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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힘 2 밀리언셀러 클럽 125
돈 윈슬로 지음, 김경숙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개의 힘. 돈 윈슬로라는 저자를 나의 기억에 각인시킨 작품. 그의 첫 작품이었던 『지하에 부는 서늘한 바람』은 단순한 관심 정도에 그쳤으나 이 소설은 다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밀리언셀러 클럽에서 출간되니 관심도도 높아졌고, 두 권의 분량이니 어떤 대단한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The Power of the Dog'라는 제목 역시 나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과연 이 미스터리 작가는 무려 30년 동안 길게 끌었던, 베트남 전쟁처럼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나락 같은 멕시코 마약 전쟁을 어떻게 독자에게 흥미진진하게 보여줄 것인가? 하지만 이 책은 전쟁사가 아니다. 전쟁과 폭력, 그리고 인간의 타락을 통해 그들의 내면 속에 잠들어 있는 '악'이 어떻게 깨어나고 그 악이 인간의 역사를 어떻게 바꿔놓는지 보여주는 추악한 역사다.

 

 개의 힘. 그것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리고 그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 기원은 구약 성서에서 찾을 수 있다. 시편 22편 20장, 이 구절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

 내 영혼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힘에서 구하소서.

 여기서 '개의 힘'이란 인간이 아무리 애를 써도 몰아낼 수 없는 악과 모두에게 내재된 악의 가능성을 뜻한다. 이 '모두'는 소설 속에서는 100명에 달하는 등장인물 전부를, 현실에서는 인류 전체를 뜻한다. 즉, 『개의 힘』은 '모든 인간은 악하다'라는 전제를 두고 시작하는 것이다. '국경의 왕'이라 불리는 마약 단속반 아트 켈러, 일명 '하늘의 군주'로 일컬어지는 마약 조직 보스 아단 바레라, 고급 매춘부로서 아름다운 외모로 모든 남자들을 매혹시키는 노라 헤이든, 그리고 아일랜드계 킬러 칼란, 그리고 그들 주위를 이루는 수많은 인물들의 끊임없는 악의 회전으로 소설은 진행된다. 때로는 아트가, 때로는 아단이, 때로는 노라가, 때로는 칼란이, 때로는 그 밖의 다른 인물들이 각 장면마다 주인공처럼 움직이고 생각한다. 그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다. 저자는 단 한 사람의 개의 힘도 무시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사람들을 악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주인공이라 불리는 그들은 선하지 않다. 심지어 '정의'를 상징하는 경찰인 아트 켈러 역시 서서히 개의 힘에 굴복하고 만다. 그러니, 누굴 탓할 것인가? 그 힘은 누구의 책임도 아닌 것을.

 

 개의 힘. 나는 처음에 노라라는 인물 때문에, 그리고 마약 전쟁이라는 시대적 배경 때문에 소설이 뻔하게 흘러가지 않을까 불안해 했다. 노라 때문에 소설이 선정적인 싸구려 소설로 변질될 까봐 두려웠고 마약 전쟁이라는 배경에 너무 얽매여 이야기의 흥미와 긴장을 쏙 빼버릴까 불안했다. 하지만 돈 윈슬로는 이러한 불안과 두려움을 모두 깨버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었다. 가히 거장이라 할 만하다. 누구도 생명이 안전하다는 보장이 없는 섬뜩한 게임을 보는 것 같았다. 과연 실제로도 이랬을까? 멕시코 마약 전쟁은 실제로 존재했고 책 속에 등장하는 일부 사건 역시 현실 속에서 듣고 본 적이 있기 때문에 더욱 무섭다. 이 게임이 너무나 리얼한 까닭이었을까? 만약 이 대작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망작이 될 것이리라. 3부작으로 만들지 않는 한. 이 엄청난 이야기를 어떻게 2시간 만에 요약할 수 있단 말인가?

 

 개의 힘. 많고 많은 인물이 있었고 또 세월이 흐르면서 많고 많은 인물들이 죽었지만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후안 신부'였다. 어떤 면에서 보자면 『개의 힘』 중에서 유일하게 이 자만 그 거부할 수 없는 힘에서 벗어났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선했으며 억울하게 죽은 성인이었다. 노라와 사랑에 빠졌으나 그것은 저급한 사랑이 아니었으며 외모로 인한 사랑도 아니었다. 늙은 후안 신부의 죽음을 누구보다 슬퍼한 사람은 매춘부 노라였다. 그 둘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노라는 그 전까지(그리고 그 이후) 다른 남자들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수없이 겪었으나 자신이 그 노인을 사랑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개의 힘이 비록 절대적인 것이지만 그 속에서도 인간은 희망을 품고 있으며 사랑을 하고 있다.

 

 개의 힘. 그리고 그 두 사람을 만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거대한 사건이었다. 그 사랑을 싹트게 한 것은 개의 힘 때문이 아니었다. 아마 이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기억할 수 있는 장면, '멕시코 지진 장면'이다. 나 역시 다른 것은 다 잊어도 이 지진 장면만은 오래 갈 것이다. 정말 박진감 있으면서 고요하게 흘러갔다. 노라와 후안 신부는 똑같은 지진을, 똑같은 붕괴를, 똑같은 죽음을 보았다. 그리고 그 '공감'으로 인해 두 사람은 만났고, 이내 사랑에 빠진 것이다. 지진은 절망스럽지만 그 속에서 개의 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희망이 싹트고, 다시 세상은 개의 힘에 맞서 움직이고 있다.

 

 마지막 개의 힘. 이제 끝이다. 누가 살고 누가 죽는지 아무도 모르는 이 게임 속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누굴까? 『개의 힘』의 결말이 궁금한가? 직접 읽어보라. 1000쪽이라는 분량이 부담된다고? 걱정하지 마라. 일단 읽기 시작하면 그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느라 정신 없을 테니까. 오랜만에 정말 재미있는 소설을 만나서 좋았다. 『끌림』이 그랬듯이, 『개의 힘』도 부정할 수 없이,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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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역』이 나온지도 벌써 3년 전이다. 'Rebellion'이라는 간단한 제목의, 600쪽 분량의 영문소설은 중학교 2학년이 쓴 책이라고 하기에는 구성의 짜임이 매우 치밀했고 내용의 전개도 숨 돌릴 틈 없이 빨랐다. 그 소설은 잠시 세상에 등장했다가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갔다. 하지만 나는 이소영이라는 저자에 끌렸고, 『반역』이라는 소설에 끌렸다. 600쪽의 소설을 모두 음미한 뒤 번역(물론 어설프기 짝이 없지만)도 해 보았다. 그러나 그걸로 배부르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새로운 소설을 원했다. 하지만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그녀는 아직 어리고, 게다가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인 고등학생 아닌가? 아직 이 어린 저자는 세상에 나올 시기가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을 기다려 준 사람들을 위해 보답을 했다. 열심히 학업에 몰두하면서도 틈틈이 영어 원서를 읽고, 틈틈이 'along the burning fields'라는 작품을 집필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를 세상에 알린 작품이 나온지 약 3년 만에 다시 한 번 저자의 놀라움을 과시하기 위해 새로운 소설이 출간되었다.

 

 이번에는 조금 객관적으로 이 책을 바라보자. 우선 제목부터 다르다. 전작 『Rebellion』은 '반역' 또는 '반란'이라는 제목으로 일관할 수 있지만, 이번에 출간된 작품 같은 경우, 'along'과 'fields'의 중의적 의미 때문에 제목 번역에도 약간의 혼란이 일 수 있다. 하지만 보편적으로는 '불타는 들판(평야)를 따라'라는 제목으로 옮길 수 있다. 이번엔 좀 더 깊이 들어가 보자. 3년 전의 책이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을 다루었다면, 이번 작품은 로마 내전을 배경으로 하여 카이사르의 편에 속해 있던 퀸투스의 내적, 외적 갈등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두 시기를 나누는 기준은 카이사르가 정치권에 참여하느냐에 여부였다. 스파르타쿠스가 반란을 일으켰던 시기에 카이사르는 비교적 평온하게 지냈다. 하지만 『Along The Burning Fields』에서 카이사르는 정적 폼페이우스와 치열하게 맞붙는다. 그래서 카이사르의 활약상을 기대할 수도 있는 책이다. 분량으로 따지자면, 『반역』의 절반쯤 된다. 하지만 분량 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나에겐 고등학생이 된 이소영 저자의 더 발전된 실력과 더 깊은 이야기를 보고 싶다. 무척 기대가 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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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수정
조너선 프랜즌 지음, 김시현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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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두께만큼이나 엄청난 작품이 될 것 같다. 느낌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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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나는 이 두 소설을 읽었다. 『노인과 바다』와 『킬리만자로의 눈』을. 느낌은 크게 없었다.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했다는 작품도,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편 중 가장 걸작으로 평가받는 소설도 그저 평범하고 헤밍웨이다웠다(물론 이 '헤밍웨이다움'이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는 헤아릴 수 없지만). 오히려 나는 『무기여 잘 있거라』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와 같은 장편소설이 더욱 끌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소설을 잊지 않은 까닭은 좋은 번역으로 이 책들이 다시 탄생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 두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홍신문화사 전집을 통해서였다. 그것 때문에 인상이 깊지 않았던 것 같다. 물론 내가 주의 깊게 읽지 않은 탓도 있지만 홍신문화사의 번역에 대한 평가가 썩 좋지는 않기 때문이다. 문학동네는 믿을 수 있다(가끔 발번역도 나오지만). 다시 읽어보고 싶다. 저 희망을, 저 죽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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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6-15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제목만 보았을뿐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이네요ㅜ.ㅜ
 
행복의 추구 1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공경희 옮김 / 밝은세상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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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라스 케네디의 신작은 언제나 기대된다. 두 권으로 나뉘어 질 만큼 장대한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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