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66
허버트 조지 웰즈 지음, 임종기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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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버트 조지 웰스(Herbert George Wells)는 번뜩이는 상상력 뒤에 당대 사회의 모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작가이다. 자전적 소설인 『킵스』(Kipps)에서는 신사(gentleman) 계급의 허울을 폭로하고, 『모로 박사의 섬』(The Island of Doctor Moreau)은 생체 실험 및 동물 학대를 비판하며, 『우주 전쟁』(The War of the Worlds)은 제국주의와 일상적인 삶에 매몰된 사람들에 대해 경고한다. 그의 과학적 상상력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의 유무는 어떻게 보면 크게 중요하지 않다. 웰스에게 특별한 소재란,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담아내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과학 소설(Science Fiction)의 본질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이다. 과학적인 장치들이 말이 되면 그 나름대로 섬뜩한 일이다. 소설 속의 일이 언제든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공포는 상상 이상이다.


 『투명인간』(The Invisible Man)도 "인간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존재도 인간에 포함될 수 있는가?"에 대해 묻고 있다. 그리핀은 자신만의 고유한 방법으로 투명인간이 되는 데에 성공하지만, 투명화를 해제하는 법을 몰라 그대로 살아간다. 곧 그는 한계에 봉착한다. 옷을 구하지 못해 추위에 떨고, 물과 음식을 얻기 위해 곳곳을 전전한다. 사람들과 마차들은 그를 보지 못하고 지나치지만, 투명인간은 그들에게 화낼 수조차 없다. 어차피 그들은 영원히 남자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에 투명인간을 맞닥뜨린 사람들이 그를 유령 또는 목소리로 받아들인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결국 혼자서 살아남을 수 없음을 깨달은 그리핀은 폭력을 써서 마블을 자신의 시종으로 삼지만, 마블은 끊임없이 남자로부터 도망치려 한다. 또한, 자신의 조력자가 될 것 같았던 켐프는 끝내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후반부는 켐프의 시점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독자들은 투명인간의 죽음에 안심하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함이 남는다. 무엇이 그 평범한 과학자를 폭군으로 만들었을까?


 돌이켜 보면, 투명인간의 이야기는 신화에 이미 언급된 바 있다. 하데스의 모자를 쓰면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고, 플라톤이 쓴 『국가』에는 기게스의 반지를 낀 자가 투명해진다. 후자의 경우, 평범한 양치기였던 기게스가 끝내 왕국을 찬탈하는 결말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 작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극중 그리핀은 공포정치를 이용해 사람들을 통제하겠다고 선언하는데, 우리가 섬뜩함을 느껴야 하는 지점은 여기에 있다. 웰스가 창조한 투명인간은 다른 사람을 볼 수 있지만, 투명하지 않은 사람은 그를 볼 수 없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자신들이 감시당하고 있다는 생각과 언제든지 그에게 죽을 수 있다는 불안에 시달린다. 그리핀은 정치의 특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실제로 살인도 불사하게 된다. 극한의 생존 위기와 사람들의 공포감이 그를 폭군으로 만들었지만, 그는 그 심리를 이용하여 마을을 지배하려 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음식과 잘 곳을 구하는 불쌍한 인물이 계속되는 억압을 거쳐 서로를 사냥하는 지경에 이른다. 웰스는 이러한 현대의 비극, 현대 신화를 훌륭하게 매듭 짓는 몇 안 되는 작가이기도 하다. 


 다양한 매체들로부터 익히 들어온 투명인간이라는 소재, 그리고 『투명인간』이 보이지 않는 인간을 묘사한 최초의 작품이 아니라는 점에서, 21세기의 독자들이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이야기의 힘에 있다. 이 짧은 소설에는 강렬한 힘이 있다. 불완전한 시야와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서 오는 긴장감은 과학 소설임에도 스릴러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소재의 과학적 설득력은 다소 빈약하지만, 웰스는 자신이 설정한 투명인간의 장점과 단점을 잘 알고 있었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이야기에 사용한다. 독자는 출간된 지 120년 가까이 된 이 소설로부터 장르문학의 쾌감을 오롯이 누릴 수 있다. 한편, 이야기와 소재의 결합만으로 논의할 수 있는 거리가 무궁무진하다는 점에서 『투명인간』은 과학 소설의 아버지라 불리는 웰스의 작품들 중에서도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한다. 


 어떤 컨텐츠는 참신한 소재로 시작해서 다소 허무하게 끝나는 경우가 있다. 이때 관객이 느끼는 감정은 실망감보다는 씁쓸함에 가깝다. 참신한 소재는 반드시 익숙한 이야기로 끝나게 되어 있다. 단지 시작하는 지점이 달라서 "이번에는 특별함을 유지하지 않을까?"라고 기대할 뿐이다. 그러나 소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결국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여전히 이야기의 힘이다. 현재 생산되고 있는 무수한 컨텐츠들이 단순한 '우화'나 '신화'로 종결된다면, 그것들은 힘을 잃는다. 왜 창작자는, 예술가는 정신적, 물질적 고난 속에서 이야기를 짜내는가? 그것이 미약하게나마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설명되지 않는 동기야말로 위대한 서사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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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텍 SF 어워드 수상작품집 No.1 - 2021_2022
김한라 외 지음 / 아작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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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이 압도적으로 발전한 이 시대에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나요?"

 한 학생이 물었다. 평소에 과학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학생이어서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 의외였다. 나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묻고 싶구나. 문학은 무엇을 해 왔을까? 그것이 어떤 대단한 업적을 이룬 적이 있을까?"

 "결정적으로 기여한 적은 없죠. 언제나 보조하는 역할이었어요." 

 역사에 관심이 많은 다른 학생이 끼어들었다. 

 "딱히 반박하지는 못하겠구나. 그동안 문학은 과학이랑은 전혀 상관없는 분야로 여겨졌거든. 문학은 증명하려고 하는 순간, 그 의미를 잃는 학문이야. 반대로 과학은 증명하고 인정을 받아야만 가치를 얻어. 그렇기 때문에 과학에 비해 문학이 쓸모없어 보일 수도 있어. 충분히 그럴 수 있어." 

 내가 대답했다. 어느새 모든 학생들이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나는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시중에 과학소설들이 참 많이 출판되었어. 내가 최근에 읽은 책은 포스텍 SF어워드에서 수상한 단편소설집인데, 너희에게 소재를 소개할게. 머리 이식, 차원실험연구소, 자동 노동, 우주 청소기, 가상 세계, 언어고고학자, 외딴 섬 뉴런, 이세계로 통하는 구멍, AI 면접, 축소 기계, 광합성을 하는 인간. 어때? 재미있어 보이지 않아?"

 "몇 개는 처음 듣고, 몇 개는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아요." 

 처음에 질문했던 학생이 대답했다. 

 "바로 그거야. 우리는 어느새 과학소설의 소재에 익숙해져 있어. 세상이 그만큼 인간의 상상대로 움직였기 때문이야. 조만간 차원실험, 자동 노동, 우주청소기, 그리고 온라인 면접에 대해 논의하는 시기가 오겠지.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참 작가들이 유쾌하다는 거였어. 기술의 발전이 언제나 바람직한 현상만 가져오지는 않잖아. 소설들은 그 양면성에 대해 무겁게 다가가기보다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접근해. 그래서 오히려 더 생각할 거리를 주지." 

 "선생님은 아름다운 게 좋아요, 웃긴 게 좋아요?"

 "나는 전달에 너무 힘을 주면 부담스럽더라고. 심사평에도 나왔지만, 이야기는 설득하려거나 논평하려 하는 게 아니라 그대로 보여질 때 가장 효과적인 법이야. 그래서 「잇츠마인」이랑 「리버스」가 기억에 남아. 두 작품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기숭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태도야. 처음에는 그 효용성과 부작용에 대해 걱정해서 시도하지 않다가, 주변 사람들이 모두 사용하니까 덩달아 쓰게 되거든. 나중에 가서는 자동 노동 서비스와 제2의 인생을 사는 가상 세계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이 시대에 뒤처진 사람으로 취급 받아. 변화하는 시대에 휩쓸려야 하는 게 우리의 숙명일까? 이런 생각이 되게 많이 들었어." 

 "의외네요."

 역사를 좋아하는 남학생은 무미건조하게 반응했다.

 "내가 어렸을 때는 휴대전화가 없어도 친구들과 잘 어울렸어. 이제는 스마트폰이 없으면 친구들과 노는 건 물론, 일상생활에도 지장이 많지. 어린 학생들도 기술에 의지해야 숙제를 해 올 수 있고, 다른 학생들과 효율적으로 소통할 수 있어. 이게 나쁘다는 게 아니야.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그 변화가 부담스러운 사람들도 있겠지만, 혼자 외딴 섬처럼 떨어져 있으면, 그대로 고립되고 말아."

 "시간이 멈춘 사람들처럼요?" 

 "그렇지." 

 나는 처음 질문했던 학생에게 대답하고 나서 잠시 멈칫했다.

 "「어떤 사람의 연속성」을 읽은 거야?" 

 "아뇨. 차원실험연구소라는 단어를 듣고 나니 다양한 생각이 났어요. 분명 시간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겠다, 추측이 되더라고요."

 "과학 별로 안 좋아하지 않아?"

 "시간과 차원에 관한 영상을 우연히 봤어요. 갑자기 궁금해지더라고요."

 "「어떤 사람의 연속성」은 차원실험을 하다가 시간이 정지한 재난에 대한 이야기야. 주인공은 4차원을 넘나들 수 있는 존재고. 알고 보니 시간이 멈춘 게 아니라, 더 높은 차원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3차원인 이 세상의 입장에서는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인 거래. 차원에 대한 접근이 정말 흥미로운 소설이었어."

 "그런 소설들이 현실이 되면 어떻게 될까요?"

 대화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은 나와 이 학생뿐이었다. 

 "놀랍겠지. 단편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꽤 단순하게 묘사돼. 놀랍도록 멍청하게. 하지만 현실은 복잡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대응할 거야. 이 소설들은 단지 가능성만 보여줄 뿐이야. 유쾌한 상상을 우리가 이루는 순간, 변화는 시작돼. 설령 증명하지 못하더라도." 

 "그냥 상상만 해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단 말이에요?" 

 "확대 해석은 금지야. 문학은 받아들이는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천차만별이야. 위대한 이야기는 없어. 위대한 독자만 있지. 너는 어떻게 할래?" 

 "도전해 볼게요. 읽은 책이 많지 않아서 자신은 없어요."

 "그래, 이제 공부해라."

 수업 시간이 거의 끝나갔다. 딱히 후회는 없었다. 앞으로도 이런 질문을 받으면, 성심을 다해 대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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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트위스트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9
찰스 디킨스 지음, 유수아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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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아이의 약함을 이용하기에 바쁘다. 찰스 디킨스 작품의 경향을 모두 담고 있지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올리버 트위스트보다는 그를 둘러싼 어른들의 이야기에 가깝다. 다만 그 특유의 재치와 풍자는 어느 작품에서나 매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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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 드 파리
빅토르 위고 지음, 송면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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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는 변하지 않는 가치(대성당)와 변화하는 시대(민중)의 대립이다. 빅토르 위고는 시간이 만들어 낼 승리를 예견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카지모도와 에스메랄다가 겪는 비극은 숙명이자, 훗날 도래한 민중의 때를 위한 디딤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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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에서의 죽음‧토니오 크뢰거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6
토마스 만 지음, 김인순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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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뛰어난 소설가의 기준은 무엇일까? 대답은 저마다 다르다. 대체적으로 훌륭한 작가의 기준은 현실을 얼마나 그대로 반영했는지, 또는 사회의 문제에 대해 어떤 대안을 제시했는지, 아니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했는지로 결정된다. 토마스 만의 작품은 마지막 특성에 있어서 독보적인 영역을 지닌다. 자전적 체험과 평소에 지닌 생각들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섬세하고 미묘한 감정의 흐름을 이루어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독자는 자연스럽게 공감 또는 감정의 해방(카타르시스)을 경험하며 강한 인상을 남기게 된다. 다시 말해, 그의 작품은 마음속에 있는 응어리에 대한 '끌어내기'의 작업을 정교하게 설계한다. 그의 세계에 진입하는 이는 마음을 비우기만 하면 작가의 개인적인 체험이 자신의 의식으로 전이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토니오 크뢰거』 역시 좋은 작품이지만, 처음으로 읽었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이 나에게는 조금 더 인상 깊었다. 두 작품 모두 예술가의 숙명적인 고민을 다루고 있지만, 후자가 한층 더 보편적인 주제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여겨졌다. 예술가에 한정된 토니오 크뢰거의 갈등은 보편성을 저해하는 것으로 보였다. 반면, 『베네치아의 죽음』은 사랑하는 자의 마음을 끈질기게 추격하여 어떤 인상을 남기는 데에 성공했다. 더구나 콜레라가 주는 불길한 인상과 다가오는 재난 등은 여전히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전염병의 존재를 애써 숨기려는 당국과 사람들에게 서서히 퍼지는 불안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잠시나마 생각나게 했다. 


 『토니오 크뢰거』의 대표적인 장면은 "문학은 절대 직업이 아니라 저주"라는 토니오의 선언이다. 토마스 만은 모든 작가들이 거쳤던 딜레마를 서슴치 않게 내뱉는다. 시민성과 예술성의 대립은 단순히 '상업성'과 '작품성' 사이의 고민을 뛰어넘는 무엇이다. 이를 테면, 작가는 남들과 어떻게든 구별되어야 하며 그것을 위해 외로움이나 가난함 따위는 얼마든지 감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말이다. 어떤 작가는 자신 속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해 스스로를 세상과 격리하거나 단념하고, 어떤 이는 사회와 타협하다 못해 처음에 지녔던 의식을 상실한다. 대부분의 창작자는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겨내야 한다. 이것을 즐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필연적인 긴장감과 두려움을 저주의 굴레로 간주하는 사람도 있다. 토마스 만은 조금 더 솔직한 마음을 택하지 않았나 싶다. 어떻게 자신의 상처를 아무렇지도 않게 대할 수 있을까? 작가는 치유받기 위해 글을 쓰는 법이다. 고통이 없으면 시작도 하지 않았다. 


 한편으로, 나는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의 서사를 보면서 지나친 자의식은 독이라는 생각도 했다. 아셴바흐는 전염병에 의해 죽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생각에 잡아먹혔다. 그에게는 충분히 베네치아를 떠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타지오가 없는 삶은 그에게 죽음과도 같았다. 과도한 지식은 인간을 병들게 한다. 차라리 그가 아무 것도 몰랐더라면, 잃을 것이 없었다면 조금 더 적극적일 수 있었을 텐데. 그가 사랑이라 믿었던 것이 사랑이 아닐 수도 있는데, 그는 스스로의 생각에 갇혀 있었다. 타지오와 대화를 몇 마디라도 나누었다면, 아셴바흐가 가진 집착은 사그라졌으리라.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사랑받는 자의 마음속에 신을 들어갈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결국 그 작가는 스스로를 넘어서지 못했다. 


 섬세하고 여린 두 작가의 이야기가 보편성을 확보하려면, 끌어내기의 과정에 동참해야 한다. 예전에 나는 어떤 책을 읽을 때, 특히 소설을 읽을 때 특정한 교훈을 얻기 위해 부던한 노력을 해왔다. 그 교훈 한 줄이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라고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작품 안에 나의 감정을 담아내거나 끌어내는 작업 자체가 유의미함을 최근에 알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글쓰기를 통해 치유되는 존재는 작가 자신임을 인지한 순간부터였다. 소설을 읽는 순간 머리를 스치는 찰나의 깨달음과 느낌도 시간이 지났을 때 나를 바꾸는 원동력이 되곤 한다. 독서와 창작은 고통을 수반한다. 누군가의 세계에 침투하는 것도,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도 쉬운 여정은 아니다. 하지만 피와 눈물을 흘리고 나서 돌아보았을 때, 내가 걸었던 길은 누군가가 잘 따라올 수 있게 잘 닦여 있기 마련이다. 그 기쁨이 모든 시름을 능가하기에, 나는 기어이 아픈 길을 걷고자 하는 것이다.

인식은 타락일세. 그래서 우리는 단호하게 인식을 배척하고, 오로지 아름다움, 다른 말로 표현ㅇ하자면 단순함과 위대함과 새로운 근엄함, 제2의 자연스러움과 형식만을 얻으려고 줄곧 노력할 뿐일세. - P135

너처럼 푸른 눈을 가질 수만 있다면. 토니오는 생각했다. 너처럼 모든 세상과 잘 지내며 행복하게 어울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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