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번역 잘 봐 주십시오) 

 

 충성(Allegiance)  

 

 로마인들 

  

 

 

 -그네이우스 옥타비우스 루퍼스 

 신분: 트리부누스 라티클라비우스(정상적으로 부르는 트리부네. 군대의 두 번째 사령관.) 

 관계: 크라수스의 조카, 루키우스, 티투스, 루키아, 율리우스 카이사르, 검투사 스파르타쿠스의 친구.  

 정부 고위층(자신보다 높은 신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필자): 크라수스, 수에토니우스. 

 

 -퀸투스 루키우스 막시무스 

 신분: 백부장(정상적으로 한 세기의 60명~80명의 사람을 이끄는 중간공직계급자.) 

 관계: 루키아의 형, 옥타비우스, 티투스, 스파르타쿠스의 친구. 

 정부 고위층: 크라수스, 수에토니우스, 옥타비우스. 

 

 -티투스 에이밀라우스 플라비우스 

 신분: 백부장 

 관계: 옥타비우스를 양자로 삼은 형.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친구. 

 정부 고위층: 크라수스, 수에토니우스, 옥타비우스.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 

 신분: 집정관(고대 로마 공화 정체에 해마다 선출되는 행정 장관, 하위 신분이지만 대강 같은 영사 구실을 한다. 대부분 군인과 관계가 있다.) 

 관계: 로마에서 가장 부유한 원로원, 옥타비우스의 삼촌. 율리우스 카이사르, 수에토니우스의 친구. 

 

 -세르비우스 호르티우스 수에토니우스 

 신분: 지방 총독. 

 관계: 옥타비우스의 정부 고위층, 크라수스의 친구. 

 정부 고위층: 크라수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신분: 재무관, 재판관(정부와 군대의 여러 영역에서 재정과 행정에 책임이 있는 고대 로마의 여러 공립 공무원의 종류). 

 관계: 마르쿠스, 루퍼스의 친구-옥타비우스, 크라수스, 티투스의 아버지.

  

 -카이킬리우스 

 신분: 퇴역 백부장. 

 관계: 옥타비우스의 친구. 

 정부 고위층: 크라수스, 수에토니우스, 옥타비우스. 

 

 -루키아 막시무스 

 관계: 옥타비우스의 친구. 

  

 -퀸투스 아리우스 

 신분: 높이 존경 받는 원로원 의원. 

  

 -그네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신분: 군대의 지휘관. 

 

 

 노예 군대 

 

 -스파르타쿠스 

 트라키아의 검투사, 노예 군대의 지휘관. 

 

 -크릭수스 

 군대의 두 번째 명령자, 무자비한 검투사. 

  

 -오이노마우스 

 크릭수스와 함께 군대의 두 번째 명령자. 몰지식한 해적, 검투사. 

 

 -다비드 

  유대인 검투사, 노예 군대에서 장교. 

 

 -셈프로니우스 

 스파르타쿠스를 도와주기에 동의한 로마의 해적 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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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클 판이 없네........) 

 

 

 

 

제임스 조이스는 1882년 2월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그는 가족에 있는 10명의 아이들 중 첫째였고, 잠깐 부유했지만, 이내 가난해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류 제주이트 학교와 콜리지 대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더블린에서 비범한 재능을 증명해보였다. 1902년, 그의 졸업식에 따르면, 그는 파리에 가서 그 곳에 있는 의학교에 다녔다. 하지만 그는 곧 강의를 들으러 가는 것을 그만두었고, 자신에게 시집과 단편 소설, 그리고 체계적인 '미학이론'을 써서 바쳤다. 그의 어머니는 치명적인 병을 앓고 있었고, 그가 문학적 경력이 점점 생겨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1903년 봄에 더블린으로 되돌아온다. 1904년 여름 중에, 그는 갈레이에서 젊은 여자 노라 바나크를 만났고 그녀에게 함께 유럽을 가자고 설득하여 그 곳에서 영어를 가르치기도 계획했다. 그 젊은 두 쌍은 폴라에서 몇 달 동안 보냈다(지금은 크로아티아에 있다). 그리고 1905년에 트라이스터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일곱 달 동안 로마에서 있었던 것을 제외하고는 세 달 동안 더블린으로 여행을 떠나서 그들은 1915년 7월까지 살았다. 그들은 남자 아이 한 명과 여자 아이 둘, 총 두 명을 가졌다. 조이스의 첫 번째 책인 '실내악'이라는 시집을 1907년 런던에서 '더블린 사람들'과 함께 출판했고, 이 이야기책은 1914년에 출판되었다. 이탈리아의 제1차세계대전 참전은 조이스를 취리히로 이동시키게 했고, 그 곳에서 그는 1919년까지 머물렀다. 이 시기 동안 그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1916)'을 출판한 후, 망명되어 이동했다(1918년). 휴전함에 따라 잠시 트라이스터에 되돌아온 후, 조이스는 '율리시스'의 출판을 위해 더 쉽게 정리하려고 파리로 가는 것을 결정하여 그는 1914년부터 책을 내기로 했다. 그것은 사실 파리에서 그의 생일에 출판했던 것이고, 그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가지고 왔다. 같은 해에 그는 '피네간의 경야'를 집필하기 시작했고, 비록 그의 딸이 깊은 마음의 병에 걸리고 눈병에 시달리고 있어도, 그는 전집과 그 책을 1939년에 출판했다. 제 2차세계대전의 발발 이후, 그는 프랑스에서 할 일이 없어 안전하게 떠날 수 있는 허가증을 얻으려고 애써서 1940년 12월, 취리히로 되돌아와, 그 곳에서 그는 1941년 1월 13일에 죽었다. 그는 플런턴 묘지에 묻혀졌다.
 

 디클란 키버드는 1951년  더블린의 이클리스 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박사로 오기 전에 트리니티 대학에서 졸업했다. 그의 출판서는 '천연과 아일랜드의 행동(1979)', '영국과 아일랜드인의 태도(1984)', 그리고 '남자와 현대적인 페미니즘 문학(1985)'를 포함한다. 그는 오십 차례의 강연을 했고, 많은 논설과 문학 작품과 아일랜드의 정치에 관한 텔레비전 대본을 썼다. 국제적인 예이츠 여름 학교의 제작자이자 이사인 그는 더블린의 콜리지 대학에서 10년 이상을 가르쳤다. 그는 결혼하여 두 명의 딸과 외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시머스 디니는 펭귄의 제임스 조이스 편집에 비전문적인 편집자이다. 그는 인디아나 노트리 데임의 대학에 다니는 아일랜드 학생의 키와프 교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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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록 미숙한 번역이지만 그래도 잘 봐주시길) 

 스파르타쿠스 전쟁, 또는 3차 노예 전쟁은 가장 모호한 전쟁 중 하나이다. 그것은 노예 무리가 무엇을 일으켰는지에 대한 기록을 적어놓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만은 아니다. 그러나 또한 그것은 로마인들이 “정확히” “단지” 노예에 의한 반역을 무력으로 짓밟는 것을 아주 길게 그리고 아주 많이 살펴보았다는 사실에서 부끄러워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그리고 이렇게, 반역에 대한 사실을 써내려가는 것을 그들이 마음에 내키지 않기 때문이다. 나중의 역사에서 일부 로마의 고전 작가들, 아피아와 플루타르크와 같은 사람들이 3차노예전쟁에 대한 사실을 기록했다. 하지만, 무엇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그들의 평가는 서로 크게 다르다. 노예 군대도 알지 못했던 동기 부여-아피아는 그것이 로마 스스로의 조화라고 주장했다, 한편 플루타르크는 스파르타쿠스가 그저 이탈리아와 갈리아 안으로 도망치고 싶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피아와 플루타르크 둘 다 반역이 더 일찍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에 다소 동의했다 그들에 따르면, 기원전 73년에 70명의 검투사가 렌툴러스 배티애터스의 검투사 학교에서 도망가 그들의 검투사의 무기를 사용하여 카푸아에서 고대 로마 군단을 쳐부쉈다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스파르타쿠스와 그의 부하들이 카푸아, 캄파니아, 베수비오 화산을 근거지로 삼아 그 주변의 부유한 지역들을 약탈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점에서도 로마인들은 노예들이 아주 무의미한 일을 진짜 위협보다는 오히려 죄에 가까운 어떤 것을 고찰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 해가 지난 후, 로마 원로원은 가이우스 글라디우스 글라베르 같은 집정관을 보내 반역을 진압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로마인들이 검투사들을 위협하였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들에게 조직적인 군대를 명령하는 글라베르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용군은 3000명의 남자를 포함하고 있었다. 글라베르는 오직 산으로 가는 길을 봉쇄하는 것만 알고 있었고 노예들을 굶겨 죽이는 것을 원했다. 비록(글라베르가 산으로 가는 길을 봉쇄했더라도-필자) 스파르타쿠스는 그가 가진 것을 실행할 계획이었지만 말이다. 그는 줄과 사닥다리를 만들어 덩굴 밖에서 그것을 사용하여 글라베르의 무리 맞은 편의 절벽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노예들은 산의 기슭로 이동하여 이상한 낌채를 못 채고 있는 글라베르 곁으로 가 로마군을 완파할 수 있었다. 

 소설 속에서와는 다르게 나타나는 글라베르의 군대와 바리니우스의 군대의 살육은 하루에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글라베르의 패배(혹은 죽음-필자)를 들은 후, 원로원은 집정관 푸블리우스 바리니우에게 정규군의 명령권을 주고 검투사를 물리칠 것을 그에게 명령했다. 하지만 그는 어느 것도 성공하지 못했다. 바리니우스가 반나체로 폭포로 도망친 부분은 사실이다-그는 친구의 집에서 목욕을 하고 있을 때 반역자들의 공격을 받았다. 바리니우스의 패배 이후, 스파르타쿠스와 그의 부하들은 기원전 73년의 겨울을 놀라, 너세르아, 더리, 그리고 메타폰튬과 같은 다른 도시를 정복하는 데에 보냈다. 노예들의 반역의 지도자는 스파르타쿠스, 크릭수스, 오이노머우스, 간니쿠스는 별 문제로 하고 비록 오이노머우스는 언젠가 겨울에 지긴 했지만 말이다(?). 

 기원전 72년 봄에 원로원은 마침내 반역자들에게 루키우스 겔라우스 퍼블리콜라와 그네이우스 콜리넬리우스 렌툴루스 하의 집정관군을 파견하겠다고 위협을 했다. 이 책략의 의도에 대해 나는 크라수스의 명령하에 놓인 겔리우스, 렌툴라스 그리고 바리니우스를 두겠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한편, 반역자들은 두 무리(또는 군대-필자)로 나뉘어졌는데 하나는 스파르타쿠스의 지도하에 있는 무리이고 다른 하나는 크릭수스의 명령하에 있는 무리이다. 이 사건의 정확한 동기 부여는 알려지지 않았다.  

 겔리우스는 크릭수스의 군대를 물리치고 일의 경과 과정에서 크릭수스를 죽였다. 후에 일어난 사건은 분명하지 않고 아피아와 플루타르크에 의한 원전 때문에 모순되었다(어쩌면 모순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결국 다른 사건으로 언급된다는 원천). 

 그들의 기록은 합의를 이루었지만, 기원전 73년에 일찍이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는 그의 명령에 8개의 정규군과 함께 집정관을 비난했다. 가장 큰 대립은 플루타르크에 따르면 피세눔 근처에서 일어난 크라수스와 스파르타쿠스의 대립이다. 여기서 그는 반역자들 뒤에서 책략을 짜는 뭄미우스에게 두 군대를 주고 그에게 노예들에게 교전을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뭄미우스는 불복종하여, 두 군대를 완패시키고 말았다. 크라수스는 이것에도 불구하고 전투에서 간신히 이겼다. 비록 로마인 피해자들이 많기는 했지만 말이다. 크라수스는 이 전투 후에 대량으로 죽였다고 보고했다, 비록 역사학자마다 각기 다른 대량학살된 로마인들의 수가 많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것 또한 이 전투 후에 아피아는 3000 군단의 병사가 포로에 의한 반역자들이 힘 있게 싸우고 검투사답게 죽었다고 기록했다. 

 플루타르크에 따르면, 피세눔에서 스파르타쿠스가 진 후에, 그를 수송시키라고 해적과 협상했고 그를 시칠리아에 데리고 갔다. 하지만 그는 일의 경과 중 그들을 배신했다. M.J. 트로우와 같은 현대의 역사학자들은 크라수스가 배신의 요소에 진저리가 났을 것이고, 스파르타쿠스가 제의했던 것보다 더 액수가 컸다는 것에 의문을 품었다. 

 그러자 스파르타쿠스의 군대는 레기움에서 퇴각 강행군을 했고, 그 곳에서 그들은 포위되어 이탈리아 반도의 발가락의 위에서 아래까지 있는 로마인에 의한 "휴먼월(Humanwall, 인간의 벽)"에 굶어죽었다. 그 후, 카스투스와 간니쿠스하에 있던 반역자들 중 일부는 휴먼월을 통해 깨뜨릴 수 있었고, 도망갔지만 끝내 죽거나 로마군의 작전에 의해 격파되었다-스파르타쿠스는 레기움에서 80킬로미터 북동쪽으로 떨어진 곳에서 로마 군대와 만나 마지막으로 그의 온 힘을 다해 군대에 저항하다가 패배했다. 스파르타쿠스의 저항은 이 싸움에서 완벽하게 완패를 당한 것이다. 

 한편 폼페이 역시 전쟁에 참가하여, 퀴니투스 세르토리우스에 의한 반역을 정복한 후 스페인에서 돌아왔다. 이것이 화제에 오르는 동안 나는 폼페이와 카이사르가 절대 카이사르의 임기기간이 사실상 3년 더 길다는 것으로 스페인에서 만날 기회에 넌더리내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 폼페이는 스파르타쿠스의 반역자들의 나머지를 살육하거나 포로로 잡지도 않고 완벽한 반역군으로 파괴시켰다. 

 그 여파로 인해 폼페이와 크라수스 둘 다 잇따르는 해인 기원전 70년에 영사에 선출되었다. 약 6000명의 포로들이 로마에서 카푸아의 아피아 길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 그리고 이야기에 따르면, 반역자들의 몸이 그들의 다른 노예들에게 죽을 거라고 경고한 것이 훨씬 후에도 십자가에 남아있다고 한다. 하여간 그것은은 이것(이 사건, 즉 3차 노예 전쟁-필자) 때문에, 로마에서는 다시는 또 다른 노예의 반역이 없다는 것이 진실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로마인들이 많이 시도하려고 했던 일이 아니며, 그들이 스파르타쿠스의 몸을 찾지 못했다는 것도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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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의 글 옆에 있는 영문을 번역한 것. 번역이라 할 수 없는 미숙한 것이지만, 잘 봐주시길.) 

  

 엄마에게, 엄마는 제가 풀이 죽을 때마다 저를 위로해주셨죠. 

 아빠에게, 아빠는 로마사에 대한 저의 장황한 이야기를 들어주셨죠. 

 내 앵무새,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 너는 로마에서 나를 재미있게 해 주었지. 

  

 그리고 나의 친구들 역시 나를 위로해주었다. 그들 중 일부에게 나는 줄거리를 밝혔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재미있다"고 말해 준 그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어찌됐든 그들은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고, 이 말은 아직도 나를 격려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다. 까다롭지 않게 부탁한(이 부분이 좀 힘들었다) 내 친구들 손정윤, 한나 남현정, 정다혜, 유성주, 그리고 임예윤이 나를 도와주었다. 나는 또한 나의 모든 친구들과 나의 소설을 흥미롭게 받아주신 선생님께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다. 비록 공간의 제약이 있어 그들의 모든 이름을 여기에 명시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하지만 나를 위해 내 책을 출판할 수 있도록 적지않은 비용을 들인 일송북 출판사와 소중한 비판을 해 주신 오영숙님께. 

 감사드린다.

 

 

이소영
<Rebellion 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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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예술가의 초상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9
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종건 옮김 / 범우사 / 1999년 9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전적으로 보아서 난해한 책이기에 비평판 해설을 참고할 수밖에 없었다. 스티븐 디덜러스의 성장 과정을 그린 이 교양 소설의 주제는 무엇이고, 문체와 서술 기법은 또 무엇인가? 그것에 대해 김종건 교수님은 친절한 해설로 답해 주신다. 나는 해설 1의 형식을 빌려서 리뷰를 쓰겠다.

 1. 서론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야말로 훌륭한 교양 소설이자 성장 소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이 책은 미국의 대학생들에게 널리 읽히며 연구되고 있는 고전 중 하나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읽어야 하지 않을까?

 2. 줄거리
 서론에서도 그랬고, 앞으로도 계속 그랬듯이, 김종건 교수님은 자꾸 앞의 첫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렇게 내내 강조했으니 그 부분이 이 작품에서 어떤 부분을 하는가 보자. 우선 그 부분은 작품의 서론과도 같다. 서론이란 작품을 요약한 것이다. 그러므로 앞의 그 부분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 뒤는 매우 수월하게 읽힐 것이다. 그러나 그 부분은 이 작품 전체처럼 어렵다. 그래서 해설 없이는 읽기가 어렵다. 이 줄거리 부분을 읽는 독자는 분명히 읽는 내내 의문이었던, 그 보이지 않은 줄거리가 보일 것이다.

 3. 주제
 나는 문학의 주제야말로 그것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기법이나 문체가 독특해도, 내용이 재미 있어도 주제가 미약하면 고전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 안에 있는 주제를 파악해야 한다.
 이 책의 주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하나는 '맹목 주제'이다. '맹목 주제'란 일종의 반복법이다. 이 책의 가장 앞에 나오는 핵심 구절들이 작품 내내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어린 왕자』처럼 유기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는 '부정(父情) 탐색의 주제'이다. 이 주제는 20세기 문학에서 대중화된 주제이다. 아무래도 '잃어버린 세대'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듯이, 가족과의 대화가 줄고 세대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시대가 바로 20세기이다 보니, '잃어버린 가족간의 정'을 찾는 문제가 문학에서 많이 다루어진 것 같다. 특히 이 작품의 중요한 모티브가 된 것 중 하나가 '이카로스 신화'이다 보니 조이스는 이 작품에서 '부정 탐색의 주제'를 강조한 것 같다. 참고로 이카로스와 다이달로스는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이다.

 4. 문체와 기법
 사실 사람들이 조이스의 문학을 어려워하고 그에 따라 기피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문학이 문체와 기법의 기교를 통해 난해함을 낳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들을 알고 보면 그토록 재미 있는 게 없다. 즉, 조이스의 문학은 알면 알수록 재미 있다.
 사실 조이스의 작품은 작품 내에서도 계속 장마다 문체가 바뀐다. 물론 그것은 일부러 한 것이고, 다양한 표현법을 낳지만 독자들은 정신 없이 바뀌는 문체에 따라가지 못하고 지쳐버리기 일쑤이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스티븐이 성장함에 따라 문체는 점점 성숙해져 간다. 조이스의 문학의 특징은 내용이 성숙해짐에 따라 문체 역시 성숙해져 간다는 것이다. 더구나 스티븐의 성장을 다룬 소설이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다 보니 그것은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것 중 하나는 바로 '서술 기법'이다. 이 작품뿐만이 아니라 조이스는 그의 모든 작품에서 어떤 세 가지의 서술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만의 독특한 것도 있고 프루스트나 버지니아 울프 같은 작가와 함께 쓰는 기법도 있다. 그 세 서술 기법은 이렇다.

 <1> 의식의 흐름: '의식의 흐름'이라는 말은 원래 현대 정신분석학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격변하는 20세기 문학은 기존의 수법의 한계를 느끼고 다른 분야의 용어까지 따오게 되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의식의 흐름'이다. 사실 이 기법(수법)은 제임스 조이스뿐만이 아니라 거의 동시대의 작가였던 마르셀 프루스트나 버지니아 울프 같은 작가들도 사용한 것이다.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나온 의식의 흐름 수법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혹은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에서도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이 수법은 조이스만의 특별한 것이 아니고 그에 따라 '의식의 흐름' 분야에서 조이스가 차지하는 비중도줄어든다. 이 기법은 조이스의 문학에서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중요성을 갖춘, 조이스만의 서술 기법은 그 다음에 있다.

 <2> 에피파니: 원래 '에피파니'는 세 명의 동방박사가 탄생한 아기 그리스도를 방문한 것으로 상징되는 현현(顯現)이다[그런데 저 한자를 보면 둘 다 '나타날 현' 자다. 결국 그리스도의 '나타남(appearance)' 그 자체를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이스의 문학에 있어서의 에피파니란 그와 조금 다른 개념이다. 그것은 주인공이 경험하는 갑작스러운 정신적 발로 또는 계시로서, 베일이 걷히며 드러나는 사물의 본질 같은 것이다. 에피파니의 동기는 가장 사소한 소리나 몸짓에 의하여 야기된다. 나는 에피파니의 동기에 대해서 주목하고 싶다. 『율리시스』의 1, 2, 3장을 보면 스티븐은 멀리건의 소리, 디지 씨의 서재에 있는 물건, 샌디마운트에 온 여인으로부터 에피파니를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은 에피파니에서 멈추지 않고, 곧 의식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즉, 조이스는 위의 두 주제를 따로 따로 놓지 않았다. 에피파니의 동기로써 시작하여 의식의 흐름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이것은 의식의 흐름이 나온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 '에피파니'란 조이스가 20세기 문학사에 공헌한 것 중 가장 큰 부류에 속할 정도로 귀한 것이다. 사소한 것이 큰 것을 이야기할 수 있고, 사소한 것으로부터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는 이 '에피파니 기법'을 그냥 두기에는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3> 신화의 사용: 위에서 잠깐 밝혔듯이, 이 책의 중요한 모티브 중 하나는 '이카로스 신화'이다. 그 신화의 내용은 간략하게 표현하자면 이렇다.
 "고대 크레타 왕국의 예술적 거장 다이달로스는 미노스 왕의 명을 받아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감금하기 위해 미로를 설계한다. 이 미로는 너무나 정교하여 그 곳에서 탈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나중에 그는 왕의 미움을 받아 그의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그 미로에 감금된다. 그러나 다이달로스는 하늘로는 탈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털깃과 납으로 날개를 만들어 아들과 함께 크레타를 탈출한다. 다이달로스는 이카로스에게 지나치게 높이 올라가 태양열에 납이 녹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이카로스는 그것을 무시하고 높이 올라가다가 태양열에 날개가 녹아 지중해로 떨어져 익사했다(p.353참조)."
 이 신화에서 스티븐은 누구인가? 다이달로스인가? 이카로스인가? 이렇게 고민할 필요 없다. 스티븐은 그 둘 다이다. 그렇다면 '부정 탐색'은 무엇인가? '아들' 스티븐이 '아버지' 스티븐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아들과 아버지는 동격이다. 즉, 그것은 자기 자신의 탐색이다. 그리고 위 신화를 보면 다이달로스 자신이 만든 '철저한 미궁(이 미궁은 더블린이기도 하다)'에 자신이 갇혀버린다. 이것은 곧 자기 자신 안에 갇힌 것이다. '하늘'은 '자기 자신의 탐색'을 일컫는다. 즉, 자기 자신을 탐색하지 않고서는 자기 자신의 미궁(우리)로부터 빠져 나올 수 없다. '털깃과 납'은 곧 '예술'이다. 그러나 예술로 만든 '날개'로써 '자기 자신의 탐색'을 시도하려는 것은 무리이다. 그것만으로 자기 자신을 탐색하려고 하다가 태양열(자기 한계)에 날개가 녹아버린다. 그렇다면 무엇이 더 필요하다는 말인가? 그것은 '성장'이다. 결국 무질서하게 날아오르려다가 날개가 녹은 것 아닌가? 게다가 아버지 다이달로스(자기 자신)의 충고를 무시해서 그렇게 된 것 아닌가? 결국 그것은 정신적으로 덜 성장했다는 증거인 셈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끝까지 스티븐을 성장시킨다.
 하지만 조이스는 이러한 그리스 신화 외에도 성경, 단테,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들을 그의 작품 속 주인공의 차원을 심화하기 위해 자신의 심리적 목적에 적응시켰다. 그리고 그는 과거와 현재의 두 개의 세계, 즉 질서와 무질서의 융합을 그의 작품을 통해 성취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주인공인 스티븐 디덜러스(Stephen Dedalus)의 이름이다. 일단 '스티븐(Stephen)'부터 알아보자. 이 이름의 유래는 신약 성서에 나오는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을 영어식으로 파생한 것 중 하나이다. 스데반은 자신의 믿음을 전파하려다가 죽었다. 즉, 스티븐이 이 세상을 구원하려고 온 '사도'라는 것을 암시하는 동시에 햄릿처럼 우유부단하게 행동하여 세상에게 죽지는 않았지만 패배자로 남은 사람이라는 것 역시 암시한다. 그리고 '디덜러스(Dedalus)'는 다이달로스의 영어 식 발음이다. 다이달로스와 스티븐의 관계는 이미 충분히 설명한 것 같으니 생략하겠다.


 5. 스티븐의 심미론
 스티븐의 심미론은 이 작품뿐만이 아니라 조이스의 다른 작품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니 반드시 알아두어야 한다. 김종건 교수님은 친절하게도 그것을 간단히 요약해 주었다.

 미의 세 가지 인식 단계
 
 1. 전체성

 2. 조화

 3. 광휘
 
 
 이것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바구니를 예로 들겠다. '전체성'이란 바구니를 전체적으로 보는 것이고, '조화'란 바구니의 부분부분을 분해하여 보는 것이다. 그리고 '광휘'란 바구니 그 자체를 인식하는 것이다. 즉, 미의 인식 단계는 간단히 표현하자면 '보고 인식한다'라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은 미의 세 가지 형식이 있다.
 
 미의 세 가지 형식

 1. 서정적 형식: 예술가가 자신의 이미지(image)를 자기 자신과 직접적인 연관 속에 두는 것.

 2. 서사적 형식: 예술가가 자신의 이미지를 자기 자신과 남에게 간접적으로 연관시키는 것.

 3. 극적 형식: 예술가가 자신의 이미지를 남과 직접적인 연관에 두는 것.

 
 이렇게 나온 심미론 또는 예술론은 스티븐의 성장 과정에 대입시키면 매우 합당하게 받아들여진다. 바구니의 비유가 아니라 스티븐 그 자신의 성장 과정 자체가 비유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미의 인식 단계는 바구니의 비유를 통해 이해가 되리라고 생각하고, 미의 세 가지 형식이 스티븐의 성장 과정에 어떻게 대입되는지 한 번 살펴보자.

 "그의 유년 시절의 서정적 단계 동안에는 만사가 그 자신에게 연관되고 모든 표현은 자기 중심적인 개성에서 울려 나온다. 잇달아 그의 청년기에는 타인을 인식하고 그의 가족, 그의 친구, 그의 학교 선생님들과의 직접적인 연관 속에 살며 부모와 거리의 연인들 그리고 신부들과 어울려 살기 위해 스스로를 적응시키려고 노력한다. 마지막 단계에서 그는 극적 상황, 즉 한 사람의 행동예술가로 승화되는 것이다.(p.358)"

 그리고 최종적으로 스티븐이 정의한 '예술가의 정의'란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예술가는 창조의 하나님처럼, 그의 작품의 안에 또는 뒤에 또는 그 너머 또는 그 위에 남아, 세련된 나머지 그 존재를 감추고 태연스레 자신의 손톱을 다듬고 있는 거야(p.358~359)."

 이러한 정의는 현대 문학을 특징짓는 몰개성(沒個性)의 정의이기도 하다. 

 6. 진화와 출판
 원래 이 작품의 초고는 『영웅 스티븐(Stephen Hero)』였다. 그러나 조이스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 작품을 더 발전시켜 그 작품과 별개의 것을 창조해내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이 작품은 다른 모든 위대한 고전들이 그랬듯이, 출판 내역이 복잡하다.

 7. 스티븐과 제임스 조이스
 흔히 사람들은 스티븐과 조이스가 동격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스티븐과 조이스는 다르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완전하게 일치한다. 그러니 스티븐은 조이스의 반(半)자전적인 인물이라고 보아야겠다.

 8. 역사적 배경
 문학은 그 문학이 쓰여진 시대를 반영한다. 특히 조이스가 이 작품을 쓴 시기인 20세기 초반은 시대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알다시피, 20세기 초반은 격변의 시대였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모든 게 변하는 시대였다. 그래서 원래 있던 것과 새로운 것의 충돌이 벌어졌다. 조이스의 조국 아일랜드 역시 반란 당원들이 활발하게 움직여 분쟁이 자꾸만 벌어졌다. 그런 와중에서 개인의 정체성과 신의 존재감은 상실되어 갔다. 기근과 분쟁의 반복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자 문학은 이런 현실에 분노했다. 조이스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그는 이 책에서 '정체성을 잃은 개인의 방랑'을 그렸다. 또, 그의 대표작 『율리시스』는 신의 부재하에서 인간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지에 대해 다룬 작품이다. 이렇듯, 조이스의 문학은 당시 시대와 개인의 사상, 그리고 예술이 혼합되어 만들어진 하나의 걸작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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