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이 쫓아오는 밤 (반양장) - 제3회 창비×카카오페이지 영어덜트 소설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114
최정원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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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물이라는 장르의 특징상 주인공들이 어디론가 마음대로 달아날 수 있고 외부에 쉽게 도움을 청할 수 있다면 긴장감이나 긴박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당연히 어디에서도 도움을 청할 수 없고 도망갈 길 없는 막다른 곳에 몰렸을 때... 즉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나타나는 등장인물들의 민낯이 추악하면 할수록 비열하면 할수록 그들을 쫓으며 살육하는 존재와 결국 차이가 없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들과 대비되는 인물인 주인공은 더욱 돋보이기 마련이고... 결국 그런 모든 것에서 살아남아 탈출하는 것으로 관객이나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그렇다면 공포물이 잘 되기 위해선 일단 외부와 고립되어야 하고 사람들을 쫓아와 해를 가하는 것의 정체가 사람들로부터 공포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폭풍이 쫓아오는 밤은 이런 모든 공식에 잘 맞춘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빠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어린 여동생과 함께 원치 않는 가족 여행을 온 열일곱 살 소녀 이서는 산속 깊이 자리한 수련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이서네 가족을 포함 3팀이 모인 수련원의 밤은 각자 술을 마시고 즐겁게 노느라 바쁜데 갑작스러운 정전과 함께 모든 통신이 두절되면서 뭔가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아빠가 관리동에 간 사이 가족들이 머문 숙소에 뭔지 정체 모를 엄청난 크기의 무언가가 접근해왔고 그 괴물의 공격을 피해 달아났지만 이웃동은 피할 겨를이 없이 그 괴물에게 그대로 당하고 만다.

이제까지 봐왔던 그 어떤 동물과도 닮지 않은 그 괴물이 자신과 눈을 마주친 순간 이서는 그 괴물이 노리는 건 자신이라는 걸 직감한다.

산속 깊은 곳에 위치한 수려원이라는 위치와 때아닌 폭풍이 몰려오면서 전기가 끊기고 통신이 두절되는 등 일종의 고립된 상태 즉 밀실 상태가 되면서 괴물이 마음껏 활약할 수 있는 무대는 마련되었다.

여기에 아이들을 보호해야 할 성인은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일찌감치 제거되었고 결국은 어린 이서와 또래의 남학생 수하 단둘이서 사라진 아빠를 찾고 어린 동생을 보호해야 할 보호자의 위치가 된다.

이서와 수하 역시 도망갈 기회가 있었지만 스스로의 의지로 괴물과의 대결을 선택한다.

이 들의 대결은 마치 사춘기를 넘어선 아이들이 어른이 되기 위해 치르는 자신과의 싸움 같은 느낌을 주는 데... 마침 두 사람이 이런 선택을 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 역시 있었다.

이서에게는 자신의 잘못으로 눈앞에서 엄마를 잃었던 기억이 있고 수하 역시 폭력적인 아빠 밑에서 자라 자신의 내부에도 그 사람과 같은 폭력성이 존재하고 있음을 두려워해 좋아하던 축구마저 포기한 상태... 그런 두 사람의 깊은 죄의식을 자극하는 게 바로 죄를 지은 사람만 공격한다는 괴물이었다.

괴물은 괴물로서 존재할 뿐 아니라 두 사람 깊은 곳에 숨겨진 상처이자 트라우마의 현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스피디한 전개와 빠른 장면전환 그리고 생생하게 묘사된 긴박감이 잘 어울린 작품이었다.

영상으로 보면 더 흥미로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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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집 우케쓰 이상한 시리즈
우케쓰 지음, 김은모 옮김 / 리드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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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대부분 주거의 형태가 아파트다 보니 인테리어적인 부분은 몰라도 집의 구조는 평수의 차이만 있을 뿐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요즘에는 디자인이나 설계부분에서 다양한 형태의 아파트가 나오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크게 바뀔 수 없다.

그래서 집을 배경으로 하는 공포물이나 호러물은 집 자체가 주는 공포가 아닌 그 집안에 사는 사람이 공포의 대상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반해 미국이나 유럽 같은 경우는 그 집이 가지고 있는 자체의 분위기만으로도 얼마든지 공포물이 될 수 있다.

여기에 우리보다 지진 등의 영향으로 단독주택이 많은 일본 역시 마찬가지로 그 집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공포물이 제법 있는 데 이 책 이상한 집 역시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집 자체가 가지고 있는 그 은밀하고 비밀스러움을 제대로 그려내고 있다.

어느 날 오컬트 작가인 남자에게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온다.

새로 살 집이 채광도 좋고 신축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집이라 마음에 드는 데 설계도면 상에서 묘하게 이상한 부분이 있어 신경이 쓰인다는 말을 들은 나는 그 설계도를 건축 설계사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로부터 들은 말은 분명히 집은 평범하지 않은 어딘가 이상하고 묘한 부분이 있다며... 자신이 생각한 가설을 들려주는 데 그 내용이 생각지도 못한 섬뜩한 것이었다.

겉으로 봐선 평범한 집이지만 아이 방이 있는 2층을 들여다보면 누가 봐도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이 눈에 띈다.

일단 아이 방 답잖게 창문이 하나도 없는 점... 그리고 아이 방을 들어가려면 두 번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점

거기에다 1층 부엌을 비롯해 막혀있는 숨겨진 공간이 있는 데 2층 도면과 겹쳐보면 서로 연결된다는 점을 들어 건축 설계사는 무서운 가설을 세운다.

혹시 이 집은 누군가를 은밀하게 살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 것이며 아이는 살인의 도구로 쓰인 게 아닐까 하는...

그의 가설은 그 누구도 생각해 보지 못한 대담하고 무서운 가설이지만 집의 이상한 설계와 맞물려 마냥 과장이거나 농담으로 치부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그런 내용을 담아 기사를 적은 나에게 누군가가 연락을 해온다.

자신의 남편 역시 이상한 집에서 살해당한 게 아닐까 한다는 그녀의 말은 나로 하여금 반드시 그녀를 만나봐야만 하는 필요를 느끼게 했고 그녀가 가져온 또 다른 이상한 집의 도면이 처음 그 집과 분명 다르지만 많은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내용은 길지 않을 뿐 아니라 필자인 나와 건축 설계사와의 대화 그리고 남편을 잃은 여자와의 대화처럼 전부 대화 형식으로 쓰여 있다.

그래서 글자체가 군더더기가 없고 간결해서 대화 속의 내용이 더 무겁게 다가온다.

단지 설계도상의 어딘가 이상한 점을 찾다 왜 이렇게 집을 이상하게 지어야했을까로 시작해 결국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가설을 세웠지만 어디까지나 가설이었을 뿐... 그 자체로는 사건성은 없다

하지만 얼마 뒤 그 집이 있는 근방에서 토막 난 사체가 발견되면서 이제 단순히 가설로만 볼 수 없게 된다.

하나의 가설에서 발전해 점점 더 덩치를 키우는 의혹에 불을 붙인 건 나의 기사를 보고 찾아온 여자의 이야기가 겹쳐지면서부터다.

이상하다는 의혹에서 시작해 하나의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가 나오면서 이야기는 점점 더 확장되어가는 구조다.

그리고 집을 둘러싼 비밀을 찾아가다 드러난 진실은... 역시 생각처럼 섬뜩하고 기괴하기 짝이 없다.

사람의 관념이란 게 얼마나 쉽게 조작될 수 있는지 그리고 하나의 관념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어떤 짓까지 벌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이상한 집은 처음부터 소설의 형태가 아닌 오컬트 콘텐츠 크리에이터인 우케쓰의 동영상에서 출발했다는 것부터가 평범하지 않다.

생각해 보면 무섭고 섬뜩하지만 그럼에도 콘텐츠가 가지고 있는 묘한 매력은 왜 그토록 많은 사람으로부터 인기를 끌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이 책의 성공은 독특한 발상과 기획력이 가져온 성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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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금 1 - 왕의 목소리
임정원 지음 / 비욘드오리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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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바탕으로 한 소설은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분야다.

일단 누구나 그 결말에 대해 다 알고 있다는 점이 소설적 흥미를 끌어내릴 수 있다는 것과 그럼에도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캐릭터로 입체화해서 그 사람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라가면서 느끼는 주인공과의 감정이입이 용이하다는 점등으로 인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파란만장한 조선왕조 500년의 역사를 볼 때 그 수많은 사건 사고 속에서도 인상적으로 꼽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사도세자의 뒤주 사건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가장 많이 소설적 소재나 드라마화되었던 시대 중 하나가 바로 조선 중후기의 이 시기가 아닐까?

이 책 중금 역시 그 시기를 다루고 있지만 왕이나 유명한 신하 중심이 아닌... 양반의 신분도 아니고 그저 중인의 신분이면서도 내시를 제외하고 가장 가까이에서 왕을 지켜본 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고 있다.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중금은 이른바 글로 표현하지 못하거나 할 필요가 없는 왕의 말씀을 전하는 자라고 한다.

한 남자가 쫓기듯 신분을 숨기고 이름 모를 작은 바닷가에서 심마니로 생활한다.

그의 이름은 이재운... 중금이었던 자 이면서도 선왕이었던 경종의 국금이기도 하다.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내려졌던 경종의 국금이지만 궁궐 안 속속들이 침투해있던 세력들에 의해 발각되어 역모의 죄를 물어 참형이 내려졌으나 친우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져 훗날을 도모하며 은신하나 결국 발각되어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들이 있었고 아들 이지견에게 자신이 가진 재능을 훈련시켜 반드시 궁으로 가라는 유언을 남긴다.

아비의 유언이 뭘 의미하는 지도 모른 채 그저 유언을 따라 한양으로 와 결국 중금이 되어 궁에 입성한 이지견을 중심으로 스토리를 풀어가고 있는 중금은 우리에게 낯선 중금이라는 직책에 대한 소개도 흥미로웠지만 당시 혼란스러웠던 정국을 왕이나 고위층 양반의 시선이 아닌 일반 백성은 아니지만 이에 가까운 중인의 시선으로 정쟁을 지켜본다는 점이 기존의 소설들과 조금 다른 점이다.

폐위된 어미 희빈 장 씨의 소생이자 아비인 숙종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해 처음부터 정치적 기반이 약했던 경종은

연잉군을 미는 노론과의 힘겨루기를 하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승하한다.

하지만 죽기 전 자신의 뜻을 후대에 전하기 위해 국금을 전하지만 이조차 뜻대로 되지 못하고 억울하게 누명을 쓴 채 참형에 처해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무수리의 자식으로 태어나 보위에 오른 영조 역시 노론 세력에 의해 자리를 차지했다는 태생적 한계를 좀처럼 극복하지 못한 채 매번 자신의 뜻을 꺾고 신하들이 원하는 대로 휘둘릴 수밖에 없는 처지였고 영민하고 똑똑했지만 자신의 기반이 약했던 세자 역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손발이 묶여 뭐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아비를 곁에서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세자가 노론들에게 호의적일 수 없었고 그런 세자의 시선을 모를 리 없었던 노론은 세자를 끌어내리기 위해 이런저런 모함을 하면서 부자지간 사이에서 이간질을 한다.

그리고 그 결과 부자지간은 멀어질 대로 멀어졌고... 그런 부자지간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보는 중금 이지견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선왕의 국금을 지금 현재의 왕인 영조에게 가 아닌 자신의 시선으로 볼 때 영민하고 강직해 다음 왕으로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세자에게 전하지만 이조차도 원하는 방향과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오랜 세월 보위에 올라 탕평책을 비롯해 여러 가지 정책을 펼쳐 우리에게는 영조대왕으로 알려진 영조가 강력한 신권에 밀려 제대로 뜻을 펼치기는커녕 신하들과의 마찰에서 언제나 한 수 물리며 눈치를 봐야 했던 다소 우유부단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도 그렇고 사도 세자가 광증을 앓아 주변 사람을 해쳐서 어쩔 수 없이 그런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게 아닌... 아비를 위해 아비의 처세를 위해 스스로가 그런 죽음을 선택했다고 풀어놓은 작가의 관점이 흥미로웠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아비와 아들 간의 비극적인 사건에 모든 초점을 맞춘 게 아니라 오랜 시간 권력을 손에 쥔 노론 세력에 의해 정국이 혼란스럽고 나라가 어지러운 가운데서도 목숨을 바쳐 국금을 지키고 자신의 뜻을 펼치고자 했던 중금이라는 멋진 남자들의 의리와 신념을 그리고 있어 안타까우면서도 흥미로웠다.

가독성도 좋고 이야기의 짜임새도 좋아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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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허풍담 6 - 터무니없는 거짓말
요른 릴 지음, 지연리 옮김 / 열림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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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겨울이면 오고 가는 것도 쉽지 않고 찾아오는 사람도 거의 없는 척박한 땅 그린란드

그곳을 기점으로 긴 겨울 동안 사냥을 해서 다음 보급선이 오면 그동안 사냥했던 것들을 넘기고 다시 보급선이 올 때까지 똑같은 일상을 보내는 게 바로 북극 사냥꾼들이고 이 책 북극 허풍담 시리즈는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적 소설이기도 하다.

젊은 나이에 그린란드에 가서 그곳에서 16년을 보낸 후 그 경험담을 쓴 책이 바로 북극 허풍담이란다.

그래서인지 책 속에 등장하는 사냥꾼들의 캐릭터가 마치 실존하는 인물처럼 생생하기 그지없다.

겨울이 길고 이웃을 방문하고 싶어도 몇 날 며칠 개 썰매를 타고 가야만 하는 척박한 곳이다 보니 웬만한 사람은 이곳을 견디기가 쉽지 않다.

자연스럽게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들은 서로 오랜 시간을 봐온 사이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에 대해 모든 걸 공유하다시피하면서 서로 모르는 것이 없는 이 사내들은 긴긴밤 술로 몸을 데우거나 함께 할 시간이 오면 술과 이야기로 지새우기 예사다.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조그마한 진실에 온갖 허풍과 과장이 섞이고 자신의 사담까지 섞어서 원래의 이야기는 어디로 가고 없고 그저 긴긴 겨울밤을 재밌게 보낼 수 있기만 하면 뭐든 오케이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오랜 시간 목숨을 걸고 서로를 지켜온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분위기란 게 있다.

평소에는 서로의 작은 실수를 화제로 짓궂게 놀리고 평생을 웃음거리로 삼지만 동료에게 위험이 닥치거나 외부의 적을 만났을 땐 누구랄 것 없이 공조를 펼친다.

이번 편에서도 그런 점이 두드러졌는데 이를테면 본토에서 건너온 산악회와의 일화가 그렇다.

산악회가 창립된 지 몇백 년이나 되는 전통 산악회인 덴마크 산악회가 이곳 그린란드의 산을 오르기 위해 왔는데 어디든 그렇듯이 그들 모임에 질 좋고 귀한 술이 빠질 수 없다.

엄청난 양의 위스키와 술을 가지고 이곳으로 온 산악회 사람들을 환영하는 만찬회에서 눈뜨고 코 베어 가는 식으로 눈앞에서 그들의 술을 훔쳐 숨겨놓고는 시치미를 떼고서 마치 이 모든 짓을 한 게 곰 그것도 미국 곰이 한 짓이라고 하는 장면을 보면서 실실 웃음이 나왔다.

이런 허술한 거짓말에 속는다고? 하는 마음이 반, 원하는 술을 얻기 위해 서로 단결해 술을 도둑질하는 일련의 과정의 엉뚱한 전략에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또 다른 에피소드 중 하나인 기생충을 잡는 에피소드는 솔직히 몸서리가 처질 정도로 징그러웠다.

나날이 여의어 가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백작에게 사냥꾼들이 걱정하며 곁을 지키고 선 가운데 그의 몸속에서 하나씩 기생충이 기어 나오는 장면의 괴기스러움이란...

시리즈의 대부분이 이런 재미난 에피소드와 함께 북극 사냥꾼들의 일상을 흥미롭게 그려놓고 있는 데 들여다보면 마냥 재밌기만 한 건 아니었다.

그 속에는 웃음 뒤에 감춰진 사람들의 어둠이나 인간 본성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것도 있는 데 어떤 걸로도 숨기거나 감출 수 없고 더 이상 피할 곳도 없는 막다른 장소 바로 북극이라는 장소의 특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자칫 서늘하고 냉담할 수도 있는 내용을 무겁지 않게 유머로 잘 포장해놓고 있는 게 바로 이 시리즈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시리즈를 모아놓고 제대로 다시 읽어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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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눈물
하세 세이슈 지음, 허성재 옮김 / 혜지원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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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서든 소수가 된다는 건 불평등과 불합리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걸 뜻한다.

우리나라 역시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 땅에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거나 혹은 일본의 목적하에 강제로 낯선 땅으로 이주당한 채 살아간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설움에 대해 낯설지 않다.

인류 역사상 원주민이 살고 있는 곳에 낯선 민족이 들아와 원래 살던 원주민을 몰아내고선 그 땅의 주인이 된 경우는 하나 둘이 아니다.

멀리 호주나 미국을 비롯하여 가까운 곳으로는 일본 역시 예외는 아니다.

우리에게는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홋카이도의 토착 주민인 아이누족의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일본 사람과 외견상의 차이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다른 문화 차이로 인해 많은 갈등이 있었고 편견에 시달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책 신의 눈물에서는 그런 아이누족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온갖 자연재해가 결국 자연을 파괴하고 환경을 훼손한 결과이며 그 대가는 우리의 후손들이 짊어져야 할 짐이 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홋카이도 작은 동네에서 아이누족 목조 작가로 활동하는 히라노 게이조에게 본토에서 낯선 사람이 찾아와 제자로 받아들여달라고 요청한다.

그의 이름은 오자키 마사히코

모두가 떠나는 곳에 찾아 온 본토사람...누가 봐도 수상한 상황이지만 웬일인지 절대로 낯선 사람을 자신의 영역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게이조가 그를 받아들이고 손녀인 유우는 이 상황이 이상하기 그지없다.

부모를 갑작스러운 사고로 잃어버리고 할아버지인 게이조와 살기 전까진 자신의 피에 아이누족의 피가 섞여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유우는 학교에서 그걸 이유로 이유 모를 왕따와 괴롬힘을 당하면서 이곳이 너무나 싫어 하루빨리 이곳을 떠날 계획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우의 경계와 게이조의 냉대에도 자연스럽게 이 집에 스며들어가는 오자키는 사실 도쿄에서 이곳까지 온 데에는 나름의 이유와 목적이 있었다.

뭔가 비밀이 있는 듯한 오자키와 그런 오자키를 귀찮아하면서도 결국 곁에서 자신의 작업을 지켜보는 걸 허락하는 게이조...

그리고 평소 무뚝뚝하고 말이 없어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할아버지인 게이조에게서 거리감을 느끼고 있었던 자신에게 이곳의 곳곳을 구경시켜주고 곁에서 친절하게 보살펴주는 오자키로 인해 유우는 그저 싫기만 했던 이곳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작가의 유명한 불야성 시리즈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전혀 다른 느낌의 이 작품을 읽기 전까진 솔직히 괜찮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인데 책 속에 자연스럽게 소수민족과 본토의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불평등, 억압 문제를 다루고 주인공인 오자키를 통해 동일본 대지진의 피해자의 시선에서 어느 누구 하나 책임지려하지 않는 모습에 그들이 느끼는 분노와 억울함을... 그리고 이 모든 걸 넘어 결국은 모두가 자연 앞에 있어서 가해자임을 드러내는 이 모든 과정을 물흐르듯이 자연스러우면서도 흥미롭게 그려져있어 내 의심을 불식시키고 있다.

캐릭터들마다 가지고 있는 개성을 제대로 잘 살렸고 그 속에서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 역시 우격다짐처럼 우겨넣는 방식이 아닌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수긍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그려내고 있다.

하드보일드 장르만 잘 쓰는 줄 알았는데 자연 속에서 생활하면서 감사함을 느끼고 자연 그대로의 환경을 보존하는 삶을 살아가는 아이누족의 이야기나 그곳에 살고 있는 온갖 동물들의 모습을 묘사하는 부분을 보면 시튼 동물기가 연상되기도 한다.

여기에다 살인사건이라는 갈등 요소를 넣어 긴장감을 불어넣고 독자로 하여금 좀 더 몰입할 수 있게 만든 걸 보면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장르 불문이구나 하는 걸 새삼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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