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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지금, 너에게 간다
박성진 / 북닻 / 2021년 2월
평점 :
"PTSD 증후군, 쉽게 말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이것은 전쟁, 고문, 자연재해, 사고 등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후
그 사건에 대해 공포감을 느끼고 사고 후에도 지속적인 증상들을 겪는 정신 질환이다.
소방대원이라면 열에 아홉은 이 질환을 앓고 있다.
불에 타거나 오랫동안 방치된 시체를 봤을 때,
뾰족한 사물이 사함 몸통을 뚫고 나와 있을 때,
얼굴의 절반 이상이 함몰된 시체를 봤을 때 등등,
듣기만 해도 거북한 현장 대부분은 출동한 소방대원들과 경찰들이 수습하게 된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평생 볼까 말까 하는 끔찍한 사건들을
나와 같은 직업의 사람들은 자주 접하기에 정신 장애가 생겨도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4P-
<지금, 너에게 간다>는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를 배경으로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소방관 수일의 삶과 기다림이 일상이 된 그의 애인 애리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용서와 치유,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불길이 타오르는 지하철 화재 현장 속에서 보내온 헤어진 연인의 전화 한 통화, 그녀는 끔찍한 사고 현장 속에 있다.
"나 사실, 우리… 헤어지고 난 후에 많이 후회했었어. 사람 구하느라 바쁜 거, 힘든 거 뻔히 아는데도… 매번 늦게 오는 네가 싫었고… 막상 만나면 꾸벅꾸벅 졸기만 하는 네가 싫었어. 머리로는 아는데… 이해가 가는데… 내 마음이… 내 심장이… 그러질 않더라고. 점점 지쳐갔어. 그만두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어. 사람들 구했다고 뿌듯해하는데 어떻게 그만두라고 말할 수 있어. 미안해. 내가 옆에 있어야 했는데. 미안해. 나만 생각해달라고, 나만 봐달라고 해서. 이기적인 나라서 미안해."
"늦게 와도 이해할게. 그러니까 제발… 와줘."
있을 때 잘할걸, 상처 주는 말 하지 말 걸, 사랑한다고 자주 말할걸…. 수백, 수천 번을 후회하며, 눈물을 훔치며 도착한 사고 현장은 참혹했다.
재난 골든 타임 72시간, 하지만 화재 골든 타임은 고작 오 분에서 십여 분이다.
이미 지난 골든 타임에 수일은 믿지도 않는 신에게 기도하며 기적을 바라며 화재 현장 속으로 들어간다.
수많은 사고를 경험해도 현장은 적응이 안 된다. 가장 힘든 사실은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이런 현장은 언제 접해도 겁이 나고, 마음이 좋지 않았다. 언제나 현장은 무섭게 느껴졌다. 특히 이렇게 규모가 큰 현장은 어디가 사고 발생의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바로 알 수가 없기에 일단 눈에 보이는 것부터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다.
-14p-
아니! 반지가 안 빠지면 응급실에 가서 잘라 달라고 해야지. 언제까지 생활 민원으로 처리해야 하는 거야! 진짜, 오늘 오전에만 반려견, 반려묘 좀 찾아달라는 시고만 다섯 건이 넘고! 문 열어달라는 신고는 서너 건에, 구급 팀한테는 누가 오늘 병원 가야 하는 날인데 늦었다며 자기가 예약한 병원까지 태워달라고 했답니다! 지금 망한 사건들이 다 위급하게 느껴지십니까? 이러다 진짜 큰 사건이라도 터지면 뒷수습은 어찌합니까.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이게 진짜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55p-
"보이나? 저긴 지옥문이네. 길은 저기 하나뿐이야."
"구할 수만 있다면 죽음 따윈 모릅니다."
소방 대장은 주변에 있는 대원들에게 말을 건넸다.
"다시 들어갈 수 있는 대원들은 있나? 나는 더 이상 너희들에게 지시를 내릴 수가 없다. 부탁하네. 들어갈 수 있는 대원들 있나?"
대장의 간곡한 부탁에 숨을 돌리고 있던 대원들도 얼른 장비들을 챙겨 대장에게 다가갔다. 유독 가스를 흡입하여 산소 호흡기를 쓰고 있던 대원들도 대장에게 달려갔다. 구급 대원들이 이들을 말려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입니다. 어차피 들어갈 있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지 않습니까. 대장님! 자, 갑시다!"
"좋네, 다들, 소중한 생명 구하러 가봅시다."
-78p-
<지금, 너에게 간다>는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속도감을 선사하며 사고 현장에 있는 듯한 장면 한 장면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저자는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를 배경으로 하여 쓰인 이 소설을 통해,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은 소방관들의 열악한 환경과 그들의 헌신을 둘러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우리는 소방관을 영웅이라 부른다.
긴급한 구조 현장의 최전선에서 우리의 생명을 지켜내고 구해주는 영웅이지만, 그들의 감춰진 슬픔, 생명을 구하는 입장에서 구하지 못했을 때의 상황이 크나큰 트라우마로 남아 마음고생을 심하게 앓는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어느 순간부터 이들의 희생과 봉사, 출동이 당연시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고, 구급 대원들이 취객에게 폭행을 당해 뇌출혈로 사망하는 사건 등 소방대원들의 폭행 피해 건수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직업적인 소명감으로만 치부하기엔 그들도 우리도 똑같은 사람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며, 위급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안위보다 구조자들의 목숨을 챙기는 고마운 분들이라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이야기였다.
"전국에 계신 소방대원 분들을 포함해 지금도 제복을 입고 있는 많은 분들이 노고를 인정받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전국에 계신 소방공무원 여러분, 당신이 진짜 영웅입니다.
당신의 헌신과 희생이 있어, 저희가 이곳에서 안심하고 편히 살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8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