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관들
조완선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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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어느 날 수십 년만에 동창으로부터 한 통의 연락을 받고 난 뒤 생각지도 못했던 일에 휘말리면서 시작하는 집행관들은 제목에서부터 의미심장한 냄새가 난다.

법이나 재판 결과에 따라 행동으로 실천한다는 의미의 집행관

하지만 여기에서 자칭 집행관이라 칭하는 사람들은 법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법을 무시하고 초법적인 행동을 하면서 그 명분은 지금의 법은 권력과 돈 앞에서 무력하고 공정하지 않음을 내세우고 있다.

그런 이유로 그들이 타깃으로 잡은 사람들의 면면은 한없이 부패하고 돈 앞에 탐욕스러웠으며 엄청난 권력을 업고 재판 결과를 좌지우지해 법의 심판을 받기는커녕 보란 듯이 무죄를 받거나 특사 자격으로 얼마 살지 않고 나와 뻔뻔하게 더더욱 목소릴 높이고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열을 올리거나 분노를 표출한 사람은 나뿐만은 아닐 듯...

역사학자 최주호 역시 이런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단지 그 같은 경우는 자신이 느끼는 이런 부당함과 부조리함을 글로써 표현할 수 있다는 것만 다를 뿐 그 역시 법앞에서도 뻔뻔한 위정자, 고위 관료들, 정치인들의 몰염치에 분노하고 울분을 삭이고만 있었는데 그런 그에게 그들을 직접 심판하고 단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그는 어떤 선택을 할까?

그에게 이런 선택의 기회를 준 것이 동창이자 다큐 감독인 후 동식이었다.

느닷없이 연락해 온 그를 만났을 때만 해도 별다른 생각이 없었던 주호에게 그는 생존해있는 친일파 노창룡에 대한 조사자료를 요청해왔고 동식의 요청에 따라 자료를 보내고 난 후 얼마 뒤 언제 귀국했는지도 몰랐던 노창룡이 잔혹하게 살해당한 사건이 벌어진다.

그 살해 방법 역시 자신이 보내준 자료인 일제강점기 고등경찰들이 독립운동가를 고문하던 것과 같은 방법이라는 걸 보자마자 최주호는 심상치 않은 일에 자신이 연루되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연이어 또 다른 살인이 벌어지고 이번 피해자 역시 자신이 예전에 칼럼에서 비판하며 다뤘던 사람 즉 죄를 짓고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아 국민들의 공분을 산 정치인임을 깨닫게 되면서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하지만 동식과는 연락이 되지 않고 애가 타던 주호는 이번 사건에서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한 기사를 단독으로 실었던 신문사를 찾아가 문제의 기사를 쓴 기자를 만나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연이어 벌어진 살인사건은 처형의 형식을 취하고 있었고 피해자들이 모두 국민의 공분을 샀던 사람들이라 오히려 국민들로부터 그들을 응원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지만 법을 집행하는 검찰과 경찰의 입장은 다르다.

그들에게 있어 범인은 잔혹한 고문으로 사람을 죽인 살인자 집단이었고 반드시 검거해 더 이상의 피해를 막아야만 하는 입장인데다 죽은 사람들 모두 평범한 시민이 아닌 높은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이라 위쪽에서의 압력은 엄청났다.

우선 범죄 용의자들을 프로파일링 해보면 범죄 방식이나 집행 방법... 범죄 대상자를 미행하면서도 CCTV를 피하고 추적을 따돌리는 방법이나 조선시대의 형벌을 이용한 고문 방법 그리고 피해자의 몸에 새긴 문구를 그들이 저지른 법률조항임을 볼 때 상당수의 인원이 일사천리로 용의주도하게 움직이고 있으며 각각의 전문가들이 어느 정도 포진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범죄는 멈추지 않으리라는 것도...

이 들의 용의주도하고 치밀했던 범죄가 드러나게 된 건 아주 작은 단서에서부터였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 그들의 눈에 띈 것이 평소 칼럼에다 이런 부조리하고 부당한 일에 앞장서서 날카롭게 비판했던 최주호였고 검찰팀의 용의자상에도 있었던 역사학자라는 점 때문에 그의 행적과 주변사람과의 관계등 모든것이 낱낱이 조사된다.

이런 검찰의 움직임을 모르는 주호는 다시 만난 동식과 함께 그들의 집결지로 가게 되고 마침내 집행관들을 만나 그들이 다음 대상을 결정하는 회의를 보게 되면서 자신도 모르는 새 그들의 뜨거운 열정과 정의에 마음이 움직이게 되지만 어느새 검찰은 그의 코앞까지 뒤쫓아 온 상황

이제 두 집단은 서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법이 제대로 집행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언제나 법은 같은 죄를 가지고 힘 있는 사람 돈 있는 사람과 평범한 사람과의 판결에서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오히려 법을 보호막처럼 두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목소릴 높여 그들을 비난하고 공정한 심판을 요구하지만 아직까지도 요원하게만 느껴진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 나서서 법조차도 무력화시키는 그들을 시원하게 한방 먹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 책 집행관은 약간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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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울리히 알렉산더 보슈비츠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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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라고 하면 어딘지 낭만적인 느낌이 든다.

일상을 벗어나 자유롭게 어디론지 떠나고 그곳에서 찰나의 기쁨과 즐거움을 만끽하는...

하지만 이 책의 주인공인 오토 질버만의 여행은 다르다.

그에게 여행은 삶의 여유를 찾고 안식을 찾아 떠나는 게 아니라 죽음으로부터의 도피, 국가와 사람들로부터 도망이었고 그런 이유로 여행 내내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다 끝내는 내면이 무너져내린다.

이성과 도덕심을 갖춘 평범했던 한 남자가 서서히 내면에서부터 무너져내리다 끝내는 자신을 놔버리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여행자는 읽는 내내 주인공인 질버만이 느꼈던 감정의 생생한 묘사로 인해 감정이입이 되었고 그가 느꼈을 두려움과 공포 그리고 철저히 혼자라는 데서 오는 불안과 외로움에 공감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평범한 중산층 사업가였던 질버만이 어쩌다 이런 지경에 처하게 되었을까

단지 그가 유대인이었고 하필이면 독일에서 살고 있었다는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면 너무 가혹하지만 역사가 증명하듯이 그건 지울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우리도 익히 알다시피 독일에서 히틀러의 나치당이 점거한 후 사회적 분위기는 급변했다.

이웃이었던 사람도 동료였던 사람도 심지어 친구였던 사람들조차 냉정하게 그들로부터 등을 돌리고 심지어는 그가 가진 재산을 빼앗는 걸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질버만과 오랜 친구이자 자신이 어려울 때 도움을 받았고 이제는 사업의 동업자가 된 베커가 사업 계약을 위해 떠나는 장면에서 이미 이 둘의 관계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

분명 동업자 관계이지만 사업주는 질버만인데 그의 돈을 가지고 계약을 하러 가는 베커에게 도박을 하지 말라고 사정을 하는 모습은 여느 동업자 관계와도 다르다. 게다가 질버만을 대하는 베커의 태도 역시 오만하기 그지없다.

단순한 이 장면에서 이미 질버만의 앞으로의 처지가 보이는 듯하다.

오랜 친구이자 동업자 관계였던 베커뿐만 아니다.

그가 가진 집을 사러 온 또 다른 동료는 눈앞에서 보란 듯이 가격을 후려칠 뿐 아니라 그마저도 그의 긴박한 상황을 보고 더 깎으려 한다.사방 모두가 그의 적이다.

게다가 자신의 집으로 쳐들어 와 폭력을 행사하는 나치당원들의 횡포 앞에서 아내조차 두고 빈 몸으로 도망치듯 떠나야 했던 질버만이 느낀 무력감과 억울함 그리고 폭력 앞에서 굴복하듯 도망친 자괴감을 끊임없이 자기합리화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모습이 연민을 느끼게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 말도 안 되는 폭력 앞에서 자신을 지키고자 했지만 사방을 둘러봐도 그를 도와주거나 손을 내밀어 줄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데서 오는 절대적인 외로움은 그를 병들게 했다.

친구도 가족도 그에게는 우리가 아닌 그들이었고 그들에 속하지 못한 질버만은 같은 유대인에게서도 위안을 얻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그들과 자신을 다른 부류로 나눠 그들을 원망하고 가까이 오는 것을 꺼려 하며 스스로를 더욱 고립시킨다.

그는 아리아인 사회에도 속하지 못했고 유대인 사회에 속하는 것 역시 스스로 거부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택한 것이 그가 가진 돈으로 이 곳 저 곳 독일 전역을 떠도는 것이었다.마치 어디든 자유롭게 떠날 수 있다는 듯이...

질버만이 여기저기 역을 떠돌면서 느끼는 불안과 공포의 묘사도 그렇고 다양하게 만났던 사람들의 묘사 역시 그렇게 생생할 수 있었던 데에는 작가의 이력이 한몫했다는 걸 알 수 있었는데 저자 역시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었으며 가족과 함께 독일을 탈출해 유럽의 여기저기를 떠돌았던 이력이 있었다.

당시 독일 사회에서 유대인으로서 받은 박해와 온갖 부당한 폭력 그리고 어디에도 손 내밀 곳 없었던 그 막막함과 두려움의 묘사를 질버만이라는 인물을 통해 참으로 생생하게 그려낸 여행자는 국가가 중심이 되어 개인들에게 가해진 폭력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그런 폭거 앞에서 저항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준다.

우리의 역사와 중첩되는 부분이 있어 더욱 와닿았던 것 같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작품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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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숍
레이철 조이스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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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락해가는 거리에 LP만 판매하는 뮤직 숍이 있었다.

이곳에는 자신이 원하는 음악도 혹은 제목은 모르지만 찾고 싶은 음악도 찾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 특이한 건 자신이 무슨 음악을 원하는지 모르는 사람에게조차 딱 맞는 음악을 찾아주는 주인이 있었다.

그의 이런 능력은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위안을 안겨주게 된다.

연인의 배신으로 고통받는 사람에게 쇼팽 대신 아네사 프랭클린의 음악을 권하고 육아에 지친 아내와 그런 아내를 보며 같이 힘들어하는 남자에게 아이가 들으면 쉽게 잠들 수 있는 음악을 권하는 식으로...

어쩌면 그가 하는 행위는 단순히 음반을 판매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에게 맞는 음악을 처방해 주면서 위로와 위안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프랭크는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를 귀담아들을 줄 알고 그에게 어울리는 음악을 찾아줄 수 있는 능력이 있어 그를 찾는 사람은 많았지만 시대의 흐름은 이미 LP에서 CD로 바뀌고 있었고 이를 수용하지 않는 그의 고집으로 인해 가게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 이런 틈에 이 거리를 개발하고자 부동산 개발업자까지 등장한다.

그들로 인해 거리의 사람들은 어수선해지고 개발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온갖 협박 같은 낙서 테러가 가해지지만 언제나 긍정적인 프랭크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이곳 유니티스트리트에서 오랫동안 터전을 잡고 있었던 주변의 상인들과 힘을 합쳐 난관을 헤쳐나가고자 하는 의지로 가득했고 이 모든 일의 중심에는 프랭크가 있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줄 줄 알고 위로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그지만 정작 본인은 사랑을 두려워해 다가오는 사랑을 거부하는 소심한 사람이라는 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가 이렇게 사랑에 소극적인 이유는 몇 번의 아픔을 거친 탓도 있지만 그 근본에는 어릴 적부터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프랭크의 엄마는 그에게 음악을 사랑하고 음악을 이해할 수 있는 정신적인 자산을 남겼지만 본인 스스로가 누구에게도 얽매이기 싫어하는 탓에 자신의 자식에게조차 제대로 곁을 주지 않았고 어린 프랭크로 하여금 언제나 마음 한편 이 빈 듯한 외로움을 안겨주었다.

거기에 더해 자신의 잦은 사랑의 실패를 본보기로 보여줘 프랭크로 하여금 사랑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준 것이 가장 큰 잘못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자신의 가게를 찾아온 일사를 본 순간 첫눈에 사랑에 빠졌으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무조건 억누르고 부정할 뿐 아니라 마침내 스스로도 그녀에 대한 사랑을 부정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을 땐 어처구니없게도 거리를 두고 짝사랑만으로 만족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한다.

그녀로 인해 하루하루가 즐겁고 그녀만 생각하면 기쁨으로 충만하면서도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프랭크

리사 또한 자신이 가진 상처 때문에 프랭크를 사랑하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용기를 내지 못하고 머뭇거리기만 하는데 그런 둘의 모습은 요즘 연애하는 세대와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자신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어필하는 대부분의 요즘 사람들과 달리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서툴고 곁으로 다가가기까지 한참의 시간이 걸리는 모습은 아주 오래전 내 또래의 연애와 닮아있어 더 공감이 가기도 했다.

마치 그림을 그려 표현하는 것처럼 생동감 있게 음악을 소개하고 그 음악에 얽힌 사연을 들려주면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리고 있는 것만으로도 아주 따뜻하고 예쁜 이야기인데 그 속에서 피어나는 로맨스까지 곁들여진 뮤직 숍은 시대적 배경인 1988년의 분위기를 제대로 그려내 나로 하여금 마치 그 시절로 들어간듯한 추억을 되살려주고 있다.

이제는 웬만한 음악은 전부 음원으로 듣는 요즘 LP를 듣다 점점 CD로 변화했을 때 느꼈던 그 당시의 느낌이나 추억이 생각나게 했다.

프랭크가 손님들에게 들려주는 음악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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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 스톡홀름신드롬의 이면을 추적하는 세 여성의 이야기
롤라 라퐁 지음, 이재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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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의 상속녀가 괴한들에게 납치되고 감금당한지 얼마 후 그들과 함께 은행을 터는 강도의 모습으로 나타나 모두에게 충격을 준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은 이 이야기는 1974년에 실제 있었던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소설 17일은 당시 납치되었던 재벌가의 상속녀 퍼트리샤 허스트를 중요하게 다루면서도 그녀 당사자를 직접 등장시키기 보다 그녀 또래의 다른 여자를 통해 패트리샤가 납치 피해자인 연약한 여성에서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타니아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재벌가의 상속녀에서 좌파 무장단체 SLA의 일원이 되어 은행을 터는 사건을 일으키게 되는 시간은 납치된 시점으로부터 불과 두 달 남짓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부정하고 그렇게 무모하고 위험한 짓을 자행하도록 했을까 하는 의문은 그 당시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졌을 의문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것이 그녀의 온전한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납치된 동안 좌파 무장단체에게 세뇌당한 결과인 걸까 하는 것인데 그녀가 체포되고 난 후 퍼트리샤의 변호인단은 재판을 유리하게 하고자 세뇌당했다는 주장을 하지만 그동안의 그녀의 행적은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증명해 준다.

그런 이유로 변호인단에게서 의뢰를 받고 퍼트리샤가 SLA에게 납치당한 동안 그들의 주장에 세뇌당했음을 증명하기 위해 모든 기록과 자료를 조사하게 되는 진 네베바와 그녀가 프랑스의 작은 도시에서 그녀의 일을 돕기 위해 고용한 여학생 비올렌이 퍼트리샤의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 게 이 소설 17일의 주요 골자이며 당연한 얘기로 세 명의 여자들이 주인공인 셈이다.

먼저 재벌가의 상속녀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부족함이 없이 자란 퍼트리샤는 좌파 무리들에게 납치당하면서 인생이 극적으로 바뀌게 된다.

이제껏 자신의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몰랐었던 퍼트리샤는 그들을 통해 주변의 빈곤문제와 인종차별 등 부자로 있었을 땐 알 수 없었던 문제들에 대해 깨닫게 되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면서 자신의 누렸던 온갖 혜택과 특혜가 올바르지도 않고 공정하지도 않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연약한 희생자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전사로 태어난다.

퍼트리샤의 형량을 줄이기 위한 대책으로 투입된 진은 학문적으로도 높은 교양과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는 당시의 보수적인 사회에서 진취적이고 베트남전쟁 반대 투쟁에 뛰어들 정도로 비판의식이 강하다.

그녀는 재벌가의 상속녀로 곱게 자란 퍼트리샤가 단 두 달 만에 급진적인 정치활동을 스스로의 판단으로 할 수 있다 믿지 않았기에 그녀가 세뇌당해서 저지른 일이라 믿었지만 퍼트리샤의 행적을 조사하고 그녀의 주장을 검토하면서 조금씩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퍼트리샤와 비슷한 연령인 비올렌

그녀 역시 진의 일을 돕기 시작할 때만 해도 진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가진 평범한 그 시대의 여학생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지 말라는 일은 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원칙에 어긋나는 건 생각조차 하지 않는 그런 착한 여학생

하지만 진과 작업하면서 누군가의 주장이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닌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주장과 의견을 조금씩 이야기할 수 있게 변하면서 퍼트리샤의 주장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렇게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서로 다른 세 명의 여자들이 현재 자신의 발 디디고 살았던 세계를 외면하고 새로운 삶을 바라보고 살아가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는 17일은 세 명의 여성들의 입을 통해 그 시대의 부조리함을 이야기하고 있는듯하다.

과연 퍼트리샤는 이제껏 알려진 대로 스톡홀름 신드롬의 주인공인 걸까?

가부장적 시대에서 여성들이 제 목소릴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17일... 길지 않은 글이지만 솔직히 읽기가 녹록지 않은 작품이었고 그 속에 담긴 철학적인 메시지는 심오하지만 한 번쯤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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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버 드림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조혜진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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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내내 모호하게 느껴졌다.

도대체 두 사람의 상황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다가도 들여다보면 헷갈리게 일쑤다.

일단 시작은 성인인 여성과 아직 어린듯한 남자아이와의 대화로 시작되는데 마치 누가 듣기라도 하듯이 속삭이듯 이야기한다.

근데 두 사람의 대화 주제가 다소 이상하다.

벌레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것이 생기는 순간이 중요하니 집중하라는 아이의 요구

뭘까? 밖에 누군가 침입자가 있어 두 사람은 큰 소리로 대화하지 못하고 속삭이듯 하는 걸까?

침입자의 정체가 벌레인 걸까? 두 사람이 두려워하는 벌레는 보통의 벌레가 아니라 뭔가 거대하거나 기괴한 생명체를 말하는 걸까?

하지만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여다보면 중요하다는 벌레 얘기는 나오지 않고 어떤 상황에 대한 묘사가 대부분이다.

그러면서 같이 있는 두 사람이 마치 한 장면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아니 더 정확하게는 여자가 그 장면을 들여다보고 아이에게 설명하고 있는듯한데... 그런 것치고 시점이 이상하다.

몸은 여기 있는 게 분명한듯한데 아이에게 설명하는 건 마치 지금 현재 시점에 여기가 아닌 그 장소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묘사하는 듯하다.

한가로운 대낮의 풀장에서 이웃집 여자가 자신에게 벌어진 무서운 이야기 즉 자신의 사랑스러웠던 아이가 바뀌게 된 사연을 이야기하는 데 한낮의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기묘함을 풍긴다.

갑작스러운 아이의 질병이 있기 전의 일련의 사건들...

빌려온 종마가 줄을 풀고 냇가로 가 물을 마시며 목을 축이는 장면... 그리고 그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사랑스러운 자신의 아들이 물을 묻힌 손가락을 입에 물고 있는 모습

멀리서 보면 마냥 평화롭게만 보이는 이 장면이 이내 불안과 공포의 장면으로 바뀐다.

아들의 갑작스러운 발작과 고열은 엄마로 하여금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만들고 자신은 그날 이후로 바뀌어 버린 자신의 아들을 찾는다는 이웃집 여자의 설명은 평화롭게 휴가를 즐기던 여자를 두렵게 만든다.

내 딸아이 니나를 어디 갔을까? 어디에 있지?

니나는 어디에 있어?

낯선 곳 남편도 없고 주변에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이라곤 없는 곳에서 갑작스럽게 마주한 공포는 여자로 하여금 이곳을 탈출해야 한다는 욕구를 불러온다.

이렇게 두 사람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그녀가 처한 상황을 알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해소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뭐가 뭔지 모르는 긴박감과 긴장감을 더할 뿐...

오히려 더더욱 수수께끼 같은 상황이 독자로 하여금 혼란을 겪게 한다.

이 사람들은 뭘까? 이곳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그녀 아만다와 딸 니나는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 건지 헷갈리고 아이들을 병들게 하는 것의 원인은 뭔지 종잡을 수 없다.

모른다는 것은 불안과 공포를 불러온다.

그래서일까 뚜렷한 뭔가가 나오지 않으면서도 뭔지 모를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피버 드림

영화화되었다니 그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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