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놈의 기억 1
윤이나 지음 / 팩토리나인 / 2021년 6월
평점 :
뇌와 관련된 기억 조작, 기억 스캔, 기억 이식 등을 소재로 한 책이나 영화, 드라마가 많이 제작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살인산건,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범들이 있거나, 과거 경험했던 위기나 공포에 대한 트라우마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에 읽은 <놈의 기억1,2>도 유사한 스토리로 전개된다.
주인공 한정우는 서울대 교수로 그와 그의 연구팀의 기억 삭제·이식에 관련된 논문이 사이언스지에 게재되었으며, 실제 기억삭제 ·이식술의 성공으로 올해 노벨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었다.
"<한정우 교수의 연두팀이 사이언스지에 게재한 논문 제목>
전기 충격으로 시냅스 간의 연결 고리를 끊음으로써 기억을 지울 수 있다.
미세 전류를 전두엽에 전달해 타인의 뉴런 패턴을 이식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현실에서도 이런일이 가능하다고 한다.
컴퓨터로 뇌 신경을 조작하여, 잊고 싶은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우고 재편집하는 기술이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디코디드 뉴로피드백>이라는 이 기술은 뇌파를 조절해 사람들이 기억을 지우고 재편집할 수 있는 기술이다.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기억을 활성화되는 뇌 부분을 모니터링하고 이 부위에 반복적으로 다른 좋은 기억을 심어준으로써 기억을 지우고 조작하는 방식이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나 공포증, 불안증과 같은 심리 상태를 치료하는데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지만, 사람의 기억을 지우고 조작할 수있는 이 기술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기억을 편지하거나 억제하는 것은 한 사람의 정체성에 혼란을 줄 수도 있으며, 기억 조작을 통해 사람을 도구화하거나 세뇌하는 등의 범죄에 악용될 소지도 있다는 우려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실제 현실에서도 가능한 일이라니 흥미로운 소설이나 영화의 주제로는 딱인 듯 한다.
<놈의 기억>의 이야기는 한정우 교수의 아내 사망사건에서부터 시작한다.
그의 논문이 사이언스지에 게재된 날 축하를 위한 회식 장소로 가던 한정우는 그날이 결혼기념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급하게 백화점에 들러 최고가의 한정판 귀걸이를 구매한 후 회식장소가 아닌 집으로 향한다.
집에 들어서자 그는 한 괴한의 방망이 질에 뒤통수를 과격당한채 그대로 쓰러져 버리고, 그날 그의 아내를 19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사망한다.
사흘이 지나 의식이 돌아온 한정우는 아내의 사망 소식과 함께 그 날의 사건을 목격한 유일한 목격자가 자신의 9살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딸은 사건의 충격으로 극심한 불안 증세를 보였고, 반년이 지나도록 말을 하지 않으며 일상 생활로 돌아오지 못한다.
한정우는 딸을 위해 '기억 삭제술'을 감행 했으며,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나 딸은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한정우는 딸을 시작으로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기억을 지우기 시작했다.
환자들은 자신이 기억을 지우는 수술을 받았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그는 학계의 찬사와 생명 윤리학자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았던 자신의 이론을 이용해, 범인 잡을 준비를 한다.
한정우 곁에는 인욱이라는 형사가 있다.
어려울 때 도움을 많이 받은 인욱은 친형처럼 그를 따르는데, 범인 검거 과정 중 칼에 깊게 베이는 사고를 겪은 후 칼에 대한 트라우마로 힘들어 했고, 한정우의 도움으로 기억을 지우는 수술을 받기로 한다.
한정우는 인욱에게 기억 삭제술을 하면서 그 기억을 자신에게 이식하는 수술을 해보려 한다며, 오랜 시간 연구를 해왔지만 실제로 해 볼 기회가 없었다며 인욱에게 동의를 구하게 되고, 인욱은 좋지도 않은 기억인데다가 형도 자신처럼 좋지 않은 트라우마를 겪게 될까 걱정하지만, 한정우의 부탁을 들어주게 된다.
한정우는 인욱의 기억을 삭제함과 동시에 그의 기억을 이식하게 되고,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나 인욱의 기억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생생하게 느껴지는 그날의 추격전과 몸싸움을 기억하던 중, 범인이 흘린 보석(장물)들 속에서 3년 전 아내에게 선물했던 한정판 귀걸이를 보게된다.
이렇게 이야기는 기억 이식을 통해 범인을 추적해 나가면서 스토리가 전개된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이야기는 흥미롭게 이어져, 2권의 책이지만 순식간에 읽어내려갔다.
과연 한정우는 기억 이식을 통해 그날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게 될지, 그리고, 아내를 죽인 범인은 과연 누구일지......
"과거를 지우는 건 눈속임이야. 그렇다고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바보가 되는 거라고."
"그래, 어쩌면 네 말이 맞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바보가 되더라도 일단 사는 게 먼저인 사람도 있어. 기억이라는 게 현재를 잡아먹는 괴물 같은 거야. 끊임없이 그 기억 속으로 소환해서 결국은 늘 고통받던 그 순간에 머물게 해. 떨쳐 내려고 하면 할수록 더 정신없이 달라붙는 그런 거머리 같은 놈이니까."
"맞아, 그래서 망각은 신의 축복이라고도 하지. 근데 말이야, 그 말은 망각이 신의 영역이라는 뜻도 되지 않을까? 네가 누군가의 기억에 손을 대는 게 정말 그 사람을 돕는 거라고 확신할 수 있어?"
"…."
"만약에 네가 누군가의 기억의 지운다면 그건 기회를 뺏는 걸지도 몰라."
"무슨 기회?"
"스스로 그 기억을 떠나보낼 기회."
"사람은 기억을 이길 수 없어. 기억과 싸울수록 점점 더 뇌에 인이 박히거든."
"그럼 기억 이식은? 기억은 한 사람의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이자 해석이야, 그것을 타인에게 온전히 옮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쩌면 착각이지 않을까?"
< 55~56 p. >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에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하잖아."
"니체."
"그래, 니체, 네가 놈의 심염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그 또한 너를 들여다볼 거야. 기억이라는 게 결국은 그 개인을 구성하는 요소잖아, 그렇게 내밀한 것을 공유하다 보면 어느 순간 더 많은 것을 공유하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그런 거 없어. 내가 찾는 건 오로지 진실뿐이니까."
<137~138 p.>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사체는 이야기한다."라는 말이 있다.
사체릐 피부 변화와 빛깔, 위의 내용물 등이 수사를 하는 사람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기 떄문이다.
인욱은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제발 당신을 죽인 사람을 말해 줘."
<142~143 p.>
망각.
정우는 오래도록 망각에 집착했다.
신은 누구에게도 망각을 선물처럼 주지 않기에…….
하지만 이제야 조금 알 것도 같다.
망각은 의지다.
그것은 기억을 잊으려는 노력이 아니다.
그저 피곤한 몸을 이끌고 만원인 지하철을 타고, 쌓여 있는 일 더미를 차근차근 하나씩 줄여 나가는 것.
전날 친구, 애인, 가족과 나눴던 실없는 농담을 떠올리며 피식 웃고, 퇴근 후 밀린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을 먹이고 재우면서 결국 그 옆에서 자신도 곯아떨어지는 것.
나쁜 기억에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나의 평범한 일상을 헤집어 놓지 못하도록.
평생 고문관처럼 자신을 따라다닐 것 같은 그런 기억도 결국 세월 속에 찬찬히 옅어지면서 결국은 흐려지고, 끝내는 담담해진다.
사람들은 매일 그 위대한 일을 헤내면서 살고 있다.
<263~264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