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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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그는 연쇄살인범이었다.

 

 

 한때 연쇄살인범이었던 남자. 그에게는 '살인의 추억'이 불러일으키는 죄책감따위는 없었다. 그 날도 돌아오는 길에 사고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고 이후 수술을 받고 나서 그만두긴 했지만. 어딘가 파묻어버리고 싶은, 그런 류의 기억은 아니었던 것 같다. 딸과 함께 살게 된 이후 그는 한 번도 그러지 않았고 살았다. 수십여 년이 지나고 다 잊어버릴 시간이 되었는데, 그가 살고 있는 동네에 연쇄살인범이 나타난 거다. 이런! 내 딸은 안되는데... 한동안 쉬었지만 다시 재개할 기세다.

 

 

 한동안 쉬다 다시 시작하려니 이제 나이도 나이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다. 그는 지금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앓고 있다. 기억은 최근의 것부터 없어지기 시작한다. 의사가 그렇게 말했고, 점점 나빠지는 건 있어도 좋아질 건 없다는 걸 그도 안다. 그런데 나타난 연쇄살인범이라니!

 

 

 어쨌든 그냥 있을 수는 없었다.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갈수록 난감하다. 이건 몰래카메란가? 내 지능에는 큰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기억에는 문제가 생겼다. 조금씩 없어지는 것 같다. 앞으로 생각을 해서 기록을 하고 녹음을 해도 멈출 수 없다. 남은 것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혼란스럽다. 그러는 사이 평온하던 동네엔 연쇄살인범으로 추정되는 범인이 계속 희생자를 늘려간다. 범인 잡으려고 경찰대 학생들까지 나타나 찾고 있지만 잡히지 않고 있고, 그의 머릿 속에서도 알츠하이머라 불리는 알 수 없을 연쇄살인범이 머릿 속을 휘저어가면서 그를 조각내고 있다. 같은 시기, 한 사람의 안과 밖으로, 점점 정신없어지는 이유다.

 

 

 그는 이렇게 알고 있는데, 상대의 반응이 이상하다. 점점. 사랑하는 딸 은희도, 집 앞에 나타나는 개도, 가끔 들러 뭔가 잘알 것 같은 친근감을 주던 안형사도, 그리고 은희가 결혼상대로 인사시키러 데려왔던 박주태라는, 언젠가 봤던 그 수상해보이던... 하필이면. 그리고 어느 날엔 은희가 목에 손으로 눌린 자국이 있었다.

 

 

 요양원에 가야하나. 병원에 가는 거나, 감옥에 갇히는 거나 ... 은희는 그래도 잘 살아야 할 게 아닌가. 딸 앞으로 보험을 드는 것처럼 준비를 하고 싶지만, 그 자신에 대해서는 낙관적인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 안되면 준비한 주사가 있긴 하지만, 글쎄.

 

 

 은희가 보이지 않게 되고, 그는 나중에 경찰을 부르지만, 점점 더 이해못할 말만 하고 있다. 난 오늘 처음 봤는데, 어제도 봤다고 하면서. 난 잘 잊어버리지만, 그래도 치매에 걸리지 않았는데.

 

 

 2. 진짜였을까?

 

 

 초반부의 그는 불안해하지 않았다. 말할 수 없는 경력(?)을 털어놓을 때는 약간의 여유마저 느껴졌었다. 지난 날을 생각하면 한때의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었다. 그건 그에게만은 그랬을지도 모른다. 좋든 싫든 그 땐 젊었던 시절이었다. 나름대로 전성기였을지도 모르지. 살인은 난폭한 아버지로부터 어머니와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서 시작된 거였지만, 그 이후로도 이어졌다. 그리고 은희와 함께 살게 된 이후부터는 없었다. 그런 그에게 남은 유일한 가족은 딸 은희였다. 그 은희의 엄마를 죽이고 돌아오는 길에 사고가 생겼을 걸. 수술하고 나서 그는 살인에 흥미를 잃었다.

 

 

 범죄는 치밀하게 계획되어야 했고, 의심이 들 만한 일을 피하며, 의심을 받았을 때는 네 알리바이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알츠하이머는 그를 조금씩 조각내고 지우고 부순다. 처음에는 사소하게 느껴지는 것부터. 이전에 잘 하던 것을 할 수 없게 되고, 입맛도 달라지며, 방에 붙인 종이 이름을 모르겠고, 누군가 하는 말을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어느 날은 날짜에 맞지 않는 날에 찾아가기도 하고. 나중에 마지막에 쓰기 위해 준비해 둔 주사도 어느 순간부터는 지워졌을 거다.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 지워지고 없어지고 조각조각난 것들은 점점 더 작게 조각난다. 그의 내부에 있어서 만큼은 기억을 살해하는 연쇄살인범이었다. 그리고 이 범인이 나타나면서, 동네에도 연쇄살인범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앞으로의 일을 걱정한다. 기록을 하기도 하고, 녹음을 하기도 하고. 딸 앞으로 보험을 들어서 남은 딸의 미래를 걱정하기도 하고. 그러나 그 불안조차도 지워진다. 점점 당황스럽고 적응되지 않는 순간순간이 늘어간다. 그렇지만 그럴 여유가 없다. 연쇄살인범이 나타나 설치는 통에 내 딸이 위험한 상황이다. 바쁘면 대부분 그럴 듯한 이유가 생긴다. 그냥 잊어버릴 수도 있다. 딴 건 몰라도 그 놈은 잡아야한다.

 

 

 어느 순간, 지금까지의 그 세상이 아니라, 다른 세상에 와 버린 걸까. 다들 이게 뭔 소리냐는 듯 나를 쳐다본다. 마치 나는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처럼, 내가 알고 있는 건 모두 엉망이다. 내가 알던 사람은 없었고, 내가 알던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다. 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젠 잘 모르겠다. 그럴 수록, 점점 더 조각나고, 그는 먼지가 되어 어느 순간 사라진다.

 

 

 어쩌면 내가 기억했던 살인의 추억마저도, 모두 가짜였을지도 모르겠다.

 

 

3. 마지막까지, 나를 지킬 수 있을까.

 

 

  말하는 사람은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병이 진행되어 가면서 생기는 이전과 달라지는 것이 있었다. 때로는 사소해보이는 여러 가지가 계속해서 조금씩 늘어가는데, 운동기능이나 미각같은 것도 조금씩 변해가는 것이 느껴진다.  알츠하이머가 기억을 지우는 것과 함께 점점 진행되면서, 처음에는 알아차렸던 여러 증상조차도 어느 순간부터는 그 차이를 망각하게 된다.

 

 기억하려고 해도, 기억하려는 그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는 건, 지금 있는 과거는 그나마 서서히 없어져도 앞으로는 더이상 기억날 과거가 생기지 않는다는 말처럼 들렸다. 내가 전과 달라지고 이상해진다는 것도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좀 더 진행되면 내가 이상한 것조차 알아차릴 수 없다니! 처음엔 무섭지만 그 마저도 사라진다니!

 

  그런 거야, 그런 거라구. 계속해서 바뀌는 상황에 적응하기 어려운 건 당하는 그나, 읽는 나나 다를 게 없었다. 누구 말처럼 이 동네에 평행우주라도 있는 건지. 아주 비슷해보이는 그 다른 세계에서 나만이 그들과는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엉뚱한 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없지도 않은 거다. 의도적으로 나를 제외한 나머지 전부가 모두 다른 말을 하기로 했다면?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통해서 내 기억이 부정되어야할 상황을 연속해서 만나게 된다면?

 

그럼 이제 뭐가 진짜인거지? 일관성이 없기는 그쪽이나 이쪽이나 다를 것도 없는 걸. 점점 더 구별할 수 없고, 어느 시점부터는 구별한다는 것이 무의미해지는 그 순간까지도 무차별적 살인은 계속된다. 그래도 지키고 싶었다. 내가 가진 기억을, 내가 사랑했던 딸을, 그런 나를.

 

 

 처음에는 씨익 웃어가면서 시작했는데, 뒷판 접착 없는 퍼즐 떨어지듯 없어지는 게 보이면서부터는 서서히 불안해지더니, 갈수록 나 자체를  아예 없애버리려는 것만 같았다.  다 읽고 마지막엔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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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만리 1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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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글만리>는 전3권인데, 지금 1권만 읽고서 이 글을 쓴다. 1권에서는 현시점의 중국을 배경으로 하여, 한국인 의사 서하원이 중국에 와서 전대광이라는 종합상사 직원을 만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첫부분에 서하원이 중국에 가게 된 계기를 설명하는 부분이 있어서 앞으로의 이야기가 이 사람을 중심으로 전개될 듯 했으나, 1권에서는 첫 부분을 제외하면 이후 거의 등장하지 않고 가끔 다른 인물간 대화에서 간접적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중국에 첫 발을 들여놓는 의사 서하원에게 현지에서 근무하는 전대광이 설명해주는 것들은, 중국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독자에게도 앞으로 이어질 내용을 이해하는데 있어 도움이 될 듯 하다. 두 사람의 대화에서 나오는 여러가지는 앞으로 크게 중요한 사건이 되는 건 아니고 사소한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명함과 직책의 표기와도 같은 것이나 도로에서 만나는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장면 등을 통해서, 가기 전에 생각했던 중국과 실제로 가서 만나는 중국은 얼마나 다른지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중국에 처음 간 사람이 앞으로 필요한 것에 대해 설명하는 이 부분을 읽을 때, 앞으로 만나게 되는 중국은 어쩌면 미묘하게 이전에 알고 있던 것과 다르거나 아니면 알지 못했던 부분이 많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권에서는 주로 전대광과 그와 이어져 있을 인물들이 다수 등장한다. 그의 가족, 친척, 중국인과 한국인 인맥을 비롯하여 다시 그 사람들로부터 이어진 인물도 있고, 1권에서는 직접적 관련이 보이지 않았지만 결국은 누군가와 이어져 있을 것으로 보이는 인물들도 다른 한 편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래서 이름이 등장하고 대화하는 장면이 있지만, 과연 이들이 어떻게 연관을 가질 것인지는 조금 더 지켜보아야 한다.

 

 등장인물들의 국적, 연령, 성별, 직업이나 경제적 차이도 제각각이어서, 읽으면서 어떤 사건이나 장면과 이어진 내용을 통해 좀더 다양하게 중국에 대한 여러 측면을 볼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오며, 그만큼 사건도 단순하지 않고, 보는 관점도 다양할 수 있는데, 이러한 점은 읽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더욱 다양한 중국을 보여줄 것으로 생각된다.

 

 종합상사에 근무하면서 중국어를 잘 하고 문화나 관습이나 생활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인물이나 대학에서 공부중인 유학생과 같은 인물을 통해서는 한국에서 자란 사람이 만나는 중국을 볼 수 있었다면, 현지의 중국인 관료나 대학생, 중국인 직원이나 농민공 같은 사람들을 통해서는 그들이 보는 중국을 볼 수 있었다. 덧붙여 그외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만나고 보는 중국에 대해서도 나오고 있으므로, 서로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관점에서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중국에 대한 다층적이면서 다각적인 입장의 견해를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책 처음에 나오는 배경은 상하이지만, 중간에 상하이에서 시안으로 발령을 받아 떠나는 사람이 있어서, 잠시 시안에 대해서도 나오고 있다. 그래서 책에 등장하는 장소가 상하이에 한정되지 않고 발전 가능성 있는 다른 도시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되는데, 일단 1권만 읽은 상태라서 인물이나 장소는 다음 권에서는 어떻게 될 지 앞으로 더 읽어야 알 수 있을 내용이다. 또한 앞부분에 잠깐 보였던 사람이 다시 중요하게 등장할 수도 있고, 이전에 나오지 않았던 누군가가 나와서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 사이에서의 연관부분을 보여줄 수도 있겠다.

 

 작가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준비했을 자료 조사와도 같은 사전 작업도 상당했을 거라는 생각이 읽으면서 계속될 만큼, 이 책은 중국에 대해 다양하게 많이 보여준다. 1권은 시작부분이라서 등장하는 사람도 많고, 앞으로 이어질 내용도 단순해보이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책은 빠르게 읽었다. 아무리 좋은 내용과 정보를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소설이 어렵거나 전개가 지루해서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면 아무리 유명한 작가의 책이라하더라도 다음 권을 읽는데에 약간 주저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은 속도감있게 읽을 수 있었고, 읽고나서도 전체적인 내용이나 사건, 인물간의 관련을 정리되는 점이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좋았다.

 

 거대한 대륙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나라. 우리와 수천년을 국경을 맞대고 살아온 나라. 결코 우리와 무관하지 않을 그 나라가 지금 예상보다 빠른 발전과 경제적 성장을 거치면서 변화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중국은 이후로도 성장 발전할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정글만리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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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Red (イン レッド) 2013年 07月號 [雜誌] (月刊, 雜誌)
寶島社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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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 부록- 러셋(RUSSET) 토트백

 

 인레드 7월호는 잡지 설명을 보니, 10주년 기념인 듯 합니다. 이번호의 부록은 러셋 토트백인데, 종이상자 안에 접혀 왔습니다. 색상은 알라딘에 제공된 사진과 거의 비슷했습니다.

 

 크기, 소재, 색상,

 크기는 27*33*11센티 이고, 잡지 본책과 A4용지클리어파일이 동시에 들어가고 공간이 약간 남습니다.

 겉감 소재는 약간은 방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고, 내부 안감은 겉감과 비슷한 색입니다. (소재의 방수여부는 실험하지 않았으니, 대강 소재에 대한 참고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수납

 외부에 2개, 내부 안감에 이어진 2개의 포켓이 있고, 입구는 지퍼가 있어 열고 닫을 수 있습니다. 외부 포켓은 한쪽면에 두 개가 있고, 내부 포켓은 그와 반대쪽에 있습니다.

 

 끈(스트랩)

 토트백으로 표시되어 있고,  길이가 긴 편은 아니지만, 어깨에 맬 수 있는 정도 됩니다. 끈은 폭이 3센티 정도 됩니다.

 

 브랜드 로고

 끈이 박음질 된 부분에 작은 금속 장식이 있고, 영문으로 russet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외에는 로고 표시는 없으며, 해당 브랜드의 모노그램표시는 알라딘 사진처럼 겉면에 있고, 내부에는 없습니다.

 

 2. 배송기간, 도서 가격, 배송료

 

 배송기간

 

 저는 알라딘에서 외서를 이번에 처음 구매했는데, 배송기간이 국내도서에 비해서는 길었습니다. 일반 도서가 거의 하루면 도착하는 책이 많지만, 이 책 뿐만 아니라 비슷한 카테고리의 책들은  해외에서 오는 책이라서 배송 예정일이 한 주 이상으로 표시되었습니다.

 

 알라딘에서 이 책을 일요일 저녁에 주문하고 그 주 토요일에 받았으므로 거의 한 주일 정도 걸렸습니다. 제 경우에는 주문시 알라딘 표시 예정인 월요일 이후로 나왔습니다만, 예정기간보다는 빠르게 배송받았다고 생각됩니다.

 

 도서 가격, 배송료

 

 외서이다 보니, 환율이 변동되는 것에 따라 알라딘 내 구매가격도 약간씩 바뀌는 것으로 보입니다. 알라딘 국내도서의 잡지와는 배송료 기준이 달라서 이 책은 만원 이상 구매시 배송료가 다를 수 있으니, 주문 전에 배송료를 한 번 더 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만원이 되지 않아서 다른 책을 한 권 더 구매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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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3-07-11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인터넷 검색 도중에 부록을 러셋이라고 봐서 그렇게 썼습니다만, 러싯인가 봅니다. 라시토 라거나, 라시트 라고 나오는 경우도 있었구요.
외국서적이다보니, 쓰시는 분들마다 약간 차이가 있더군요.
 
립잇업 - 멋진 결과를 만드는 작은 행동들
리처드 와이즈먼 지음, 박세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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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행동이 생각을 바꿀 수 있다. 빈 페이지를 찢으라면 찢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접어서 구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 보자. 늘 생각만 하고, 내일과 언제가 될 지 모르는 다음으로 미루는 사람이라면, 시작부터 해보자. 이 책에선 뭐라도 해보는 게 좋다는 걸 여러가지 사례와 함께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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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꽃 김별아 조선 여인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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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초기에 일어난 스캔들입니다. 기록은 이렇게 남았습니다. 작가 후기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더군요.

 

 이야기는 『조선왕조실록』「세종실록」 21권, 세종 5년(1423) 9월 25일의 첫 번째 기사로부터 비롯된다.

 

 정사를 보았다. 대사헌 하연이 말하기를, "비밀리 계할 일이 있사오니 좌우의 신하들을 물리치고 의정 이원만을 남게 하시기를 청합니다" 하니, 임금이 이를 허락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나가니 하연이 계하기를, "전 관찰사 이귀산의 아내 유(柳)씨가 지신사 조서로와 통간(通奸)하였으니 이를 국문하기를 청합니다"하니, 그대로 따라 유씨를 옥에 가두었다.

 

 국왕의 측근에서 왕명을 출납하는 지신사와 대신의 아내의 간통은 재위한 지 5년째에 이른 젊은 왕 세종은 분노케 했고, 사헌부의 계사 후 13일이 지나 어명으로 '이귀산의 아내 유씨를 참형에 처하고 지신사 조서로를 영일(迎日)로 귀양' 보내며 사건이 일단락 된다.

 

-페이지 337, 후기의 작가의 말 중에서

 

 그러니까 시기는 세종 초, 조정 대신 남자와, 조정대신 남자의 아내의 치정사건 혹은 불륜의 스캔들입니다. 요즘은 배우자 있는 자의 불륜을 두고 간통이라고 합니다. 이 사건을 알게 된 젊은 왕은 노해서 이 남녀의 일을 두고 앞으로 다스릴 본보기로 삼기로 했습니다. 그 결과, 여자는 참형, 남자는 유배. 역사의 기록은 간단합니다. 남자는 직책과 이름이, 여자는 그 남편의 직책과 이름이 나옵니다만, 자기 이름은 고작 성씨가 나올 뿐입니다. 전직관리 누구의 처 모씨로 말이죠.

 

 이 책에서는 그 여자의 이름을 녹주라고 했습니다. 또는 젊은 시절 한 때는 비구니인 수경심이라고도 했고, 또는 이귀산의 새로 들인 젊은 부인이 된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처음엔 이름이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갑자기 가족을 잃고 일가 친척이 되는 청화당 노마님의 집에서 살게 된 아이는, 온 가족이 죽고 집이 불타는 사고의 충격때문인지 이름이 없었습니다. 그 이름을 지어준 사람은 청화당의 외손자인 서로. 두 아이는 그 때부터 사랑에 빠졌을지도 모릅니다만, 서로의 어머니 경심의 미움을 받는 처지라서 그게 문제죠. 그나마 의지가 되었던 청화당이 죽고 나서 얼마 뒤, 깊은 산속 암자로 가 수경심이라는 이름의 비구니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출가에 대해서 본인이 전혀 자발적으로 동의하지 않았으니, 이는 강제된 출가라 해도 되겠습니다.

 

 청화당의 딸이자 서로의 어머니, 그렇게 불리기에는 뭔가 많은 것을 중간에서 만들고 꾸미고 뒤틀었던 그 여자, 경심씨도 할 말은 있습니다. 경심은 녹주의 어머니인 채심을 압니다. 어린 시절 한 동네에서 컸던 청화당과 그 친구, 다시 그들의 아이들로 태어난 두 사람은 어린 시절 가까이에서 살았습니다.  어머니 청화당은 자주 채심과 경심을 비교하면서, 채심의 칭찬을 할 때마다 경심씨의 마음 속에선 미움이 자라고 커졌던 겁니다. 어머니 입장에선 자기 딸이 더 잘 했으면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했을테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선 그게 아니었겠죠.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채심이 가진 걸 갖고 싶어하더니, 파혼하고 나이 많은 조반에게 출가하게 됩니다. 한편 채심은 좋은 집안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잘 사는 것 같았지만 화재로 일가가 죽고 어린 딸 하나 겨우 남았고, 그녀도 아이를 동정했겠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예전의 그 채심이 미웠던 거죠.

 

 경심의 아들 서로는 어머니를 거역하지 못했고, 녹주를 사랑했습니다. 다른 사람과 혼인하고 긴 시간을 살았지만, 여전히 마음은 첫사랑을 지우지 않았습니다. 또한 녹주도 원하지 않은 비구니로 살면서, 서로를 버리지 못했습니다. 아마, 그랬을 겁니다.

 

 경심이 그들에게 첫번째 시련을 주었다면, 두번째 시련을 준 건 녹주의 남편이 된 이귀산일겁니다. 그는 본래 부인과 잘 살았는데, 부인이 갑자기 죽고나서 만난 녹주와 재혼합니다. 이 집에서 새 부인에 대한 남편의 대우란, 겉으로는 그렇습니다, 뭐든 잘 해줍니다. 친절하고 자상하게 보살펴주는 좋은 남편 같긴 합니다만, 이 집에서 사는 건 숨이 막힙니다.

 

 녹주는 경악했다. 이귀산에게 그녀는 무엇일까? 그는 왜 녹주에게 아이의 죽음을 숨겼을까? 십분 이해해 걱정거리를 안겨주지 않으려는 배려였다고 하더라도 천연덕스런 너털웃음과 감쪽같은 생시침은 소름끼쳤다. 그는 녹주를 화초처럼 애완할 따름이었다. 스스로 생각과 감정을 품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그러니 그녀의 영혼이 어떤 천국과 어떤 지옥을 오가는지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정성조차 상대가 원하지 않을 때는 폭력이었다. 메아리 없는 함성은 소름이었다.

- 이 책 페이지 284, 285 중에서

 

  그 여자의 일생도 한 번, 그 남자의 일생도 한 번. 그들은 수십여 년만에 다시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갑자기 피리와 함께 먼 친척이라도 되는듯 찾아온 서로는 지금까지도 어머니로부터 벗어나고자 애쓰고, 새 식구도, 반려도 아닌 화려한 집의 장식처럼 사는 녹주의 사정도 그리 좋지 못합니다. 그들이 평범하고 원만하게 자라, 좋은 배우자를 만났고, 부족함없이 지금의 가족과 잘 지냈다면, 이처럼 탈주에 가까운 사랑에 빠지는 대신, 어린 시절의 옛 추억을 꺼내보면서 살아가는 친구로 남을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그래서 한 번 해 봅니다.

 

 무모한 사랑에 빠진 그들도 언젠가 결말이 있을 거라는 것을 알았을 겁니다. 불안했을거고, 언젠가 발각될 날이 올 것을 알지만, 며칠 전의 생활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서로의 친구 김이가 술김에 울분에 찬 혼잣말을 털어놓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끝이 있는 사랑입니다. 각자 배우자가 있는 사람들의 사랑을 두고 세상은 너그럽지 않습니다. 그 때도 비난의 대상, 지금도 비난의 대상.

 

 그러니 이 일을 전해들은 젊은 세종은 무척 화가 나서, 이 일을 앞으로 있을 강상죄의 본보기로 삼고자 합니다. 평소 신임을 얻었고 개국공신 조반의 적장이었던 조서로는 그나마 유배를 보냈지만, 그만큼 상대여자인 이귀산의 처 유씨에게는 가혹한 참형이 내려졌습니다. 이 일은 그렇게 끝났습니다만, 훗날 이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규모의 '유감동과 30인 스캔들'이 터졌을 때, 십삼 년의 경력이 더해져서 불혹의 나이가 된 세종은 이때와는 다른 판결을 내립니다. 이번엔 유감동에게 참형대신 유배형으로 형을 감해줍니다. 이후 간통은 유배가 관례가 되었다고 합니다.(페이지 338)

 

" 내 나이 젊고 한창이던 때의 일이다. 우리나라의 풍속이 집집마다 토지와 노비가 있고 상하의 구분이 있어 중국에서 칭찬하던 바이었는데, 뜻하지 않게 사족 벌열의 집안에서 추잡한 행실이 발견되어 치고(治敎)에 흠점이 되었도다. 이에 깊이 미워하여 율문 밖에 형벌로 행하였는데 ……. 실로 율외(律外)의 형벌을 가하는 것은 잘한 정사가 아니다. 지난 날 한두 가지 율외의 형벌은 지금 돌이켜 후회가 된다……."

 

 도덕은 엄격했다. 시대는 그 도덕보다 가혹했다. 하지만 시간은 돌이킬 수 없었다. 목숨은 더더욱 그러하였다.

- 이 책 페이지 324 중에서 

 

 만약 이들이 요즘 사람이었다면, 이 사건은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고위직 공무원과 전직 공무원 부인의 스캔들로 비난받았겠지요. 간통죄를 두고 폐지 논란은 가끔 있습니다만 어쨌든 현재로선 범죄니까 처벌 대상이 되겠지만, 그렇더라도 사형은 아닙니다.  그리고 적어도 누구의 처 유모씨도 나중에 확정적으로 형이 확정되면 그땐 자기 이름이 나오겠죠.  어쨌든 요즘 시대엔 여자도 자기 이름을 걸고 시험을 봅니다.

 

 사랑도 때로 죄가 됩니다. 사회가 금기시 하는 사랑을 했을 때는 비난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가족도 상처를 입습니다. 그렇더라도 이 연인들을, 죽일 것까지야 없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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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서로와 유녹주라는, 이 오래된 연인들을 위한 변명
    from 서니데이님의 서재 2013-05-12 22:15 
    얼마 전에 <불의 꽃>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리뷰도 한 번 썼지요. 그 때는 주인공인 조서로와 유녹주라는 불륜커플(?)을 중심으로 봤습니다만, 그 얘긴 했으니, 오늘 저녁에는 비슷한 사람들이 나와도 약간 다른 이야길 써보고 싶네요. 조서로의 어머니와 그리고 유녹주의 남편은 이 책에서 그럭저럭 많이 나오죠. 그들에겐 각각 이경심과 이귀산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이 책에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두 사람에게 직, 간접적으로 작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