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 개정판
양귀자 지음 / 쓰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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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이 모순으로 가득함을, 인간은 쉽게 인정하지 못한다. 어떻게든 인과 관계를 설정하고, 합리적인 이유를 덧붙여서 만사를 설명하려고 한다. 하지만 실로 삶이란 설명하려 할수록 그럴 수 없음이 드러난다. 어떤 사람을 사랑했던 그 이유가 미움의 계기가 되고, 누가 봐도 보필인 사람을 멀리하며, 가난한 자가 부유한 자보다 행복에 가깝다. 무엇보다 각자의 인생에게 반대편 상황에 대한 동경이 있다. 부족한 아비를 둔 자식은 그 아비를 외면하려고 하나, 끝내 그를 포기할 수 없고 그를 닮아간다. 가난에 진절머리가 난 자들은 부자를 부러워하지만, 부자는 걱정 없이 살고 싶어 한다. 인간에게는 자신의 힘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결핍이 있고, 그것을 몸소 체험하고 나서야 이해한다.


 『모순』은 지극히 평범해 보이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구한, 정상적인 인물로 보이나 속은 모순으로 찬 안진진의 일대기를 그린다. 그 삶의 편린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지나치게 솔직한 것에 거부감이 들기도 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들어주느라 지치기도 하지만, 끝내 그녀가 통과하는 비극에 참여하게 된다. 마치 그것이 모든 인간의 운명인 듯이 말이다. 이별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재회도 갑작스럽게 일어난다. 그 상황에서 진진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바보 같은 선택을 반복할 뿐이다. 누구한테 들려주어도 어리석었다고 말할 짓만 벌인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라는 다짐을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어쩌면 이 오래된 소설은 안진진의 작은 다짐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무미건조했던 그녀는 담담하게 가난에 저항했고, 마음이 여유로워 보였던 이모를 따른다. 자유로운 아비를 끝내 사랑하는 어머니, 용서를 넘어서 불구나 다름 없는 남편을 돌보는 어머니를 거부한다. 나영규는 철저히 계획 속에서 자신을 사랑했고, 김장우는 온 마음을 다해 자신을 사랑했다. 안진진은 어떤 것은 선택으로, 어떤 것은 받음으로 엇갈린 운명을 맛본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버지께 돌아가고, 이모부와 다름 없는 나영규를 선택한다. 행복에 잠겨 있는 줄 알았던 이모는 불행과 불안 속에서 침식되고 있었다. 진상이 밝혀졌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그렇게 상실을 겪음으로 안진진은 인생이 모순투성이임을 이해한다.


 아마 인간이 맞닥뜨리는 가장 큰 모순은 이것이 아닐까. 죽음을 받아내는 것은 산 자의 몫이다. 극복할 수 없는 죽음의 고통과 아픔을 견디는 일은 오직 생존자의 영역이다. 죽은 자가 통과한 영역을 끝내 남겨진 자는 알 수 없음이 결코 해결되지 않는 모순이리라. 세상살이에 놓인 우리는 종종 이러한 논의를 잊고, 외면한다. 마치 죽음이 나와 전혀 무관한 일인 것처럼, 타인의 고통과 몰락이 그들 자신의 모순으로 인한 것이라고 여긴다. 산 자들끼리 죽음에 대해 나누지 않는 것이 인간의 가장 큰 모순이다. 아마도, 죽음이란 겪고 나서야 이해되는 인생의 모토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유일한 관념이기 때문이리라. 


 오늘날 많은 이들이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인생의 격언으로 삼는다. 마치 주어진 현재를 마음껏 즐기라는 선조들의 조언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라틴어 경구가 완성되려면 반드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가 동반되어야 한다. 내가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현재는 너무나 소중해진다. 누구도 지금을 붙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는 세상을 꿈꾼 자에게만 진정한 오늘이 주어진다. 그저 눈앞의 즐거움만을 따르며 산다면, 반드시 자기 안의 모순과 직면하게 된다. 그때 좌절하고 아예 무너져버리느니, 우리의 일상을 적당한 무지와 적당한 가난과 적당한 고통으로 채우는 것이 오히려 행복에 가깝다. 완벽하게 안전하고, 완벽하게 건강하고, 완벽하게 편안한 상태를 꿈꾸며 살아간다면, 글쎄, 그 꿈이 당신을 좀먹을 것이다. 인간의 자체적인 모순과 불완전함을 생각한다면, 조금은 더 미련하게 살아가도, 조금은 더 손해 봐도, 조금은 더 따뜻하게 지내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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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돈키호테 (꿈의 책장 에디션)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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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쩐지 긴 글을 읽고 싶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두꺼운 책에 설렜다. 그 방대한 이야기가 주는 도전, 모험을 시작할 때의 설렘, 그리고 여정의 끝에 성장하게 될 나에 대해 기대했다. 그러다 나는 긴 글을 쓰고 싶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시작된 무모한 돌진은 현재진행형이다. 현실이라는 것에 치여 책 읽을 시간도 없다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한가로이 1000페이지가 넘는 소설들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고, 아무도 끝까지 읽지 못하는 긴 소설을 써 왔다. 때로는 이 여정의 목적이 무엇인지 고민이 되기도 했다. 이 모든 활동이 소일거리 내지는 자기만족을 위한 무의미한 일인가 회의가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야 납득하는 것은, 내가 접했던 모든 책이, 내가 만들었던 모든 이야기가 저마다의 의미가 있다는 사실이다.


 『나의 돈키호테』를 도서관의 서가에서 고른 이유는 나 역시 『돈 키호테』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나 『성경』처럼 나의 인생을 지대하게 바꾸지는 못했어도, 어린 시절 나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에 상당히 일조했다. 소설에 담긴 모험들을 나 역시 사랑했고, 돈 키호테가 지향하는 가치를 마찬가지로 동경했다. 처음에는 산초의 편에 서서, 엉성하기 짝이 없는 기사의 여정에 코웃음을 쳤지만,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나며 변화하는 그의 모습에 동화되었다. 이야기의 힘은 그런 것이다. 미련한 자조차 현명하게 만들어 버리고, 무모한 자를 용감하게 만든다. 누군가의 인생에는 그러한 힘이 있다. 각자의 삶은 하나의 이야기가 되고, 그것은 크든 작든, 좋든 싫든 타인의 삶에 영향을 준다. 설령 그 사람과 전혀 무관하다 할지라도 말이다.


 『나의 돈키호테』는 『돈 키호테』라는, 세르반테스가 탄생시킨 불멸의 고전을 읽어야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나도 아주 오래 전에 작품을 읽었기에 선명하지는 않지만, 이 소설이 지향하는 바는 단순히 세르반테스를 '반태수'로, 세비야를 '서울'로 일대일대응시켜 번안하는 작업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불가능해 보였던 여정이, 평범하고 때로는 한심하게 보이는 인물들이 그 끝에서 성숙해진다. 그 안에 수많은 인생들이 스쳐 지나가고, 어떤 삶은 인연이 되어 또 다른 생명을 낳기도 한다. 진솔의 도전은 그녀의 기억 속 돈키호테였던 장영수에게 닿아, 마침내 그조차 변화시키게 된다. 그들이 함께 만드는 이야기는 담백하고 소소하지만, 분명한 울림을 준다.


 아마 여정의 중간에서 힘듦을 느끼는 독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진솔의 고민과 그녀가 마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체적인 흐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문을 품기도 했을 것이다. 바로 내가 그랬으니까. 하지만 이야기가 완성되고 나서야, 그 서사들이 필요했음을 인정한다. 어떤 이야기던 간에 결말을 무시한 채 판단할 수 없다 했던가, 한 권의 책을 덮기 전까지는 섣불리 평가할 수 없고, 인생이 끝을 맺기 전까지 함부로 잣대를 매길 수 없다. 각 등장인물의 고민을 과소평가했던 나 자신을 반성한다.


 한 권의 여정이 끝나고 나면, 우리는 다음 여정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마치 멈추고 싶어도 삶은 지속되듯이, 이야기는 끝나지 않고 이어진다. 그러므로 배움은 결과가 아닌 과정 속에 있다. 돌아볼 틈도 없이 나는 인생의 또 다른 모험 속으로 휘말린다. 처음에는 그것이 버거웠으나, 이제 그 모험을 즐길 줄 알게 되었다. 나의 매 순간이 기쁨으로 가득하다. 찰나에 남아 있던 불안마저 기대로 바꾸게 되었다. 돈 키호테로 살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고? 한번이라도 마음을 열고, 도전해 보는 것은 어떤지. 나이와 상황 때문에 두렵다면, 그것도 존중한다. 가난과 실패보다 우리의 인생이 크다. 어떠한 역경도 여정을 끝낼 만큼 강력하지 않다. 이야기의 한 부분일 뿐, 그것이 지나고 나면 또 다른 결말이 우리를 기다리겠지. 우리 모두 세상을 이루는 귀중한 캐릭터이다. 각자의 이야기가 경청되고, 주목되는 세상이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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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균류 - 신비한 버섯의 삶
로베르트 호프리히터 지음, 장혜경 옮김 / 생각의집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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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균류 및 버섯의 생태에 대해 읽고 있자면, 절로 겸손해진다. 감각의 노예인 인간은 지각되는 것에 너무나 취약하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전부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나만 잘 살면 돼"라는 주문에 스스로를 세뇌시켜, 지구상에서 가장 생존에 유리한 '공존'을 실현하는 균류를 하찮게 여긴다. 균류의 세계는 굉장히 미세하고 섬세해서 잘 인지되지 않지만, 그것은 분명히 실재하고 눈에 보이는 세계보다 훨씬 더 크다. 벽 너머와 바닥 아래의 세상을 전혀 모르는 인간은 햇빛 아래에만 생명이 있다고 착각한다.


 균류는 분명 동물과 식물도 아닌 그 무엇이다. 그것은 죽음을 이용하여 생명을 피운다. 선사시대의 대멸종이 균류에게는 낙원이었다. 방사능과 극지방, 사막이라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것은 생존한다. 그들은 물질을 분해하고, 생물을 감염시키기도 하지만, 생태계를 회복시키기도 한다. 한때 인간은 이것을 식물로 오해하기도 했고, 분류를 어려워 했으나, 이제야 실마리를 잡아가고 있다. 버섯은 실로 인간의 오랜 친구였다. 트러플, 목이, 느타리 등 희귀하거나 익숙한 버섯들이 줄줄이 소개된다. 어떤 것은 독성이 있으나, 어떤 것은 인간의 병을 치유한다. 


 균류의 세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자연의 신비는 미처 다 드러나지 않았는데, 이것이 앞으로의 인간에게 어떤 유익이 있을지 기대가 된다. 한편, 그 지식들이 생태계에도 좋은 영향을 끼쳤으면 한다. 각 동식물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어떻게 하면 보존할 수 있는지 알게 되면 환경을 보호하는 데에 조금 더 진심이 되지 않을까? 지식과 기술이 그동안 환경을 파괴하는 데에 이용되었지만, 역설적으로 지식과 기술이야말로 지금은 자연을 지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다. 여전히 우리가 모르는, 그러나 실재하는 세상이 있고, 각 세대는 그것을 보존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인간은 멸종해도 균류는 살아남을 것이다. 소위 '인류세'를 논의할 때, 동식물이 주인공이 되는 문학 작품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다고 여겨진 세상에서도 어떤 생명은 살아 남았다. 그리고 그 생명으로부터 수많은 종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니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극히 사소해 보인다고 그 생명을 우습게 여기면 안 된다. 우리가 아기와 아이의 죽음에 더욱 슬퍼하는 까닭은 한 우주와 같은 가능성이 소멸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지금 인류에게 필요한 시각은 죽음 너머의 생명을 바라보는 일이다. 균류가 물질을 분해하고, 또 다른 생명을 쌓는 토양이 될 것이다. 균류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것의 소중함을 모두가 동의할 때, 또 다른 변화는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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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2-18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핵전쟁이후에도 살아나갈 생명체는 균류와 바퀴벌레 뿐이라고 하는데 정말 엄청난 생명력을 자랑한다고 여겨지네요.
 
화이트 스카이
엘리자베스 콜버트 지음, 김보영 옮김 / 쌤앤파커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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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 하늘 파란 하늘 꿈이

 드리운 푸른 언덕에

 아기염소 여럿이 풀을 뜯고 놀아요

 해처럼 밝은 얼굴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동요는 개사될 운명이다. 아이들이 보는 하늘은 이상 파랗지 않다. 아기염소는 뜯어 먹을 풀이 없어 굶어 죽는다. 태양은 미세먼지에 가려져 뿌옇다. 미래 세대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른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나요? 우리가 선조들이 일으킨 기후 위기에 책임을 져야 하나요?” 어른들은 묵묵부답이다. 그들이 있는 것이라고는 남몰래 버린 쓰레기와 낭비한 물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일이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이 강을 파괴하고, 종들을 절멸시키고, 빙하를 녹이는지 모른다. 대신, 절망적인 소식이 닥쳐오면 누군가를 탓하거나 체념하는 것에 익숙하다. 기후 위기가 현실이 지금, 인류의 구성원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화이트 스카이』의 저자 엘리자베스 콜버트는 사명감을 가지고 세계 곳곳을 직접 누빈다. 나는 생태학 저서를 읽을 , 압도적인 통계 자료나 미래에 대한 암울한 전망에 대해 걱정한다. 그러한 서술들은 현실감 없는 불안을 주기 때문이다. 작가는 나의 우려와 달리, 자신이 방문한 현장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에 집중한다. 그녀는 아시아 잉어를 전기로 차단하는 운하 위에서, 멸종 직전인 물고기를 보호하려는 사막에서, 산호지대를 살리려는 연구실에서, 그린란드의 버려진 얼음 기지 안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기후 위기를 막으려는 이들을 조명한다. 그곳에서 독자는 여러 세대에 걸친 인간의 시행착오와 그것을 복구하려는 노력을 발견한다.


 사실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표지에 적힌인류는 이상 푸른 하늘을 없을지도 모른다 불길한 예언이 아니다.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몰라도 눈앞의 환경 문제를 해결하려는, 추천의 글에 적혀 있듯이뭐라도 해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작가 역시 탄소를 암석으로 전환하기 위해 아이슬란드에 위치한 본사를 찾아가 클라임웍스라는 회사의 취지와 원리를 소개한다. 혹자는그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인간이 환경을 파괴하는 속도는 이미 걷잡을 없어요. 재앙은 예정되어 있습니다라며, 그들의 노력을 폄하할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적대적인 물음에 대해 이렇게 반박한다. “정말 그렇습니까? 지구를 구하려는, 아니 도와주려는 인간의 노력은 정말 부질없습니까?” 그녀는 생태계를 보호하려는 제도적 장치뿐만 아니라, 생물을 지키려는 개인의 사소한 노력도 귀중하다고 대답한다.


 기후 위기에 직면한 세태를 표현한 문장이 있다.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편이 뭔가를 하는 것보다 낫다. 때로는 반대다.”(187) 절멸하려는 종을 살리려는 노력은 분명 가상하다. 그러나 수수두꺼비를 살리기 위해 유전자를 조작하는 것은 과연 유기체를 위한 일일까? 탄소 배출을 막기 위해 대기에 탄산칼슘과 다이아몬드 입자를 뿌린다는 지구공학은 이론상 합리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의 잠재적인 여파를 감히 예측할 있을까? 경우에는뭐라도 해봐야지 상당히 위험한 접근이다.


 그러므로 작금의 인류에게 필요한 것은 지혜다. 어떤 것이 지구를 위한 최선의 선택인지는 지구가 알고 있다. 그린란드의 빙하에는 고대의 눈부터 근대에 쌓인 얼음층, 그리고 현재에도 축적되는 입자들이 섞여 있다. 이를 통해 연구자들은 과거의 추운 기후로 인해 문명이 오랫동안 발전하지 못했음을 추론했다. 지혜란 그토록 자명하고 정직하다. 어떤 기발한 천재 명의 아이디어로도, 눈앞의 이익을 바라보는 집단이 합의한 지성도, 인간의 행복에 관심이 없는 인공지능의 제안으로도 얻어지지 않는다. 인류와 지구의 공생은 양쪽의 입장을 모두 헤아리며, 미래 세대의 안위까지 생각하는 사람들의 지혜로만 가능하다.


  문장을 나와 무관한 것으로 여겨서는 된다. 지혜란 행동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것을 체득한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와 세계관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파란 하늘을 지키는 일이 똑똑한 과학자나 정치가에 달려 있다고 단정 짓지 말자. 자라날 아이들에게 아기염소들과 함께 태양처럼 웃을 앞날을 기대하는 법을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미래 세대가 지켜야 가치에 대해 명확히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기후 위기를 통과하고 있다. 이상 막연하고 막막한 앞날에 대해 우려하는 일은 관두자.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어떤 것도 바꿀 없음을 알면서도, 지구를 위해 인생을 사람들을 책에서 증언한다. 현재의 독자에게 필요한 것은 좌절과 체념이 아닌 희망과 자신감이다. 지구는 당신 덕분에 나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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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이정호 그림 / 알마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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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낙 잘 알려진 책이고 제목도 독특해서 언젠가 읽어 보아야지 하다가 마침내 빠른 속도로 독파했다. 논픽션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딱딱하지 않고 잘 읽힌다. 그러면서도 환자들이 모두 실제로 그 일을 겪었고, 통과하는 중임을 알았을 때 신비로움을 느낀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인간 군상이 있고 그 삶이 하나하나 다름을 다시 한 번 깨닫는다. 24가지 사례에 다소 편차가 있지만, 저자는 애정을 가지고 이 환자들을 대하고 치료하려 한다. 뒷이야기에서는 그들이 어떻게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 보여줌으로써 독자도 그 치유(또는 동반)의 여정을 목격할 수 있게 한다.


 인상 깊은 사례 세 가지만 꼽으라고 하면, 폭음으로 방금 전의 일을 모조리 기억하지 못하는 지미, 고유 감각을 잃어버린 크리스티너, 자폐증을 가진 예술가 호세이다. 지미는 1945년 이후의 기억을 모두 상실했는데, 여기서 올리버 색스는 "연속성을 잃어버린 존재를 과연 인간으로 볼 수 있는가?"라는 실존적인 질문을 던진다. 나는 내가 이러한 상태에 놓이면 어떤 삶을 살게 될지 생각했다. 과거에만 갇혀 있는 사람은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생각할까? 확실한 건 음주가 건강에 정말 해롭다는 사실, 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해로운 물질은 입에 대지 않아야겠다는 다짐이었다.


 제육감, 즉 자신의 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인지하는 감각이 없다면, 실로 내 몸이 사라진 기분이리라. 물론 나는 그것이 어떤 감각인지 헤아릴 수 없다. 예컨대, 키보드를 입력하는 나의 손의 감각이 없다면 눈앞에서 무엇인가를 두드리는 괴상한 물체에 당혹감을 느낄 것이다. 애초에 타자를 치라는 명령이 입력되지 않으면 작동하지 않으리라. 걷는 것도 의식하지 못해서 자신이 공중에 둥둥 떠다닌다고 생각할까? 발칙한 상상이 떠오르기는 하지만, 이것을 어느 날 갑자기 겪은 크리스티너는 얼마나 당황했을까? 그러나 그것에 적응하려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이 참 대단하다.


 보통의 정신분열증 환자는 외부의 자극에 극도로 예민하지만, 자폐증 환자는 정반대이다. 마치 바다 한가운데의 섬처럼 외부의 자극에 대한 반응이 없다. 오직 자신의 세계 안에 놓여 있다. 자폐증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비교적 익숙하지만, 그것의 실상은 처음 본다. 호세에게 뛰어난 예술적 감각이 있고, 그것을 표현하는 일이 참으로 놀랍다. 저자가 가지고 있던 편견, 즉 자폐증 환자에게 예술성이 없으리라는 선입견을 나 역시 보유했고, 호세를 통해 어느 정도 완화된 듯하다.


 올리버 색스는 자신의 연구 성과를 자랑하려고, 또는 신경학적 질병을 앓는 이들을 나열하려고 이 책을 쓰지 않았다. 위에서 언급했지만, 다양한 환자들을 접하고 그들이 세상과 공존하는 법을, 조금 다를지라도 포용하는 법을 독자에게 보이기 위함이다. 그의 노력이 어떤 성취를 거두었는지는 결코 알지 못한다. 책 한 권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기도 하지만, 같은 책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시간 때우기에 불과하기도 하니까. 나에게도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상대적으로 가볍게 읽혔다. 그러나 언젠가 실제로 아픈 자들을 마주했을 때, 이 책이 생각나지 않을까? 관찰자가 아니라 동반자로, 치료의 대상이 아닌 이해의 대상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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