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퍼를 처음 만난 때는 제법 오래전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이라는 책 안에서 였다.
여행이라는 것에 대해 새로운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던 책이면서 동시에 익히 알고 있는 작가나 화가등 예술가등을 통해 여행하는 방법을 알게 해 주었던 책이었다.
지금도 나를 움직이게 만든 몇 안 되는 책중 하나이다.
여행이든 그림이든 그 본질은 사람에게 공감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길을 떠나서 유명관광지를 가든 한적한 시골길을 가든 또는 침대에 뒤집어 누워서 사물을 거꾸로 보든 그 광경에 공감이 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림역시 해설가가 작가가 이렇다 저렇다 설명을 해도 그림을 보는 청중에게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 한다면 그림을 세상에 내 놓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요즘 넷상에 일기는 일기장에 라는 말이 있듯이
혼자만의 작품세계를 고집한다면 혼자 그리고 집에서 혼자서 보기를.. (요즘 그림은 하도 난해한 작품들이 많아서)
여행이나 그림의 본질 두번째는 낯설게 보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일상성을 벗어 나는것.
익숙한 집을 떠나고 모르는 곳에서 잠도 자고
사실 여행은 말이 휴식이지 사서 고생하러 가는 것이다.
집나가면 개고생. 이불밖의 세상은 위험해.등등 이런 표현들도 있는 걸 보니..
또 그러기 위해 시선도 낮춰보기도 하고 올려보기도 하고 뒤집어 보기도 하는 것이다
낯설게 보기라는 아니 낯설게 보이기 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그림이 호퍼가 아닐까?
그림에 하나도 관심없는 사람한테 호퍼의 그림을 보여 줬더니 예전같으면 이발소에나 걸릴 그림이네. 잠깐이라도 생각도 안 해보고 하는 말 이었다.
밥 로스라는 화가가 떠오르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호퍼의 그림이 이발소용이라니..
좋은 말 칭찬으로 이해했었다, 내 맘대로.
사람들이 불변해 하지 않을 그림이라고 생각해야지.
익숙한 느낌의 그림. 일상적인 그림.
하지만 뭔가 설명할 수 없는 어떤것이 서걱서걱 느껴지는 그림. 어색하고 낯설고 진공상태로 멈춰버린 느낌을 주는 그림이 호퍼의 그림이 아닐까?
빈방의 빛
시인이 보는 호퍼는 어떤 느낌일까?
그것이 궁금했다.
나에게 호퍼의 그림은 낯설게 보이기. 거리두게 만들기. 였으니까..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잘 안다고 생각했던 일상적인 관계, 일상적인 장소, 시간 그리고 생활..
어느덧 문득 고개를 들어 함께 누워있는 배우자를 봤을 때 느껴지는 느낌.. 꼭 남같은.. 이질감..
일상적인 일요일 오후 4시쯤..
낮잠자고 일어나 보니 집안은 텅 비어있고
불 꺼진 방에 햇빛이 반 쯤 뉘엇뉘엇 들어오고
어둡지도 환하지도 않은 그때 느끼는 내가 있는 공간에 대한 묘한 불안감과 함께 느껴지는 어색함.
낯선 그 느낌..
그래서 제일 싫어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오후 네다섯시..
호퍼의 그림을 보면서 그 때의 그 느낌을 떠 올리면서
쓸쓸해지기도 하고 사는게 다 그렇지 뭐 하기도 하고
머리를 가로지르며 애써 떨쳐버리려 하기도 한다.
가을이 깊어 질수록 겨울이 다가 올수록
더 그런 느낌을 가지는 횟수가 늘어나기는 하지만...
시인이 본 호퍼는 생각보다 전문적이고 구체적이었고 설명적이었다. 그림 하나 하나 구도와 기하학 그리고 빛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공감이 가기도 하고 다른 느낌을 받은 그림도 있고..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을 알게 해주기도 하고 ..
그런게 아닐까 이런 책은..
호퍼를 느끼는 다른 방법을 안내해주는...
그림속으로 여행을 떠나게 해주는... 내가 타던 교통수단이 아니라 다른 그러면서 좀 낯선..그래서 불편할 수도 있는..
그런 책이라고 생각한다.
빛과 기하학의 도형으로 만난 호퍼
인상적이다.
- 호퍼의 그림은 짧고 고립된 순간의 표현이다... 호퍼의 그림은 암시로 가득 차 있다. 그림이 연극적일수로 앞으로 무슨일이 일어날지 궁금해지고 그림이 현실에 가까울수록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나게 된다. 여행에 대한 생각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을 때, 그림은 우리를 더욱 끌어당긴다.... 호퍼의 그링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삶의 사건들로 채워질 장소로서의 빈 공간이 아니다. 즉 실제의 삶을 그린 것이 아닌, 삶의 전과 후의 시간을 그린 빈 공간이다. 그 위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그 어두움은 우리가 그림을 보며 생각해낸 이야기들이 지나치겨 감상적인거나 요점을 벗어나 있다고 말해준다 (50p)
시간을 둘러싼 질문들- 우리는 시간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고 시간은 우리에게 무엇을 하는가? -은 호퍼가 그의 그림에 어두움을 얼마나 가두어 놓는지 또는 적어도 제한하고 있는지의 문제 안에 존재하는 것 같다. 호퍼의 그림에서는 기다림이 흔하고 사람들은 아무런 할 일도 없는것처럼 보인다. 배역을 상실한 등장인물처럼 이제 기다림의 공간 속에 홀로 갇힌 존재들이다. 그들에겐 특별히 가야할 곳도 미래도 없다 (51p)
호퍼의 그림은 즉흥적이라기보다는 조심스럽고 꼼꼼하게 계획된 것이고 그의 빛은 축하의 빛이라기보다는 기념의 빛이다. 그의 빛이 기하하적인 견고성을 갖추게 된 것은 빛이 흩어지지 않도록 빛에 어떤 생명을 주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빛은 오히려 빛이 저항하고 있는 대상을 떠올리게 한다. 그에게 빛은 결코 어둠이라는 더욱 강한 세력의 휴지 상태에 지나지 않는다. ..... 호퍼의 빛은 시간의영향을 받지 않는다 (59p)
호퍼의 방들은 욕망의 침울한 안식처다. 우리는 그곳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지만 물론 알 수가 없다. 본다는 행위에 수반되는 침묵은 커져만 가고 이는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고독만큼의 무게로 우리를 짓누른다 (105p)
그의 그림들은 황량함을 묘사하고 있지만 그 자체가 황량해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보는 사람이 자신의 슬픔의 메아리를 목격하게 함으로써 그 슬픔으로 인한 괴로움과 중압감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게 해준다. 어쩌면 우리가 슬플때 우리를 가장 잘 위로해주는 것은 슬픈 책이고 우리가 끌어안거나 사랑해야할 사람이 없을 때 차를 몰고 가야할 곳은 외로운 휴게소인지도 모른다 (여행의 기술 7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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