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을 비롯하여, 초등학생들과 청소년들의 독서량이 점점 줄고 있다. 그러나 이 한 분야에서만은 유독 강세를 발휘한다. 바로 판타지다. 왜 어린 아이들이 판타지를 많이 읽을까? 우선 판타지는 상상력이 풍부하여 독자에게 즐거움을 준다. 그리고 판타지가 그리는 세계는 한 가지 면에 있어서라도 현실과 다른 점이 있는 법이다. 학업이나 친구, 가족과 관련된 스트레스와 고민을 잠시 잊게 만들어주는 게 바로 판타지다. 그래서 그런지 재미있는 판타지는 청소년들에 의해 계속 팔린다. 그런데 어떤 초등학생과 청소년은 직접 쓰기도 한다. 그 중 극소수는 이렇게 문단에 의해 검증 받고 세상에 나오게 된다.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조선일보 어린이 판타지 문학상' 덕분에 큰 도움이 되었다. 

  

 『풀잎의 제국』, 『도화촌 기행』이 나란히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에 수상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조선일보 어린이 판타지 문학상은 잊혀지고 말았다. 두 작품의 기세는 엄청났다. 하지만 『영원한 웃음』도 두 작품이다. 최우수작이자 표제작인 『영원한 웃음』은 감정을 잃어버린 인류 사회를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모험을 통해 가장 먼저 '웃음', 즉 '기쁨'이라는 감정을 얻게 된다. 문득 내가 지금 웃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 본다. 한편, 우수작은 『조너선과 오로라의 구슬』은 '오로라의 구슬'이라는 책을 발견한 아이들의 모험을 다루고 있다(에메랄드 아틀라스가 연상된다).  

 

 

  

 이번엔 중학생의 판타지 소설이다. 내 생각엔 중학생일 때 가장 판타지를 많이 읽는 것 같다. 초등학교 때는 독서에 대한 첫걸음이기에 아직은 판타지가 생소할지 몰라도(물론 고학년부턴 얘기가 좀 달라지지만) 중학생부터는 본격적으로 판타지에 흥미를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지능과 감성이 발달했다(고등학교는 읽을 시간이 없다). 제목의 '레기온'은 '감정'이라는 뜻이다. 이 책은 『영원한 웃음』과 마찬가지로, '감정'에 대해 다루는 소설이다. 하지만 위의 작품이 주로 '기쁨'을 묘사하려는 데 반해, 『레기온의 눈』은 슬픔, 기쁨 모두 다 다루려고 시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빠질 수 없는 '성장'의 요소. 청소년이 쓴 책은 유독 성장이 돋보인다.  

 

  

 다시 초등학생이다. 문학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 사실인가 보다. 소설은 제목처럼 아놀드라는 10살의 소년이 겪는 모험을 그리고 있다. 김준희는(내가 형이니까) 초등학교 2학년 영어 시간에 '용'에 관한 소설을 쓰라는 숙제를 받았는데, 그 때 쓴 원고를 다듬어서 이렇게 책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총 10권을 계획 중이며 2권도 거의 완성되었다고 한다(그런데 왜 출간이 안 되느냔 말이다-출판사 탓인가, 작가 탓인가). 용과 소년의 모험은 어떻게 끝날지 모르겠다. 초등학생 4학년(올해 6학년)이 품은 문제의식이 가끔 용의 불꽃처럼 우릴 자극한다. 하지만 어떤 분이 지적하셨듯이, 아직 대화체나 어투는 조금 어색하다고 한다. 음, 나는 읽어봐야 아는 직성이니 일단... 보류하자. 

 

 (크루세이더라는 작품은 이전에 올렸으니 생략)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hmk406 2011-09-04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초등학생입니다.
그리고 조선일보 어린이 판타지 문학상에 도전하려고 하는데...
아무래도 어려울것 같네요...
(그래도 도전은 해봐야겠지요?)

starover 2011-11-12 16:16   좋아요 0 | URL
저도 습작을 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써보세요. 안 된다 하더라도 도전은 해야 합니다.
 

 나는 번역과 글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이번 달에 나온 번역과 글에 관련된 책 몇 가지만 골라 써 본다. 

  

 이 세상엔 글쓰기에 관한 책이 매우 많다. 그래서 어떤 것이 진정한 글쓰기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딱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일단 써 보라"라는 것이다. 누구도 깊은 생각 후에 조심스럽게 펜을 들라고 초보자들에게 말하지 않는다. 일단 무조건 써 봐야 한다. 그 후에 문장에 어떤 성질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생각하고 메모하고 정리하고 쓰는 것. 곧 글쓰기의 습관을 들이는 것.그것이 바로 글쓰기의 모든 것이다. 나는 이런 책들을 보면 항상 목차와 책 소개를 보고 관심을 가진다. 이 책에 담긴 노하우들만 쏙 빼오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글쓰기의 모든 것』의 저자는 어떻게 독자들을 설득할지 궁금하기도 하다. 

 

  

 김탁환, 하면 떠올리는 것이 있다. 바로 '이야기'이다. 그는 매년 두 세 편의 장편 소설을 내놓는다. 사람들은 그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궁금해 할 것이다(마치 스티븐 킹처럼). 『쉐이크(흔들다)』에는 저자가 직접 말하는 스토리텔링의 방법이 제시되고 있다. 또한, 이야기를 만드는 것에 대한 태도와 이야기의 구상에서 완성에 이르기까지 상담을 하듯이 친절하게 이끌어 준다. 이야기꾼이 진심을 담아 만든 이야기는 어떤 장르라 할지라도 사람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법이다. 김탁환 작가는 "이야기꾼이 된다는 것은 나만의 벽을 허물고 세상과 만나는 것"이라고 한다. 이야기꾼은 혼자서 독자에게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와 세상과 함께 의사소통하는 존재이다. 그 산 증인이 바로 김탁환 작가가 아니던가. 

  

  

 사실, 글쓰기나 독서에 대한 문제보다는 번역에 대한 문제가 더 많다. 번역은 다른 사람의 글을 기반으로 한 번역자만의 순수한 작품이다, 번역은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의 글을 '바꾸어놓은 것' 뿐이다, 라는 번역의 정의부터 번역 작품의 완성까지, 그 과정은 미로나 다름 없다. 아마 그 미로에서 한참 동안 헤매며 머리를 쥐어뜯은 사람이 바로 김욱동 분일텐데, 이 분은 『5분 서양고전』의 작가이자 영미문학 전공 교수로서,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번역/해설했다. 그리고 항상 시대마다 존재하는 오역의 원인을 밝히는 동시에 번역에 대한 수많은 논쟁들에 대해 한 번역자로서 의견을 토한다. 확실히, 궁금해지기도 한다. 번역에 대한 말은 번역가만이 할 수 있으리라. 『번역에 살고 죽고』 이후 오랜만에 번역에 관한 제대로 된 책을 만난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새 8월의 중반이 되었고, 꿈만 같던 방학도 거의 끝나간다. 나는 마지막 여유를 짜내어 이 글을 써 본다.  

  

 난 단편집과 장편소설 둘 다 좋다. 어떨 땐 단편집이 좋고, 어떨 땐 장편 소설이 좋다. 그런데 왠만한 장편소설도 『4페이지 미스터리』처럼 나를 끌리게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 책은 제목 그대로 4페이지짜리 미스터리 소설을 모아놓은 단편집이기 때문이다. 그런 4페이지 소설들을 60편이나 모아놓았다. 과연 저자는 어떤 방식으로 미스터리를 압축했을지 궁금해 진다. 이전에도 이런 부류의 책을 본 적이 있었는데, 요즘엔 이런 책이 안 나와서 좀 아쉬웠다. 그런데 4페이지 소설이 등장하니 반갑다.  

 오랜만에 요시토모 바나나의 새로운 소설을 본다(역시 바나나는 민음사인가). 『그녀를 위하여』가 네이버에 연재되었을 때부터 그녀를 유심히 보았다. 전작 표지가 단순한 색깔의 산뜻한 분위기라면 이번 작품의 표지 분위기는 다채롭고 화려하다. 이 작품에서 그녀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역시나 치유다. 제목에 나오는 '시모키타자와'는 '젊은이의 거리'라고 불린다. 작가는 실제로 이 곳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의 '사람'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자. 

 『우리들의 7일 전쟁』은 호소력을 가지고 있는 소설이다. 재미와 감동, 그리고 사회 비판을 동시에 가진 소설은 대체로 힘이 있다.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힘. 20년 동안 29권의 '우리들' 시리즈를 만들게 한 전설적인 책이다. 어른들의 권위에 저항하여 7일간의 투쟁을 한 십대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청소년 소설치고는 굉장히 저항적으로 나간다. 이 소설은 아이들의 승리보다는 어른들의 깨달음을 결말의 중점으로 둔다. 27년 동안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것은 무슨 이유일까? 

   

 기억하는가, 이윤기 작가를? 우리는 보통 지나간 일, 그리고 죽은 사람이 어떤 것이든 금세 잊는다. 숭례문 방화, 천안함 사건, 태안 기름 유출, 연평도 사건....... 박완서, 이윤기 등의 죽음(나로서는 주제 사라마구의 죽음도 더한다)...... 결국 다 잊혀 간다. 그러나 그들이 남겨 놓은 것들을 통해 우린 다시 그들을 기억할 수 있다. 『봄날은 간다』는 이윤기를 위한 책이다. 그러나 결코 이윤기만이 주인공이 아니다. 이 책은 그를 기억하려는 후배 소설가들이 합작한 의미있는 책이니까.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이윤기 작가의 대표작 두 편을, 2부는 이윤기 작가의 후배들의 소설 다섯 편을, 3부는 이윤기 작가의 후배들의 에세이 다섯 편을 담고 있다. 이윤기 작가의 아름다운 에세이를 비롯하니, 이 책은 차라리 소설보다는 에세이집에 가깝다. 

 『신의 궤도』는 배명훈의 첫 장편소설이다. 신과 관련된 SF 소설이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자신의 작품에 스스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짬뽕이라기보다는 종합 선물 세트이다. 서로 엄격히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한 규격 안에 들어가 질서를 이루는. 이 작품은 온갖 상상력과 장르의 종합 선물 세트이다. 처음 그를 읽는 독자도 매혹시킬 수 있을까, 그는?  

 꽃의 나라는 아름다울까? 문득 궁금해진다. 적어도 그 아름다움과 다채로움에 위로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한창훈 작가가 8년 만에 내보이는 장편소설 『꽃의 나라』는 많은 폭력을 보여준다. 어른들이나 아이들이나 가릴 것 없이, 그들은 그들만의 상처에 괴로워한다. 난 끊기가 없어서 그의 연재글도 안 읽었을 테지만, 책소개를 보면 광주항쟁에 관련된 내용이라고 한다. 그것도 저자가 직접 겪었던. 그래서 난 이 책을 일종의 자전적인 소설로 보고 싶다. 고등학생인 '나'와 국가의 폭력에 저항하는 사람들....... 

  

 생텍쥐페리의 편지집을 읽은 이후로 작가들의 편지집을 읽는 것이 기대가 된다.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그의 편지는 생소하다. 작가에게도 친구가 있다. 친구는 그에게 도움을 주고 어려움을 함께 나눈다. 작품세계와는 달리 편지는 밝고 부드럽다고 한다. 또, 문학과 독서에 대한 토론도 나누었다고 한다. 이 책은 그 중 100편의 편지만 모아서 연대순으로 엮은 것이다. "마지막 부탁이네, 내가 쓴 모든 것을 읽지 말고 불태워주게!"라고 말한 프란츠 카프카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이 이 편지집을 출간했다. 친구의 이 행동은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우리에겐 좋지만, 카프카에겐? 

 

  

  

 이번 책들은 '이면의 진실'을 보여주고 있다. 로마 제국은 겉으로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속에서는 쾌락과 타락의 역사가 판치고 있었다. 이 사실은 익히 알려져 왔다. 그렇지만 우린 그 구체적인 역사를 알지 못했다. 『반역』을 읽으면 로마인들이 검투사의 경기에 열광하는 것을 보았다. 로마 제국 쾌락의 역사엔 '잔인성'과 야만성이 담겨 있었다. 또, 쾌락의 역사에서 성을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 로마 제국에는 음란을 일삼았다. 무엇보다 이 쾌락의 역사에 선봉장이 되었던 자는 로마의 황제로, 『색 광 폭』의 황제들을 연상시킨다. 결국 로마 제국을 무너뜨리게 한 것은 이런 타락함과 무질서한 쾌락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질서한 쾌락은 곧 집단적인 정신의 죽음이니까.  

 한편, 『마하트마 간디 불편한 진실』은 더욱더 충격적인 사실을 제공한다. 성인으로 칭송되었던 마하트마 간디의 불편한 진실이다. 우린 그 동안 그를 완전한 비폭력 운동가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간디는 수많은 인도 청년들을 총알받이로 내몰아 죽음에 내몰았으며 대중 폭동을 조장하고 방치하기도 했다고 한다. 간디의 이면이 조금 충격적이긴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리 충격적인 일은 아니다. 간디도 인간이기에 실수를 할 수밖에 없었고, 또 자신의 정치적 신념이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결정을 내렸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진실이 밝혀진다 해도 간디는 여전히 위대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체코 3부작의 세 번째 책이다. 첫 번째 작품이 '작가가 사랑한 도시'였고, 두 번째 작품이 체코 단편소설 걸작선이라면, 세 번째 작품은 바로 SF 걸작 모음선이다. 체코 SF 소설은 수천 편이지만 그 중 야로슬로프올샤와 박상준이 엄선한 것만을 담아 놓았다. 체코 SF를 알지 못하는 국내 독자들을 위해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였다. 전반적으로 난 이 시리즈가 나온 것만으로도 신선했다. 우리에게 매우 생소했던 동유럽 작가들의 작품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원제 'Rabbit, Run'. 존 업다이크의 소설이다. 사실 래빗은 작품 속 주인공 이름이다. 존 업다이크는 이 소설 외에도 '토끼' 이름을 넣은 소설을 썼다. '20세기 미국문학의 아버지'라는 칭호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은 국내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소설도 한 동안 번역되지 않았다. 이번 소설을 계기로 다시 그의 소설이 현대적으로 재 번역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달려라, 토끼』의 첫 문장을 소개하겠다. 

 "아이들이 백보드를 달아놓은 전봇대 주위에서 농구를 하고 있다. 달리고, 환호성을 오른다. 운동화가 골목길에 완만하게 깔린 자갈을 밟거나 비빌 때마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높이 솟아올라 전깃줄 위 푸른 3월의 축축한 대기 속으로 사라져간다. 신사복 차림의 토끼 앵스트럼이 골목길에 다가와 걸음을 멈추고 물끄러미 바라본다. 키가 6피트 3인치나 되는 26세의 사나이다. 키도 매우 클뿐더러 토끼를 닮은 데라곤 별로 없지만, 넓적하고 하얀 얼굴, 해맑은 푸른 눈동자, 작은 코 밑의 입술을 떨면서 피우던 담배를 무는 모습을 보면 그런 별명이 붙을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별명은 어렸을 때 붙여진 것이다. 그는 그곳에 멈춰 서서 생각한다. 바야흐로 새 세대인 아이들이 나를 밀어내는군." 

  

 P.S: 『천년을 훔치다』라는 소설도 꽤 괜찮아 보인다. 하지만 그다지..... 

 P.S: 내 생각엔 일본 소설이나 국내 소설 중 하나로 신간 평가단 도서 받을 것 같다(마지막 달에). 

 앞으로 남은 4권의 도서가 뭔지 궁금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참사람 2011-08-23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프리트 님, 안녕하세요? 저는 양철북 출판사에서 일하는 편집자입니다.
<우리들의 7일 전쟁>에 좋은 평을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름 아니라 저희 출판사에서 <새 책 소식>이라는 소식지를 발행하는데요. 1면에 <우리들의 7일 전쟁>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 지면에 이프리트 님의 서평을 인용하고 싶은데 괜찮으신지요?

starover 2011-08-23 13:13   좋아요 0 | URL
물론입니다^^
 

  "아이들이 백보드를 달아놓은 전봇대 주위에서 농구를 하고 있다. 달리고, 환호성을 오른다. 운동화가 골목길에 완만하게 깔린 자갈을 밟거나 비빌 때마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높이 솟아올라 전깃줄 위 푸른 3월의 축축한 대기 속으로 사라져간다. 신사복 차림의 토끼 앵스트럼이 골목길에 다가와 걸음을 멈추고 물끄러미 바라본다. 키가 6피트 3인치나 되는 26세의 사나이다. 키도 매우 클뿐더러 토끼를 닮은 데라곤 별로 없지만, 넓적하고 하얀 얼굴, 해맑은 푸른 눈동자, 작은 코 밑의 입술을 떨면서 피우던 담배를 무는 모습을 보면 그런 별명이 붙을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별명은 어렸을 때 붙여진 것이다. 그는 그곳에 멈춰 서서 생각한다. 바야흐로 새 세대인 아이들이 나를 밀어내는군." -존 업다이크, 『달려라 토끼』중.

[출처] 첫문장이 매력적인 소설들|작성자 연어(http://blog.naver.com/chaosmosmook/130071387183




댓글(1)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11-08-20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정말 매력적인 첫 구절이네요. 새 세대의 아이들이 날 밀어낸다니, 얄미워해야 마땅한데도 너그럽게 포용하는 신사의 모습이 그려져요. 무슨 이야기일지 궁금한데요? 도서관에서 얼른 빌려봐야겠어요 :)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작품은 늘어나 있었다. 그의 작품의 칼날은 아직도 살아 있을까? 설마 무뎌진 것은 아닐까? (문득 왜 예전에 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들까?)

   

 조정래의 대하소설은 아직까지 그 힘이 살아 있는 책이다. 그의 세 대하소설을 끝으로, 더 이상 조정래 작가는 대하소설을 쓰지 않겠지만, 이 작품들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또 다른 작품을 빚도록 했다. 그의 대하소설이 그 양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잊혀지지 않은 까닭은 붓칼의 칼날이 매우 날카로웠고, 그 시대 역시 쉽게 베였기 때문이다. 이런 소설이 그의 손에서 또 다시 나올까 싶다.  

 

 조정래 작가의 작품은 '해냄출판사'의 덕이 컸다. 위의 대하소설 세트도, 조정래 작가 초기의 문학을 모은 '조정래 문학전집'도, 이 출판사가 간행했기 때문이다. 『어떤 솔거의 죽음』은 장편소설이 아니라 그의 단편소설 14편을 모아놓은 책이다. 한창 개발 중이었던 1970년대에서 얻은 것 대신 잃은 것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마술의 손』,『그림자 접목』 역시 단편집이다. 결국 이 세 책은 작가의 풍성한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과연 조정래 작가는 『태백산맥』과 같은 대하소설에서 못 푼 이야기를 어떻게 압축하여 풀어내고 있을까? 역시, 나는 이런 짓을 하다 보면 그 작가의 작품이 읽고 싶어진다니까. 알고 보면, 이 짓은 나를 위한 행동이었다.  

  

 『유형의 땅』은 그의 중단편집 중에서 조금 특별하다. 이 작품은 그의 중단편집 중 유일하게, 영어로 번역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영어 제목으로는 『The Land of the Banished』이다. 'banish'가 '유형을 보내다'라는 뜻이 있으니, 작품의 제목의 느낌을 전달하는 데엔 그다지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상실의 풍경』도 여기에 담아본다. 이것 역시 단편집이니까. 여기까지 오니, 나는 조정래 작가의 단편이 내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30편이 넘는 이야기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에는 소설이 아닌 다른 곳으로 나아가보자. 조정래도 인간이기에, 그리고 소설에서는 하지 못하는 이야기가 많기에 그는 일종의 '뒷담화' 같은 책들을 몇몇 출간했다. 물론 뒷담화 이상의 가치가 있는 책이지만 말이다. 특히, 『황홀한 글감옥』은 그의 에세이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으로, 작가가 직접 알려주는 '소설 쓰는 법'이 담겨 있어서 그런가 보다. 하지만 그것도 좋지만 조정래의 인간적인 이야기도 경청해주었으면 한다.  

   

 이제, 드디어 조정래 작가의 단편소설도, 대하소설도 아닌 '장편소설'로 들어가본다. 내 생각엔 요즘 조정래 작가의 문학 스타일이 장편소설로 바뀐 것 같다. 물론 대부분 예전에 쓰여진 작품이지만. 왜 그의 작품은 계속해서 개정판이 나오는 걸까?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것뿐만이 아니라, 그의 작품의 칼날은 아직도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인 걸까? 그 두가지에 더불어 하나 추가해본다. 조정래 작가 자신도 작품을 끝맺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래 『황토』는 중편이었지만 그의 손길으로 장편으로 태어났다. 『사람의 탈』은 『오 하느님』이라는 제목이었지만 전자로 바뀌었다.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조정래 작가는 '인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더 자세히 말하면, 이 시대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아까 전에 다룬 조정래 문학전집에 중복으로 다뤄질 수 있다. 그런데 해냄출판사라는 운율이 있지 않은가? 조정래의 얼굴을 계속 본다. 『비탈진 음지』와 같은 형식의 표지가 마음에 든다. 모두가 장편소설이라고 대문짝에 써 놓았고, 문간 구석에 조정래 작가의 얼굴이 있다.    

  

 엄밀히 말하면, 『허수아비 춤』이 그의 가장 최신작이다. 『상실의 풍경』이나 『비탈진 음지』와 같은 신간들은 모두 예전 작품에 대한 개정판이기 때문이다. 놀라운 사실은 약 10개월 전에 출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허수아비가 아직도 춤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소설은 자본주의와 돈의 허수아비가 된 인간들과 그에 맞서려는 인간들의 모습을 대조하여 보여주고 있다. 나는 이 소설을 보고 나서 아직도 조정래 작가의 칼날은 무뎌지지 않았다는 것을 느꼈다. 물론 모든 칼은 시간이 흐르면 녹슬고 무뎌지는 법이다. 붓칼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칼을 쥐고 있는 자가 계속 칼을 갈고 다듬으면 그 칼은 오랫동안 그 날카로움을 유지할 수 있는 법이다. 결코 그는 이전 작품을 잊지 않았다는 사실이 다시 떠오른다. 언젠가 이 책도 더 다듬어질까. 어쨌든 그는 그 당시 시대에 대한 책을 출판한다. 모든 시대에 유효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작품을 다듬는다. 언젠가 그의 작품들 중에서 '모든 시대, 모든 인간'에게 맞는 보편적인 걸작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글을 다 써 보고 나니 조정래의 책들이 꽤 많았다. 그리고 이 작가의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단편들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