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즈 앤 올
카미유 드 안젤리스 지음, 노진선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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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아닌 그 무엇 즉 이형의 존재에 대한 걸 소재로 한 작품 중에 가장 유명한 건 아마도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아닐까 싶다.

뱀파이어 남자 주인공이 인간 여자 주인공을 만나 금단의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인데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이 작품은 사실 겉만 뱀파이어라는 인간이 아닌 존재를 가져왔을 뿐 속은 로맨스 소설 그 이상은 아니었다.

게다가 비록 뱀파이어지만 사람의 피를 흡혈하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잘생겼으며 여주인공에 일편단심의 마음을 보여주니 어떻게 여자들이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책 본즈 앤 올을 소개하는 글을 처음 봤을 때 맨 먼저 떠올린 게 바로 트와일라잇 시리즈였던 것도 그래서였다.

`세상에는 먹으면 안 되는 것들이 있다`

이 구절을 통해 주인공이 사람을 먹는다는 걸 알 수 있었고 당연히 글귀 그대로의 뜻이 아닌 사람의 피를 흡혈한다고 착각했었는데 이 책의 주인공은 진짜 글귀 그대로 온전히 사람을 먹는다.

그리고 그런 소녀의 곁에서 그녀가 이런 일을 벌이고 온 후면 모든 짐을 싸서 다른 곳으로 이사함으로써 소녀이자 자신의 딸을 보호하던 엄마마저 사라진 후 매런은 홀로 남겨진다.

자신조차 어쩔 수 없는 허기로 자신에게 친절하고 욕망을 품은 사람을 먹어치울 수밖에 없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과 아무도 이런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데서 오는 외로움은 자신을 떠난 엄마를 찾아가게 하지만 엄마가 가족과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들어갈 틈이 없음을 깨닫고 발걸음을 돌린다.

그리고 자신의 남은 가족이자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빠를 찾아 길을 나선 매런은 뜻밖에도 자신과 비슷한 사람 즉 누군가를 먹는 사람인 리를 만나게 된다.

이 세상에 자신과 같은 사람이 있다는 데서 오는 안도와 반가움은 그를 향한 사랑의 감정으로 발전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밖에 없는 매런

자신에게 사랑은 허락되지 않은 감정이라는 걸 자각하고 있는 매런의 내면의 갈등과 고민은 그녀가 사람을 먹는 식인 습관이 있다는 걸 제외하면 여느 성장기의 소녀들이 가지고 있는 감정과 별 차이가 없다.

그래서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 어렵다고 느껴졌다.

누군가를 원하고 사랑하면서도 그런 마음을 표현할 수도 없을 뿐 아니라 함께 할 수 없다도 없다는 데서 오는 절망감 그리고 평범한 삶을 살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언제나 자각하고 있어야 하며 누구와도 함께 할 수 없는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소녀의 고민은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빠져나올 수 없는 덫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매런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제대로 알기 위해서라도 아빠를 반드시 찾아야만 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왜 이런 모습으로 태어난 것인지를 알기 위해서라도...

애런에게 있어 식인 습관은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는... 타고난 본성과도 같은 것이고 자신이 아무리 평범한 삶을 원해도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걸 마침내 깨닫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과정은 섬뜩한듯하면서도 어딘지 매혹적인 부분이 있다.

가장 무서우면서도 잔인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아무 사람이 아니라 자신에게 호감을 보이는 사람을 먹을 수밖에 없는 소녀의 운명이었다.

어쩌면 사람들은 늘 사랑하는 사람에게서만 상처를 받는다는 걸 철학적으로 표현한 건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영상으로 표현하면 훨씬 더 매혹적으로 느껴질 수 있겠다고 느꼈는데 영화화된다는 걸 보면 비슷하게 느낀 사람이 많은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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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들리와 그레이스
수잔 레드펀 지음, 이진 옮김 / 밝은세상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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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거 아닌 것 같은 하나의 사건이 점점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사람을 이끄는 걸 우리는 운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소설이나 드라마의 전개가 대부분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데 모든 사건이 진행되는 걸 지켜보는 독자의 시점 즉 전지적 시점에서 본다면 주인공들의 행동은 코미디거나 신파나 다름없다.

마치 공포영화를 보면서 혼자 남겨진 사람으로 볼 때의 감정과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파국으로 가는 게 뻔히 보이는 데도 굳이 진로를 변경하지 않고 그대로 가는 걸 볼 때마다 사람들은 탄식을 하고 안타까워하기 마련인데 두 여자들의 파국적 행로를 그린 델마와 루이스가 그렇다.

이 책의 주인공인 하들리와 그레이스 두 사람은 어느 쪽을 봐도 그 두 사람 즉 델마와 루이스랑 닮아있다.

두 사람이 같은 동년배가 아니라는 점도 그렇고 성격이 서로 정반대여서 한 사람은 감정적인데 반해 다른 한 사람은 지극히 이성적이고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해서 나머지 사람을 이끈다는 점도 그렇다.

그리고 그 들을 뒤쫓는 사람들 중에서 누군가는 그들의 목숨을 노리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그들에게 호감을 보이고 동정적인 사람이 있다는 점도 닮아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 두 사람은 그 둘뿐이 아니라 다른 가족을 이끌고 도피 행각을 한다는 점...

그래서 이 두 사람과 그들이 이끄는 조금 특별한 가족이 델마와 루이스처럼 막다른 곳으로 몰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더 들었다.

폭력적인 남편으로부터 모든 걸 통제당하며 살던 하들리는 동생의 아들을 집으로 데려준다는 구실로 마침내 남편에게서 벗어날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그리고 새 출발을 위해 남편으로부터 약간의 돈을 가져갈 마음으로 그의 사무실에 몰래 들어갔다 뜻밖의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레이스 역시 최악의 상황이었다.

또다시 남편이 도박에 손을 대 집세를 몽땅 날렸을 뿐 아니라 사무실에서 실적을 올렸음에도 해고될 위기에 처한 순간 그레이스는 이 모든 걸 버리고 새 출발 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런 그녀 역시 돈이 필요해 사장의 사무실을 털러 왔다 사장의 아내 즉 하들리와 마주쳤고 서로 합의하에 금고인의 돈을 나눠가지기로 했지만 뜻밖에도 금고 안에 이는 생각지도 못한 거금이 들어있었다.

몰랐던 상황이지만 이 돈은 당연히 불법적으로 모은 돈이었고 FBI에서 오랫동안 그 사무실을 지켜보던 중에 두 사람이 돈을 가지고 달아나면서 두 사람은 생각지도 못한 FBI의 추격을 받게 된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면서 살림만 살았던 하들리와 달리 그레이스는 어릴 적부터 온갖 고생을 하며 거리에서 자란 사람답게 상황 판단이 빠르고 대처능력이 탁월해 번번이 두 사람을 쫓는 FBI를 따돌렸지만 일은 점점 더 눈덩이처럼 커지게 된다.

게다가 두 사람은 갓난 아기와 조금 특별한 아이 그리고 말 안 듣는 사춘기 소녀까지 함께 하는 상황이라 어디를 가도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서로 정반대의 성격답게 서로를 싫어하면서도 필요에 의해 함께 다니며 점점 더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에게 애정이 생겨가는 과정이 잘 표현되어 있다.

특히 서로 티격태격하면서도 위기의 순간에는 합이 맞아 그 순간을 모면하는 모습은 유쾌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도망 다닐 수는 없는 두 사람이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그리고 그 선택이 해피엔딩으로 이어질까 하는 마음에 단숨에 읽어내려간 하들리와 그레이스는 델마와 루이스의 소설판 같은 느낌이었지만 좀 더 밝고 가족적인 느낌이라 따뜻했다.

가독성도 좋았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며 하나 되어가는 과정이 아름답게 그려져 더 좋았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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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mson Lake Road 크림슨 레이크 로드 라스베이거스 연쇄 살인의 비밀 2
빅터 메토스 지음, 최호정 옮김 / 키멜리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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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화가이자 잔혹하기 그지없는 연쇄살인마인 에디 칼

작가의 전작인 킬러스 와이프에서는 제목처럼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에디 칼이 아닌 그의 전처이자 피해자이며 검사인 제시카 야들리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에디 칼을 주인공으로 해도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 될 수 있었음에도 작가는 그 모든 포커스를 사람들이 관심 있어 하고 언제나 매료되는 존재인 연쇄살인마가 아닌 아무것도 모른 채 그런 남자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던 만큼 그의 범죄가 드러나면서 더욱 강한 충격과 트라우마를 갖게 된 범죄자의 아내를 내세워 사건을 해결한다는 설정부터 평범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편인 킬러스 와이프는 두 사람의 관계나 에디 칼이 얼마나 대단한 범죄자인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만큼 야들리의 존재감은 생각만큼 뚜렷하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해 아쉬웠다면 이번 2편인 크림슨 레이크 로드에서는 야들리의 진짜 실력을 보여주기 충분했다.

물론 작가는 이번 편에서도 에디 칼의 존재를 잊지 않았지만...

전 남편에 이어 연이어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과 상처를 받았던 제시카는 더 이상 잔혹한 범죄현장을 보는 것도 사람들이 같은 사람에게 얼마나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지 확인하는 자신의 직업에도 지쳐 사표를 내고 다른 곳으로 떠날 결심을 한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발목을 잡는 사건이 발생한다.

누군가 여성을 납치해 잔혹한 그림의 장면을 재현하는 일이 발생했고 첫 번째 살인사건이 발생한 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그 인근에서 또 다른 여성이 역시 잔혹한 그림의 한 장면을 재현하는 모습으로 발견된다.

다행히도 제보자의 신고전화로 두 번째 피해자는 목숨을 건졌고 대부분의 살인사건처럼 두 사람의 연인과 배우자가 용의자로 떠오르는 중에 첫 번째 피해자의 딸 역시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일이 발생한다.

사건 현장을 보고 그림 속 장면을 재현했다는 걸 단번에 파악한 제시카는 어쩔 수 없이 이 사건에 개입하게 되고 두 번째 피해자이자 간신히 목숨을 건진 안젤라를 만나면서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서로 일면식도 없는 두 여자 사이의 연관성을 조사하다 안젤라의 애인이자 현직 의사인 재커리와 첫 번째 희생자와 그 남편과의 연관성을 발견하게 되면서 사건은 급물살을 타게 되고 이제 모든 초점은 재커리의 범죄사실을 재판에서 배심원을 상대로 증명하는 일만 남았다.

스릴러 소설을 즐겨 읽는 사람이라면 아니 그런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너무나 뚜렷한 범죄 증거가 보란 듯이 펼쳐져 있을 뿐 아니라 딱딱 아귀에 맞는다면 오히려 그 의도를 의심해 봐야 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마치 눈앞에서 미끼를 흔들어 원하는 대로 사건을 이끌어가는 듯한 그 태도는 분명 의심스럽다는 것을...

변호사 역시 그 점을 지적한다.

바보가 아닌 이상 범행도구나 증거물을 누가 그렇게 허술하게 방치할 수 있냐며...

제시카와 수사팀은 모든 증거를 내세워 재커리의 범죄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뛰어난 변호사의 변호로 인해 이 모든 증거에도 불구하고 재커리를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기소하기조차 힘든 상황이 된다.

작가는 로스쿨을 졸업하고 로펌을 만든 경력이 있는 만큼 누구보다 재판에서의 부조리한 상황을 많이 겪었을 것이다.

미국의 법은 법리해석에 민감하고 법을 수행하는 과정에서의 절차를 매우 민감하게 생각하는 만큼 범죄자를 검거할 시 약간의 실수가 있으면 자칫 범죄자를 눈뜨고 풀어줘야 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그리고 그런 틈을 누구보다 잘 파고들어가 자신의 의뢰인에게 유리한 평결을 받아내는 것 역시 미국 변호사들이 특히 잘 하는 일인데 작가는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과는 별도로 법정의 그런 현실 즉 미국 사법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모습을 재현함으로써 그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다.

주인공 야들리가 탄탄한 커리어를 가진 능력 있는 여자임에도 자신의 딸아이를 어떤 식으로 다루고 대화를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모습과 더 이상 누구도 쉽게 믿을 수 없고 누구도 곁에 둘 수 없어 괴로워하는 모습은 그녀를 더 인간적으로 느끼게 한다.

2편에서의 야들리의 모습은 1편보다 더 전문적으로 느끼게 했고 그런 이유로 3편을 기대하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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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탑의 라푼젤
우사미 마코토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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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불황의 골이 깊어져 많은 사람이 고통받으면 받을수록 그 속에서 더 고통받는 사람은 언제나 약자에 속하는 아이들과 여자들이다.

그래서일까 요즘 들어 각종 뉴스나 매체를 통해 아동학대나 아이 혼자 남겨둘 수 없다는 이유로 아이를 죽인 후 자살을 하는 끔찍한 뉴스가 빈번하게 들린다.

아이들을 자신들의 소유물처럼 여기는 어른들로 인해 고통받는 아이들...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이 그런 아이들이었다.

다마가와 시는 반짝거리는 도시의 이면 즉 그림자 같은 도시였다.

유흥업소가 밀집해있고 하루 벌어먹고사는 노동자들이나 외국에서 돈을 벌러 온 이민자들이 많이 모여사는 곳이어서 법의 보호를 받기 보다 폭력단체가 기생하기 좋은 환경이었고 폭력이 일상인 곳이었다.

이런 곳인 다마가와 시를 배경으로 세 가지 시선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는 전망탑의 라푼젤은 예쁜 그림 같은 표지와 사랑스러운 동화 속 주인공의 이름을 따온 것과 별개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어두운 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그 대비가 더욱 끔찍하게 느껴지지만 책 속에 펼쳐지는 가족 내의 폭력과 퇴락해가는 도시의 뒷골목에서 벌어지는 온갖 범죄가 소설 속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잘 알기에 읽는 내내 무력감을 느끼게 했다.

다마가와 시의 가정상담소에서 벌써 몇 년째 근무하는 유이치와 시에서 운영하는 아동가정지원센터의 시호가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온갖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에 특히 관심을 두고 지켜보는 아이가 있었다.

아이가 4명이나 있으면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지 않고 술만 마시면 폭군으로 변해 가족들을 괴롭히는 남자... 그리고 그런 집의 둘째 아이 소타가 바로 그 대상이었다.

소타가 부모에게 학대받는 것 같다는 이웃의 신고로 유이치와 시호가 아이를 만나보지만 여섯 살의 어린 나이로 거리를 방황하고 몸에 분명한 상처가 있음에도 말하려 하지 않는 소타로 인해 그저 지켜보기만 할 뿐...

또 다른 위기의 아이는 아직 미성년이지만 가정이 해체되고 부모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동안 친오빠로부터 오랫동안 성적 폭력에 노출된 전력이 있는 나기사와 그런 그녀의 곁에서 함께 있으며 돈을 벌어 이곳 다마가와 시를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필리피노 카이

서로의 아픔 즉 누군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떠돌던 두 사람은 서로 함께 하면서 위로가 되고 어두운 앞날에 조금이나마 희망을 꿈꾸게 된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눈에 밤거리를 헤매는 굶주린 듯한 어린아이가 눈에 들어오고 그 아이에게 하레라는 이름을 붙여준 후 보살펴준다.

세 번째는 둘과 조금 다른 케이스다.

위의 두 케이스는 아직 어려서 부모의 보호와 양육이 필요한 시점인데도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가정 내에서 더 괴롭힘을 당해 어디에도 의지할 수 없는 반면 세 번째는 아이를 절실히 원하지만 어떤 노력을 해도 아이를 가질 수 없어 일상이 무너지는 한 부부의 이야기다.

그녀는 매일 자신의 아파트에서 내려다보이는 집에서 벌어지는 아동학대의 현장이 괴롭지만 자신이 눈을 떼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은 그토록 원하는 아이를 가졌으면서 내내 제대로 된 양육은커녕 폭력을 일삼는 부부를 보면서 세상의 불공평함에 더욱 분노하지만 지켜보는 것 외엔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자신에게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이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이야기 속 아이들이 처한 상황은 차마 눈뜨고 보기 쉽지 않을 정도로 극한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은 자신들을 괴롭히는 부모에게서 떨어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 부모라도 부모의 곁에 있고 싶어 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하레에게서도 소타에게서도 볼 수 있지만 나기사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어쩌면 자신들이 손을 놓으면 이 세상에 혼자 남겨질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겠지만 책 속에서 보이는 아이들의 부모에 대한 충성과 애착은 그것만으로도 가슴을 너무 아프게 했다.

폭력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있는 아이들 그리고 그런 아이들을 노리는 어둠 속 세력들...

읽는 내내 알고 싶지 않고 직시하고 싶지 않았던 현실을 적나라하게 까발려놓아 불편했지만 그럼에도 도저히 구제할 길 없어 보이던 현실에 작가는 작은 희망을 그려놓았다.

그리고 접점이 없어 보였던 세 사람이 마침내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는 부분에서 깜짝 놀라 앞부분을 다시 찾아보게 했고 전체적인 이야기의 분위기를 단숨에 바꿔버렸다.

작가를 왜 미스터리의 여제라 칭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고 작가의 다른 작품 역시 읽어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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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날들을 위한 안내서
요아브 블룸 지음, 강동혁 옮김 / 푸른숲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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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책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면?

그것도 마치 나만을 위한 책인 것처럼 책표지에 내 이름이 적혀있고 책 내용에는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적어놓았다면 과연 나는 그 책이 말하는 걸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우연히 서점에 들렀다 마치 운명처럼 어떤 책을 손에 넣게 된 주인공이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겪으며 이제까지의 자신과는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환상 가득한 모험과 미스터리가 섞인 이 책 다가올 날들을 위한 안내서는 책이 마치 말을 거는 것처럼 문장으로 대화를 시도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이 각자 체험한 경험을 술이나 다른 음식에 녹여 다른 사람과 그 체험을 공유할 수 있다는 설정이 신선했다.

작가의 이름이 낯설지 않아 찾아봤더니 작가의 전작 `우연 제작자들` 역시 흥미롭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시작은 벤 이 우연히 산 책에서 자신에게 빨리 집 밖으로 나갈 것을 요구하는 문장을 읽으면서부터다.

현재 문밖에는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초인종을 누르고 있지만 책은 절대로 문을 열어줘선 안될 뿐 만 아니라 밖에 있는 사람을 피해 달아나야 한다며 설득한다.

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책은 마치 지금의 상황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이야기할 뿐 아니라 현재 상황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는 걸 알고 벤은 책이 지시하는 대로 책과 오늘 갑자기 손에 들어온 위스키 한 병이 든 가방 하나만 가지고 집을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그가 찾아간 곳은 바 없는 바라는 오래된 술집이었고 그곳은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술집이지만 다른 사람으로부터 체험을 사서 그걸 술에 녹여 그 체험을 원하는 사람에게 파는 미스터리한 곳이었다.

놀랍게도 벤 이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얻었던 위스키와 똑같은 걸 이곳 술집에서 바텐더로 일하는 오스나트 역시 받았지만 그 위스키가 평범한 술이 아니라는 걸 눈치채기도 전에 누군가가 방을 뒤져 훔쳐 간 뒤였다.

알고 보니 그 위스키 병에 든 건 그냥 술이 아니라 누군가의 체험이었고 다른 사람들이 경험하고 체험한 걸 수집해서 술에 섞어 그 술을 마신 사람은 직접 해보지 않아도 그 체험을 자신이 겪은 것과 똑같은 걸 알 수 있는 특별한 기술이 녹아있었다.

이렇게 체험을 하고 그 체험을 음식에 녹여 다른 사람에게 그 경험을 교환할 수 있는 특별한 기술을 가진 사람을 경험자라 부른다.

특히 권력자나 돈을 가진 사람들 중 누군가는 이런 경험자에게서 신비한 이 기술을 돈을 주고 사길 원했고 은밀하면서도 대대적으로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의 경험을 음식으로 녹여놓은 걸 먹은 사람 역시 실제 경험하지 않아도 그 경험을 공유할 수 있다는 발상도 신선하지만 그런 경험으로 세상을 바꿀 수도 있고 생각지도 못했던 일까지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부족한 점을 채워 넣을 수 있다는 식의 발상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라 읽으면서 감탄하게 된다.

내가 직접 하지 않은 경험이나 체험으로 뭘 할까 했었는데 의외로 많은 부분에서 유용할 뿐 아니라 나쁜 쪽으로 악용하면 엄청난 문제가 될 소지가 있음을 빌런인 스테판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평소 소심하고 자신감이 결여되어 사람과의 관계가 몹시 서툴러 늘 아웃사이더일 수밖에 없었던 벤은 이 기술을 통해 소심함이라는 껍질을 깨고 세상에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주는 긍정적인 힘을 발휘했다면 이와 반대로 스테판이라는 인물은 누구보다 경험자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이 신비로운 기술로 자신이 원하는 걸 뭐든 손에 놓을 수 있다는 걸 빨리 알아채고 재빨리 행동에 나서 부를 쌓았지만 기본적으로는 자신을 포함한 세상 모든 것을 혐오하고 있었기에 이 기술은 오히려 그의 악의만 키우는 결과를 가져온다.

처음의 설명 부분이 쉽지 않았지만 그 부분을 넘어가고 위스키가 어떤 건지 알게 되고 어떤 일까지 할 수 있는지 그 능력에 대해 알게 되면서부터는 술술 넘어간다.

전작에서도 느꼈지만 작가는 세상 모든 일에는 우연이라는 게 없을 뿐 아니라 누군가의 세심한 안배와 계획이 숨어 있다고 생각하는 운명론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신선한 소재와 발상이 돋보였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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