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처음으로 신간평가단 되고나서 처음 신간 추천 페이퍼 썼던 것이 정말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끝자락에 도달해 있다. 개인적으로 폭풍같은 한 주와 우울로 아슴아슴해지는 며칠을 보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해결된 것은 없다. 분노도 그대로고 슬픔도 그대로다. 그러면서 가는 거겠지. 이러면서 안고들 가는 거겠지. 그렇게 버티고만 있다. 지금은 바닥없는 공간을 유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히려 더 괜찮다고 생각된다. 둥둥 떠다닐 수록 내 몸은 더욱 더 예민해지고 내가 했던 것들과 보았던 것들을 더 잘 기억하게 해주니까. 기억해야 할 것을 잊지 않는 것. 그게 지금으로서는 최선인 것 같다. 

  어쩌면 그런 내게 조금의 중력이라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하는 심정으로 8월의 신간 다섯 편을 꼽아 본다. 

 

  

 '이민자들'을 읽고나서 제발트에 빠지지 않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을유에서 '아우스터리츠'가 나오더니 드디어 '토성의 고리'가  세번째로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제발트는 교통사고로 안타깝게 죽기전(왜 정말 반할만한 작가들은 일찍 죽는 것인지...) 네 편의 소설만 세상에 남겼는데 이제 우리나라에 소개될 것도 단 하나만 남은 셈이다. 그렇게까지 조금밖에 남지 않았다니 아쉽고 안타깝다. 그래서 어쩐지 지구에서 토성까지 파이오니어호가 갔던 그 세월 만큼 천천히 읽고픈 생각도 든다. 하지만 사무치게 그리웠던 제발트의 육성을 코 앞에 두고 있으니 그 유혹을 어찌 견딜까 싶기도 하다.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소멸'과 더불어 아마도 오래도록 곱씹게 될 것 같은 예감이다. 

  

 

 

 

  존 코널리의 데뷔작이다. 사립탐정 찰리 파커 시리즈의 첫 작품이기도 한 이 소설은 내가 좋아하는 것 두 가지를 갖추었다. 하나는 주인공의 이름이 내가 좋아하는 재즈 뮤지션의 이름이라는 것.(이 사람의 매력을 알고 싶다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버드'를 볼 것.) 다른 하나는 사립탐정물이라는 것이다. 가족 모두를 살해한 연쇄살인마를 추적하는 복수의 여정은 많이 반복된 소재이긴 하지만 사립탐정에게 새겨진 상처는 그것 자체가 매력이 되므로 어떻게 살려나갈지 기대가 된다. 사립탐정에게 범인이란 늘 그 자신이 풀어야 할 삶의 숙제와도 같다. 찰리 파커 당신은 나에게 어떠한 시선과 사유의 선율을 들려줄 것인가? 

 

 

 

 

 

  '독서의 역사' '밤의 도서관'등 책을 좋아하는 이들로서는 참으로 지나치기 어려운 책을 써내었던 알베르토 망구엘이 이번에는 소설로 다가왔다. 대략의 소개글을 보니 아무래도 '밤의 도서관'의 소설 버전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도서관'이 하나의 인격을 가진 인물이 되었달까? 왜냐하면 '밤의 도서관'에서 '도서관'이라는 하나의 소재를 가지고 그것이 가질 수 있는 혹은 지닐 수 있는 모든 의미에서 마치 거미줄을 뻗치듯 촘촘하면서도 전방위적으로 전개해나갔던 것과 똑같이 이 소설에서도 그런 식으로 한 인물을 담아내고 있으니까. 망구엘의 얼기설기 엮어내는 태피스트리 기법이 소설로는 어떻게 펼쳐질런지 기대가 된다. 

 

 

 

 체코의 SF라면 카렐 차펙 밖에는 모르지만 선집한 이가  야로슬라프 올사 쥬니어와 박상준이라면 한 번 읽어보고 싶다. 거기다 강렬하면서도 마구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저 제목이 기꺼이 그 속으로 풍덩 뛰어들고 싶게 만든다. 세월이 좀 흐른 것에서 부터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그지없이 생소하기만한 이 10편의 작품들이 과연 어떤 맛을 느끼게 해 줄 지 기대가 된다. 

 

 

 

 

 

내가 이 소설을 선택한 것은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의 대상 수상작이라서가 절대 아니다. 순전히 순정만화가의 일상에 대한 리얼한 묘사가 담겨 있다는 한 서평가의 말 때문이다. 예전부터 그 일상이 궁금했었는데 제대로 한 번 엿볼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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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도 불길했던 전조는 전작의 무대가 '교차로'였다는 데서 부터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절대 만나서는 아니 될, 그렇게 영원히 평행이어야 할 두 세계가 문득 루크레티우스의 빗방울 처럼 만나게 되는 장소, 교차로. 때문에 옛사람들이 교차로를 그리 상서롭지 못한 곳으로 여긴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승과 저승이 만나는 곳. 죽은 자들이 산 자들의 세계로 건너올 수 있는 곳. 따라서 로마의 탈영병들은 가장 불길한 것의 상징이었던 '십자가' 위에서 죽어야 했음은(탈영병은 더이상 로마 사회에서 산자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십자가 형이란 이미 죽은 자인 그들을 그들의 고향으로 보내준다는 의미가 강했다.) 당연했다. 로버트 존슨이 악마를 만나 락을 탄생시킨 것도 '교차로' 였다. 아니 그 이전부터 교차로는 자주 사람들에게 악마가 출몰하는 장소로 믿어졌다. 현재 미드 슈퍼내추럴에서 딘과 샘이 교차로에서 악마를 소환해 만나는 것도 단순히 로버트 존슨만의 일화를 가져온 것만은 아니란 얘기다. 그렇게 교차로란 융 식으로 원형적으로 불길한 장소이다. 하지만 그 '불길함'은 대체 어디서 연유하는 것인가?  메리 더글러스는 언젠가의 글에서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그 정체성의 변화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녀는 그것을 '머리카락'을 들어 이렇게 설명한다.  

 

머리카락은신체의 일부일 때는 머릿기름을 바르고, 빗고, 매우 정성들여 치장하는 등 애정 어린 보살핌을 받지만 일단 잘려나가자마자 '쓰레기'가 되며 명시적이고 의식적으로... 대변, 소변, 정액, 땀 등의 오염 물질과 연결된다. 

 

   사람의 몸에 있었을 때와 떨어져 나갔을 때 이렇게 머리카락이 완전히 극단의 다른 대접을 받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것이 바로 정체성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많은 문화권에서 머리 모양을 바꾸는 것은 하나의 정체성에서 다른 정체성으로 넘어가는 통과의례의 바꿀 수 없는 부분(지그문트 바우만, '쓰레기가 되는 삶들(p.51))으로 여겨져 왔다. 그렇게 떨어진 머리카락을 우리가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 우리가 버렸던 과거의 정체성의 잔여물이기 때문인 것이다. 메리 더글러스는 우리가 궁극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으로 인한 소멸이 아니라 그렇게 없는 상태로 바뀌는 그 '자체'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더글러스의 말을 따른다면 교차로에서 느껴지는 저 '불길함'의 정체는 아마도 우리의 정체성을 바꾸려 위협하는 어떤 것이 될 것이다. 
 

  따라서 심농의 '교차로의 밤'에서 교차로가 주는 불길함은 그저 사건이 거기서 일어나서가 아닌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어떤 변화가 엄습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가 바로 정체성에 타격을 줄 것임을 은밀히 발언하는 것이다. 과연, 거기서 매그레는 낮 동안 억압되어 있던 한 여인을 만난다.(여기서 제목의 '밤'이 에고(낮)의 장악력이 약해진 틈을 타서 현실로 뛰쳐나오는 '이드'의 시간을 말하는 프로이트적 의미임은 굳이 따로 말하지 않아도 무방할 것이다.) 

 

  WHO'S THAT GIRL? 

 

  세익스피어에게 '여성'이란 기억의 존재였다. 왕이 숨기고 싶은 진실을, 사회가 은폐시키고 싶은 죄를, 역사가 지우고 싶어하던 비극을 세익스피어의 여성들은 때로는 그 마음에 때로는 그 몸에 새기고 있던 기억의 존재였다. 그래서 그녀들은 남자들에게 소유의 대상이었으며 심판의 거울이었다. 거트루드는 클로디어스에겐 자신의 안전을 위해 반드시 곁에 두어야 할 기억이지만, 햄릿에게는 심판을 위해 소환시켜야 할 기억인 것이다. 

  심농의 '교차로의 밤'을 영화로 만들었던 장 르느와르에 이르면 여성은 이와 다른 의미를 가진다. 애시당초 자신의 부인을 영화배우로 출연시키기 위해 영화 감독이 된 그답게  여성은 애정의 대상이지 세익스피어 처럼 소유나 망집의 대상이 아니다. 사랑은 무엇보다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고 믿는 르느와르는 '교차로의 집'에서도 그것을 그대로 드러낸다. 뛰어난 편집을 보여주는 '교차로의 밤'에서 르느와르가 특히 공을 들이는 것은 교차로에 있는 세 집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때로 그는 한 집씩 차례로 번갈아가며 보여주는 걸 즐겨하는데 거기서 그가 나타내고 싶은 것은 그 집 하나하나가 당시 프랑스 계급을 상징토록 관객에게 느껴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교차로의 집들을 통하여 귀족 계급, 신흥 부르조아 계급,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담는다. 흥미로운 것은 그 집에 기거하는 여성들에 대한 묘사다. 거기서 르느와르는 여성이 그 각 계급이 속성을 드러내는 하나의 상징이 되도록 만든다. 무엇보다 그것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은 바로 여성들의 옷차림이다. 르느와르는 계산적으로 하층 계급으로 내려갈 수록 옷의 노출이 점점 커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귀족이나 신흥 부르조아지 여성들은 옷으로 전신을 감싼 채 등장한다. 그네들의 살결은 조금도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 혹은 그 아래일 수록 그 드러나는 살결의 부분은 훨씬 많아진다. 이 모든 것을 통한 르느와르의 발언은 명확하다. 여기서 '옷'이란 바로 개인의 자유를 가두는 사회의 인습, 규율, 억압의 상징인 것이다. 그럼으로 노출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더 자유롭다는 의미인 것이다. 때문에 르느와르는 '교차로의 밤' 후반 가장 중요한 장면인 매그레와 엘세의 장면에서 지금까지 해 온 것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거기서 엘세는 소설과는 달리 거의 벗거나 혹은 속옷만 입은 모습으로 매그레에게 담담하게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때 르느와르는 비로소 매그레와 엘세과 공감가능한 대등한 인간관계가 되었다는 듯이 같은 크기로 화면에 담는다. 둘 사이는 더이상 수사관과 용의자가 아닌 것 같다. 사실 보면서도 지금 매그레가 하고 있는 것이 수사인지 아님 연애인지 가늠하기 힘들다. 장 르느와르의 '교차로의 밤'은 심농의 그것보다 보다 더 급진적으로 사회 비판을 가하기 때문에 이렇게 보면 르느와르는 엘세를 마치 들라크루아의 프랑스혁명을 이끄는 여신과 거의 비슷한 이미지로 연출하고 있음도 느끼게 된다. 르느와르에게 있어 여성은 이렇다. 그녀는 자유로 이끄는 존재다. 그럼으로써 사람을 진정 해방시키는 존재다. 그 벽창호 같은 매그레의 마음 마저 허물어뜨릴 정도로... 

 
                                                                    -  장 르느와르의 영화 '교차로의 밤' 중에서

   

  그렇다면, 심농은?

  교차로는 단순히 프랑스 자체를 모두 담기위해 선택된 공간만은 아니었다. 심농이 일부러 교차로를 무대로 삼은 것은 어쩌면 그 '불길함'을 강조하기 위한 의미일 수도 있다. 메리 더글러스에 따르면 그 불길함은 바로 정체성이 바뀔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누구의 정체성의 그토록 위협을 당하기에 심농은 특별하게 '교차로'를 그 무대로 삼았던 것일까? 답은 물론 소설 자체에 나와있다. 바로 '매그레'인 것이다. 우리는 엘세를 대면하는 매그레에게 뭔가 미묘한 변화가 일어나는 듯한 낌새를 불현듯 느낀다. 어쩌면 개인적인 느낌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장 르느와르의 영화를 보고 그렇게 느낀 것이 나만은 아님을 느끼게 되었다. 매그레의 포커 페이스는 제대로 그 속내를 보여주고 있지 않으나 우리(나와 장 르느와르)는 분명 그의 눈빛으로 뭔가 유혹을 받고 있음을 느낀다. 누가 굳어진 중년의 마음에 촉촉한 단비를 뿌리고 있는가? 그건 바로 '엘세(Else)'다. ELSE... 이 얼마나 재치있는 작명인가? 프랑스에서 여성을 가리키는 ELLE에서 'L'  하나만 'S'로 바꾼, 거기다 영어로는 '다른'이란 뜻마저 가지고 있는. 그러니까 심농은 이미 이름에서 그 의도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즉 '엘세'는 하나의 개체의 이름인 고유명사가 아니라 융의 '아니마'와도 같이 여성 자체를 가리키는 보통명사인 것이다. 바로 그 '여성성'과의 근접 조우 상태에서 매그레는 흔들리는 것이다. 즉 그는 유혹을 받는 것이다. 이렇게 심농에게 있어 여성은 유혹의 존재로 나타난다. 그야말로 뱃사람을 노래로 홀려 익사시켰던 그 유혹의 '세이렌'인 것이다. 

 

   '세이렌의 유혹' 이라는 기표 

 

   
   그것은 매그레에게 어떤 유혹으로 다가오는가? '교차로의 밤'에서 우리는 그 정체를 똑똑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네델란드 살인사건'에서 심농은 그 유혹의 정체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생폴링앵에 지다'에서 그 자신의 죄를 고백했듯이 이번에는 자신의 삶 속에 끈질기게 남아있던 그 유혹(심농은 감독 페데리코 펠리니에게 만 명의 여자와 관계를 가졌다고 고백한적이 있었다.)의 정체에 대해서 고백한다. 아마도 그 때문에 '생폴리앵에 지다'에서 문득 벨기에로 소환당했듯이, '네델란드 살인사건'에서도 더 북쪽의 네델란드로 역시나 불현듯이 소환당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것도 파리에서 최북단 '델프제일'로. 언어도 통하지 않고 완벽하게 고립된 그 곳에서 매그레는 그와 똑같이 사회로 부터 고립된 채 바다로 향한 열망을 억누르고 숨죽이며 살아야했던 '포핑아'라는 남자의 존재와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열망은 그리 오래 잠들어있지 못했는데 그건 젊은 여자 리번스의 유혹 때문이었다. 그녀는 포핑아에게 내내 자신을 데리고 여기에서 달아나 달라고 조른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기묘한 점 하나를 보게 된다. '포핑아와 리번스'의 관계가 어쩐지 '교차로의 밤'에서 '매그레와 엘세'의 관계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중년의 남자와 젊은 여자의 교제라서만은 아니다. 그 보다는 '엘세'와 '리번스'라는 기표가 가지는 의미 때문이다. 물론 '엘세'는 심농의 소설이 아닌 장 르느와르의 영화에서 나타난 '엘세'이다. 그녀의 기표와 '리번스'의 기표는 사실 동일하다. 모두 자유 혹은 해방의 상징인 것이다. 즉 장 르느와르에서 엘세가 매그레를 그가 가진 사회적 굴레로 부터 빠져나오게 만드는 역할을 하듯이, 리번스 역시 포핑아에게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같은 기표인데도 장 르느와르와 심농은 서로 그 기표를 다르게 받아들인다. 장 르느와르는 그걸 그대로 '자유 혹은 해방'의 의미로 받아들이지만 심농은 그것을 '유혹'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르느와르는 다가오는 엘세를 피카소의 '해변을 달리는 두 여인' 처럼 기꺼이 맞아들이지만  심농은 주저한다. 그는 선뜻 리번스의 손을 잡지 않는다. 그는 뒤로 물러서며 거기서 서성인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것이 옳은 길인가? 그 너머에서 계속 세이렌의 고혹적인 노래 소리는 들려오지만 그는 기둥에 단단히 결박당한 오디세우스 처럼 거기로 움직이지 못한다. 아니, 그는 오디세우스가 그랬듯이 붙들려 있고 싶어한다. 그 기둥에. 그가 단단히 결박되어 있는 기둥이 바로 '일상'인 것이다. 

 

  전작 '생폴리앵에 지다'에서 원죄 처럼 가지고 있는 한 죽음에 대한 죄의식으로 부터 달아나기 위해 기꺼이 맞아들였던 '일상'이라는 것이 이렇게 또 다시 나타난다. 바로 이 ('생폴리앵에 지다'에서 비롯되어진) '일상'에 대해 결박되고 싶은 욕망 때문에 심농은 르느와르 처럼 유혹에 있는 그대로 몸을 맡기지 못하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애시당초 불가능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일상은 남들과 똑같이 그저 단순하게 영위하게 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과거의 죄책감으로 부터 달아나기 위해서 애써 취하려 연거푸 들이켜 부었던 꼬낙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선택이 아니라 차라리 열망이라고 해야 옳다. 살기 위해서 그는 일상의 갑옷을 입은 것이다. 생존을 위한 열망은 아무래도 꿈을 위한 열망 보다는 그 크기와 지속면에서 압도적으로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심농은 모든 걸 접었다. 포핑아도 그랬다. 하지만 결국 포핑아는 살해 당한다. 그가 그토록 머무려고 했었던 집에 조차 들어가지 못한 채. 그가 죽은 것은 결국 그가 유혹에 굴복당했기 때문이었다. 세이렌의 노래 소리에 그가 결박을 풀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이것이 과연 정말 살인일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왜일까? 심농의 무의식에 흐르는 하나의 진실을 알게 된 지금 혹시 자신의 분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포핑아를 더 큰 유혹이 되기 전에 심농 스스로 '살인'을 빙자하여 지워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 혼자만인가... 아무래도 이건 진실일 것이다. 포핑아는 아마도 정말은 심농에 의해서 살해당했을 것이다. 그렇게 매그레는 처음 부터 범인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내내 반복하는 말 '나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습니다.'는 정말 그대로의 진실이 아닐까! 그는 그렇게 해서 창조주의 살인을 짐짓 눈감아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매그레가 바보가 되어야 했을 만큼 유혹은 그토록 치명적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치명적이었는지를 우리는 그 다음 작품 '선원의 약속'에서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선원의 약속'은 유혹이 얼마나 치명적이며 또한 파괴적인지 그래서 거기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단단히 스스로를 그 일상이라는 기둥에다 결박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것은 '누런개'에서 발아되어 '교차로의 밤'에서 성장하여 이제 '네델란드 살인사건'에서 불현듯 '세이렌의 섬'으로 떠올라 버린 그렇게 해서 스스로에게 하나의 커다란 유혹이 되어버린 '여성'이라는 기표에 관하여 심농 스스로 그것에 더욱 더 저항하고 일상에 자신을 단단히 결박하기 위하여 만든, 일종의 자기 방어용 작품이다. '선원의 약속'은 놀랍도록 감성에 차 있고 한 편으론 남성의 우울 마저 진하게 느끼게 만드는 작품이지만 그 근저에 흐르는 것은 유혹에 대한 경계다. 그 경계심이 하도 커서 어쩐지 '선원의 약속' 표지 처럼 커다란 닻을 자신이 지금 딛고 서 있는 일상의 바닥에다 꽂아두려 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는 매그레의 아내 마저 등장시켜 일상의 틀을 더욱 견고히 하려 한다. 하지만 그의 무의식의 한 켠은 내내 스스로에게 보내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와 유사한 관계들이 이그러지고 깨어짐을 통해 그것들이 자기 기만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끊임없이 속삭인다. 때문에 주 배경이 '바닷가 해안'이 되는 것은 정말 상징적이다. 심농이 그 아무리 커다란 닻을 일상에다 박아두고 싶어도 그야말로 '경계'의 공간. 늘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 뛰어들지도 못하고 머무르지도 못한다. 세이렌의 노래 소리는 끊이지 않고 결박한 끈은 언제까지 튼튼하게 있을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늘 갈망을 커다란 성게 마냥 가슴에 안고 살아가야 하는 상태. 그 진퇴양난... 하지만 지금 나는 매그레의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심농의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 틀렸다. 난 지금 당신의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남자인 당신을. '누런개'에서 '선원의 약속'까지 당신이 읽었다면 당신도 보게되었을 것이다. '포핑아'에게서도 그 배, 오세앙호의 선장에게서도, 르 클랭슈에게서도 그리고 그 모든 것에서 씁쓸히 자신의 분신들을 음미하는 매그레에게서도 바로 그들과 똑같은 갈망과 번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당신 자신의 모습을. 그렇다. 이건 남의 얘기가 아니다. 바로 당신의 얘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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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바쁘고 힘든 가운데 7월에서 8월로 아주 가파르게 넘어왔습니다. 하지만 한 권의 책 조차 제대로 잡을 수 없었던 그 시간들도 결국은 끝이 있었고 오늘로 과거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래만에 아주 느긋한 마음으로 '무한도전'을 볼 수 있었습니다. 거의 유일하게 보고있는 TV 프로그램이기도 하지만 오늘은 또 5개월 동안 달려온 조정 레이스의 피날레이기도 해서 안 볼수가 없더군요. 물론 결과야 이미 알고 있지만 그래도 2000미터를 포기하지 않고 서로를 독려해가며 꾸준히 저어가는 모습은 얼핏 저도 모르게 눈물이 고일 정도로 감동적이었습니다. 

  맴버들의 노력도 노력이지만 다같이 보조를 맞추지 못하면 절대 잘 나아갈 수 없는 조정. 그렇게 특출한 하나나 둘을 강조하기 보다는 언제나 '함께'여야만 제대로 된 레이스를 펼칠 수 있는 조정 경기의 특성은 특히나 '함께'라는 게 강조되어야 할 지금 우리나라의 형편상 더욱 더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그런데 언제나 무한도전이 이렇게 연례 특집을 하게 되면 꼭 '누가 민폐다'라는게 따라붙게 되는 일이 있더군요. 이번 조정경기때도 어김없이 그랬습니다. 정형돈이 민폐로서 톡톡히 곤경을 치르더니 지금은 박명수가 바통을 이어받고 있더군요. 개인적으로 마음이 별로 안 좋더군요. 왜 이렇게 '민폐'를 집어내는 것인지. 레이스 완주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누가 발목을 잡았나를 꼭 골라낼 필요가 있는 것인지 이해도 가지 않구요. 무한도전 덕분에 저는 이번에 조정을 완전히 새롭게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잘 이해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정은 그야말로 약자에게 먼저 보조를 맞추는 스포츠더군요. 무엇보다 하나된 호흡을 중시해야 할 경기이니 아무래도 가장 처지는 이를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 밖에 없겠죠. 그렇게 합심하여 격려하고 응원하는 가운데 그 약자는 또 자신의 약함이 동료에게 고통이 되지 않도록 적은 힘이나마 더욱 더 내게 되는 것이고... 저는 '조정'이란 게 그렇게 이해되었습니다. 어쩐지 조정이야 말로 그 무엇보다 '무한도전'다운 스포츠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오래도록 무한도전을 지켜봐오면서 제가 느낀 무한도전의 기본 마인드는 '아무리 민폐가 되어도 어깨를 짊어지고서라도 끝까지 함께 간다'였기 때문입니다. 보조를 맞추지 못해도 따라오지 못해도 결국 발목을 잡게 된다 해도 그들은 버려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격려하고 응원하여 끝까지 책임질 대상이라는 게 제가 느낀 무한도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번의 힘든 여름을 보내면서 가장 많이 떠올렸던 것은 '85호 크레인'이었습니다. 지치고 힘들때마다 창을 바라보면서 저너머 크레인 위에서 홀로 이 무더위를 견디고 있을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힘을 내었습니다. 그 분이 바라는 것과 조정과 무한도전이 의미하는 것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민폐나 고문관이라는 말에 묻어 있듯 그렇게 타인을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보지 말고 그 역시 나와 똑같이 존중받고 살아가야하는 사람으로 보는 것. 그렇게 같을 것입니다.  마크 뷰캐넌이 '사회적 원자'에서 아주 재밌는 말을 했더군요. 인간 만사가 정말 복잡하게 보여도 사실은 물리학의 법칙 처럼 아주 단순하고도 간단한 법칙을 따르고 있다고. 어쩌면  정말 이 말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을 정말 바꾸고 싶다면 그 시작은 타인을 어떻게 바라보는 가에 있을지 모릅니다. 그냥 무한도전의 감동이 는개 처럼 마음을 적시는 지금은 그냥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신간 페이퍼를 써야하는데 그만 객적은 소리를 많이 늘어놓고 말았네요. 그냥 그런 날이 있지 않을까요? 뭔가 흠뻑 빨아들인 것 같은 스펀지 같은 기분이 들었을 때는 그저 오롯이 흘리는 것 밖에는 별 도리가 없는 날이... 그냥 지금 제가 그런 기분이란 것을 이해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너무 빙돌아왔지만 이제라도 지금부터 제가 주목하는 신간들을 꼽아보겠습니다. 

 

 먼저 가장 반가웠던 책입니다. 

           

    이 책이 나올줄은 정말 예상 못 했습니다. 캐스린 비글로우의 동명 영화를 보았을 때 부터 정말 궁금했던 원작이었기 때문입니다. 상영 당시 끔찍한 실패를 했으나 감정의 연출이 정말 절제있고 섬세하게 이루어져서 액션 감독으로만 치부되던 캐스린을 다시보게 만든 작품이라 개인적으론 그녀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의미있는 작품으로 꼽고 싶습니다. 아마도 이 영화가 아니었다면 그녀의 최고걸작이라 평가받는 '허트로커'도 나올 수 없었을 것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을 정도로 말이죠. 아무튼 영화를 보고 정말 원작이 읽고 싶었습니다. 과연 원작의 어떤 말들이 저렇게 영상으로 표현되었나 궁금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리 알려지지 않은 작품, 거기다 영화는 실패. 원작을 보게되는 건 그저 요원할 줄 알았는데 마치 뜻밗의 선물 처럼 이렇게 도착했네요. 반갑고 기쁩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주목하는 신간으로 추천합니다. 어쩐지 제게는 이 책 자체가 '기다림은 결국 현실로 이루어진다.'라는 말 자체를 증명하고 있는 것 같네요. 그렇게 오랜 85호 크레인의 기다림도 현실로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역시나 영화의 원작이 되었던 책입니다. 아시는 분은 이미 아실테지만 이번에 칸느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생명의 나무'를 감독한 테렌스 맬릭의 세번째 영화'신 레드라인'의 원작이죠. 지금도 그 영화를 극장에서 보았을 때가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과작하기로 유명한 맬릭 감독의 정말 오랜만의 신작이라 개봉 첫날 극장으로 달려가서 보기도 했었죠. 제목인 '신 레드 라인'은 죽음을 뜻하죠. 다른 말로는 플랫라이너라고 하나요?  그렇게 흔히들 이 영화를 과달카날 섬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미국과 일본 사이의 전쟁으로 초래된 비극을 보여주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지만 주의해서 살펴보면만 사실 이 영화는 그러한 항존하는 비극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삶의 지속을 이어가는 생에 대한 의지를 강조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인간에 대한 변함없은 신뢰가 바탕이 된. 해안가에 버려진 야자수 열매에 다시 돋아난 싹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이 말이죠. 아무튼 그 감동적인 영화의 원작이라니 반갑고 안 볼수가 없네요. 당연히 추천작으로 선택합니다. 

 

 또 하나의 정말 반가웠던 책! 알라딘에는 발간일이 6월 30일로 나와 7월달 추천으로는 어울리지 않겠지만 너무나 보고싶었던 작가의 책이라 이렇게 룰을 어기면서까지 소개해봅니다. 백인 남성 중심의 SF 계에 여성으로 그것도 흑인으로서의 목소리를 전파한 선구자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그래서 한번은 감상해봐야 하는 작가 옥타비아 버틀러. 그녀의 대표작 중의 하나인 '야생종'이 드디어 출간되었네요. 그녀의 단편 하나는 이미 소개된 적이 있지만 장편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녀의 명성을 유감없이 확인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녀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 'KINDRED'가 나오지 않은 것은 유감이지만 그래도 이제라도 이렇게 정식으로 그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으니 다행이지 않을 수 없네요. 

 

 

   앞 분들의 신간 추천을 보니 겹치는 게 하나도 없군요. 어쩌다보니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신간들만 추천한 듯 합니다.(그것도 하나는 6월말에 발간된 것을^ ^;) 하지만 때로 신간 추천을 이렇게 해 보고 싶어도 지는군요. 별로 주목하지 않는, 그렇게 시야에 뒤쳐진 존재들이지만 여기에 우리들과 같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게끔 말이죠. 오늘처럼 무한도전의 조정 경기를 본 날에는 더더욱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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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어릴때 잡지 같은 거 보면

기사 사이 사이에 쉬어가는 페이지 같은 것이 있잖아요?

저는 특히나 작은 미스테리 퀴즈 같은 것이 나와있는 짤막한 쉬어가는 페이지를 좋아했는데요.

그 때의 추억이 괜시리 떠올라 한 번 기획기사로 만들어 봤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매그레 캣은 사실은 첫번째 라트비아인이 나왔을 때

거기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어서 그걸 한번 '매그레 캣의 깨알같은 재미를 주는 유모어 극장'이라는 제목으로 만화로 한 번 만들어볼까 하고 생각했을 때 등장시키려 만들었던 캐릭터였는데요...

갈레씨 까지는 보였는데 생폴리앵에 지다 부터는 그런 에피소드가 잘 보이지 않아서 포기하는 바람에 그만 영영 출연기회를 얻지 못했었죠. 그러다가 즉흥적인 이번 기사로 잠깐 출연 기회를 얻게 되었네요^ ^.

 

그렇게 매그레 캣이 등장하는 일종의 '미스테리 풀기'입니다.

월간 매그레에서 그렇게 쉬어가는 페이지로 실리면 좋겠다 여기고 있습니다.

과연 실릴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실리게 된다면 보다 많은 분들이

월간 매그레를 보아주셨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정답은 거기서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정답을 아시는 분이 계시다면 제발 댓글로 달아주시지말길 바랍니다^ ^

 

사건의 에피소드 자체는 사계절에서 나온 마틴 가드너의 '아하!'에서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마틴 가드너는 이 에피소드를 조지 가모프와 마틴 스턴이 편찬한 '수학의 퍼즐'에서 가져왔다고 하는군요.

 

매그레는 그야말로 직관력의 대가!

정말 직감 하나로 범죄의 냄새를 맡고 단서를 찾아내고 해결까지 하게되는 경우가 많죠.

그럼 당신의 직감은 어떻습니까?

자아, 어디 한 번 매그레의 직감에 도전해보시지 않으시렵니까? ^ ^

 

 

 

  

                               당신도 도전해 보세요! 

 

 

 

 

 

 

 

 

 

  

 

 엘리베이터에 같이 타게 된 네 사람 . . .

 

 

 

 

 그런데 . . . 

 

 

 

  

 

 

 

  

 

 

 그리고 불이 들어오고 . . .
 

 사람들은 각 자 이렇게 생각했다 . . .

 

 

 

 

 

 

 

 

 

 

 하지만 매그레만은 특유의 직감으로 

사건의 진상을 단번에  알아 차렸는데 . . .

 

 과연, 당신도 어떻게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차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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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하나 2011-07-30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헤르메스님 여기서도 뵙는군요 반가와요.
앞으로 리뷰 많이 쓰려고 해요.
지금 다니는 곳 곧 때려칠 꺼거든요 ㅋㅋ 이럴 때일수록 글이 잘 써진단 말이죵 ㅠㅠ ㅋㅋ

여기서 자주 뵈요 //

ICE-9 2011-08-01 23:25   좋아요 0 | URL
앗! 삽하나님^ ^
여기서 보니 더욱 반갑네요.
원래 시험치기 전날이 가장 딴짓 많이 하고 싶어지는 법이쟎아요^ ^
어떤 이유로든 마무리와 새로이 맞이하게 되는 일들 모두가 잘 되길 바랄게요.
그리고 삽하나님의 리뷰 보러 마구 들르겠습니다.^ ^
 
<소설> 파트의 주목 신간을 본 페이퍼에 먼 댓글로 달아주세요.

 

 종일토록 비가 내린다. 집 앞의 나무들이 오롯이 젖어가는 걸 보면서 시크릿 가든의 녹턴을 듣고 있다. 오늘은 6월의 신간 추천 마감일. 맥주 한 캔을 옆에 두고 잠깐 잠깐 목을 축여가면서 부랴부랴 써 나가도록 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한 권은 완전히 정해져 있었다는 것. 

                                      

  을유출판사에서 드디어 말로만 듣던 마오둔의 '식 3부작'이 나왔다. 중국 리얼리즘 소설의 대표작으로 손꼽는 바로 그 책이다. 마오둔은 '모순'을 약간 변형시켜 만든 필명이다. 그는 이 이름을 바로 이 '식 3부작'을 쓰면서 사용했는데 그 만큼 이 3부작은 1920년대 중국 사회가 가진 모든 모순들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중국에서는 루쉰과 더불어 중국의 2대 거장이라고도 불리는 그인데 슬프게도 신간평가단 중 아무도 주목하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이번엔 안타깝게도 선정되지 않을 듯 하다. 하지만 꼭 한 번쯤 읽어볼만한 소설이고 무엇보다 약간 말랑말랑해진 한국 소설들에 지쳤다면 이 소설을 통해 사회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거대한 서사에 한번쯤 빠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여름엔 역시나 장르 소설이 딱이다. 이번에도 여름을 맞아 굉장한 작품들이 많이 나온 듯 하다. 벌써부터 좋다는 입소문이 자자한 루이즈 페니의 '스틸라이프'와 프로파일러를 소재로 한 발 맥더미드의 '인어의 노래'를 이번 신간 추천작으로 꼽아본다. 하나는 아가사 크리스티적 '후더닛'을 재현한다고 하니 급관심이 생기고(후더닛 소설은 나에겐 일종의 스포츠다. 정말 제대로 된 퍼즐러 소설을 만나 제대로 풀어보고 싶다.)  토니 힐 시리즈의 시작이라는 '인어의 노래'도 골든 대거까지 받은 작품이라 마구 흥미가 동한다. 거기다 모두 시리즈의 첫 작품들이라니 더 읽어보고 싶다. 만일 이 두 책이 선정된다면 하루 날 잡아서 맥주 캔을 옆에다 마구 쌓아가면서 흠뻑 빠져서 읽고 싶다. 

 

  

 

 

 

  

 

 

 

 정말 사랑하는 작가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도 이번에 나왔다.  

섬에 표류한 32명의 사람들, 거기다 여자는 단 1명. 예전에 유행했던 질나쁜 성적 농담을 그대로 따온 것 같은 설정이지만 놀랍게도 실제 일어났던 사건이라고 한다. 개인과 그 개인들을 엮어가는 사회에 대해 그 누구보다 날카로운 관찰력과 혜안을 보여주는 나쓰오인 만큼 폐쇄적이고 욕망의 해소는 철저하게 제한된 그 세계에서 과연 또 어떤 어둠을 보여줄 것인지 너무 기대가 된다. 되든 안되든 어쨌든 이 작품도 맥주를 벗삼아 마셔야 할 작품이다. 내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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