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치드 매치드 시리즈 3
앨리 콘디 지음, 송경아 옮김 / 솟을북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통제된 사회는 우리의 암울한 미래를 상징한다. 수많은 소설과 영화에서 '디스토피아'라고 불리는, 국가의 강력한 권력 앞에 사람들이 통제되고 조종되는 사회를 묘사한 바 있다. 대표적인 예로, 조지 오웰의 『1984』, 로이스 로우리의 『기억 전달자』, 영화로는 <매트릭스>, <브라질> 등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곳 안에서도 삶이 존재하는 것을 본다. 아무리 사람들을 통제한다 해도 그곳에는 사랑이 있고, 저항이 있다. 이 두 가지를 모두 담은 책이 바로 『리치드』다.

 

 앨리 콘디의 『리치드』 안의 디스토피아는 다른 매체에서 보았던 감시 사회와 많이 다르지 않다. 이 '소사이어티(흥미롭게도, 이 사회의 이름의 뜻이 바로 '사회'이다)'에서는 개인의 삶 전체가 거대한 시스템에 의해 통제되고, 사랑조차 반려자로 정해준 이와 해야 한다. 이 불합리한 사회 밑에는 강력한 봉기 세력이 있다. 이 봉기 세력의 일원인 카시아는 소사이어티 소속인 카이와 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들키는 날에는 양쪽 모두 무사할 수 없다. 마치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는 듯한 아슬아슬한 연애는 전염병이 터지면서 크게 바뀌게 된다.

 

 소사이어티와 봉기 세력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습격하는 전염병 때문에, 둘의 사랑은 방해되기 시작했고 결국 직접 만날 수밖에 없다. 인도자를 앞세운 봉기를 틈타 두 사람은 마침내 만나게 되지만, 돌연변이 전염병 때문에 카이가 쓰러지게 된다. 다음 일을 예측할 수 없는 이들의 사랑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까? 이 소설의 끝장을 덮게 되면,『리치드』는 결국 통제되는 사회와 죽음의 전염병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 연인의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임이 드러난다. 일단 카시아와 카이, 그리고 잰더를 화자로 하는 장이 번갈아 가면서 진행되는 형식만 보아도 그것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리고 파란색, 붉은색 등 색깔이 상징적으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 작가는 이 소설을 색채적으로 아름답게 꾸미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그 도전이 성공적이라고 본다. 나는 이 책에 대한 평들 중에 "『기억 전달자』를 떠올려라. 하지만 더 섹시하다."라는 평을 가장 인상적으로 보았다. 왜냐하면 그곳은 흑백의 세상이니까. 『리치드』는 『매치드』 시리즈의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이고, 각각의 작품은 색깔을 가지고 있다.

 

 『리치드』는 붉은색이다. 나는 그것을 서로 만나고 싶어하는 연인들의 간절한 마음을 담은 것이라고 본다. 비록 나는 다른 시리즈를 보지 않았지만, 제목으로 그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1편 『매치드』는 'matched(만나다)', 2편 『크로스드』는 'crossed(엇갈리다)', 그리고 3편 『리치드』는 'reached(닿다)'이다. 마치 가문의 갈등처럼 어울릴 수 없는 두 세력, 봉기 세력과 소사이어티 사이에서 서로를 사랑하는 두 연인, 그들은 어떻게든 닿을 수 있기를 바랬으리라. 그 바람은 마침내 이루어졌고, 붉은 정원의 날의 약속은 성취되었다. 디스토피아의 결말이 해피엔딩일 수 있을까? 작가는 그 사회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작가는 그 사회에 속해 있는 사람들을 바꾸었다. 차이는 단지 그것뿐이지만, 그 차이 하나가 세상을 바꾼다는 것을 왜 나는 이제 알았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그러니까, 『눈먼 자들의 도시』가 나에게 준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소설일 뿐이다. 위의 책은 하나의 우화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나는 보게 되었다. 그것이 현실이자 역사임을. 『눈뜬 자들의 도시』는 『눈먼 자들의 도시』에 눈이 먼 나의 눈을 뜨게 해주었다. 후자가 내가 눈이 멀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면, 전자는 장님인 나의 눈을 뜨게 해주었다.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눈먼 자들의 도시』와 『눈뜬 자들의 도시』는 서로 정반대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눈먼 이들의 이야기가 가상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하나의 우화라면, 눈뜬 자들의 이야기는 그것이 4년 전에 일어난 전염병의 결과라는 역사이다. 나아가, 『눈뜬 자들의 도시』는 정치인과 경정의 심리와 행동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것은 의사의 아내를 중심으로 한 눈먼 시민들의 모습과 사뭇 대비된다. 무엇보다 그들은 눈이 멀었고, 이제는 눈이 뜨였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여전히 정부는 무기력하고 시민을 억압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사라마구는 자신의 작품 속에 언제나 자신의 정부와 국가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눈뜬 자들의 도시』의 출발점은 바로 그러한 저항에서 시작된다.

 

 선거에서 대부분의 표를 백지 투표로 낸 사람들이 발생한다. 투표의 익명성 때문에 누가 그것을 주도했는지, 어떤 이들이 거기에 가담했는지 알 수 없다. 정부는 계엄령을 발포하여 국가를 혼란에 빠지게 한다. 하지만 저자는 시민들에게 절대 다가가지 않는다. 사태를 해결하려고 회의를 하는 도중, 4년 전 국가에 창궐했던 백색 전염병에 대한 언급이 일어났으며 이로 인해 다시 한 번 그 사태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론은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았던 의사의 아내를 백지 투표의 주도자라는 것, 그리고 그녀가 살인자라는 것을 통해 그녀를 추궁하는 것이다.

 

 이런 어리석음을 행하는 자들이 바로 정부다. 그들은 여섯 명의 사람을 살린 영웅을 살인자, 반역자로 여기고 '마녀 사냥'을 했다. 결국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의사의 아내는 자살하고, 개 콘스탄테 역시 죽는다. 『눈먼 자들의 도시』가 희망의 시작으로 끝난다면, 『눈뜬 자들의 도시』는 비극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이 여인에 대한 진혼곡은 『이름없는 자들의 도시』로 이어진다. 내가 후자의 작품을 보고 그 사실을 몰랐던 까닭은 『눈뜬 자들의 도시』를 보기 이전에 내가 장님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눈을 떴다. 우리가 정부를 바꿀 수 있음을 알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굿바이 삼성 - 이건희, 그리고 죽은 정의의 사회와 작별하기
김상봉 외 지음 / 꾸리에 / 201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것은 진실을 알고 있는 자들에게만 전하는 메시지이다. 이미 우리 사회는 삼성에게 지배당한지 오래다. 한 기업이 한 나라를 이렇게 '식민지' 삼는 것은 역사상 유례 없는 일이다. 이 기업의 회장은 대통령에 버금가는 권력과 부, 그리고 명성(어떤 방향으로의 명성인가?)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신의 기업에 반란을 일으키는 세력의 등장을 아예 막는다. 사실 이것은 모든 독재자들의 공통적인 특징 아니겠는가? 독재자가 시민군에게 무기를 쥐어주는 경우는 없으니까. 이제 늙어버린 ㅎㅈ(회장, 아니 황제)은 자신의 권력을 자식에게 세습하여 통치를 이어가려고 한다.

 

 우리는 누구인가? 이 거대한 기업의 노예들이다. 어린 시절부터 철저하게 교육을 받아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 결국 우리나라 최고의 일류 기업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제국의 수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최종 목표다. 이 삼성 제국에 들어가기 위해 5살부터 20살까지 15년 동안 우리의 유년, 청소년 시절을 소비하게 한다. 그러나 이 제국에 들어가는 이들은 한정되어 있고, 사회는 이들을 성공한 사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패배자로 간주한다. 그리고 모든 문화는 이 제국에 의해 통제된다. 그러니까 국민은 두 강력한 세력에게 지배당하고 있는 셈이다. 하나는 우리가 '표'로 만든 정치적 세력, 다른 하나는 '돈'이 만들어 낸 경제의 세력.

 

 물론 봉기의 세력은 있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소수로 행동했고, 대기업의 거대한 음모 앞에 진압되고 말았다. 반란자들은 여러 수단을 동원하여 끊임없이 대항하고 있지만, 삼성 제국은 언론, 방송 등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막지 못한 것은 우리의 영원한 유산, '책'이었다. 삼성 제국의 황제가 책을 읽는다면, 아마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을 읽었을 것이다. 아마 그는 이 정신적 반란을 보고 깜짝 놀라 진압을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물리적 저항이 금세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면, 정신적 반항은 끊임없이 세력 중에 회자된다. 결국 2차 반항이 시작된다. 『굿바이 삼성』이다. 이 책을 통해 삼성 제국을 무너뜨리려는 시도가 등장한다.

 

 책을 통한 혁명이다. 혁명의 깃발을 이끄는 사람들은 김상봉, 김용철, 김재홍, 김진호, 류동민, 성현석, 우석훈, 이계삼, 이득재, 이택광, 조국, 최성각, 하승우, 홍윤기, 황광우다. 성격도, 하는 일도 모두 제각기인 이 사람들은 '삼성'이라는 하나의 독재 세력에 저항하기 위하여 한데 뭉쳐, 각자만의 방식으로 삼성에 저항하는 방식을 알려주었다. 이들의 말하기는 매우 호소적이다. 제발 깨어나라고, 제발 혁명하자고 외친다. 하지만 나도 인정하기 싫은 사실은, 대부분의 국민들이 이미 삼성이 만들어 낸 물질과 문화의 노예가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삼성이 만든 갤럭시, 전자 제품에 빠져 살며 우리나라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죽은 정의의 사회'를 만들어버렸다. 이건희가 있는 한, 자유도 평등도 없다. 영원한 차별과 억압만 있을 뿐이다.

 

 사실 나는 두렵다. 이건희 황제는 가히 '빅 브라더'를 연상시키니까. 조지 오웰의 미래소설 『1984』에서 절대적인 존재, 신과 같은 존재로 여겨지는 바로 그 인물 말이다. 안타깝게도 그의 미래소설은 현재가 되었고, 빅 브라더는 실존하는 강력한 세력이다. 이제 이 독재를 끊을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자유가 찾아올까? 마음놓고 삼성을 하나의 '기업'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그 날까지, 혁명은 계속되어야 하리라. 삼성이 제국이 아니라 기업이 되는 것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 기업은, 적어도 국민을 노예로 보지 않는다. 지금의 삼성은 너무나 변질되었다. 돈이 많다고 자신이 하나의 나라인 듯 착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세상이 '돈'으로만 된다는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할 때다. 세상은 돈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혁명을 시작한다. 굿바이, 삼성. 이것으로 시작하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낯설고 생소한 표현까지 완벽하게 잡아주는 개정 NIV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빅 픽처`, `템테이션`의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를 추천합니다. 그는 쉬운 문장과 위트 있는 표현으로 인생을 이야기하는 작가입니다. 그의 놀라운 호소력은 작품을 읽는 데 집중시킬 뿐만 아니라 더글라스 케네디라는 작가를 다른 이들과 다르게 볼 수 있게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