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프 시선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알렉산더 포프 지음, 김옥수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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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확실히 영화를 보든, 소설을 보든 사전 정보 없이 보는 것에 더 여운을 느낀다. 물론 아무런 정보도 없이 읽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알렉산더 포프가 어느 시대에 활동했고, 토리당 소속이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각 시에 담겨 있는 의미까지 알 수는 없었다. 해설을 보고 나서야 그가 왜 이런 식으로 시를 썼는지, 이런 내용을 담았는지 이해하게 된다. 나의 부족한 문학적 역량이 어느 정도 보완되고 나니, 그가 꽤 뛰어난 시인임을 알았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포프가 새로운 금융자본주의 시대의 도래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는 것이다. 그가 속한 토리당은 일종의 보수 정당이었기에, 그가 시대의 변화와 그것을 주도하는 새로운 정부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그는 시의 소재들로 귀족에 대한 찬사와 칭찬, 안정된 사회에 대한 소망 등을 담았다. 시의 구조 역시 2행 연구 형식으로 동일성과 조화, 균형을 추구했다. 이러한 해설의 내용들은 나에게 꽤 좋은 정보를 주었다. 나는 그의 시선을 보면서, 왜 그가 이렇게 이 인물들에게 헌정시를 바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 노력들이 모두 기존의 사회 질서를 곤고히 하려는 의도였다니, 시 내부에서는 절대 드러나지 않는 사실들이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정면으로 맞선 포프의 노력은 오늘날에 이르러서 다시 조명된다. 자본주의에 대한 그의 풍자적 시선은 오늘날의 인류에게 성찰할 지점을 제공한다. 그의 대표작인 「윈저 숲」이 그러한 경우인데, 마지막 부분인 "우리의 영광은 지구의 먼 끝 지역을 바라볼 것이며, 신세계는 구세계를 보기 위하여 배를 진수할 것이다"에서 그는 무역과 항해로 전 세계에 영국의 미래를 꿈꾼다.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은 사실상 식민지에 대한 주도권을 얻으려는 전쟁이었고, 토리당은 전쟁이 끝난 후 맺는 조약으로 자유무역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포프에게는 그 소식이 상당히 희망적이었으리라.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 「윈저 숲」의 마지막 부분은 마냥 희망적이지 않다는 것이 드러난다. 포프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당대 시대의 변화에 맞선 행위가 오늘날에 재평가된 것이다. 


 포프는 상당히 정치적인 시인이다. 그래서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시대를 비판한 시인들에 비해, 그 평가가 엇갈리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과거에 문학은 대부분 귀족의 전유물이었고, 권력 계층의 입장을 대변하는 목소리가 분명히 필요했다. 그리고 당시에는 이해되지 않았던 구절들이 지금에 와서는 납득이 되듯이, 당장의 언행으로 어떤 사람의 행적을 판단하는 일은 다소 무모하다. 스위프트 역시 정치적으로 굉장히 편향되어 있으나, 지금의 사람들에게는 『걸리버 여행기』에 담긴 불멸의 풍자로 기억되지 않은가? 언젠가 알렉산더 포프도 그러한 통찰력으로 조명되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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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골동품 상점 (양장)
찰스 디킨스 지음, 이창호 옮김 / B612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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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라이트는 역시 넬의 죽음 장면이 아닐까 싶다. 고결한 주인공을 죽이는 결정이 참 어려웠을 텐데, 디킨스의 대담함에 찬사를 보낸다. 그녀의 죽음이 극을 완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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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류 속의 섬들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동훈 옮김 / 고유명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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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작가에게는 그 사람을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주제들이 존재한다. 그중에서 헤밍웨이는 어떤 작품을 읽느냐에 따라 주제말이 바뀌는 흥미로운 작가이다. 그의 단편을 읽은 사람은 헤밍웨이의 투우, 사냥, 또는 열정을 읽는다. 헤밍웨이의 반전 소설이나 초창기 작품들을 본 자들은 로스트 제너레이션과 전쟁을 연상한다. 그리고 그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노인과 바다』와 『에덴의 동산』, 그리고 유작인 『해류 속의 섬들』을 읽고 나면 "헤밍웨이"와 "바다"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주제임을 간파하게 된다. 불꽃처럼 살다간 그의 생애는 마치 바다 위의 격렬한 파도처럼 독자에게 몰아친다. 그의 독특한 문체와 스타일은 많은 독자에게 읽혔고, 좋든 나쁘든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내가 헤밍웨이의 소설들에 대해 느끼는 것은 언제나 동일하다. 그는 삶의 어떤 순간을 강렬하게 포착한다. 그래서 그것이 가공된 이야기가 아니라 그 시대에 살았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정교하게 설계된 사소한 장치들이 간결한 문체 속에서 맞물려, 독자들에게 감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줄거리 요약이 무의미하다. 특히, 『해류 속의 섬들』은 단순히 줄거리를 파악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토머스 허드슨과 그 일행들이 나누는 대화들에 주목해야 한다. 대화 속에 각 인물의 개성과 작품의 정서가 녹아 있다. 총 3부로 되어 있는 이 소설에서 가운데에 해당하는, '쿠바에서'는 마치 롱테이크씬처럼 등장인물들의 소통이 죽 이어져 있다. 나는 이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장소를 옮겨 가며, 삶을 주고받는 그들이야말로 해류 속의 섬들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출판사였다. 고유명사라는 생소한 이름의 출판사였는데, 책을 출간하는 취지도, 디자인도 전부 마음에 들었는데 오탈자가 상당히 많았다. 한두 개면 분량을 생각했을 때 넘어갈 만했지만, 몰입하려 할 때마다 눈에 띄는 오타가 있는 것은 매우 아쉽다. 만약 작품의 2쇄가 나온다면, 조속히 이 오탈자들이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작품의 전체를 훼손할 만큼 치명적이지는 않았지만, 편집자들이 신중하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어쨌거나 나는 헤밍웨이의 마지막 작품이라거나, 『노인과 바다』를 뛰어넘는 작품이라는 평들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별다른 기대 없이 가볍게 읽는 소설들도 필요하니까.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여러모로 아직도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다. 그의 생애든, 작품이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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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치메이커스 - 4차 산업혁명 시대, 플랫폼 전쟁의 승리자들
데이비드 S. 에반스 & 리처드 슈말렌지 지음, 이진원 옮김 / 더퀘스트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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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에 매몰되는 경우가 있다. 물론 피상적인 것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그 너머의 원리를 파악하지 못하면 세상을 이해하는 데에 훨씬 많은 노력이 소요된다. 『매치메이커스』는 그 '별거 아닌 것'을 고안하고, 실행하고, 확장하여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다면 플랫폼은 핵심적인 사업들 중 하나로 부상했고, 당장 예시를 들라고만 해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소셜 미디어와 유튜브, 넷플릭스와 같은 비디오 플랫폼, 또는 우버나 에어비앤비와 같이 실생활에 연결되는 플랫폼 등 그 종류와 형태도 다양하다. 물론 이들 중 모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이 책은 그들이 성공해온 비결을 주목한다. 당연히 그 명암에 가려져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플랫폼도 소개한다. 


 그렇다고 『매치메이커스』가 다면 플랫폼을 새로 만들어서 번창하라는 내용을 주창하는 자기계발서는 아니다. 이 책은 4차 산업혁명, 즉 모든 분야가 서로 연결되고 통합되는 시대에서 그 흐름을 적극적으로 이끌고 있는 매치메이커스들의 전략을 주목한다. 그들이 시작한 사업이 어떻게 성장했고, 효율적으로 유지되는지,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세상의 흐름이 두 저자가 밝히고자 하는 내용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출간된 지 약 7년이 지난 이 책을 지금 읽어도, 다면 플랫폼의 중요성이 훨씬 더 강조된 오늘날에도 독서의 의의는 남아 있다. 넷플릭스와 유튜브의 엄청난 성장을 예견한 그들의 안목은 주목할 만하다. 물론 그때만 해도 코로나19의 발생을 예상하지는 못했겠지만. 


 내가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은 『매치메이커스』의 마지막, 저자가 정리한 다섯 가지 메시지들이었다. 매치메이커들은 지난 1000년 동안 존재해왔고, 그들 중 일부는 지난 수년 동안 '공유경제'의 일부였다. 다시 말해, 플랫폼을 만들어서 연결시키는 작업은 인류 역사상 늘 있어왔고, 매치메이커스들은 현대의 정보와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이용하여 그것을 사업으로 발전시킨 사람들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들의 중요성과 다면 플랫폼의 역할은 시간이 흐를수록 커질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치 세상을 하나로 연결시켜 발전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매치메이커들은 서로 대립하는 관계이다. 전통시장과 대형마트의 끝없는 분쟁이 대표적인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전통시장도, 대형마트도 다면 플랫폼의 일종이지만, 매치메이커들이 관리하는 방식의 차이로 인해 경제력이든 전략이든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다양한 양상의 갈등을 지혜롭게 해결하는 것도 앞으로의 시대가 떠맡아야 할 숙제이다. 


 혁신적인 플랫폼은 언제든 세상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다. 소셜 미디어와 유튜브, 우버와 에어비앤비가 없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저마다 잘 살아갔다. 피상적인 세계에 머물러 있다면, 현재에 안주하게 된다. 어떠한 현상이나 트렌드가 발생하면, 반드시 그 이면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왜 사람들은 이토록 연결되길 원하는가? 인류 역사상 이렇게 간절히 모든 것을 하나로 이으려 하는 시도가 있었을까? 단순히 편리함을 위한 것이라고 해석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기술과 돈이 투자되고 있기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불필요한 심리학이 아닌, 신뢰할 수 있는 과학이다. 나는 다면 플랫폼의 공간적인 활용을 기대해 본다. 전통시장이 그러했듯, 아고라 광장이 그러했듯, 우리의 삶과 생각이 한 장소에서 공유될 수 있다면! 아직은 먼 이야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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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파리 - 정지돈의 20세기 파리 다시 쓰기 FoP Classic
쥘 베른 지음, 김남주 옮김 / 알마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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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는 자신의 묘비명을 남기지 않는다. 『20세기 파리』의 마지막 장면인, 수많은 현재의 죽음을 기리는 부분에서 작가는 쥘 베른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다. 그 부분이 나에게 꽤나 흥미로웠다. 실존 인물들을 애써 기억하려고 이름을 나열하지만, 정작 자신이 들어갈 자리는 없다는 것이 말이다. 물론 이 작품이 쥘 베른이 과학 소설을 시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창기의 것이라고 해도, 자신의 이름이 기억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은 사뭇 자조적이다. 물론, 시가 멸종한 시대에 시를 쓰려고 하며 사라진 시대의 문인과 음악가들을 찬미하는 주인공 미셸이야말로 베른 자신의 초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한 열정의 소유자도 추위 속에 사그라지는 운명이 서글프다.


 19세기의 격변하는 시대에 쥘 베른은 100년 후의 미래를 상상했다. 그리고 작품이 쓰인 지 15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그의 예측이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 몇 가지 구절은 섬뜩할 정도이다. "사람들의 바쁜 듯한 태도, 서두르는 몸짓, 미국인들 같은 성급함을 보면, '자본의 악마'가 휴식도 감사도 허락하지 않고, 그들을 끊임없이 앞으로 떠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는 구절은 실로 정확했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사람들의 안식은 커녕 빠른 속도에 자신을 내맡긴다. 뛰어가는 것으로도 모자라, 버스와 지하철, 자동차와 비행기에 몸을 던지지 않으면 뒤처지는 존재가 된다. 보험과 저축 제도가 어느 때보다 발달했지만, 안정적인 생활에 대한 불안은 어느 때보다 크다. 그렇기에 마음은 점점 '실용적'으로 변한다. 효율과 이익이 발생하지 않으면, 그것의 가치는 전혀 인정받지 못한다. 마치 미셸을 비난하는 탁월한 실용주의 가족처럼, 모든 것의 쓸모를 따진다. 


 빅토르 위고, 뒤마 등의 대문호들이 한 세기만에 잊혀지고, 실용적인 제목의 책들과 시들이 유행하는 것은 꽤 유쾌하다. 한편으로는 씁쓸한 마음도 든다. 이제 사람들은 책도 읽지 않기 때문이다. 베른은 자신이 예견한 미래의 암울한 면이 확대되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통탄해 할까? 마침내 인간조차 실용적인 면으로 분석되어, 제 몫을 다하지 않으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존재로 인식되는 세상이다. "오늘날에는 여러 분야에서 기계가 훨씬 유리한 조건으로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고 있었다"는 구절에서 우리는 절망을 느낀다. 일평생을 가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끝에는 극복할 수 없는 인간과 기계의 차이가 있다. 신체적 역량과 기술적 탁월함에서 기계에게 밀린다면, 무엇이 나의 인간됨을 보장할까? 쥘 베른은 사랑과 연대의 가능성을 암시하지만, 뤼시와의 사랑 역시 이루어지지 못한다. 젊은이의 열정은 강추위 속에 그대로 매장된다. 


 많은 것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아마 21세기가 끝날 즈음에는, 기존의 가치관과 사상은 완전히 옛 것이 되리라. 어쩌면 나는 지금의 세상조차 '사라진 시대'로 분류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돌아볼 필요도 없는, 차라리 잊어버리는 것이 나은 세상 말이다. 그렇게 시대는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다. 아니, 달려가는 것은 속도에 뒤처진다. 유례 없는 진보로 솟구쳐 오르는 로켓 또는 다시 떠오를 수 없는 잠수함에 탑승한 상태다. 이 시대에 개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대단한 능력보다는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어떻게 이 세상을 견뎌내야 하는지는 각자에게 달린 것이다. 어떠한 지식도, 다른 누군가의 조언도 생존을 장담하기 어렵다.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설령 모두에게 구식이라고 비난을 받는다 해도, 미셸과 위그냉은 자신의 신념을 지켰다. 사라진 시대의 독자들이여, 다가올 미래를 떠올려 보자. 그 끝에서 당신은 어떤 표정으로 서 있을까?

"자신의 글을 써서는 안 된다는 거야!"
"그건 왜죠, 삼촌?"
"그건 말이다, 얘야, 책을 읽다 보면 이 위대한 작가들을 본받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되거든."
"그게 왜 나쁜가요?" 청년이 분개해서 소리쳤다.
"길을 잃게 되거든." - P173

과학은 벼락을 다스리고 거리를 뛰어넘고 시간과 공간을 여유 있게 넘나들고 신비한 자연의 힘을 통제하고 우주를 지배하는 듯했지만 추위라는 무적의 강적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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