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같이 가자. 조금만 더 가면 설산 봉우리가 보일 거다. 동 트기 전에도 그 봉우리는 허옇게 보인다지. 만년설이라 그렇다는데…… 그걸 보면서 부지런히 걷다 보면 라싸에 도착하겠지. 그런데 너, 라싸까지 갈 수 있겠니?

 

 

 

< 무심 이병욱의 단편소설 '라싸로 가는 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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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장난이라고까지 할 건 없었다. 그 친구와 내가 같은 도내에서 나이 오십이 넘도록 교단에 서다 보니, 같은 학교에서 만나게 됐을 뿐이다. 그래도 한 때 절친한 사이였다가, 소원하게 지낸 오랜 세월 후에 이뤄진 만남이라 그 느낌은 운명의 장난 같았다. 더구나 둘 다 아직도 평교사라니…….

그래서일까, 우리는 학교 현관에서 마주친 순간 어허, !’ 하며 악수를 나누고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노 교사들에 대한 학교 측의 배려로 업무가 한가한 편인 환경부로 함께 배치된 후에도 우리끼리의 별도 만남은 없었다. 물론 학기 초가 원래 바쁜 시기이므로 사적인 시간을 내기 어렵긴 했다. 그래도 환경부에서 환영회를 연 날 밤에 회식이 끝나자마자 각자 귀가하기 바빴다는 사실은 무심함을 넘어 상대를 무시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었다.

친구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이튿날 사무실에서 다시 만났을 때 내게 먼저 말했다.

, 어제 우리끼리 따로 술 한 잔이라도 하고 헤어질걸 그랬어!”

맞아. 나도 그런 생각을 나중에 했지. 그럼, 적당한 날 퇴근길에 술 한 잔 하자고.”

그래도 술자리를 갖지 못했다. 뒤늦게 알았지만 친구는 몸이 편치 않아 한의원을 다니며 침을 맞느라 퇴근 후 시간 내기 바쁜 사정이 있었고 나는 나대로 명예퇴직에 대한 생각들로 머릿속이 한창 복잡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어느 한 쪽이 능동적으로 나섰더라면 술자리가 만들어졌을 텐데 그러지를 못하고 (‘그러지를 않고라고 표현해야 되지 않을까?) 그냥 지냈다.

공문이 오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우리는 술 한 잔 나누는 일 없이 몇 년을 지냈을지도 모른다.

 

그 공문명예퇴직 신청공문이 마침내 온 것이다. 교무실을 시작으로 우리 환경부사무실까지 회람되기에 이르렀다. 나는 마침내 올 게 왔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감격이 아니라, 선택의 순간이 닥친 데 대한 두려움이었다. 공문은, 명예퇴직 신청을 일주일 내로 받겠다는 내용을 전제로 신청서 양식이 첨부돼 있었다. 나는 우선 한 부 복사했다.

아무래도 남 보기에 민망한 공문이라 여겨 서랍에 넣을 때 친구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명퇴를 생각하니? 나도 생각중이거든.”

뜻밖이면서 반가웠다. 나 말고도 명퇴를 생각하는 이가 있다니, 그것도 친구라니……. 마침 사무실에는 우리 둘밖에 없었다. 공문을 한 부 더 복사해 친구에게 건네며 난롯가에 앉아 의견을 나누었다.

자네는 왜 명퇴를?”

내가 몸이 아프잖아. 두어 달째 한의원을 다니면서 침을 맞고 있지만 별 차도가 없어.”

무슨 병이야?”

병명은 분명치 않은데 하반신, 그러니까 발끝에서부터 감각이 사라지고 있다고. 움직이는 데에는 지장이 없지만 감각이 없는 게 마치 남의 다리 같다니까. 아무래도 제대로 치료하려면 요양하면서 치료에 전념해야 할 것 같아 걱정이지……. 그런데 자네는 왜?”

나는 더 이상 근무하기 싫어서 그래. 갈수록 수업은 하기 싫고 그렇다고 교감이 될 가능성도 없고, 그러니 이런 좋은 기회에 나가려고 그래.”

나야 승진과 거리가 멀 수밖에 없지만, 순탄하게 지냈을 자네가 그런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네.”

그렇게 됐어.”

집사람이 동의하냐?”

동의고 뭐고 없어. 내가 하도 명퇴 얘기를 했더니, 지쳐버렸는지 당신 좋은 대로 하라고 하네.”

나는 그 정도만 말했다. 먼젓번 학교에서 비롯된 교직에의 모멸감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이 커져 나는 명퇴 생각밖에 없었다. 교직이 싫어 나가고 싶은데 마침 명퇴금까지 준다니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반기면서도 마음 한 편은 두렵고 번민이 많은 날들이었다. 친구가 제의했다.

오늘 퇴근길에 어때?”

술 한 잔? ……좋아.”

마침내, 한 달여 만에 우리는 생맥주 집에서 따로 만난 것이다.

술잔을 주고받으며 나는 보다 구체적으로 명퇴를 결심하게 된 사연을 밝혔고, 친구는 부부관계마저 여의치 않은 몸의 심상치 않은 증상에 대해 늘어놓았다. 늦도록 마시다가 헤어졌지만, 고교 시절에 친했다가 절교했던 사건 얘기는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하긴 모처럼의 술자리에서 굳이 지난날의 가슴 아픈 얘기를 꺼낼 필요가 있을까.

 

고교 시절에는 어떤 성격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친구는 확실히 외향적이었다. 다음날 아침에 사무실 난롯가에 서서 걸쭉하게 한 마디 던지기를,

명퇴들 안 하슈? 관련 공문도 왔는데.”

순간 내 얼굴은 화끈거렸다.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교직사회에 불어 닥친 명퇴 바람이니 뭐니 떠들어대지만 실제 학교 현장은 말없이 차분하게 근무하는 중이었다. 그런 분위기라, 명퇴 여부를 고민하는 내 자신 침묵하고 있는데 친구가 걸쭉한 어투로 그 침묵을 깨버린 것이다.

놀라운 것은, 환경부 사무실이 이내 명퇴 얘기로 떠들썩해졌다는 사실이다. 2년 후배인 환경부장부터 선배님, 공문 좀 봅시다하며 나서는가 하면, 1년 선배가 될 교련선생 역시 침통한 낯으로 그러잖아도 생각중인데……하며 끼어들었다.

환경부장은 날이 갈수록 수업하기도 싫고 힘든 나이를, 교련선생은 교련 대신 다른 과목을 상치로 가르쳐야 할 처량한 처지를 각기 사유로 댔다. 과연 분장업무가 한가한 환경부 사무실은 승진을 포기한 퇴물 노 교사들의 집합소였다. 마음 놓고 떠들 수 있는 별실이기에, 하루 종일 명퇴 신청에 대한 고민들을 토로하느라 바빴다.

침묵하던 나도명퇴 신청 고려중이라고 처지를 밝힐 수밖에. 하긴, 친구가 내게자네 서랍에 둔 공문 좀 꺼내 봐했으므로 더 이상 침묵할 수도 없었다.

나까지 모두 네 명이 신청 접수 마감 전 날까지 며칠 동안, 수업이 없는 빈 시간마다 난롯가에 앉아 명퇴 얘기로 지내게 된 시작은 그러했다.

 

이번에 한해 명퇴 신청자 전원을 받아들인다는 장관의 언급’, ‘각자의 경력에 따른 명퇴금의 추정 액수’, ‘타 시도의 명퇴 신청 분위기등의 얘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며 지내는데 떠들썩한 말소리만큼이나 두려운 기색임을 어쩔 수 없었다. 한 번 퇴직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며, 얼마 안 될 연금으로 생계 규모를 줄여 살 수밖에 없게 되며, 게다가 딱히 할 일마저 없다면…….

속으로 하는 한심한 고백이지만, 상대적으로 나는 명퇴할 만하다고 판단했다. 아내가 중학교 교사를 하고 있으니 명퇴 후 닥칠 생계 규모 운운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게다가 내 나름대로 하고 싶은 일도 있고……. 그래도 명퇴 신청은 여전히 두려운 선택이었다.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길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에다가, 어쩌면 내가 일시적 감정으로 이러는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까지.

 

마침내 명퇴 신청 마감 날이다.

머리가 텅 빈 듯 건성으로 1교시 수업을 마친 나는, 교실을 나오자마자 행정실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좁은 복도에서 나와 부딪힌 학생이 뭐라 죄송하다는 뜻의 말을 해도 귀담아들을 새 없이 바삐 걸었다. 내 손에 든 서류봉투 속 명퇴신청서를 제출할 생각밖에 없기 때문이다.

출근 전 집 현관에서 아내가 내게 더 이상 망설이지 말라했었다. 물론 그 표정은 굳어 있었다.

나는 행정실에 들어가자 담당자한테 말없이 서류봉투부터 건넸다.

그는 안의 신청서를 꺼내보더니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내시는 겁니까?”

……. 살펴보시고요, 혹 잘못 적은 게 있으면 연락주세요.”

행정실을 서둘러 나왔다. 1교시 수업 때의 교재를 여전히 옆구리에 낀 채 환경부 사무실로 돌아오니 난롯가에 친구가 서 있었다. 친구 역시 예의 신청서를 손에 쥔 채 내게 물었다.

냈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주섰다.

그런데 사무실 분위기가 전날과 달랐다. 전날만 해도 난롯가에 앉아 명퇴 얘기로 종일 보내던 후배 환경부장은 아예 보이지도 않았고 교련선생은 술이 덜 깬 얼굴로 자기 의자에 등기대고 앉아 자고 있었다. 왠지, 자는 체하며 우리 둘의 얘기에 귀 기울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친구가 말없이 골몰하는 낯이더니 결심이 선 듯 신청서를 한 손에 쥐고 휘적휘적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나만 해도 서류봉투 속에 넣어 들고 가던 것을 친구는 마치 주운 삐라처럼 가벼이 취급했다.

30여 분 후 친구가 돌아왔다.

그 때부터 사무실에는 이상한 침묵이 자리 잡았다. 나와 친구는 전과 다름없이 비는 시간마다 난롯불을 쬐지만 서로 말 한 마디 건네는 일이 없었다. 후배 환경부장은 오후의 청소시간마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청소시간에 학교를 둘러보는 게 환경부장의 주요 업무이므로 결근인가 했는데, 그의 책상 서랍이 열려 있는 것으로 보아 그렇지는 않았다. 이튿날 그가 밝힌 바로는 전 날 감기 기운이 승해 숙직실에서 종일 누워 지냈다했다. 맡은 수업은 자습하도록 실장들한테 미리 지시를 내려놓고 지냈다는데, 감기 기운이 여전하다며 기침을 별나게 할 뿐 명퇴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교련선생은 종일 의자에 파묻혀 덜 깬 술기운을 가라앉히는 모습으로 하루를 보냈다. 그도 수업시간이 되면 그 반의 실장을 불러다가 자습하며 조용히 지내도록 지시하는 모습이었다. 일주일 가까이 난롯가에 모여 앉아 명퇴 신청 얘기로 떠들썩하던 사무실 분위기가 갑자기, 하루아침에 절간처럼 가라앉은 것이다.

나야 내성적인 성격이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친구까지 별 말 없이 침묵에 잠겨 지내다니, 이해하기 어려웠다. 며칠간 떠들썩하던 명퇴 담론들을 상기한다면 말이다. 심지어, 우리끼리 퇴근길에 술 한 잔 또 할 수 있는 날임에도 친구 먼저 말없이 먼저 퇴근해 버렸다.

 

이튿날.

출근했으나 별 일 없었다.

그 말뜻은, 출근하자마자 교감이나 교장선생이 나와 친구를 불러다 앉혀놓고 명퇴 신청 여부를 확인한 뒤 신청 철회를 종용하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그런 기미가 전혀 없었다는 뜻이다. 물론 교내에는 벌써 소문이 다 돌았는지, 오래 전 시골 고등학교에서 함께 근무했던 후배 선생이 나를 찾아와 부장님, 정말 명퇴 신청하셨어요?’하고 매우 안타까운 낯으로 묻기도 했다. 그는 예전의 시골 학교에서 내가 연구부장을 할 적에 문서 담당이었는데 지금의 학교에서는 3학년 담임을 맡고 있었다. 다른 별실을 사용하는 3학년 담임인 그가 내 명퇴 얘기를 듣고 왔다는 것은 전 직원에게 소식이 다 퍼졌다는 뜻이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명퇴 신청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그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부장님. 너무…… 이른 게 아닙니까?”

……나중에 얘기해 줄게.”

환경부 사무실은 다시 평상의 분위기를 되찾았다. 난롯가에 모여 명퇴 얘기로 떠들썩하는 일 없이, 청소시간이 되자 환경부장은 막대기 하나 들고 청소 지도에 나섰고 교련선생은 명심보감 책을 펴놓고 숙독하는 모습이었다. 그것은 그가 평소에 보여주던 마음을 수양하는자세였다. 다른 젊은 교사들이야 변함없이 컴퓨터를 켜놓고 무언가를 찾거나 작성하고 있었다. 단지 나만 난롯가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에 잠길 뿐이었다.

어떻게 된 게, 명퇴 신청서를 내면 가라앉을 것 같던 내적 갈등이 시간이 갈수록 더 심해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한 때의 일시적인 감정으로 섣부른 선택을 한 게 아니었을까?’ 하다가 무슨 소리야. 이런 기회는 정말 모처럼이야. 잘한 선택이야!’ 하다가 에라, 까짓 거 신청했으니 더 이상 생각 말아야지……하는 독백들이 내 속에서 뒤엉키고 있었다.

그런데 친구가 이제는 난롯가에도 오지 않고 복도로 나가 담배를 피우다 들어오는 게, 왠지 나를 피하는 듯했다. 명퇴 신청서를 낸 우리끼리 술 한 잔 하자는 말을 전날부터 건네고 싶었는데 그럴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다음 날.

1교시 수업을 마친 뒤 자리로 돌아오자 책상 위에 메모지가 한 장 놓여 있었다. ‘교장실에 잠깐 다녀가시랍니다. 김양.’

김양은 교무업무를 보조하는 처녀다. 내가 어제부터 기다린(?) 연락이 온 것이다. 같은 연락을 받았나, 친구를 찾았더니 보이지 않았다.

2교시 수업이 시작되어 일시에 교내 소음들이 가라앉은 긴 복도를, 나 혼자 걸어 교장실 문 앞에 다다랐다. 노크한 뒤 들어가니 교장선생이 창가의 햇살 한 움큼을 머리 뒤에 묻히고 집무책상 자리에 앉아있었다. 나를 안경 너머로 넘겨보고는 당신이 먼저 실 가운데에 놓인 탁자 옆 소파로 옮겨 앉더니, 내게도 맞은편 소파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 왜 명퇴 신청을 했나?”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입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이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가 아닐까?”

나는 할 말이 없어 눈길을 아래로 낮추었다. 교장선생이 다시 조심스런 어조로 말했다.

자네가 먼젓번 학교에서 편치 않은 일을 당했다는 것은 알고 있네. 그러나 승진이란 게 늦을 수도 있지 않나?”

아닙니다. ,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단지 그것 때문에 명퇴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알겠네. 내가 염려하는 것은…… , 자네가 한 때의 언짢은 감정에 휘말려서 그러는 게 아닌가 싶거든. 명퇴 신청 공문은 내일까지 보내면 되니까, 내일 퇴근 전까지 내가 기다림세. 만일 자네 생각이 바뀌면 나를 찾거나, 교감선생한테라도 말해 주게.”

뜻밖의 따듯한 말씀에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정중히 드리고는 교장실을 나왔다. 사무실로 돌아오자 친구가 환경부장과 난롯가에 있다가 나를 보고 대뜸 물었다.

그래, 교장선생이 뭐라고 말씀하셔?”

, 명퇴 신청을 재고해 보라는…….”

그렇지?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친구는 그러면서 환경부장의 어깨를 손으로 탁 치는 게 무슨 내기라도 건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복잡해진 머리로 자리에 앉았다. 그 때, 친구가 이런 말을 이었다.

자네는 마누라도 버니까 명퇴 신청해도 되지만 우리야 어디 그럴 수 있나?”

그제야 알아차렸다, 친구가 명퇴 신청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아마도 어제, 그 신청서를 삐라처럼 손에 쥐고 가다가 화장실에 들러 찢어버리지 않았을까?

 

결국 나는 명퇴 신청을 철회했다.

나도 몰랐던 또 하나의 내가 주도한 번복이었다. 왠지 억울하기 짝이 없는, 나쁘게 말하면 나만 사기당한 것 같은 느낌이 역력해지면서 밤새 잠을 설치며 생각던 끝에 아직은 명퇴 신청을 할 때가 아니다. 좀 더 있어 보자는 결론에 다다르고 만 것이다.

잠을 설친 탓에 어지러운 걸음으로 교무실의 교감선생을 찾아갔을 때 눈치 빠른 그는 이내 감을 잡고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위로하며 격려까지 했다.

그래, 한 때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좋아, 이제는 마음 다잡고 근무하는 겁니다.”

나는 머쓱해져 고개를 한 번 꾸벅이고는 교무실을 나왔다. 복도의 창가에 멈춰 서서 교정을 내다보니 탐스런 하얀 꽃들이 허공에 가득 떠 있었다. 백목련 꽃들, 얼마나 꽃송이들이 많은지 가지가 보이지 않았다.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자리에 앉아 교재연구에 몰두했다. 학생들에게 미안하게도 한동안 머리가 텅 빈 듯 건성으로 수업했으므로 미흡한 부분들은 다시 보완해 줄 필요가 있었다. 그때 난롯가에서 쉬던 친구가 한 마디 하였다.

아니, 얼마 후면 나갈 사람이 무슨 교재연구야?”

그러자 사무실에 있던 동료들이 뭐가 팍 깨진 듯 와하핫!’ 웃었다. 물론 내가 방금 전 명퇴 신청을 철회하고 왔다는 사실을 아직은 모를 것이다. 나는 화끈거리는 낯으로 답했다.

나갈 때 가가더라도 할 건 해야지.”

그래? 그것도 참.”

친구는 담배개비를 하나 꺼내어 물다가 젊은 여선생이 금연구역입니다.’고 한 마디 하자 복도로 나갔다. 나는 오랜만에 교재연구에 몰두하였다. 정말이지 나갈 때 다가더라도 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게 기본 책무가 아닌가. 그 놈의 되지도 않을 명퇴 소리는 이제는 듣기만 해도 진저리쳐지는 심정이었다.

그런 심정은 다른 명퇴 관심자들도 같았나 보다. 며칠 후, 청소시간에도 자리에 앉아 교재연구를 하는데 후배인 환경부장이 쥐고 있던 막대로 바닥을 땅 쳐서 자기를 쳐다보게 한 뒤 이런 말을 했으니.

형님, 이젠 명퇴 소리는 지겹지요?”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몰라 다시 교재나 보려는데 그가 웃는 낯으로 말을 이었다.

잘 하셨어요, 철회하신 거. 나는 마누라가 난리쳐서 신청도 못하고 말았지만 말입니다.”

난롯가의 친구도 한 마디 거들었다.

그래, 지금 나가면 뭣하나? 그저 봉급 타며 사는 게 제일이지.”

모두들 내 명퇴 철회 사실을 알게 된 모양이었다. 신중해야 할 신변 문제에 대해 이랬다저랬다 한 내 꼴이 전 직원에게 알려진 셈이니, 학생들이 잘 쓰는 말로 쪽팔리는상황이지만 의외로 담담한 심정이었다. 하긴 여러 명이 동시에 교감으로 승진발령을 받을 때 탈락한 놈에게 무슨 자존심이 남아 있겠나.

나는 교재를 보다말고 눈을 감았다. 교원 정년이 갑자기 축소되면서 노 교장들이 한꺼번에 퇴임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빈자리를 채우려는 무더기 승진발령이, 하필 내가 그 학교를 떠날 즈음에 터질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별나게 교감승진자격자 지명권이 부여된 그 특별한 학교에서 말이다.

오늘, 술 한 잔 할까? 우리끼리 말이야.”

친구의 제안이었다.

그래요, 우리끼리 기념으로 한 잔 합시다.”

환경부장이 우리의 범주를 넓혔다. 그렇다면 교련선생도 포함시켜야 했다. 그를 봤더니 역시 명심보감 책을 펼쳐놓고서 혼자만의 상념에 잠겨 있는 모습이었다. 친구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저 양반, 아무래도…… 조는 게 아닐까?”

 

그 날의 술자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친구에게 오늘 야간자습 감독입니다라는 3학년부장의 메모가 뒤늦게 전달된 탓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야자 감독이라 다른 날과 바꾸거나, 아니면 순해 보이는 젊은 교사를 찾아 잘 부탁하면 온전하게 면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친구는 우리끼리의 술자리를 포기하는 쪽을 택했다.

에이, 내가 몸이 안 좋다고 말했는데도 여전히 감독을 시키네. 에라 그놈의 감독, 오늘 그냥 해 치워 버리지 뭐. 그러니…… 자네들끼리 한 잔 하게!”

자기가 먼저 제의해 놓고 빠져버리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러자 환경부장 또한 , 그럼 다음에 날을 잡지요하였다. 결국, 굳이 술자리를 같이할 마음들도 아니면서 건성으로 술자리 얘기를 꺼내고 동의했다는 게 드러났다. 하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명퇴 관심자들의 유대(紐帶)라는 게 그런 수준이었다.

그 날 이후로도 우리끼리의 술자리는 이뤄지지 않았다. 환경부 차원에서 중간고사 기간을 이용한 회식도 있었으나 따로 남아 술 한 잔 하는 일은 없었다. 그것은 어쩌면, 명퇴 관심자 모두가 쓸데없이 골치만 아프게 했던 명퇴를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심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중간고사가 끝나고 정상수업으로 들어가는 날이다.

친구가 출근하지 않았다. ‘이 친구 뭔 일이 있나?’어리둥절해 하는 내게 환경부장이 말했다.

제가 어제 밤 전화를 받았는데요, 서울에 있는 모 대학병원 신경외과 전문의의 진단을 받으러 오늘 하루 결근한다 했어요. 교감 선생한테는 어제 미리 말씀 드려놓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러고 보니 친구는 환경부 회식 중에도 혼자서 술잔만 기울였었다. 다른 때였으면 부부간 대화는 잘들 이루어지고 있수? 아랫도리끼리 나누는 대화 말이야!’ 따위의 걸쭉한 음담도 늘어놓으며 회식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친구였는데 말이다.

친구는 그 날 하루 결근하는가 싶더니…… 아예 한 달 병가로 들어가 버렸다.

환경부장이 전하는 얘기에 의하면 뇌에서 발끝까지 이어지는 신경이 경추 뼈에 눌려 하체의 감각을 잃는 병으로 진단이 내려지는 바람에, 경추를 교정하는 수술 날짜까지 잡게 되었다고 했다. 뒤늦게 친구의 심각한 상황이 짐작되었다. 뭔지 모를 심상치 않은 몸의 증세에 한동안 한의원의 침술에 기대해 보았다가, 차도가 없자 급기야는 전문 병원을 찾아 경추 수술이라는 중한 수술을 받기에 이른 것이다.

10여 명이 근무하는 사무실이라 누가 결근한다고 그 빈자리가 표 날 것 같지 않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한복판의 난로까지 철거된 후라 그런지 사무실은 냉기와 함께 허전함이 컸다.

친구가 한 달 병가로 들어가면서 우리 사이가 사실은 소원한 사이라는 게 드러난 셈이었다. 위급한 병에 대한 소식조차 남을 통해 전해 들었으니 말이다. 30여 년 전 고교 시절에 너희 둘이서 동성애하는 게 아니냐?’는 놀림을 받을 정도로 절친했던 우리 사이였는데…….

고교 시절, 어느 날 밤이었다. 방과 후에도 붙어서 돌아다니던 우리는 어두운 골목에서 대여섯 명의 낯선 패거리와 맞닥뜨렸다. 각목을 든 걔네들에게 아무 이유 없이 붙잡혀 망신창이가 되도록 두들겨 맞고 풀려났는데, 사흘 뒤 나는 친구에게절교를 선언하고 말았다. 그런 지경에서 서로를 챙겨주지도 못하고 당할 뿐인 친구사이라면 굳이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보름 정도 지난 밤, 친구는 자정이 머지않은 시간에 우리 집을 찾아왔다. 교복 차림에 소주냄새가 진동했다. 다시 전처럼 친구사이를 회복하고 싶다고 흐느끼며 말했으나 나는 달리 답할 말이 없었다. 어머니가 친구한테 학생이 무슨 술을 !’ 하며 대문 밖으로 떠밀 듯이 내보냈다. 찬바람이 스산하던 초겨울 밤이었다.

그렇게 우리의 사춘기는 막을 내렸다.

이제 생각해 보면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위기 때 서로를 챙겨주지 못하는 친구사이라면 굳이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떠들어댔지만 사실은 권태감이 주된 원인이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싫증날 만큼 3년 가까이 붙어 다닌 게 원인이었다. 또는, 어처구니없게 몰매를 맞고도 꼼짝 못한 내 자신에 대한 수치심을 정리하는 심정일 수 있었다. 친구에게 절교선언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자신을 견디기 어려울 것 같았다고나 할까.

어느 것이 주된 원인이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그 후로 우리는 정말 사이가 멀어졌으니까. 그 후로 나는 더욱 내성적인 성격이 되었고 친구는 그에 반해 외향적이 되는 식으로 행동양태까지 멀어져 버린 게 아닐까?

가지들만 엉성하게 남은 백목련나무의 배경 하늘이 누런빛이었다.

환경부장이 복도를 총총히 걸어 다니며 열린 유리창들을 닫고 있었다. 황사 바람이 불고 있었다. 머나먼 중국 땅 고비사막에서 비롯되었다는 누런 모래알들의 바람이.

 

황사 바람이 부는 일요일 오후.

나는 친구의 집을 찾아 나섰다. 친구가 서울에서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내려왔다는 소식을 들은 지 열흘만이다.

초여름임에도 아득한 북녘 어디선가 날아온 모래바람에 늦가을처럼 싸늘해진 거리였다. 다니는 차량들도 뜸하고 행인도 보기 어려웠다. 나는 친구가 산다는 변두리 동네에 다다르자 차를 세워놓고 근처 슈퍼에서 건강 음료 한 박스를 샀다.

이 도시에 오래 살았어도 직접 와 보기는 처음인 동네. 골목이 좁아 차를 차도 변에 두어야 했다. 찾아오기 전에 친구 아내와 통화했는데 ‘3층 연립주택의 2층에 세 들어 살고 있으니까 집 주인의 문패를 일러주겠다김용석이란 이름을 가르쳐주었다.

김용석, 김용석……

되뇌며 골목으로 들어섰다. 모래바람에 희미해진 햇빛으로 골목 안은 그늘마저 흐릿하게 뭉개져 있었다.

알루미늄캔 나이트클럽전단지 컵라면 빈 용기 등이 한 무더기로 몰려 있는가 하면 검은 비닐봉지 하나가 강아지처럼 달아나기도 했다. 나는 바람에 눈앞을 가리는 머리카락들을 손등으로 넘기며 김용석이란 문패를 찾았다.

마침내 일러준 3층 연립주택을 찾았다. 철 대문이 열린 채, 반쯤 무너진 시멘트 담장의 벽돌 건물이었다. ‘김용석플라스틱 문패 아래에 초인종 세 개가 세로로 나란히 달려 있기에 두 번째 것을 누르자 아침에 통화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고 정말 오셨네. 어서 올라오세요.”

건물 외벽에 붙은 녹슨 쇠다리 층계를 밟고 올라가자, 친구의 아내가 바람에 흔들리는 문짝을 부여잡고 있었다. 살림들이 구석구석 널린 방에서 친구는 부은 얼굴로 이부자리에 앉아 나를 맞았다.

학교는 별 일 없지?”

그럼. 그래, 몸은 어때?”

아주 조금씩 감각이 살아나는 듯해. 아직 확실하지는 않아.”

나아지겠지.”

그럼, 나아지겠지.”

그의 아내가 컵 두 잔에 음료수를 담아 내왔다. 우리는 각기 컵을 잡고 음료를 마시기 시작했다. 친구는 입만 대다 마는 듯했고 나는 반쯤 마셨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술자리가 아니라서 그럴까, 별로 떠오르는 말도 없고 딱히 더할 말도 없었다. 친구도 마찬가지인 눈치였다. 그래서 친구는 텔레비전의 음량을 조금 높였다.

우리는 무슨 드라마를 10여 분 넘게 보았다. 주인공들이 신나게 불륜을 저지른 뒤 앞날을 고민하는 스토리였다. 나는 그의 아내가 깎아서 내온 사과들 중 하나를 먹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갈께.”

아니, 더 있다 가지 그래.”

아니야, 할 일이 있어서 그래.”

그래, 내가 출근한 뒤에 날 한 번 잡아서 우리 둘이 술 한 잔 하자구.”

그래.”

나는 다시 쇠다리 층계를 조심스레 밟으며 내려갔다. 바람 때문인지 삐걱삐걱 소리가 심한 층계였다.

20여 년 전인 80년대 말 겨울 어느 날. 친구가 교육현장의 모순을 뜯어고치자는 모임을 준비하면서 내게 창립 취지문을 하나 써서 보내 달라는 부탁을 은밀하게 인편으로 전해 왔었다. 나는 며칠 고민하던 끝에 사양하고 말았는데…… 그 때 그 부탁을 받아들였더라면 우리는 고교시절처럼 친한 사이로 돌아갈 수 있었을까?

글쎄,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뒤 친구가 해직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나는 안됐어 하면서도 나의 선택에 안도했다는 사실이다. 아버지의 오랜 실직으로 어렵게 살아온 성장과정의 내력은 그렇게 나를 옭아매었다.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이 되었다. 그 시절 거센 바람의 한가운데 섰다가 해직, 복직의 험로를 걸은 친구마저 이젠 그런 활동도 다 지나간 일이고 그저 늙고 병든 몸만 남았을 뿐이라며 지난봄의 술자리에서 실토하질 않던가.

 

여름방학이 끝나자 2학기 인사발령이 났다.

교감선생은 시골 학교의 교장으로 나갔고 그 후임으로 온다는 신참 교감은 우리에게 1년 후배 되는 사람이었다.

물론 나나 친구는 그를 알고 있었다. 나한테는 대학교 국문과의 후배였고 친구한테는 예전에 같은 학교에서 형, 동생하며 지냈던 사이라 했다. 환경부장이나 교련선생도 모두 다 이렇고 저런 관계로 알 만한 교감이었다. 모두들 30년 가까운 교직 경력이니 말이다. 친구가 예전의 명퇴 관심자들을 둘러보면서 한 마디 던졌다.

먼저 교감선생은 나이라도 많았지, 이제는 동생뻘을 상사로 모시게 됐으니 폐인이 다 된 거야!”

나는 맞장구 칠 마음이 아니라서 그냥 웃고 말았지만 후배 환경부장은 자기보다 1년 선배 되는 교감이라 그다지 불편한 심정은 아닌 듯했다.

, 형님도 무슨 폐인은? 교감이라 해도 봉급 타긴 마찬가지잖아요?”

무슨 소리야? 평교사보다 무슨 수당이니 뭐니 해서 더 타는데?”

그런가요?”

시시한 대화들을 나누는데 교련선생은 좀 달랐다. 1학기 때에는 명심보감을 보다가 여름방학 후에는 장자란 책으로 바뀌었는데 뜬금없이 이런 말을 뇌까리던 것이다.

세상사, 달팽이 머리끝에서 벌어지는 일인 것을……

다양한 반응들을 보이며 사흘째 되는 날 아침, 신임교감이 출근하였다.

그는 교무실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환경부 사무실부터 찾았다. 교직의 선배들이 포진한 곳임을 미리 파악하고서 직접 인사차 들른 듯했다. 역시 나이 50이 되기 전에 시내 중심가의 큰 고등학교에 교감으로 오는 사람은 뭔가 달랐다.

먼지 하나 안 묻은 새 양복 차림으로 사무실에 들어서며 나와 첫 번째로 마주쳤다. 내게 먼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요즈음도 시를 쓰십니까?”

나는 그냥 웃으며 악수를 나누었다. 그는 대학시절에 시로 각종 상을 휩쓸던 나를 여전히 기억했다. 내 옆에 선 친구한테는 잘 부탁드립니다. 혹 제가 잘못하는 게 있으면 반드시 먼저 일러 주십시오 하고는 허허허 웃었다. 친구도 겸연쩍은 표정으로 웃었다. 그 뒤에 선 환경부장을 보고는 그냥 미소 지으며 악수만 나누고 마는 게, 부장선생들과 미리 상견례 모임이 있었던 것 같았다.

뜻밖인 것은 교련선생이었다. 지나치다 싶게 고개를 90도 가까이 숙이며 이런 말을 했으니.

잘 부탁합니다. 제가 나이만 많았지 아는 게 뭐 있습니까?”

교감이 사무실을 나간 뒤 교련선생은 다시 장자 책을 펴놓고 말없이 앉아 있는 모습이었는데 글쎄, 그의 지나치게 겸손해 보이는 행동에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했다.

후배 교감이면 어떠하리, 내가 알아서 굽히면 되지라는 생각에서 그랬을 거라는 해석과, ‘곧 닥칠 과목 조정 문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신임 교감에게 잘 보이자는 생각에서 그랬을 거라는 해석.

어쩌면 두 가지 생각이 합쳐진 결과로 나타난 행동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후배를 교감으로 모셔야 한다는 현실은, 아무리 넓게 이해한다 해도 처량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교감.

특별하게 교감승진자격자 지명권을 가진 먼젓번 학교에서…… 지명을 받고자 한 동료들 간의 경쟁은 상상을 초월했다. 교내에서 이뤄지는 모든 행위는 그 정당성이나 진실성을 떠나 오직 교장 교감의 눈도장을 받을 수 있느냐?’에 국한돼 있었다. 명절날이라도 오면 누구는 교장 관사를 찾아가 무슨 뇌물을 썼느니 뭐니 하는, 확인하기 어려운 소문들로 흉흉하였다.

나는 그 이상한 학교로 전근 간 첫 달부터 질려버렸다. 그 동안 여러 학교를 근무해 봤지만 정말 내 성격에 맞지 않는, 잘못 들어온 이상한 학교였다. 때가 되면 멋진 시집 한 번 내 보자는 소박한 꿈으로 살아온 나로서는 그런 경쟁의 대열에서 처음부터 스스로 빠져 버렸다. 솔직히, 교감승진자격자를 1년에 한두 명씩 지명한다니 일찌감치 포기하는 게 현명하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그러던 게 학교 만기로 나오던 지난 2월에 여러 명이 지명 받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

 

신임 교감은 역시 사무도 잘 처리하고 60여 명의 많은 직원들도 잘 통솔하는 능력자였다. 하긴, 선배 되는 노 교사들이야 사무도 별로 없는 환경부 사무실에 다 있으니 불편하게 마주칠 일도 없었다.

그러다가 10월 하순이 되면서, 친구와 내가 같이 주번교사를 해야 하는 일이 생김으로써 불가피하게 교감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다.

 

학교 자체의 주번교사 내규에 따르면 평교사 중 만 53세 이상이거나 부장교사는 주번에서 면한다로 되어 있었다. 나이가 50세이면서 부장도 아닌 친구와 나는 꼼짝 못하고 주번교사를 해야 하는 내규였다. 어디 그뿐인가, 둘씩 짝을 지어 하게 되어 있는데 전입 순으로 순번명단이 작성되었으니 우리 둘이 같이해야 했다.

참 공교로웠다. 나는 그런 사태도 모르고 있었지만 친구는 진작부터 알고서 마땅한 해결책을 찾느라 전전긍긍했던 모양이다. 내가 컴퓨터를 켜놓고 인터넷으로 이런저런 뉴스를 보는데 친구가 불쑥 주번계획서를 내 책상에 팽개치듯 놓더니 먼저 이런 제안을 했으니.

우리 둘이 다음 주에 주번교사야. 모르고 있었어? 나 원 참, 무심한 친구라니까. 우리 둘 다 노털들이니까 젊은 교사하고 짝을 이루어야 편하게 지낼 수 있거든. 그래서 내가 젊은 애들과 순서를 바꿔 짝지어 보려 했는데 그게 안 됐어.”

친구가 심각한 표정으로 주번교사 문제를 늘어놓는 것에 나는 놀랐다. 지난봄의 명퇴 신청 때 못지않은 심각한 표정이었다. 나는 속으로 아니 이까짓 주번교사 하는 것 가지고 뭐 그리 법석이냐싶었다. 친구는 눈길을 다른 데로 돌리면서 나지막한 어조로 제안했다.

그러니까 자네가 주번계획서 결재라든가 주훈 발표 같은 것을 맡게. 나는 청소시간마다 주번 애들을 데리고 교정 청소하는 일을 맡을 테니까.”

사실상 제안이라기보다는 통보였다. 언뜻 듣기에 자기가 힘든 일을 맡고 내가 편한 일을 맡는 식으로 업무를 나눈 듯싶지만, 그게 아니었다. 후배 교감 앞에 나아가 결재를 받은 뒤 모든 동료 교사들이 참석한 회의실에서 주훈 발표를 해야 하는 남세스런 일이었다. 동료 교사들 중에는 예전 학교에서 부장할 때 계원이었던 후배들도 있고 심지어는 제자들도 있으니 한 마디로 말해 공개적으로 쪽 팔리는 일이었다.

나는 주번계획서를 받았다.

사실 우리는 소원한 사이이지만 이런 일로 낯을 붉힐 수는 없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게 뭐 있는가, 주번계획서에서 3주 전 것을 펼쳐 놓고 그대로 베낀 다음에 결재 받기에 나섰다. 첫 번째 결재는 학생부장의 순이었다. 물론 4년이나 아래인 후배였다. 마침 그가 자리에 없어서 나중에 들를까 하다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뭐 그리 복잡하게 생각할 게 뭐 있는가.

학생부의 다른 선생한테 양해를 구한 뒤 학생부장의 책상 서랍에서 도장을 찾아 해당 결재 난에 찍었다.

교감선생은 공문을 보고 있다가 내가 주훈계획서를 들고 그 앞에 서니,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뺏듯이 받아 쥐고는 내용도 안 보고 도장을 찍으며 말했다.

아이고 선배님, 고생 많으십니다. 아무래도 우리 학교의 주번교사 내규를 바꾸어야겠어요. 50세 이상은 면하는 것으로 말입니다.”

결재를 마친 뒤, 월요일 직원회의 시간이 되었다.

제가 금주 주번교사입니다. 이번 주 주훈은……

주훈 발표도 마쳤다. 그게 내가 맡은 주번 업무의 전부였다. 후배 교사 몇몇이 나를 보고 아니, 아직도 주번 하세요?’ 묻기도 했으나 웃고자 하는 말이지 놀리는 어조는 아니었다. 놀린다 한들 복잡하게 생각할 게 뭐 있는가.’ 나는 이미 무능한 교사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의외로 내 심경은 담담했다.

청소시간이 되었다. 환경부장이 별스레 사무실 청소에 나섰으므로 나는 복도로 나왔다가, 창밖의 친구를 보게 되었다. 친구가 교정에서 주번 애들을 데리고 다니며 청소 지도하고 있었다. 무수히 떨어진 은행나무 잎들을 수레까지 동원해 쓸어 담도록 하고 있었다.

딴 짓하는 주번 애들을 뭐라 나무라기도 하면서 청소를 지도하는데 은행잎들이 얼마나 쉴 새 없이 떨어지는지, 치운 직후에도 다시 교정에 쌓였다. 그냥 내버려 두었다가 다 떨어진 사나흘 뒤에 치우는 게 현명할 듯도 싶은데…… 친구는 분담한 주번교사 업무를 열심히 수행하고 있었다.

은행잎 몇 개가 친구의 허옇게 센 머리 위에 떨어져 얹히니 마치 부분 염색한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10월이 지나갔다.

그 무렵에 ‘2학기 말 명예퇴직 신청공문이 왔으나 그조차 의식 못하고 아니 모른 척 지나쳐도 될 만큼 바삐 지나간 10월이었다.

 

백목련 꽃송이들이 함박눈처럼 떨어지는 교정에 주번 애들이 서 있었다.

꽃송이들을 쓸어 담는 애들이 아니었다. 주워서 눈싸움하듯 던지는가 하면 발로 밟아 뭉개는 애들도 있었다. 그냥 빈 수레를 끌고 다니며 노는 애들도 있었다.

교감선생이 주번교사를 찾고 있었다. 평소 모습과는 다르게 험악한 표정으로, 행방불명인 주번교사들을 찾고 있었다. 복도에서 내다보던 나는 도대체 이 친구가 어디 간 거야?’ 원망할 뿐이다. 내 손에 주번계획서가 들려 있으니 바깥 청소는 친구 담당인 게 분명했다. 친구가 어딘가로 숨어 버린 것이다. 교감선생이 씩씩거리며 복도 안으로 들어설 때 나는 더 이상 가만있을 수 없어 친구의 이름을 냅다 부르는데, 꿈이었다.

나는 베개에 얼굴을 반쯤 묻은 채 낮잠에서 깨어났다. 식은땀이 목덜미고 가슴이고 가득했다.

제기랄, 명퇴한 놈이 무슨 주번은…….’

명퇴한 뒤로도 1년에 두어 번 꼴로 학교 꿈을 꾸는데 그렇게 흉한 꿈을 꿀 줄 몰랐다. 교직을 떠난 지 벌써 4년이다. 친구는 아직도 시골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근무한다는 것을, 남한테 들어서 알고는 있다. 물론 우리는 같이 있던 학교에서 헤어진 뒤로도 특별한 만남은 갖지 못했다.

서로가 바쁘니까.

그런데 친구의 하반신 감각은 제대로 살아나고 있을까?

친구한테 안부전화라도 걸어볼까, 망설인다. 통화라도 이루어진다면 왠지 꽉 막힌 시상이 풀릴 듯싶다. 누런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창밖을 내다보다가 이윽고 수화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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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2017-02-02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심 선생님, 남 얘기 같지 않아 눈을 흡뜨고 읽었습니다. 평교사가 존중받는 풍토는 요원한 것 같군요.

무심이병욱 2017-02-02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문 한자에 능통한 찔레꽃님. 님의 해박한 지식에 적잖이 놀란 적이 있습니다. 황사주의보는 명퇴한 지 4년째 되던 해에 썼습니다. 교직을 그저 교장 교감 되는 경쟁의 장으로만 여기는 사람들에 질려서 명퇴했지요. 그 후 벌써 9년이 흘렀군요. 삶이 너무 빠르고 덧없는 것 같아, 저는 작품을 쓰는 일밖에는 도리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이만 적습니다.
 

 

말발굽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다. 다시 지게를 지고 출발하려는데 사내가 여전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잠시 궁리하던 용이는 우선 눈에 뜨이는 땅바닥의 돌멩이들을 여러 개 주운 뒤, 바위 뒤고 숲이고 사방으로 마구 던졌다. 깃털 화려한 장끼 한 마리가 진달래 숲에서푸드득!’나타나 멀리 날아가고 뒤이어어버버!’소리치면서 싸리나무 숲에서 사내가 기어 나왔다. 무서움이 여전한 표정으로 말이다.

뭘 그리 무서워해?”

사내는 용이가 하는 말을 여전히 알아듣지 못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렇다면 아까 그들이 멀리서 말 타고 달려오던 소리는 어떻게 용이보다 먼저 들었는지, 영 앞뒤가 맞지 않는 벙어리 사내였다. 다시, 용이가 지게작대기를 짚으며 지게지고 일어서자 사내가 뒤에서 지게가지들을 붙잡아주었다. 조심조심 비탈진 고갯길을 내려가는데 땀은 다시 나지만 주위는 서늘해졌다. 하늘 한복판의 해가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탓이다. 미시(未時)에서 신시(辛時) 사이쯤 되지 않을까. 늦가을 해는 짧아지는 해다. 정도사가 머지않았지만, 도착한 뒤 그릇 파는 일뿐만 아니라 스님이 힘들어 미뤘던 일들도 도와 드리려면 잠시도 지체해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고개를 다 내려와서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폭이 마흔 자는 될 냇물이 앞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그렇기도 하고 밀삐에 어깨 살갗이 다 벗겨졌는지 몹시 쓰라렸다. 갈증 나는 목도 축여야 했다. 지게를 일단 냇가에 세워놓고 용이는 엎드린 자세로 흐르는 냇물을 훌쩍훌쩍 들이켰다. 오장육부가 시원해졌다. 그런 뒤 웃옷을 벗어, 벗겨진 어깨의 살갗 부분을 찬 냇물로 여러 번 씻었다. 이래놓아야 덧나는 걸 방지한다.

냇물이 얼마나 맑은지 바닥의 조약돌들이 남김없이 다 보였다. 그런데 흐르는 물살에 모난 데가 다 다듬어져 동글동글한 모양들뿐이다. 용이는 짚신들을 벗고 맨발로 물속의 조약돌들을 한 번 밟아보았다. 짐작대로 여간 매끄러운 게 아니었다. 그냥 짚신을 신고서 간다면 조약돌에 미끄러지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냇물을 건넌 뒤 물에 젖은 축축한 짚신으로 길을 걸을 걸 생각하니, 짚신은 짚신대로 쉬 망가져버리고 발이 짓물러질 게 뻔해서 영 내키지 않았다. ‘집을 나설 때 짚신 한 켤레쯤 여분으로 챙겼더라면 좋았을 것을!’용이는 한탄했다.

게다가, 냇물이 어떤 데는 검푸르게 깊고 어떤 데는 연한 빛으로 얕아서 고른바닥도 못 됐다. 일정한 간격으로 큰 돌들을 놓아 만든 징검다리가 눈에 뜨이긴 하지만 사기그릇 가득 얹은 지게 지고 가기에는 위험천만이다. 천생, 고개를 내려올 때처럼 사내가 뒤에서 지게가지를 붙잡아주며 내를 건너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사내가 또 보이지 않았다.

이 비렁뱅이자식이 그 새 어디 갔어?”

다리를 저니 멀리 달아나지는 못 했을 것 같다. 용이는 근처 떡갈나무의 굵은 가지 하나를 꺾어들었다. 그것을 휘두르며 부근 숲을 뒤졌다. ‘후다닥!’소리가 난 곳을 봤더니 노루였다. 송아지만 한 노루가 기겁해서 겅중겅중 숲속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웃옷도 채 걸치지 못한 꼴로 숲을 뒤지느라 용이의 상반신은 나뭇가지나 풀잎에 여기저기 긁혔다. ‘이 자식을 놓쳤구나!’체념하며 숲을 나오려는데 가까운 바위 뒤에서 사내가 두 손을 싹싹 비비며 겁먹은 얼굴로 나타났다.

상반신의 긁힌 상처들을 냇물에 여러 번 씻고 난 용이는, 지게를 지고 일어서는 대신 등태 속의 그 칼을 다시 빼들었다. 길이가 한 자밖에 안 되지만 날이 잘 서 있다. 백자를 열 점이나 대장장이한테 주고 장만한 거다. 사내가 듣거나 말거나 용이는 사나운 낯으로 말했다.

자네 말이야, 내가 그만 따라와도 된다고 할 때까지는 나를 따라와야 해. 만일 또 제멋대로 달아났다가는 그 때는 이 칼로 죽여 버릴 거다.”

고개를 다 내려가면 전대의 볶은 콩들을 다 주겠다고 한 약속은 얼버무려졌다. 그래서는 안 되지만 세상은 강자가 하자는 대로 약자가 순종하며 돌아가기 마련 아닌가.

이 냇물을 건너고 나면, 정도사까지 오 리쯤 된다. 십 년 전 천도재를 지내려고, 단발령 고개 너머에서 가장 가까운 절을 찾다가 정도사를 만난 것이다. 사실상 오늘 목적지에 거의 다 왔다. 그렇다면…… 이 냇물만 건너면 사내를 풀어주자. 남은 볶은 콩들도 그 때 주자. 벙어리가 다리를 절면서 여기까지 도와준 것만 해도 꽤 고맙지 않나?

사실 말이 오 리지, 산길 오 리를 혼자 무거운 지게를 지고 갈 걸 생각하면 쉬운 결정이 아니다. 하지만 용이는 다시 좋게 마음먹었다. 하긴 냇물이 거울처럼 맑고, 붉거나 노랗거나 한 단풍들이 지천으로 어우러진 아름다운 가을 풍경 속에서 마음을 모질게 먹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용이는 벗은 짚신 켤레를 새고자리에 매단 뒤 바지 대님을 풀었다. 바짓가랑이를 걷어붙이고는 지게를 지었다. 사내의 도움을 뒤로 받으며 냇물로 조심조심 들어섰다. 얼음장같이 찬 냇물에 발가락들이 다 얼어 떨어져버릴 것만 같다. 참아가며, 매끄러운 조약돌들을 조심조심 밟으며 나아간다. 연한 물빛으로 얕은 데는 걷기가 괜찮지만 검푸른 물빛으로 깊은 데는 허리춤 가까이 냇물에 젖어, 사내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고생깨나 했을 게다.

내를 거의 다 건너는가 싶었는데 긴장이 풀어진 탓일까, 결국 사달이 나고야 말았다. 지게 뒤의 사내가 바닥의 매끄러운 큰 돌에 휘청미끄러지면서 지게가지에 얹힌 사기그릇 스무 점 가까이가 물에 떨어져 버렸다. 물 깊은 곳이었다면 충격이 덜해 덜 상했을 텐데 얕은 데라 바닥의 조약돌들에 세게 부딪치며 대부분 금이 가거나 깨져버렸다. 용이가 몸을 재빨리 움직이지 않았더라면 큰 일 날 뻔했다. 용이는 본능적인 동작으로 지게를 내려놓음과 동시에 몸을 돌려 지게가지에 남은 그릇들을 두 팔로 안았다.

냇물에 자빠지며 입은 저고리가 반 가까이가 벗겨진 사내가 처연한 낯으로 용이를 올려다보았다. 그 때 사내 가슴에 검게 문신된 한 글자이 용이의 눈에 뜨였다. 섬광처럼 사내의 정체를 깨달았다. 사내는 왜구였다. 용이는 두 팔로 안은 그릇들을 냇가에 내려놓고는 지게 등태에서 칼을 빼들었다.

이 개새끼!”

다스케테! 다스케테!”

두 손을 비비며 연실 외치는, 애걸하는 표정으로 봐살려 달라는 왜놈 말인 듯싶다.

이 개새끼야. 우리 아버님이 니네 칼에 돌아가셨어. 이 원수 놈의 개새끼!”

도우조 다스케테! 도우조 다스케테!”

어떻게 왜구 새끼가 풍악산 일대를 떠돌고 있었을까. 약탈하러 동해안에 왔다가 다리를 다치면서 낙오된 놈이 아닐까. 용이가 쳐든 칼 앞에서 이제는 삶을 체념한 듯 두 눈을 감고서 합장 자세로 물속에 앉아 있는 사내였다. 그 때 잠자리 한 마리가 부근 하늘을 맴돌다가 용이의 높이 쳐든 칼끝에 무심히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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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비린내를 머금은 먹구름이 교내에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독수리에서 걸출한 인재를 영입해 우세를 점하려는 시도를, 쌍룡에서 수수방관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걸출한 인재가 자기네 칼침 선배를 망신시키면서 떠오른 인물이었으니 이래저래 독수리와 한 번은 맞붙어 승부를 결정지어야 했다.

겉으로는 평온한 학교였다. 아침마다 학생과() 선생들이 교문 앞에 서서 지각과 복장단정 지도를 하고, 매 시간 수업시작과 종료를 알리는 종이 빠짐없이 울리고, 월요일의 애국조회 또한 거르지 않고 거행되고, 7교시 직전에는 전교생이 참여하는 청소시간이 진행되고, 종례시간 후 각 반 주번들이 학급일지를 담임선생한테 도장 받으러 다니느라 바쁘고……. 하지만 동시에 피비린내를 머금은 검은 구름 또한 학교에 시커멓게 드리우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한결같이 교복바지의 밑단을 교묘하게 넓혀 나팔바지 비슷하게 입고 담배냄새도 풍기는, 살벌한 눈매의 존재들이 걔에게 다가와 포옹도 하고 장난도 치면서 섬뜩한 우의를 다지고 있었다. 전에 없이 쉬는 시간도 편히 쉬지 못하는 생활로 바뀌면서 걔는 고단해졌다. 결국은 담임선생의 독일어 수업시간 중에 코골며 자기에 이르렀다. 담임선생이 판서를 멈추고 물었다.

이게 무슨 소린교?”

나는 손을 뒤로 뻗어, 정신없이 코고는 걔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서너 번 흔들자 코고는 소리가 그쳤다. 그러나 수업이 끝나갈 즈음에 다시 코고는 소리를 내었다. 담임선생이 다시 설명을 멈추고 물었다.

무슨 소린교?”

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담임선생 어조를 흉내 내어 답했다.

오토바이 소리가 아닌교?”

교실에와하하!’폭소가 터졌다. 담임선생은 얼굴이 붉어진 채 자신이 우스개 가 돼버린 상황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그 때 끝 종이 울렸다. 담임선생은 체념한 표정으로 교실을 나갔다. 하긴 학급 종례도 교실이 멀어서 오지 않는 분이 생활지도에 시간을 낭비할 리 없었다. 애들이 여기저기서 무슨 소린교?’를 흉내 내며 낄낄거릴 때 나는 돌아앉아 걔를 보았다. 걔는 공책 위에 침까지 흘리며 엎드려 자고 있었다.

교내를 서서히 휘감기 시작한 어두운 태풍의 눈이 침까지 흘리며 고단하게 자고 있었다.

 

< 무심 이병욱의 단편소설 '달나라' 중에서 >​

첨부사진 : 영화 친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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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봉우리들 중 가장 높은 비로봉에서 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오 리쯤 내려가면 마의태자 묘도 있다니, 정말일까? 용이가 이런저런 생각도 하며 눈앞의 선경을 즐기는데 문득 무슨 소리가 고개 아래쪽에서부터 들려왔다. 일정하게 반복되는 따그닥따그닥소리. 분명, 말들이 달려오는 소리였다. 용이는 가슴이 섬뜩해져 자기도 모르게 주저앉은 채로 다리가 후들거렸다. 전란이 그쳤나 했는데 다시 시작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우선, 길 복판의 지게를 다른 데로 옮겨놓고 피신하려는데 도와 줄 사내가 보이지 않았다. 놀랍게도 용이보다 먼저 말발굽 소리를 듣고 피신한 것 같다.

귀 먹은 자가 어떻게 나보다 먼저 말발굽 소리를 들었지?’

용이는 지게를 질 새도 없이 그대로 질질 끌어다가 길가 숲속으로 옮겼다. 목발이 땅바닥의 튀어나온 돌에 걸려 하마터면 지게가 넘어갈 뻔했다. 말발굽 소리들이 점점 더 커지더니 살벌한 창끝이 보이고 뒤이어 그 창대를 든 병사의 투구가 보였다. 누런 말 타고 나타난 그 병사 뒤로 검은색 복두를 쓴 사람이 잿빛 말을 탄 모습으로 따르고 있었다. 앞에서 창을 들고 가는 병사는 뒤의 복두를 쓴 사람을 호위하는 역할인 것 같았다. 이윽고 히이잉!’하는 말울음 소리들에 이어 두 사람의 모습이 온전하게 가까워졌다. 병사는 눈매가 사나웠고 복두 쓴 사람은 긴 수염을 날렸다. 길가 숲속에 숨은 용이는 제발 별 일 없기를 부처님께 빌었다. 말들의 거친 숨소리와 옷자락들의 펄럭소리가 한껏 커지더니 다시 작아져갔다.

그들이 일으킨 뿌연 흙먼지가 가라앉은 뒤에야 용이는 숲에서 조심스레 나왔다.‘따그닥 따그닥말 타고 고개를 올라가는 그들의 뒷모습이 멀어져간다. 아무래도 개경으로 달려들 가는 것 같다.

나라에 무슨 일이 생겼나?’

나중에 알았지만 그들은 이성계 장군의 명을 받고 이듬해 봄, 비로봉에 봉헌할 불사리갖춤 일로 장안사(長安寺)에 다녀가던 중이었다. 이성계 장군이 누구이던가. 왜구와 홍건적을 잇달아 물리치며 온 백성의 구세주처럼 떠오른 대단한 장군이 아니던가. 대국 명나라를 치라는 무리한 명을 거부하며 벌어진 위화도 회군 성사 후, 나라의 새로운 권력으로 떠오른 지 2년째 되는 해 늦가을이었다. 이성계 장군은 자신의 주도로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음을 불사리 봉헌이라는 최고의 제의를 통해 온 백성에게 선언하고 싶었다. 정도전 같은 성리학 선비들을 만나며 역성혁명을 준비한 장군의 마음 한 편에, 이천 년 전 석가모니께서 남긴 불경말씀이 여전했다는 건 참 놀라운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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