 품고 찾아갔는데 너무 평범해서 실망했던 경험은 없으신가요?”나 “사진에 나오는 식빵은 푹신푹신하고 정말 맛있어 보였는데 직접 가서 먹어보니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달랐던 적은 없으신가요?” 같이 쓰도록 한다.

 

비장의 카드는 앞에 꺼낸다. 음식을 만드는 것을 보여주는 방송의 경우 포인트별로 나누어 설명을 전달한다. 몇 가지 포인트를 전하는 식으로. 길게 나열하기만 하면 효과를 못 얻는다. 매력 하나, 매력 둘, 매력 셋, 매력 넷 하는 식으로 하자.(일목요연의 미덕을 통해 효과를 보는 것이다.) 단계는 다섯 개를 넘지 않도록 한다. 정보에 주제와 관점을 넣는다. 상대의 머리에 정보를 집어넣는 반복의 힘을 활용한다.

 

“수없이 옻칠을 해서 광택을 내는 칠기처럼 같은 정보를 반복해서 전하면 상대방의 뇌에 그 정보를 각인시킬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정보를 계속 똑같이 전하면 상대는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91 페이지) 그래서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맛집의 경우 1) 점주의 매력이나 철학의 관점에서 접근, 2) 입소문이나 블로그 관점에서 접근, 3) 미식 관련 잡지나 인터넷 기사 관점에서 접근 해보자.

 

정공법이 아닌 방법을 비법이라고 표현한다. 드러나지 않고 평범했던 사람을 서클의 숨은 중재자라 표현해보자. 좁은 실내 공간을 가진 음식점을 아담하고 가정적인 음식점이라 소개한다. 손님이 없어서 썰렁한 음식점을 차분한 음식점이라 소개한다. 상대를 불쾌하게 만들지 않는 것은 나쁘게 말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 밖에 없는 좋은 점을 가장 좋은 점으로 바꾸어 표현한다. 당연한 것에 주목하라.

 

쇠고기 본연의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일품 쇠고기 요리처럼. 평점한 명한 지갑을 소개할 경우 방향을 돌려 제작자를 소개하는 방식도 있다.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다. 단맛이 나지 않는 음식을 달다고 표현하는 것처럼 반전 표현을 염두에 둔다. 진하다, 강하다는 어떤가. 비교 우위를 통한 반전 효과도 생각하자. 집을 중개(仲介)할 때 상대적으로 좋은 집은 나중에 보여주자. 그러나란 말로 긴장을 준다.

 

일에 대한 자세가 안일하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 밀레니엄 세대 중에 최선을 다해 일하며 자신에게 엄격한 젊은 경영자도 있었다,(a 문장)보다. 일에 대한 자세가 안일하다는 평가가 많은 밀레니엄 세대. 그러나! 그런 밀레니엄 세대 중에 최선을 다해 일하며 자신에게 엄격한 젊은 경영자가 있었다.(b 문장)가 낫다. 일을 하는데 팀장 메시지가 왔을 경우 일하고 있다고 하기보다 지금 일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믿음을 준다.

 

간판을 사용해 권위를 높이자. 3대 ( ) 중 하나. 팔로워 ( ) 만명.. 긴급, 대박, 철저, 최강 등의 말은 강한 이미지를 주는 단어들이다. 딱 하나란 말로 100% 반응을 끌어내자. 일상 생활의 불필요한 지출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앱이 인기!란 말보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영향으로 수입이 감소해 살림살이가 어려워지고 있는 지금 일상생활의 불필요한 지출을 한눈에 알 수 있는 앱이 인기!란 말은 배경을 넣은 설명이다.

 

수치 데이터로 확신을 준다. 온난화와 녹지 감소에 따라 여름철 기온 상승으로 일사병 환자가 매년 증가하고 있습니다라고 하지 말고 일사병에 걸려 병원에 실려 가는 사람의 수는 연간 6만명에 이릅니다라고 하자. 구체적 수치를 예시한 것이다. 익숙한 수단을 알차게 이용하는 것이 전달력을 높이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가장 큰 것에 급(級 등급 급)이란 말을 붙이면 모호한 표현이 되어 오히려 손해를 본다. 가장 크지는 않은 것에 급이란 말을 붙이면 최대라는 느낌을 줄 수 있어 이익이 된다. 모호한 표현은 전달력을 떨어뜨린다. 군더더기 표현을 하지 말자. 전달력이 약하다는 점이라고 하지 말고 전달력이 약한 점이라고 한다. ’오해를 부르는 사태가.‘라고 하지 말고 오해를 불러일으켰다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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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책 - 세미나 시작부터 발제문 쓰기까지, 인문학공부 함께하기
정승연 지음 / 봄날의박씨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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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seminar)는 토론식 수업을 의미하는 말이다. 정승연의 ‘세미나책’은 세미나의 시작부터 발제문 쓰기까지 인문학 공부에 대해 논한 책이다. 저자는 출판사 블로그 관리를 맡고 있고 인문학 세미나의 강의 수강도 하고 있는 분이다. 써야 할 글이 많은 분이다. 저자는 경쟁력 담론을 인문학과 무관한 것으로 정의한다. 이는 인문학을 비판과 대안 창조의 학문으로 보는 나의 문제의식에 수렴하는 이야기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관성적인 생각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비판하는 것이 필요하다. 저자는 인문학 공부를 통해 습관처럼 굳어진 나의 관점에 균열을 내고 이전과는 다른 관점을 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야 하리라. 저자는 답은 잠정적이기에 다시 갱신된다고 말한다. 이는 심지어 출간을 염두에 두고 쓰는 것까지 포함해 모든 글쓰기는 연습(187 페이지)이라는 저자의 다른 말을 연상하게 한다.

 

또한 인문학 공부는 잠정적이라는 다른 말(22 페이지)과도 통한다. 저자는 배움의 대상은 사람을 넘어서 있지만 배움은 대부분 사람으로부터 온다고 말한다.(26 페이지) 저자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의 대상이 아니라 특정 원리에 기반하는 대상이라 말한다.(29 페이지) 세계란 있는 그대로의 현상이 아닌 특정 원리에 기반하는 현상이라는 말, 그리고 배움의 대상은 사람을 넘어서 있다는 말은 학문이란 현상을 넘어서는 본질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는 말을 연상하게 한다.

 

저자에 의하면 세계관을 의식하며 사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원리주의와 회의주의라는 두 개의 극단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한다. 세계란 자기가 경험한 것이기에 그에 대한 질문은 결국 ‘나’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오게 된다.(32 페이지) 공부란 ‘나’를 해석하는 문제라는 의미다. 저자는 흥미로운 말을 한다. 어느 순간 공부를 왜 하지?란 생각을 하게 되는데 결국 공부를 해야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문을 두고 생각해본 결과 안 해도 된다는 결론이 났다면 그때 공부를 중단하면 된다는 것이다. 세미나를 통해 읽기를 이어가면 서로 다른 구성원들 속에서 그 밀도가 높아짐을 느끼게 된다.(42 페이지) 공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 또는 우리 모임의 바깥과 연결되는 것이다. 자기 세계에 매몰되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관건은 어려운 책이라도 끝까지 혼자서라도 읽어내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저자는 다시 한 번 의미 깊은 말을 한다. 경험이 많지 않으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는 말이다.(74 페이지) 나는 평소 공부가 부족한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른다는 말을 하곤 한다. 공부할 것을 찾아내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저자의 말을 들으니 글감을 찾는 노하우를 갖춰야 할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는 어렵더라도 해설서에 의지하지 않고 원전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저자가 말하는 원전이란 원서를 우리 말로 번역한, 그 철학자가 직접 쓴 1차 텍스트를 말한다.) 저자는 원전을 읽는 고생이 충분히 무르익을 때 해설서를 읽으면 그렇게 쉬울 수가 없다고 말한다.(79 페이지) 그렇게 해설서를 경유해서 다시 원전으로 돌아오면 그제서야 조금씩 원전이 건네는 말이 들려온다.

 

어려운 책을 읽는 것은 괴로운 일이지만 신기하게도 그런 일들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한 글자도 이해되지 않던 문장이 단박에 이해될 때가 있다.(88 페이지) 고전이란 시간을 견디는 책이다. 매번 다시 태어나는 책이라는 의미다. 스피노자의 철학은 18세기 낭만주의자들에게 신성한 자연에 대한 영감을 불러일으켰고 20세기 중반에는 주체 중심의 근대철학을 극복하는 토대를 마련해주었고 오늘날에는 뇌과학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 다른 방식으로 읽히는 것이다.(99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읽기는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다. 글을 읽는 동안 사람은 끊임없이 자기 머릿속을 뒤적거려야 한다. 잘 읽히지 않는 대목을 만나면 샅샅이 훑어야 하고 이것도 맞춰 보고 저것도 맞춰 보며 텍스트를 의미화해야 한다.(102 페이지) 공부 하는 이유는 앎을 확장하고 상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104 페이지)

 

텍스트를 읽는 것은 작은 부분들을 그러모아 전체를 만드는 일임과 동시에 내가 가지고 있는 작은 앎들을 텍스트의 내용과 합치고 뭉쳐서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앎으로 바꾸어내는 것이다.(104 페이지) 이 말을 들으며 인간은 안식처가 있는 덕분에 이야기를 주고받게 된 것이 결코 아니고 오히려 이야기를 주고받는 능력 덕분에 적절한 안식의 공간을 조성할 수 있게 되었다(‘이야기의 끈’ 5 페이지)는 말을 생각한다.

 

내용상 똑같은 지식이어도 내가 내 삶으로 지속적으로 불러들이는 것들이 아닌 지식들, 무언가를 위해 공부한 지식들은 목적이 달성되는 순간 생명력을 급속도로 잃고 만다.(108 페이지) 인문 고전 읽기는 텍스트의 특이성을 이해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독특함과 차이를 수행하는 능력을 확대하는 일이다.(116 페이지)

 

공부를 직업으로 하는 전문 연구자가 아니어도 공부하는 삶은 가능하다. 자유로움이 그들의 생명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지식도 자기 혼자만의 힘으로 만들어낸 것은 없다. 기존 지식들을 연결하거나 분해, 조립하면서 재구성한 것들이다. 그렇게 스스로 재구축한 것들이야말로 자기 인생에 유의미한 영향을 줄 수 있다. 나의 지식을 만들려면 원재료가 있어야 한다. 기존 지식들이다. 읽고 또 읽어야 한다.(126 페이지)

 

인문 고전 텍스트의 요점 같은 것은 세미나가 끝나고 난 후에 다 잊어버려도 상관 없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질문을 만들고 그에 답하는 역량을 기르는 것이다. 발제란 세미나에서 회원들을 대신해 질문 거리를 만드는 것이다.(140 페이지) 문제로 보이는 것이 없어 보이는 순간에도 문제와 질문을 만들어내는 것이 훈련의 핵심이다.(140, 141 페이지) 세미나에서 발제문은 읽기와 말하기 사이에서 그 둘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읽는 것과 동시에 의문을 만들어야 한다.

 

질문을 위한 질문이라도 만들려고 마음을 먹고 읽어야 겨우 문제를 찾을 수 있다. 내용을 거의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발제문을 쓸 수 있다.(185 페이지) 텍스트를 바탕으로 글을 쓸 때는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지 못하면 텍스트를 고스란히 옮길 가능성이 높다. 그럴 바에는 그냥 텍스트를 보면 된다. 각각의 부분들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면 아주 좋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된다. 에세이를 쓰는 것이 아니라 발제문을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152 페이지)

 

이 부분을 읽으며 에세이는 유기적으로 이어지게 써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공부는 지식이 나를 거쳐 밖으로 나가는 것이다.(160 페이지) 자신의 지식을 말로 바꾸어 밖으로 내놓는 것은 중요하다. 세미나는 말로 바뀐 내 지식과 정서를 타자와 만나게 하는 장소다.(161 페이지) 세미나에서는 내가 읽어내지 못한 지식을 다른 사람은 읽어내고 그렇게 다른 사람의 입을 거쳐 나온 그 지식이 내가 얻은 지식들을 활성화시킨다.(166 페이지)

 

이를 보며 우리 모임을 생각한다. 세미나 모임은 아니고 비영리 모임인데 공통 이슈 외에 구성원들의 주된 관심사가 각기 다른 것이 특징이다. 세미나는 질문에 질문을 이어가는 공부방식이다.(176 페이지) 저자는 공부는 단지 아는 것을 쌓는 행위가 아니라 차라리 모르는 것을 늘려가는 일이 아닌가, 하고 말한다.(178 페이지) 글을 무조건 많이 써야 한다. 써지지 않아도 쓰는 것이 중요하다.

 

글을 잘 쓰려면, 최소한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가능한 한 적게 하려면 무조건 많이 써야 한다.(184 페이지) 저자는 작가들이 글을 보통 사람들보다 잘 쓰는 이유가 써야만 하는 글, 쓰기로 약속한 글을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많이 쓰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185 페이지) 저자는 자신의 과거의 글을 보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그 만큼 그가 성장했음을 증거한다고 말한다. 머리에서 나와 손을 타고 화면에 글자로 출력되기까지 엄청난 변환과 왜곡이 일어난다. 이 역시 많이 쓰는 것으로 점차 극복할 수 있다.

 

관건은 어려운 읽기, 쓰기, 말하기에 적응하는 몸을 만드는 것이다. 쓰기로 약속이 된 글을 계속 쓰다 보면 어느 순간 글을 쓰지 않고선 공부를 한 것 같지 않은 데까지 가게 된다.(197 페이지) 나는 서평을 쓰지 않으면 책을 읽은 것 같지 않다거 느낀다. 창의성이란 숙달과 관련된다.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 이해하는 것에 매몰되면 정답이라는 가상을 추구하게 된다.

 

인문학에는 정답이 없다. 모두가 좁은 의미에서든 넓은 의미에서든 진리를 추구하는 학인이고 해석자다.(201 페이지) 우리는 애정을 가진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애쓴다. 최근 듣기의 중요성을 강조한 책을 선물 받은 나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이야기다. 인문학에 정답이 없다는 말은 더 설득력을 가진 해석은 있을 수 있지만 모든 경우에 들어맞는, 틀릴 가능성이 없는 해석은 없다는 의미다.(202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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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06 0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21-10-06 08: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감사합니다

초딩 2021-11-07 11: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21-11-07 1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이하라 2021-11-07 11: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thkang1001 2021-11-07 13: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벤투의스케치북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글을 많이 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벤투의스케치북 2021-11-08 18: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이하라님

벤투의스케치북 2021-11-08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thkang1001님
 
이야기의 끈 - 서사적 사고 내러티브 총서 1
김상환 외 지음 / 이학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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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란 무엇인가? 패러다임과 내러티브의 관계는 어떤가? 등을 알 수 있는 상당히 매력적인 책이다. "인간은 안식처가 있는 덕분에 이야기를 주고 받게 된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주고 받는 능력 덕분에 적절한 안식 공간을 조성할 수 있게 되었다."는 구절이 많은 것을 말해준다. 내러티브 패러다임 연구단을 대신해 쓴 김상환 철학자의 글이다.

 

내러티브 패러다임이란 말은 흥미롭다. 이 두 항목은 심리학자 제롬 브루너가 두 가지로 분류한 사고의 양식을 이르는 말이다. 패러다임 양식은 논리적 추론과 과학적 검증을 바탕으로 하는 추상적이고 탈맥락적인 사고로서 지식을 주체 밖에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로서 간주한다.

 

내러티브 양식은 경험의 구체성과 개별성을 존중하는 맥락 의존적인 사고로서 경험을 조직하고 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지식을 생성하는 마음의 작용에 주목한다.(45, 46 페이지) 내러티브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모든 매체와 형식을 의미하는 서사(敍事)를 지칭한다. 서사는 시간성을 기본으로 한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사건과 변화가 일어나야 스토리라 할 수 있다.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이질적인 것들을 종합하여 통일성과 연속성을 창안하는 일이다. 모든 인간은 그러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어 서사적 존재라 불린다. 인간은 날마다 조각난 경험들의 전후 맥락을 찾아내어 그것들 사이의 관련성을 부여하고 개별적인 상황과 사건들을 결합하여 이야기를 만들며 살아가고 있다.

 

부단히 이야기를 만드는 인간의 서사화 행위는 혼돈스러운 세상에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안정감과 안도감을 얻고자 하는 우리의 욕망과도 맞닿아 있다. 서사 이전의 사실 그 자체라는 것은 아무런 형태도, 특성도, 의미도 없다.(71 페이지) 타인의 삶에 대한 우리의 서사적 이해는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어딘가 틀렸을지 모르고 혹시라도 그렇다면 그의 이야기는 언제든 다시 쓰일 수 있어야 한다.(51 페이지) 이 구절을 접하니 한 심리상담가의 이야기를 연상하게 된다.

 

“내가 어떤 모습이든 타인은 결국 나를 오해하기 마련입니다. 저 또한 타인을 제 방식으로 오해할 것이고요. 각자 방식으로 제멋대로 생각합니다. 딱 그 사람 마음 크기만한 관대함으로 나를 보려 할 겁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비난이 두려워 이상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할 게 아니라 기꺼이 이상한 사람으로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괜찮고 멀쩡한 사람인지 타인에게 해명할 게 아니라 자기만의 세계를 잘 구축해서 자기 확신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수 있을 때 타인 때문에 흔들리지 않고 마음을 단단하게 지켜낼 수 있습니다.”(김혜령 지음 ‘내 마음을 돌보는 시간’ 참고)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한다는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폴 리쾨르는 서사적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고정되고 균열 없는 실체인 자기 동일적 정체성이 아닌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해체되는 정체성을 말한다. 리쾨르는 이야기를 시간 속에서 이질성을 띠며 파편화된 것들을 하나로 묶는 끈으로 보았다.(70 페이지)

 

중요한 점은 나의 이야기는 온전히 나만의 것일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 각자의 이야기는 매순간 타인들의 이야기와 얽혀 있고 내 삶의 여러 단면은 내 가족, 친구들, 동료들의 이야기 안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가족 치료사 및 정신보건 사회복지사인 마이클 화이트와 데이비드 엡스턴이란 이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이야기 치료의 창시자다.

 

이들은 이야기의 은유를 통해 인간의 심리 구조와 발달 과정을 이해하는 서사 심리학의 관점을 가족 치료에 도입했다. 한 사회의 지배적 담론을 그대로 내면화한 상태에서 자기 이야기를 그 틀에 끼워 맞추게 되면 자신의 삶을 병적이거나 결핍된 이야기나 부정적 정체성을 서술하는 이야기로 구성하는 경향이 있다.

 

모든 내담자는 자기 삶의 이야기에 대한 전문가임을 인정하고 치료자 자신은 전문가가 아닌 협력자의 위치에 서고자 한다. 마이클 화이트는 인생에 대한 우리의 서술은 살아가는 그대로의 인생을 나타내거나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직접적으로 구성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관점을 구성주의라 한다. 이야기하는 행위가 실재를 창조한다는 의미다.

 

인간은 식욕, 성욕에 버금가는 서사적 충동의 지배를 받는다. 김상환의 글이 인상적이다. 김상환은 서론에 이어 '서사의 힘과 한계', '글쓰기의 단계와 창의적 사고의 논리' 등의 글을 썼다. 서사를 배우고 실행하는 능력이 없다면 정서라는 것도 없다. 라캉은 욕망은 대타자의 욕망이라는 말을 했다. 이는 욕망이 언어의 세계 속에서 학습되는 것이란 의미다.

 

이야기는 감정을 유발하는 장치일뿐 아니라 감정을 학습하고 해석하는 장치다. 우리는 아이 시절부터 이야기를 통해 감정과 그에 관련된 가치를 배우고 믿는다는 의미다. 특정한 가치 질서나 도식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희로애락의 감정이 일어날 수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를 해석할 때는 로고스가 리듬, 도식 등과 가까워진다. 이때 로고스는 요소들을 특정한 관계 속에 분절하는 것, 존재자 일반에 특정한 무늬나 결 혹은 질서를 가져오는 것에 해당한다.(82 페이지)

 

로고스의 동사 레게인(legein)은 원래 모으기, 수집하기, 수확하기 등을 의미했다. 하나로 모으되 부분들의 차이와 그 관계가 모두 드러나도록 펼쳐놓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손으로 하는 행위이지만 동시에 말로 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서사는 주관적이고 편향적인 특성 덕분에 사물의 주관적 본질을 드러내는 데 있어 무한한 가능성을 발휘할 수 있다.

 

고유한 장점은 극복된 단점인 경우가 많다. 루터에 의하면 일신교냐 다신교냐는 것은 종교의 본질이고 신앙은 주관적 본질이다. 애덤 스미스가 가시적 재화라는 경제의 본질에 대해 설정한 상품 생산에 투입된 노동시간은 경제의 주관적 본질이다. 공자는 유가 윤리의 객관적 본질인 예(禮)에 상대되는 인(仁)이라는 주관적 본질을 가르쳤다.

 

서사적 언어의 탁월성은 사물의 주관적 본질을 얼마나 순화된 형태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88 페이지) 주관적 본질은 그것과 관계하는 주체의 체험을 전제한다. 좋은 이야기일수록 이야기하는 사람의 존재감이 구체적으로 느껴진다. 벤야민에 의하면 이야기꾼이란 그의 삶의 심지를, 조용히 타오르는 그의 이야기의 불꽃에 의해 완전히 연소시키는 사람이다.(‘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참고)

 

논리적 언어는 일반화를 꾀한다. 개체에서 특수성을 제거하고 공통의 요소를 추출하여 보편적인 규칙을 찾는다. 서사적 언어는 개체의 특수성을 보존하면서 보편성에 이른다. 논리적 언어는 무시간적이고 상황 독립적인 사태를 그린다. 서사적 언어는 진리의 시간성과 상황성, 정상적 질서의 위기와 곤경의 통과, 주체의 주관적 체험과 상승적 변형을 그린다.

 

신정아와 최용호는 ‘인류세 스토리텔링‘을 이야기한다. 인류세란 인간종이 너무나 강력해진 나머지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지구 전체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힘을 갖게 된 시대를 말한다. 인류세 스토리텔링은 그간 배경에 있던 존재적 파국이라는 설정을 전경화한다.

 

윤성우는 인간은 생각이나 사유를 통해 나의 존재를 확증하는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나를, 자아를, 자기를, 주체를 찾아간다는 논의를 소개한다. 이 논의는 한나 아렌트, 폴 리쾨르, 앨러스터 매킨타이어, 찰스 테일러의 대동소이한 주지(主旨)다.

 

아렌트에 의하면 인간의 실존적 특성은 죽을 수밖에 없는 사멸성이지만 동물과 달리 오직 생식(生殖)을 통해서만 자신의 불멸적 삶을 보장받지 않고 자신의 각자성을 드러내는 말과 행위를 함으로써 생물학적으로 사라진 후에도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남긴다.(135 페이지) 알랭 바디우는 사건에 사로잡힌 주체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세상의 질서, 그 핵심을 진리라 부른다.

 

바디우가 말하는 진리란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참과는 다르지만 진리 개념의 일상적인 용법과 통하는 데가 있다. 진리는 우리에게 사물의 참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사물의 참모습은 수많은 ’맞지만 무의미한‘ 말들을 뚫고 나와 우리를 관통하는 어떤 것이다. 우리는 때로 그 한마디를 위해 수많은 잡담의 늪을 건넌다.(163 페이지)

 

벤야민은 이야기를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달되며 전달자에 의해 조금씩 변하는 것으로, 소설을 완결되고 닫힌 텍스트로 보았다. 한 사람이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전할 때 그는 자기 안에서 거르고 다듬고 키운 이야기를 전한다. 그가 전하는 이야기는 자신의 것이 아닐지라도 그의 삶이 녹아 있다.(166 페이지)

 

이야기는 반복되면서 전달된다. 반복은 변화를 부른다. 이야기는 반복의 예술이다. 이재환이 언급한 ’과학적 사고와 서사적 주체; 데넷을 중심으로‘는 흥미롭다. 데넷은 대니얼 데넷이다. 그는 데카르트가 말한 변하지 않는 정신을 데카르트 극장이라 부른다. 그는 우리는 뇌에 기능적 최고봉이나 중추 지점이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생각은 무해하고 손쉬운 길이 아니라 나쁜 습관이다.(180 페이지)

 

그가 제시한 개념은 무게중심이다. 무게중심이라는 이론가의 허구가 물리적 대상의 행동을 더 잘 이해하는 데 유용한 허구인 것처럼 무게중심으로서의 자아 개념도 유용하다. 원자 또는 그보다 작은 입자나 세계 속에 존재하는 어떤 물리적 요소가 아닌 무게중심은 질량도 없고 색깔도 없다. 시간 - 공간적인 위치를 제외하고는 물리적 성질이 전혀 없다.

 

무게중심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한다. 무게중심이 변하는 것처럼 자아도 변한다. 데넷은 우리 의식으로 들어오는 외부 세계 정보들은 우리 뇌의 여러 곳에서 병렬적으로 처리되기에 인간의 의식은 파편적이고 비연속적이다. 그러면 정보들이 병렬적으로 처리되는데 뇌의 각 부분에 전달되는 정보들은 어떻게 하나의 의식처럼 만들어지는 것일까?

 

데넷은 이 부분에서 스토리텔링을 이야기한다. 우리의 뇌는 많은 정보를 가공하여 원고/ 초고를 쓰고 이것들을 편집해 매끄러운(것으로 보이는) 하나의 의식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모두 소설가다. 데넷은 하나의 의식의 흐름이 되도록 편집하는 그런 단 한 명의 나는 없고 동시에 다중의 원고가 편집되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나 즉 자아라는 말을 했다.

 

나를 만드는 이야기가 항상 편집되는 것처럼 우리 삶의 이야기 역시 항상 다시 쓰이고 편집된다. 자아를 구성하는 의식이 편집된 이야기인 것처럼 우리 삶의 이야기도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사건들을 재해석하여 살아온 인생을 이야기로 구성한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수정하는 과정을 통해 모순적이고 불연속적인 개별 사건들,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사건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편집함으로써 인생 이야기의 통일성과 일관성을 만들어낸다.

 

거미가 거미줄을 치는 능력이 있고 비버가 댐을 만드는 능력이 있는 것처럼 인간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다. 이재환은 무게중심이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그 자체로 사물을 넘어지지 않게 하는 장소를 일컫는 말이라면 자아 역시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우리가 넘어지지 않게 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고 말한다.(188 페이지)

 

장태순은 자기에 대한 앎은 하나의 해석이며 이야기를 하나의 특권적 매개체로 삼는다고 말한다. 매개체가 되는 이야기에는 역사적 이야기뿐 아니라 허구의 이야기도 해당된다. 이를 통해 자기에 대한 해석은 위인전처럼 역사적 허구 또는 허구적 역사의 지위를 갖는다.(197 페이지) 브라이언 보이드는 인간은 고유한 메타 표현 즉 이야기 능력을 타고 났다고 주장한다. ’

 

이야기의 탄생‘의 저자 윌 스토어에 따르면 영화와 소설 같은 허구적 이야기가 인간에게 재미를 주는 것은 이야기의 기원이 원시시대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227 페이지) 최소한의 이탈 원칙이란 것이 있다. 현실에 대한 지식이 소설에 대한 사실의 평가에 유사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의미고 무조건 하늘 아래 없던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하는 것이 창의적인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231 페이지)

 

인간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유한하며 불완전한 세계다. 그렇기에 이야기의 적극적 수용자는 주어진 이야기를 소비하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그 세계에서 빈칸을 찾아내고 재해석과 재구성의 과정을 거쳐 제3의 이야기를 창작할 수 있는 창의성을 함양하게 된다. 이야기는 어떤 예술 장르보다 개인 및 사회와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기에 창의성 역시 기본적으로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이해. 집단의 심연에 대한 고민을 전제로 삼아야 한다.

 

김상환의 '글쓰기의 단계와 창의적 사고의 논리'는 현란한 글이다. 창의성은 천부적 재능일 수 있지만 평범한 인간에게 그것은 학습을 통해 획득해야 할 어떤 것이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다 보면 머릿속의 내용이 저절로 넘쳐 좋은 글이 된다고 믿는 사람은 평생 조야한 문장밖에 쓸 수 없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용에 걸맞은 표현의 형식을 찾는 것이다. 주어진 내용을 정확하게 표현할 뿐 아니라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극적으로, 때로는 내면적 울림의 효과를 가져오도록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것이 진부함에 대한 반감이다. 진부함에 대한 반감은 새로움에 대한 동경과 짝을 이룬다. 새로운 것은 기괴하거나 일탈적인 것이 아니다. 이전의 것과 다르되 모범이 될 만한 것이 새로운 것이다. 익히고 배워서 자기 것으로 하고 싶은 욕망을 불려일으키는 것이다.(236, 237 페이지)

 

김상환은 지층, 습곡과 변동, 용암의 분출 등의 말을 한다. "습관은 일정한 시기의 문화적 생태를 떠받치는 두꺼운 지층으로 굳어지기도 한다. 위대한 창조는 그 묵직한 습관의 지층에 습곡과 변동을 일으키는 용암의 분출과 같다." 김상환이 용암 폭발이라 하지 않고 분출이라 한 이유는 무엇일까? 새로운 것을 기괴하거나 일탈적이라 하지 않은 것을 통해 알 수 있는 바다.

 

폭발은 마그마가 급격하게 치솟는 것이고 (열하) 분출은 갈라진 틈을 비집고 천천히 나오는 것이다. 글쓰기는 습관이되 습관의 왕국을 다시 상징의 왕국으로 만들어가는 습관이다.(238 페이지) 글을 쓴다는 것은 가장 알맞은 표현을 찾기 위해 이미 쓴 글을 다시 고쳐 쓰는 것이다.(239 페이지)

 

'성숙의 세 단계와 창의적 사고'에서 김상환은 정신분석에 대해 논한다. 정신분석은 주체 생산의 조건인 예속화를 오이디푸스콤플렉스의 통과로 설명한다. 이 콤플렉스를 통과하기 전의 어린아이는 백지상태가 아니라 무정부상태에 놓여있다. 생각은 창의적이기 이전에 합리적이어야 한다. 합리적일 수 있기 위해 생각은 먼저 특정한 체계의 규칙에 자발적으로 복종해야 한다.

 

성숙의 첫째 단계는 체계 내적 사고의 단계다. 두번째 단계는 체계 간 사고의 단계다. 체계 간 사유는 변증법적 사유를 요구한다. 변증법적 사유는 논증적이기보다 서사적이다. 김상환은 공자의 아는 자, 좋아하는 자, 즐기는 자를 언급한다. 아는 자와 좋아하는 자는 체계 내적 사유의 주체에 해당한다. 즐기는 자는 특정 체계를 조직하는 이항 대립의 질서에서 벗어나 있다. 그러면서도 무질서로 전락하지 않는다.

 

과학이든 예술이든 새 시대를 여는 위대한 창조의 배후에는 배타적인 것처럼 보이는 두 유형의 사고가 함께 한다. 김상환은 니체의 낙태, 사자, 어린아이와 라캉의 소외, 분리, 환상을 이야기한다. 라캉이 말한 분리는 체계 간 사고와 유사하다. 진정한 의미의 즐기는 자는 어떤 형이상학적 통찰 속에 환상을 통과하는 주체, 환상의 한계를 알면서 자기의 고유한 욕망의 대상을 향유하는 주체다.(265 페이지)

 

라캉이 말하는 소외는 체계 내적 사고에 해당한다. 아이가 특정한 체계의 규칙에 편입되어 일관성을 띤 주체(공자의 아는 자, 니체가 말한 낙타)로 태어나는 과정이다.(259 페이지) 라캉이 말한 분리의 주체는 자신이 속한 체계(대타자)의 불완전성을 발견할 때 시작된다. 모든 문제에는 복수의 답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때, 나아가 답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때, 그때 체계는 어떤 결여나 틈을 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서사는 시간을 거치며 일어난 사건의 기술이다. 그래서 필연적으로 지속적이다.(292 페이지) 해석(학)적이라는 말은 텍스트 또는 텍스트와 유사한 것이 있어서 그것을 통해 누군가가 어떤 의미를 표현하려고 했고 그것으로부터 누군가가 의미를 읽어내려고 한다는 뜻이다. 이는 텍스트가 표현하는 것과 의미하는 것이 같지 않음을 함축하며 어떤 표현의 의미를 하나로 결정할 수도 없음을 의미한다.(294 페이지)

 

이재환은 근대적 자아와 탈근대적 자아 사이에 서사적 자아를 설정한 철학자 알레스데어 매킨타이어를 소개한다. 근대적 자아는 인간의 정체성이 사회, 역사, 문화에 의해 영향을 받고 구성되기에 다원적이고 유동적이라 생각한다. 탈근대적 자아는 비합리적이고 파편화된 자아다. 서사적 자아는 자신의 삶에서 일관성과 통일성을 추구하는 합리적 존재다. 서사적 자아는 이야기, 서사를 통해 태어난다.

 

서사적 사고 능력은 문학, 역사, 과학에서 활용되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고 그 이야기를 자신의 삶에 통합시켜 삶을 하나의 일관적이고 통일성 있는 이야기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다.(357 페이지) 매킨타이어는 이야기를 통해 가치의 충돌로 인한 분열 속에서도 통일성 있는 자아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358 페이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이해 가능하고 설명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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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 2021-09-20 1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번 읽어보고 싶은 매력적인 책이네요. 좋은 책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벤투의스케치북 2021-09-20 1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감사합니다 다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