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이 사진 찍히는 것을 거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사진 찍히면 그  순간 영혼이  달아나기  때문이다."

요즈음  원주민들의  주장이  왠지  설득력을 갖는 것 같다.  현 세상을 어지럽히는 "외모지상주의"가  바로 그 증거가 아닌가.  오직  외모 다듬기에  전념해 사진 찍히기를  즐기는 순간  맑던 영혼이 흐려지며  결국은 머리 빈 사람의 꼴이 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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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가 주는 것 하나 없이 얄미운 사내를 만난 곳은 차 타이어를 파는 가게 사무실이다. 추운 겨울이 시작됐는데 어째 눈이 많이 내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스노우 타이어를 장착하려고 들른 것이다.

 K만 그런 염려를 하는 게 아님을 증명이라도 하듯 스노우타이어를 장착하려고 온 손님들로 좁은 가게 사무실이 꽉 찼다. 온 순서대로 기다려야 했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만일 그 때 손님들이 많지 않아 사무실이 붐비지 않았더라면, K는 주는 것 하나 없이 얄미운 사내를 못 만났을 게다. 원래 사람들이 붐비는 답답한 공간을 몹시 싫어하는 K는 자신도 모르게 짜증이 나면서 그 사내가 '설정'됐던 거다.

따라서 그 사내는 죄가 없었다. 하지만 K는 사내가 얄미워 보여서 주먹으로 한 대 줘 박고 싶은 것을 참느라 몹시 힘들었다. 그럴 만도 했다. 사내는 K가 싫어하는 면모를 다 갖추고 있었다. 보통 사람보다 작은 머리에, 불그레한 빛이 도는 색안경에, 간간이 짓는 뜻 모를 미소에 ……그러면서 그 좁은 사무실에서 괜히 달랑거리며 오가고 있었다.

  K는 머리가 큰 편이다. 그래서일까 대체로 머리 큰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갖고 있다. 그리고 색안경을 써도 검거나 푸른빛이 도는 것을 선호한다. 또한 좁은 공간에 있게 되면 점잖게, 움직이지 않고 한 자리를 지키는 성격이다.

그렇기에 그 사내를 K가 아주 싫어할 만했다. K의 마음 같아서는 나중에 어떻게 되든 그 사내의 면상을 주먹으로 한 대 갈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짓을 했다가는폭행죄로 경찰서에 끌려가면서 대() 망신살이가 시작되지 않을까? 잠시만 참기로 했다. 그런데 대기 손님들이 별나게 많아서 잠시참기가 어려울 듯싶다. 더욱, 주는 것 하나 없이 얄미운 그 사내에 대해 K는 분노가 쌓여갔다.

점점, 자기도 모르게 주먹이 사내한테 날아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아주 힘들었다. 그 때다. 사내가 K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함께, 좁은 사무실에서 30분 넘게 기다리면서 유대감 내지 친근감을 느낀 것일까?

아무리 얄미워도 코앞에서 웃는데 어쩌랴. K는 자기도 모르게 따라서 미소 지었다. 그러고 보니 사내는 착한 사람 같았다. K는 혼자 머쓱해져내 성격이, 확실히 이상한 데가 있구나반성했다. 어쩌면 자신이 다른 사람들한테 주는 것 하나 없이 얄미운 사람으로 보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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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에

주차한

고양이

스며들다

엔진 음()으로 그렁거리다

골목 어둠에 보태지다

미등록 생명으로

숨죽이다

단내나는 차바퀴

따스하나 불안한 휴식

찬비가 내렸다

나는 비 맞으며 밤거리를 쏘다닐

나이가 지났다

우산을 썼다

골목을 지나

오래도록 못 본 후배를 찾고 있었다

고양이가 지켜봤다

지명수배된

후배가

어둠 속에서

살펴볼지 몰랐다

우산을 써도

비에 젖는 느낌에

골목을 벗어나려 했다

어둠은 분명했으나

고양이가 끝까지 남을지

불확실했다

후배가 지명수배 되었으므로

나는 편하게 우산을 쓰고 돌아다닌다는

이상한 생각이 뒤따랐다

돌아보았다

어두운 골목이 웅크리고 있었다

우산 손잡이를 힘껏 쥐었다

세상 끝에 매달린 것일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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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여름, 미국 나사에서 쏘아올린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다. 잘 사는 이웃집의 안방에는 그 장면을 지켜보려고 모여든 동네 사람들로 가득했다. 흑백 tv로 중계되는,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첫 발을 디디는 장면이 지금도 눈앞에 선하다. 다음 날 저녁 신문은인간 달에 서다라고 대문짝만한 활자로 발간되었다. 아폴로 우주선은 이런저런 것들을 실험하고 채집하느라 며칠 간 달 표면에 남아 있는다 했다. 학교는 여름방학 중이었다.

 

대학입학을 위한 예비고사가 몇 달 앞으로 다가온 시점이라 시험공부에 매진해야 하는데 무심은 전혀 공부가 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달에 우리 인간이 쏘아올린 우주선이 착륙해 있다는데, 편안히 시험문제집을 펴 놓고 방안에 앉아 있다니 스스로 납득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결국 옷을 갈아입고 학교로 갔다. 학교는 멀었다. 삼십 분은 걸려, 걸어서 도착한 학교. 아무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여름방학에 들어갔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만, 그 또한 무심이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천여 명의 학생들이 북적거리던 공간이 마술이라도 부려진 듯, 단 한 명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니 말이다.

 

혼자 텅 빈 교내를 방황하다가 가까이에 있는 공설운동장으로 갔다. 다행히도 그곳에 몇 명의 동기애들이 모여 있었다. 걔네들마저 없었더라면 무심은 그 날 어떡할 뻔했을까?

 

걔네들은 어떤 애가 떠드는 얘기를 아주 재미있어 하며 둥글게 모여 있었다. 무심이 다가갔는데도 특별히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그 애의 얘기에 푹 빠져 있었다.

 

그 애는 우리와 동기이긴 하지만 학교를 안 다녔다. 깡패 비슷하게 거리에서 지내는 아이인데 웬 일로 공설운동장 한 구석에 나타나, 동기애들한테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음담이었다. 우리 또래 여학생을 하룻밤에 어쨌다는 음담을 아주 실감나게 늘어놓고 있었다. (사실, 이 묘한 아이에 대해 무심은 얼마 전 작품 하나를 썼다. 때가 되면 발표할 것이다.)

 

공설운동장의 서쪽으로는 미군부대가 있었다. 미군부대에서 성조기 하강식을 하느라 웅장한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때 서쪽 하늘에 붉은 노을이 선연했다.

 

달에 아폴로 우주선이 착륙해 있다는데 학교 다니지 않는 애가 열심히 음담을 늘어놓고, 진위 여부가 분명치 않은 그 음담을 학교 다니는 동기애들이 킬킬거리며 재미나게 듣고 있고, 미군부대에서는 늘 그랬듯 성조기 하강식이 치러지고, 천여 명의 학생이 북적거렸던 학교는 갑자기 텅 빈 건물로 있고, 하는 뭐라 간단히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 무심을 못 견디게 했다.

 

무심은 다시 먼 집으로, 삼십여 분 걸어서 돌아왔다. 집이라고는 하나, 사실 독채 전세로 얻은 집이었다. 무심은 부엌 위, 지붕 아래 다락방에 올라갔다. 미리 갖다놓은 작은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아 스탠드 등을 켠 뒤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예비고사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지 않고는 그 하루 이틀 사이에 벌어지는 상황들을 견딜 수가 없었다. (소설을 완성한 뒤황사라 제목을 붙이고 모 대학교에서 공모하는 전국고등학생 대상 현상문예에 응모했다. 두 달 뒤 당선되었다는 통지를 받았다. 무심의 문학수련은 그렇게 시작됐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 무심은 그 여름날을 잊지 못했다. 그냥 두어서는 안 되는 여름날이란 생각에 미쳤다. 다 늙어서, 이제는 서재에 앉아 그 여름날을 눈앞에 떠올리며 며칠 걸려 작품을 썼다. ‘달나라라는 소설은 그렇게 창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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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티는 예술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작품을 감상하는 이에게 공감을 주고 나아가 감명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심청전에서 심봉사가 맹인임에도 아무 불편 없이 성큼성큼 잘 걸어 다닌다면 관객들의 실망이 클 것이다. 비록 극 속의 맹인이라도 배우는 그 역을 맡는 순간부터 모든 관객들이 맹인으로 착각하도록 연기할 의무를 지니며, 이것이 예술작품에서 리얼리티가 소중하게 대접받는 까닭이다.

 

 

 

 

 

 

그런데 우디 앨런은 로마 위드 러브라는 영화에서 이 리얼리티를 아무렇지도 않게 위반한다. 목욕할 때만 노래를 기가 막히게 잘 부르는 장의사를 오페라 무대에 등장시켜, 똑같은 목욕 환경 속에서 노래 부르도록 함으로써 청중들의 환호를 받게 만든다는 설정이 대표적인 예이다. 사실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생겨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샤워기에서 요란하게 쏟아지는 물소리와 함께 부르는 노래가그 소란스러울 잡음이 어찌 청중들에게 감명을 주는 노래로 환호 받을 수 있을까?

 

  평범한 직장인이 뚜렷한 이유도 없이 하룻밤 새에 유명인이 되는 경우가 어디 있을까?

 

 난데없이 등장한 창녀를 자기 친척들에게 결혼할 예비 신부라고 소개하고 다니는 기막힌 상황이 어디 있을까?

 

사랑에 빠진 순간 당신이 캐스팅 되었다는 감독의 전화가 오자 그 자리에서 일초도 망설임 없이 남자를 떠나는 여배우가 어디 있을까?

 

 

 

 

 

대화할 때 통역해 주는 사람이 필요한 사돈 간(우드 앨런과 장의사)인데 어느 순간부터 통역자 없이 얘기를 주고받으며 사건을 전개하는 경우가 어디 있을까?

 

  그러나 관객 누구도 우디 앨런의 이런 리얼리티의 결례를 문제 삼지 않는다. 왜냐고? 애당초 이 영화가 시작될 때 등장한 교통경찰이 이제부터 로마에서 갖가지 사랑 얘기가 벌어진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날 때 역시 누군가 창문을 열어젖히고 나서서 이제 얘기들이 마감되었다고 친절하게 밝혔으니 --------애당초 우디 앨런은 리얼리티 따위에 구애받지 않고 한바탕 사랑 얘기 좀 하겠다고 관객들에게 양해부터 구한 것이다.

 

  하긴 우리가 극장을 찾는 까닭은 잠시라도 현실(리얼리티)을 벗어나기 위함이 아닐까. 굳이 극장에서까지 리얼리티를 만날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우디 앨런은 마음 놓고 장난했다. 리얼리티를 무시한 얘기들을 보여줌으로써 ------또 다른 의미의 리얼리티를 깨닫게 했다.

 

 

 

 

 

 

청춘 남녀의 사랑은 사실, 수시로 무너질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닐까? 누구나 하루아침에 유명 가수가 되는 것과 같은, 황당한 명예욕을 감추고 있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몸으로 활개치고 싶은 욕망이 내게 숨어 있지 않을까? 우리가 겉으로는 고상한 대화를 나누지만 그 순간 더럽고 음험한 속셈이 숨어 있었던 게 아닐까? (이런 장면에서 분명히 등장인물이지만 수시로 유령처럼 나타나 그 속셈을 일러주는 알렉 볼드윈. 이 또한 철저한 리얼리티의 파괴 장면이자, 우리 모두의 가슴 속을 뜨끔하게 만든다.)

 

  우디 앨런이라는 괴짜 영화감독에 관한 신문 기사(대개 여자 문제)는 몇 번 보았으나 실제 그의 영화를 감상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리얼리티가 무시되는 순간 또 다른 의미의 리얼리티를 대면하게 된다는 사실을 이번 영화로 깨달았다.

 

우디 앨런은 영화로 장난을 치지만 그 장난은 진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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