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됐다.  역사가 한  굽이를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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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가고 새해가 오는 시점을 맞아 뭔가 글을 쓰려 했는데 갑자기 막막해졌다. 얼마 전 운동 삼아 외출했다가 갖고 있던 스마트폰으로 찍은 춘천 전경 사진 한 장을 올린 것은 그 때문이다. 짧게나마 인사 글을 쓰면 되는데 왜, 갑자기 막막해졌는지 이 또한 까닭을 규명해 봐야 한다. 이래저래 새해에도 글을 쓰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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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클(snorkel)잠수 중에 물 밖으로 연결하여 숨을 쉬는 데 쓰는 관을 말한다. 우리말로 숨대롱이라 번역한다. 스노클을 이용한 물놀이를 스노클링이라 하는데 강원도 삼척의 장호항이 그 명소로 소문나 있다.

그런데 얼마 전, 우리 육군()의 흑표전차가 남한강을 잠수 도하 훈련을 할 때도 스노클을 썼다는 사실이다. 육중한 군사장비나 장호항의 어린이나, 물에서 움직일 때 스노클을 쓰는 점에서 공통되다니 얼마나 동화 같은 세상인가.

 

 

동영상 <전차 위로 솟은 부분 = 스노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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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무게가 있다면 어느 지하 공간에 물처럼 고여 있지 않을까?

 

스튜디오는 4층 건물의 지하 1층에 있었다. 그 문을 노크하자네에, 들어오세요.’하는 사내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우리 부부가 문을 열고 들어섰더니 30여 평의 넓은 공간에 빛들이 환하거나 어둡게 고여 있었다.

전등불빛들의 명암을 내가 그리 느낀 것은 지하 특유의 서늘한 기운과 고요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잠시 후, 그 고요함 또한 적막해서가 아니라 낮은 볼륨으로 잔잔하게 틀어놓은 경음악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다. 아내가, 지하 공간 한가운데 쌓인 촬영장비들 사이로 모습을 보이는 사내한테 목례하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3시 예약했던 사람들입니다.”

! . 잠시만요. 커피 드시면서 기다려주세요.”

다른 직원은 보이지 않았으니 사내가 사진관의 사장님이었다. 몸에 탁 붙은 간편복 차림에 나이는 40대 초반쯤으로 보였다. 사내는 한 손님을 작은 소파에 앉힌 채 큰 카메라를 손에 쥐고 촬영하는 중이었다. 사내와 손님을 에워싼 갖가지 조명기구들. 한 아름 크기의 직사각형, 정사각형, 혹은 우산 닮은 장비들이 한결같이 빛을 부드럽게 다루고 있었다. 공연장에서 볼 수 있는 눈 아프게 강한 조명 빛은 한 점도 끼어들 수 없었다. 그 까닭이 있었다. 조명기구들마다 영화관 스크린을 닮은 하얀 천 재질로 빛들을 만나는 때문이었다.

  

 

차를 마시며 둘러보니 30평 지하 공간은 크게촬영 작업 공간갤러리로 나뉘어 있었다. 나는 다양한 사진들이 벽에 걸려 있는 갤러리의 나지막한 의자에 앉아 상념에 잠겼다.

이곳을 찾아오기 전 내 오랜 기억 속 사진관은큰 풍경 그림을 배경으로 서 있는 손님과, 바닥에 고정된 촬영 기계를 앞뒤로 천천히 움직이며 수시로 특정 포즈를 요구하다가 결정적인 순간 마그네슘 분말을 팍! 터뜨리는 사진기사가 있는긴장된 곳이었다. 게다가, 빛이 강하다 못해 뜨겁기까지 한 조명기구가 있어서 촬영이 끝나면 목덜미에 땀이 배었다. 또한, 사진관 쇼윈도에그 동안 이 사진관에서 사진 찍었던 손님들 사진 중 잘 나온 사진들이 크게 확대되어 전시되었다. 인구가 적은 시골 사진관에서는 그런 사진들 중에 아는 사람이 반드시 있었다. 내가 어느 시골 읍에 살 때다. 건어물가게 뚱뚱한 아주머니가 가끔씩 추억하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내가 지금은 뚱뚱하니 볼 품 없지만 어릴 때에는 안 그랬어. 그 사진관에 가 봐. 앞에 붙여놓은 인물 사진들 중 얌전한, 아주 예쁜 소녀가 바로 나라니까!”

지역 주민들의 소중한 추억 제작소 겸 보관소 역할을 하던 사진관들이 어느 순간부터 사라져갔다. 아마 휴대폰이 보급되기 시작한 시점과 맞물려 있지 않을까? 사람들마다 휴대폰으로도 쉽게 사진을 찍게 되자 사진관들은 설 자리를 잃고 만 것이다.

내 경우만 해도 사진관에서 사진 찍은 기억이란, 재작년 운전면허증을 새로 갈면서 운전면허장 앞 즉석 사진관에서 반명함판 독사진을 찍은 게 유일할 정도다. 작년에 처음으로 소설집 숨죽이는 갈대밭을 낼 때도 아내가 스마트 폰으로 나를 찍어 책 표지 뒤 프로필 사진으로 올렸고 블로그 활동을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며칠 전 아내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 프로필 사진을 바꾸고 싶은데요. 지금 사진이 너무 들이대는 느낌이라서 아주 촌스러워. 내가 사진을 잘 찍어줄 곳을 알아냈어. 프로사진작가가 재능기부 차원에서 당신을 찍어주시겠다고 하니 얼마나 고마운지. 이번 주 토요일 오후 3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아놓았어. 나랑 함께 가면 돼요.”

당신도 참. 내가 사진 찍히는 것 아주 싫어하는 걸 잘 알면서 그래!”

아내가 그 말에는 대꾸도 않고 다른 말을 했다.

그 사진관에 갈 때, 엉성하게 입지 말고 좀 괜찮은 옷을 입고 가요. 가능하면 양복 차림이 어떨까?”

어느 하루, 점심 후 오수를 즐기는 나의 소박한 낙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손님이 간 뒤 사내는 조명기구들을 다시 배치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카메라 플래시 디퓨저라는 기구(한 아름 크기의 직사각형, 정사각형, 혹은 우산을 꼭 닮은 형태들이었다.) 몇 개로 조명 빛들을 내비치거나 담거나 반사시키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막아버리거나.

지상의 태양 빛이라면 엄두도 못 낼, 인공 빛들이기에 가능한 작업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인공 빛들 또한 태양 빛의 한 변형이지 않나? 인공 빛은 전기의 힘이며 전기란 태양 에너지의 전환된 형태이기 때문이다.

사내는 지하에서 가공된 햇빛들을 조리하고 있었다. 빛들이 피사체에 부담되지 않으면서도 맡은 역할을 다하도록 공을 들였다. 그런 뒤 디퓨저 너머에서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내게 따듯한 어조로 말했다.

이제 오셔도 됩니다.”

나보다 아내가 기다린 듯이 사내한테 말했다.

이이가요, 양복을 입으면 긴장돼서 실수한다나 뭐라나 그냥 털스웨터 이 차림으로 그냥 왔거든요. 어떡하면 좋아요? 양복을 싸 갖고라도 왔어야 했는데.”

괜찮습니다. 인물 사진 촬영은 자연스러워야 하거든요. 긴장된 차림보다는 편한 차림이 좋습니다.”

아내를 뒤로 하고 나는 편안하게 사내가 조성해 놓은빛들의 사정거리안으로 들어갔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불안감을 깨끗하게 없애는 사정거리다. 거창한 배경 그림 대신 단순한 흰 벽이, 뜨거운 조명기구 대신 있는 듯 없는 듯한 부드러운 빛들이, 바닥에 고정된 육중한 촬영기계 대신 사내의 손에 쥐어진 전문가용 카메라가나를 맞이했다. 사내가 말했다.

약간 비스듬히 서서, 편하게 저를 보세요. 기왕이면 미소 짓는 게 좋습니다. , 웃어보세요.”

사내의 웃어보라는 말이 우스워 나도 모르게 웃었다.

좋습니다. 그럼 (찰칵 찰칵 찰칵)”

떨어져 있는 아내가 자기 스마트폰으로 우리의 촬영 장면을 찍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부담스러워그러지 말라!’는 뜻을 내 눈짓으로 전했다. 아내가 알아채고는 스마트폰을 내렸다. 잠시 후 사내가 다시 카메라를 들며 말했다.

두 분이 모처럼 방문하셨는데 여기 같이 서 보세요.”

아내가 웃으며 내 옆으로 왔다. 우리 부부는 빛들의 사정거리 안에서 함께하기 시작했다.

편하게들 저를 보세요. 미소 짓는 게 좋습니다. , 웃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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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1996년에 지은 단독주택이다. 집이 오래 되니 수리할 데가 많아졌는데 대문 잠금장치의 경우는 아예 새로 갈아야 했다. 20년 넘게 눈비를 맞은 탓에 고장 났기 때문이다.

기술자가 그 잠금장치를 떼어내고 새것으로 바꿔 달면서 새 열쇠도 내게 건넸다. 하긴, 잠금장치와 열쇠는 공동운명체였다. 잠금장치를 바꾸면 열쇠도 바뀌어야 했다. 대문의 이전 열쇠가 아무 짝에도 쓸 모 없는 폐품으로 전락한 순간이다.

가장으로서 내가 서두를 일이 생겼다. 우선 철물점에 가 새 열쇠의 복사물을 몇 개 더 만들었다. 그런 뒤 내가 하나 갖고 남은 식구 셋한테 하나씩 건네며 말했다.

이전 열쇠는 내게 주고 이제부터는 이 새 열쇠로 대문을 열어야 해.”

남은 식구 셋에는 지난봄에 장가가면서 분가한 아들애도 포함돼 있다. 아들애는 옆 동네 아파트에 살면서 한 달에 두어 번 우리 집에 들른다. 그렇게 해서 내 손 안에 이전 대문 열쇠 네 개가 모였다. 이것들을 방치했다가는 실수로 멀쩡한 잠금장치나 망가뜨릴지 모른다. 철저히 폐기해 버리는 일에 나서야 하는데 왠지 망설여졌다. 미련일까? 결국 책상 위에 놓고 기념사진부터 찍었다.

사진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다.

아들애가 단짝 친구와 군대를 같이 갔다 온 일이 떠올랐다. 둘이 한 날 한 시에 해경에 자원입대했는데 훈련을 받은 뒤 각기 다른 부대로 배치돼 2년 가까운 복무를 하고는 제대하는 날 다시 해경본부에서 만나 함께 전역신고를 한 것이다. 이전 대문 열쇠들이 20여 년 전 같은 날 우리 가족들에게 나눠진 뒤 20년이 지난 오늘 다시 이 자리에 그대로 모인 것과 하나도 다를 바 없지 않나? 굳이 다른 점을 찾는다면 우리 아들애와 친구는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데 2년이, 이전 대문 열쇠들은 20여년이 걸렸다는 시간 차일 것 같았다. 맙소사, 고작 2년에 불과한 인간사에 비해 그 열 배 넘는 20여년이라는 이전 대문 열쇠들의 기나긴 인연!

새삼 놀라운 것은, 강산이 두 번 넘게 변하는 세월에도 우리 네 가족 중 한 사람도 이 열쇠들을 잃지 않고 잘 간직해 왔다는 사실이다. 조금씩 성격이 다른 가족들이지만 대문 열쇠를 소중히 여기는 일 같은, 어찌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보수적인 면을 지녔다는 점에서 공통됐다는 게 아닌가.

그럼 이 열쇠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저런 상념 끝에 폐품으로 버려야 할 것들에 자신이 없어졌다.

20여 년 소지(所持) 기념으로 안방 장롱 서랍에 보관할까? 아니다. 그러다보면 집안이 폐품더미처럼 될 듯싶다. 현재도 별로 쓰일 일도 없이 자리차지나 하는 집 안의 물건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서가에 남은, 우리 애들이 중고등학교 시절에 보던 참고서나 만화책들이 그렇다. 층계 밑 작은 창고 안은 또 어떤가? 눈 내린 날 차바퀴에 걸겠다며 사다 놓은 체인이 20년 넘게 녹슨 채로 있다. 차의 흠집을 해결한다며 사다 놓은 작은 페인트 용기도 여럿이다. 이런 물건들도 정리 못했는데, 이전 열쇠를 보관한다고?

하물며 황혼을 바라보는 나이에 용도 잃은 물건을 보관한다는 것은 전혀 쓸데없는 짓이다. 멀리 내다 버려야 한다.

기념 촬영까지 마친 이전 열쇠 네 개를 애써 외면하고는 TV를 켰다. 국정농단의 최순실이 25년 형을 구형받고는 아아아악!’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는 뉴스 뒷얘기가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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