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제 (前提)’어떤 사물이나 상황이 이루어지도록 먼저 내세우는 것을 뜻한다.

 

아무리 국가발전을 위한 치밀하고 대단한 계획이 짜인들, 국민이 줄어들면 다 헛수고인 것이다.

국민은 영토, 주권과 함께 국가의 삼 요소 중 하나인데 지난 6,70년대 눈앞의 인구과밀 현상만 보고 당시 정부에서 산아제한을 주요정책으로 강력히 추진했다. 국민의 수를 줄이는 바보 같은 정책이었다. 그 결과 머지않아 닥칠 인구절벽 사태에 우리는 전전긍긍하고 있다. 젊은이 한 명이 노인 한 명을 부양하게 될지도 모른다니 기가 막히다.

국가는 영토, 주권과 함께 국민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이런 기본적인 전제를 망각한 탓에 크나큰 위기가 닥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겨울축제를 기획하고 준비해도 얼음이 얼지 않으면 무위한 일이 될 것이다. 물론 얼음 어는 추운 날씨는 하늘에 달려 있다. 머지않다는 인구절벽 사태야 우리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 하겠지만, 요즈음 위기에 처한 겨울축제들은그 지역의 주민들과 담당 공무원들은 무슨 죄란 말인가.

얼음 어는 일 또한 어떤 일의 전제였다는 사실에 기가 막힐 뿐이다.

 

부디, 겨울축제를 준비한 지역에서만이라도 강추위가 엄습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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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그는 개그맨이다.

 

서울에서 방영되는 TV에는 안 나오지만 우리 지방의 TV 프로그램에서는 낯을 보인다. ‘웃찾사’ 같은 코미디 프로그램이 없는 지방 TV이라 그가 하는 일은 취재 프로그램에서의 리포터 역할 정도이다. 사실, 그가 다른 일반 리포터와 뭐가 다르냐고 묻는다면 마땅한 답변이 없을 것 같다. 요즈음 리포터들 중에는 개그맨 못지 않게 재미나게 진행하는 경우도 흔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개그맨이라 인식하는 것은, 방송국 측의 특별한 대우에 근거한다. 그가 등장할 때마다 ‘개그맨 ○○○’라고 작은 글자를 화면 아래에 병기해 주기 때문이다. 그런 대우가 없다면 아무도 그를 개그맨이라 고 봐 줄 이유가 없을 듯싶다.

 

‘개그맨으로 출세하고 싶은 사람’이 여의치 않아서  지방 TV 방송국에 속해서라도 노력하며 지내는 게 아닐까? 

 

 문외한인 내가 보아도 그는 딱한 개그맨이다. 인터뷰 취재를 재미나게 진행하려 애쓰지만 억지웃음에 가까워, 딱하다는 생각마저 들 때가 많으니 말이다. 나도 모르게 이런 푸념까지 했다.

 

“저 사람, 라면 값이나 벌까?”

 

사실 시청자 혼자만의 독백이라 해도 그래서는 안 되었다. 지방 TV에서라도 자기 입지를 마련하려 항상 애쓰는 개그맨에게 마음의 격려는 못해 줄망정 모욕하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었다. 나는 즉시 반성했다.  

그런데 그가 어느 날 나를 감격시켰다.

그와 함께 취재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던 여(女) 아나운서가 개인 사정으로 방송계를 떠난다는 날이다. 그녀의 마지막 등장 화면(생방송이다.)에서, 그가 석별의 마음을 꽃다발에 담아 전하다가 그만 엉엉 우는 게 아닌가. 마치 철부지 아이처럼 말이다. 재미난 덕담으로 이별을 장식하려다가, 섭한 마음에 눈물을 훔치며 울고 있었다.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여 아나운서.

개그맨으로서의 본분을 잊고 울고 있는 그를 달래려고 애쓰는 중에 프로그램이 끝났다.

 

나는 감격했다. 글쎄, 개그맨이라는 사내가 포복절도하게 웃겨서 감격한 게 아니라 애들처럼 우는 모습에 감격했다니 말도 안 되지만, 여하튼 나는 처음으로 그에게 감격했다.

 

서울에서 방영되는 TV들마다, 억지웃음을 유발시키려고 개그맨들이 여간 고생하는 게 아니다. 이상한 복장에다가 이상한 분장, 이상한 억양 등, 그래서 나는 그런 프로그램들을 잘 보지 않는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 지방의 TV에 소속되어 ‘개그맨’으로 활동하는 그를 업신여겼을 게다. 그러나 그가 여 아나운서와 이별할 때 철부지 아이처럼 엉엉 우는 장면을 지켜본 뒤로는 그가 좋아졌다. 얼마나 신선한 울음인가. 각본을 벗어난 울음이 내게 전해주던 그 진한 감동.

 

여전히 지방 "개그맨"인 그는 아직도 시청자들을 웃기는 데에 어려움이 많다. 하지만 나는 정겨운 눈길로 그를 지켜보며 웃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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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파트에서 살다가 단독주택을 짓고 이사왔다. 이삿짐들을 풀어 새 방과 거실 등에 배치하고 마무리가 미흡한 부분은 업자를 불러 손질하는 등 바쁜 한 달이 지나갔다. 과연 아파트에서 살  때와 차이점이 뭔가 생각해  봤다. 위 아래로 다른 집도  살고 있다는 외형적인 측면은 제외하고  말이다. 그랬더니  가장 분명한  차이점이 하나 있었다. 관리비 고지서가 사라진 것이다. 오랜 세월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매달 납부하던  관리비가 더 이상 내게 부과될 수가 없다는 극히 단순하면서도 분명한 사실이라니!
  그 후 20년이 흘렀다.
  많지 않던 관리비였지만 그래도 매 달, 20년 간이나 낼 일 없이 살아왔다면 그 만큼의 돈을  절약했거나 모았을 거라 생각했다.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아파트 관리비는 사라졌지만 대신 살고 있는 단독주택을 관리하는 비용이 대략 그만큼 든 것이다. 외벽에  방수처리도 하고 페인트도 두 번인가 칠해야 했다.마당의 수도도 한겨울에 얼어터져 땅 파고 관을 다시 깔아야 했다. 물론 업자들한테 돈을 주고 했다. 내가 돈 아낀다고 나섰다가는 돈은 돈대로 들고 일은 일대로 커질 게 분명했으니까. 
  늘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 새벽에도 나는 겉옷을 걸치고 나가 집의 외벽부터 마당의 수도 상태까지 살폈다.아파트 관리 사무소의 관리를 벗어나는가 싶더니 내 스스로 사는 집을 괸리하고 있었다.
  뜬금없이 "에너지 불변의 법칙"이  떠오른다. 일단 어떤 에너지가 발생하고 나면  형태는 바뀔지언정 그 총량은  변함없다는 정도로 알고 있다.
하기는, 내가 어릴 적에는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았지만 어느 시점이 되자 그때부터는 연로해진 부모님이 내 보살핌을 받게 되던 것이다. 부모 자식간의 보살핌조차 형태만 바뀔 뿐 끊이지 않고 계속됨을 절감했다.

​  세월이 흘러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나는 퇴직했다.
  어려서 내 보살핌을 받던 아들애는 다 커서 회사에 취직했다. 장가 갈 준비도 하는 아들애를 보면서 부모자식 간의 보살핌이란 에너지가 서서히 옮겨지려 함을 느끼는 추석날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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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바다 앞에 서면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언제나 푸르고 푸른 빛깔로 출렁이고 있을 뿐. 바닷가에 가면 바다를 잘 살핀 뒤 작품 한 편을 쓰겠다는 무심의 표현능력이 항상 좌절되는 까닭입니다.

올 한 해 무심 이병욱의 문학산책을 찾아준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다가올 새해에 저 무심은 푸른 바다 앞에 다시 서 보려 합니다.  지켜봐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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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말해줘야 할 것 같아 오늘은 내가 먼저 전화했단다. 네가 말하는 그분 내가 알아. 그분이 같은 아파트의 옆 동에 살거든. 그런데 그분이 괜찮은 분인 건 맞는데 딱한 사정이 있어. 아내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거동을 못하거든. 하필 그분이 퇴직하자마자이니까 일 년쯤 되지. 그래서 그분이 아내 수발을 드느라 외출도 잘 못한다고 소문나 있어. 요양보호사를 쓸 만도 한데 평생 내 뒷바라지 하다가 쓰러진 아내인데 어떻게 남한테 맡기냐며 거절한다고 해. 그나마 밤에는, 직장 다니는 아들이 퇴근하는 대로 교대해 줄 때가 있어서 바람을 쐰다더라.

나는 네 절친이잖니. 웬만하면 네가 그분과 각별한 정도 쌓고 그러려는데 찬물은 끼얹지 말아야지 생각했는데…… 더 이상 침묵하지 못하겠구나. 그분이 그런 사정이 있는 분이니까 낮에 시간을 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그러려니 하고 말아라. , 낮 시간에 전화가 와서 그분과 밖에서 만날 수도 있겠지. 그러면, 이건 내 생각인데, 그저 간단하게 식사나 하고 말아. 그게 그분의 어려운 가정을 생각한다면 맞을 둣 싶다.

? …… 우니? 미친년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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