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난 홀은 호기심이었다
최인호의 구멍
두번째 만난 홀은 공포였다
루이스 새커의 구덩이
지금 만난 홀은 균열이다
편혜영의 홀
삶의 균열. 관계의 균열. 스스로의 균열
삶을 처음 시작할 때는 누구든 완벽을 바란다
혼자만의 삶도 누군가와 함께 하는 삶도
당연히 서로에게 꼭 맞을거라 생각하고 맞아야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부모니까 연인이니까 자식이니까
하지만 어디 그러던가
부모이기에 더 많은 틈이 존재하고 깨지지만 않았을 뿐이 수많은 미세한 균열들이 그 사이에 존재한다
자식도 연인도 부부도 마찬가지 일것이다
다행인건 연인이나 부부는 타인이라 깨어질수 있는것일까..
언제부터 균열이 시작되는걸까
관계가 시작하는 동시에 균열도 시작되는 것일지도..
오늘부터 1일! 오늘부터 금가기 시작 1일. 뭐 이런거일지도...
부부는 오늘 결혼식 동시에 이혼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그 균열을 인정하면서 아니 인정해야하는 것이 삶일지도..
수 많은 작은 균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관계가 유지 될 지도 모른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같은 삶을 같은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에 각자의 삶을 사는 게 아닐까
그 균열들을 평상시에는 모르다가
조금씩 있을지도 모르다고 생각하다가 확신이 들면서
헤어짐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모래로 간신히 그 틈새들을 채우면서 살기도 하고... 아예 알면서도 모른채 살기도 할것이다
이것이 삶이겠지 하면서.. .
도저히 못 견딜것 같으면 끝장내던지 아님 소설의 끝쯤 나오는 갑자기 사라져버린 남자처럼 사라져버릴지도..
이것이 죽음일수도
스스로의 행방불명일수도 있을것이다
갑자기 사라진 그 남자..
그때 깨달았던 그것이 이름을 바꾸고 사는 곳을 바꾸면서까지 다시 선택한 다른 삶에서는 채워졌을까?
그 남자는 도대체 무엇을 깨달았던것일까?
남자주인공의 이름이 오기이다
이 오기는 무슨 뜻일까?
오기부린다할때의 오기일까? 잘못 기입했다고 오기일까?
어떤 오기일지는 모르겠지만
둘 중 어떤 뜻을 가져도 다를 것은 없어보인다
사는건 일종의 오기일지도 모르니까
오기를 부리면서까지 살아야 하는것이 삶일지도 모르니까
태어나면서 부터 죽을 때까지 제대로 쓰면서 사는 삶이 얼마나 있을까 잘못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지우고 덮어 쓰고..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 삶일지 모르니까
당신도 나도 그렇게 살고 있을 테니
힘들고 고된 삶 그냥 손 잡고 살아갑시다
그럼 이 고된 삶 그럭저럭 살아가 지지 않을까
하면서 스스로를 속이면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오늘 또 어떤 구멍을 파고 들어올까
- 이사를 온 날 오기와 아내는 집 안팎의 불을 모두 켜두었다. 집에는 불을 밝힐 전등이 많았다. 모든 방의 불을 켜고 현관의 센서등도 계속 작동되도록 해 두었다. 정원에는 불을 밝힐수 있는 크고 작은 전구가 총 열 네개 있었는데 그것들도 모두 켜 두었다. 밤새 환하게 켜 둘 작정이었다. 오기와 아내는 그들의 미래를 진심으로 축하하고 싶었다. 그 밤의 빛은 지금 오기가 누워있는 병실만큼이나 밝고 환했다. 불빛 때문에 잠을 뒤척이더라도 침실의 형광등 역시 밤새 끄지 않을 생각이었으나 새벽에 오기가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전등이 모두 꺼져 있었다.
도대체 그 빛은 언제 사그라든 것일까 (28p)
바빌로니아 지도로부터 시작해 최근 것 까지 자주 지도를 들여다보았다. 그럴수록 막막해졌다. 아무리 애써도 끝내 정확할 수 없다는 것. 지도를 연구하면서 오기가 깨달은 것은 그것이었다. 지도로 삶의 궤적을 살피는 일은 불가능했다. 지도없이는 세계를 이해할 수 없지만, 지도만으로 세계를 표현할 수 없다는 것에 회의가 들었다.
의미가 있기는 했다. 정확히 살필 수도 없고 선이 보이지도 않는 궤적을 누군가는 구태여 실체가 있는 공간으로 바꾸려고 애썼다는 점이었다. 때로는 그 이유로 시시했졌다. 정확히 알 수 없고 하나로 분명하게 해석 될수 없으며 정치제 의도와 편의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세계라면 지금 이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였다. 그래도 지도는 실패를 통해 나아졌다. 그 점에서는 삶보다는 훨씬 나았다. 삶은 실패가 쌓일 뿐, 실패를 통해 나아지지는 않았으니까 (75p)
오기가 생각하기에 죄와 잘 어울리는 것 만큼 사십대를 제대로 정의 내리는 것은 없었다. 사십대야말로 죄를 지을 조건을 갖추는 시기였다. 그 조건이란 두 가지였다. 너무 많이 가졌으나 가진 게 아예 없거나, 즉 사십대는 권력이나 박탈감. 분노때문에 쉽게 죄를 지었다. 권력을 가진 자는 오만해서 손쉽게 악행을 저지른다. 분노나 박탈감은 곧잘 자존감을 건드리고 비굴함을 느끼게 하고 참을성을 빼앗고 자신의 행동을 쉽게 정의감으로 포장하게 만든다. 힘을 악용하는 경우라면 속물일 테고 분노 때문이라면 잉여일 것이다. 그러므로 사십대는 이전까지의 삶의 결과를 보여주는 시기였다. 또한 이후의 삶을 가늠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영영 속물로 살지, 잉여로 남을지. (78p)
집에는 오기와 장모만 남았다. 앞으로 오랫동안 그럴것이었다. 장모는 많은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이 알고 있다는 걸 오기에게 숨기지 않았다. 어쩌면 아내가 안대ㅗ 믿었던걸 모두 알게 되었을 수도 있었다. 문제는 오기가, 도대체 아내가 알고 있던 게 뭔지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158p)
깊고 어두운 구멍에 누워 있다고 해서 오기가 아내의 슬픔을 알게 된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 아내를 조금도 달래지 못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아내가 눈물을 거둔 것은 그저 그럴 때가 되어서였지, 더 이상 슬프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오기누 비로소 울었다. 아내의 슬픔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그럴 때가 되어서였다 (20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