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미숙한 번역이지만 그래도 잘 봐주시길) 

 스파르타쿠스 전쟁, 또는 3차 노예 전쟁은 가장 모호한 전쟁 중 하나이다. 그것은 노예 무리가 무엇을 일으켰는지에 대한 기록을 적어놓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만은 아니다. 그러나 또한 그것은 로마인들이 “정확히” “단지” 노예에 의한 반역을 무력으로 짓밟는 것을 아주 길게 그리고 아주 많이 살펴보았다는 사실에서 부끄러워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그리고 이렇게, 반역에 대한 사실을 써내려가는 것을 그들이 마음에 내키지 않기 때문이다. 나중의 역사에서 일부 로마의 고전 작가들, 아피아와 플루타르크와 같은 사람들이 3차노예전쟁에 대한 사실을 기록했다. 하지만, 무엇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그들의 평가는 서로 크게 다르다. 노예 군대도 알지 못했던 동기 부여-아피아는 그것이 로마 스스로의 조화라고 주장했다, 한편 플루타르크는 스파르타쿠스가 그저 이탈리아와 갈리아 안으로 도망치고 싶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피아와 플루타르크 둘 다 반역이 더 일찍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에 다소 동의했다 그들에 따르면, 기원전 73년에 70명의 검투사가 렌툴러스 배티애터스의 검투사 학교에서 도망가 그들의 검투사의 무기를 사용하여 카푸아에서 고대 로마 군단을 쳐부쉈다는 것이다. 그들은 또한 스파르타쿠스와 그의 부하들이 카푸아, 캄파니아, 베수비오 화산을 근거지로 삼아 그 주변의 부유한 지역들을 약탈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점에서도 로마인들은 노예들이 아주 무의미한 일을 진짜 위협보다는 오히려 죄에 가까운 어떤 것을 고찰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 해가 지난 후, 로마 원로원은 가이우스 글라디우스 글라베르 같은 집정관을 보내 반역을 진압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로마인들이 검투사들을 위협하였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들에게 조직적인 군대를 명령하는 글라베르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용군은 3000명의 남자를 포함하고 있었다. 글라베르는 오직 산으로 가는 길을 봉쇄하는 것만 알고 있었고 노예들을 굶겨 죽이는 것을 원했다. 비록(글라베르가 산으로 가는 길을 봉쇄했더라도-필자) 스파르타쿠스는 그가 가진 것을 실행할 계획이었지만 말이다. 그는 줄과 사닥다리를 만들어 덩굴 밖에서 그것을 사용하여 글라베르의 무리 맞은 편의 절벽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노예들은 산의 기슭로 이동하여 이상한 낌채를 못 채고 있는 글라베르 곁으로 가 로마군을 완파할 수 있었다. 

 소설 속에서와는 다르게 나타나는 글라베르의 군대와 바리니우스의 군대의 살육은 하루에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글라베르의 패배(혹은 죽음-필자)를 들은 후, 원로원은 집정관 푸블리우스 바리니우에게 정규군의 명령권을 주고 검투사를 물리칠 것을 그에게 명령했다. 하지만 그는 어느 것도 성공하지 못했다. 바리니우스가 반나체로 폭포로 도망친 부분은 사실이다-그는 친구의 집에서 목욕을 하고 있을 때 반역자들의 공격을 받았다. 바리니우스의 패배 이후, 스파르타쿠스와 그의 부하들은 기원전 73년의 겨울을 놀라, 너세르아, 더리, 그리고 메타폰튬과 같은 다른 도시를 정복하는 데에 보냈다. 노예들의 반역의 지도자는 스파르타쿠스, 크릭수스, 오이노머우스, 간니쿠스는 별 문제로 하고 비록 오이노머우스는 언젠가 겨울에 지긴 했지만 말이다(?). 

 기원전 72년 봄에 원로원은 마침내 반역자들에게 루키우스 겔라우스 퍼블리콜라와 그네이우스 콜리넬리우스 렌툴루스 하의 집정관군을 파견하겠다고 위협을 했다. 이 책략의 의도에 대해 나는 크라수스의 명령하에 놓인 겔리우스, 렌툴라스 그리고 바리니우스를 두겠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한편, 반역자들은 두 무리(또는 군대-필자)로 나뉘어졌는데 하나는 스파르타쿠스의 지도하에 있는 무리이고 다른 하나는 크릭수스의 명령하에 있는 무리이다. 이 사건의 정확한 동기 부여는 알려지지 않았다.  

 겔리우스는 크릭수스의 군대를 물리치고 일의 경과 과정에서 크릭수스를 죽였다. 후에 일어난 사건은 분명하지 않고 아피아와 플루타르크에 의한 원전 때문에 모순되었다(어쩌면 모순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결국 다른 사건으로 언급된다는 원천). 

 그들의 기록은 합의를 이루었지만, 기원전 73년에 일찍이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는 그의 명령에 8개의 정규군과 함께 집정관을 비난했다. 가장 큰 대립은 플루타르크에 따르면 피세눔 근처에서 일어난 크라수스와 스파르타쿠스의 대립이다. 여기서 그는 반역자들 뒤에서 책략을 짜는 뭄미우스에게 두 군대를 주고 그에게 노예들에게 교전을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뭄미우스는 불복종하여, 두 군대를 완패시키고 말았다. 크라수스는 이것에도 불구하고 전투에서 간신히 이겼다. 비록 로마인 피해자들이 많기는 했지만 말이다. 크라수스는 이 전투 후에 대량으로 죽였다고 보고했다, 비록 역사학자마다 각기 다른 대량학살된 로마인들의 수가 많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것 또한 이 전투 후에 아피아는 3000 군단의 병사가 포로에 의한 반역자들이 힘 있게 싸우고 검투사답게 죽었다고 기록했다. 

 플루타르크에 따르면, 피세눔에서 스파르타쿠스가 진 후에, 그를 수송시키라고 해적과 협상했고 그를 시칠리아에 데리고 갔다. 하지만 그는 일의 경과 중 그들을 배신했다. M.J. 트로우와 같은 현대의 역사학자들은 크라수스가 배신의 요소에 진저리가 났을 것이고, 스파르타쿠스가 제의했던 것보다 더 액수가 컸다는 것에 의문을 품었다. 

 그러자 스파르타쿠스의 군대는 레기움에서 퇴각 강행군을 했고, 그 곳에서 그들은 포위되어 이탈리아 반도의 발가락의 위에서 아래까지 있는 로마인에 의한 "휴먼월(Humanwall, 인간의 벽)"에 굶어죽었다. 그 후, 카스투스와 간니쿠스하에 있던 반역자들 중 일부는 휴먼월을 통해 깨뜨릴 수 있었고, 도망갔지만 끝내 죽거나 로마군의 작전에 의해 격파되었다-스파르타쿠스는 레기움에서 80킬로미터 북동쪽으로 떨어진 곳에서 로마 군대와 만나 마지막으로 그의 온 힘을 다해 군대에 저항하다가 패배했다. 스파르타쿠스의 저항은 이 싸움에서 완벽하게 완패를 당한 것이다. 

 한편 폼페이 역시 전쟁에 참가하여, 퀴니투스 세르토리우스에 의한 반역을 정복한 후 스페인에서 돌아왔다. 이것이 화제에 오르는 동안 나는 폼페이와 카이사르가 절대 카이사르의 임기기간이 사실상 3년 더 길다는 것으로 스페인에서 만날 기회에 넌더리내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 폼페이는 스파르타쿠스의 반역자들의 나머지를 살육하거나 포로로 잡지도 않고 완벽한 반역군으로 파괴시켰다. 

 그 여파로 인해 폼페이와 크라수스 둘 다 잇따르는 해인 기원전 70년에 영사에 선출되었다. 약 6000명의 포로들이 로마에서 카푸아의 아피아 길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 그리고 이야기에 따르면, 반역자들의 몸이 그들의 다른 노예들에게 죽을 거라고 경고한 것이 훨씬 후에도 십자가에 남아있다고 한다. 하여간 그것은은 이것(이 사건, 즉 3차 노예 전쟁-필자) 때문에, 로마에서는 다시는 또 다른 노예의 반역이 없다는 것이 진실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로마인들이 많이 시도하려고 했던 일이 아니며, 그들이 스파르타쿠스의 몸을 찾지 못했다는 것도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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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의 글 옆에 있는 영문을 번역한 것. 번역이라 할 수 없는 미숙한 것이지만, 잘 봐주시길.) 

  

 엄마에게, 엄마는 제가 풀이 죽을 때마다 저를 위로해주셨죠. 

 아빠에게, 아빠는 로마사에 대한 저의 장황한 이야기를 들어주셨죠. 

 내 앵무새,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 너는 로마에서 나를 재미있게 해 주었지. 

  

 그리고 나의 친구들 역시 나를 위로해주었다. 그들 중 일부에게 나는 줄거리를 밝혔다. 그리고 나는 그것이 "재미있다"고 말해 준 그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어찌됐든 그들은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고, 이 말은 아직도 나를 격려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다. 까다롭지 않게 부탁한(이 부분이 좀 힘들었다) 내 친구들 손정윤, 한나 남현정, 정다혜, 유성주, 그리고 임예윤이 나를 도와주었다. 나는 또한 나의 모든 친구들과 나의 소설을 흥미롭게 받아주신 선생님께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다. 비록 공간의 제약이 있어 그들의 모든 이름을 여기에 명시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하지만 나를 위해 내 책을 출판할 수 있도록 적지않은 비용을 들인 일송북 출판사와 소중한 비판을 해 주신 오영숙님께. 

 감사드린다.

 

 

이소영
<Rebellion 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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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예술가의 초상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9
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종건 옮김 / 범우사 / 1999년 9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전적으로 보아서 난해한 책이기에 비평판 해설을 참고할 수밖에 없었다. 스티븐 디덜러스의 성장 과정을 그린 이 교양 소설의 주제는 무엇이고, 문체와 서술 기법은 또 무엇인가? 그것에 대해 김종건 교수님은 친절한 해설로 답해 주신다. 나는 해설 1의 형식을 빌려서 리뷰를 쓰겠다.

 1. 서론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야말로 훌륭한 교양 소설이자 성장 소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이 책은 미국의 대학생들에게 널리 읽히며 연구되고 있는 고전 중 하나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읽어야 하지 않을까?

 2. 줄거리
 서론에서도 그랬고, 앞으로도 계속 그랬듯이, 김종건 교수님은 자꾸 앞의 첫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렇게 내내 강조했으니 그 부분이 이 작품에서 어떤 부분을 하는가 보자. 우선 그 부분은 작품의 서론과도 같다. 서론이란 작품을 요약한 것이다. 그러므로 앞의 그 부분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 뒤는 매우 수월하게 읽힐 것이다. 그러나 그 부분은 이 작품 전체처럼 어렵다. 그래서 해설 없이는 읽기가 어렵다. 이 줄거리 부분을 읽는 독자는 분명히 읽는 내내 의문이었던, 그 보이지 않은 줄거리가 보일 것이다.

 3. 주제
 나는 문학의 주제야말로 그것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기법이나 문체가 독특해도, 내용이 재미 있어도 주제가 미약하면 고전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 안에 있는 주제를 파악해야 한다.
 이 책의 주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하나는 '맹목 주제'이다. '맹목 주제'란 일종의 반복법이다. 이 책의 가장 앞에 나오는 핵심 구절들이 작품 내내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어린 왕자』처럼 유기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는 '부정(父情) 탐색의 주제'이다. 이 주제는 20세기 문학에서 대중화된 주제이다. 아무래도 '잃어버린 세대'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듯이, 가족과의 대화가 줄고 세대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시대가 바로 20세기이다 보니, '잃어버린 가족간의 정'을 찾는 문제가 문학에서 많이 다루어진 것 같다. 특히 이 작품의 중요한 모티브가 된 것 중 하나가 '이카로스 신화'이다 보니 조이스는 이 작품에서 '부정 탐색의 주제'를 강조한 것 같다. 참고로 이카로스와 다이달로스는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이다.

 4. 문체와 기법
 사실 사람들이 조이스의 문학을 어려워하고 그에 따라 기피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문학이 문체와 기법의 기교를 통해 난해함을 낳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들을 알고 보면 그토록 재미 있는 게 없다. 즉, 조이스의 문학은 알면 알수록 재미 있다.
 사실 조이스의 작품은 작품 내에서도 계속 장마다 문체가 바뀐다. 물론 그것은 일부러 한 것이고, 다양한 표현법을 낳지만 독자들은 정신 없이 바뀌는 문체에 따라가지 못하고 지쳐버리기 일쑤이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스티븐이 성장함에 따라 문체는 점점 성숙해져 간다. 조이스의 문학의 특징은 내용이 성숙해짐에 따라 문체 역시 성숙해져 간다는 것이다. 더구나 스티븐의 성장을 다룬 소설이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다 보니 그것은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것 중 하나는 바로 '서술 기법'이다. 이 작품뿐만이 아니라 조이스는 그의 모든 작품에서 어떤 세 가지의 서술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만의 독특한 것도 있고 프루스트나 버지니아 울프 같은 작가와 함께 쓰는 기법도 있다. 그 세 서술 기법은 이렇다.

 <1> 의식의 흐름: '의식의 흐름'이라는 말은 원래 현대 정신분석학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격변하는 20세기 문학은 기존의 수법의 한계를 느끼고 다른 분야의 용어까지 따오게 되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의식의 흐름'이다. 사실 이 기법(수법)은 제임스 조이스뿐만이 아니라 거의 동시대의 작가였던 마르셀 프루스트나 버지니아 울프 같은 작가들도 사용한 것이다.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나온 의식의 흐름 수법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혹은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에서도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이 수법은 조이스만의 특별한 것이 아니고 그에 따라 '의식의 흐름' 분야에서 조이스가 차지하는 비중도줄어든다. 이 기법은 조이스의 문학에서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중요성을 갖춘, 조이스만의 서술 기법은 그 다음에 있다.

 <2> 에피파니: 원래 '에피파니'는 세 명의 동방박사가 탄생한 아기 그리스도를 방문한 것으로 상징되는 현현(顯現)이다[그런데 저 한자를 보면 둘 다 '나타날 현' 자다. 결국 그리스도의 '나타남(appearance)' 그 자체를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이스의 문학에 있어서의 에피파니란 그와 조금 다른 개념이다. 그것은 주인공이 경험하는 갑작스러운 정신적 발로 또는 계시로서, 베일이 걷히며 드러나는 사물의 본질 같은 것이다. 에피파니의 동기는 가장 사소한 소리나 몸짓에 의하여 야기된다. 나는 에피파니의 동기에 대해서 주목하고 싶다. 『율리시스』의 1, 2, 3장을 보면 스티븐은 멀리건의 소리, 디지 씨의 서재에 있는 물건, 샌디마운트에 온 여인으로부터 에피파니를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은 에피파니에서 멈추지 않고, 곧 의식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즉, 조이스는 위의 두 주제를 따로 따로 놓지 않았다. 에피파니의 동기로써 시작하여 의식의 흐름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이것은 의식의 흐름이 나온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 '에피파니'란 조이스가 20세기 문학사에 공헌한 것 중 가장 큰 부류에 속할 정도로 귀한 것이다. 사소한 것이 큰 것을 이야기할 수 있고, 사소한 것으로부터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는 이 '에피파니 기법'을 그냥 두기에는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3> 신화의 사용: 위에서 잠깐 밝혔듯이, 이 책의 중요한 모티브 중 하나는 '이카로스 신화'이다. 그 신화의 내용은 간략하게 표현하자면 이렇다.
 "고대 크레타 왕국의 예술적 거장 다이달로스는 미노스 왕의 명을 받아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감금하기 위해 미로를 설계한다. 이 미로는 너무나 정교하여 그 곳에서 탈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나중에 그는 왕의 미움을 받아 그의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그 미로에 감금된다. 그러나 다이달로스는 하늘로는 탈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털깃과 납으로 날개를 만들어 아들과 함께 크레타를 탈출한다. 다이달로스는 이카로스에게 지나치게 높이 올라가 태양열에 납이 녹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이카로스는 그것을 무시하고 높이 올라가다가 태양열에 날개가 녹아 지중해로 떨어져 익사했다(p.353참조)."
 이 신화에서 스티븐은 누구인가? 다이달로스인가? 이카로스인가? 이렇게 고민할 필요 없다. 스티븐은 그 둘 다이다. 그렇다면 '부정 탐색'은 무엇인가? '아들' 스티븐이 '아버지' 스티븐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아들과 아버지는 동격이다. 즉, 그것은 자기 자신의 탐색이다. 그리고 위 신화를 보면 다이달로스 자신이 만든 '철저한 미궁(이 미궁은 더블린이기도 하다)'에 자신이 갇혀버린다. 이것은 곧 자기 자신 안에 갇힌 것이다. '하늘'은 '자기 자신의 탐색'을 일컫는다. 즉, 자기 자신을 탐색하지 않고서는 자기 자신의 미궁(우리)로부터 빠져 나올 수 없다. '털깃과 납'은 곧 '예술'이다. 그러나 예술로 만든 '날개'로써 '자기 자신의 탐색'을 시도하려는 것은 무리이다. 그것만으로 자기 자신을 탐색하려고 하다가 태양열(자기 한계)에 날개가 녹아버린다. 그렇다면 무엇이 더 필요하다는 말인가? 그것은 '성장'이다. 결국 무질서하게 날아오르려다가 날개가 녹은 것 아닌가? 게다가 아버지 다이달로스(자기 자신)의 충고를 무시해서 그렇게 된 것 아닌가? 결국 그것은 정신적으로 덜 성장했다는 증거인 셈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끝까지 스티븐을 성장시킨다.
 하지만 조이스는 이러한 그리스 신화 외에도 성경, 단테,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들을 그의 작품 속 주인공의 차원을 심화하기 위해 자신의 심리적 목적에 적응시켰다. 그리고 그는 과거와 현재의 두 개의 세계, 즉 질서와 무질서의 융합을 그의 작품을 통해 성취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주인공인 스티븐 디덜러스(Stephen Dedalus)의 이름이다. 일단 '스티븐(Stephen)'부터 알아보자. 이 이름의 유래는 신약 성서에 나오는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을 영어식으로 파생한 것 중 하나이다. 스데반은 자신의 믿음을 전파하려다가 죽었다. 즉, 스티븐이 이 세상을 구원하려고 온 '사도'라는 것을 암시하는 동시에 햄릿처럼 우유부단하게 행동하여 세상에게 죽지는 않았지만 패배자로 남은 사람이라는 것 역시 암시한다. 그리고 '디덜러스(Dedalus)'는 다이달로스의 영어 식 발음이다. 다이달로스와 스티븐의 관계는 이미 충분히 설명한 것 같으니 생략하겠다.


 5. 스티븐의 심미론
 스티븐의 심미론은 이 작품뿐만이 아니라 조이스의 다른 작품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니 반드시 알아두어야 한다. 김종건 교수님은 친절하게도 그것을 간단히 요약해 주었다.

 미의 세 가지 인식 단계
 
 1. 전체성

 2. 조화

 3. 광휘
 
 
 이것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바구니를 예로 들겠다. '전체성'이란 바구니를 전체적으로 보는 것이고, '조화'란 바구니의 부분부분을 분해하여 보는 것이다. 그리고 '광휘'란 바구니 그 자체를 인식하는 것이다. 즉, 미의 인식 단계는 간단히 표현하자면 '보고 인식한다'라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은 미의 세 가지 형식이 있다.
 
 미의 세 가지 형식

 1. 서정적 형식: 예술가가 자신의 이미지(image)를 자기 자신과 직접적인 연관 속에 두는 것.

 2. 서사적 형식: 예술가가 자신의 이미지를 자기 자신과 남에게 간접적으로 연관시키는 것.

 3. 극적 형식: 예술가가 자신의 이미지를 남과 직접적인 연관에 두는 것.

 
 이렇게 나온 심미론 또는 예술론은 스티븐의 성장 과정에 대입시키면 매우 합당하게 받아들여진다. 바구니의 비유가 아니라 스티븐 그 자신의 성장 과정 자체가 비유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미의 인식 단계는 바구니의 비유를 통해 이해가 되리라고 생각하고, 미의 세 가지 형식이 스티븐의 성장 과정에 어떻게 대입되는지 한 번 살펴보자.

 "그의 유년 시절의 서정적 단계 동안에는 만사가 그 자신에게 연관되고 모든 표현은 자기 중심적인 개성에서 울려 나온다. 잇달아 그의 청년기에는 타인을 인식하고 그의 가족, 그의 친구, 그의 학교 선생님들과의 직접적인 연관 속에 살며 부모와 거리의 연인들 그리고 신부들과 어울려 살기 위해 스스로를 적응시키려고 노력한다. 마지막 단계에서 그는 극적 상황, 즉 한 사람의 행동예술가로 승화되는 것이다.(p.358)"

 그리고 최종적으로 스티븐이 정의한 '예술가의 정의'란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예술가는 창조의 하나님처럼, 그의 작품의 안에 또는 뒤에 또는 그 너머 또는 그 위에 남아, 세련된 나머지 그 존재를 감추고 태연스레 자신의 손톱을 다듬고 있는 거야(p.358~359)."

 이러한 정의는 현대 문학을 특징짓는 몰개성(沒個性)의 정의이기도 하다. 

 6. 진화와 출판
 원래 이 작품의 초고는 『영웅 스티븐(Stephen Hero)』였다. 그러나 조이스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 작품을 더 발전시켜 그 작품과 별개의 것을 창조해내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이 작품은 다른 모든 위대한 고전들이 그랬듯이, 출판 내역이 복잡하다.

 7. 스티븐과 제임스 조이스
 흔히 사람들은 스티븐과 조이스가 동격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스티븐과 조이스는 다르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완전하게 일치한다. 그러니 스티븐은 조이스의 반(半)자전적인 인물이라고 보아야겠다.

 8. 역사적 배경
 문학은 그 문학이 쓰여진 시대를 반영한다. 특히 조이스가 이 작품을 쓴 시기인 20세기 초반은 시대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알다시피, 20세기 초반은 격변의 시대였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모든 게 변하는 시대였다. 그래서 원래 있던 것과 새로운 것의 충돌이 벌어졌다. 조이스의 조국 아일랜드 역시 반란 당원들이 활발하게 움직여 분쟁이 자꾸만 벌어졌다. 그런 와중에서 개인의 정체성과 신의 존재감은 상실되어 갔다. 기근과 분쟁의 반복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자 문학은 이런 현실에 분노했다. 조이스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그는 이 책에서 '정체성을 잃은 개인의 방랑'을 그렸다. 또, 그의 대표작 『율리시스』는 신의 부재하에서 인간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지에 대해 다룬 작품이다. 이렇듯, 조이스의 문학은 당시 시대와 개인의 사상, 그리고 예술이 혼합되어 만들어진 하나의 걸작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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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비록 북셀프라는 시스템도 그렇지만, 5천원 이상 주문해도 무료배송이였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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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over 2010-10-11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 물론 알라딘만의 장점도 있지만.
 
왕자와 거지 펭귄클래식 55
마크 트웨인 지음, 남문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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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제목은 『왕자와 거지』........ 제목대로 주요 등장인물은 왕자와 거지다. 그리고 이 책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 둘은 서로 신분을 바꿔 왕자는 거지 행세를, 거지는 왕자 행세를 하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마크 트웨인은 이런 유머스러운 상황에서 당시 시대를 비판하는 정신으로 글을 썼다. 그것은 그의 또 다른 작품, 즉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도 드러난다.
 

 마크 트웨인은 이 작품의 무대를 헨리 8세가 지배하던 16세기 영국으로 설정했다. 그래서 약간 역사 소설 풍을 띠고 있다. 사실 정말로 편자 주나 역자 주를 보면 역사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이 역사에 공식적으로 기록된 것은 아니다. 그저 작가의 상상력으로 된 것이다. 우리는 현실과 상상력을 구분해야 한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빈부 격차에 따른 차별'을 볼 수 있다. 마크 트웨인이 살았던 당시 미국은 막 남북전쟁이 끝나고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을 시기였다. 공업이 농업을 밀어내고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시기였던 것이다. 그 때 등장한 자본가는 노동자를 마구 착취했다. 인간다운 대우도 해 주지 않았다. 마크 트웨인은 이것을 헨리 8세가 지배했던 16세기 영국에 빗대었다. 거지 톰이 살았던 오팔 코트는 '쓰레기장'이라는 뜻을 지닌 빈민가였다. 빈민들이 모여 사는 그 마을에서는 폭력과 다툼이 끊이지 않는 부패하고 타락한 곳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이 곧 '노동자'다. 그리고 호화로운 궁정 사람들이 '자본가'다. 왕자 에드워드 튜더 역시 하나의 자본가에 불과하다.

 '빈부 격차에 따른 차별'의 대표적이 예가 바로 왕자의 탄생과 거지의 탄생 부분이었다. 작가는 그 둘을 매우 대조적으로 묘사한다. 그 광경은 대강 이렇다.

 "먼 옛날 16세기가 중반부에 접어들던 무렵, 런던의 어느 가을날에 캔티라는 가난한 집에서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그 집에서는 아무도 원치 않은 아기였다. 같은 날 잉글랜드에서 또 한 명의 사내아이가 부유한 튜더 가문에서 태어났으니, 이는 집안 전체가 원하는 아이였다. 뿐만 아니라 온 나라가 그를 원했다. 이 아이를 갈망하고 소망하며 신에게 간구하던 백성들은, 실제로 그가 탄생하자 좋아서 거의 미칠 지경이 되었다. 그냥 얼굴만 아는 사이끼리도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울음을 터뜨렸다. 모든 이들이 일손을 놓은 채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잔치를 열어 춤추고 노래하며 얼큰히 취했는데, 그러기를 며칠 밤낮이나 계속했다. 낮이면 런던은 집집마다 발코니와 지붕에 현수막이 너울거리고, 화려한 행렬이 통과하는 장관을 연출했다. 밤이 되면 길모퉁이마다 커다란 화롯불을 피우고, 흥이 오른 사람들이 그 주변을 돌며 볼거리를 만들었다. 잉글랜드 전역에서 새로 태어난 아기, 즉 웨일스의 왕자 에드워드 튜더를 빼놓고는 할 얘기가 없었으나, 정작 당사자인 아기는 그와 같은 야단법석은 까맣게 모른 채 비단과 공단에 감싸여 있었고, 고귀한 영주와 귀부인들이 자신을 돌본다는 사실도 전혀 알지 못했으며 관심 또한 없었다. 그러나 또 다른 아기, 꾀죄죄한 헝겊에 감싸인 톰 캔티에 대해서는, 가난한 거지 일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화제 삼지 않았다. 그가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그는 이미 집안의 고민거리였다(p.13~14)."  

 이렇게 차이가 났던 둘이 서로 뒤바뀐다니, 얼마나 재미있는지 생각해보라. '고민거리 그 자체'였던 톰 캔티가 한순간에 '집안 전체가 원하는 아이'인 에드워드 튜더가 되고, '갈망과 소망의 대상'이었던 에드워드 튜더가 한순간에 '아무도 원치 않은' 톰 캔티로 되버린다........ 이것이야말로 이 작품에서 가장 우스운 유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크 트웨인이 이 글을 쓴 주요 목적이 영국의 왕실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으므로 잠시 설명을 하겠다. 사실 에드워드  튜더가 톰 캔티와 신분을 바꾸려고 한 이유는 "신발을 벗어던지고, 잔소리할 사람 없는 데서 실컷 진흙탕을 뒹굴(p.28)"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톰 캔티 역시 그 동안 왕자가 되고 싶어 했다. 중요한 것은 에드워드 튜더다. 그는 부유하고 모두가 원하는 아기였지만, 앞의 인용문에서 나왔듯이 "정작 당사자인 아기는 그와 같은 야단법석은 까마득히" 몰랐다. 즉, 그는 자신이 왕자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은 것이다. 에드워드는 갑갑한 왕실 상류층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싶어했던 것이다. 이해가 안 간다고? 영화 <타이타닉>의 로즈를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그녀 역시 상류층 사회에서 탈출하고 싶어했으니까. 그리고 나중에는 톰 캔티 역시 그 사회의 갑갑함에 못 참아 다시 거지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장면을 우리는 볼 수 있다. 결국 그토록 왕자를 바랬던 그조차 그 직위를 스스로 버리게 하도록 하는 왕실을 마크 트웨인은 비판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극적인 부분은 이 장면일 것이다.

 "잠시 후 왕자는 톰의 너덜대는 옷을 걸쳤고, 거지 톰은 호화로운 왕자 옷으로 바꿔 입었다. 두 사람은 거울 앞으로 걸어가 나란히 섰다. 정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옷을 바꿔 입은 것이라고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두 사람의 차림새는 기가 막히게 자연스러웠다. 두 왕자는 서로 쳐다보다가 거울을 바라보고, 다시 서로 마주 보았다. 어안이 벙벙해진 진짜 왕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p.28)."

 이 이후로 진짜 왕자는 한 동안 가짜 왕자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가짜 왕자를 만나기 위해 진짜 왕자는 온갖 모험을 했다. 그 사이 왕자가 배운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레 미제라블』의 주제와 비슷하다. 엄격한 법과 도덕만으로는 사람들은 행복해질 수 없다. 인간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자비'다. 이게 바로 『레 미제라블』의 주제이고, 이것은 곧 『왕자와 거지』의 주제이기도 하다.

 그렇다, 이 책의 중요한 주제는 '자비를 베풀라'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작가가 『베니스의 상인』에서 인용한 구절에서 암시되었다. 에드워드 튜더는 감옥에 갇힌 사람들의 사정을 듣고, 법이 너무 지나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나중에 왕이 된 후에 그들을 석방시켰다. 톰 캔티 역시 지나친 법으로 잡혀 온 사람들의 사정을 듣고, 용서해주었다. 그래서 그 둘은 '자비를 베푸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 존경을 받았다. 비록 에드워드 튜더는 일찍 죽었지만........

 

 이 책의 펭귄클래식 판에는 「한 소년의 모험」이 담겨 있다. 그 내용은 <회초리 시동>이 톰 캔티에게 '한 소년의 모험'을 들려주는 내용이다. 그 액자 소설의 주제 역시 이 책의 주제와 같다. 그러나 작가가 삭제한 이유는 한 가지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어쨌든 그런 좋은 내용을 담아준 펭귄클래식이 고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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