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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타이거
페넬로피 라이블리 지음, 김선형 옮김 / 솔출판사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문타이거'라니? 

 신간평가단 홈페이지를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느낀 것이다. 조지 오웰의 『숨 쉬러 나가다』는 어느 정도 납득이 되었지만, 이 소설은 당최 본 적이 없다. 내가 4월 달에 주목 신간 페이퍼를 썼다고 했지만, 『문타이거』라는 제목의 책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편집자의 눈에 띄였고, 또 일종의 개정판을 내는 꼴이니 수긍하고 읽기로 했다. 

 제목이 꽤나 심오하면서도 단순하다. 직역하면 '달호랑이', 우리말로는 '모기향'을 의미한다고 한다. 모기향? 불에 서서히 타들어가면서 연기를 내는 신비한 도구. 마침내 모든 것이 재가 될 때에는 한 치의 여운 없이 모두 날아가버리는 그것. 왜 페넬로피 라이블리라는 작가가 '모기향'을 제목으로 삼았는지 의문이 든다.  

 나는 그 해답을 책 속에서 얻어냈다. 물론 소설 속에서는 문타이거가 주된 소재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그것이 사건의 실마리가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문타이거의 이미지가 내 머릿속에 각인되면서 서서히 작가가 '문타이거'를 제목으로 삼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마 많은 독자들이 소설의 첫문장에서 흥미를 느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적어도, 처음에는 이 소설이 재미없다고 말할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세계의 역사를 쓰고 있어요." 그녀가 말한다. 그러자 간호사가 말한다. "어머나, 세상에." 임종을 눈앞에 둔 늙은 노파가, 아무리 예전에 역사가라고 한들 어떻게 세계의 역사를 쓸 수 있겠는가? 아마 간호사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클라우디아가 묘사하는 역사란 그런 연대기적인 역사도 아니며, 그렇다고 모든 세계의 역사를 다루는 것도 아니다. 

 그녀의 역사는 마치 모기향처럼 어느 한 중심을 기준으로 주변에서 계속 순회한다. 결코 수평선으로 타들어가지 않는다. 세계의 역사와 그녀 자신의 역사가 모기향처럼 원을 그리며 순회하며, 서서히 그 '중심'으로 들어가는 방식. 그것이 바로 『문타이거』의 방식, 모기향의 방식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 중심이란 게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모기향의 크기에 비하면, 중심의 크기는 매우 작은 편이다. 하지만 아무리 모기향이 소용돌이치며 타 들어가도 그 중심에 가까워질수록 온화해지고 짙은 연기를 낸다. 역자는 모기향의 중심에 있는 것이 클라우다아와 전쟁 때 만난 병사 톰 서던과의 로맨스라고 주장한다. 아니, 주장이라기보다 실제로 그렇다. 이 소설에는 클라우디아 외에도 그녀의 친오빠 고든, 남편 재스퍼, 갑작스럽게 그녀의 손에 맡겨진 폴란드 교수의 아들 라솔로, 친딸 리사 등의 인물이 등장한다. 톰 서던은 소설의 초두에 잠깐 등장하고 세계의 역사의 무대에 사라진다. 하지만 그녀의 역사에서는 그가 영원히 살아있다. 

 사실 나도 이 소설이 그다지 재미있지는 않았다. 메모의 공간이 너무나 부족해서, 글씨 간의 여백이 조금 뺵뺵해서, 주석이 미주라서, 이런 외부적 핑계들과 클라우디아의 잡담식 역사가 너무 진부해서, 라는 내부적 핑계가 있다. 하지만 내가 뭐라고 하든, 그녀 자신의 역사에 대해 감히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마치 내 역사를 다른 사람이 침해할 수 없듯이 말이다. 

 작가는 말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고, 이미 결정된 운명은 멈출 수도 없고 방향을 바꿀 수도 없다고. 이게 바로 역사라고, 이게 바로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일이라고." 결국 내 기억에 남은 것은 재스퍼의 편지, 그리고 그의 전사 소식(16장). 어떻게 나의 역사와 클라우디아의 역사가 같을 수 있겠는가? 나는 내 역사에 충실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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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러 나가다
조지 오웰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그 생각이 딱 떠오른 건 새 틀니를 하던 날이었다." 

 소설은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조지 볼링은 이름보다는 '패티(뚱보)'라고 불리는 중년 남자다. 그는 두 명의 아이와 한 명의 아내를 둔 평범한 가장이다. 현재 그는 다른 가장들과 마찬가지로, 가정을 돌보고 돈을 벌어오는 일상의 과정으로 인해 숨 쉴 틈조차 없다. 그런데 그에게 한 가지 기회가 찾아온다. 뜻하지 않게 17파운드라는 돈을 얻은 것이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숨 쉴 기회'였기 때문에, 조지 볼링은 당황한다.  

 새 틀니를 하여 하루를 쉬는 바람에 조지 볼링은 거리를 여유롭게 누빈다. 하지만 그에게 전쟁의 불안함은 가시지 않았다. 영국에는 언제 폭탄이 떨어질지 모르는 참을 수 없는 불안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신문 광고 포스터를 보고는 과거로 회귀하기 시작한다. 

 이후, 2부는 볼링이 과거를 독백조로 회상하는 장면으로 전개된다. 그 이야기는 볼링의 이야기이자, 조지 오웰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가 유년시절을 보냈던 로어빈필드를 배경으로, 과거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무엇보다 그의 과거를 이루는 것은 '낚시'에 대한 경험으로, 그는 어른들에게 혼이 나면서도 즐거워 하며 낚시를 했었다. 책도 많이 읽으면서 교양도 쌓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보어 전쟁이 시작되면서 그의 아름다운 옛날은 사라져 간다. 전쟁 이후, 그의 일상은 숨 쉴 틈 없이 지나가버린다.  

 조지 볼링은 힐다라는 여성과 결혼한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그는 그녀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여자들은 결혼 후에 너무나 빨리 망가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결혼할 때까지만 해도 아름다운 처녀였던 힐다는, 2~3년이 지나자 추악한 아줌마가 되었고 그녀의 친구들과 함께 '속물'이 되었다. 그렇게 그는 오늘날까지 살아왔던 것이다.  

 마침내 그는 고향 로어빈필드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 곳은 "벽돌의 바다"와 "현대"라는 괴물에 묻혀 전혀 다른 곳으로 변해버렸다. 건물들뿐만이 아니라, 사람들마저 변했다. 그의 옛 연인 엘시는 완전히 늙어버린 노파로 변해있었고, 성당의 신부는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그렇다. 그도 변한 것이다). 또한, 어릴 적의 추억이 있었던 낚시조차 오염된 물로 인해 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못 역시 쓰레기 매립장이 되어 있었다. 그 때, SOS에 힐다가 위독하다는 보고가 들어온다. 볼링은 그것을 무시하고 사흘 더 있다가 가려고 했지만....... 마을이 폭탄에 맞자 미련 없이 그 곳을 떠나버린다. 결국 그가 돌아온 곳은 '숨 막히는' 일상이었다. 이것이 바로 조지 오웰이 묘사하고자 한 평범한 중년 남자의 비극이다.  

 

 모든 현대인들은 죽었다. 그들은 "변화를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한다. 언제까지나 같은 말, 같은 생각만 되풀이할 뿐이다." 그저 몸만 움직일 뿐이다. 한 마디로, 그들은 조이스가 『더블린 사람들』에서 묘사했던 사람들, 곧 '죽은 사람들'이다.  

 조지 볼링도 죽었다. '그는 죽었다.' ........ "하지만 누워 있지 않으려 하네." 현대는 사람들의 정신을 모두 먹어버렸다. "덕분에 나는 현대 세계를 깨물어보고 그게 정말 무엇으로 만들어져 있는지 알게 된 느낌이었다. 요즘 우리 사는 꼴이 그런 식이다. 모든 게 매끈매끈하고 유선형이며, 모든 게 엉뚱한 무엇인가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 하지만 본질에 다가가 단단한 그것을 깨물어볼 때 느껴지는 것, 그건 다른 무엇이다. 고무 같은 껍질에 든 썩은 생선이요, 입 속에서 터지는 오물인 것이다." 현대는 직접 겪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모든 사람은 각 시대의 '현대인'이니까. 

 현대라는 괴물은 볼링에게 절망만 남겨주었다. "벽돌의 바다"에 묻혀버린 과거의 로어빈필드를 묘사하는 장면은 참으로 참담하다. 현대는 개인에게 숨 쉴 틈을 주지 않고 몰아친다. 앞으로 또 다시 전쟁이 일어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낚시'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과거에 남겨진 순수한 상태를 상징한다. 결국 전쟁 끝에 남겨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현대라는 괴물은 한 명의 개인이 맞서기에는 너무나 거대하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은 『숨 쉬러 나가다』에서 전쟁의 장면뿐만이 아니라, 전쟁 그 이후의 장면까지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묘사하는 장면들은 『1984』의 장면들과 비슷한 것이 너무나 많다. "폭탄, 식량배급줄, 경찰봉, 철조망, 무슨 색 셔츠단, 슬로건, 거대한 얼굴 포스터, 침실 창 밖으로 갈겨대는 기관총." 이미 이 때부터 그의 작가 의식은 드러나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숨 막힐 텐데, 그 때에는 얼마나 숨이 막힐까? 그러나 그 일은 원스턴 스미스에게 맡겨두기로 하자.  

 조지 볼링이여, 당신이 A, B, C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면 이제 말하라. 원스턴 스미스가 만난 노인이 당신인지, 아닌지. 그 때에는 현대보다 더 무서운 현대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대가, 조지 볼링이 살던 현대보다 더욱 숨 막히다는 것을 이제 알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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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매달마다 느끼는 사실이지만, 5월에도 신간이 참으로 풍성했던 것 같다. 이 중에서 다섯 가지만 고르라니, 힘든 결정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내 분별력을 동원하여 주목 신간을 골라본다. 

 

 1. 낯익은 세상 

 

  『강남몽』 이후로 황석영이 다시 돌아왔다. 그의 귀환은 독자들에게 화려했지만, 작가에게는 또 다른 출발점이다. 또한, 소설의 내용 역시 화려하지 않다. 그것은 차라리 초라하고, 더럽다고 말할 수 있다. 전작인 『강남몽』이 화려한 도시 문명의 이면과 붕괴를 그려냈다면, 이번 신작인 『낯익은 세상』은 '쓰레기장'인 꽃섬과 시골(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도시인) 소년 딱부리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그가 본 꽃섬, 그것은 낯익은 세상이었을까? 새로운 세상이었을까? 그 진실은 소설 속에서 밝혀진다. 

 

 

 

 2. 미칠 수 있겠니 

  

 표지가 아주 낯익다. 정유정의 『7년의 밤』의 그것과 비슷하다. 은행나무 출판사의 신작이다. 놀랍게도 정유정의 소설과 내용이 비슷한 점이 종종 발견된다. 주인공 진이 7년 전에 일어난 살인사건과 현재가 서로 짝을 이루어가며 운명처럼 맞물려지면서 밝혀지는 진실들을 보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미칠 수 있겠니, 이 삶에. 결코 미칠 수 없는 이 삶의 희망을 다루고 있다. 그래, 나는 이런 희망적인 메시지를 담은 소설이 좋다. 

 

 

 

 3. 헬프 

  

 책의 커버에 쓰여져 있는 『헬프』의 경력이 매우 화려하다. 아마존에서 116주, 뉴욕 타임스에서 109주 연속으로 베스트셀러 기록을 했으며, 미국에서만 300만부 판매되었다고 한다. 소설은 마틴 루터 킹을 비롯한 흑인 지도자들이 흑인들의 시민권 운동을 벌이던 시기, 거대한 변혁의 운동이 보이는 시기인 1960년대의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소설의 주인공인 세 명의 여자는 이러한 변혁에 발맞추어, 인종 차별, 양성 차별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독자들은 웃고, 울고, 마침내 매혹된다. 소수의 인물의 노력이 세상이 바꾸는 그 아름다운 과정. 책 소개를 보니 마치 『트레버』를 보는 느낌이다. 『트레버』 이상일지, 이하일지 내가 직접 결정하겠다. 

 

 

 4. 언런던 

  

 'un-'은 형용사의 앞에 붙게 되면 형용사를 그 형용사의 뜻에 반대되는 뜻을 지닌 단어로 만들어버린다. 런던은 형용사가 아니지만, 'un-' 런던은 '런던이 아닌 세계'를 가리킨다. 감히 제목을 한국어로 번역할 수 없다. 제목이 의미한대로, 소설은 런던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런던과 전혀 다른 공간인 '언런던'에서 벌어지는 주인공의 모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언런던』은 암울한 영국의 현실에 대한 경고와 비판을 담고 있는 소설이라서 가볍게 넘어가서는 안 될 것이다. 소설의 모티프도 1952년 런던에서 일어났던 스모그 참사 사건을 소재로 삼았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아가, 우리는 지금 나의 도시를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5.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피렌체의 여마법사』와 이 책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겪었다. 살만 루슈디의 그 소설 역시 만만치 않는 대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나는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택했다. 그를 기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암 투병을 하며 집필했다고 한다. 나는 사람들이 이 소설을 읽기 전에 작가의 암 완치를 기원하기를 바라고 있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지난 과거의 기억을 잃은 한 남자, 'K'의 기억 찾기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기억이 흐릿해지면서 그가 서 있는 공간까지 무너져내리기 시작한다. 이런 아이러니하고 부조리한 카프카적 요소가 작품을 이룬다. 청년을 일깨우는 소설이다. 

 

 

 

 이번 달에는 유난히 국내 소설 중 주목 신간이 많았다. 아마 이번 달에는 국내 소설 한 권을 받을 것이다. 나는 그 책이 무슨 책인지 찍어보며, 기다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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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도 오늘로서 끝이다. 하지만 The end is only the beginning. 끝은 곧 시작이다. 또 다른 시작을 위해 나는 마무리한다. 그 전에 5월에 출간된 책들을 돌아보고 싶다. 

 

 

 아마존에서 116주, 뉴욕 타임스 109주 연속으로 베스트셀러 자리에 오른 작품이라고 한다. 사실 책갈피에 써져 있는 것들은 나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베스트셀러이면 어떨 것인가, 결국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가 중요한 것인데. 어쨌든 2년 동안 베스트셀러를 했다는 것은 '소설의 재규정'이라는 찬사가 크게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듯 하다. 헬프, 즉 '도움'이라는 제목의 이 소설은 분명히 나의 눈길을 끄는 책이다. 

 

  

 이번에는 국내 소설들을 살펴보고 싶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영원한 청년 작가라고 불리는 최인호 작가가 암투병을 하며 지어낸 소설이다. 소설은 제목에 암시되어 있듯이, '낯익음'과 '흐릿함', 즉 잃어버린 기억에 대해 다루고 있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잃어버린 핸드폰을 찾기 위해(영화 <핸드폰>을 연상시킨다)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기억들과 진실들을 추적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카프카의 소설의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K'는 작품의 또 다른 부조리를 더할 것이다.

 한편, 『미칠 수 있겠니』는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김인숙 작가의 새로운 장편소설이다. 책갈피에는 '미칠 수 있겠니, 이 삶에'라는 문구가 써져 있다. 어디선가 표지가 낯익다 했더니, 『7년의 밤』과 비슷한 부류의 소설이었다. 게다가 『7년의 밤』처럼 '7년' 사이에 일어난 살인사건에 대해 다루고 있다. 놀라운 유사성을 보여서 더 흥미롭다. 

 

     

 오랜만에 '글쓰는 법'에 관한 책이 나왔다. 『첫 문장의 두려움을 없애라』는 딱 나를 위한 책 같다. 나도 첫 문장을 쓰는 걸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쓸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 이유가 아니라, 표현하는 법을 잘 모르겠다. 나는 이 책이 나의 그 두려움을 해결해줄지 내심 기대하고 있다. 『중년에 쓰는 한 권의 책』은 '인생의 제 2막'을 대비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여진 책이다. 저자는 인생 후반기에 권하는 일로 '글쓰기'를 권하고 있다. 일단 저자가 내세우는 원칙은 '무조건 써 봐라'라는 것이다. 과연 200쪽 안에 어떤 내용이 펼쳐질지 궁금하다. 

  

  

 나는 선집보다 전집을 좋아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전집(complet-e work-s)'은 영단어에 암시되어 있듯이 '완전'하기 때문이다. 전집이 완전하다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모든 작품을 포함하고 있어서 한 작가의 작품을 모두 볼 수 있는 최고의 기회이다. 그래서 '단편전집'이라는 말에 끌린다. 아서 클라크라는 SF 거장의 104개의 단편을 모두 즐겁게 맛보시길. 나도 기회가 된다면 시도해보리라. 

  

  

 새로운 시리즈가 등장했다. 그런데 약간 '진부하게만' 여겨졌던 문학 전집이 쏟아지는 와중에, 그 분야가 전혀 다른 시리즈가 등장했다. 그것이 바로 한겨례출판과 점필재연구소가 공동으로 기획한 '한겨례역사 인물 평전'이다. 내가 여기서 관심이 가는 것은 그 평전의 종류도 안중근, 김좌진, 김구와 같은 사람들 대부분이 인정하는 '위인'들만 다루는 게 아니라 '이완용', '최남선' 같은 반역자이자 매국노 역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새로운 차별점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역적'으로만 보았던 이들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철학이라는 학문이 탄생하는 동시에 지금까지도 인류를 괴롭히고 있는 질문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나아가서 '나는 무엇인가?', 또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넘어가게 되어 골치 아프다. 그래서 마크 트웨인은 문학이라는, 상대적으로 철학보다 가벼운 학문을 사용하여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고자 한다. 물론 『캉디드』와 같은 철학소설에 들어가긴 하지만, 그가 책 속에서 펼쳐놓은 주장이 워낙 독특해서 나는 '문학' 쪽에 이 책이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오, 스파르타쿠스! 『반역(Rebellion)』을 번역하고 있는 나를 아주 기대하게 하는 책이다. 스파르타쿠스는 반역자의 상징으로, 부정한 세력에 맞서 싸우는 검투사들의 투쟁을 이끄는 존재로 묘사된다. 그는 역사에 기록된 이후, 작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으며, 일부 작가들은 그의 전쟁을 소설로 펼쳐놓기도 했다(이소영 작가의 『반역』도 그런 부류에 속한다). 미국에서는 드라마로 나오기까지 했다. 이 정도면 자연스레 대중들은 스파르타쿠스의 전쟁을 알고 싶어할 것이다. 그래서 그의 반역을 '역사적으로' 바라보는 책들도 있다. 특히나 이 책은 스파르타쿠스와 그의 전쟁을 여러 문헌에 짤막하게 언급되어 있는 그를 답사와 분석을 통해 완전한 역사로 되살려 냈다. 이 역사서를 통해 나는 스파르타쿠스를 서양의 역사에서 그냥 간과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남긴 정신이 오늘날까지도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광대 샬리마르』로 유명한 살만 루슈디의 새로운 작품 『피렌체의 여마법사』가 출간되었다. 주로 '두 상반된 세계'의 만남과 충돌을 다루고 있는 그의 소설은 여기서 그것을 한데 묶어놓았다. 피렌체는 중세 시대의 두 세계 중 한 세계. 전장은 바로 그것이다. 충돌은 이미 시작되었다. 

 『롤리타』의 작가 나보코프의 처녀작인『절망』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중 하나로 들어갔다. 문학전집, 하니까 다른 출판사의 문학작품도 생각난다. 예컨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1번, 오르한 파묵의 『하얀 성』? 공교롭게도 두 작가 모두 아시아권 작가다(루슈디는 인도 출신의 영국 작가이다). 

  

  

 『주석달린 월든』에 대해서는 내가 이미 다 말했다. 그러니 여기서 똑같은 말을 두 번 할 필요는 없다. 그나저나 나는 한국에 버지니아 울프 학회가 있었다는 것에 놀라고, 또 기뻤다(사실 내가 주의깊게 보지 않은 탓이지만). 이번에는 울프의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이다. 소설가에 대해서, 우리는 소설에서 그의 의식을 보고, 에세이에서 그의 생각을 볼 수 있다. 그래, 이번엔 버지니아의 생각을 한 번 들어보자. 

 내가 『내 이름은 망고』에 주목하게 된 것은 큰 이유가 없다. 단지 이 책이『완득이』, 『위자드 베이커리』, 『싱커』와 같은 주옥같은 청소년 문학을 배출한 창비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이 책을 많은 청소년들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으면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중 최초로 슬픈 얼굴을 내놓기 때문이다. 지금은 조용하지만, 그래도 기대해 본다. 위의 세 작품들도 처음엔 그랬으니까. 그리고 어차피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얼마나 청소년들의 마음을 움직이느냐다. 

     

 여러모로, 이번 달에는 유난히 외국소설이 많이 출판된 것 같다. 『죽음의 선고』는 모리스 블랑쇼 선집 첫 번째 시리즈(이것도 시리즈군)로, 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준 그의 언어관과 문학관을 엿보게 할 수 있는 걸작이다. 『언런던』은 일종의 디스토피아 소설로, 런던과 정반대의 세계, 그러나 어느 면에서는 런던과 비슷한 un-런던에 대해 그리고 있다. 언젠가 '언서울' 같은 작품이 우리나라에서 출판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지금 살고 있는 세계를 반성하게 하니까 말이다. 작가의 주제의식이 전해졌으면 좋곘다. 마지막으로 『윙스』는 로맨스 판타지라는 (나에게는) 낯설고 새로운 장르인데, 왠지 표지가 마음에 든다.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하니, 언젠가 다시 한 번 만나게 될 책이겠구나. 그 때까지 널 기억할지, 노력해볼게. 

  

 조정래다. 나에게는 조정래가 『허수아비 춤』의 작가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태백산맥』의 작가, 『한강』의 작가, 『아리랑』의 작가 등이겠지. 사실 소설은 1999년, 그의 전집에 있었던 한 단편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작가의 개작을 통해 다듬어진 장편으로 내 눈 앞에 다시 나타났다. 개작의 힘이 얼마나 큰지(『장마』라는 작품이 최고지만), 조정래의 작가의식이 얼마나 깊은지 다시 한 번 확인해보자. 그가 펼쳐놓은 '슬픈 연극'들을 맛보자.

 

 

 

 

 

 이제야 내가 왜 힘을 들여서까지 책들을 소개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이렇게 해 놓으면 한 달 동안 내가 관심을 가졌던 책들을 모두 볼 수 있고, 나의 관심 정도를 알 수 있다. 무엇보다도, 나도 몰랐던 책들을 재발견할 수 있어서 기쁘다. 마지막으로 여기에 들지 못한 많은 책들에게(특히 『북학의』에게)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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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인내하는 자만이 달콤한 음악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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