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학교 졸업생들이 큰 시험을 치뤘다. 합격률이 95%를 넘는 시험이긴 해도, 떨어지면 '개망신'으로 연결된다는 게 스트레스일 수밖에 없다. 시험을 본 학생들에게 수고했다는 의미로 마련된 것이 어제의 술자리, 졸업준비 위원이지만 평소 별 기여를 못하고 있는지라 어제 술자리는 꼭 가야 했다. 약속장소는 산 중턱에 있는 아름다운 곳으로, 카페처럼 우아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주 메뉴는 삼겹살이었다.

졸업을 하는 43명 중 절반 정도만 나왔다. 아마도 시험을 잘 본 애들만 나왔나보다. 건드리기만 해도 원샷을 해대는 학생들 틈에 끼어있다보니, 제법 술을 많이 마신 것 같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소주를 한병반은 마셨다. 2차로 간 곳은 생전 처음 가보는 곳인데, 분위기가 아주 좋아 다음에 또 오고 싶어질 정도였다. 소주 댓병에다 맥주를 담아서 파는 게 특이했고, 맥주맛도 좋았다. 소주와 맥주, 이렇게 마시면 취하기 마련이다. 나보다 조금 더 취한 학생 하나를 집에 데려다 준 기억이 나는데, 그 다음에 어떻게 집까지 왔는지는 전혀 모르겠다. 기차를 어떻게 탔는지, 내리는 건 잘 내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도 집에 올 수 있는 것은 바로 귀소본능 덕분, 많이 늦었음에도 벤지는 날 반기며 꼬리를 흔들었다.

오늘이 14일이고, <천국의 계단>을 보기 위해 두 건의 술자리를 거절했다. 14일 중 6번, 이런 추세면 연말까지 140여번에 머문다. 180번의 목표 달성은 시간문제다. 음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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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프로야구에 통 관심을 끊고 산다. 하기사, 경기도 안하는데 무슨 관심을 갖겠는가.  그런데 어제 오후, 항의전화를 한통 받았다. 이상훈 사태가 지금 심각한데, 왜 입장 표명을 하지 않느냔다. 그래서 그랬다. 알아보고 글로 남기겠다고.

사태의 전말은 이랬다. 이순철이 엘지 감독으로 부임했는데, 기타를 들고 밴드 활동을 하던 이상훈에게 전지훈련 중에는 기타를 가져가지 말라고 했고, 이상훈은 그에 반발, 팀을 떠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첫번째 의문. 아니 왜 하필 이순철을 감독시켰냐? 꼭 엘지 출신이어야 엘지를 지도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순철은 도무지 카리스마가 없다. 선수 시절 그가 얼마나 얍삽한 야구를 했는지 야구에 약간만 관심이 있어도 알 것이다. 어디서 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노찬엽이나 한대화, 하다못해 김상훈 같은 사람도 있는데 왜 이순철이람? 어제 같이 술을 마신 엘지 팬들도 이순철이 온 것에 대해 "엘지의 해태화"라며 반발하던데...

두번째 의문. 이상훈은 언제부터 기타를 쳤을까? 그의 연주실력은 모르지만, 선수가 다른 취미를 갖는 게 나쁠 건 없다. 기타가 어릴 적부터 "모범생이 아닌 애들이 가지고 노는 것"이라며 세뇌가 되어 있어서 그렇지, 기타는 좋은 취미다. 밴드활동? 더더욱 멋지다. 전지훈련을 안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이상훈 정도면 자기 앞가림은 알아서 할텐데 그걸 금지시키는 것은 반발할 만하다.

이순철은 젊은 감독이다. 신문에 난 걸 보니 이제 겨우 마흔하나, 하지만 그의 감각은 젊은 나이를 초월해 구닥다리의 경지에 다다른 것 같다. 엘지가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은 선수의 취미생활을 막는 것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야구할 땐 야구를 해도, 사생활은 존중하자. 머리를 기르든, 팬티를 안갈아입든, 야구를 잘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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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도로를 내리막길로 만들어 자동차 연비를 개선하겠습니다" 이 구호를 들으면 이런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럼 아래쪽에 사는 애들은 어떡하지? 그런데 이런 황당한 구호를 공약이랍시고 내건 정당이 있단다. 물론 우리나라는 아니고, 라틴 아메리카의 한 나라다.

여기까지 들으면 "그럼 그렇지!" 하며 웃을 것이다. 맞다. 그 나라들, 웃긴 일 참 많이 한다. 아직까지도 군사독재 정권이 지배하는 곳이 있고, 그나마 정치상황이 불안해 쿠테타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상황이니 경제가 잘될 리 없어, 뻑하면 파산을 한다. "저 나라들은 도대체 발전이 없어!"라고 생각을 할 거다.

하지만 그건 우리 모습이기도 했다. 지금은 많이 나아져서 다행이지만, 몇십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해외토픽으로 우리나라 소식을 들으면서 "저 나라는...."이라는 말들을 했을거다. 헌정 이후만 보더라도 '사사오입' 파동이 있었고, 김구 선생이 암살당했다. 이념을 빌미로 둘로 갈라져 전쟁을 겪어야 했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 판결이 난 8명이 다음날 새벽 처형당하자 어느 단체는 "사법사상 암흑의 날"이라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영국의 한 언론사는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정착한다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어나는 것과 같다"라는 모욕적인 말을 서슴지 않았다. 비근한 예로, 가운데 도막이 뚝 끊어진 성수대교나, 테러도 아닌데 제풀에 쓰러진 삼풍백화점은 외국인들로 하여금 "저 나라는 언제쯤 정신을 차릴까" 하는 탄식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까.

그런 일들 중 하나가 바로 실미도다. 김일성의 목을 따기 위해 사형수들이 포함된 부대를 만들어 가혹한 훈련을 통해 인간병기로 만드는 건 얼마나 비인간적인가. 냉혹한 대우에 그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정부에서는 "무장공비"라며 그들을 두번 죽였다. 자랑스럽지 못한 역사도 우리의 것이건만, 오욕으로 얼룩진 현대사를 학교에서는 전혀 가르치지 않았고, 난 다른 루트를 통해 역사의 비극들을 접했다. <실미도>라는 영화가 개봉되기 전까지, 젊은이들의 대부분은 그 사건에 대해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아쉬운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살아온 야만의 역사를 다시금 우리에게 환기시켰다는 점이 이 영화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역사를 알고나면 우리가 좀더 겸허해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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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염방이 죽었습니다. 사실 전 매염방을 참 많이 좋아했습니다. 지난번에 장국영이 죽었을 때는, 그다지 슬프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위 분위기가 워낙 침울해 저도 슬픈 척했죠. 에이, 전혀 안슬프다면 거짓말이겠지요. 영웅본색을 보고 자란 제가 왜 장국영이 죽는 게 안타깝지 않겠습니까? 슬퍼하지 않았다는 것은 음해라고 생각하구요, 하여간 매염방이 죽은 건 장국영이 죽은 것보다 열배쯤 더 슬픕니다. 그건 아마도 매염방이 여자이기 때문이겠지요? <미라클>, <홍번구>에서도 그녀를 봤지만, <취권2>에서의 연기는 정말이지 압권이었습니다. 얼마 전 <영웅>에서도 그녀의 모습은 아주 멋졌는데, 그때 이미 암세포가 자라고 있었나봐요....

저의 소희와는 달리, 사람들의 분위기는 대체로 차분합니다. 장국영의 인기가 훨씬 더 높았고, 갑작스럽게 자살을 해서 그런가 봅니다. 하지만 저는 매염방의 죽음이 더 갑작스럽습니다. 암인 걸 전혀 몰랐거든요. 그가 암인 걸 모르는 걸로 보아, 진정한 팬은 아니었던 게지요. 그렇긴 해도, 꼭 진정한 팬이라야 죽음을 슬퍼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63년생이니 40을 딱 채우고 세상을 떠났네요. 스크린에서의 멋진 모습과는 달리, 투병 생활은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것이었겠지요.


매염방이 활약하던 시기는 그야말로 홍콩영화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였습니다. 하지만 홍콩이 중국에 합병되기 전부터 스타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가더니, 이제는 예전처럼 홍콩영화가 우리나라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홍콩영화의 몰락 이유를 저는 모르겠습니다만, 하여간 그런 광경을 보면서 매염방의 마음은 그다지 편치 않았을 겁니다. 40이라는 나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영화배우들은 다 그렇고, 성룡이 특히 심하지만, 매염방 역시 데뷔 때나 지금이나 아름답고 멋진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더군요. 매염방의 매력이 물씬 묻어나는 영화는 개인적으로는 <동방삼협>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물론 스토리는 하나도 없지만, 여자 셋이서 폼잡는 영화 아닙니까. 걸어가면서 뒤를 돌아보는데, 커다란 눈이 멋지게 빛나던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 납니다(저같은 사람이 또 있어서일까요. 그 영화는 글쎄 속편까지 만들어졌답니다).

하여간... 2004년은 매염방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야 합니다. 있을 때 한번도 잘해준 적이 없다가 꼭 죽고나면 이런 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할지 몰라도, 하여간 아쉽습니다. 있을 땐 가치를 모르다가 없어지면 허전한 존재, 공기, 물, 그리고 매염방. 안타까워서, 몇자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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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했지만 흥미로운 주제고, 토론의 달인인 유시민이 나와서 끝날 때까지 토론을 봤다.

-김황식 한나라당 의원
처음 본다.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긴 해도, 그는 내가 알던 한나라당 의원과 하나도 차이가 없었다. 그는 시종일관 음모론을 제기했다.
"까마귀 날자 배떨어진다더니, 노무현이 12월 19일날 당선축하모임에서 '시민혁명을 지속시키자'라고 하니까 그다음에 물갈이 연대가 등장했단 말야..."
그는 별 재미도 없는 이 얘기를 세번이나 반복하는 뚝심을 보여줬다.

최열의 반박, "나도 환경운동을 십년 넘게 해온 사람인데, 우리가 청와대나 안기부 지시를 받고 움직일 사람이냐"
유시민의 말, "그렇게 보신다면 말이죠, 2000년의 낙선낙천운동이 일어났을 때 이회창이 중진들 물갈이 했잖아요? 그 운동이 이회창과 사전 교감이 있었다고도 할 수 있죠?"

무지한 사람을 설득할 수는 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닌 것을 알면서 거짓 주장을 하는 사람을 무슨 수로 설득한담? 김황식도 물갈이연대가 노무현과 관계가 없음을 잘 알고있을게다. 최열의 주장대로 이번 운동은 4년 전 벌어진 낙선운동의 연장이니까. 하지만 그가 거듭 음모론을 퍼뜨리는 것은 물갈이 운동의 이미지를 흐리게 함으로써 정치에 영향을 최소화하려는 음모가 깔려있다. 그놈도 집에 가서는 자식한테 이럴 거다. "거짓말 하지 마라, 응?"
그나저나 한나라당은 왜 시민운동에 그렇게 거부감을 가지는 걸까? 후보 판단기준으로 시민연대가 내세운 '전문성, 도덕성, 개혁성'과 한나라당 후보들이 거리가 먼 것을 시인하는 걸까?

-제성호 교수
이 인간은 시종일관 위법성을 물고늘어진다. 선관위가 괜찮다고 했다는데도 막무가내다. '선거에 영향을 미치니' 위법하단다. 난 그가 지난 대선 때 있었던 조선일보의 막무가내식 편파보도에 대해서 그런 소리를 한번이라도 했는지 의문이다. 

위법성에 대해 김황식 의원이 한마디 거들자, 유시민이 한 얘기는 정말이지 토론의 하이라이트였다.
"저도 국회의원이지만, 우리가 남한테 룰을 지키라고 말하는 건 양심에 찔린다"
난 웃었고, 방청석에서는 박수가 나왔다. 맞는 말이다. 전체 의원의 20% 이상이 범법자인데,  어찌 시민단체에게 위법성 운운한담?

제성호는 '공정성'에 관해서도 많은 말을 했고, 시민단체가 정치적 편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비난했다. 편향, 나쁜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러는 제성호는 편향성이 없나? 그는 지금까지 민정당.민자당.한나라당에게만 줄기차게 투표를 했을게다. 그런 사람이 남에게 편향을 말한다? 그러고보면 편향이란 딱지는 언제나 반개혁 쪽에 의해서, 개혁을 주창하는 사람들에게 붙여진다. 난 그가 엄정하게 중립적인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제발 좀 깨달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지지는 공정이고, 남의 지지는 편향이라는 이중잣대는 당장은 먹히겠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공정성'에 대한 환상을 품게 함으로써 정치발전에 역행한다.

-한 네티즌
어떤 네티즌이 인터넷을 통해 이런 의견을 개진했다.
"국민연대에 소속된 위원이 우리나라 4천만 국민인가요?"
물갈이연대에 대해 이런 지적이 난무한다. "누가 너희에게 그럴 권리를 줬냐"
"너희들의 의사가 국민의 의사냐"
모든 국민은 주권자며, 정치에 참여할 권리를 지닌다.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몇년마다  돌아오는 선거날 딱 하루만, 주권자임을 실감해야 했다. 의원들이 개판을 쳐도 응징할 방법은 없었고, 망각의 힘 때문에, 그리고 망국적 지역감정 때문에 선거 때조차 응징이 실현되지 못했다. 정형근이 아직도 국회의원 행세를 하는 현실을 보라. 

다들 정치가 개판이라고 욕을 하면서, 아무일도 안하는 상황. 시민연대가 나섰다. 왜? 국민들의 권리를 되찾아주기 위해. 그러자 침묵하고 있던 애들이 하나둘씩 입을 연다. "니, 니네가 뭐, 뭔데?" "그럼 가만히 있던 우리는 바, 바보냐?"
사실 바보였다. 어느 유명한 사람의 말에 의하면, 침묵하는 다수란 없단다. 그 말은,  우리가 우리의 권리를 스스로 찾지 않으면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얘기다. 술자리에서 정치를 욕하는 기세를 보면 정말이지 우리 정치가 곧 바뀌어야 할 것 같다. 그런데...거품을 물고 정치를 욕하는 사람은 알고보니 투표도 안했다. 이게 말이 되나? 왜 안했을까?
"그놈이 그놈이니까!"  시민단체의 당선운동은 그래서 필요한 거다. 그들은 말한다. 도토리도 키를  재야 하고, 잘 보면 보인다고. 선택을 도와주겠다는데, 그리고 수틀리면 그 선택을 따르지 않으면 되는데 왜 "니들이 뭔데?"라고 볼멘 소리를 하는 걸까? 우리, 솔직해지자. 그간  우리가 바보였음을, 언론과 지역주의에 휘둘려 왔음을 솔직히 인정하자. 시민단체들이 몇달씩 일해봤자 생기는 거 하나도 없다. 그런데 그들이 왜 그러는 거 같아? 생기는 게 많아 보이면, 지가 하든지. 지가 하기 싫으면 욕은 말든지. 정말 왜들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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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리릿 2004-01-13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제가 쓰고 싶었던 글입니다. ^^ 이심전심이라는 말을 절감했어요.. 퍼갈께요~ ^^

마태우스 2004-01-14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끄럽습니다....