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 너머의 클래식 - 한 소절만 들어도 아는 10대 교향곡의 숨겨진 이야기
나카가와 유스케 지음, 이은정 옮김 / 현익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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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상에서 뜻하지 않게 클래식을 접하고 있었습니다.

S사 세탁기의 세탁종료음으로 '프란츠 슈베르트'의 <송어>가,

학교 하교 시간 종소리로 '봉다르체스카'의 <소녀의 기도>가,

예전 지하철 환승역 안내 방송으로 '비발디'의 <조화의 영감> 등

너무나 익숙하지만 정작 무슨 곡인지 모르는...

그렇기에

"아는 만큼 들리고, 알수록 빠져든다!"

이 말이 참 와닿았습니다.

이 책은 한 소절만 들어도 아는 10곡에 대해 작곡 배경과 작곡가들에 얽힌 흥미진진한 미스터리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합니다.

보다 음악을 풍성하게 즐기기 위해!

저도 이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불후의 10대 교향곡 속으로 떠나는 클래식 시간 여행

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전설적인 명곡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만나다

악보 너머의 클래식



베토벤의 '영웅'이 전대미문의 긴 연주 시간으로 야유까지 받았다는 사실을 아는가?

슈베르트의 '미완성'이 무려 40년 동안이나 그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다가 가까스로 세상의 빛을 본 이야기는 어떤가?

차이콥스키가 역착 '비창'을 초연하고 고작 9일 뒤 의문의 죽음을 맞게 된 이야기는?

그동안 '클래식'에 보이지 않은 벽이 있었는데 이 이야기를 들으니 솔깃하였습니다.

뭔데?

무슨 일이 있었는데?

진짜?

읽으면서 위대한 명곡들을 둘러싼 흥미진진한 작곡 배경과 작곡가들의 인생사로 음악이 더 풍성해졌다고 할까...

단순히 책만 읽고 말겠다는 저에게 이야기를 읽고 난 뒤 음악 하나하나를 찾아 들으면서 다시금 곱씹게 만들었습니다.

이래서 클래식을 듣는구나...! 그 묘미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책에는 불후의 10대 교향곡으로 과감한 형식 또는 예술성으로 당대 음악계를 뒤흔들고, 음악사의 흐름을 바꾸었으며, 지금까지도 대작으로 손꼽히는 명곡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모차르트 교향곡 제41번 <주피터> - 교향곡의 최고신

베토벤 교향곡 제3번 <영웅> - 영웅이 된 교향곡

베토벤 교향곡 제5번 <운명> - 운명이 문을 두드리면서 시작되는 교향곡

베토벤 교향곡 제6번 <전원> - 전원의 분위기와 정경이 느껴지는 교향곡

슈베르트 교향곡 제8번 <미완성> - 미완성임에도 불구하고 명곡이 된 교향곡

베를리오즈 교향곡 <환상> - 사랑의 열병 속에 탄생한 교향곡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6번 <비창> - 조용히 끝나는 교향곡

드보르자크 교향곡 제9번 <신세계> - 대서양을 건넌 교향곡

말러 교향곡 제1번 <거인> - 모습을 바꾸고 이름을 바꾼 교향곡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제5번 <혁명> - 대숙청에서 탄생한 교향곡

관심이 있던 곡을 펼쳐 읽어도 상관없지만 저자는 음악사의 흐름을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순서대로 읽는 것을 추천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도 순서대로 읽으며 시대의 흐름에 따른, 작곡가의 인생에 따른 변화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본문에 들어가기 앞서 <교향곡은 어떤 음악인가>에 대한 사전 지식이 필요했습니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음악 중에서 일정 양식을 지닌 곡을 말하는 '교향곡'.

18세기 활약한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이 '4악장'이라는 양식을 확립했는데

제1악장: 소나타 형식으로 빠르게 연주하며 가장 길다.

제2악장: 여유로운 느낌으로 연주한다(완서악장).

제3악장: 미뉴에트 등의 무곡 또는 익살맞은 분위기로 연주한다.

제4악장: 하이라이트이자 피날레로 빠르게 연주한다.

이런 패턴을 가진다고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교향곡에는 원래 제목이 없었으며 무언가를 묘사하거나 표현하는 곡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하이든의 교향곡에는 <철학자>, <고별>, <교장선생님>, <놀람>, <기적>, <군대>, <시계>, <큰북 연타> 등의 제목이 붙어 있지만, 사실 이는 하이든이 붙인 것도 아니고, 제목처럼 철학자나 교장 선생님 등을 묘사한 곡도 아니라고 합니다.

모두 곡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를 바탕으로 나중에 붙은 애칭이라는 것.

그리고 시대와 세월이 지나면서 교향곡은 작곡가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작곡하는 작품이 되었고 무언가를 묘사하는 음악이 되어 갔다고 합니다.

양식도 4악장에서 벗어나 5악장이 되거나 단일 악장이 되기도 하고,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과 같이 성악을 더한 곡도 생겨나기도 했다고 합니다.

제목만 들으면 미완성으로 남았기에 <미완성>인 줄 알았지만 슈베르트의 갑작스러운 죽음 때문에 미완성으로 남겨진 것이 아닌, 제2악장까지밖에 없기 때문인

프란츠 슈베르트 교향곡 제8번 <미완성>.

이 곡이 왜 미완성인가는 음악사상 최대의 미스터리라 하였습니다.

그가 미완성의 이유를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고(적어도 슈베르트로부터 그 이유를 들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다) 적다가 만 악보도 발견되지 않았기에 앞으로도 영원히 그 답을 알 수 없을 것이라는데...

그런데 말입니다.

<미완성>은 제3장도 앞부분만 작곡되어 있다고 합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2악장의 뒤까지만 남아 있고 이어지는 부분이 잘린 흔적이 있다는데... 누가 잘랐을까?

슈베르트? 안젤름? 요제프?

잘려 나간 3악장의 두 번째 페이지는 이후 1969년 빈 남성 합창단이 보관하던 자료 속에서 발견되었고 이 또한 20소절까지만 있을 뿐 나머지 몇 페이지는 백지 오선만 그려져 있으니... 제3악장 도중에 작곡을 중단했다는 사실이 명확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미완성>이 작곡된 1822년 당시에 '나의 꿈'이라는 표제로 스토리를 음악으로 묘사하고 2악장으로 구성된 데다가 조용하게 끝나는 교향곡을 초연했다면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 묻혀 버렸을지도 모른다. 휘텐브레너 형제가 40년이나 감추고 있었던 덕분에 <미완성>은 냉동 보존되어 적절한 시기에 신선한 형태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그리고 '미완성이지만 완성되어 있다'는 마술적인 논리로 명곡의 반열에 올랐다. - page 173

그리고 연주를 못하는 작곡가 베를리오즈가 그려낸 <환상>.

악기를 연주할 수 없다는 점이 작곡가로서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할 것 같지만 오히려 연주할 수 없기에 기술적 한계를 몰랐던 그.

그래서 연주가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곤란하게 만들었지만 이로써 혁명적인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그.

원래 제목인 '어느 예술가의 생애에 생긴 일, 5부의 환상적 교향곡'이 부제가 되어 버리고 장르명으로 '환상 교향곡'으로 추가된 이 곡은 이상적인 여인의 마력에 빠진 한 남자의 음악적 초상화나 다름없었습니다.

볼프강 됨링이 쓴 《베를리오즈와 그의 시대》에 수록된 1855년 버전 이후의 해설을 보면

"병적인 감수성과 불타오르는 듯한 상상력을 가진 젊은 음악가가 사랑에 절망하고 발작적으로 아편을 피운다. 마약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하기에는 너무나 약하고 그는 몽롱한 잠에 빠져 기묘한 환각에 휩싸인다. 잠든 그의 병든 머릿속에 음악적인 상념과 이미지를 통해 다양한 감각, 감정, 기억이 나타난다. 연인조차도 하나의 선율로 변화하고 가는 곳곳마다 보이거나 들리거나 하는 이데 픽스(고정관념)와 같은 존재가 된다."

당대 연극계의 스타였던 해리엇 스미드슨에 대한 지독한 연모.

음악 역시도 광기 속에 연주되는데...

여느 음악보다 저에겐 이 음악이 오랫동안 남았었습니다.

미술작품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아는 만큼 보이고 들린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피땀 어린 결정체였던 '교향곡'.

수 세기를 뛰어넘었던 '교감'.

이젠 이들이 살아 숨 쉬듯 저에게 다가왔었습니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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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제임스 - 문명의 한복판에서 만난 코스모폴리탄 클래식 클라우드 32
김사과 지음 / arte(아르테)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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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아르테의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만났습니다.

이번 32번째로 이어 가는데 주인공은 바로 '헨리 제임스'.

솔직히 그에 대해 잘 몰랐는데...

알고 보니 세계 문학계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현대 소설의 아버지'로 인식되기도 한다는데...

이번을 기회로 그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상상력이라는 만능무기를 지닌 야심 찬 소설가는

문학 안에서 누구보다 강하고 자유로웠다."

헨리 제임스



미국인이었으나 완벽하게 유럽식으로 교육받았고,

미국 소설가였지만 영국 문학의 전통에 속해 있으며,

파리를 꿈꾸었지만 런던에 정착했고, 하지만 가장 사랑한 땅은 이탈리아였으며,

엄청난 부를 지녔지만 사회적 위치가 결여된 그.

그리고

현실 세계에서 그는 어디에 있든 어색함을 느꼈다. 무신론자로 키워져 뉴잉글랜드의 청교도주의를 이해할 수 없었던 그는 발자크의 파리를 선망했지만 편협한 파리 문학계는 이방인에게 좁은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결국 런던에 정착하는 데 성공했지만, 각광받는 사교계 인사가 된 뒤에도 런던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저 미국에서 온 괴짜 소설가로 여겨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따금 의심했다. - page 14

헨리 제임스는 이처럼 두 문명의 충돌 지점에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서도 종종 예술적이고 부패하며 매혹적인 오래된 세계(유럽)와 종종 거칠고, 개방적이고, 공격적인 새로운 세계(미국)의 캐릭터를 대조시키면서 그 충돌에서 생기는 긴장감을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헨리 제임스의 소설 속에서 멋지고 사랑스러운 여자들이 반복적으로 회귀하는 장소가 '결혼'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여인의 초상』의 이사벨, 그리고 후기 소설 『비둘기의 날개』의 밀리.

두 여인이 원했던 것은 삶 그 자체, 그것을 살고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부자이고, 유럽인들처럼 신분이라는 운명에 휘둘리지 않는, 그들의 욕망을 막을 장애물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변변찮은 남자들에게 얽혀서 파멸에 이른다고 합니다.

도대체 왜...

매번 변변찮은 남자를 선택하고, 실패한 결혼에 절망하며, 하지만 그것을 지키기 위해 온 생을 거는 것일까...?

제임스 소설 세계의 기본 설정은 만인을 향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홉스의 말을 대변하는 것만 같다. 그것이 정말로 부정할 수 없는 보편적 인간 조건인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미국의 여자들은 누구보다도 이 무정한 홉스식 투쟁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카오스의 한가운데 새로운 세계의 매력으로 가득한 전사들. 21세기에도 그 새로움의 샘은 마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마디로 변한 게 하나도 없다. 언제나 자신만만해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쉽게 혼란에 빠져드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반영과 타인의 눈에 비친 이미지들 사이를 영원히 오가는. 누구보다 독립적이고자 하지만 결국은 타인의 투쟁에 휘말려 짓밟히는 비극적인 운명의, 아름다운 희생자. 하지만 끝끝내,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살아 남고 마는 그녀들. 광기의 집행자이자 피해자. 탐스러운 포획물이자 동시에 잔혹한 승리자. 아메리칸 뷰티. 완벽한 아메리칸 걸. 세계는 그런 그들을 열렬히 사랑한다. - page 63

발자크에게 파리가 있었고

도스토옙스키에게 상트페테르부르크가 있었던 것처럼

헨리 제임스에게는 런던이 있었습니다.

런던이란 도시...

자, 보시오. 여기 당신들이 그렇게나 바라던 과거와 역사와 문학의 먼지가 있소. 그것의 과연 몇 퍼센트가 과거와 역사와 문학에 속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의 도대체 몇 퍼센트가 런던 출신인지조차 나는 확신할 수 없지만, 아무튼 자, 여기에 있소. 당신들이 찾던 바로 그 환상이, 당신들이 그토록 갖고자 하는 그 미친 망상이, 갈망하는, 소망하는, 기원하는, 환상들의, 오직 환상들로 이루어진, 환상의 제국, 이미 아주 오래전 사라져 버린 그 위대한 제국의 재와 먼지가......

착란과 유령으로 가득한 제국의 환상 속으로, 지상 최대의 지옥, 그 찬란했던 기억 속으로 헨리 제임스와 함께 거닌 런던에서의 순례의 끝은 씁쓸함만이 남았었습니다.



한 세기 뒤, 우리는 여전히 위대한 제국과 잔혹한 지배자들의 이야기에 매혹됩니다.

대영제국의 위대함, 19세기 유럽의 화려함, 도금시대 미국의 막대한 부는 상상을 초월하는 살육전을 통해서 가능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매혹되는 것은 인간 문명의 위대함인가, 아니면 그 뒤에 감춰진 인간 문명의 끔찍한 야만성인가?

인간이 놓인 이 이율배반의 조건 위에 헨리 제임스의 문학이 놓여 있었습니다.



19세기 후반 가장 국제적이었던 인간의 진짜 모습과, 그것을 가능케 한 인간 문명의 본질적 폭력성을 복잡한 심리 묘사와 섬세한 문체로 그려낸 헨리 제임스.

결국 헨리 제임스에 따르면 소설이란, 작가가 그럴듯한 모습으로 "삶이라는 환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 환영은 독자들에게, 현실이 주는 환영(인상)과 근본적으로 동일한 것이다. 왜냐하면 소설 또한 하나의 경험, 결코 한계도 없고 끝도 없는, 즉 작가가 만들어 낸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 page 184

저 역시도 그를 마주하기 위해선 그의 작품을 읽어가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가 소설에서 만들어낸 환영 속에 나는 어떤 느낌을 받을까...

우리들의 선택과 상관없이 인간들의 세계는 이어진다. - page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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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잔혹사 - 약탈, 살인, 고문으로 얼룩진 과학과 의학의 역사
샘 킨 지음,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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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책 『사라진 스푼』이 단숨에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주목받은 과학 작가 '샘 킨'.

그는 특히나 과학의 역사에서 갈등과 드라마를 포착하는 능력과 이를 흥미진진하게 묘사하는 글솜씨를 발휘해 대중에게 읽는 재미를 줄 뿐 아니라, 논리적 완벽함을 위해 노력한다는 과학의 이미지를 깨고 과학이 '이성과 감정이 뒤섞인 매우 역동적이고 인간적인 활동'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번 신작에서는 특정 과학 분야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과학에서 묻혀 있던 어두운 이야기를 조명했다는데...

또다시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봅니다.

"과학에도 속죄해야 할 잘못이 있다"

지식에 대한 집착과 광기 어린 야망으로 타락한 과학자들,

그 토대 위에 세워진 과학의 잔인한 역사

과학 잔혹사



책은 한때 세상을 들끓게 했던 과학 범죄 사건들을 조명하며 타락한 과학자와 의사의 심리적 동기를 파헤치고 있습니다.

클레오파트라부터 식민지 약탈, 전쟁과 냉전의 희생자들, 그리고 첨단기술로 변화할 미래의 범죄까지.

과학적 성취와 얽혀 있는 잔인하고 섬찟한 범죄를 통해 우리에게

미래에 우리가 어떤 존재로 살아가는지에(우리 몸의 절반이 생체공학으로 만들어지거나 우리가 명왕성에서 살거나 우리의 DNA가 도마뱀의 DNA와 합쳐지거나 간에) 상관없이 우리의 후손은 여전히 사람으로 살아갈 것이고, 우리가 늘 그래 온 것처럼 잘못된 행동을 저지를 것이다. 심리학자들의 말처럼, 미래의 행동을 알려주는 최선의 예측 변인은 과거의 행동이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아인슈타인은 우리보다 더 멀리 내다보았다. 지성은 분명히 좋은 것이다. 하지만 과학이 거머쥔 힘을 감안하면, 이제는 더 이상 충분히 좋은 것이 아니다. 아인슈타인이 말한 인성이야말로 과학의 남용을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보장책인데, 과학의 이 두 가지 필수적 측면(지성과 인성)이 미래에도 공존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 page 437 ~ 438

전문가 영역이라는 인식 때문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과학과 의학 분야에서도 이제 도덕성과 윤리 문제가 부각되고 있는 시대에, 정직과 성실성, 양심적 태도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었습니다.

첫 이야기부터 충격이었습니다.

역사상 최초의 비윤리적 과학 실험을 설계한 사람이 누구일까...?

바로 '클레오파트라'였다고 합니다.

시의들이 하는 일에 큰 관심을 보인 클레오파트라는 여종들을 앞세워 자궁 속의 아기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하는 실험에 동원하였고 죄수들에게 독을 시험하는 등...

그런데 이 끔찍한 실험에 관한 역사적 기록은 오직 『탈무드』에만 있기에, 여기에 기술된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의심스러운 점들이 있지만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이 있었으니

전설이건 아니건, 많은 후세 사람은 뭔가 중요한 사실을 전해주는 이 이야기를 믿었다.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클레오파트라는 미움을 많이 받았고, 섬뜩하고 생생한 이 이야기의 묘사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끔찍한 짓을 저지르는 폭군 이야기야 누구나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그것을 뛰어넘어 우리의 마음을 휘어잡는 요소가 있다. 여기에는 심지어 그 당시에도 알아챌 수 있었던, 아주 극심하고 섬뜩한 행동의 원형이 숨어 있다. 그것은 바로 집착에 사로잡혀 무언가를 극단적으로 추구하는 사람이 보이는 행동이다. 오늘날 우리는 그런 사람을 '미치광이 과학자'라고 부른다. - page 9

낭자한 피와 고통의 비명을 무시하고, 인간의 희생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 '미치광이 과학자'.

이들은 논리나 이성이나 과학적 안목이 부족해서 미치광이가 된 게 아닌, 오히려 과학을 '너무 철저히' 하려고 하다가 도가 지나쳐 자신의 인간성을 도외시하면서 그렇게 된 이들이었습니다.

그런 이들이 여기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었습니다.

찰스 다윈이 존경한 당대 최고의 박물학자 '윌리엄 댐피어'가 약탈을 일삼은 괴팍한 해적이었고

시신이 필요한 해부학자들과 거래하다가 살인까지 저지른 시신 도굴꾼 '윌리엄 버크'

미국에서 영웅으로 칭송받는 발명 천재 '토머스 에디슨'은 전류 산업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개와 말에게 전기 고문을 가했고

신경과 의사였던 '월터 프리먼'은 정신질환자들의 뇌 속을 얼음송곳으로 헤집는 수술을 확산시키고

'젠더'라는 용어를 처음 만든 심리학자 '존 머니'는 생물학적 기반을 무시하고 음경이 훼손된 아이에게 성전환 수술을 강권해 한 사람의 인생을 비극으로 만드는 등

남성 악당들과 함께 첫 여성 악당인

마약 분석가 '애니 두컨'은 처음부터 학위를 조작해 업계에 발을 들인 뒤 마약 시료를 제대로 시험하지 않고 경찰의 추정 그대로 기록하면서 다른 연구자들의 두세 배가 넘는 시료를 처리해 증거를 조작까지

집착과 광기 어린 야망에 사로잡힌 과학자, 안타까운 희생자들의 사연들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대다수 과학자는 우리의 신뢰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선을 넘어 범죄와 비행을 저지르는 이들은 지금까지도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전한 이 말을 새겨야했습니다.

"많은 사람은 위대한 과학자를 만드는 것이 지성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위대한 과학자를 만드는 것은 인성이다."

역시나 믿고 읽을 수 있었던 '샘 킨'.

다음엔 어떤 과학의 이면을 보여줄지 기대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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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제3부 (2024 리뉴얼) - 신들의 신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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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을 향해 달리는 미카엘.

과연 그 끝은 어떨지...

마지막까지 그와 동행해 보겠습니다.

마침내,

진실을 향해 나아가다

신 3: 신들의 신비


 

내 이름은 미카엘 팽송.

마취 전문 의사로서 환자들을 보살펴 준 인간이었고

세 영혼을 맡아, 그들의 이어지는 삶들을 따라다니며 돌보아 준 천사였으며

이제는 한 민족을 맡아, 그들을 최대한 오랜 시간 동안 존속시키려 하는 신(더 정확히는 신 후보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백성이 큰 고난을 겪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일이 떠올랐고

또 도망쳐서 산을 기어오르던 일도 떠오르고

지금!

내 앞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이 말합니다.

「네가 떠나고 나서 7일이 지났어. 이 7일 동안, Y 게임은 너 없이 계속 진행되었지. 그리고 한 시간 뒤면 결승이 시작돼. 그 결승이 끝나면 우린 알게 돼. 어떤 후보생이 우승자가 되어 엘리시온 대로에 올라 창조자를 직접 만나는 특권을 얻게 될지를.」

뭐야? 결승전이 오늘이라고? 말도 안돼!

순식간에 꿈이 악몽으로 변한다.

「미카엘, 좀 움직이란 말이야! 몇 분 내로 준비하지 않으면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돼. 네 백성들은 죽게 되고, 넌 패배한다고.」 - page 14

마침내 신들의 게임 결승전을 치르게 된 미카엘.

마지막까지 남은 신 후보생은 12명.

그러나 결승전 직전에 모습을 드러낸 살신자에게 마타 하리마저 공격을 받고, 마침내 미카엘은 살신자의 정체를 밝히게 됩니다.

이어서 벌어진 최후의 결전에서 미카엘은 패배하지만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고 재경기를 요구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격분한 미카엘은 자신의 돌고래 백성들을 괴롭힌 후보생을 살해하고, 재판 끝에 그가 다스리던 18호 지구로 떨어지게 됩니다.

내가...... 18호 지구의 인간?

나는 소파 위에 털썩 주저앉는다.

살을 세게 꼬집어 본다.

분명 꿈은 아니다. 신들이 내게 내린 형벌은 프루동에게 내린 것과 같은 것이었다. 즉, 다시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가되, 신들의 세계에서 얻은 지식을 가지고 돌아가는 거였다.

그들은 말했다. <저 아래 세상에서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다름 아니라 아는 것이다. 차라리 모르고 있으면 견딜만하다.> 이제 나는 저 위에 무엇이 있는지 알기 때문에, 인간 세계에 대한 나의 관점은 아주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 page 176

인간들과 살아가던 미카엘은 자신을 섬기는 신도 델핀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세계를 장악하려는 프루동의 손길을 피해 작은 섬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이상적인 공동체를 만들게 됩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손님이 찾아와 아에덴의 소식을 전해줍니다.

그가 떠난 뒤 신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져 올림피아가 무법천지가 되었다는 것.

그래서 위대한 <창조의 신>을 만나기 위해 미카엘은 동료들과 길을 떠나게 되고 그 앞엔 많은 시련이 기다리고 있는데...

과연 창조의 신은 누구일까...?

그리고 마주하게 된 진실은 무엇일까...?!

「이미 생명이 있었고, 인간이 있었고, 신성이 있었어요. 우주에 이보다 더 큰 계획이 있을 수 있나요?」

「있고말고. 모든 구조는 그것을 뛰어넘는 구조를 알고 싶어 한단다.」

「하지만 우주 위에 있는 것은 <무(無)>일뿐이잖아요! 」

「그런 식의 아포리즘은 이제 그만둘 때가 됐어. 이제 우리의 새로운 선생님인 은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해.」 - page 654

바로 당신? - page 667

1권에서 2권까지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고 읽어왔었는데...

3권에서 어?! 순간 끈을 놓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결말을 위해 그토록 장엄하게 이야기를 풀어갔다고?!

정말이지 베르베르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던 소설이었습니다.

덕분에 '역사'의 의미도, '나'라는 존재도 되짚어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무(無)'의 의미는 이해는 하지만 명확히 잡히지 않는... 그런 느낌이랄까!

아무튼 이 책에서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전하고자 했던 '신'.

웃음이 삐져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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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 북유럽 - 일상의 행복을 사랑한 화가들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손봉기 지음 / 더블북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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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왕국, 설산, 빙하, 피오르 등 장엄한 대자연이 펼쳐지는 북유럽.

세계 행복지수에서 늘 상위권을 차지하는 우리에게 동경의 장소이기도 한 이곳.

하지만...

북유럽의 문화는 낯설기만 합니다.

'이케아'로 대표되는 북유럽 스타일.

자연과 어우러지는 편안한 느낌의 색감, 시대를 초원하는 세련된 실루엣, 장식용이 아닌 실생활에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실용성까지 갖춘 이 스타일은 스웨덴 화가 '칼 라르손'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절규>로 유명한 인간의 고독을 가장 잘 표현한 노르웨이 천재 화가 '에드바르 뭉크'.

이들과 함께 북유럽의 화가들을 더 알아보고 싶었습니다.

장엄한 대자연 속 고요한 일상이 한 편의 시가 되는 곳

북유럽을 만나고 싶은 당신께 보내는 초대장!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에드바르 뭉크, 칼 라르손, 비고 요한센, 빌헬름 함메르쇠이...

북유럽 대표 화가들과의 만남이 지금 시작된다!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북유럽



유럽 대륙의 북쪽에 있는 덴마크와 스웨덴 그리고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를 지칭하는 말 '북유럽'.

매서운 추위가 가져오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살아있음에 행복하고 그 삶이 지속되는 것을 사랑하는 그들.

이들의 신화에서도 그 점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과는 달리 죽음에 이르는 북유럽의 신들.

이는 기후가 춥고 냉혹하여 힘든 삶을 지속하기보단 영광스러운 죽음을 맞는 것이 더 낫다는 북유럽 사람들의 가치관을 반영한 것이라는데...

그것은 불완전한 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죽음이라는 숙명을 가진 인간들의 이야기다. 1년의 절반이 혹독한 겨울인 북유럽 사람들에게 삶이라는 것은 끊임없는 도전이었을 것이다. 언제 눈사태로 집이 파묻힐지, 언제 얼음이 갈라져 물에 빠질지, 자면서 얼어 죽지는 않을지. 그들에게 살아내는 것, 오늘 하루도 무탈했다는 것, 그렇게 반복되는 평온한 일상을 누리는 것이 얼마나 값지고 행복한 것인지 신화를 통해 전한 것이다.

죽음이라는 결말을 알고 잇기에 살아 잇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과 황홀을 느낀다. - page 25

이는 일상의 여유로 이어지고 행복으로 귀결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삶에 대한 태도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인상주의와 사실주의 화풍은 이들의 삶을 더 찬란하게 표현하게 했습니다.

책은 우리에게 익숙한 에드바르 뭉크, 칼 라르손, 빌헬름 함메르쇠이, 휴고 심베리를 포함 40명이 넘는 북유럽 화가의 일생과 그의 작품을 꼼꼼하게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100여 점이 넘는 북유럽 작품을 모두 실어 실제 미술관에서 해설을 듣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음에 그야말로 미술관을 통째로 빌려주었습니다.

몇몇 화가를 소개하자면...

우선 가족 모두가 같은 공간에 있던 그 편범한 순간, 그때를 떠올리게 하는 일상을 그리는 화가 '요한 프레드릭 그루텐'.

16세의 나이에 스톡홀름에 있는 스웨덴 왕립 예술 아카데미에 입학하여 드로잉과 인물과 그리고 조경을 공부했고 훌다 오토손을 만나 결혼한 뒤 덴마크의 스카겐에 머무르면서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을 그립니다.

이때부터 풍경이 가진 생명력을 깨닫게 되는데 예상치 못한 고난이 찾아오게 됩니다.

첫 아이를 가지지만 그해 사망하고, 같은 해 사랑하는 아내마저 잃은 그.

절망에 빠진 그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은 그림밖에 없었기에 아내와 아이에 대한 자신의 아름다운 추억을 작품에 쏟아내며 꾸준히 전시회를 가지게 됩니다.

이곳이 진정 일상에 재현한 천국일 것이다. - page 58



빛을 통해 일상의 숭고함을 보여준 '안나 앙케'.

1875년 여성에게도 미술 교육 기회를 준 코펜하겐의 빌헬름킨 학교에 입학한 그녀는 미술학교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그 재능을 인정받게 됩니다.

하지만 어릴 적 미술을 배웠던 스승 미카엘 앙케와 결혼을 선언하자 미술학교로부터 퇴출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화가로서의 길을 단념하지 않고 프랑스 인상주의 작품처럼 야외에서 자연에 비친 빛을 그리는 대신 실내에 비치는 은은한 빛을 그리며 독자적인 화풍을 개척하기 시작한 그녀.

실내로 스며든 빛과 조화를 이루며 평범한 일상에 침묵과 평화 그리고 숭고한 아름다움을 창조한 그녀의 작품.

덕분에 일상의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화가인 핀란드의 뭉크라고도 불리는 '헬렌 쉐르벡'.

어려서부터 병약했던 그녀는 독특한 색감과 화풍으로,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변해가는 자화상을 죽을 때까지 여러 장 그렸다고 합니다.

50년 동안 단 하루도 건강하지 못했던 그녀.

자화상을 그리는 것은 무척 힘들다.

별이 무수히 반짝이는 하늘을 그리는 것과 같다.

추한 자화상 속에서도 내 영혼은 아름답게 빛난다. - page 297



북유럽 미술은 저자의 말처럼 자기 논리와 생각에만 빠져 있는 고고한 서유럽의 현대 화가들과는 달리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과 아름다운 풍경을 진실 되게 그리며 노래하고 있어 우리에게 기쁨과 위로를 선사해주고 있었습니다.

스냅사진처럼 일상의 한순간.

단순하지만 분명한 행복이었습니다.

복잡하고 빽빽한 일상에 지친 우리.

잠시나마 북유럽을 산책하듯 그림들을 마주하며 삶의 행복과 기쁨을 그리고 따뜻한 위로를 느껴보는 건 어떨지.

그렇지 않아도 <새벽부터 황혼까지> 스웨덴 국립미술관 컬렉션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기에 전시가 끝나기 전 꼭 마주하겠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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