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안도는 완도에서 갈 수 있는 섬 중 보길도, 청산도 다음으로 유명한 섬이라고 한다. 보길도 들어가는 노화도 바로 옆에 있어서 동천항을 거쳐 소안도로 간다. 내가 완도에 와서 살기 전에는 들어본 적도 없는 섬이니 유명세가 좀 덜 하긴 한 모양이다. 하지만 아름답고 조용해서 며칠 쉬었다 가기 딱 좋은 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안도 가는 배 안에서 만난 소리꾼들이다. 완도군에서 배를 타고 가는 관광객을 위해 이런 서비스도 하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소안도까지 가는 40분이 지루하지 않아서 좋았다.



바닷물이 빠지는 걸 기다리는 동안 섬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여기는 소안도에 있는 미라리 해수욕장이다. 보길도 예송리 해수욕장에 비해 아주 작은 규모의 갯돌 해수욕장이었다. 바닷물도 주변 풍광도 너무 아름다워서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바로 해수욕장 근처에 있는 소안 미라 펜션이다. 폐교한 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천연 잔디 운동장도 있어서 아이들과 함께 가면 놀기에 그만일 것 같았다. 동네 청년회에서 운영하는데 여름 성수기에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이용할 수 없을 정도로 인기가 있다고 한다.


펜션 내부 모습이다. 운동장에서 기웃거렸더니 이곳 관계자인 듯한 분이 홍보 좀 해달라며 내부까지 안내를 해주었다. 콘도처럼 숙식이 가능하게 이부자리랑 주방 용품이 다 구비되어 있다. 원룸과 투룸이 있는데 여기는 원룸의 모습. 아래 사진은 펜션 베란다에 서서 내다 본 방풍숲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저 너머에 바로 그림 같은 바다가 펼쳐져 있다.

 

소안도에서는 여름이면 물때에 맞춰 개매기 축제라는 것을 한다. 개매기라는 말은 갯벌을 막는다는 뜻으로 어촌에서는 흔히 쓰는 말인 듯했다. 갯벌에 미리 그물을 쳐놓고 바닷물이 빠져 나가면 맨손으로 고기를 잡는 방법이 바로 개매기란다.

섬을 한 바퀴 둘러보는 사이에 바닷물이 다 빠진 걸 보니 물고기 잡을 욕심에 나도 모르게 흥분이 되었다. 인구 3천 명이 조금 넘는 조용한 섬에 이 날 행사에 참여하러 온 사람이 600명이 넘다 보니 섬이 들썩들썩했다. 안내해주던 지역 어르신께서 오늘 소안도가 바다에 좀 가라앉았겠다고 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욕심내지 말고 한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는 어르신의 말씀에 충실히 따랐더니 우리 같은 얼뜨기 어부한테도 잡히는 물고기가 정말 있었다. 첫 물고기는 바로 반찬 한 가지 마련해 보겠다고 벼른 아줌마의 손에 잡힌 전어였다. 물 속에서 첨벙거리며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여기저기서 "잡았다"는 고함 소리에 덩달아 신이 났다.



우리 가족이 한 시간 넘게 잡은 물고기다. 오로지 손으로 요놈들을 잡았으니 "어이쿠, 대견해라!" 작은 전어 20여 마리에 제법 큰 숭어 세 마리랑 학꽁치도 있다. 거기에 꽂게도 한 마리 잡았다.



배삯(어른 7200원, 아이들 3100원)이랑 참가비(어른 오천원, 아이들 삼천원)가 생선값을 훨씬 넘어섰지만 너무도 신나는 경험이었다. 손 안에 잡혀서 팔딱팔딱 뛰던 손맛을 잊을 수가 없다. 아이들도 내년에 또 가자고 했을 정도로 정말 재미있었다. "하지만 아그들아, 내년 여름엔 우리가 이곳에 있을지 없을지 알 수가 없단다."

이렇게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소안도는 완도에 와서 알게 된 또 하나의 잊을 수 없는 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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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8-08-04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도도 보길도도 못 가본 제겐 소안도도 꿈나라 같네요.
바다색깔이 파란게 정말 멋져요. 가족들이랑 기억에 남을 시간 보내셨네요.^^

소나무집 2008-08-05 10:25   좋아요 0 | URL
저도 완도에 살지 않았다면 어림없는 섬여행이에요.
완도에 사는 동안 좋다는 데 다 놀러 다니는 대신 아이들 공부는 완전 뒷전이랍니다.

무스탕 2008-08-04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소나무님이랑 아가들이랑 아빠님랑 즐거웠겠어요 ^^
미라리 해수욕장은 정말 이쁘네요. 규모도 작아서 사람도 많지 않을것 같고요.
언제 가보나..

소나무집 2008-08-05 10:27   좋아요 0 | URL
정말 즐거웠어요.
단지 쉬고 싶어서 해외로 가는 분들에게 우리나라 땅끝에 있는 이런 섬으로 쉬러 가라고 권하고 싶어져요.

아영엄마 2008-08-05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고기를 직접 잡다니, 아이들이 두고 두고 기억에 남을 일이 될 것 같아요~.

소나무집 2008-08-05 10:30   좋아요 0 | URL
여름에 두세 번밖에 기회가 없는 행사라서 꼭 가야 한다고 남편이 부추겼어요.
늘 이것 저것 생각 안 하고 일을 저질러놓는 남편 덕분에 좋은 구경을 많이 하긴 해요. 아이들 데리고 한 번쯤 가볼 만한 축제였어요.

소진과준형 2008-08-07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 얼굴보니 참 반갑네 ^^ 여기서야 벼르고 별러 갈 수 있는데... 그렇게 수월하게 가다니! 에구에구 부러워라~~

2008-08-08 17: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유 2008-08-09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스런 가족들 모습을 뵐때마다 참 많이도 닮았구나..싶어요..
정말 잊지 못할 추억를 담아오셨군요..

소나무집 2008-08-12 09:48   좋아요 0 | URL
우리가 그렇게 닮았나요? 늘 예쁘게봐 주시니 고마워요.
소안도에서 물고기 잡던 추억은 정말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정말 너무 재미있었거든요.

전진 2010-08-17 1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완전 좋은 섬 제가 거기 출신입니다.

박찬례 2013-08-02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기대가됩니다. 소안도 큰마트도있나여? 내일 출발해여^^

신준서 2017-03-26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용~~ 전 소안도 출신 진산리 4444번지 김.봉.심 할머니 손자입니다. 저희할머니가 2016년 6월 초에 돌아가셔서 ㅠ,ㅠ 할머니 집도 돌려보고싶은데.. 힝 ㅠ,ㅠ
 

아이들이 방학을 하고 나니 휴가를 보내러 오겠다는 지인들의 전화가 끊임없이 이어지네요. 작년에 집에서 먹고 재우느라 은근히 스트레스 받았던 생각에 올해는 아예 여관을 예약해주고 밖에서 밥을 먹게 하니 제가 살 것 같아요.

지난 토요일 일 때문에 보길도에 가는 남편을 따라 나섰습니다. 보길도는 작년에 한 번 가 보기는 했지만 완도에 살아도 자주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랍니다. 그래서 회사 일로 가는 남편을 따라가는 일이 조금 눈치가 보이긴 했지만 용기를 내었지요.

갈 때는 회사 배를 타고 간다기에 배삯으로 수박 한 통이랑 떡을 준비했구요. 그래서 실제 배삯보다 돈이 더 들긴 했어도 선장님의 바다 이야기를 들으며 호젓하게 가는 맛이 아주 좋았답니다 .

 
아침 일찍 잠도 덜 깬 아이들을 깨워 갑작스레 나왔는데도 배를 탄 아이들은 신이 났습니다. 보길도 주변 바다는 온통 전복이랑 해초 양식장이더군요. 우리가 손쉽게 사 먹는 미역이랑 다시마 같은 것들이 이렇게 먼 바다에서 키워진답니다.


유명한 예송리 해수욕장 갯돌이에요. 모래는 발에 붙어서 영 성가신데 갯돌은 붙지 않으니까 좋아요. 신발을 벗고 걸어다니기엔 발이 아파서 좀 불편하답니다. 갯돌이 싫으면 근처에 있는 중리 해수욕장으로 가면 된답니다. 거긴 모래 해수욕장이거든요.



옷을 입은 채 바닷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썬크림을 엄청 두껍게 발랐는데도 새까맣게 탔어요. 바닷가 햇볕이 장난이 아니거든요.



바다가 정말 깨끗해요. 게 한 마리를 잡아서 집을 지어주며 놀고 있는 선우와 지우. 아빠가 없어도 친구들이 없어도 행복한 우리 아이들. 그리고 저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도 좋았어요.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놀고 있을 때 저는 무얼했는지 궁금하죠?



바로 요렇게 누워 자갈 찜질을 하고 있었답니다. 등이 따끈따끈한 게 잠이 솔솔 오더군요.



앞에 보이는 얕트막한 산이 예작도라는 섬이에요. 바로 저 섬 분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풍물을 잘해서 텔레비전에 나오기도 했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일을 마친 남편과 함께 우암 송시열 선생의 시가 적혀 있는 바위를 보러 갔어요. 일명 우암 송시열 선생의 글씐바위. 송시열 선생이 83세에 제주도로 귀양을 가다가 남긴 시를 누군가가 바위에 새겨놓았다고 하네요.



시커먼 자국은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먹을 묻히고 탁본을 한 흔적이라고 하네요. 처음엔 불에 탄 줄 알았어요. 문화재가 훼손된 현장을 보는 마음이 편치가 않더군요.



집에 가는 여객선을 타러 가는 길이랍니다. 올 봄 보길도와 노화도롤 잇는 연도교(섬과 섬을 연결하는 다리)가 생겼어요. 그래서 보길도에서 노화도까지 차를 타고 간 후 노화도 동천항에서 완도 화흥포항으로 들어가는 배를 타야 한답니다. 동천항에서 보길도 예송리해수욕장까지는 승용차로 20분 정도 걸려요.



우리 가족이 완도 화흥포항으로 타고 나온 여객선이랍니다. 육지에서 보길도로 들어올 때는 해남에서 노화도로 오거나 완도에서 노화도로 들어오는 배를 타면 된답니다. 배삯이 어른, 6천원, 아이들 3천원입니다.

보길도에는 윤선도 선생의 유적지가 많으니까 둘러보려면 차를 가지고 가는 게 편하긴 해요. 윤선도 유적지는 작년에 둘러보아서 우리는 이번엔 그냥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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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8-07-31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곳이네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도 좋구요.

소나무집 2008-08-01 10:48   좋아요 0 | URL
대도시에서 너무 멀어서 그런지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성수기에도 바가지 요금 같은 것도 없도 정말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며칠 쉬러 가기에 딱 좋은 곳이 아닐까 싶어요.

무스탕 2008-07-31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며칠전에 땅끝마을에 갔다왔어요. 정말 멀더라구요..
소나무님 생각도 당연히 했지요 ^^

소나무집 2008-08-01 10:49   좋아요 0 | URL
님 여행기 가서 보고 왔어요.
서울에서 오기는 정말 너무 멀어요.
완도는 해남에서 한 시간이나 더 들어와야 한답니다.

하늘바람 2008-07-31 1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사진은 하나하나가 다 예술이에요. 저도 태은이 태어나지 않았을때 다녀왔었는데 지금 엄두가 안나네요.
님 좋은 곳에 사셔서 휴가만 되면 정신없으시겠어요

소나무집 2008-08-01 10:50   좋아요 0 | URL
늘 사진 칭찬을 해주시는 님, 고마워요.
보길도, 갈 때마다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도 다 친절하고...

전호인 2008-07-31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뇌로부터 이번 휴가에 꼭 다녀오라는 압력이 팍 오는 데염.
너무 맑고 께끗하다는 것을 사진이 증명해주는 군요.
담주 휴가인데 걍 시골이나 다녀오려고 하는 데 망설여지게 되네염.

소나무집 2008-08-01 10:52   좋아요 0 | URL
뇌의 압력을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사실 보길도는 너무 멀어서 서울에서는 쉽게 엄두가 안 나는 곳이지요?
해남에서 배까지 타고, 또 승용차 타고.... 최소 2박 3일 코스에요.
 

새벽 일찍 출장 가는 남편을 배웅하느라 일어났더니 비가 무섭게 쏟아지고 있다. 거기다 천둥과 번개까지. 집안에 앉아 있어도 저절로 움찔움찔거리게 된다.

딸딸딸딸, 갑자기 경운기 소리가 요란하게 난다. 오늘이 장날인가? 20일 맞네. 베란다 문을 열고 보니 노란 비옷을 입은 아저씨가 빈 경운기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더 일찍 부인과 함께 나와 장에 물건을 풀어놓고 혼자 돌아가는 아저씨인 모양이다. 장날이면 흔히 있는 풍경이다. 오늘처럼 비가 많이 오는 날은 장에 사람도 없을 텐데 참 부지런한 농사꾼이지 싶다.

읍내를 벗어나면 바로 농사짓는 시골인지라 큰 도로에도 종종 경운기가 나타난다. 특히 장날은 새벽 4시만 되면 그 특유의 요란한 경운기 소리 때문에 잠을 깨곤 한다. 언젠가 장에 갔을 때 물어 보니 늦게 가면 좋은 자리를 잡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새벽 3시에 나온다는 얘기를 듣고 놀라기도 했다. 난 그 시간에 잠밖에 잔 게 없는데...

소안도, 청산도, 신지도 같은 작은 섬에서 물건을 팔러 오는 사람도 있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장을 보러 배를 타고 완도로 나온다. 언젠가 한번은 장날인 줄 모르고 병원에 갔다가 그냥 돌아온 적도 있다. 장을 보러 나온 김에 병원에 들른 할아버지 할머니들로 바글바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날은 식당도, 미용실도 다 대목이다. 큰 맘 먹고 나온 작은 섬 사람들에게 완도읍은 없는 게 없는 도시이다. 이런 땐 완도에는 없는 게 너무 많아 불만 투성이인 내가 부끄러워지곤 한다.

시장은 깔끔하고 화려한 조명이 있는 도시의 대형 마트와는 다른 맛이 있다. 정해진 가격표도 없고 정해진 양도 없다. 깎아 달라고 하면 천원 정도는 바로 깎아주고, 하나 더 달라고 하면 늘 그려려니 하면서 주시는 순박한 이들이 오일장에는 있다. 애기라고 부르면서(이곳 할머니들은 당신보다 어려 보이면 무조건 애기라고 부른다.) 하나만 사 가라는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과 투박한 손을 보는 순간 난 그것이 어떻게 먹는 해초인지도 모르면서, 혹은 냉장고에 있는 채소인지 생각도 안 하고 사 들고 올 때도 있다. 농사 짓는 내 부모님을 생각하면 그들의 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절대로 할머니들의 야채값을 깎지 않는다. 오히려 깎거나 더 달라고 안 해도 더 주셔서 미안할 때도 있다.

완도에도 작은 규모의 하나로 마트가 있지만 그곳에 없는 게 한 가지 있다. 바로 생선이다. 이곳 사람들은 오일장에 가면 싱싱한 생선이 널려 있기 때문에 누구도 마트에 가서 생선 살 생각을 안 한다. 나처럼 도시물 먹은 사람이나 손질해서 진공포장해놓은 꽁꽁 얼린 생선을 찾지. 

이곳 사람들은 양식한 생선조차도 생선으로 쳐주지 않는다. 바다에 가서 직접 잡은 자연산만 생선으로 쳐준다. 양식인지 아닌지 골라내는 능력이 없는 나로서는 그냥 살아 있는 생선이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때가 많다. 그리고 수협 공판장 같은 데 가면 자연산 우럭 한 상자를 도시에서 먹는 회 한 접시 값으로 살 수 있다. 한 상자에 우럭 20마리니까 도시 사람들은 이걸로 회 스무 접시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바다에 나가 힘들게 생선을 잡은 어부들만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아이들도 시장 구경 하는 걸 좋아하는지라 가끔 주말에 장날이 걸리면 온 가족이 장에 간다. 이렇게 큰 오일장을 난 완도에 와서 처음 보았다. 온갖 공산품을 실은 장사꾼 트럭들이 들어오는 날도 바로 장날이다. 읍내 골목마다 장사꾼들이 물건을 풀어놓고 사람들을 기다린다. 정말 시끌벅적하다. 작년까지만 해도 나는 아이들 속옷이나 양말을 사겠다고 여기서 한 시간 반이나 걸리는 목포의 대형 마트까지 가곤 했다. 그리고는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까지 트렁크 한 가득 싣고 돌아오면서 이게 생활의 지혜라며 뿌듯해했다. 하지만 이곳 살이 일 년 만에 사소한 물건들은 오일장에 가서 해결하곤 한다. 생활의 지혜를 새롭게 배워 나가고 있다.

비가 그칠 것 같지 않은데 경운기 소리는 계속 난다. 비 오는 날에 나오는 장꾼들의 마음을 생각해서 오후쯤 잠깐 시장에 나가 봐야 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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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8-06-20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을 다 읽은 후 살며시 눈을 감아 보았습니다.
시골장을 가기위해 할머니의 손을 잡고 논둑길을 따라 2시간정도를 걸으면 장터에 닿을 수 있었고, 장터국수를 한그릇 먹은 후 돌아오는 길에 고무신이라도 한켤레 얻어 신으면 그저 신이 나서 다리 아픈 것도 잊었던 어릴 적 추억이 새롭게 투영됩니다. ^*^

소나무집 2008-06-23 11:32   좋아요 0 | URL
님도 그런 추억이 있군요.
우리 아이들은 완도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하지만 이곳을 떠나면 추억이 새록새록하지 않을까 싶어요.

2008-06-20 2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나무집 2008-06-23 11:34   좋아요 0 | URL
처음엔 뭘 모르는 아줌마가 마트에 가서 생선 좀 갖다 놓으라고 따졌다니까요.
어부랑 농민들은 정말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요.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돈은 엉뚱한 사람들이 챙겨가니....

2008-06-24 1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6-24 1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유 2008-07-05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몇일에 한번씩 생선을 사와서 아빠랑 엄마 나란히 손질하시던 모습이 선하네요..
그래서 숯불에 구워주시고 쪄주시고..했었는데..
지금도 그런생선맛은 잊지 못하네요..

장날..순박한 사람들의 모습과 삶의 지혜를 배우고 있는 모습이 어우러져 참 좋은 풍경으로 다가오네요.가족은 함께 할때 더 빛나 보여요.

소나무집 2008-07-05 11:07   좋아요 0 | URL
처음엔 그랬네요. 여기서 사는 동안은 다 포기하고 살자 하고요. 하지만 이젠 이곳에서 누릴 수 있는 것, 좋은 것, 나름 열심히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도 보이네요. 어떻게 보면 포기한 게 아니라 오히려 인생을 배우고 있다 싶어요.
 

남편이 다도해 사무소를 자원해서 완도까지 온 가장 큰 이유는 적은 비용으로 시댁이 있는 제주도에 자주 갈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시아버지께서 아프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가보지 못하는 아들의 마음을 알기에 다도해 사무소로 지원하고 싶다고 했을 때 흔쾌히 그러라고 할 수 있었다. 서울 본부에 있을 때는 일 년에 한 번, 그것도 명절 때밖에는 못 갔다.

우리 네 식구가 비행기 타고 아무리 최소 비용으로 간다고 해도 100만원 이상 드니 그 이상은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요즘은 더 올라서 비행기표 값만 100만원 이상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니 남들은 제주도가 시댁이라서 좋겠다고 하지만 난 제주도 한 번 갈 때마다 마음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리느라 바빴다.

완도에서 배를 타면 한 사람 비행기 타는 비용으로 네 명이 제주도에 갈 수 있다. 배삯이 어른 2만원, 어린이 만원 정도 한다. 처음엔 돈 든다고 미안해하던 시어머니께서 연휴가 되니 한 번 오라는 말씀을 서슴없이 하셨다. 그래서 아무 일도 없는데 제주도에 다녀왔다. 우리는 이렇게 마음 땡기는 대로 사느라 모은 돈도 없다. 오늘이 행복하면 매일 매일이 행복하다는 남편의 지론도 한몫 했고.

완도로 온 후 일 년 반 동안 제주도에 다섯 번이나 다녀왔다. 부러운 사람이 많겠지만 가기만 하면 숙식이 해결되는 시댁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난 친정이 아니고 시댁인지라 마음 한구석은 조금씩 불편하다. 시어른들이 시집살이를 시키는 것도 아닌데 아무래도 며느리 자격으로 가기 때문인 것 같다.

이번 여행은 시어머니 시아버지와 함께 한라산에 다녀왔기에 나름 뿌듯했다. 젊은 시절부터 몸이 허약했던 시아버지께서는 나들이를 거의 하지 않으신다. 같이 사는 형님네도 늘 그러려니 싶어 나들이를 권한 적이 별로 없다고 했다. 하지만 작은며느리인 내가 자꾸 가자고 하니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서시는 게 아닌가! 형님도 한 번씩 권해 보지... 나도 제주도 며느리 된 지 12년 만에 한라산은 처음 가 보았다.


한라산에 올라가는 여러 코스 중 가장 짧은 코스를 선택해서 영실 휴게소까지 차를 타고 갔다. 일이 있어서 못 간 아이들 큰엄마만 빼고 열 식구가 어린이집 봉고차(아이들 큰엄마가 어린이집을 한다)를 타고 나섰다. 고만고만한 아이들 다섯이 모였으니 잠시도 조용할 새가 없었다.


작은엄마 손을 잡고 끝까지 산행을 한 여섯 살 조카가 너무 대단하다. 사내 아이들 셋은 어디쯤 올라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데 중간쯤부터 선우는 힘들어 죽겠다고 한라산에다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산이 노하면 어쩌려고.


     오백 나한의 전설이 서려 있는 한라산 영실 계곡.


제주도에 살면서도 25년 만에 한라산에 오르셨다는 칠순의 시아버지. 힘드셨을 텐데 그런 말 한마디 없이 좋다고만 하셨다. 내가 부추겨서 나선 길이었기에 중간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나 사실 신경이 좀 쓰였다.



햇빛이 쨍쨍한 오르막길을 걷다 갑자기 나타난 고산 평원에 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더구나 붉은 철쭉이 한 가득이었다. 산꼭대기에 이렇게 넓은 평원이 있다는 게 정말 신기했다. 이 풍경을 보려고 사람들이 한라산을 오르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살랑살랑 시원한 바람에 땀이 식자 그동안 잔뜩 골이 난 채 산을 오르던 선우의 표정이 확 펴지더니 한라산이 좋다며 싱글벙글이 되었다. 배경의 높은 봉우리가 백록담.


내내 앞서 가서 뒷모습도 볼 수 없었던 사내 아이들을 여기서 만났다. 셋이 뭉쳐서 노는 게 좋아 힘든 줄도 모르던 아홉 살, 열 살의 아이들.


근처에 노루들이 자주 나타난다고 해서 노루샘이란 이름이 붙은 약수터다. 가지고 올라갔던 물도 다 떨어진 참이어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물맛이 정말 끝내주게 시원했다.


약수터에서 물을 마시던 지우가 갑자기 "노루다!" 하고 소리쳐서 보니 정말 노루 한 마리가 사람들 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왼쪽 중간 위쯤에 있는 게 노루다. 두 마리의 노루를 더 보았는데 지우는  노루를 본 게 행운이라며 내내 좋아했다. 일기에도 노루 이야기만 썼다.


윗세오름에 도착해서 점심을 먹었다. 키 큰 나무가 없는 고지라서 햇빛 아래 도시락을 펼쳤다. 아침에 도시락 걱정을 하는 어머니께 그냥 밥 하고 쌈만 싸가도 맛있다며 간단하게 가져왔는데, 휴게소에서 컵라면을 사와 함께 먹으니 세상에서 이보다 맛있는 밥이 또 있을까 싶었다. 늘 소식을 하는 아버님도 정말 달게 드셔서 바라보는 며느리 속으로 흐뭇했다.



가족 사진을 찍자는 말에 아이들이 장난 치느라 난리가 났다. 뒤로 보이는 봉우리가 백록담인데  갈 수가 없었다. 예전에는 가능했는데 훼손이 많이 되어 지금은 출입 금지란다. 지금은 백록담까지 가려면 어리목으로 가야 한단다. 여기만 해도 해발 1700미터다.


너무 힘들어서 죽을 뻔했다며 다시는 한라산에 가지 않겠다고 하던 아이들.

"선우야, 지우야, 할아버지 할머니랑 이렇게 산에 오를 기회가 또 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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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인 2008-06-09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후기 너무 행복하게 읽었습니다.
며느리의 기지가 가족을 움직이고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행복을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드셨네요. 가족이 같이 땀흘리고 먹는 점심은 반찬의 유무를 떠나 꿀맛이었을 것 같아 흐르는 군침을 슬쩍훔치게 만듭니다. 마지막 한가족의 행복을 사진을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어 읽는 내내 흐뭇했어요. ^*^

소나무집 2008-06-10 10:22   좋아요 0 | URL
손자 손녀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시부모님의 모습이 행복해 보여서 저도 행복했어요. 나이 든 부모님들은 함께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좋으신 것 같더라구요.

씩씩하니 2008-06-10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이 얼마나 효부인지 이야기마다 시아버지에 대한 배려와 사랑 담긴 님 마음이 그래도 전해옵니다...
아버님도 산에 잘 오르셨다니..참 감사한 일이네요....
저는 대학시절 한라산에 다녀왔는데 길을 이렇게 나무로 이쁘게 정리해놓기 전이에요...
님 올린 사진 속으로 추억 더듬느라 행복합니다~~
님 덕분에 저도 괌 잘 다녀왔답니다~~

소나무집 2008-06-11 09:09   좋아요 0 | URL
효부라는 말에 부끄러워 웃음이 나오네요.
전 시댁에 잘해 드리는 거 하나도 없거든요. 그저 마음만 있지요.
님도 아이들 다 컸으니 한 번 더 다녀오세요.
너무 더운 여름엔 말고 선선한 계절에요.
괌 잘 다녀오셨지요?

miony 2008-06-10 2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모두들 너무 행복해 보입니다.
어르신들을 모시고 어린 아이들과 무사히 산행을 마치시다니 왠지 제 가슴이 벅차네요.
연세가 드실수록 가까이서 자주 가 뵙는 것이 효도하는 지름길인가 봅니다.
동그랗게 모여앉아 함께 점심드시는 모습이랑 가족사진에서 멋진 포즈를 취하신 시아버님의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소나무집 2008-06-11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아버님 때문에 조마조마했어요.
늘 누워 지내시는 분이거든요.
다음 날 전화해 보니 좀 힘들긴 했어도 괜찮다고 해서 안심했어요.
아마 아이들도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올랐던 한라산에 대한 추억을 평생 간직할 것 같아요.

초록이좋아 2008-06-11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리 아프시다고 그러시더니 이 글 보면서 다리 아프셔도 참 행복하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등산이 힘들어서 욕을 퍼붓었다는 선우 모습이 상상되서 한번 웃고, 윗세오름 표지석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찍은 지우의 사진을 보며 웃고... 아, 저도 빨리 한라산 한번 다녀와야 할 듯 하네요. ^^

소나무집 2008-06-12 13:40   좋아요 0 | URL
그래, 여기 살 때 꼭 한 번 가보도록 해.

노란우산 2008-06-12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잼있었어

소나무집 2008-06-12 13:40   좋아요 0 | URL
정말?

치유 2008-07-05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잘하셨네요..^^_모두 너무 행복해보여요..
 

언젠가부터 나비로 유명해진 함평, 서해안 고속도로 지날 때마다 가고 싶었던 곳이다. 지난 주에 지우가 학교에서 체험 학습으로 한 번 다녀와서 갈까 말까 망설였다. 그런데 딸아이가 자기도 보고 싶다고 강력하게 주장해서 엄마랑 아들은 두번째 방문이 되었다.

곤충에 관한 모든 것이 있어서 아이들 데리고 한 번쯤 다녀올 만한 곳인 것 같다. 전시장은 축제 기간에만 개방하고 평소에는 야외만 개방한다고 한다. 너무 넓어서 다 걸어다니려니 웬만한 체력으로도 깨갱이었다.

학교에서 갔을 때는 평일이라 단체 관광객 외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일요일인 어제는 사람이 아주 많았다. 그래도 가족끼리 가니 더 꼼꼼하게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사실은 아빠가 아이들을 다 챙겨주는 것이 더 좋았다.

 

33만평이나 되는 넓은 행사장 곳곳에서 아이들의 시선을 가장 끌었던 대형 곤충 모형들이다. 진짜 저렇게 큰 곤충이 있다면 인간은 벌써 멸종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싹한데 아들 녀석은 곤충이랑 놀 수 있어서 신난단다.

  
 

전시장 가운데 가장 좋았던 곳은 국제 곤충 나비 표본관이었다. 다양하고 고운 곤충의 색깔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어떻게 자연에서 저렇게 예쁜 색이 나올 수 있는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예쁘다.

 

 

 

 
나비 날개만으로 만든 작품이란다. 처음엔 모르고 그냥 지나쳤는데 딸아이가 이것 좀 보라는 바람에 쳐다보았더니 와,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런데 이 작품 하나 만들려고 희생된 곤충이 얼마나 될까? 아이들 말처럼 나도 곤충들에게 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정말 멋지긴 하다! 아이들에겐 죽은 곤충으로 만들었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아래 사진은 부분을 찍은 것이다. 클릭해서 원본으로 보면 더 생생하게 보인다.


 


  
황금 박쥐 표본과 162킬로그램의 금을 사용해서 만든 황금박쥐 모형이다. 이걸 만들 때보다 금값이 많이 올라서 값이 엄청나다고 한다. 계산은 어려워서 못하겠다.  
숲속마을 곤충관이다. 곤충의 사계절을 모형으로 만들어놓았다. 곤충들의 예쁜 모습에 우리 딸이 무지무지 좋아했다. 사계절 중 겨울이 가장 근사했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곤충도 나비도 아니었다. 바로 미꾸라지잡기 체험. 미리 준비한 옷으로 갈아입고 정말 신나게 놀았다. 옷을 안 버릴려고 조심하던 아이들이 나중엔 진흙탕 속에서 신나게 수영까지 하고 있었다. 집에 가면서 선우가 한 말은 "엄마, 집에 가면 미꾸라지 잡기한 생각만 날 것 같아요." 였다.


 

가로등이 예뻐서 한 컷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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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08-05-26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꾸라지잡기 체험 정말 즐거웠을듯^*^ 신났겠네요.
그나저나 저 대형곤충모형 으헛 징그러워라.
함평나비축제 가보고 싶은데 엄두가 나지 않네요. 가로등 참 예뻐요.

소나무집 2008-05-27 10:04   좋아요 0 | URL
미꾸라지 잡기 저도 하고 싶었는데 갈아입을 옷이 없어서 구경만 했답니다.
물만 미꾸라지 반이었거든요.
내년에 한 번 가 보세요.

무스탕 2008-05-27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이쁘게 아기자기하게 꾸며놨네요.
나비시계가 참 이쁩니다. 사람보다 큰 곤충들고 이쁘고요 ^^

소나무집 2008-05-27 10:05   좋아요 0 | URL
사진을 다 못 올렸는데 정말 근사한 것들이 많았어요.
악세사리 같은 것도 많이 만들어놓았는데 어찌나 예쁜지 정말 탐이 났어요.

2008-05-28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