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직장은 천안이고, 난 홍대앞에서 매일 출퇴근을 한다. 힘들지 않냐고 하는 사람에게 난 이렇게 답한다. "출퇴근이....하는 일의 전부에요"

출퇴근을 하는지라 천안에서 술을 마시면 여러가지로 불편하다. 서울보다 물이 안좋은 게 가장 큰 불편이지만, 집에 갈 걱정을 해야 한다는 것도 신경이 쓰인다. 고속터미널은 9시 40분, 동서울에 가는 것은 10시가 막차며, 기차도 11시면 끊겨 버린다. 딱 한번 택시를 타고 서울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땐 사정이 워낙 급했으니까 그랬지, 7만원을 주고 서울에 가느니 여기서 하루 자던지, 아니면 새벽 2시까지 기다렸다가 기차를 타고 올라가는 걸 택하고 있다.

사람들은 말한다. 왜 천안에서 살지 않냐고. 그럼 더 문제니까. 서울에서 술을 마시는 게 일주에 서너번인데, 술마시고 나서 천안에 어떻게 내려가라고? 버스면 모르겠지만 기차를 타면, 그리고 잠이 들면 앗차 하는 사이에 천안을 지나가는데?

그래서 난 서울서 출퇴근을 하지만, 친구들은 천안에 올 일이 있으면 꼭 내게 전화를 건다. 난 서울서도 늘 볼 수 있는데, 서울서 만나는 게 더 좋은데. 방금도 그랬다. 친구 하나가 회사일 때문에 천안에 왔단다. "이따 보자. 술한잔 살께" 내가 제주도 쯤 되는 곳에 살았다면 먼 길을 날아서 온 친구가 반가웠겠지만, 지금은 과히 반갑지 않다. 이틀에 한번은 술을 쉬겠다는 결심이 깨져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 친구와 나는 지난주에 이미 술을 마셨거든. 그래도 어쩌겠는가. 천안이라는 지명에 내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는데.

이따가 영안실에도 가야 하는데, 큰일이다. 술에 잔뜩 취해서 그런 데 가면 남들도 별로 안좋아 할테고, 실수를 할지도 모르는데. 언젠가 친구의 모친상 때, 술을 왕창 마시고 거길 가는 바람에 영안실 사이를 막아주던 벽을 쓰러뜨려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지 않던가 (그집에서는 내 말만 나오면 그 얘기를 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열심히 마셔는 주겠지만, 마음 한구석이 아파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얼마전 30대 회사원이 현금인출기를 털다가 잡혔다. 그는 범행동기를 이렇게 말했다. "카드빚 때문에..."     장난감 총을 들고 은행에 들어갔던 남자 역시 카드빚 때문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실토했다.

요즘 일어나는 모든 범죄는 다 카드빚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의 범행이 성공했다면 그 돈으로 과연 카드빚을 일부라도 갚았을까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지만 말이다.

카드빚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백만이다. 신용카드의 대량발급이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를 살린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이제는 그 신용카드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론에서는 연일 신용불량자에 대한 대책을 정부에 촉구하지만, 막상 빚을 탕감해준다든지 한다는 발표가 있으면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는 사설을 써대니, 그들의 진짜 속내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나 역시 처음에는 카드빚 탕감에 부정적이었다. 한때지만 돌려막기를 하면서까지도 카드 연체를  하지 않았을 정도로 성실하게 카드 대금을 납부해 온 나로서는 자기가 좋아서 쓴 카드빚을 깎아 준다는 게 좋을 리가 없다. 엄연한 성인인데, 자기가 쓴 빚은 자기가 갚아야지 않는가.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면 그게 꼭 그 사람만의 잘못은 아닌 것 같다. 자본주의의 총아인 카드, 그것은 멀쩡한 사람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힘이 있다. 외상을 할 때는 대개 미안한 마음을 갖지만, 카드라는 놈은 외상을 하면서도 목에 힘을 주게 만드니 말이다. 

돌려막기를 하다가, 더이상 이런 생활을 하지 말아야지 하는 맘으로 모든 카드를 없애버린 적이 있다. 그 후 일년간 난 카드가 없었다. 카드 없는 삶은 정말이지 불안의 연속이었다. 애들을 불러서 술이라도 한잔 사려면 화장실에 가서 지갑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돈이 오버되었다 싶거나 차비가 없으면 잽싸게 은행으로 달려간다. 잔고가 없어서 이은행에서 저은행으로 4천원을 보내 1만원을 찾은 슬픈 기억도 내겐 있다. 그런 생활을 하던 끝에 난 다시금 카드를 만들었고, 카드가 닳도록 열심히 그어대고 있다. 카드와 함께이니 20명, 30명이 몰려와도 하나도 무섭지 않다. 지난번에 써클 모임에 가서 몇십명에게 갈비를 살 때도 난 당당했다. "더 시켜!" 이러면서. 그 후유증으로 다음달엔 거의 최저생활을 했지만 말이다.

카드가 지닌 이 마력, 의지가 굳은 사람이라면 모를까, 웬만한 사람이라면 이 유혹을 이기기가 꽤 힘이 들거다. 카드가 없었으면 가진 돈에 맞추어 먹었을 술도 쓸데없이 비까번쩍한 곳에 가서 먹게 되지 않는가. 카드를 만든 후, 난 카드가 없을 때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소비를 하게 되었고, 그 바람에 "한달에 얼마씩 돈을 모아서... "라는 깜찍한 계획은 거의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연체를 한 적이 없으니 카드회사는 내게 참 잘해준다. "고객님, 우수고객이세요! 저희가 고마우니까 주유권 보내드릴께요"  "고객님, 참으로 카드를 많이 쓰세요. 내년에도 많이 이용해 주세요!" 이쁜 목소리의 여직원이 역시 이쁜 목소리로 얘기할 때면, 목에 힘이 불끈 들어간다. "그래! 더 많이 쓰는거야!"    하지만 난 안다. 내가 한번, 혹은 두번 연체를 하면, 이쁜 여직원 대신 목소리가 끈적끈적한 직원이 전화를 걸어 빚갚기를 독촉할 것임을. 세번 연체를 하면? 아, 생각만 해도 오싹하다.

카드는 빚이고, 빚은 언젠가 갚아야 할 것이건만, 카드는 그 모든 것을 잊게 만든다. 그러니 카드빚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을 무턱대고 욕할 것은 아니다. 정부는 무분별한 카드발급을 조장했고, 그 결과 카드는 오늘날 사회불안의 요소가 되고 있으니, 정부가 일정부분 책임을 나누어 져야지 않겠는가. 돌려막기의 악몽에서 벗어난 내가 약간은 성실한 삶을 사는 것처럼, 카드빚을 진 사람도 거기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다시금 검소한 사람으로 돌아오지 않겠는가. 사치와 향락에 몸을 맡기다보니 그렇게 되었을지언정, 한때의 잘못으로 평생 범죄자의 낙인이 찍히는 것은 억울한 일이다. 어떤 방법이 되었든지, 그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다.  그런 조치가 나왔을 때, "나는 성실히 갚았는데"라며 볼멘 소리를 하지 않았으면 더 좋겠다. 더불어 사는 사회 아닌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주제넘게 방송에 나갔던 적이 있다. <사랑의 스튜디오>가 그 효시고, 그 이후 이러저러한 프로에 얼굴을 디밀었지만 <사랑의...>만큼 잘 하지 못해서 그런지 지금까지 날 기억하는 사람들은 죄다 <사랑의 스튜디오> 얘기를 한다. 물론 그것도 벌써 9년 전이고-95년 1월 8일이니-아직까지 날 알아보는 사람은 그야말로 가물에 콩날 정도지만.

어찌되었건 내가 여의도를 들락거리던 그 시절, 길가에는 가끔 날 알아보는 이들이 있었고, 심지어 사인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었다. 난 그들에게 말이 그려진 싸인을 해줬는데, 다들 얼마 안지나서 내 사인을 버렸을게다.

그땐 나랑 같이 있는 애들이 나보다 더 설쳤다. 누가 알아보는 낌새만 있으면 "얘 아시죠? 얘가 바로 그...." 이래가면서 날 선전했다. 워낙 내성적이고 조용히 술마시는 걸 좋아하는 나는 그럴 때마다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는데, 그럴수록 애들은 더 난리를 쳤다.
"얘가 바로....<사랑의 스튜디오> 보셨죠?"

한번은 부산의 <줄리아나>라는 나이트를 갔다. 그때 난 부킹이 뭔지를 처음 알았는데, 웨이터가 손님으로 온 여자들을 데리고 들어와 우리 옆에 앉혔다. 내 친구놈의 말, "얘 아세요? 요즘 TV에 많이 나오잖아요" 하지만 여자들 중 날 알아본 애는 극소수고, 나머지는 "누군데요?" 하면서 멀뚱멀뚱. 사실 여자 쪽에서 "혹시 누구 아니세요"라고 했으면 "맞아요" 할 수는 있어도, 상대는 날 몰라보는데 우리 쪽에서 "나 몰라?"라고 우기는 건 진짜 말이 안된다. 언제나처럼 난 어디 숨을 곳 없나 싶었는데, 그 친구놈은 여자가 들어올 때마다 그 말을 반복했다. "얘 모르세요?"

당연히 짜증이 났다. 자기가 가진 그 무엇으로 여자를 꼬셔야지, 왜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나의 존재를 이용하려 한담? 친구가 스물세번째로 그 얘기를 반복했을 때-정력도 좋지-난 화가 폭발해서 나이트를 나와버렸다. 친구가 날 붙잡는다. "이왕 갈 거, 계산도 좀 해라"
그 말도 말이 안됐지만, 계산을 한 나도 말이 안되긴 마찬가지. 하여간 나이트를 나온 나는 광안리에 가서 혼자 술을 퍼마시곤, 비디오방에 들어가 아침까지 잠을 잤다. 일명 '부산의 악몽'이다.

하지만 요즘 난 그 친구의 마음을 이해한다. 내 친구인 표진인-TV에 잘 나오는 의사 있잖은가-과 있으면 가끔 싸인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고, 같이 사진을 찍자는 여자도 있다. 같이 술을 마실 때면 우리 테이블을 가리키며 "야, 쟤 xxx 아냐?"라고 호들갑을 떠는 사람들의 존재가 느껴지곤 한다. 당사자일 때와는 달리, 지금의 난 그런 눈길이 즐겁다. 그들에게 "얘 몰라요?"라고 말하고 싶어 죽겠다. 특히 이쁜 여자애들이 근처에 있을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물론 표진인과 난 차원이 다르다. 난 기껏해야 몇달 방송에 나갔을 뿐이지만, 표진인은 벌써 몇년째 방송에 출연 중이고, 스포츠신문에도 날 정도의 스타니까. 그래서 그런지 그와 있으면 굉장히 뿌듯하고, 다른 데 가서도 자랑을 한다.
"아, 표진인? 걔 내 친구야. 가끔 만나 술을 마시지" 

유명인의 명성을 빌어 나를 높여 보자는 마음은 그러니까 인지상정인가보다. 그래서 난 과거에 날 열심히 팔았던 친구들을 지금은 이해한다. 불러주지도 않겠지만,  앞으로도 난 방송에 나갈 생각이 없다. 지금처럼 표진인의 명성에 빌붙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지. 혹시 아는가. 걔랑 같이 술을 마시다보면, 아리따운 여자애들이랑 합석이라도 할 수 있을지. 유명인이 되면 괴롭겠지만, 유명인 친구를 둔 사람은 행복한 법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11 2011-05-21 17: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흠 근데 "얘 몰라요" 해봤자 여자들은 다 "얘"한테만 집중할텐데 오히려 여자꼬시는데는 부작용인듯. 아! 메인이 아니라 콩고물을 노리는 전략인거로군
 

 

 

 

오늘은 우리 교실 동문들의 신년회 날이다. 번잡한 12월을 피해 조용한 1월에 만나서 보람찬 새해를 다짐하게 된지가 벌써 몇년째다. 나같은 아래것은 반드시 참석해야 하건만, 난 오늘 모임에 안갈 생각이었다. 1월 1일, 세번째로 들른 교수님-홍선생님-댁에서 술에 취해 무슨 행패를 부렸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술에 취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기억이 안나는 전날밤이 사람을 얼마나 무섭게 하는지를. 크게 잘못한 일이야 있겠냐만은, 그래도 난 무서웠다.

모임에 참석하지 않기로 하고 출근을 했는데,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다. 술마시고 깽판친 죄보다 신년회에 안나온 게 어찌보면 더 큰 죄일지 모르고, 내가 그날 민폐를 안끼쳤을 수도 있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슬쩍 교실에다 전화를 해, 내가 그날 어땠는지 알아봐 달라고 했다. 이럴 수가. 아무일 없더란다. 내가 갑자기 사라졌고, 걱정되서 내 뒤를 쫓은 후배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달려갔다고 한다. 흠...그렇다면 내가 가장 바라는 상황일세. 일정을 바꿔 난 모임에 참석하기로 마음을 먹고 기차표를 끊었다. 비록 정장은 못했지만.

1차는 정말이지 따분했다. 55세가 넘지 않으면 말도 못하는 분위기라, 난 책상 밑으로 책을 꺼내 독서를 하거나, 휴대폰으로 여기저기 메시지를 보내면서 시간을 보냈다. 나이드신 분들을 보내고 2번째 교수님의 통솔아래 무늬만 단란주점인 <다모아>를 갔다. 양주와 맥주가 나왔고, 난 늘 하던대로 홀짝홀짝 술을 마셨다. 가끔씩 호방하게 웃기도 하고. "음하하하하" 그런데... 후배 하나가 이런다.
"선생님, 술 드시면 안되는데.."
뭔가 이상해서 난 그녀를 옆방으로 끌고갔다.
"왜 안돼지?"
"지난번처럼 그러실까봐...."

그랬다. 1월 1일, 홍선생님 댁에서 내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열심히 술을 마시던 중, 자신의 새해 포부를 말하라고 했을 때 내가 이렇게 말했단다.
나: 작년보다 나은 한해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멀쩡할 때 늘 하던 소리다)
홍: 그래? 작년엔 어땠는데?
나: 몰라. 내가 어떻게 알아? 니가 알지.
이 말과 동시에 난 집에 가야 한다고 가방을 메고 나왔다는데, 물론 이 사건에 관한 기억은 전혀 없다. 내 심복이 "아무일 없었다"고 한 것은 이게 평소에 늘 있던 일이라서 그랬다나? 하기사, 홍선생님한테 내가 그간 못할 짓을 많이도 했다.
술에 취해 "언니"라고 부른 적은 부지기수고, "내가 너 얼마나 좋아하는줄 알아?"라는 말도 했다고 하고, 그밖에...으흐흑. 하여간 우리 홍선생님은 마음도 좋으시다. 내 깽판을 다 받아 주셨으니 말이다. 혹자는 내가 술취한 척하면서 반말을 했다고 하지만, 그건 절대 아니다.

어쨌든 오늘도 기본은 했다. 기본이란 소주 한병, 혹은 맥주 다섯병 이상을 말하는데, 이 기준에 미달하면 술마신 것으로 카운트가 안된다. 그러니까 난 소주 두잔씩 마시면서 "나 매일 술마셔"라고 하는 사람을 무지하게 싫어한다. 아니 그 사람은 밥 한숟갈 먹고 "밥 먹었어!"라고 그러는가? 좌우지간에 1일 마시고, 3일날 마시고, 오늘 또 마셨으니, 징검다리로 마시고 있는 셈이다. 작년에 비하면 많이 나아졌고, 이대로 간다면 180일 이하의 꿈도 달성할 수 있을 듯 싶다. 그럼...7일날도 마실까? 물론이다. 그날은 중1 때 과외하던 애들끼리 술약속이 있다. 9일은? 그날은 쉬지만, 아쉽게도 8일날 술약속이 있다. 이래저래 생기는 술약속 탓에, 이틀에 한번도 사실 쉬운 목표는 아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야겠지. 180일 이하로 되도록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난 일상 생활에서 영어를 쓰는 일이 제법 있다. 영어로 된 논문을 읽고, 영어로 논문을 쓴다. 물론 대단한 것은 아니다. 문학작품과는 달리 영어논문은 대부분 쉬우니까. 모르는 단어도 별로 없지만, 설령 있다고 해도 논문의 독해에는 별 지장이 없다.

문제는 영어 논문을 쓸 때다. 이때 나의 빈약한 영어 밑천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기존에 출판이 된 논문들을 잔뜩 쥐고 앉아서, 비슷한 표현을 베끼거나 통째로 인용을 하면 되니까. 전혀 새로운 말을 만들어야 할 때는 한영사전을 찾아가면서 낑낑대다보면 그럴듯한 문장이 된다. 내가 보기에 그럴듯 하다는 거지, 외국인이 본다면 어떻게 저런 말도 안되는 문장을 썼을까 의아할거다. 그래서 내가 쓴 논문은 어디선가 베껴온 좋은 영어와 내가 억지로 만든 나쁜 영어가 혼재되어 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완성된 논문을 다른 사람에게 리뷰를 보낼 때 일어난다. 우리 학계는 바닥이 워낙 좁아서 보낼 사람이 한정되어 있어, 예컨대 내가 회충에 관해 논문을 쓰면 회충을 전공하는 사람에게 리뷰가 갈 수밖에 없다. 회충에 관한 논문을 쓸 때는 주로 그 사람이 쓴 논문을 인용하는 수가 많다. 그런데, 분명히 난 그 사람의 표현을 베꼈는데, 마음에 안드는지 고치는 대목이 너무도 많다는 거다. 그 사람이 "2만마리의 황소 중에서"를 "Out of 20000 cows"라고 써서 그대로 쓰면 꼭 "Of the 20000 cows" 이런 식으로 고쳐 놓는다. 자신이 그렇게 썼으면서, 이건 자신을 부정하는 거 아닌가? 외국 사람이 쓴 표현을 인용했는데, 그걸 고치는 대목은 더더욱 엽기적이다. 그가 영어를 나보다 잘하는 건 인정할 수 있지만, 외국 사람보다 더 잘하지는 않는데 어떻게 그걸 고칠 수가 있을까?

곰곰히 심리분석을 해본 결과 이런 결론을 얻었다. 꼭 맞진 않겠지만, 그는 그 논문의 저자가 나라는 걸 아는 이상, 그리고 내가 영어를 무진장 못하는 걸 아는 이상, 내가 쓴 모든 표현을 부정하고 싶은거다. 좀더 쉽게 설명을 하자면 이런거다. 어떤 그림을 봤을 때, 그게 초등학교 2학년 애가 그린 거라는 말을 들었다. 그럼 난 이런다. "이게 그림이야?" 그리고 어딘가에 쳐박아 둔다. 그런데 잠시 후 누군가가 헐레벌떡 뛰어와서 "그게...글쎄 피카소가 그린 거래!"라고 말하면 화들짝 놀라면서 쳐박아둔 그림을 다시 펼친다. 그리고는 거기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고 애쓴다. 나중엔 이렇게 말한다. "역시 대가는 달라!"라고. 잠시 뒤 아까 그 누군가가 뛰어온다. "초등학교 2학년 애가 그린 게 맞고, 그애의 장래희망이 피카소래"  그 말을 듣고난 나는 그 그림을 북북 찢어버리고, 잠시나마 농락당한 것에 화를 낸다. 내가 이러는 것처럼, 리뷰어들도 내가 쓴 논문이려니 하고서는 마구 고치는 것이리라. 장동건이 입은 바바리는 멋있지만 내가 입은 바바리는 짜가 같이 보이듯이, 자신이 썼던 논문에서 베껴온 표현도 내 논문 속에 있으니 후져 보이는 것이다.

그럼 해결책은 있을까? 없다. 딱 한가지 있다면, 내가 빨리 대가가 되는 것. 그럴 확률은 거의 없으니, 그냥 이렇게 살 수밖에. 내가 쓴 논문이 더이상 쓸 곳도 없을만큼 빨갛게 난도질당해 오는 광경은 분명 슬프지만 말이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11 2011-05-21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 교수분들도 저랑 비슷한 수법 쓰시네요 저도 영작할때 검색해보고 단어만 바꿔서 뱃긴 적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