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전화번호가 액정화면에 떠서 얼떨떨한 채로 수신에 응하자 낯선 이가 내 이름을 확인하더니 말했다.
“2018년도 퇴비 배달 건으로 전화 드렸습니다.”
순간 내 눈앞에 파란 싹들이 돋기 시작하는 우리 밭 봄 풍경이 선하게 떠올랐다. 그가 이어서 말했다.
“신청하신 퇴비가 백 포대 맞습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왜 3월에 퇴비를 받으신다고 하셨습니까? 대개 2월에 퇴비들을 받거든요.”
“예에,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 밭으로 가는 길이 산 밑이라 그늘져서 눈이 다른 데보다 늦게 녹는 편이거든요. 괜히 그런 길에 퇴비 트럭이 들어왔다가는 바퀴가 미끄러지고 난리가 납니다. 그래서.”
“잘 알겠습니다. 제가 3월 들어 다시 전화 드리고 찾아가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그 전화 받는 즉시 밭에 가서 기다리겠습니다.”
해마다 농사는 1월말이나 2월 초에 퇴비 배달 운송 담당자가 불쑥 거는 전화로 시작된다. 종다리가 울거나 꽃들이 피거나 하면서 농사가 시작되는 게 아니다. 퇴비 배달 담당자는 해마다 다르다. 농부가 전년도에 면사무소에 들러서, 수많은 퇴비회사 중 선택한 한 퇴비회사에서 시행하는 일이라 그 까닭은 모른다.
3월 어느 날 나는 퇴비를 가득 싣고 우리 밭을 찾아오는 트럭을 맞이할 것이다. 한반도의 위기란 이런 소소한 일상의 붕괴를 뜻하는 게 아닐까? 머지않은 3월 어느 날 퇴비 배달 트럭이 별 일 없이, 무심하게 밭에 나타나는 광경을 그려본다.
호반야생화 카페 모임에서 슬리퍼 모양의 수세미 한 켤레를 선물 받았다. 길이가 한 뼘도 안되게 앙증맞다. 고민이다. 이런 귀여운 놈을 어찌 설거지할 때 쓴단 말인가?
몹시 추운 날 오후. 햇빛들마저 공원계단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햇볕을 쬐는 것 같았다.
“시내에 있으면 시내가 안 보인다. 시내를 벗어나자 시내가 보였다”
‘1월 20일 춘천’이란 제목의 무심포토 글이다. 그런데 오늘, ‘담다디’로 유명한 가수 이상은의 ‘언젠가는’을 듣게 되었다. 노래 초입에서‘1월 20일 춘천’ 글과 같은 뜻의 노랫말이 나오질 않던가.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리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
기중기로 고충 아파트를 짓는 광경은 어린 아이가 블록을 손으로 집어 장난감 집을 만드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첨단의 건축기술이 동심과 맞닿아 있을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