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의 힘 - 지리는 어떻게 개인의 운명을, 세계사를,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가 지리의 힘 1
팀 마샬 지음, 김미선 옮김 / 사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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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소 투박한 번역인 『지리의 힘』의 원제는 'Prisoners of Geography'이다. 직역하자면, '지리의 죄수들' 정도로 된다. 이 책의 요지는, 현존하는 역사는 지리에 의해 결정되었고, 기술이 발전한 오늘날까지도 지리는 세계 정세에 강력한 힘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리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자는 한 명도 없다. 인류의 일대기는 지리에 매인 채, 그것을 이용하거나 극복하려는 부류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의 굵직한 나라나 대륙을 선정해서 그 나라의 역사에 지리가 미친 영향을 읽다 보면 현재의 국면이 꽤나 이해가 된다.

 

 첫 번째 장인 중국 편을 읽고, 중국이 왜 티베트나 네팔 등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나라의 독립 여부에 그토록 집착하는지 알 수 있었다. 히말라야 산맥으로 인해 인도로 접근이 어려우나, 반면 인도는 티베트를 통해 강물의 수원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9장인 인도와 파키스탄을 읽고, 두 나라가 그토록 오랜 갈등을 벌이는 까닭은 정치적 영향도 있었지만, 3000km가 넘는 국경을 맞대고 있는 탓도 있었다. 국경선의 길이와 위치가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해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인 것은 분명하다. 애시당초 한국이 선진국으로 부상하기 전부터 미국과 소련의 주목을 받은 것도 그 특유의 위치 때문이 아닌가? 일본이 독특하게 발달한 이유도 외부의 침략을 받지 않은 섬이기 때문이 아닌가? 동아시아 삼대장은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지리에 의해 운명이 결정된 모범(?) 사례라고 보아야 한다.


 지리에 매인 나라의 대표적인 경우는 러시아이다. 시베리아부터 동유럽에 이르는 방대한 영토를 러시아는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싶었다. 그로 인한 혜택을 많이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부동항(얼지 않는 항구)에 대한 갈망이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이어졌고, 크림 반도를 향한 욕망이 우크라이나와의 갈등을 유발했다. 이밖에도 남아메리카, 아프리카는 자연적 지리로 인해 발전이나 문화적 교류의 가능성이 끊겼고, 이는 그들의 성장을 지연시켰다. 중동은 서양의 인위적인 국경선 긋기와 이슬람 종파 갈등으로 오랜 갈등을 맺고 있다. 여러모로 '지리의 죄수들' 내지는 지리 환경의 피해자라고 보아도 큰 무리는 없다.


 반면, 미국은 지리를 풍요롭게 누린 몇 안 되는 나라들 중 하나이다. 천연자원이 풍부한 땅을 적절히 매입한 덕분에 자급자족이 가능하고, 각지에서 몰려오는 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넓은 국토를 보유했다. 그러면서도 방대한 해안선은 인접한 국가들인 캐나다와 멕시코가 분담해 준다. 물론 멕시코와 맞닿은 국경으로 인한 분쟁이 현재 미국의 뜨거운 감자로 여겨지고 있으나, 역사를 통틀어 보았을 때, 지리적으로 가장 축복 받은 나라가 아닐까 싶다. 보통 국가들은 지리적 조건이나 환경으로 발전이 가로막힌 경우가 많은데, 미국은 정반대의 결과를 받았으니 말이다. 대서양과 태평양에 동시에 영향력을 펼칠 수 있으니, 과연 서방 세계의 패권을 차지할 만하다.


 21세기의 인류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했다. 교통과 통신의 발달으로 지리적 제약이 그다지 치명적이지 않다. 그러나 그것을 아예 배제해서는 안 될 말이다. 지금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첨예한 갈등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가치관의 차이'라거나 '원래 그런 것이다'라고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다양한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나와 상관 없는 것처럼 여겨진다고? 한 번도 우리는 지리에서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작든 크든 국지적인 갈등은 다른 곳으로 확산되기 마련이다. 세계화 시대인 요즘, 물리적 거리가 영향력에 비례하지 않는다. 인류는 필연적으로 세계에 매여 있으나, 그것을 누리기 위해서는 세계를 더욱 알아가고, 사랑으로 품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기심은 생존 확률을 반감시킬 뿐이다. 아마존의 환경 파괴와 중동의 종교 갈등, 아프리카의 빈민들, 유럽 연합의 엇갈리는 이해 관계, 세계 곳곳의 난민들에 대해 고민하고 공존의 방향을 모색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모든 사안은 답답한 일들일 뿐이다. 그러나 풍성한 시각을 가지고 유한한 세계에 놓여짐을 감사할 때, 비로소 더 큰 꿈을 꿀 수 있다. 그대들이 세계를 누리는 자들로 하루하루를 기쁨으로 살아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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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터에서
김훈 지음 / 해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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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의 조각이 모여 소설이 된다. 문학이 삶을 반영하듯, 사소함이 차곡차곡 쌓여 역사를 만든다. 『공터에서』는 분석해야 한다는 강박을 빼고, 창작자가 생각한 파편을 조립해야 책의 의미가 완성된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반드시 써야 하는 장면을 점 찍어 두고 상상력이라는 선을 이용해 그것을 잇는다. 점 찍기는 너무나 간단하고 열띠지만, 그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선 긋기는 고통스럽고 의욕을 떨어뜨린다. 이 소설의 아쉬운 점이라고 하면, 그 선을 긋는 과정이 다소 선명하게 노출된다는 것이다. 역사의 특정 장면에 대한 묘사는 생생하나, 독자가 집중해야 하는 후반의 서사는 얇다. 작가의 의도일지는 몰라도 개인사로 넘어온 이후의 이야기는 파편적이다.


 박상희에 대한 태도도 다소 아쉽다. 이 소설에서 그녀는 매우 완벽한 인물로 등장한다. 서양 미술을 전공하고 미술 학원 강사를 하면서, 군대에 간 마차세를 기다려 주는 한편, 결혼한 이후에도 큰 다툼 없이 남편을 보필한다. 그녀가 생명을 잉태하는 부분에 대한 묘사는 탁월하나, 별다른 굴곡 없이 마차세를 지지하는 박상희의 존재가 어쩐지 판타지처럼 여겨진다. 능력, 성품, 사랑, 모든 점에서 완벽한 이 인물은 존경 받기 합당하나, 그가 그리는 세계에 과연 그런 인물이 몇이나 되었을까? 그리고 그런 여자가 마차세와 같은 불완전한 존재를 품은 것은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박상희라는 캐릭터를 너무나 아꼈기에, 나는 그녀의 연약한 부분과 약점을 더 보고 싶었다. 그녀에게 상처가 없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지만 마동수, 마장세, 마차세로 이어져 내려오는 한국 현대사의 단면은 촘촘하게 구현되어 있다. 흥남 철수와 베트남 전쟁과 같은 굵직한 역사의 기록과 처절하기 짝이 없는 개인사가 교차된다. 분명히 나는 역사적 사건보다 마차세가 치러야 하는 삶이라는 전쟁에 더욱 몰입했다. 그 시절 모두가 힘들게 살았건만, 그중에서도 마차세는 치매에 걸려 쪼그라드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보필하다가 자신도 요양원에 들어가는 이도순을 지켜봐야 했고, 다니던 회사가 부도를 맞아 새로운 직장을 구하려 하지만 매번 좌절했으며, 오장춘의 꾀임에 넘어가 형의 불법적인 사업에 휘말렸다. 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에 나는 가슴을 졸였다. 작가는 역사적 사건의 아주 작은 순간까지 포착하다가, 한 남자의 개인적인 일대기에 대해서는 시야를 넓힌다. 두 축의 이야기 속에서 사소함은 축적되고, 그것이 마차세의 삶을 이룬다.


 마차세와 마장세의 삶에서 그들의 결핍을 본다. 마차세는 자신을 지우려 했던 어머니에 대한 원망을 간직했고, 마장세는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아서 가족을 떠났다. 그러나 마차세는 누니라는 딸을 통해 그것을 해소했고, 마장세는 린다와 결합하지만, 그녀의 떠남으로 인해 상처가 악화된다. 각 인물이 통과한 삶의 여정이 새옹지마 같았다. 마차세는 우여곡절 끝에 결국 화목한 가정을 이루었고, 마장세는 사업으로 잠시 성공을 얻은 듯 했지만, 그 실체가 들통나자 모든 것을 잃었다. 비슷한 출발점에서 시작했는데, 같은 역사를 겪었는데, 형제였던 두 사람은 왜 다른 운명을 맞이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독자는 사소한 것들에서 그 단서를 찾아야 한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모조리 사소함에서 비롯된다. 다른 사람의 삶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 수고로움을 감내하는 이들에게만 주어진 현재 너머를 보는 여유가 주어진다.


 마동수, 이도순, 마장세, 마차세, 박상희, 누니가 통과했던 현실이 지금과 다른가? 어쩌면 격동의 시기였던 과거보다 오늘이 훨씬 더 불안정하고 위태롭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대통령 암살, 독재라는 거대한 암흑은 지나갔으나, 개인의 삶에 드리운 먹구름은 더 치명적이고 위험하다. 벌이가 안정되고 기술이 발전했지만, 행복은 찾아왔는가? 각자에게 사랑할 여유가 있는가? 우리 모두는 여전히 공터에서 어떤 해답이 나타나길 기다리며 방황하고 있다. 진정한 사랑과 행복을 찾아 헤매지만, 실마리를 실시간으로 놓치고 있다. 일상의 사소한 순간에 집중할 수밖에, 거대한 서사에 목을 매기보다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여전히 세상은 무섭고, 달아날 수 없다. 우리가 마주해야 할 공포를 직면하고, 맞설 수 있기를. 감당했던 하루하루가 쌓여 역사가 되는 기적을 경험하는 날이 올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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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과 예배 종교개혁자들과의 대화 시리즈 1
안재경 지음 / SFC출판부(학생신앙운동출판부)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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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의 역사와 예배의 변천사를 쉽게 파악할 수 있게 쓰였다. 종교개혁은 사실 회복이라는 구절이 와 닿는다. 우리의 예배도 언제든지 본질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언제나 말씀 중심으로 돌아가야 함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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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하나님 믿음의 글들 276
안재경 지음 / 홍성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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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직접 선물 받은 책은 『고흐의 하나님』이 처음일 거야. 미술에 조예가 없는 나는 고흐의 이름만 들었지, 그의 작품에 담긴 정서와 의미를 헤아릴 수 없었어. 고흐가 신학교까지 갔다가 쫓겨났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어. 하나님을 사랑했고, 가난한 자들을 품었기에 그들처럼 살고자 했지. 세상 모든 것을 사랑했기에 거듭되는 발작 속에서도 그림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리 아름답지 못한 작별임에도 기꺼이 받아들였나 봐. 혹자는 그의 인생을 실패했다고 여길지 몰라도, 그의 걸음걸음마다 하나님이 동행했다면, 결과만으로 빈센트의 인생을 평가하기에는 무리야.


 이 책은 고흐의 작품을 테마별로 전시하고, 친절하게 해설해 주는 큐레이터 같아. 전에는 눈여겨보지 않았던 그림들의 의미가 선명하게 박혀. <감자 먹는 사람들>에 성찬 공동체가 담겨 있다는 사실, <별이 빛나는 밤>에 주님과의 합일을 꿈꾸는 소망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조금은 다르게 보이는 것 같아. 빈센트의 삶과 그의 작품을 별개로 놓을 수 없어. 언어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 익숙한 나는 여전히 그림을 해석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지만, 어쩌면 미술이야말로 AI가 흉내낼 수 없는 인류 최후의 보루라는 생각도 들어. 화법이나 기풍은 흉내낼지 몰라도 그 안에 영혼이 없달까? 인생이 없는 존재이기에 어떤 그림에도 자신을 투영할 수 없겠지. 새삼스럽게 주어진 삶에 감사하게 되는 순간이야.


 빈센트의 삶을 들여보고 있노라면, 조용필의 <바람의 노래>의 가사가 떠올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난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그래서 그는 유럽 전역을 걸으며 마주한 세상을 영혼에 담았어. 일본의 자연 친화적인 사상과 불교에 매료되기도 해. 거리를 방황하는 과부를 거두어 그녀와 그의 아이를 책임지려 하기도 해. 하지만 그의 삶은 결점투성이였어. 동생 떼오의 집에 머무르며 손님들에게 화를 퍼부었어. 누구와도 잘 어울리지 못했고, 그래서 평생 혼자였지.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겠다는 다짐은 빈센트에게 엄청난 절망이었을 거야. 눈앞의 사람도 사랑할 수 없는 무력함 속에 놓였겠지.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이 통과해야 하는 믿음의 여정도 고흐와 같을지 몰라. 주님께 내 삶을 드린다고 결단하고, 그분의 사랑을 닮고 싶다고 간구하지만, 전혀 변하지 않는 현실 앞에서 좌절하지. 종교 공동체는 나를 인정해 주지 않고, 사람들은 나를 피하기도 해. 믿음이 충만해졌다가도 삶의 폭풍 속에 꺾이기도 하고, 정말로 하나님이 살아 계신지 의심이 들기도 하지. 그럴 때 나는 무슨 말을 해 주어야 할까? 막연하게 기도하고, 기다리라는 말을 해야 할까? 조심스럽게 제안하고 싶은 말은, 나의 것을 정말 모두 내려놓았는지 묻고 싶어.


 고흐에게는 그림이 자신의 정체성이었겠지. 이것을 포기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을 거야. "주님, 당신을 위해서라면 내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화가로서의 삶도 포기하겠습니다"라는 결단을 내리는 일은 어려웠을 거야. 그런데 신기하게도, 바로 그때부터 하나님은 고흐를 사용하기 시작했어. 더 이상 자신의 힘과 의지로 꿈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은사를 쓰기 시작한 거야. 주님께 내 삶을 드리는 것은 모든 소유와 욕망을 포기하고 교회 안으로 들어가라는 의미가 아니야. 그런 삶도 참 귀하지만, 자신의 구원밖에 이루지 못하지. 고흐는 다시 세상에 보내졌어. 외로움과 궁핍함이 함께 했지만, 그렇기에 낮은 자들과 위태로운 자들의 마음을 이해했을 거야. 그리고 비로소 그의 붓은 자신의 뜻이 아닌 그리스도를 드러내기 위해 사용되었지. 누군가는 렘브란트처럼 기독교적 소재를 도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흐의 작품을 기독교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할 거야. 그 말이 맞아. 하지만 다르게도 볼 수 있지. 그것이 예술의 특징이야. 정답을 강요하는 이 세상의 원리 속에서 정해진 답은 없다고 외치는, 시대의 흐름에 정통으로 거스르는 것이 문화의 옷을 입은 예술이 쓰임 받는 방식이겠지.


 삶의 이유에 대해 고민하고 있니? 사실 정답은 나와 있어. 사랑하기 위해서야. 그러나 막상 세상에 발을 들이면 말로는 너무 쉬웠던 사랑이 삶으로 옮기기에는 너무 어렵다는 걸 알게 돼.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해. 때로는 내 힘으로 안 되는 것이 있음을 인정해야 하니까. 언제나 정답을 알고 난 후에 실천에 옮기는 것이 지혜롭고, 그렇지 않은 자를 미련하다고 말하는 추세야. 먼저 사랑을 받아야만 그에 대해 반응하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세대야. 그러나 항상 사랑은 먼저 마음을 여는 자에게 허락되더라. 사랑이 삶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사랑의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납득하려면, 결국 주님의 시선을 갖출 수밖에 없어.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한 유일한 존재니까. 전부를 이해하지 못해도 일단 순종하는 자에게 사랑의 실마리가 주어지더라. 기꺼이 실패하고, 기꺼이 상처 받고, 기꺼이 낮아지고, 기꺼이 손해 보는 네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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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의 생각수업 - 세계 최고의 대학에서는 무엇을 가르치는가? 세계 최고 인재들의 생각법 1
후쿠하라 마사히로 지음, 김정환 옮김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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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예상했던 내용이 아니긴 했지만, 신선한 전환점을 주었다는 점에서 독서의 의의는 충분했다. 테스트 결과 나는 전체론에 조금 가깝다. 경제 발전과 환경 보호의 딜레마, 예술에 대한 토론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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