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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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대상과 나오키상을 동시에 수상한 첫 작품인데다 그것이 온다 리쿠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화제가 된 책이 바로 `꿀벌과 천둥`이다.
평소 그녀의 다소 몽환적이고 환상과 현실이 교묘하게 어우러진듯한 작품과 조금 다른 이 작품은 클래식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을 베이스로 한 작품이기도 하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처음 읽을 땐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나오는 캐릭터들 각각이 사랑스러워 굳이 클래식에 정통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었고 오히려 클래식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
일본의 한 도시 요시가에에서 3년에 한번 열리는 국제 피아노 콩쿠르를 위한 파리 오디션에서 심사위원 모두를 충격과 혐오에 빠뜨린 신예가 등장했다.
이름은 가자마 진
갓 16세의 그 소년은 기존의 클래식 음악과 전혀 다른 느낌과 형식을 파괴한듯한 피아노로 찬탄과 비판을 동시에 얻으면서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무엇보다 심사위원들에게 충격을 준 것은 그를 사사한 사람이 이제껏 누구도 제자로 인정하지 않았던  피아노계의 거장 유지 폰 호프만이었고 그는 이 모든 일을 미리 예견하고 있었다.
비범한 천재 피아니스트 가자마 진은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지만 의외로 그가 아닌 에이덴 아야와 마사루가 주가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특히 에이덴 아야는 어릴 적 천부적인 재능으로 모두의 주목을 받고 연주를 했으며 오케스트라 연주도 한 경력이 있지만 엄마의 죽음과 동시에 피아노 연주를 중단한 경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이 콩쿠르의 참가는 자의가 아닌 다른 사람의 호의에 은혜를 갚는다는 심정으로 출전했고 그래서인지 콩쿠르가 열리는 동안에도 혼자서만 마치 연주자가 아닌 관객의 입장으로 다른 사람의 연주를 듣고 기뻐하거나 놀라워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런 그녀에게 피아노를 치는 즐거움을 다시 일깨워주는 이가 바로 정규교육을 받은 적 없고 그저 음악을 즐기는 기쁨으로 가득한 가자마 진이었다.
이런 가자마 진과 대척점으로 나오는 사람이 바로 마사루이다.
그는 피아노를 위해서 운동도 계획적으로 해서 체력을 유지할 뿐 아니라 폭넓은 음악을 위해 여러 악기를 배우기도 마다않는 학구파이며 커리어를 위해 콩쿠르 역시 전략적으로 참가하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전통적인 음악가의 길을 걷는 사람이다.
이렇게 연주가로서 피아니스트의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한듯한 코스를 밟고 있는 마사루와 이에 비해 정규 음악은커녕 제대로 된 피아노조차 없으면서도 타고난 음감과 재능으로 자유롭게 자신이 치고자 하는 음악을 하는 가자마 진 이 두 사람을 통해 작가는 진정한 음악이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고자 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어느새 어떤 음악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모든 게 공식처럼 되어버린 지금의 음악은 조금의 변형과 이탈을 용인하지 않은 고집쟁이처럼 변했고 너무 많은 자본과 너무 많은 시간을 들여서 마치 그들만의 리그처럼 되어버린 건 아닌지를 꼬집고 있으며 음악의 본질이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것이란 점을 일깨워주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아야로 하여금 음악의 즐거움과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깨닫게 해준 사람이 마사루가 아닌 가자마 진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점을 차지하고서도 책 속에 나오는 음악에 대한 표현을 보면 진짜 이런 느낌이 드는지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이야기보다 음악을 표현하는 것에 너무 치우쳐 중간부터 좀 늘어진 감은 있지만 클래식 음악은 어렵다는 통념을 조금은 깨준 책이 바로 이 책 `꿀벌과 천둥`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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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의 기록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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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우행록`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왔던 누쿠이 도코로의 책이 `어리석은 자의 기록`이라는 제목으로 새롭게 리뉴얼되어 나왔다.
같은 의미지만 역시 이렇게 풀어놓으니 좀 더 본문의 내용과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모든 형식을 인터뷰 형식 즉 대화체로 이뤄져 있어서인지 막힘없이 읽힌다는 장점이 있고 누군가의 입을 통해서 사건에 대해 듣는다거나 그 피해자에 대해 듣는다는 점에서 마치 친구랑 속살거리는 느낌이 들어 훨씬 더 몰입감이 좋았다.
조용한 주택가에서 어린아이들을 포함, 일가족이 잔인하게 살해당한지 1년
범인은 여전히 잡히지 않고 소문만 무성한 가운데 누군가가 그 가족에 대해서 인터뷰를 한다는 설정이다.
좋은 집안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잘 자란 중산층 부부...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만한 이유도 없지만 강도 살인이라고 보기엔 의심쩍은 부분이 많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의견이고 특히 미인인 아내는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이곳에서도 평판이 좋은 편에 속해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 오리무중이다.
남편 역시 잘 나가는 부동산 회사에서 높은 임금을 받는 엘리트 사원으로 누군가로부터 깊은 원한을 살만한 이유가 없는 듯 보인다.
이렇듯 겉으로 보기엔 누군가로부터 원한을 살 만한 이유 따윈 없을 듯 보이는 가족이지만 동창생을 만나고 좀 더 그 부부 본연의 모습에 접근하면 조금씩 이야기가 달라진다.
처음 인터뷰를 할 땐 죽은 사람에게 험담을 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여 장점만 널어놓던 사람들도 인터뷰가 길어질수록 조금씩 조심성을 버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하는데 그 이야기는 처음의 말처럼 그들 부부가 고상하고 점잖으며 누군가를 배려한다기 보다 좋은 집안에서 자랐다는 우월감이 깊으며 누군가에게 뒤처지거나 주목받지 못하면 견딜 수 없어 하는 면을 교묘하게 감춘 채 위선을 떨고 있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특히 아내 쪽에선 탁월한 미모와 카리스마를 이용해 평생을 원하는 바를 쉽게 쟁취하지만 그 방법이 너무나 교묘해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고 비꼬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동안 인터뷰이는 피해자들과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이 학창시절 혹은 미혼일 때 다른 사람을 상대로 어떤 짓을 저질렀고 어떤 일을 했는지를 이야기하면서 마치 자신은 그렇지 않은 것처럼 험담을 내뱉기 시작하고 또 어떤 사람은 전혀 그들을 부러워한 적도 없다는 듯이 초연하게 이야기하지만 스스로는 모른다.
그 대화 속에서 그들을 향한 깊은 질투심과 부러움 그리고 증오의 감정이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을...
한편 일가족 살해 사건에 대해 인터뷰를 하는 가운데 누군가가 오빠와 비밀의 대화를 하고 있다.
비밀이 좋다는 그녀가 오빠에게 털어놓는 이야기는 천진한 그녀의 말에 비해 내용은 무겁기 그지없다.
어릴 적부터 폭행과 학대에 시달리던 남매는 정상적인 감정 표현과 애정표현에 대해 무지할 수밖에 없었고 서로밖에 의지할 수 없었던 남매의 비밀과 인터뷰와는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 그 충격적인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일가족 살해 사건의 진실을 알 수 있다.
오로지 대화를 통해 그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고 그들의 인터뷰를 따라가다 보면 왜 이런 일이 생기게 되었는지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도록 해놓은 `어리석은 자의 기록` 은 주변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피해자의 진면목을 보여주는것과 동시에 인터뷰를 하는 사람의 깊은 속내까지 들여다볼수 있게 해주는데 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다.
특히 여자들 사이에서 교묘하게 벌어지는 암투와 보이지 않게 패를 갈라 싸우는 모습, 그리고 이중적인 태도 같은 걸 너무 잘 표현해서 깜짝 놀랐다.
여자 작가가 아닌 남자 작가가 여자들 사이에 흐르는 그 미묘한 감정을 이렇게까지 잘 표현하다니...
군더더기 없이 짧은 글이지만 인간 내면의 깊은 질투심과 위선을 통찰력 있고 시원하게 까발린 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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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허 아이즈
사라 핀보로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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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바람으로 이혼을 한 채 6살 아들과 둘이 사는 싱글맘 루이즈
어느 날 바에서 만난 남자에게서 강렬한 끌림을 느끼고 그와 키스를 나누지만 알고 보니 그는 이번에 새로 올 그녀의 직장 상사이자 이미 결혼을 한 유부남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이 전 남편과 똑같은 짓을 할뻔했다는 자괴감을 느끼며 괴로워한다.
그 멋진남자 데이비드를 직장에서 다시 만났지만 죄책감과 별도로 강렬한 끌림을 느꼈고 너무나 아름다운 아내를 둔 완벽한 남편의 모습을 한 데이비드 역시 자신에게 끌리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이런 와중에 길거리에서 우연히 부딪쳐서 만나게 된 여자가 알고 보니 데이비드의 아내인 아델이었고 친절하고 상냥한 태도에 아름다운 외모를 갖춘 아델은 루이즈와 단숨에 친구관계가 된다.
데이비드의 매력에 빠진 것과 별도로 여자답고 상냥하며 너무나 가냘프게 보이는 아델에게서 우정의 감정을 느끼게 된 루이즈...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조금 복잡해지기 시작하고 아델과 루이즈의 시점을 번갈아가며 그들이 서로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를 그려내고 있다.
첫눈에 반한 남자와 그 남자의 아내에게 우정을 느끼는 여자인 루이즈는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자각하면서도 집으로 찾아온 데이비드를 물리칠 수 없어 사랑을 나눈 후 괴로워하고 자신에게 친절한 아델을 보면서 죄책감을 느끼며 갈등하는...죄는 얄밉지만 보통의 사람이라면 당연한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편 아내인 아델의 모습은 어딘가 이상하다.
루이즈는 아델에게 비밀을 숨기고 있어 죄책감을 가지는 모습이 당연하지만 루이즈와 데이비드의 불륜 사실을 알면서도 데이비드에겐 완벽한 아내의 모습을 보여주고 대외적으론 행복한 커플의 모습을 연출하면서 남편 데이비드를 향한 맹목적인 사랑과 별도로 루이즈에게 미움과 동시에 애정을 느끼는 이해할 수 없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원수 같은 관계여야 할 두 사람이 서로에게 애정을 느끼다니... 참으로 이상한 설정이지만 묘하게 납득이 가는 관계이기도 하다.
서로에게 죄책감과 동시에 애정을 느끼는 두 여자의 감정 때문에 이 우정의 끝이 어떤 파국을 맞게 될지 알 것 같으면서도 설마 우리가 모두 아는듯한 그런 결말을 내면 실망할 거라 생각할 때 마치 독자의 헛점을 찌르듯 이야기는 갑작스러운 전환을 맞는다.
남편인 데이비드의 태도도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하루에 시간을 정해놓고 아내에게 전활 해서 감시하고 카드를 통제하고 시간을 체크하며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쓰는 마치 의처증 걸린 남편 같은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잠은 따로 자고 수시로 루이즈를 찾아 사랑을 나누며 행복함을 만끽하는 모습을 보여 바람피는 남편의 전형 같은 모습을 보여줘 루이즈뿐 만 아니라 읽는 사람도 헷갈리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지만 늘 술에 취해 있는 모습으로 그의 불안감을 나타내고 있다.
이렇게 이상한 조합은 뒤로 갈수록 모든 것을 알고 있는듯한 델마의 주도 아래 용인되고 묵인될 뿐 아니라 이 모든 판을 이끄는 사람이 남들의 눈에 가냘프고 약하게 보이는 아델이라는 점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불륜관계에 빠져 고민하고 갈등하는 루이즈에게 약간의 연민이 들 즈음 모든 것이 뒤집어진다.
그리고 이제까지의 판과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분노하고 갈등하면서도 이 부부는 왜 헤어지지 않는 걸까?
비밀을 가진듯한 부부... 아내를 미워하고 혐오하면서도 헤어짐을 망설이고 아내의 행동을 통제하는 남편 그리고 이 이상한 부부 사이에 껴서 어느 쪽 편도 들 수 없는 루이즈
이 모든 게 광기 어린 사랑과 집착의 결과였다는 게 그저 놀라울 뿐이고 거미줄에 걸린 먹이가 된 희생자의 운명이 안타깝기만 하다.
하나씩 밝혀지는 비밀과 중간중간 포석으로 깔아놓았던 퍼즐 조각이 하나씩 맞춰지면서 마침내 모든 것이 밝혀졌을 때 느끼는 놀라움이 클수록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데 이 책은 독자로 하여금 그 묘미를 제대로 느끼게 해줬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꼭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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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가 켜켜이 쌓인 밤
마에카와 유타카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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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일어난 사건을 추적하는 르포작가
그 작가는 20명 가까운 사람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한 남자를 쫓는다.
가고시마 시 시로야마 동굴에서 6명의 여자와 함께 자살해 일본 전역을 충격에 빠뜨린 남자... 그 남자의 이름은 기우라 겐조였다.
기우라는 오랜 전통을 가진 여관 하기노야를 점거해 여관을 탈취하고 그 여관의 주인 부부를 포함 여러 사람의 죽음에 관여했다는 죄목으로 쫓기던 중 이런 집단자살이라는 형태로 스스로를 드러냈다.
이렇게 잔인하게 여관 주인 부부을 살해하고 빼앗은 범죄자임에도 마지막까지 그와 함께 자살을 택한 여자들이 있다는 건 그의 잔인한 범죄와 어딘가 어긋나 보이는데 그건 아마도 기우라 그가 가진 이중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잔인하게 살해를 지시하면서도 범죄자 특유의 화가 나거나 분노한 모습이 아닌 조용하고 이지적인 태도를 보이는 어딘지 철학적이고 관조적인 남자... 그가 바로 기우라였다.
이 작가의 전작인 `크리피`에서도 이와 비슷한 형태의 범죄를 다뤘지만 조용히 그 목표물에 접근해서 그 집 사람들의 호의를 얻거나 혹은 은근한 위협을 가해 둥지를 틀고앉아 슬금슬금 그 집에 대한 소유권을 빼앗아버린 후 누군가가 깨닫기도 전에 사라진다.
집안사람들이 정신 차려보면 어느새 모든 건 끝난 상태, 더 이상 자신들이 어찌해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마침내는 누군가의 손에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져버린다는 이야기가 주요 얼개인데 이 책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게다가 주인공이자 이 모든 범죄를 저지르는 남자인 기우라는 도쿄대 경제학부를 나와 부교수까지 한 인텔리이지만 일본의 류진 연합이라는 전국구 폭력단의 조장 딸과 결혼을 한 후 6개월도 지나지 않아 그 여자를 목졸라 살해한 혐의로 12년간 감옥생활을 한 특이한 이력을 가진 남자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그 남자를 아는 사람들로부터의 평가도 많이 엇갈린다.
누군가는 부드러운 목소리와 눈빛을 가진 점잖은 남자라는 평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칼과 같은 눈빛을 가진 무서운 남자라는 평가...아마도 이맇게 극단적으로 평가가 갈리게 된 계기는 아내를 죽인 사건때문이고 그의 인생이 달라지는 터닝포인트가 된다.
이렇게 작가가 그의 발자취를 따라 기우라가 과연 그때 그 여관 하기노야에서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왜 그가 이런 선택을 하게 된 건지를 밝혀가고 있는데 읽을수록 그 뒷맛이 개운치 않다.
차라리 돈을 노리고 스스로 피를 묻혀가며 살인을 했더라면 좀 더 납득하기 쉬웠을걸 이 남자 기우라는 스스로의 손이 아닌 가족 중 한 사람의 손으로 그들을 처단하는 잔인한 방법을 이용해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는다.
결국 피해자를 끌어들여 자신의 범죄에 이용해 가해자로 만드는 방법을 써서 그들이 도망을 가지도 못할 뿐 아니라 신고조차 할 수 없도록 만드는 치밀함을 보이는데 그 태도조차 늘 한발 뒤에서 모든 걸 지켜보는듯하다. 마치 자신은 이 모든 것과 상관없다는 듯이...
타고난 머리를 가지고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승승장구하던 남자가 왜 폭력단의 여자를 아내로 맞는 위험을 감수한 건지... 그 위험을 감수하고 한 결혼을 왜 6개월도 지나지 않아 그렇게 폭력적인 방법으로 끝내버려야 했는지 그 이유가 밝혀졌음에도 그 남자의 선택을 이해하기보다 찝찝함이 남아있다.
희생자들이 반항할 수도 없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어두운 범죄에 순식간에 끌려들어 가는 모습이 섬뜩하기도 하고 이런 범죄가 터무니없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으면서 더 찜찜해졌다.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까지 이용할 수 있는지 그 최악의 사례를 보여줬달까...
과연 나라면 이런 상황에서 그들처럼 무기력하지 않고 발을 뺄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렇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 씁쓸한 뒷맛을 남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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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쌀례 이야기 - 전2권 - 개정증보판
지수현 지음 / 테라스북(Terrace Book)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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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일제가 극악을 떨던 1943년
평생 밥 굶는 일 없이 풍요롭게 살라는 뜻에서 아명인 쌀례를 이름처럼 불린 소녀 박성례는 15살을 얼마 안 남긴 14살 경성으로 시집을 가게 된다.
남들과 같은 꽃가마가 아닌 낯선 열차를 타고 혼례를 치르러 가던 길에 강도를 만나지만 교복을 입은 훤칠한 남학생에게서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하게 되고 그 남자가 바로 남편이 될 남자였다.
그리고 쌀례의 낭군이 될 남자는 갓 20살의 대학생으로 자신의 아비가 일제 앞잡이 노릇으로 거금을 벌어들이고 그 돈으로 자신이 먹고 입고 배우고 있다는 현실을 부끄러워하는 한선재라는 남자였다.
일제가 금지하는 야학을 하다 쫓기는 신세가 되어 잠시 떠나 있는 동안 아버지는 말도 없이 자신의 혼례를 준비했을 뿐 아니라 그 상대가 14살짜리 어린 계집아이라는 사실에 분노를 넘어 허탈하기까지 한 선재는 결혼을 하지 않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지만 아버지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고 울며 겨자 먹기로 쌀례와 혼례를 치르게 되지만 이 결혼을 인정할 수 없었다.
어릴 때부터 양반가의 자식으로서 아녀자의 도리를 배우고 자란 쌀례는 자신이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시아버지 외에는 그녀를 따뜻하게 보는 사람이 없었고 시누이 은재는 글자를 모르는 쌀례를 몸종같이 무시하고 얕잡아보기 일쑤일 뿐 아니라 나중에는 선재와 쌀례를 오랜세월 만날수 없게 한 원흉이다.
이렇게 서로 극명하게 차이 나던 두 사람이지만 어느새 선재에게서 글자를 배우게 된 쌀례는 선재의 도움으로 학교에 입학해 공부를 배우게 되고 서로 조금씩 마음이 열릴 즈음 야학하던 선재가 잡혀 전쟁터에 끌려가게 되면서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리게 된다.
냉혹한 아비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집에서 머슴 일을 하던 찬경에게 대신 그 짐을 지운 게 되고 그게 나중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선재와 쌀례를 괴롭히게 된다.
자신을 낳아준 어미로부터도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아보지 못했던 찬경에게 늘 오라버니라고 부르며 따뜻한 시선으로 끼니를 걱정해주던 쌀례를 마음에 품었던 찬경은 그 시선을 자기 것으로 하기 위해 몹쓸 짓도 서슴지 않고 온갖 것에 손을 대 큰 돈을 벌지만 늘 마음 한편은 비어있는 듯 허전하기만 하다.
이 갈증을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쌀례뿐이지만 자신과 선재를 끝내 생이별하게 만든 찬경을 더 이상 예전의 그 오라버니가 아닌 자신의 원수로 여기게 된 쌀례는 곁을 내어주지 않으면서 선재와 찬경 그리고 쌀례를 둘러싼 갈등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해방되고 다시 6.25전쟁이 발발해서 흉흉하던 그때 여자의 몸으로 아이까지 업고 온갖 고생을 하며 그저 서방님이 살아돌아오길 기다리던 쌀례
그런 쌀례 곁에서 자신이 가진 돈으로 그녈 보살펴주던 찬경
하지만 주변 시선은 그런 그들을 곱게 보지 않을 뿐 아니라 가만 내버려 두지도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그 시절 비단 쌀례뿐만 아니라 전쟁미망인으로 혼자 살아남아 자식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온갖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던 당시의 모든 여자가 겪은 일이었음에도 답답하고 먹먹했다.
그리고 그런 고지식한 마음가짐을 가진 쌀례가 답답하면서도 그런 쌀례만을 바라보는 찬경의 사랑이 안타깝기도 하고...
지금시절의 눈으로 본다면 솔직히 선재의 선비같은 고고한 자태와 마음가짐도 멋지긴 하지만 자신의 여자를 위해 무슨일이든 할수 있고 해낼수 있으면서도 오직 한 여자만 바라보는 찬경이 여자들에게 더 어필하지않을까 생각한다.
아비의 부끄러운 돈을 늘 부담스럽게 생각하면서도 아비의 뜻을 거역하기 힘들어했던 선재는 쌀례에게 일편단심인건 마찬가지지만 쌀례보다 우선 순위의 것이 있었던 반면 찬경에겐 그 모든것보다 늘 쌀례가 우선이었다는 점에서 여자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지않을까 생각해본다.
둘의 사랑이야기보다 당시 시대적 배경에 따른 여자의 일생이야기에 가깝달까...여자들의 수난이 읽기에도 녹록치않아 마음이 편치않았고 특히 이 모든 불행의 씨앗이 되었던 선재 여동생 은재에게 별다른 제재가 가해지지않고 큰 벌이 내려지지않았다는 점에서 짜증이 났다.
역시 로맨스소설은 해피엔딩에다 둘이 달달한 모습을 보여주고 그 달달함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게 로맨스소설의 역활이 아닐까 생각하면 이 책은 그 부분에서 아쉬웠다.
죽도록 고생하는 쌀례의 모습이 안타깝고 주변상황에 헤어짐이 긴 것도...그 둘을 방해하는 사람이 많은것도 아쉽지만 역시 아프도록 안타까운 찬경의 사랑이 못내 가슴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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