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글로 치유하는 법 - 위대한 작가들은 어떻게 삶의 혼돈을 정리하고 빛나는 순간들을 붙잡았을까?
바바라 애버크롬비 지음, 박아람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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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는 글쟁이들의 숙명인가. 여기서 글쟁이란 존경의 의미이다. 나는 아픔을 글로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되지 않는다. 나는 글을 기분에 따라 쓴다. 저 위대한 자신의 의사들을 보니, 내 모습이 무척 초라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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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행복]으로 통한다. 혁신, 성공, 정의, 창의, 소통, 치유, 건강은 모두 궁극적으로 나 자신의 `행복`, 또는 다른 이들의 `행복`을 위함이 아닌가(나는 종교는 다르게 본다). 책 제목이 『인문학 카페 인생강의』인데, 결국 인생의 주요한 목적 중 하나가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누구의 행복이든. 물론 위에서 말한 저 일곱 가지가 설령 없다고 해도 행복은 이루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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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페르노 2 로버트 랭던 시리즈
댄 브라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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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이 책이 댄 브라운과의 첫 만남이었다. 그 동안 『천사와 악마』나 『디지털 포트리스』로 대표되는 댄 브라운의 작품들이 다양한 매체를 타고 나에게 다가왔지만, 그 때마다 나는 망설였다. 두 권으로 나뉘어진 까닭에 필연적으로 생긴 가격의 부담뿐만 아니라 이 저자 역시 대중적인 통속 작가의 일부일 뿐이라는 선입견이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스트 심벌』 때 많이 흔들렸지만, 그 때도 나는 나의 주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이 매력적인 작가는 어떻게 해야 내가 자신의 소설에 끌려갈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불멸의 서사시『신곡』을 쓴 단테를 매우 좋아했고, 그를 더 알기 원했다. 그런데 댄 브라운이 '단테'를 소재로 한 방대한 스케일의 작품 『인페르노』를 쓴 것이다. 나로서는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었고, 결국 댄 브라운 속의 세계로 들어갔다.

 

 가장 놀라웠던 점은 댄 브라운은 자신이 만든 세계 속에서 자신이 창조주임을 결코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서술자는 그저 서술자의 역할만 충실할 뿐, 자신의 존재에 대해 전혀 알리지 않는다. 한 마디로, 나는 로버트 랭던을 따라가느라 서술자를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몰입감 아니겠는가? 나처럼 '댄 브라운'이라는 작가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거나 낯선 감정을 품고 있는 사람도 이렇게 책 속에 빠져들게 하다니. 그의 능력이 참으로 놀라울 따름이다. 아마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댄 브라운을 좋아하고 즐겨 읽는 까닭이 아닐까 싶다. 나 역시 그의 세계로 들어온 것 같다. 댄 브라운 자신의 모습이 참으로 많이 보이는, 로버트 랭던의 세계로.

 

 그러나 원초적으로『인페르노』에 접근한 것은 단테 때문이 아닌가? 저자는 마치 그의 흔적을 뒤따라가는 서술 방식을 사용한다. 단테라는 르네상스 시대의 시인이 남긴 유산, 그가 살았던 장소, 그에게 뜻깊었던 공간 등을 하나하나 훑는다. 『인페르노』는 단순히 랭던과 시에나의 도주극을 다룬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단테 알리기에리의 작품과 그의 삶을 독자들에게 친절하게 소개하는, 일종의 단테 안내서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솔직히 나는 단테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소설 속에서의 독특한 시구 해석, 들어보지도 못한 단테 유적지 등을 보고 나니 사실 나는 그 시인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결론적으로, 『인페르노』는 단테의 세계와 댄 브라운의 세계가 공존한다. 단테의 '지옥'은 엄청난 상징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인류의 생사를 위협하는 화학물질의 위치는 그 거대한 지옥 속에 숨겨져 있다. 추격, 도주, 사랑, 배신, 오해, 화해, 희망이 오고가며, 우리는 단테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 수 있으리라. 사실 그는 지옥을 말하려고 한 것이 아니요, 연옥과 천국의 행복만을 노래하고자 함도 아니었다. 그는 '희망'을 노래하고 있었다. 랭던은 마치 단테처럼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인도자 시에나, 즉 베르길리우스를 만난 이후 그의 삶은 변화되었다. 아니, 시에나는 오히려 베아트리체를 연상시킨다.

 '이곳, 이날로부터 세상은 영원히 변했노라.' 랭던이 병원에서 정신을 차린 그 후부터, 그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댄 브라운은 수많은 은유와 에피소드를 담아 나와 랭던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었다. 인류에 대한 색다른 해석, 역사의 특별한 분석도 매우 인상깊었다.

 

 당분간 이 지옥 이야기, 아니 희망의 노래는 내 기억 속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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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치드 매치드 시리즈 3
앨리 콘디 지음, 송경아 옮김 / 솟을북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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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제된 사회는 우리의 암울한 미래를 상징한다. 수많은 소설과 영화에서 '디스토피아'라고 불리는, 국가의 강력한 권력 앞에 사람들이 통제되고 조종되는 사회를 묘사한 바 있다. 대표적인 예로, 조지 오웰의 『1984』, 로이스 로우리의 『기억 전달자』, 영화로는 <매트릭스>, <브라질> 등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곳 안에서도 삶이 존재하는 것을 본다. 아무리 사람들을 통제한다 해도 그곳에는 사랑이 있고, 저항이 있다. 이 두 가지를 모두 담은 책이 바로 『리치드』다.

 

 앨리 콘디의 『리치드』 안의 디스토피아는 다른 매체에서 보았던 감시 사회와 많이 다르지 않다. 이 '소사이어티(흥미롭게도, 이 사회의 이름의 뜻이 바로 '사회'이다)'에서는 개인의 삶 전체가 거대한 시스템에 의해 통제되고, 사랑조차 반려자로 정해준 이와 해야 한다. 이 불합리한 사회 밑에는 강력한 봉기 세력이 있다. 이 봉기 세력의 일원인 카시아는 소사이어티 소속인 카이와 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들키는 날에는 양쪽 모두 무사할 수 없다. 마치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는 듯한 아슬아슬한 연애는 전염병이 터지면서 크게 바뀌게 된다.

 

 소사이어티와 봉기 세력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습격하는 전염병 때문에, 둘의 사랑은 방해되기 시작했고 결국 직접 만날 수밖에 없다. 인도자를 앞세운 봉기를 틈타 두 사람은 마침내 만나게 되지만, 돌연변이 전염병 때문에 카이가 쓰러지게 된다. 다음 일을 예측할 수 없는 이들의 사랑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까? 이 소설의 끝장을 덮게 되면,『리치드』는 결국 통제되는 사회와 죽음의 전염병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연인의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임이 드러난다. 일단 카시아와 카이, 그리고 잰더를 화자로 하는 장이 번갈아 가면서 진행되는 형식만 보아도 그것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파란색, 붉은색 등 색깔이 상징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 작가는 이 소설을 색채적으로 아름답게 꾸미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그 도전이 성공적이라고 본다. 나는 이 책에 대한 평들 중에 "『기억 전달자』를 떠올려라. 하지만 더 섹시하다."라는 평을 가장 인상적으로 보았다. 왜냐하면 그곳은 흑백의 세상이니까. 『리치드』는 『매치드』 시리즈의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고, 각각의 작품은 색깔을 가지고 있다.

 

 『리치드』는 붉은색이다. 나는 그것을 서로 만나고 싶어하는 연인들의 간절한 마음을 담은 것이라고 본다. 비록 나는 다른 시리즈를 보지 않았지만, 제목으로 그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1편 『매치드』는 'matched(만나다)', 2편 『크로스드』는 'crossed(엇갈리다)', 그리고 3편 『리치드』는 'reached(닿다)'이다. 마치 가문의 갈등처럼 어울릴 수 없는 두 세력, 봉기 세력과 소사이어티 사이에서 서로를 사랑하는 두 연인, 그들은 어떻게든 닿을 수 있기를 바랬으리라. 그 바람은 마침내 이루어졌고, 붉은 정원의 날의 약속은 성취되었다. 디스토피아의 결말이 해피엔딩일 수 있을까? 작가는 그 사회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작가는 그 사회에 속해 있는 사람들을 바꾸었다. 차이는 단지 그것뿐이지만, 그 차이 하나가 세상을 바꾼다는 것을 왜 나는 이제 알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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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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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눈먼 자들의 도시』가 나에게 준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소설일 뿐이다. 위의 책은 하나의 우화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나는 보게 되었다. 그것이 현실이자 역사임을. 『눈뜬 자들의 도시』는 『눈먼 자들의 도시』에 눈이 먼 나의 눈을 뜨게 해주었다. 후자가 내가 눈이 멀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면, 전자는 장님인 나의 눈을 뜨게 해주었다.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눈먼 자들의 도시』와 『눈뜬 자들의 도시』는 서로 정반대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눈먼 이들의 이야기가 가상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하나의 우화라면, 눈뜬 자들의 이야기는 그것이 4년 전에 일어난 전염병의 결과라는 역사이다. 나아가, 『눈뜬 자들의 도시』는 정치인과 경정의 심리와 행동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것은 의사의 아내를 중심으로 한 눈먼 시민들의 모습과 사뭇 대비된다. 무엇보다 그들은 눈이 멀었고, 이제는 눈이 뜨였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여전히 정부는 무기력하고 시민을 억압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사라마구는 자신의 작품 속에 언제나 자신의 정부와 국가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눈뜬 자들의 도시』의 출발점은 바로 그러한 저항에서 시작된다.

 

 선거에서 대부분의 표를 백지 투표로 낸 사람들이 발생한다. 투표의 익명성 때문에 누가 그것을 주도했는지, 어떤 이들이 거기에 가담했는지 알 수 없다. 정부는 계엄령을 발포하여 국가를 혼란에 빠지게 한다. 하지만 저자는 시민들에게 절대 다가가지 않는다. 사태를 해결하려고 회의를 하는 도중, 4년 전 국가에 창궐했던 백색 전염병에 대한 언급이 일어났으며 이로 인해 다시 한 번 그 사태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론은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았던 의사의 아내를 백지 투표의 주도자라는 것, 그리고 그녀가 살인자라는 것을 통해 그녀를 추궁하는 것이다.

 

 이런 어리석음을 행하는 자들이 바로 정부다. 그들은 여섯 명의 사람을 살린 영웅을 살인자, 반역자로 여기고 '마녀 사냥'을 했다. 결국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의사의 아내는 자살하고, 개 콘스탄테 역시 죽는다. 『눈먼 자들의 도시』가 희망의 시작으로 끝난다면, 『눈뜬 자들의 도시』는 비극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이 여인에 대한 진혼곡은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로 이어진다. 내가 후자의 작품을 보고 그 사실을 몰랐던 까닭은 『눈뜬 자들의 도시』를 보기 이전에 내가 장님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눈을 떴다. 우리가 정부를 바꿀 수 있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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