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
도노 하루카 지음, 김지영 옮김 / 시월이일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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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이면서 많은 논란을 불러온 작품이라는 설명이 흥미를 불러오는 파국은

한 남자가 서서히 파국을 맞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일반적이지도 않을뿐더러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유도 아니어서 왜 이 작품이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는지 이해가 갔다.

주인공인 요스케는 겉으로 봐선 건실한 청년이다.

재학 중이면서 꾸준히 공부를 하고 스케줄에 맞춰 운동을 해서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뿐 아니라 술자리에서도 취하는 법이 없다.

게다가 머리도 좋은 편이어서 취업전선에도 문제가 없고 여자친구도 끊이지 않는다.

나이가 나이니만큼 성욕도 강하고 그 성욕을 해결하는 데 문제가 있었던 적이 없다.

하고 싶으면 언제든 할 수 있는 처지... 그야말로 속된말로 엄친아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다 갖춘 듯 보이는 요스케지만 그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지나칠 정도로 너무나 반듯하다.

그 반듯함이 지나쳐 요스케라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마저 사람이 아니라 로봇처럼 느껴질 정도... 여기에다 스스로가 생각하는 도덕적인 면이나 사회규범에 지나치리만큼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이를테면 절대로 술을 취할 정도로 마시지 않는다거나 짧은 옷차림의 여자를 훔쳐보고 싶어도 그 행동이 옳지않아서가 아닌 스스로 공무원 준비를 하는 사람인 자신은 그런 비열한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며 자제한다거나 유흥업소 같은 곳은 절대로 가지 않는다거나 연인의 데이트 거절로 성욕 해소가 절실한 상황에서도 그녀의 커리어를 위해선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는 모습은 그 자체가 옳고 그름을 떠나 일반적이지 않다.

화를 내거나 힘들다고 투정도 부리지 않으며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는 모습은 일견 성실한 청년의 모습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그 스스로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부분은 빠져있고 오로지 사회적 규범에서 벗어나선 안된다는 규칙에 강박적으로 옭아매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래서 어떤 일 즉 사회적으로 옳지 않은 일을 하고 싶을 땐 스스로 공무원이 될 사람은 이런 행동을 하면 안 된다는 말을 주문처럼 되네는 모습에서 어쩌면 자신을 이런 규범 속에 묶어 두지 않으면 스스로를 파괴시킬 수 있음을 무의식중에 자각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매일매일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며 자신의 근육을 관리하고 스케줄을 조정하며 언제나 바쁘기만 하던 여자친구의 편의를 봐주고 넘치는 성욕은 스스로 해결하던 그가 파국을 맡게 된 계기는 한 여자를 만나고 난 뒤다.

아카리를 만나면서 평소 자신의 모습과 다르게 섹스에 점점 탐닉하게 되는데 이조차도 스스로가 원해서라기보다 아카리의 요구를 들어주기 때문이라는 것도 그렇다.

그렇다고 그녀를 사랑해서인가 하면 그녀와 만나는 중에도 전 애인과 아무런 죄의식 없이 잠자리를 가진다.

더 어이가 없는 건 전 애인인 마이코에게 순간적이라도 성욕을 느껴서가 아닌 그녀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은 결과였다는 것... 그야말로 성욕의 해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기에 죄의식 역시 갖지 않는다.

아니 죄의식은 당연하고 순간적인 욕망조차 가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가 얼마나 기계적으로 반응하는지...그리고 그 모습이 얼마나 일반적이지 않은 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스스로가 계획을 세워 모든 것을 조절하던 그의 일상이 아키리로 인해 조금씩 허물어지면서 마침내 스스로의 광기를 드러낸 순간 폭발하듯 터져버린 그의 모습은 의외라기 보다 오히려 마침내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의 반듯한 모습은 어딘지 불안함과 긴장감을 불러왔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스스로 멈추지 못하고 위력에 의해 결박당하는 순간 그가 느낀 안도감이 완전하게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고 짧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 소설이었다.

이 소설이 왜 그렇게 논란을 불러일으켰는지 십분 이해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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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에 갇힌 남자 스토리콜렉터 89
데이비드 발다치 지음, 김지선 옮김 / 북로드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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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딸의 생일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온 데커를 맞이한 건 그가 경찰이 되고 처음 맡았던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던 메릴 호킨스였다.

메릴은 데커에게 자신이 무죄이며 데커가 자신의 누명을 벗겨달라는 요구를 한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너무나 분명한 사건인데 이제 와서 왜 그는 무죄를 주장할까 의문이 든 데커

그런 데커의 의문이 당연한 이유는 죽은 가족과 운 나쁘게도 그 시간 그 집을 방문했던 남자를 죽인 총이 메릴의 집 벽의 숨겨진 곳에서 발견된 건 물론이고 피해자 가족 중 유일하게 총이 아닌 목 졸려 죽은 아이의 손톱에서 용의자의 것이 분명한 DNA가 나왔던 것 여기에다 사건 당일 뚜렷한 알리바이도 없이 폭풍우 치는 밤 길거리를 배회하다 경찰에 검거되는 등... 누가 봐도 그의 범행임이 뚜렷했던 사건이기에 데커의 의문에도 불구하고 당시 사건을 맡았던 동료들은 이 사건을 재조사하는 것에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가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도 전에 메릴은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채 발견된다.

말기 암을 앓고 있어 죽을 날을 받아 놓은 그의 목숨을 원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로 인해 자신의 남편을 비롯해 아이들까지 잃은 여자와 남편을 잃은 여자 두 명의 알리바이를 조사하던 중 메릴에 의해 가족 전부를 잃었던 수전 리처즈가 급하게 행방을 감춰버리고 또 다른 아내인 레이철 역시 뭔가 숨기는 게 있는 듯 보인다. 그렇다면 그게 뭘까? 그들이 숨기고 있는 비밀은 뭔지... 자신이 그때 당시 놓쳐버린 단서를 찾아 다시 13년 전 자신이 맡았던 사건을 수사하고자 하지만 FBI에서는 그의 수사를 용인하지 않고 귀환할 것을 명령한다.

하지만 자신이 한 수사가 잘 못되었을 수도 있음을 안 순간부터 그에게는 오로지 진실만이 중요할 뿐이고 그런 그의 태도를 팀장은 용인하지 않는다. 이로써 그는 자신의 커리어마저 잃을 상황이지만 묵묵히 진실을 찾아 과거를 헤집기 시작한다. 데커에게는 언제나 진실만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의 이런 고지식한 태도는 그로 하여금 과거의 아픔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하는 요인 중 하나이다.

사실 데커는 과잉기억 증후군을 앓고 있어 한번 본 모든 것을 머릿속에 저장해두고 기억을 잃어버리는 일 따윈 절대로 없는 데 그렇다면 그 사건은 데커가 실수를 했던 것일까? 의문이 들 즈음에 데커는 처음 맡았던 살인사건에서 너무나 분명한 DNA 증거가 피해자의 몸에서 나왔을 뿐 아니라 용의자의 몸에서도 상처가 발견되었고 쐐기를 박듯이 용의자의 집에서 숨겨둔 것 같은 범행도구마저 나오면서 세세한 부분은 신경을 쓰지 않았을 뿐 아니라 보고서나 부검 감정서는 채 읽어보지 않았음이 그의 입을 통해 밝혀진다.

그렇게 모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누가 더 이상 부검 감정서 같은 것에 신경을 쓸까 ... 데커의 행동은 누가 봐도 납득할만했지만 자신의 실수로 인해 누군가의 인생이 끝장나버렸음을 깨닫는 순간 그는 엄청난 죄책감과 죄의식으로 다시 한번 깊은 감정의 밑바닥으로 떨어지면서 괴로워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가 이렇게 괴로워할 틈조차 용납하지 않는 듯 그의 목숨을 노리고 그의 목숨 대신 그를 도와주려던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오면서 그날 밤의 진실을 알고 있거나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된 사람들이 마치 낙엽처럼 쓰러져간다. 이제는 모두가 그 날밤의 범인은 메릴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누가 그에게 누명을 씌웠을까?

그 두 가족은 왜 범죄의 표적이 된 걸까? 모든 것을 원점부터 수사하기 시작하는 데커와 파트너

그리고 그들은 작은 도시 벌링턴에서 오랫동안 진행되어왔던 거대 범죄의 꼬리를 잡는다.

이렇게 단순히 돈이 필요했던 한 남자의 강도 살인사건으로 보였던 사건의 진실은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들고 사방에서 총질이 난무하고 희생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느리지만 뚜렷하게 사건의 본질로 독자를 이끌어가는 데커

어떤 상황에서도 진실만을 찾아가는 데커의 활약상을 담고 있는 데커 시리즈의 5번째 이야기인 진실에 갇힌 남자는 조금씩 주변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가족이 처참하게 살해된 기억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던 데커가 그 잔인했던 기억만이 아닌 가족의 또 다른 모습도 기억하기 시작하는 걸로 변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고슴도치같이 가까이 오는 사람 모두에게 가시를 세우던 데커가 과연 어디까지 변할 수 있을지를 보는 건 범죄의 단서를 쫓아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의 즐거움과는 별개의 즐거움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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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감옥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고요한숨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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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항상 환상과 현실의 경계 그 사이를 넘나들며 독자를 매혹시키는 작가 쓰네카와 고타로의 가을의 감옥은 몰랐지만 신간이 아닌 복간 작품이었다.

절판된 지 오래인 책이지만 꾸준하게 재출간 요구가 있었다는 설명이 책을 읽고 나면 납득이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3편의 중편을 엮어 만든 가을의 감옥에서는 주인공 모두가 어딘가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묶여있는 상황 설정이다.

누군가는 특정한 날짜에 묶이고 다른 누군가는 집에 묶였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환상에 묶인 사람이다.

문득 눈을 뜨고 보니 같은 날 즉 11월 7일에 갇혀 버린 나

매일 같은 날에 갇혀버린 걸 알게 되면 누구나 그렇듯이 처음에는 당황하고 이윽고 문제가 뭔지 해결 방법을 찾다 도저히 그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면 자포자기하게 되는데 주인공 역시 이런 과정을 거쳐 자포자기할 때쯤 자신과 같이 시간에 갇힌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자신 혼자만 시간에 갇힌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순간부터 조금씩 여유를 가지게 되지만 그런 생각을 비웃듯 그들을 쫓는 낯선 존재를 알게 되면서 새삼 죽음과 소멸의 공포를 깨닫는다.

낯선 존재와 마주한 리플레이어는 존재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라진 리플레이어들은 죽은 걸까 아니면 그토록 원하던 11월 7일을 넘어 8일의 세계로 넘어간 걸까? 확인하려면 그 괴물과 마주할 수밖에 없고 그 괴물을 만난 사람은 이 세계에 존재할 수 없기에 영원히 미스터리로 남을 수밖에 없다.

매일매일 같은 날을 반목해서 살아가는 소설 속 리플레이어들과 비록 날짜는 바뀌지만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보는듯해 생각할 바가 많았다.

과연 일상에 갇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3편 중 가장 흥미로웠던 신의 집은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낯선 집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이유로 그 집에 갇히게 된 남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신이 그 집을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자신처럼 누군가를 이 집에 묶어두는 방법뿐인데 그 집은 모든 사람에게 그 모습이 보이는 곳이 아니라 특징인에게만 보여서 좀처럼 그런 기회는 오지 않은 채 그 집에 익숙해져 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 즉 처자식이 없는 중년의 남자가 그 집에 들어오던 날 마침내 자신의 짐을 그 남자에게 넘겨주고 몰래 그 집에서 벗어나지만 그 남자가 있는 곳 주변에서 영문모를 실종 사건과 살인사건이 연속으로 벌어지면서 자신이 물려준 그 남자가 저지른 짓일까? 하는 불안감 때문에 그 집을 쫓기 시작한다.

하지만 사실은 그 남자의 행동을 막기 위해 그 집의 행적을 쫓는 게 아니라는걸... 자신 역시 그 집에 대한 미련이 남았고 그 집을 차지한 사람이 살인범이던 아니던 그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남자가 그 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에 못 견디게 질투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 남자는 어쩌면 그 집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3편 중 가장 환상에 가까운 내용을 담은 게 바로 환상은 밤에 자란다인데 할머니의 특별한 능력을 보며 살았던 한 소녀의 이야기이다.

자신을 늘 공주님이라 불렀던 할머니는 없던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그런 할머니를 무한히 우러러보는 소녀지만 사실은 그 소녀는 할머니의 손녀가 아닐뿐 더러 그 할머니로 인해 오히려 인생이 뒤틀려버린 가여운 소녀라는 게 반전의 포인트

그리고 그런 할머니의 뒤를 쫓으며 소녀의 능력을 탐하는 무리가 있었다,

소녀에게 강제적으로 환술을 펼치게 하는 사람들의 명분은 힘든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희망을 찾아준다는 것이지만 사실은 그런 사람들에게서 결국 돈을 뜯어 내기 위한 명목상 소녀의 힘이 필요할 뿐이라는걸... 소녀 역시 알고 있다.

3편 모두 현실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 밑에 깔려있는 정서는 지금 우리의 모습 그중에서도 밑바탕에 깔려있는 인간들의 욕심, 질투와 시기 그리고 존재론적 고민에 대한 깊은 고찰이 깔려 있다.

그런 걸 떠나서 소설적으로 봐도 재미있을 뿐 아니라 색다른 소재가 주는 재미 또한 괜찮았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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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제작자들
요아브 블룸 지음, 강동혁 옮김 / 푸른숲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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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일들이 일어나 의외의 결과를 만들어내거나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이끌어갈 때가 있다.

보통 그런 걸 운명이라고들 하는데 만약 그런 일들이 자연적으로 발생한 게 아니라 누군가의 의도가 닿았다면?

사실 한 번쯤은 이렇게들 생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운명이란 신이 나 그 무언가의 안배이고 사람의 운명은 미리 결정지어져 있다는 것을...

이 책 우연 제작자들은 누군가에게 섬세한 작업을 통해 자연스럽게 어떤 결과로 이끌어가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전제로 이야기를 그려가고 있다.

물론 여기서 이런 일을 담담하는 사람이 우연 제작자들이고 무엇보다 그들은 사람이 아니다.

아니 사람의 형태를 하면서 사람과 섞여 생활을 할 수도 있지만 은밀하게는 살아있지 않기도 하고 사람이라 규정지을 수도 없는 존재들이다.

사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이런 존재들로 인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사람들이 살아가야 할 이유나 존재 이유에 대해 회의감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깊이 생각하거나 철학적인 의미를 담았다기보다 그저 흔한 클리셰 지만 모퉁이에서 부딪친 남녀가 도와주다 사랑에 빠지게 하거나 길거리에서 큰소리로 울며 주저앉는 여자를 보고 지금까지 하던 일을 멈추고 문득 어릴 적 꿈을 찾아 새로운 길을 가는 회계사의 이야기처럼 무겁지 않으면서도 우연의 힘이 어떤 식으로 작용해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결과를 가져오는지와 같은 가벼운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우연 제작자들에게도 여러 가지 자신의 전문 분야가 있을 뿐 아니라 등급이 있다는 사실~

가이는 연인들로 하여금 사랑에 빠지도록 하는 일이 전문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을 믿지 않는다.

자신은 아직까지도 예전 상상 속 친구로 활동할 때 만났던 여자만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지만 그녀를 만날 가능성은 제로... 하지만 누구도 그녀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자신의 동기이자 친구인 에밀리의 마음을 오랫동안 알고 있었으면서 받아주지 않자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에밀리는 자신들을 상대로 운명을 제작하지만 사랑에 회의적인 가이는 금세 눈치를 챈다.

그가 그저 오래전 잠시 만났던 여자의 기억만을 안고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던 에밀리는 모든 희망을 잃고 운명 제작자를 그만두고 먼 길을 떠나버린다.

이렇게만 보면 사람이 아닌 존재들의 거창한 이야기이기보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남녀 간의 엇갈린 사랑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저 그들의 직업이 우연을 제작하는 사람인 것처럼...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찾아 날실과 씨실을 엮어 운명을 제작하는 남자가 정작 자신은 사랑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그 가능성조차 받아들이지 않고 서로 다른 방향을 보거나 외면에 가려진 본질을 꿰뚫어보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면서 생각하는 방식이나 행동하는 양식은 사람과 똑같다.

사소한 하나를 움직여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지 그 과정을 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가이와 에밀리의 사랑이 어떻게 흘러갈지를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재미를 준다.

그리고 세상 모든 일에 누군가의 의지나 어떤 의도가 숨어 있다고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좀 더 흥미롭지 않을까?

책을 읡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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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우노메 인형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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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인 보기 왕이 온다는 전형적인 일본식 호러물이었고 그 맥락 없고 근본도 없는 공포가 독자를 사로잡았다면

후속작인 이 책 즈우노메 인형은 읽으면서 오래전 읽은 공포 소설의 스테디셀러인 링을 많이 연상케했다.

책 속에서도 드러내놓고 작품 링에 대한 찬사를 보내고 있는데 이 즈우노메 인형의 저주 역시 링처럼 저주가 담긴 물건을 본 사람 여기서는 원고가 되겠지만 그 원고를 읽은 사람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저주를 받아 죽는다.

검은 후리소데를 입고 얼굴에 붉은 실을 칭칭 감은 인형이 찾아와 그 사람을 죽이는데 걸린 시간은 원고를 읽고 불과 4일!

원고를 읽고 4일이면 그 사람은 죽는다.

게다가 눈앞에 그 저주의 인형이 시시각각 자신과의 거리를 좁혀오는 게 보이는데 무서운 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그 인형이 보이지 않고 오로지 저주의 대상만이 그 인형을 볼 수 있다는 게 공포의 가장 강력한 요소다.

도시에 떠도는 수많은 저주에 대한 기사를 주로 싣고 있는 잡지사 월간 불싯의 작가 중 한 사람이 원고를 마감하지 않은 채 연락이 두절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리고 그 작가의 집을 찾아 간 두 사람이 발견한 건 두 눈이 사라진 채 죽어 있는 작가였고 그의 곁에는 불에 타다 만 원고가 있었다.

그다음은 이미 짐작한 대로 그 원고를 사건 현장에서 몰래 가져온 남자가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지만 그가 죽기 전 작가의 집에 같이 간 동료이자 작가의 편집자인 후지마에게 원고를 보여주며 읽어보라고 권했을 뿐 아니라 나중에는 어서 빨리 읽으라는 재촉 통화를 하던 중에 이상한 비명과 함께 죽어버렸다.

그제서야 심각성을 인지한 후지마의 눈에도 어느샌가 그 인형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런 그와 같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작가의 후임으로 온 오컬트 작가 노자키와 그의 약혼녀 히가 마코토가 힘을 합해 저주의 시발점이 된 원고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한다.

원고에는 한 소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집에서도 사랑받지 못하고 학교에서는 지독한 왕따에 시달리던 그 아이 기스기 리호

오컬트 소설이나 공포소설을 좋아하던 중학생 여자아이는 또래와 다르다는 이유로 심한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을 뿐 만 아니라 당시 유행하던 소설 원작의 영화 링에 나오는 저주의 주인공을 본떠 사다코라 불리고 있었다.

그 아이가 일기처럼 써 내려간 원고에 자신처럼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했지만 자신과 마찬가지로 무서운 이야기나 괴담을 좋아해 도서관에 와서 책을 찾아 읽던 아이...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사다코라 불리던 아이와의 교류 노트를 통해 도시 전설인 즈우노메 인형에 대해 알게 된다.

즈우노메 인형의 이야기가 도시 전설이 된 과정은 알게 되지만 그 저주를 풀 수 있는 방법은 요원한 상태로 점점 더 인형은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이제는 편집자인 후지마 뿐만 아니라 자신을 돕기 위해 같이 원고를 읽은 노자키와 그 약혼자인 마코토 세 사람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

더 이상 어찌해볼 수 없는 상황에서 특단의 조치를 취하고자 하는데 과연 그 게 뜻대로 될까?

원고 속의 소녀 리호가 처한 상황은 누가 봐도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한 부모 가정으로 사는 게 팍팍하고 엄마는 밖으로만 돌며 집을 늘 비우는 상황이라 자신이 학교에서 당하는 따돌림에 대해 의논조차 할 수 없어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만 파고들지만 그것조차 평범하지 않다는 이유로 모두에게 외면받는 소녀의 심경이 잘 드러난다.

공포의 밑바닥에는 자신을 공격하는 무엇의 정체를 알 수 없거나 혹은 왜 자신에게 이런 짓을 하는지를 모를 경우 해결책을 찾을 수 없기에 더더욱 두렵고 공포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저자 사와무라 이치는 그런 부분을 잘 건드린다.

보기 왕에서도 그렇고 저주받아 목숨이 위태로운 사람이 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건지 뚜렷한 이유가 없어 해결책도 없이 그 대상과 마주해야하는 공포스러운 상황... 그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느끼는 극한의 두려움과 공포를 실감 나게 묘사하고 있다.

자신이 어찌해볼 수 없는 상황에서 시시각각 목을 죄어오고 더욱 두려운 건 그런 두려운 대상이 오로지 자신의 눈에만 보일 뿐 아니라 매일매일 그 거리를 좁혀온다는 걸 자신만 안다는 것

저주의 원인을 알 수 없어 더 공포스러울 수밖에 없고 단순히 원념을 품은 저주가 아니라 대상조차 구분되지 않는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해 온다는 점에서 지극히 일본스러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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