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보이 월트의 기구하면서도 복잡한 인생이야기..

공중 곡예사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다시 한 번 폴 오스터에게 반하게 되었다.. 원래도 좋아했지만, 이번 책을 통해 더욱 더 좋아하게 될 수 밖에 없었다.. 공중그네를 이용하여 멋지게 날르는 곡예사가 아닌 아무런 장치도 없이, 자신의 의지만으로 하늘을 날게된 공중곡예사의 기구하면서도 복잡한 인생이야기인 <공중곡예사>에 푹 빠져 울다 웃게되었다..  

월터는 부모님은 일찍 돌아가시고 자신에겐 신경써주는 이 하나 없는 곳에서 사부 예후디를 만나  서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사랑을 배우고, 인생을 배웠다.. 처음엔 월터도 다른 미국인들처럼 흑인이면서 병신인 이솝을 무시하고, 그와는 같은 곳에선 살 수 없다고 막말을 퍼부었고, 예의라는 것을 모르는 못된 꼬마일 뿐이었다.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준 예후디 사부에게서 벗어나려고 몇 번이나 도망을 치고, 다른 이에게 마음을 열지 않던 작고, 불쌍한 소년..  

겨우 월터가 마음을 열고 예후디사부의 지도하에서 하늘을 날개되고, 흑인이지만 똑똑한 머리로 이솝이 예일대학교에 입학하게되어 어렵고 어려운 생활이 끝나간다고만 생각했을 때, 지독하게도 인종을 차별한, 자신들밖에 모르는 무자비한 사람들에 의해 겨우 마음을 연 수아주머니와 이솝을 잃게되었다. 아무런 거리낌없이, 충동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닌 살인이라는 목적을 지니고 찾아온 3K단에 의해 처음으로 자신이 마음을 연 사람들을 잃은 월터를 보며, 가족과도 다름없고, 자신의 마음을 다준 사람들을 잃은 사부 예후디를 보며 같이 슬퍼할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행복이 찾아오는 듯 했지만,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혈육에 의해 고통을 겪게 되고, 결국 예후디 사부까지 잃게되었다. 또 다시 세상에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혼자만 남게된 월트..그리고 나서 그가 끝없는 나락으로 빠지게 되는 것은 그의 탓만은 아닐 것이다. 그를 그렇게 몰고 간 세상과 사람들에 의해, 그가 그렇게 변했을 뿐.. 다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런 사람들에 물들다보니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고, 좋은 선택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월트의 인생은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어릴 때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했고, 그 나락에서 겨우 벗어났다 생각했을 때 다시 밑바닥으로 떨어지긴 했지만, 그는 다시 일어섰고, 또 다른 슬픔이 찾아왔을 때에도 그의 곁엔 그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었고, 결국 그는 자신의 어릴 적 어머니와도 같던 위더스푼 부인을 만나 안정을 찾았다.. 때론 동업자로, 때론 가족처럼, 때론 부부처럼, 때론 어머니와 아들처럼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고, 서로를 사랑하며..

<공중곡예사>는 그렇게 월트는 인생의 쓴맛, 단맛을 모두 보며, 삶에 있어 꼭 필요한 돈과 인생에 있어 꼭 필요한 사랑에 대해 배우며, 그렇게 인생을 살아가는 이야기였다.. 다같은 사람인데, 얼굴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나와는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에겐 더없이 소중한 사람을 빼앗아간 인간보다도 못한 존재인 3K단과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게된 불황과 전쟁이 일어난 혼란스러운 미국의 한 시대의 현실을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하늘을 나는 월트의 이야기 속에 그려내고 있는 폴오스터의 매력이 그대로 담겨있는 이야기.. 이제껏 내가 읽은 폴 오스터의 책 중에 최고의 감동을 주는 책이었다..

[100자평] 도나 플로르와 그녀의 두 남편 - 상

도나 플로르와 그녀의 두 남편 - 상 ㅣ Mr. Know 세계문학 55
조르지 아마두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4월

나쁜남자바지뉴와착한남편테오도루모두를사랑한플로르의발칙함에정신없이읽게되네요.

다시 만난 머더구스의 노래!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2 (완전판) - 다섯 마리 아기 돼지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원은주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9월

예전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백마산장살인사건을 읽었을때 머더구스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영국의 동요로 나에겐 너무 익숙하지 않았던 노래였었다.. 그리고 이번 다섯마리 아기돼지에도 머더구스의 노래가 등장한다,,, 역시나 모르는 노래라는 생각과 더불어 백마산장살인사건에서는 머더구스의 노래를 통해 수수께끼를 풀었기때문에 이해가 되지않는 부분이 많았지만 이번 노래는 그저 5명의 참고인 혹은 용의자를 보고 떠올린 노래였기때문에 책을 읽는데 방해가 되지는 않았다..그저 5명을 잘 묘사한 듯한 느낌이었다.. 

16년전의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5명의 참고인..그들을 보자마자 푸아로는 머더구스의 다섯마리 아기돼지란 노래를 떠올리게 된다,, 

작은 돼지 한 마리는 시장에 갔네
작은 돼지 한 마리는 집에 머물렀네
작은 돼지 한 마리는 로스트비프를 먹었네
작은 돼지 한 마리는 아무것도 먹지 못 했네
작은 돼지 한 마리는 '꿀꿀꿀' 울었네 

벌써 사건이 일어난지 16년이 지났고 범인으로 지목받은 아내 캐롤라인도 벌써 죽은지 오래이다..그런 상황에서 어머니의 무죄를 밝히려는 딸의 의뢰를 받은 푸아로는 5명의 이야기를 듣고나서 그의 회색뇌세포를 이용해 범인을 밝혀내는 이야기였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이전 책인 누명도 범인이라고 믿었던 재코가 죽은 상황에서 재코의 알리바이를밝혀주는 사람이 등장해 진짜 범인을 찾는 비슷한 내용이었는데..누명에서는 그때의 용의자 혹은 참고인들이 모두 같은 집에서 살아 긴장감이 감도는 이야기였다면 이번 다섯마리 아기돼지는 서로 혈연관계도 아니고 같이 사는 것도 아니고 같은 공간에서 범인을 찾는 것도 아닌 서편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밝히고있어서인지 긴장감이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그리고 푸아로가 다른 사람의 말꼬투리를 잡아 범인을 파악해내는 것도 그냥 괜시리 트집을 잡는 것처럼 보이고...  

처음에 언급되는 이야기나 노래를 보며 어쩌면 그들은 아무도 없었다처럼 정말 긴장감넘치는 이야기가 될 줄알았는데..약간 아쉬울 뿐이다..

외부의 공격보다 더 위험한 내부에서 자라나는 악..

마지막으로 죽음이 오다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17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원경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11월

애거서 크리스티의 대부분의 소설이 19세기 초의 모습을 그린 반면 이 책은 고대 이집트가 배경이었다. 그래서인지 익숙한 마플양도 푸아로도 헤이스팅스도 없는,,. 그리고 경찰조차도 없는 그런 생소한 시대였다. 그러나 그래서인지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도 있었다.

독살사건은 의사들의 부검을 통해 밝혀낼 수 있어으나 여기에서는 독살도 음식물에 의한 독살만 알 수 있을뿐 피부를 통한 독살은 파악해내지도 못하는 원시시대였다. 그러나 예전이나 지금이나 악한 사람은 존재해서일까? 사건의 본질은 지금과도 너무 유사하다는 것을 느꼈다. 

	"넌 이해 못해, 레니센브. 외부에서 공격해 들어오는 악은 세상이 다 볼 수 있지만, 내부에서 자라는 다른 종류의 부패도 있단다. 밖으로는 아무 티도 안 나지. 매일 매일 천천히 자라다가, 마침내 과일 전체가 썩는거야. 질병에 먹히는 거지." - 29쪽

호리가 레니센브에게 이야기 했던 것처럼, 임호테프의 어머니가 임호테프가 어리디 어린 부인을 데리고 왔을 때 경고했던 것처럼, 임호테프의 집은 내부에서부터 조금씩 썩어들어갔다.. 남편에게 끊임없이 잔소리하는 사티피와 사티피의 말을 무시하는 카이트와 임호테프의 아들 야흐모세와 이파리, 소베크, 그리고 다름 사람들에게 이죽거리는 얄미운 헤네트의 모습은 언제 불란이 일어나도 이상할 것 없었다.. 거기다 젊디 젊은, 아름다운 임호테프의 첩 노프레트가 착한 사람이 아닌 영악하고 사나운 성질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 머리를 잘못 써, 결국엔 죽게 되었다.. 사고사로 보이는 살해.. 그리고 이어지는 집안에서의 살인사건들..

몇권의 애거서 크리스티 책의 마플양을 접해서인지 책을 읽어나감에 따라 범인을 살짝 눈치 챈 이야기였고, 가족들 중의 누군가도 범인을 처음부터 알고 의심을 했다. 하지만 그 의심을 스스로 믿지 못한 채 여러번의 살인이 이어질 때까지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다니.. 만약 푸아로였더라면 어느 순간 범인에게 눈치를 주고, 그 범행을 막았을텐데.. 그저 방관아닌 방관으로 수많은 죽음으로 이어졌다는게 안타까울뿐이었다..

코끼리는 오랫동안 기억한다..

코끼리는 기억한다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59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근희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5월

16년전 남편을 죽인 범인으로 지목되어 감옥에서 죽은 엄마 캐롤라인의 무죄를 밝히려는 딸의 이야기인 <다섯 마리 아기 돼지>에 이어 이번 <코끼리는 기억한다>도 예전의 사건을 들춰내는 이야기였다..역시 과거를 밝히는 탐정은 에르퀼 푸아로!! 이제 에르퀼 푸아로도 많이 늙어 같이 일하던 사람들은 더이상 남아있지않은 상태였다..그래도 에르퀼 푸아로를 기억하는 사람들에 의해 조언을 주는 상태!!  

올리버부인은 파티에서 뜬금없이 자신의 대녀의 부모의 이야기를 꺼내는 불쾌한 사람을 만난다.. 그것도 좋은 얘기가 아닌 남편이 아내를 죽이고 자살했는지 아니면 아내가 남편을 죽이고 자살했는지 물어보는 그런 여자를.. 솔직히 그 여자에게 자신의 대녀의 이야기를 하고싶지는 않지만 자신도 모르는 비밀을 알고자 지난 기억을 파헤치기 시작하는 올리버 부인..그리고 자신의 힘으로는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에르퀼 푸아로에게 도움을 청하여 같이 사건을 알아내는 이야기였다..(알고보니 그 부인은 자신의 아들과 결혼하려는 실리아의 트집을 잡아 결혼을 못하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었으니..그것도 아들이 자신의 생모에게 받은 유산이 아까워서 말이다..그러고 보면 처음 볼때부터 기분나쁜 여자라고 생각한 올리버 부인의 안목은 정말 대단한 듯하다..) 

솔직히 오리엔트 특급살인사건이나 애크로이드경의 죽음의 경우 살인이 일어나고 즉각 반응하는 탐정의 모습이기에 조금은 흥미로운 추리과정이 돋보이지만.. 이렇게 십몇년이 지난 사건에 대해 조사하는 이야기는 아무래도 긴장감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살인의 당사자들이 아닌 그저 사건에 대해 기억하는 사람들을 찾아내 모든 이야기를 들어야되기에 탐정이 직접 찾을 수 있는 단서도 없는 상태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듣는 이야기가 세세하게 우리에게도 전해지기에 어느정도 범인의 윤곽이 밝혀진달까? 이번 작품에선 푸아로가 네개의 가발에 연연하고 쌍둥이였던 몰리와 돌리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 순간 나도 사건의 비밀을 알게 되어버렸다..완벽히 사건의 진실을 깨달은 것은 아니기에 모든 사건이 해결되었을때에는 그렇구나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눈치챈게 있어서인지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다..그래서 재미가 약간은 반감되기도 했다.. 

그래도 책 제목대로 코끼리는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난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코끼리가 기억력을 좋다는 것을 알았는데..올리버 부인을 비롯한 많은 늙은 부인들이 "코끼리는 기억한다"라는 말을 할때마다 그래서 책제목이 이거구나라는 생각도 하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