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다 아는 얘기들을 소설로 영화로 만드는 일은 확실히 모험이다. 익숙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주지 못하면 권태롭게 될 것이고 그 권태를 피하고자 너무 새롭게 만들어 버리면 그 낯설음 때문에 또 독자와 관객들로 부터 기피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동화들이 남녀들의 성역할이나 인종 그리고 계층에 대해 얼마나 이데올로기적인가를 보여주기 위해 거의 전복적으로 동화를 다루려고 했던 애니메이션 '슈렉'조차 사람들에게 익숙한 동화 속 주인공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크게 바꾸지 않는 선에서 살짝 비틀기만 시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전형성과 새로움 사이에 아슬아슬한 조율이 익숙한 이야기를 다시 새롭게 빚어내는 소설가와 영화 감독에게 있어서 하나의 과제가 되는 셈이다.

 

 여기 유명하다는 것으로 치자면 둘째 가면 서러워 할 이야기가 하나 있으니 그게 바로 '백설공주'이다. 백설공주는 신데렐라와 더불어 거의 유명세에 있어서는 상벽을 이루지만 어쩐 일인지 신데렐라 보다는 실사 영화로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 신데렐라는 드류 베리모어 주연의 영화 '에버 에프터'에서 동화에서 처럼 당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쟁취하려는 능동적인 신데렐라로 한 번 재해석이 이루어진바 있고 힐러리 더프 주연의 영화 '신데렐라 스토리'는 아예 배경을 현대물로 바꿔서 '에버 애프터'와 비슷하게 적극적인 캐릭터로 신데렐라를 해석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백설공주는 아직 그런 재해석이 전무하다. 아마도 그림 형제의 원작을 거의 그대로 수용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이 워낙에 걸작이어서 재해석 조차 시도하기가 두려웠던 것일까? 아무튼 그 진짜 이유는 모르겠지만 신데렐라와는 달리 백설공주는 별다른 신통한 재해석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는데 드디어 이번에 백설공주를 새롭게 재해석하는 소설과 영화가 나와 흥미를 끈다. '더 셀'로 유명한 감독인 타셈 싱의 '백설공주'와 루퍼트 샌더스의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이 바로 그것이다.(이외에 디즈니에서도 '스노우 앤 더 세븐'이란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중에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은 이른바 '원소스 멀티 유징'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 영화와 소설이 나란히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번에 나온 '스노우 화이트 앤 더 헌츠맨'은 바로 그 소설판의 한국어 번역본이다. '원소스'이기 때문에 물론 영화와 스토리 라인은 크게 다르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와 소설 모두에서 보여지는 스노우 화이트, 즉 백설공주와 더 헌츠맨, 즉 처음 여왕의 명령으로 숲으로 백설공주를 데려가 죽이려고 했던 사냥꾼은 이전의 모습과는 분명 많이 달라졌다. 백설공주는 더 이상 원작대로 여왕이 자신이 죽일 때까지 넋놓고 기다리지 않으며 사냥꾼은 아예 한 번 등장하는 조연이기를 거부했다. 즉 이 새로운 백설공주 이야기에서 백설공주를 여전사로 성장시키는 스타워즈로 말하자면 '오비원 캐노비'가 된 것이다.

 

 말하자면 드디어 백설공주에 있어서도 신데렐라에서 이루어졌던 재해석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도 기존 이미지를 거의 전복시킬 정도로...

 

  이러한 백설공주의 이미지는 그러나 대중들이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래서 '스노우 화이트'는 현명하게도 여왕 캐릭터를 전혀 다르게 설정함으로써 낯설 수 밖에 없는 백설공주의 여전사로서의 이미지를 독자와 관객들에게 그럴 수 밖에 없는 필연적 사정을 부가하여 감정적 공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별 무리없이 수용하게 만든다. 즉 그림형제의 원작이 세계 최고의 미모에 집착한 여왕의 악행이라는 그렇게 개인적 차원의 이야기였다면 이번에 새로 나온 '스노우 화이트'는 여왕이 다스리는 어둠 제국의 백설공주의 모국 점령이라는 그렇게 제국군 대 공화국으로 서로 싸웠던 스타워즈 처럼 집단적 차원의 이야기로 만든 것이다. 여전히 개인적 차원의 이야기였다면 여전사가 되어버린 백설공주의 모습에 위화감이 들었겠지만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한 나라와 나라 사이의 복수를 향한 싸움이라면 백설공주가 아무리 칼을 들고 전장을 초한지의 번쾌처럼 누벼도 무리없이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라도 여왕은 원작보다 훨씬 더 강대한 마법사가 되어야 했다. 이것은 또한 여전사가 된 백설공주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수용하게 만드는 두번째 이유가 된다. 이제 여왕은 독빗과 독사과를 만들기 위해 커다란 솥에다 이것저것 약물을 혼합하던 전통적 마녀의 모습은 사라지고 그런 과정이 없어도 그저 손짓 하나로 강력한 마법이 가능한 모습이 된 것이다. 하지만 능력이 확장되면 그 힘의 보충 또한 보통의 방법으로는 되지 않는 것이어서 이번의 여왕은 자신의 강력한 마법을 유지하기 위해 늘 어린 여자 아이의 생명력을 흡수한다. 마치 어린 여자들의 영혼과 생명력이 여왕에게 있어 건전지 같은 존재가 된 것이다. 이렇게 흡혈귀의 외양마저 둘러쓴 여왕은 더욱 공포의 존재가 되고 때문에 백설공주도 거기에 걸맞게 강력해져야 한다고 독자와 관객들은 생각하기에 더욱 여전사로서의 백설공주 모습을 무리없이 수용하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아슬아슬한 조율에 성공했다고나 할까. 때문에 여전사로서의 성장을 위해 사냥꾼의 존재가 중요해질 수 밖에 없고 그렇게 사냥꾼과 백설공주는 다스베이더에 맞서 싸웠던 오비원캐노비와 루크 스카이워커와 똑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와 하는 이야기이지만 사실 이 '스노우 화이트'와 스타워즈는 여기에서 보듯 사실상 이야기가 근본적인 측면에서 똑같다.  악령이 출몰하는 검은 숲은 또한 백설공주의 보호처가 되기에 제국의 역습으로 공화국 기지를 버리고 다른 먼 별로, 사람들이 가지 않는 행성으로 달아날 수 밖에 없었던 루크 스카이워크와 똑같고 또한 바로 그 행성에서 자신의 새로운 스승인 요다를 만나게 되는 것도 검은 숲에서 백설공주와 사냥꾼이 만나게 되는 것과 똑같다.그래서 아마도 이 영화와 소설이 한계를 가진다면 이 작품들의 원본이 사실상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이기 때문에 가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스타워즈는 사실 구로자와 아키라의 '숨은 요새의 세 악인'을 많이 가져왔다. 결국 이야기는 돌고 도는 것이라는 걸 스타워즈 케이스는 잘 보여주고 있다.)

 

 원작의 전형성과 새로움을 아슬아슬하게 조율시키려는 시도가 결국은 자신의 고향을 원작이 아니라 전혀 다른 원작에다 삼은 셈인데 그럼 결국 스타워즈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새로운 아버지 찾기의 이야기였다. 스타워즈는 70년대에 나왔다. 그것도 초반이다. 70년대 초는 지긋지긋한 베트남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고 그 때문에라도 국내적으로 60년대에 일어난 여러 극심한 갈등들을 풀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 곧 다가왔으므로 그 갈등을 푸는데 시간을 그리 많이 쓸 수는 없었다. 그러한 무의식적인 초조함, 뭔가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강력한 권위의 등장에 대한 희구. 바로 그러한 것들이 낳은 것이 '스타워즈'였다. 그러니까 다스베이더는 바로 60년대의 미국 자체를 상징한 존재였다. 50년대의 이상적인 아버지의 모습은 60년대를 거치면서 악의 아버지 다스베이더가 되었고 그 아버지가 가져온 온갖 혼돈을 아들이 해결한다는 그런 이야기가 바로 '스타워즈'였다. 그리고 그 해결 방법이 바로 좋은 아버지가 그 나쁜 아버지를 대체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스타워즈는 사실 아버지의 권위를 강력히 희망하는 영화다. 혼돈된 상황을 단번에 정리해줄 그런 존재로서 아버지를 요청하는 것이다. 다양성을 배려하며 서로 존중하는 가운데 합의하기 보다는 강력한 부권으로서 일시적으로 조정해버리기를 원하는 것이다. 제다이라는 초월적 존재들이 등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스노우 화이트'는 이 '스타워즈'의 여성적 버전이라 할 만하다. 차이가 있다면 대치하는 주요 캐릭터가 여자라는 사실 뿐이다. 그러니까 혼돈을 정리해줄 강력한 부권의 도래를 바라는 것은 '스노우 화이트'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스노우 화이트'는 내내 되찾고 싶은 나라를 '아버지의 나라'라고 부른다. 그녀에게 있어 국가를 다시 찾는 것은 아버지를 다시 찾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왕이 첫날밤에 단검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죽여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아버지의 죽음과 더불어 백설공주의 나라는 여왕의 손에 넘어가고 지옥이 되어버렸다. 즉 나쁜 아버지 대신에 나쁜 어머니가 있고 그 어머니가 어지럽혀 놓은 세상을 다시금 아버지를 통해 복원하겠다는 것이 바로 '스노우 화이트'의 이야기인 것이다. 때문에 사냥꾼이 메인 캐릭터가 되었다. 그가 유사-아버지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는 죽어버린 아내를 다시 살려주겠다는 여왕에 약속에 따라 백설공주를 죽이기 위해 그녀가 은신해 있다는 검은 숲으로 왔다. 아내의 죽음으로 그는 거의 죽은 듯이 살았는데 바로 이 모습에서 그는 백설공주의 죽어버린 아버지의 모습과 겹쳐지며 그녀의 아버지 자리를 대체할 것임을 미리 암시한다. 결국 그 암시대로 그는 백설공주의 스승, 그렇게 아버지의 위치에 오르며 그녀의 나라이자 곧 자신의 나라이기도 한 왕국을 다시금 되찾을 수 있도록 새로운 정체성을 그녀에게 습득시킨다. 그리고 그 아버지의 인도에 따라 결국 백설공주는 질서를 확립하게 된다. 결국 '스타워즈'와 동일한 궤적을 그리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개그 콘서트의 '불편한 진실'의 사회자 멘트 그대로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이러는 걸까요? 왜 지금 백설공주를 새로이 재해석한 '스노우 화이트'가 하필이면 '스타워즈'의 모습을 취하는 것일까요?"

 

  하지만 이유는 상상의 몫에 맡길 수 없다.

 거기엔 바로 드러나는 중요한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혼란기였던 70년대 초와 지금 이 시기의 미국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공통점이 말이다. 즉 이 둘은 모두 이 혼란스러운 시기를 빨리 빠져나가고 싶다는 대중들의 무의식적 욕망을 반영한 결과인 것이다. 스타워즈가 그렇게 당시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스타워즈가 정말로 당시 미국 대중들이 바라마지 않았던 것을 상상적으로 충족시켜 주었기 때문이었다. '스노우 화이트'도 이와 마찬가지다. 무언가 빨리 해결을 바라는 조급함이 있다. 일례로 소설에서 한 공작은 운좋게 여왕이 학살에서 살아남아 왕국으로 부터 도망쳐 자신의 영지에다 저항의 거점을 마련한다. 그의 아들은 백설공주와 소꿉친구로 사실 그 아들은 백설공주와 '에버 에프터'를 이루는 왕자의 역할이다. 하지만 정작 백설공주가 천신만고 끝에 공작에게 찾아오자 공작은 백설공주의 명예를 위해 싸우거나 왕국 수복을 하지 않을 것이며 이대로 계속 지낼 것이라 선언한다. 하지만 백설공주는 자신은 공주이며 국왕이 없는 지금 그의 신분을 이어받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서 왕국을 되찾을 의무가 있으며 그것을 공작에게 명령한다고 하여 여왕과 전쟁에 돌입한다. 바로 이 논쟁이 '스노우 화이트'가 어디에 서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신속한 해결. 바로 그것을 바란다는 것을.

 

 

 

 

 

 

 

 

 

 

 

 

 

 

 

 

 

 

  '스타워즈'도 '스노우 화이트'도 똑같이 그런 것을 바란다. 그리고 그것은 혼란스러운 시대를 빨리 벗어나고픈 대중들의 욕망이 반영된 결과였다. 여기서 우리가 떠올리는 것은 바로 홉스의 말이다. 그것도 홉스가 주권에 대해 내렸던 정의(definition)이다. 홉스의 주권은 우리가 알고 있는 주권과 다르다. 주권에 대해 홉스는 이렇게 말했다. 주권이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힘이라고. 바로 그 예외상태란 전쟁을 의미한다. 즉 주권이란 홉스에 의하면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힘이다. 백설공주는 말하자면 바로 이 홉스의 주권을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왜 전쟁인가? 그것은 갈등과 분란을 강력한 힘으로 조기에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강력한 아버지, 리바이어던의 권위를 빌려서 말이다.

 

  이제 종합해서 말하자면, 백설공주의 재해석이라고만 생각했던 '스노우 화이트'는 사실은 전혀 다른 징후를 드러내고 있었다. 말하자면 지금 대중들이 뭔가 조급증에 걸렸으며 그들은 이 상황을 빨리 해결해 줄 강력한 주권의 도래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이다. 바로 그 희구의 징후를 드러내기 위하여 백설공주는 자신의 원본이 아니라 비슷한 시기 강력한 염원을 담았던 작품인 '스타워즈'의 후예가 되기로 자처한 것이다.

 

 이것은 위기의 신호가 아닐까? 스타워즈는 70년대의 보수로의 회귀라는 강력한 흐름의 신호탄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어쩌면 동일하게 홉스적 주권의 도래를 바라고 있는 '스노우 화이트' 역시도 그 비슷한 징후가 될지 모른다. 이후의 미국이 다시금 강력한 보수주의로 회귀할 것이라는...

 (어쨌든 기우인지 아닌지는 때가 되면 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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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7-04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에서 페이퍼 아주아주 자세하게 읽었는데(오늘만큼 헤르메스님의 글을 자세히 읽은 적도 없네요ㅎㅎ) 아주 좋아요. 소개해주신 영화도 참 매력적이고 글도 탄탄하고, 좋고. 내용을 모르다보니 그저 좋다고만.. ㅋㅋㅋㅋ

헤르메스님 이제 완전한 여름이 다가온 것 같습니다. 습한 열기가 훅훅 불어오네요. 시험이 끝나고 나서는 책에 빠져서 더위를 잊어야 겠습니다. 시험이 이틀 남았네요. 시험이 끝나려면 일주일 가까이 남았네요. 책을 며칠 동안이네 안 읽었더니 참, 힘드네요. 짜증나고.

이진 2012-07-04 21:34   좋아요 0 | URL
그나저나, <디너> 리뷰 언제 올려주실 거예요?
헤르메스님의 <디너> 리뷰 얼른 보고 싶어요.
헤르메스님 리뷰 읽고 책 읽으려고 준비 중이예요! ㅋㅋ

ICE-9 2012-07-06 21:25   좋아요 0 | URL
아! 그러셨군요.
흑흑... 저의 미천한 리뷰를 기다려주셨다니 정말 감격이에요...
소이진님을 위해서라도 빨리 써야 하는데...
왜 이리 시간이 안 나는지... 아무튼 시간이 나는 대로 얼른 쓰겠습니다.
그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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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6월이다.

 올 봄 이사할 때만 해도 그리도 멀리 느껴지던 계절이었는데

 어느새 성큼 다가와버린 듯 하다.

 하긴 무더위는 이미 시작되어 버렸지만...

 이런 나날에 무엇보다 나를 살맛나게 하는 건 역시 장르소설이다.

 해서 이번 신간 추천 페이퍼는 오로지 장르에 대한 편애 만으로

 채워볼까 한다.

 

 

 

  온다 리쿠가 요네자와 호노부의 최고의 작품이라 평가하기도 했던 '부러진 용골'이 드디어 출간되었다. 지난 겨울 이 작품의 수상 경력을 보았을 때 부터 기다리던 작품이었다.

 

 제64회 일본 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 

 2012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

 2012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 1위.

 2012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2위

 29011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10 2위... 등등

 작년은 거의 '부러진 용골'의 해였다고도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 화려한 수상 경력도 경력이지만 마법이 횡행하는 판타지적 세계를 배경으로 '추리'라는 본격을 가져온 설정이 참으로 독특해 보인다. 전작 '인사이트 밀'이나 '덧없는 양들의 축연'에서 거의 장르를 가지고 마음대로 노는 듯 해 보였던 호노부인지라 그가 이 작품에서는 또 어떻게 판타지와 본격 추리를 주무를지 자못 기대가 크다. 물론 판타지와 정통 추리의 혼용은 호노부가 처음은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마술사가 너무 많다'로 유명한 랜달 개릿이 이미 제대로 보여준 바 있으니까. 하지만 개릿은 서양 작가고 호노부는 동양 작가인지라 같은 세계를 형상화한다지만 동양인만의 독특함이 있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이 무더위에 가장 벗하고 싶은 작품이다.

 

 

 

 

  네델란드 작가하면 얼른 떠 오르는 것은 '천국의 발견'으로 유명한 하리 멀리쉬이다. 장르 소설로 보자면 역시 작년엔가 서극이 유덕화를 주인공으로 영화로 만들기도 했던 당나라 때 실제로 유명했던 판관 디 공을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를 내 놓은 로베르토 반 훌릭이다.

 '디너'의 작가 헤르만 코흐는 이번에 새로이 소개되는 네델란드 작가이다. 모두 여섯 편의 작품을 썼다고 하는데 아직 단 한 편도 소개된 적은 없으므로 '코흐'는 이 작품을 통하여 처음 만나는 것이다. 아이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중대한 결정을 내리려 그 부모들이 모여 저녁식사를 한다는 내용인데 에라스무스나 스피노자에서 보듯이 네델란드 특유의 회의주의가 도덕적 딜레마와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 대해선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지 궁금하다. 무엇보다 요리가 나오는 작품을 좋아하기에 선택한 소설이기도 하다. 맛있는 요리들의 향연이 펼쳐진다면 무더위마저 잊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입가심용으로 맥주는 필수겠군...) 

 

 

 

 

 펠레빈의 '벌레처럼'을 읽은 사람이라면 펠레빈의 이 책을 그대로 지나치기란 참으로 어려울 것이다. 오래전에 읽은지라 희미한 기억이긴 하지만 카프카의 변신 저리가라 할 정도로 곤충과 인간의 경계를 말끔히 지워버리면서 소련 붕괴 후의 러시아를 그렸던 그 소설은 분위기와 독특한 문체만으로도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오몬 라'는 그런 그의 첫 작품이라고 하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작품이다. 그 첫 발자욱이 어떤 자국을 남기는지 정말 궁금하다. 

 

 

 

 

 

 

 

  이 작품은 일단 픽션이 아니다. 논픽션이다. 그러니까 상상의 허구적 세계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진짜 존재하는 사실의 세계를 그린다. 그렇게 1960년대 미해결로 남은 12개의 괴이한 사건들에 대해서 기록한 책이 바로 이 '일본의 검은 안개'인 것이다. 1960년대는 68혁명이나 흑인해방운동이나 히피즘 등 전 세계적으로 이데올로기들이 첨예하게 들끓던 그런 시기였다.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전공투로 대표되는 좌파와 보수 우익의 전선으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마츠모토 세이초는 바로 그 시기를 12개의 해결되지 못한 그렇게 검은 안개로만 남은 사건들을 통하여 바라보는 것이다. 기자 출신의 사회파의 거장 답게 그는 이 모든 사건들 집요하게 추적하고 그리고 해결을 위한 나름의 가설을 세운다. 이 모든 것은 또한 혼돈으로 점철되는 60년대의 일본 자본주의를 해부하여 진실을 포착하기 위한 시도이기도 했다. 세이초의 작품을 정말 좋아하는 나이지만 이런 이유로 더욱 읽고 싶은 작품이다. 그가 그려내는 혼돈으로 얼룩진 시대의 공기, 그 필치 아래 압축된 밀도 속에 깃들어있을 서로 충돌하는 정념들의 아우성이 정말로 궁금하다.

 

 

 

 

  권여선 작가의 15년만의 작품이다. 레가토는 음악 용어로 둘 이상의 음을 부드럽게 이어서 연주라하는 뜻이다. 아마도 소설에서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삶이 연결되어 있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듯 하다. 그렇게 이 소설은 30년전의 과거 그러니까 80년대를 호출한다. 그런 의미에서 천운영 작가의 '생강'과 비슷한데 고문기술자의 내면을 경유하여 과거와 오늘을 레가토로 보여주었던 '생강'과 달리 이 작품은 정확히 그 반대에 위치하고 있는 운동권 써클을 통해서 레가토를 연주한다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괴물로 살았던 자와 인간으로 살려고 했던 자들의 양쪽 시선 모두를 아우르며 80년대를 다시 한 번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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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6-05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 정말정말 이상한것 있죠. 이번 신간 추천 페이퍼에 들어있는 책들은 왠지 눈에 다 익어요. 권여선의 <레가토>는 벌써 몇년전에 본 책같고, 세이초의 <일본의 검은 안개>는 두세달 전에 본 책 같아요. 다른 분들 소설 추천 페이퍼 읽으면서 의아해했었는데 헤르메스님도 이렇게 꾸미셨군요. 나도 추천 페이퍼 쓰고싶다. 그땐 참 귀찮았었는데, 지나서야 후회가 되네요. 잘 쓸걸.

ICE-9 2012-06-08 11:23   좋아요 0 | URL
와! 소이진님 왠지 정말 오래간만인 것 같아요.^ ^
소이진님 눈에 다 낯익어 보인다는 건 이 책들이 모두 5월달 신간들이라서 그럴까요. 그만큼 시간이 빠르게 흘러서 오래도록 본 것 처럼 느껴지는 것일까요? 아니면 표지 때문에? 음, 저도 궁금해 지는데요.^ ^ 이번 달은 집계를 해보니 저번과는 달리 책들이 꽤 고루 표를 받았더군요. 그래서 정말 어떤 책이 될 지 모르겠더라구요. 소이진님의 페이퍼도 볼 수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저도 참 아쉽네요. 다음엔 꼭 보게되기를 바랄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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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따라 밤이 왜 이리 무덥게 느껴지는 것일까요?

 불면의 눈으로 바라봐서 그런가, 베란다 창문 밖 덩그맣게 뜬 달이

 참으로 고독해 보입니다.

 

 불면은 불면이고 허기는 또 허기인지라

 라면을 끓여먹다가 손가락을 데었습니다.

 따끔한 통증이 오늘은 그냥 넘기리라 생각했던

 신간 추천 페이퍼를 다시금 잡게 하는군요.

 때로는 이상한 인과관계로 일상은 지속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무튼 11기의 첫 신간추천페이퍼를 쓰게 되었습니다.

 얼른 신간을 검색해보니 4월달은 발간수가 그리 많지 않은 가운데

 그래도 반가운 작품들이 여럿 눈에 띄었습니다.

 

 

 

 

 

 

 돈 윈슬로의 '개의 힘'이 그 중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작품입니다.

2005년에 나온 이 작품은 돈 윈슬로가 완성하는데 취재와 집필까지 해서 모두 6년이나 걸렸습니다. 그 긴 시간이 투자된 만큼 재미도 재미이지만 지금도 잔혹함으로 종종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곤 하는 맥시코의 마약시장을 이 소설만큼 제대로 형상화낸 작품은 없다고 평가받을 만큼 압도적인 현실감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제르미날'의 에밀졸라나 '레미제라블'의 빅토르 위고 처럼 때로는 소설이 그 어떤 역사서 보다도 당대의 사회를 더 적나라하게 보여주곤 하는데 바로 이 '개의 힘'이 바로 그와 같은 소설이 아닌가 합니다. 사회 고발 스릴러의 대표작으로 기꺼이 일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다음에 들어온 것은 발라드의 '물에 잠긴 세계'입니다.

개인적으로 출간이 무척 반가운 책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영화 '크래시'의 원작자로 그리고 어린 시절 일본 포로수용소의 체험을 바탕으로 쓰여져 결국 스필버그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던 '태양의 제국' 원작자로 유명한 J. G 발라드의 소설이었으니까요. 원래 그는 SF 작가였습니다. '물에 잠긴 세계'는 1962년에 나온 그의 두번째 작품입니다. 당시에는 아직 지구 온난화에 대한 개념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발라드는 특유의 상상력으로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 빙하가 녹게됨으로써 지상의 도시들이 서서히 잠겨 버리는 세계의 종말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후 이 월드 연작으로 64년에 BURNING WORLD를  66년에 CRYSTAL WORLD를 2년 간격으로 꾸준히 발표하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후에 이 세 작품을 묶어 지구 종말 3부작이라 부르고 많은 이들이 발라드의 대표작으로 꼽았습니다. 때문에 발라드를 좋아하는 이라면 지나칠 수 없는 작품이었는데  이 중 우리나라에는 유명한 그리폰북스로 '크리스탈 월드'가 한 차례 출간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3부만 출간되어 그 시작을 볼 수 없어 더욱 애태우게 만들뿐이었는데 이제야 비로소 출간되었네요. 앞으로 3부작의 남은 작품들도 모두 출간되길 기원해 봅니다.

 J.G 발라드는 2009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죠.

 뒤늦었지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조이스 캐롤 오츠는 초기의 대표작 '그들' 때 부터 실제 인물을 모델로 소설을 써왔습니다. 그렇게 오츠는 현실이 어떻게 문학으로 걸려지는가 혹은 과연 문학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가를 작품을 통해 탐구해왔었죠. 얼마전에 나온 마를린 몬로를 모델로 한 '블론드'도 이러한 오츠의 작가의식을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츠는 그것을 통해 오히려 문학의 한계를 발견하고('그들'은 단적으로 현실 앞에서 문학은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입니다.) 그 한계를 인정하는 가운데 그대로 문학이 할 수 있는 영역을 타진하며 나아가는 작가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 '좀비' 역시도 그러한 오츠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역시나 실제 연쇄살인마 제프리 다머를 모델로 쓰여졌으며 그 사실이 의미하는 것 전부를 문학적으로 다양한 방면으로 살펴보는 작품입니다. 어둠을 그려내는데 더 탁월한 빛을 발하는 오츠의 매력이 유감없이 드러난 작품이기도 합니다.

 

 

 또 하나의 가장 출간이 반가운 작품이로군요.

 세라 워터스의 빅토리아 시대 3부작을 이루지만 유일하게 출간되지 않았던 '끌림'이 드디어 나왔습니다. 정말 얼마만에 '벨벳 애무하기', '핑거스미스'와 더불어 빅토리아 시대 3부작이 완성을 보게 되는 지 모르겠네요. 하필이면 딱 중간이 빠져있던지라 더욱 애태웠었는데 이제야 그 목마름을 해갈하게 되나 봅니다.

 

 

 

 

  

  마지막은 존 어빙의 2009년도 작품인 '트위스티드리버에서의 마지막 밤' 입니다.

어빙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된다는 것이겠죠. 또한 그는 무엇보다도 '작가로서의 자신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늘 염두에 두고 있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작가로서의 자의식은 데뷔작 '가프가 본 세상'에서 이미 투영되고 있는데 그 때문에 그의 작품에선 성장이 종종 주된 테마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테면 '사이더하우스'가 그 대표적인 경우겠죠. 이 '트위스트리버에서의 마지막 밤' 역시도 '사이더 하우스'와 비슷합니다. 자신의 작가로서의 자의식이 반영된 '성장'을 다루고 있으며  '사이드 하우스' 처럼 그 성장을 '부자관계'를 통해 다루고 있으니까요. 사실 알고보면 어빙이야 말로 작가는 무엇보다도 얼레에 매인 연 같은 존재임을 말해주는 작가가 아닌가 싶어요. 방식은 매번 다르지만 한결같이 천착하는 그 주제가 이번에는 어떤 식으로 표현되어질 지 정말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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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tat 2012-05-04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 포스팅에는 어떤 책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쟁쟁한 책들이 많네요. 개인적으로는 발라드의 책을 가장 기대하고 있습니다. 시공사 그리폰북스의 크리스탈 월드는 정신나간 중고가로 읽을 엄두도 못 냈었는데, 문학수첩에서 나머지 지구종말 시리즈 두 편도 출판할 계획이라니 더욱 반갑습니다. 끌림도 엇그제 교보문고에서 봤는데 이쁘장하게 잘 나왔더군요. 끌림이 시리즈 두 번째라고 하시니 첫 번째 시리즈부터 읽어 봐야겠네요. 벨벳이 첫번째고 핑거스미스가 세 번째 인가요? 아님 반대인가요? ^^: 조이스 캐롤 오츠의 작품은 이번 좀비를 통해서 처음 접했는데, 제 취향은 아닌가 봐요. 책소개에 박찬욱 감독 얘기가 나와서 솔직히 더 관심을 갖고 나오자 마자 읽었습니다. 박 감독님이 추천한 책을 읽고 실망한 적이 거의 없었는데, 좀비는 좀 아니더군요. 이 분이 실제 모델을 주인공으로 글을 쓰신다고 하셨는데, 그럼 다른 작품들도 이런 스타일인가요? 그렇담 이 분 작품은 제 취향하고는 차이가 좀 있을 거 같네요.

ICE-9 2012-05-05 22:2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Sean님 이렇게 들러주시고 또한 댓글까지 남겨주셔서 반갑고 또 감사합니다. 와! Sean님도 발라드의 책을 가장 많이 기대하시는군요. 저 역시
발라드의 작품들을 좋아하는지라 이번에 '물에 잠긴 세계' 발간은 정말로 깜짝 놀랄만한 일이었습니다. 이번을 계기로 3부작이 다시금 평가받게 되었으면 하네요. 세라워터스의 빅토리아 시대 3부작은 벨벳 애무하기가 첫번째이고 핑거스미스가 가장 마지막 작품입니다. 핑거스미스는 BBC에서 드라마로도 만들었는데 작품의 분위기와 주제를 정말 잘 살려놓았기 때문에 소설을 읽기전에 한 번 감상하시면 이 삼부작이 대강 어떤 작품인가 잘 알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네, 대부분 조이스 캐롤 오츠의 스타일은 실제 삶을 모델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사람들이 들어가기 어려워하는 어둠이나 고통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가감없이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걸 일종의 원칙으로 하지요. 그래서 사실 오츠가 그리 많은 이들에게 호감을 얻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구요.^ ^; 개인적으로는 창비에서 나온 '멜베이니 가족'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오즈의 진가를 알기에는 더없이 좋은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JayJay 2012-05-14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분들이 좀비를 꼽으셨네요. 아마도 선정 확률이 높을 것 같아 저는 추천리스트에서 뺐지만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라도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에요. 개의 힘도 추천이 많더라구요. 스토리텔링이 완전 굳이라고...

starover 2012-05-15 20:00   좋아요 0 | URL
개의 힘
남자의 자리
좀비 중 하나는 무조건 될 것 같네요
 

 

 

  아프리카는 오래도록 역사의 변방에 있었습니다.

 

  마치 그 거대한 대륙 전체가 어둠의 장막이라도 둘러쓰고 있는 것 처럼 아프리카는 세계사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였습니다. 오죽하면 우리들 조차 세계사 시간에 근대에 이르도록 아프리카라는 이름을 볼 수 있었던 곳은 단 하나밖에 없었을까요. 그렇습니다. 인류의 역사가 근대까지 그 뜨겁고도 험난한 여정을 이어오는 동안 우리들이 볼 수 있는 아프리카는 오로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는 최초의 인류 화석이 발견 된 지명으로서의 아프리카말고는 없었습니다.  그 정도로 아프리카에 있어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 듯 했고 그렇게 늘 변함없이 태고의 모습 그대로 존재하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켰습니다. 흔히들 1989년 부터 1999년까지의 아프리카를 '아프리카의 과도기'라 부릅니다. 89년 냉전체제의 종식과 더불어 양극화 체제에서 다극화체제로 서서히 옮겨가자 당시의 냉전 이데올로기에 의해 외부로 부터 지배를 받고 있던 아프리카 국가들이 스스로 자신들만의 독립적인 체제를 만들어가려 했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냉전의 종식과 더불어 소련의 개입으로 일어난 앙골라와 모잠비크에서의 전쟁도 끝이나고 많은 나라들이 이제는 자신들만의 체제를 추구했으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악명높은 인종분리 정책이었던 아라파트헤이트도 폐지되는등 처음으로 변화의 기운이 아프리카에 가득 퍼지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를 제외한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러한 과도기 조차 찻잔 속의 폭풍일 뿐 이었습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고 널리 알려지지도 않았죠. 오늘까지도 여전히 아프리카 하면 우리들이 세렝게티나 가혹한 굶주림만을 떠올리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2011년 1월. 아프리카를 달리 보게 되는 계기가 찾아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23년간 튀니지를 독재했던 밴 앨런 정권을 무너뜨린 재스민 혁명이었습니다. 더구나 이 혁명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계속 번져나가 결국엔 42년간이나 리비아를 독재했던 카다피 정권마저 무너뜨렸습니다. 사람들은 놀랐고 이 혁명이 그 어떤 외부의 개입이나 원조 없이 오로지 아프리카인들이 순수하게 자신들의 힘으로 쟁취한 혁명이라는 사실에 더욱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그 혁명이 그 때까지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거꾸로 뒤집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아프리카인들이 여전히 미개하며 자신들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프리카에 대한 원조 운동이 지금처럼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도움이 그만큼 절실해서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아프리카인들이 스스로는 그 어떤 해결도 할 수 없다는 그러한 우리의 편견이 뒷받침된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재스민 혁명은 우리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이미지를 완전히 깨뜨려버렸습니다. 그들 역시 자신의 생각과 의지로 기꺼이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제서야 아프리카가 가진 진짜 모습을 보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러한 아프리카가 왜 그토록 세계사에 있어서 가리워져 있었고 또한 우리는 아프리카인들을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말이죠.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책이 가진 가장 중요한 의미중 하나를 우리들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건 바로 책은 세상이 감추고 있는 진실을 담고 있고 언제든 우리들에게 그 진실을 들려주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프리카에 대해서 만큼은 에코가 책에 대해 부여했던 그 의미가 그대로 진실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책들을 통하여 왜 아프리카가 재스민 혁명으로 달리보게 될 때까지 그동안 우리들에게 그렇게 나쁜 이미지로만 인식되어 왔는지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이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았던 진실이라는 것을 말이죠.

 

 우리는 그것을 수잔 벅모스의 '헤겔 아이티 보편사'에서 확실히 볼 수 있습니다.

 

 

 

 

 

 수전 벅모스의 책은 우리들이 가진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이 서양이 본격적으로 식민지 정책을 펴나갔던 그 시기부터 형성된 것임을 알려줍니다. 당시 영국을 비롯한 서유럽은 경쟁적으로 식민지를 건설해 나갔는데 사실은 무력에 의한 정복이었지만 그렇게 말하면 식민지 건설의 명분이 없으니까 야만을 문명으로 계몽한다라고 미화시키는 것이 보편적 행태였습니다. 때문에 그들이 내세운 '문명화'라는 명분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그들이 정복하는 땅의 주인들이 한없이 미개하고 도저히 인간이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야만적이었다고 해야 했습니다. 아프리카도 여기에 있어 예외일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가진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은 바로 서유럽의 제국주의적 팽창의 산물인 것입니다. 그들이 마음놓고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삼고 그들의 자원을 수탈하기 위해 만들어내었던 편견이 아직도 강하게 우리들의 뇌리에 남아있는 것이죠. 수전 벅모스는 하지만 이러한 편견들이 위정자나 자본가들 뿐만 아니라 이성을 찬양하고 자유를 최대의 가치로 부르짖었던 당시의 철학자들 역시도 공유했던 관념임을 밝힙니다. 특히나 헤겔을 통해서죠. 구체적으로 수잔은 우리도 익히 알고있는 헤겔의 저 유명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 당시 서유럽을 놀래켰던 아이티 혁명의 영향을 받은 것임을 소상히 밝혀줍니다. 하지만 헤겔 그 스스로는 밝히지 않았고 아이티인들의 혁명을 통해 아프리카인들이 당시의 지배적 관념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그 편견을 깨뜨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역사철학강의에서 아프리카인들은 높은 사고를 할 수 없고 그래서 아프리카는 무지로 어두운 장막이 짙게 드리운 곳으로만 설명했습니다. 말하자면 헤겔은 진정한 아프리카를 짐짓 모른 척 한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서구의 역사라는 것 자체가 자기들 외부에 대해 의도적 배제 위에 흘러왔음을 수전은 책을 통해 드러냅니다. 그런데 그러한 행태는 비단 그 당시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현재에도 역시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수전은 그걸 바로 자신의 연구가 어떻게 헤겔 연구가들에게 취급받고 있는가를 통해 나타냅니다. 이렇게 수전이 아무리 아이티 혁명과 헤겔의 상호영향 관계를 밝혀도 지금 헤겔학파 사람들 그 누구도 여기에 관심을 두거나 연구하려 드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헤겔이 아프리카의 진실된 모습을 짐짓 모른 척 했듯이 지금의 헤겔학파 또한 헤겔이 그 아프리카로 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짐짓 모른척 하고 있는 것이죠. 이것을 통해 수전은 서구 중심주의적 사고로 인해 타자의 역사들이 멋대로 왜곡되어지는 형태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보이고 바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역사가 이제는 보편사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에서의 보편사란 패권을 가진 중심부에서 멋대로 자르고 왜곡하는 현재의 역사가 아니라 그 외부의 타자들이 타자들 자체로서 스스로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도록 말하자면 그들 자신의 목소리로 그들을 대변토록 하는 그런 역사를 말합니다. 그렇게 대등한 타자들이 서로 자신의 존재를 다채롭게 드러내는 역사. 그것이 바로 보편사인 것이죠. 수전의 '헤겔 아이티 보편사'는 바로 수전이 지향하는 보편사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오히려 가치중립적이라고 말해지는 학문의 영역에서 조차 서구중심주의에 기반한 이해관계로 인해 아프리카는 멋대로 왜곡되어 버렸음을 보여주는데 이것은 비단 수잔 벅모스의 주장만은 아닙니다. 여기에는 또 하나의 저작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마틴 버넬의 '블랙 아테나'란 책입니다.

 

 

 

 

 

 

 마틴 버넬은 먼저 그리스 신화가 우리가 익히 아는대로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단지 상징과 은유의 형태로 기록한 것임을 상세히 밝힙니다. 그렇게 버넬은 그리스 신화를 역사로 볼 것을 주장하는데 얼른 우리는 이것이 참 바보같이만 들립니다. 왜냐하면 그리스 신화가 신화에 불과하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뻔한 사실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버넬은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수전 벅모스와 마찬가지로 19세기에 팽배한 아프리카에 대한 서유럽 제국주의의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역사학자들이 단순한 신화로 날조한 데 있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 신화를 역사적 사실로 바라보면 무엇보다 그리스 문명의 기원이 바로 이집트로 대표되는 아프리카가 되는데 그렇게 되면 당시 아프리카 침략에 정당성을 부여하던 미개한 열등 인종인 아프리카인들을 계몽한다는 명분이 더이상 성립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당시의 서유럽 역사학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인종주의적 우월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스 문명의 기원을 이집트나 페니키아가 아니라 같은 서양인 미케네 문명을 그 기원으로 날조했던 것입니다. 바로 그 날조가 지배적인 견해가 되어 오늘날 우리의 상식으로 자리잡게 된 것음을 버넬은 '블랙 아테나'를 통해 아주 상세히 밝혀줍니다. 여기서 보면 아시겠지만 우리가 그동안 서구 제국주의에 의해서 왜곡된 아프리카의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단지 아프리카의 어두운 역사를 복기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서구 제국주의에 형성된 그 같은 왜곡된 편견들은 많은 부분 지금 우리의 상식으로 당당히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그대로 우리가 가진 덧칠된 편견들을 걷어내고 그 진실한 참모습을 새로이 알아가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바로 이 때문에 에코가 말했던 책의 의미는 하나의 진실이 되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의 왜곡된 이미지와 역사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이 그동안 세상이 가리고 있는 진실이 이렇게 책을 통해 드러나고 있음을 똑똑히 깨닫게 되니까요.

 

 이렇게 과거의 아프리카가 가진 왜곡으로 부터 자유롭게 되었다면 이제 현재의 아프리카를 바라보던 인식 역시도 달라지게 되겠지요. 그동안의 굶주림과 미개함 그리고 수동성으로 가득한 땅이 아니라 그 자신의 삶과 역사를 위해 스스로 대안을 찾아나가는 적극성과 가능성의 땅으로 말이죠. 현재 아프리카의 세네갈에서 참사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윤상욱의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라는 책은 바로 이 같은 아프리카가 가진 현재의 모습을 변화된 새로운 시각으로 정말 잘 보여주는 책입니다. 현지 아프리카의 경험까지 더해져 정말 생생한 아프리카의 모습을 전해주고 있는 책은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문화 전반에서 아프리카가 현재 마주하고 있는 곤경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들을 스스로 어떻게 만들어나가고 있는지 그 외부적 시각이 아니라 바로 아프리카 내부의 시각으로써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책이 아프리카가 현재 가지고 있는 의미를 아프리카 내부라는 미시적 시각에서 보여주고 있다면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기획하고 펴낸 '르몽드 세계사 2편', '세계질서의 재편과 아프리카의 도전'은 세계 전체라는 거시적 시야에서 아프리카가 가진 의미와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제 점점 다극화 시대로 나아가고 있는 현재에 있어 서서히 주체적으로 자신들의 체제와 삶 그리고 역사를 형성하고 있는 아프리카가 거기에 있어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습니다. 윤상욱의 '아프리카에는 아프리카가 없다'와 이 '르몽드 세계사 2'는 아프리카를 그 내부와 외부에서 고루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병행해서 보면 참 좋은 책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어제의 아프리카와 오늘 그리고 앞으로의 아프리카를 제대로 진실되게 바라보게 해 줄 책들을 추천해 보고 대략 살펴보았습니다. 사실 우리가 다른 나라의 역사와 현재에 관심을 가지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당장은 우리 자신의 삶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요. 하지만 앞에서도 이미 말했습니다만 아프리카의 경우에도 드러나듯이 결국 타자의 역사와 현재를 살피는 일은 곧 우리 자신의 역사와 현재를 살피는 일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그들이 걸어온 역사적 경로와 우리가 걸어온 경로도 다르지 않으면 더욱 그렇겠지요. 그런데 우리 역시 그들 만큼이나 역사에 있어선 주변부였고 그들이 지배당했던 만큼 우리도 역시 식민지 지배를 거쳤으며 모든 식민지 경험을 가진 국가의 국민들이 그러하듯이 우리 역시 여전히 서구 중심주의적 시각에 깊이 물들어 있습니다. 이만큼이나 과거와 지금 우리의 모습은 그들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때문에 그들에게 덧칠된 편견을 지워가는 건 서구에 의해 우리 자신에게 덧칠된 편견을 지워나가는 일일 것입니다. 말하자면 아프리카를 진실되게 이해하는 건 다름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고유하고도 진실된 모습을 찾아가는 또 다른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어제와 오늘의 아프리카를 제대로 바라보게 해 줄 이 책들을 꼭 벗해보실 것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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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회자정리라고 하더니 결국 10기도 마지막 신간 추천 시간이 도래하고야 말았습니다.

 요번엔 이사도 있고 해서 몇 작품은 채 소화도 못 한 채 서둘러 리뷰를 해야 했던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 아쉬움도 곧 추억이 되겠군요.

 10기 여러분 다들 수고 많으셨구요.

 여러분들이 추천한 신간과 리뷰를 보면서 느낌을 나누고 생각을 나눌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그럼, 이제 마지막 신간 추천 제가 선택한 작품들입니다.

 

 

 

 

 

 

  파스칼 키냐르는 제가 가장 닮고 싶은 문장을 쓰는 작가입니다. 카나르의 문장들은 마치 라이프니츠의 모나드 같습니다. 그 짧은 문장 하나가 얼마나 많은 사유의 되먹임을 거친 끝에 나왔는지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응축. 그 절대 영도의 문장들을 정말 배우고 싶은데 천성이 수다꾼인지라 여간해선 잘 안되는군요.

 

 이번에 나온 빌라 아말리아는 장편소설 입니다. 명성은 2008년에 영화도 나왔고 해서 익히 듣고 있었는데 키냐르의 작품 치고는 좀 시간이 걸려 이제야 나오게 되었네요. 소설의 내용은 제가 '옛날에 관하여'에서 읽었는지 '심연들'에서 읽었는지 지금은 얼른 모호합니다만 아무튼 분명 그 둘 중 하나에 나왔던 김포공항에서 키냐르 자신이 한 외교관 아내에게 느꼈던 사랑의 순간을 떠올리게 합니다. 한 식당에서 마주앉아 키냐르는 그녀의 스커트 아래로 드러난 다리를 보며 솔직한 욕망에 따라 무모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냐 아니면 이대로 포기하고 비겁한 일상을 지속할 것이냐 고민합니다. 그 변화에 대한 갈급함과 그 못지 않은 현실의 중력 사이의 위태로운 줄타기... 저는 빌라 아말리아가 그것을 장편으로 버전 업 한것으로만 느껴지는군요. 아무튼 키냐르 입니다. 이외에 다른 말이 뭐가 필요할까요? ...

 

 

 

 

 

 SF의 팬으로서 문학수첩은 지금 가장 응원하고 싶은 출판사입니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발라드의 하이라이즈, 저번 신간서평단 선정작이었던 로보포칼립스 그리고 이렇게 폴 앤더슨의 브레인 웨이브 까지 꾸준하게 SF를 발간하여 목마름을 해갈시켜 주고 있으니까요.

 

 걸작 시간여행 시리즈인 '타임패트롤'로 유명한 폴 앤더슨은 시간 여행외에도 압도적일만큼 어마어마한 시간을 우주여행하는 자들의 존재론적 불안과 진화를 다룬 '타우제로' 같은 작품도 썼는데요 이 '브레인 웨이브' 또한 다른 식의 테마를 추구한 작품입니다. 그러니까 제목에서 짐작되듯이 갑자기 지구의 모든 생명체들의 지능이 수직 상승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을 다룬 작품입니다. 다니엘 키스의 소설 '앨저넌에게 꽃을'에도 나오는 것입니다만 우리는 흔히 지능이 갑자기 확 올라가면 그 존재의 생활마저도 얼마든지 상승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높은 IQ에 대한 집착도 아마 그 믿음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만 과연 그렇게 지능의 진화가 삶에다 순기능만 가져오는 것일까요? 행여 역기능도 분명 가져다 주지 않을까요? '브레인 웨이브'는 그렇게 지능의 갑작스런 증가가 가져올 다면적인 변화를 흥미롭게 풀어간 작품입니다.

 

 

 

 

 

 찰스 부코스키의 소설들이 열린책들에서 나란히 출간된다고 들었을 때 저는 저도 모르게 열린책들의 '서드 임펙트'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작년에도 '메그레'와 '하자르 사전'의 재발간으로 놀래키더니 올해는 또 이렇게 찰스 부코스키로 놀래키는 군요. 사실 가장 반가운 출간소식이기도 합니다. '팩토텀' 밖에는 볼 수 없었기에 이렇게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을 그것도 두 작품이나 연이어 읽을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 아닐 수 없군요. 그저 닥치고 추천입니다. 

 

 

 

 

 

 

 미미 여사가 가장 존경한다는 일본의 사회파 미스터리의 거장 마츠모토 세이초. 그의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작품들이 나온다는 사실은 세이초의 작품을 좋아했던 이들에게는 가슴 뛰는 소식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미미 여사가 화차에서 그려낸 혼고의 연민과 고뇌의 시선이 바로 세이초의 시선이 아닐까 하는데요, 아무튼 '모래그릇'이나 '점과 선'을 읽어보면 그 시선으로 그려내는 당시 일본 사회의 그늘이 지금 우리가 가진 그늘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마도 바로 그 이유로 이렇게 세이초의 작품들이 오늘날 부활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역사비평사의 임프린트 모비딕과 북스피어가 함께 힘을 합쳐 의욕적으로 펴내는 시리즈입니다. 국내출판계에서는 획기적인 시도이기도 하니 부디 잘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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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3-08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스칼 작가님의 책은 표지가 딱 제스타일인걸요~
그나저나 벌써 마지막이라니 얼마 한거 같지도 않은데 끝이군요.
제가 읽고싶은 책이 많이 걸리질 않아서 그런거 같아요.
애초에 에세이 부문을 신청한것이 저에대한 이해부족과 판단미스였습니다...
아직은 제가 에세이를 읽을만한 지적수준이...아니더군요.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소설파트에 지원을 해보고싶어요.
아주 기회가 된다면 헤르메스님과 같이 리뷰를 올리며 의견을 나누는... 후후

ICE-9 2012-03-08 22:25   좋아요 0 | URL
정말 이렇게 마지막 시간에 서 있고 보니 저 역시 소이진님과 똑같은 아쉬움이 들더라구요. 이사 준비로 바빠 리뷰에 공을 많이 못들였기도 하고 또 소이진님과 똑같이 이번 신간평가단에선 정말 읽고 싶었던 책이 거의 선택되지 않은 탓도 있고 해서^^; 저는 소이진님의 글을 읽을때마다 깜짝깜짝 놀라는데 지적 수준이 안되신다니 너무 겸손이 지나친 듯 합니다. 와! 저역시 정말 소이진님과 꼭 같이 리뷰단 되었으면 좋겠어요.^ ^ 그런데 1년이나 했는데 또 시켜주실지 자신이 없어요 흑흑 ㅠ ㅠ

이진 2012-03-08 22:29   좋아요 0 | URL
에이,헤르메스님이시라면 당연히 붙지요. 제가 신간평가단 단원이라면 일단 헤르메스님은 고정 멤버로 제치고 들어가겠습니다. 성실하신데다가 글도 잘쓰시지 않으십니까!
아니에요... 흑흑 성석제나 프랑스 작품은 손을 못대었단 말입니다. 성석제가 글을 어렵게 쓰는것도 아닐텐데도 저와는 맞지 않는 것인지 말이어요. 무라카미 하루키도 별로였고... 어쨋든 이제는 에세이에는 자신이 없어요. 적어도 소설에서는 에세이보단 잘할자신이 가득가득인데!! 소설이라면 그냥 모든 책이 다 읽고싶을거 같아요... 헤헤

ICE-9 2012-03-08 22:44   좋아요 0 | URL
지금 제가 소이진님 노다메 페이퍼 보고 왔는데요, 실력이 후덜덜 하시던데요 뭘^ ^ 그치만 정말 에세이는 리뷰쓰기가 어렵더라구요. 저도 리뷰를 썼지만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도 사실 처음엔 얼른 맥을 잡기가 어려웠어요. 제 생각에 문제는 소이진님이 아니라 에세이라는 것 자체에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특정한 형식도 없고 그렇다고 이야기가 죽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 리뷰라는 글의 본질상 바탕이 되는 텍스트에 근거해야 할 텐데 그 텍스트 자체가 곳곳에 단절과 균열이 있어놔서 그런게 아닐까 싶어요. 게다가 자칫하면 신변잡기로 갈 수도 있는데 그건 또 소이진님이 만족하지 못하실 것 같고... 그러니 이참에 에세이는 관두시고 소설로 빨리 전향하세요. 소이진님의 글솜씨라면 소설의 리뷰가 더한층 빛날듯해요.^ ^

이진 2012-03-08 23:06   좋아요 0 | URL
히히...후덜덜까진 아닌데. 저는 처음 이런 식으로 리뷰를 쓰기 시작했을때는 제대로된 기준을 잡질 못해서 에세이리뷰를 쓰는것이 훨씬 편했어요. 소설 리뷰를 쓸때는 생각해야할 것도 많고, 써야할것도 많아서 복잡했는데 에세이는 편하더군요. 그래서 나는 에세이와 맞구나! 하고서는 옳다구나 하고 에세이부문 신청했는데 선정이 딱 되어버린거죠. 생각해보니 저는 글 에세이말고 포토에세이 리뷰를 괜찮게 썼던 것 같아요. 그냥 내 이야기만 주저리 주저리 하면 되니까 말이에요. 맞아요 얼른 소설로 전향해야겠어요. 에세이는 제게 너무 힘들다는 것을 깨달았답니다. 헤헤... 11기에 잘해보아요 ^______^ (아 이거 신간평가단 직원분이 보시면 괘씸하다고 안뽑아주시는건 아니겠죠!)

ICE-9 2012-03-08 23:19   좋아요 0 | URL
저는 자기 이야기를 쏟아놓을 수 있는 사람이 정말 부럽더군요. 제가 그걸 잘 못하거든요. 사실 제가 가장 힘들어하는 게 자기소개서 쓰는 것이었어요. 그 여백을 탁 마주하고 있으면 도대체 날 어떻게 말해야 할지 난감해서 머리가 새하얗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였어요. 학교 다닐때도 나에 대해서 말하는 걸 참으로 싫어했었죠. 그래서 선생님과 상담시간이 저에겐 가장 힘들었어요. 지금에서야 저도 이제 차츰 나를 객관화 시키려고 노력 많이 하는 편인데 소이진님은 오히려 그게 더 편하다고 하니 정말 부럽군요^ ^ 그렇게 같은 소설을 읽으며 소이진님은 작품을 객관화 시키고 저는 나를 객관화시키는 쪽으로 노력하면 정말 좋을 것 같네요. 그럼, 11기를 향하여 아자아자!!

교고쿠도 2012-03-09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찰스 부코우스키..<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를 몇 년 전에 헌책방을 뒤져 구한 후 참 재미나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퇴폐적인 냄새도 나지만, 뭔가 통쾌한 느낌도 동시에 들어요. ㅋ

ICE-9 2012-03-09 03:36   좋아요 0 | URL
저는 무엇보다 스스로 적극적으로 루저가 되는 그 모습이 좋더라구요. 너무도 당당하게 스스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의지로 추락을 감행하니까 그것을 오로지 누추함과 비루함으로 바라보는 우리의 눈이 사실은 얄팍한 편견에 불과했음을 드러내고는 부끄럽게 만들더군요. 그러한 피학 속의 깨달음이 제가 부코우스키를 좋아하는 이유가 아닌가 싶어요.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정말 읽어보고 싶네요. 교고쿠도님 반갑고 댓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