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고양이 눈 - 2011년 제44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최제훈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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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서사는 대개 비밀이 밝혀지는 과정과 그 결과의 명쾌함에서 쾌감을 느끼도록 되어 있다. 곳곳에 뿌려진 복선들이 하나의 결말을 향해 일정하게 수렴되는 과정에서 예측이 맞아들어가거나 예측이 뒤바뀌는 지점이 전율을 가져다 주는 것이다. 미스터리 서사를 읽는 것은 결국 막판의 명쾌함을 위해 초반의 혼동을 견디는 과정인 것이다. 그러나 최제훈의 미스터리 장편소설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이 공식을 완벽하게 역행한다. 이 소설은 읽을수록 사건의 실마리에 다가가기는 커녕 혼돈이 가중된다.

 

소설은 '여섯 번째 꿈', '복수의 공식', 'π', '일곱 개의 고양이 눈' 네 편의 독립적인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첫 번째 이야기인 '여섯번째 꿈'은 일반적인 미스터리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의문의 연쇄 살인이라는 흔한 미스터리물의 소재를 들고 온 것도, 사건이 진행됨에 따라 서스펜스가 가중되는 것도, 범인이 예상하기 힘든 존재라는 것도 특별할 것 없는 미스터리의 공식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일견 밀실공포의 클리셰로 여겨지는 이 첫번째 이야기는 그러나 다음 이야기에서 반복되고 변주되면서 소설 전체를 이루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두 번째 소설 '복수의 공식'은 첫번째 소설을 보완해 사건의 전말을 밝히고자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첫 번째 소설에서 이야기되었던 인물들의 관계 및 사건의 설정들이 묘하게 어긋나 있다. 이 이야기는 복수라는 형태로 행해지는 살인이 얼마나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는지를 일련의 인물들이 겪는 우연한 사건들의 연쇄를 통해 보여준다. 하나의 사건이 뜻하지 않은 방식으로 다음 사건의 동기가 되면서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이야기는 일종의 나비 효과 이론의 소설적 실험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 이야기는 첫 번째 소설에서 이야기된 사건이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세 번째 소설 'π'에서는 첫 번째 소설이 통째로 안 이야기로 삽입된다. '여섯 번째 꿈'의 한 인물인 것만 같은 주인공이 번역하고 있는 텍스트와 그의 동거녀에 의해 말해지는 이야기가 내화로 번갈아가며 등장한다. 번역되는 이야기는 첫 번째 소설을 그대로 가지고 왔고, 말해지는 이야기는 두 번째 소설의 한 장면을 변주한다. 이렇게 이야기는 계속 반복되지만, 그 반복은 지금까지 쌓아온 이야기의 세계를 일시에 무너뜨린다. 외화와 내화의 경계, 진실과 거짓,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없어진다. 이 몽환의 공간 속에서 같은 이야기만 꾸준히 반복될 뿐이다.

 

마지막 소설 '일곱 개의 고양이 눈'에서도 복합적인 사건이 교차된다. 전혀 다른 새로운 이야기 같지만 앞에서 이야기되었던 인물이나 모티프들이 또한 반복되며 하나의 이야기 구조에 안착한다. 마지막 이야기는 작품 속에 다시 한번 등장하는 텍스트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이 한 독자의 상상에 의해 재창조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소설 속 텍스트이기도 하고 이 소설 자체이기도 한 '완벽한 미스터리'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의 본질을 밝힌다.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네 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가 모여진 옴니버스 형식이지만, 같은 사건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낸 하나의 이야기이다. 이처럼 한 사건의 무수한 변주는 진실을 탐색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반복되는 인물들의 관계는 조금씩 다르고 중첩되는 사건들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소설의 도입에서 서술된 '이야기가 매번 변하고 있'다는 진술은 마지막에 와서 '거짓말을 하는 건 창조적인 과정'이라는 형사의 말로 수렴되며 네 편의 이야기를 하나로 묶어주는 단서가 된다. 즉 하나의 이야기이되 같은 이야기가 아닌 네 편의 소설은 이야기 자체의 속성을 이야기하는 메타픽션의 성격을 갖게된다.

 

하나의 진실과 그것이 이야기되는 무수한 텍스트들이 난무하는 소설 속에서 팩트(fact)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팩트는 말과 글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끊임없는 재창조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여러 이야기들이 변주되는 동안 현실과 허구의 경계는 무너지고 세계는 객관성을 잃게된다. 이 한 편의 미스터리가 밝혀내는 것은 사건의 진실이 아니라 이야기의 속성이다. 다시 말해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은 이야기가 그 자체로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무수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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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의 공동체 - 신형철 산문 2006~2009
신형철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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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은 책에 대한 글을 읽기는 어렵다. 제재에 관한 배경지식을 필자와 공유하지 못하므로 자칫 뜬구름 잡는 독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소위 평론이라는 장르는 한 텍스트의 완독에 따르는 이차적 독서물로서의 기능에 안주하는 것이 태생적 한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론은 엄연한 문학이다. 비록 메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일차적 텍스트와는 무관하게 그 자체로 읽히는 글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몰락의 에티카>에서 그러한 평론의 힘을 증명해 낸 신형철의 두 번째 책 <느낌의 공동체>는 산문집이다. 그러나 이 또한 많은 부분 문학 작품들에서 제재를 취하고 있어 평론의 껍데기를 완전히 벗어던지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 책은 문학에 훨씬 더 가까이 다가섰다.

 

'느낌'은 공유하기 어렵다는데 그것을 목표를 노를 젓는 저자의 노력은 찬란한 결과물로 나타난다. 이 산문집에는 다양한 매체의 지면에 실렸던 다양한 종류의 글들이 실려있다. 평론 같기도 하고 칼럼같기도 한, 딱히 장르적 문법에 의존하지 않은 자유로운 글들의 모음이다. 그 제재는 시와 시인, 소설과 영화 그리고 그것을 아우르는 사회에서 취하고 있다. 이러한 제재들에서 얻는 필자의 '느낌'은 내면에 머무르지 않고 '사유'의 틀을 거치며 뚜렷한 육체를 갖게된다. 신변잡기에 관한 글이 아님에도 강력하게 독자와 소통하는 힘은 감각을 사유로 전환하는 저자의 섬세한 필력에 있다 하겠다.

 

문학과 사회에 대한 찰나적인 시선이 명징한 현상으로 전환되는 과정은 일종의 쾌감을 준다. 글 읽는 재미가 가득 느껴지는 책이다.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작품보다는 문학이나 사회의 역할에 주목한다. 저자는 시의 미학적 보수성에 대해 경계하며 번득이는 시심(詩心)에 대한 감탄을 숨기지 않는다. 때로는 외국어에 점령된 빈약한 수사를 개탄하기도 하고 은유의 위험한 사용을 경계하기도 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산문들이지만 취향에의 강요가 아닌 논리적 수긍을 바탕으로 하는 명쾌한 설득이다. 그렇다고 골치아픈 문장으로 독자를 향한 지적 도전을 감행하지도 않는다. 

 

소개되는 작품들의 구절도, 소개하는 사람의 절묘한 시선도 하나하나 주옥같다. 아무 페이지를 펼쳐도 미문을 쏟아진다.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생각을 누구나 알기 쉽게 풀어낸 글이 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전달하는 글이 있다. 신형철의 산문은 둘 다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다루는 제재에 대한 스키마 없이도 소통할 수 있다. 저자는 때로는 날카롭게 때로는 위트있게 문학과 세상을 이야기한다.

 

문학은 언어라는 상징을 사용한 예술이기 때문에 오감의 활약만으로 온전하게 감상할 수 없다. 오감으로 받아들여진 언어상징은 사유를 거쳐 비로소 인식된다. 따라서 문학은 사유의 힘으로 살아남아 있는 것이다. 신형철의 글은 '사유'다. 자신의 사유를 강요하지 않고 독자를 사유로 이끈다. 그는 이 책에서 정흥수의 평론집 <소설의 고독>을 두고 '문학이 된 평론'이라고 했다. <느낌의 공동체>도 가히 문학이 된 평론, 아니 시가 된 산문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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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1 세계문학의 숲 17
에밀 졸라 지음, 박명숙 옮김 / 시공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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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이 자본주의적 욕망의 집결체로 여겨지고 있는 것은 현대에 와서야 나타나기 시작한 현상은 아닌 것 같다. 에밀 졸라의 소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Au Bonheur des dames)>에서 묘사된 백화점을 둘러싼 풍경들은 오늘날 도시적 소비행태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소설의 배경은 1860년대이고, 소설이 발표된 시기는 1880년대이지만 작가는 이야기를 통째로 21세기로 옮겨도 이질적이지 않을 만큼 시대적 변화를 적절히 포착하고 미래에 대한 정확한 전망을 자신감 있게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는 일은 한 사회의 과거를 탐색하는 과정이기보다 현재를 반추하는 과정에 가깝다.

 

프랑스 자연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에밀 졸라는 삶의 비참함과 냉혹함에 시선을 두고 당대 사회를 치밀하게 그려내는 일에 몰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작품>에서의 천대받던 인상파 화가를 비롯해 <목로주점>의 변두리 하층 노동자, <제르미날>의 광부들, <나나>의 창부 등 다양한 직업군들의 현실적 삶에 대한 현미경 같은 묘사는 졸라의 역작 '루공-마카르 총서'에 제2 제정기의 프랑스 사회의 풍속화로서 큰 가치를 부여한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은 같은 맥락에서 졸라가 천착한 당대 사회의 세밀한 묘사에 문학적 의의를 두고 있다. 이 소설은 세계 최초 백화점으로 알려진 봉마르셰 백화점을 모델로 거대 자본이 밀려들기 시작하는 19세기 중후반의 파리의 모습을 그린다. 파리의 중심에 세워진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Au Bonheur des Dames)'의 번영을 바탕으로 변화해가는 당시 상업 메카니즘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싹트기 시작하는 소비자들의 욕망과 무기력하게 몰락해가는 소상인들의 애환에 초점을 맞추며 변화하는 사회에 따라 변화하는 인간군상의 모습을 역동적으로 그려냈다.

 

졸라는 이 작품에서 일체의 가치판단을 보류한다. 백화점이라는 거대한 괴물이 부적절한 소비 행태를 부추겨 가정의 파탄을 이끌어내고, 몇 대째 한 자리에 붙박인 채 장사를 해오던 소상인들을 오랜 삶의 터전으로부터 몰아내는 장면을 여과없이 그려내면서도 그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주느비에브의 죽음으로 상징되는 소상인들의 몰락은 백화점의 압도적인 번영과 대비되며 소설의 클라이맥스를 이루지만 여기에 동정이나 비난의 시선은 개입되지 않는다. 이는 절망과 체념이라기보다 시대를 정확하게 꿰뚫는 혜안에서 비롯된 변화에의 긍정이다. 이런 작가의 생각을 가장 잘 드러내는 인물이 바로 드니즈인데, 그는 몰락한 상인의 딸로서 소상인들의 세계에 한 발을 걸친 채 백화점 점원으로서 큰 성공을 거둔다. 드니즈는 몰락하는 상인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그들과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백화점을 떠나지 않는다. 이러한 새로운 인물 유형이 긍정되는 것은 결국 작가가 자본주의의 성장이 가져다 줄 미래사회의 번영을 정확히 예측하고 있었음을 짐작케한다.

 

작가의 이러한 예측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투자자와 경영자의 이해관계, 소비심리를 자극하는 경영방침과 광고, 서비스로까지 확장되는 백화점의 역동적인 운영시스템은 오늘날도 여전히 유효하다. 근로자들의 복지나 직장 내 파벌, 줄서기 따위의 이해관계가 형성되는 관행도 소설 속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심지어는 돈이 중시되는 사회에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자문하는 인물의 모습도 오늘날과 같다. 옥타브 무레와 드니즈 보뒤의 관계는 오늘날 수없이 변주되고 있는 신데렐라 신드롬의 판박이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은 자본주의라는 인류의 거대한 욕망을 인간의 사랑과 관능이라는 개인적 차원으로 치환하여 보여주면서 욕망의 본질을 탐색한다. 소설의 압권은 9장에서 장장 50쪽에 걸쳐 묘사되고 있는 백화점의 하루 풍경이다. 소비의 욕구는 자기과시와 탐닉으로 확대되며, 소비의 공간은 밀회와 질투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거대자본의 상징으로서 욕망이 싹트는 공간으로서 백화점이라는 상징은 때로 인간의 부도덕함을 들추어내기도 하지만 졸라는 드니즈라는 드물게 긍정적인 인물을 창조함으로써 부정적 측면을 상쇄시킨다. 그리하여 백화점도 욕망도 건재한 채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그래서 우리는 한때 삶의 질을 변화시켰던 이 공간과는 모습과 기능에 있어 한치도 다르지 않은 오늘날 백화점의 모습을 이 책을 통해 보게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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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일단 가고봅시다! 키만 큰 30세 아들과 깡마른 60세 엄마, 미친 척 500일간 세계를 누비다! 시리즈 1
태원준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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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 삶의 가장 큰 화두는 엄마와의 여행이다. 여행은 무조건 혼자 떠나야 참맛을 느낄 수 있다는 이해받지 못하던 그간의 습성이 최근들어 바뀌기 시작한 것도 엄마와의 여행 이후이다. 여행에서 동행자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그들은 고독한 여정에서 외로움을 상쇄시켜 주는 대신 자유를 어느 정도 반납할 것을 요구한다. 함께하는 여행에서는 상대방을 배려하면 배려하는대로, 안하면 안하는대로 힘들다. 민폐와 양보 사이의 어디쯤에 서로 눈치 보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어떤 지점을 찾아야 하는 마음의 부담을 항상 져야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부담에서 벗어날 때, 동행자는 여행의 특별한 손님이 된다. 긴 여행을 함께한다는 것은 하루 중 24시간을 온전히 함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루 세 끼 밥을 함께 먹고 같은 곳에 가고, 같은 것을 본다. 부모, 형제, 배우자라고 해도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함께 지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여행지의 하루를 함께하는 일은 일상의 며칠을 더한 것보다 더한 밀도로 감지될 수밖에 없다. 여행을 함께한다는 것은 때로는 신경이 곤두서는 일이기는 하지만, 지나고 나면 밥상 머리에서도 티비 앞에서도 무수한 할 이야기들이 생긴다. 단 며칠의 여행도 그러한데 일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의 여행에서 동행자는 평생을 풀어내도 다 하지 못할 이야기 보따리를 공유한 특별한 존재가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겠지만.


태원준의 <엄마, 일단 가고봅시다>는 두 가지 점에서 다시 없을 여행기다. 첫째는 아들이 엄마와 함께 떠난 여행이라는 점, 다른 하나는 그 여행이 300여일에 걸친 세계 일주라는 점이다. 엄마가 동행인이 아니더라도 세계일주의 경험은 그 자체로 버라이어티한 이야깃거리를 남길 수밖에 없고, 세계일주가 아니더라도 장성한 아들과 환갑 어머니와의 교감 자체는 특별한 귀감이 될 것인데, 이 책은 이 두 가지 흔하지 않은 상황을 모두 아우르는 유니크함을 지녔다. 그래서 이 책은 여행의 동기에서부터 여정, 여행 방식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가 특별하다. 여타의 여행기에서 얻는 것이 공감과 대리만족이라면 여기서는 동경과 교훈까지도 얻을 수 있다.

 

자녀를 데리고 가는 여행이나, 친구 동료 연인 등이 함께 떠나는 여행과 달리 부모를 모시고 가는 여행에서는 더 많은 자유를 담보해야 한다. 낯선 장소에서는 대체로 부모 자식 사이의 보호와 의존의 관계가 역전되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여행의 모든 기준을 엄마에게 맞추어 놓고 그 자신은 충실한 가이드를 자처한다. 그러나 책이 진행될수록 엄마는 수동적인 관광객이 아닌 스스로 여행을 즐기는 적극적인 자유여행자의 모습으로 거듭난다. 아들이 여행의 보호자가 아닌 동반자가 된 것이다. 작가는 이 특별한 여행의 주인공으로 엄마를 초대했다고 하지만, 엄마는 스스로가 여행의 주인공이 된다. 이제 아들은 엄마가 집에 가자고 할까봐가 아니라, 집에 가기 싫다고 할까봐 걱정하기에 이른다.

 

물론 이 사이좋은 모자의 여행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00여 일을 여행하는 동안 아들은 슈퍼맨 노릇을 하는 것에 지쳐가고, 엄마는 그런 아들을 배려하느라 마음에 담아 둔 말을 하지 못해 마음이 무겁다. 여행의 동행이 길어지면 필연적으로 오는 갈등이 여행 100일만에야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부자는 이 위기의 해결책을 여행 안에서 찾는다. 이들이 여행의 휴식기로 선택한 날들은 어찌보면 가장 여행다운 순간으로 보인다. 얽매이는 일 없이 자신에 집중하고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여유를 갖는 시간 말이다. 당연히 모자는 이 시간 동안 새로운 여행을 위한 에너지를 듬뿍 담아 간다.

 

모자의 세계 여행기라는 것이 이 책의 독특함이라고 한다면, 자유여행자의 즉흥적이고 돌발적인 체험담은 보통의 여행에세이에서 기대되는 생생한 여행의 모습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작가는 여행 도중 호텔 호객꾼의 어이없는 수법에 걸려들거나 야간 버스에서 아이폰을 도난당하는 등 알려질대로 알려진 뻔한 사기에 당하고 만 황당한 경험들을 풀어놓는다. 또한 열악한 야간 열차나 털털거리는 버스 이동, 허름한 게스트 하우스 투숙 체험 등을 통해 장기 여행자의 긴축 재정에 대한 생생한 현장을 보고하는가 하면, 여행지의 웅장한 유적과 아름다운 경관에 넋을 빼앗기는 모습도 여과없이 보여준다.  이들 여행은 계획한대로만 진행되지도 않는다. 리장, 치앙마이, 자카르타에서 휴식을 위해 여정을 잠시 멈추는가 하면, 쏭크란 물축제를 맞기 위해 캄보디아에서 하루만에 짐을 싸 방콕으로 향하기도 하면서 여행이 지니는 예측불가능성의 매력을 끝없이 설파한다.

 

어머니의 환갑과 은퇴 기념, 그리고 위로를 겸해 떠난 여행은 엄마에게 '자기 자신'을 되찾아 주는 여행이 된다. <엄마, 일단 가고봅시다>는 '이름'으로 불리는 것의 기쁨을 환갑이 지나서야 다시 알게된 엄마의 성장기이자, 효의 실천에 대한 조금은 무모하고 대담한 아들의 모험담이다. 대단한 효의 본보기는 많이 있지만 자식이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주는 것보다 큰 효의 실천은 없을 것이다. 부모를 내 삶으로 초대하는 일, 그것의 즐거움을 이 책은 쉴새 없이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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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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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어나 한 번도 대한민국을 떠나본 적이 없다."
17일 동안 쏘롱라패스를 넘는 히말라야 환상종주를 마치고 온 소설가 정유정의 여행기는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해외에서 마주할 강렬한 문화적 충격을 대비하기에도 바쁜 생애 첫 해외여행에서, 작가는 산적과 고산병, 구조헬기를 위한 비상금을 걱정해야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선택 사항'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인 것을.

 

어느 모로 보나 여행 체질은 아닌 것이 분명한 작가를 해외로 그것도 하필 히말라야로 이끈 것이 작가가 창조한 작품 속 인물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내 심장을 쏴라>의 주인공 승민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땅으로서 작가의 부름을 받았던 히말라야가, 이번에는 거꾸로 작가를 향해 손짓하고 있으니 말이다. 소설가로서는 절망적이었을 '새 소설을 상상해도 피가 뜨거워지지 않'는 상황에서 운명같기도 한 그 부름에 작가는 순순히 응답한다. 꿈속의 땅으로 마음 깊이 담아두었던 히말라야가 슬그머니 베일을 벗기 시작한 뒤로, 막막함과 불안감, 두려움을 부추기는 주변의 우려를 뒤로하고 카트만두에 첫발을 디디기까지의 과정은 관동에 관찰사로 부임받아 떠나는 정철의 여정만큼이나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히말라야 환상 방황>은 요란한 프롤로그에서 밝힌 바대로 초보 여행자의 최초 해외 여행에 대한 기록이다. 대부분의 여행 에세이는 나름 여행깨나 했다는 베테랑 여행가들의 여유와 달관 속에서 다소 낭만적으로 채색되어 있다. 반면에 이 책은 매사에 우왕좌왕하는 초보 여행자의 어설픔이 숨김없이 드러난다. 그래서 '사부'와 '구세주'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말 잘 듣는 어린아이 같은 작가의 모습을 킬킬대며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그 감정에 이입하게 된다. 영어 벙어리로서 우격다짐으로 소통을 이루어내는 장면이나 히말라야 한가운데서 택배 기사의 전화를 받고 통신사의 처사에 분통을 터뜨리는 에피소드는 '척'하지 않는 솔직하고 담백한 체험담이 그 체험을 얼마나 생동감있게 전해줄 수 있는지를 증명해준다. 좌충우돌이라해도 좋을만큼 숱한 시행착오와 위기들은 처음으로 여행의 본질에 맞딱뜨리는 초보 여행자가 여행이 가져다주는 무한한 매력에 성큼 다가가는 과정을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개인적 체험에 보다 객관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한다.

 

논픽션으로서 분명한 캐릭터화를 이루어낸 것은 이 책이 지닌 또 다른 쾌거이다. 작가자신과 동행인 김혜나 작가를 제외하고도 가이드 검부, 포터 버럼, 트래킹 중 스쳐지나가는 세계 각국에서 온 트래커들이 등장과 퇴장을 반복하는 이 여행기에서는 단역처럼 스쳐가는 사람 하나하나마저도 고유한 캐릭터를 부여받는다. 호기 넘치게 가이드 없이 출발한 베네수엘라 청년, '도를 믿습니다'를 말하는 듯한 부담스러운 미소의 폴란드 처자, '잘생기고 섹시한 데다, 스마트해 보이는' 코리안 보이 등 다양한 인물들에 대해 작가는 객관적 관찰에 자의적 해석을 더해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래서 이 논픽션은 픽션의 세계만큼이나 역동적이고 재미있게 탈바꿈된다.

 

작가는 히말라야의 매력에 대해 설파하는 대신 불면과 변비, 추위, 고산증 같은 고생스러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럼에도 책 속의 히말라야는 끔찍한 고행길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 고난의 행군 속에서 끊임없이 내면의 대화를 끌어내고 있는 모습에서 히말라야는 차라리 한 사람의 생애의 메타포가 된다. 작가는 그 속에서 웃고 울고 아파하고 마침내 성장한다. 작가는 스치는 풍경, 육체적 고행, 밤과 낮에 찾아오는 꿈과 환각에서 과거의 자신과 직면한다. 가족을 책임져야 했던 어린 가장, 힘들었던 초보 간호사, 창작열을 불태우는 작가. 험난한 여정에 끼어드는 한 개인의 역사는 히말라야를 배경으로 하여 작가에게 또 독자에게 인상적으로 스며든다.

 

안나푸르나 라운딩 코스의 오르락 내리락하는 고도처럼, 작가는 독자를 들었다 놨다한다. 완전한 '골방 체질'인 작가가 '네팔병'에 걸려 에베레스트를 꿈꾸게 되는 마지막 장면까지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킬킬대며 웃다가 가슴이 뭉클해진다'는 홍보 문구는 정확하다. 고백컨대 글쟁이라기보다 능수능란한 스토리텔러라고 여겼던 정유정 작가가 엄청난 내공의 글쟁이라는 것을 나는 이 책을 통해 알았다. 누군가의 여행기는 독자의 대리만족이다. 여행지에 가있는 듯 생생하게 느껴지거나, 아예 그 여행지로 이끄는 동력이 되어야 한다. <히말라야 환상 방황>은 말할 것도 없이 둘 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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